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6편

찬상인(璨上人)에게 주는 글

示璨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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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2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제7칙 '법안혜초문불(法眼慧超問佛)'은 본문의 혜초(惠超)-법안(法眼) 공안과 동일하다. 원오(圜悟) 자신이 수시(垂示)·송평(頌評)한 것으로, '여시혜초(汝是慧超)→성오(省悟)' 해석의 직접 전거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獨脫根塵一片田地。惟離念絕情,迥超常格'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자체역은 '一片田地'를 앞의 자성 묘사에 붙여 끊고 '惟離念絕情'을 새 문장의 주어로 세웠으며, 책은 '一片田地'를 뒤 절의 주어(한 뙈기의 심전지)로 읽었다. 구두점이 없어 둘 다 문법적으로 성립하고 실질 의미 손실이 없어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이독으로 유지한다. 다만 '心'은 책의 부연일 뿐 원문에 없다.
26.1
한문達磨西來,不立文字語句,唯直指人心。
번역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문자와 어구를 세우지 않으셨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셨을 뿐이다.
若論直指,只人人本有,無明殻子裏全體應現,與從上諸聖不移易絲毫許。
곧바로 가리킨다는 것을 말하자면, 그저 사람마다 본래 지닌 것이다. 무명(無明)의 껍질 속에서도 그 전체가 그대로 응하여 나타난다. 예로부터의 모든 성인과 터럭만큼도 바뀌거나 다르지 않다.
所謂天真自性,本淨明妙,含吐十虗,獨脫根塵一片田地。
이른바 천진(天眞)한 자성(自性)이다. 본래 맑고 밝고 오묘하여, 시방 허공을 머금었다 토해 낸다. 감각 기관과 그 대상(根塵)을 홀로 벗어난 한 조각 밭(田地)이다.
쉽게 읽기달마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문자나 어구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보이셨을 뿐이다. 곧바로 가리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마음은 사람마다 본래 지니고 있다. 무명의 껍질 속에 있어도, 그 전체가 그대로 드러나 응한다. 그래서 예로부터의 모든 성인과 견주어도 터럭만큼도 어긋나거나 다르지 않다. 이른바 천진한 자성은 본래 맑고 밝고 오묘하여, 시방 허공을 머금었다가 토해 내고, 여섯 감각과 그 대상에서 홀로 벗어난 한 조각 밭이다.
26.2
한문惟離念絕情,迥超常格,大根大智,以本分力量,直下就自根腳下承當,
번역오직 생각을 여의고 정(情)을 끊어, 평범한 격식을 아득히 뛰어넘어야 한다. 큰 근기와 큰 지혜로 본분(本分)의 힘을 가지고, 곧바로 제 발밑에서 떠맡아야 한다.
如萬仞懸崖,撒手放身,更無顧藉,教知見解礙倒底脫去。似大死人已絕氣息,到本地上大休大歇,
만 길 벼랑에서 손을 놓고 몸을 던지듯, 다시는 돌아보거나 기댈 것이 없어야 한다. 알음알이와 견해의 걸림을 밑바닥까지 벗어 버리게 하라. 크게 죽은 사람(大死人)이 이미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본래 자리(本地)에 이르러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
口鼻眼耳初不相知,識見情想皆不相到,
입과 코와 눈과 귀가 애초에 서로 알지 못한다. 알음알이와 견해, 정과 생각이 모두 이르지 못한다.
쉽게 읽기오직 생각을 여의고 정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평범한 격식을 까마득히 뛰어넘어야 한다. 큰 근기와 큰 지혜로 본분의 역량을 갖추어, 곧바로 제 발밑에서 이 일을 떠맡아야 한다. 만 길 벼랑에서 손을 놓고 몸을 내던지듯, 다시는 돌아보아 기댈 것이 없어야 한다. 알음알이와 견해는 걸림돌이 되어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 그것을 밑바닥까지 벗어 버려라. 크게 죽은 사람, 곧 온갖 분별이 아주 끊어진 사람이 있다. 그가 숨마저 끊어진 것처럼 되어, 본래 자리에 이르러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 그리하면 입과 코와 눈과 귀가 애초에 서로 알지 못한다. 알음알이와 견해와 정과 생각도 모두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26.3
한문然後向死火寒灰上頭頭上明,枯木朽株間物物斯照,
번역그런 뒤에야 꺼진 불과 찬 재(死火寒灰) 위에서 낱낱이 밝아진다.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 사이에서 사물마다 비친다.
乃契合孤迥迥、峭巍巍,更不須覓心覓佛,築著磕著元非外得。
이에 홀로 아득하고 가파르게 우뚝한 자리에 들어맞는다(契合). 다시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다. 부딪치고 마주치는 것이 원래 밖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古來悟達百種千端,只這便是。是心不必更求心,是佛何勞更覓佛?
예로부터 깨달아 통달한 길이 백 가지 천 갈래이지만, 다만 이것일 뿐이다. 이것이 마음이니, 다시 마음을 구할 것이 없다. 이것이 부처인데, 무엇하러 다시 부처를 찾겠는가.
쉽게 읽기그런 뒤에야 비로소 꺼진 불과 차가운 재 위에서 낱낱이 밝아진다.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 사이에서도 사물마다 환히 비친다. 그리하여 홀로 우뚝하고 아득히 높다랗게 들어맞는다. 이제 다시 마음을 찾거나 부처를 찾을 것이 없다. 부딪치고 마주치는 그 자리는 원래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깨달아 통달한 길이 백 가지 천 갈래였지만, 결국은 이 하나뿐이다. 이것이 곧 마음인데 다시 무슨 마음을 구하겠는가. 이것이 곧 부처인데 무엇하러 다시 부처를 찾겠는가.
풀이 1
교감 · 死火寒灰'死火寒灰'의 '灰' — 저본 글자는 CBETA 조자 CB01926 [厂@火](CBETA 정규자 灰)이고 유니코드로는 CJK 호환 한자 U+2F835뿐이다. 데이터에 호환 한자를 쓰지 않으므로 통합 한자 '灰'(U+7070)로 실음(X69n1357 p0463b16). 뜻은 같다.
26.4
한문儻於言句上作路布,境物上生解會,則墮在骨董袋中,卒撈摸不著。此忘懷絕照,真諦境界也。
번역만약 언구(言句) 위에서 드러내어 펼치거나 경계와 사물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면, 골동주머니(骨董袋) 속에 떨어진다. 끝내 더듬어도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생각을 잊고 비춤마저 끊은(忘懷絕照) 참된 진리(眞諦)의 경계이다.
荒田不揀,信手拈來,明明百草頭,明明祖師意。
거친 밭을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집어 온다. 밝디밝은 온갖 풀끝(百草頭)이 밝디밝은 조사(祖師)의 뜻이다.
何況青青翠竹,鬱鬱黃花,墻壁瓦礫,以無情說法;水鳥樹林,演苦空無我。
하물며 푸르디푸른 대나무와 무성한 노란 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담벼락과 기와 조각이 무정(無情)으로 설법하고, 물새와 나무숲이 괴로움과 공과 무아(苦空無我)를 설한다.
是由依一實際,發無緣慈,於寂滅大寶光,顯無作勝妙力。
이는 하나의 실제(一實際)에 의지하여 조건 없는 자비(無緣慈)를 내고, 적멸(寂滅)의 큰 보배 광명에서 지음 없는 뛰어나고 오묘한 힘(無作勝妙力)을 드러내는 것이다.
쉽게 읽기만약 말과 글귀 위에서 이리저리 펼쳐 보인다고 하자. 또는 경계와 사물 위에서 알음알이를 낸다고 하자. 그러면 곧 골동주머니 속에 떨어진다. 아무리 더듬어 찾아도 끝내 잡히지 않는다. 참으로 얻은 자리는 생각을 잊고 비춤마저 끊은 망회절조의 자리이다. 곧 헤아리는 마음도, 비추어 안다는 생각마저도 다 놓아 버린 참된 진리의 경계이다. 거친 밭을 가리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집어 온다. 밝디밝은 온갖 풀끝이 그대로 밝디밝은 조사의 뜻이다. 하물며 푸르디푸른 비취빛 대나무와 무성한 노란 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담벼락과 기와조각이 마음 없는 채로 설법하고, 물새와 나무숲이 괴로움·공·무아를 연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하나의 실제에 의지하여 조건 없는 자비를 내는 일이다. 또 적멸한 큰 보배 광명 위에서, 함이 없는 무작의 뛰어나고 오묘한 힘을 드러내는 일이다.
풀이 2
青青翠竹 청청취죽〔병렬용례〕 '青青翠竹盡是法身,鬱鬱黃花無非般若'는 景德傳燈錄 등에서 大珠慧海 계열의 인용구로 널리 쓰인다. 본문 축약 표현(青青翠竹·鬱鬱黃花)의 출전 근거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儻於言句上作露布'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의 과의역이다. '露布'는 드러내 펼치는 공개적 언어표현(격문)을 가리키는 선어이므로 '언구 위에서 드러내어 펼치다'가 축자에 맞다. 책 '말 위에서 격식을 짓거나'의 '격식'은 露布의 뜻과 거리가 있어 근거가 약하다. 내 번역을 유지한다.
26.5
한문長慶云:撞著道伴交肩過,一生參學事畢。南塔云:我拈片木葉入城,便是移一坐仰山去也。
번역장경(長慶)이 말했다. “도반(道伴)과 부딪쳐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니, 한평생 참학(參學)의 일을 마쳤다.” 남탑(南塔)이 말했다. “내가 나뭇잎 한 조각을 집어 들고 성에 들어가면, 그것이 곧 앙산(仰山) 한 자리를 옮겨 가는 것이다.”
故香嚴擊竹,靈雲見桃花,資福剎竿頭,道吾神杖子,大仰插鍬,地藏種田,無非發揚箇金剛正體,
그러므로 향엄(香嚴)이 대나무를 친 일, 영운(靈雲)이 복사꽃을 본 일, 자복(資福)의 찰간(刹竿) 끝, 도오(道吾)의 신장자(神杖子), 대앙(大仰)이 삽을 꽂은 일, 지장(地藏)이 밭에 씨를 뿌린 일은, 모두 저 금강(金剛)의 바른 본체(正體)를 드날린 것이다.
使當人不動步,參見大解脫真善知識,行不言化,得無礙辯,
그 사람이 걸음을 옮기지 않고도 크게 해탈한 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뵙게 한다. 말 없는 교화(不言化)를 행하고 걸림 없는 말솜씨(無礙辯)를 얻게 한다.
則森羅萬象、百草顛頭長時徧參,無不普攝圓融法界,
그러면 삼라만상(森羅萬象)과 온갖 풀끝마다 오래도록 두루 참례하여, 원융한 법계(法界)를 널리 거두지 않는 것이 없다.
坐斷報化佛頭,坐臥行藏超證徧行三昧,
보신불과 화신불(報化佛)의 머리를 앉은 채 끊는다(坐斷). 앉고 눕고 나서고 숨는 가운데, 두루 행하는 삼매(徧行三昧)를 뛰어넘어 깨달아 이룬다.
何必覺城東際、樓閣門前,熊耳、曹源陞堂入室,然後爲親近傳證耶?
어찌 반드시 각성(覺城)의 동쪽 끝이나 누각(樓閣)의 문 앞에서, 웅이(熊耳)와 조원(曹源)에서 당에 오르고 방에 들어간 뒤라야, 가까이 모시고 전해 받아 깨달은 것이 되겠는가.
쉽게 읽기장경 선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과 부딪쳐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니, 한평생 참학의 일이 이로써 끝났다.' 남탑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나뭇잎 한 조각을 집어 성에 들어가니, 이것이 곧 앙산 한 자리를 옮겨 가는 것이다.' 그러니 향엄이 대나무를 친 것, 영운이 복사꽃을 본 것, 자복의 찰간 끝, 도오의 신장자, 대앙이 삽을 꽂은 것, 지장 선사가 밭에 씨 뿌린 것이 모두 저 금강의 바른 본체를 드날린 일이다. 이 일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걸음 한 번 옮기지 않고도, 크게 해탈한 참된 선지식을 만나 뵙게 한다. 또 말 없는 교화를 행하고, 걸림 없는 변재를 얻게 한다. 그리하면 삼라만상과 온갖 풀끝마다 오랜 세월 두루 참례하여, 원융한 법계를 남김없이 거두어 아우른다. 보신불·화신불의 머리를 앉은 자리에서 끊고, 앉고 눕고 나서고 숨는 일 가운데 두루 행하는 삼매를 단박에 뛰어넘어 증득한다. 그러니 어찌 굳이 각성 동쪽 끝이나 누각의 문 앞에서, 웅이와 조원의 대청에 오르고 방에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친히 전해 받아 증득하는 일이 되겠는가.
풀이 5
長慶慧稜 장경혜릉長慶의 上堂語(X80n1565_p0153b14). 『聯燈會要』 권24는 示衆으로 싣고 雪竇의 拈 '是即是 針不劄 風不入 有甚麼用處'를 붙였다(X79n1557_p0210b09).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병렬용례〕 香嚴擊竹·靈雲見桃花를 깨침의 인연으로 나란히 드는 예는 『語錄』 권2 上堂에도 보인다('靈雲陌上桃華…香嚴巖畔翠竹', T47n1997_p0721b19).
香嚴擊竹 향엄격죽원오어록(圜悟語錄)·벽암록(碧巖錄)에서 향엄격죽(香嚴擊竹)·영운견도화(靈雲見桃花)를 오도(悟道) 인연의 정형 예시로 나란히 든다(영운(靈雲) '도화(桃花)' 송(頌) 등). 본문 나열의 용례와 일치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坐斷報化佛頭'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의 오역·누락이다. '坐斷'은 선어의 관용복합(꽉 끊어버리다, 예 坐斷十方)이므로 '보화불의 정수리마저 앉은 채 끊는다'가 옳다. 책은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앉아'로 옮겨 핵심어 '斷'을 탈락시키고 '坐'만 살렸다. 佛見까지 초월하는 구경의 뜻이 약해지므로 내 번역을 유지한다.
26.6
한문惠超咨和尚:如何是佛法?眼云:汝是惠超。超乃省悟。所謂出乎爾者,反乎爾者也。
번역혜초(惠超)가 화상께 여쭈었다. “무엇이 불법(佛法)입니까?” 법안(法眼)이 말했다. “그대가 혜초이다.” 혜초가 이에 깨달았다. 이른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唐朝古德英禪師,微時事田,運槌擊塊次,見一大土塊,戲以槌猛擊之,應時粉碎,驀地大悟,自此散誕爲不測人,頗彰神異。
당나라 때 옛 큰스님 영선사(英禪師)는 미천하던 시절에 밭일을 했다. 망치로 흙덩이를 깨다가 큰 흙덩이 하나를 보고, 장난삼아 망치로 세게 내리쳤다. 그 즉시 가루가 되었다. 그 순간 문득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거리낌 없이 노닐어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자못 신이(神異)한 일을 드러냈다.
有老宿拈云:山河大地被這僧一擊百雜碎,獻佛不假香多。誠哉是言。
어떤 노숙(老宿)이 이 일을 들어 말했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이 스님의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부처께 바치는 데에 향이 많을 필요는 없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쉽게 읽기혜초가 화상께 여쭈었다. '무엇이 불법입니까?' 법안 선사가 답하였다. '그대가 바로 혜초이다.' 혜초는 이 말에 곧 살펴 깨달았다. 이른바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옛 큰스님 영선사는 미천하던 시절에 밭일을 하였다. 하루는 망치를 휘둘러 흙덩이를 부수고 있었다. 큼직한 덩이 하나를 보고 장난삼아 힘껏 내리치니,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었다. 그 순간 문득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거침없이 자유로워,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못 신기하고 이상한 면모도 드러내었다. 어떤 노스님이 이 일을 들어 말하였다. '산하대지가 이 스님의 망치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부처께 바치는 데에는 향이 많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풀이 5
法眼文益 법안문익『碧巖錄』 제7칙 '僧問法眼 慧超咨和尚 如何是佛'. 慧超는 뒤의 廬山 歸宗寺 策眞 法施로, '汝是慧超' 한마디에 信入했다(『景德傳燈錄』 권25). 心要는 '佛法'으로 적었다.
碧巖錄 벽암록惠超와 法眼의 문답은 『碧巖錄』 제7칙 본칙('慧超咨和尚如何是佛 法眼云汝是慧超')이다. 頌은 雪竇, 著語·評唱은 圜悟. 본칙의 물음은 '如何是佛'로, 여기 '如何是佛法'과 한 글자 다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獻佛不假香多。誠哉是言'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화자 귀속 이독이다. 자체역은 '獻佛不假香多'를 老宿의 염어와 분리해 圜悟가 인용한 속언으로 보아 '誠哉是言'이 그 속언을 기린다고 옮겼고, 책은 이를 老宿의 염어 안에 넣어 '誠哉是言'이 노숙의 말 전체를 가리키게 했다. 원문에 화자 표지가 없고 '獻佛不假香多'가 독립 속언으로도 통용되어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이독으로 유지한다.
26.7
번역머묾 없는 근본(無住本)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세운다. 머묾 없음의 근본은 머묾 없음에 뿌리를 둔다.
若能徹證,則萬法一如,求其分毫住相不可得。只今現定作爲,全是無住。
만약 사무쳐 깨달으면 만법(萬法)이 한결같아, 털끝만 한 머무는 모습(住相)도 찾을 수 없다. 지금 눈앞에서 분명히 짓고 행하는 것이 온통 머묾 없음의 근본이다.
根本既明,如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豈非般若關捩乎?
이 근본이 밝아지면, 사람이 눈이 있고 햇빛이 밝게 비추어 갖가지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 어찌 반야(般若)의 관문 빗장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무주를 근본으로 삼아 일체의 법을 세운다. 무주의 근본은 다시 무주에 뿌리를 둔다. 만약 이를 사무쳐 증득하면 만법이 한결같다. 그 가운데서는 털끝만 한 머무는 상도 찾을 수 없다. 지금 눈앞에서 분명하게 짓고 행하는 그것이, 온통 무주의 근본이다. 이 근본이 이미 밝아진 것은, 사람이 눈을 갖추고 햇빛이 환히 비추어 갖가지 빛깔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찌 반야의 관문 빗장이 아니겠는가.
풀이 3
依無住本立一切法 의무주본립일체법이어지는 '無住之本,本乎無住'는 經의 '無住孰爲本 — 無住則無本' 문답을 받아 圜悟가 풀어 쓴 말로 보인다(추정). 『維摩經』 이름을 밝히지 않고 첫머리에 구절만 들었다.
依無住本立一切法 의무주본립일체법〔병렬용례〕 『維摩經』觀衆生品 "從無住本立一切法" — 서두 '依無住本立一切法'의 직접 전거로, 무주=근본이라는 해석을 확정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全是無住。根本既明'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나는 '全是無住根本 / 既明'으로 끊어 '온통 무주의 근본이 이미 밝다'로, 책은 '全是無住 / 根本既明'으로 끊어 '무주이니, 근본이 이미 밝으면'으로 읽는다. 서두 '無住之本本乎無住'는 無住를 곧 근본으로 보는 앞 독법을 지지하고, '根本既明 ↔ 日光明照'의 대구는 뒤 독법을 다소 매끄럽게 하니, 결정적 전거 없이 뜻이 수렴하는 구두 이독으로 양립한다.
26.8
한문永嘉云:不離當處常湛然。親切無過此語。覓則知君不可見,但於當處、湛然二邊坐,斷使平穩。切忌作知解求覓,纔求卽如捕影也。
번역영가(永嘉)께서 말씀하셨다. “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다.” 이 말보다 더 친절한 말은 없다.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그 자리의 맑고 고요함에서 두 끝(二邊)을 앉은 채 끊어 평온하게 하라. 알음알이를 지어 구하고 찾는 일은 절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구하면 곧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
쉽게 읽기영가께서는 '당처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다'라고 하셨다. 이보다 더 친절한 말은 없다. 또 '찾으려 하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라'라고 하셨다. 그러니 다만 당처의 맑고 고요한 그 자리에서, 두 끝을 앉은 자리에서 끊고 평온하게 하라. 두 끝이란 있다 없다는 양쪽 치우침이다. 알음알이를 지어 구하고 찾는 일은 결코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구하면 곧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짓이다.
풀이 5
永嘉玄覺 영가현각「證道歌」 '不離當處常湛然。覓即知君不可見'(T48n2014_p0396b12). 원오는 두 구 사이에 '親切無過此語'를 끼워 풀었다.
二邊坐斷 이변좌단'不離當處常湛然 覓卽知君不可見'은 『永嘉證道歌』의 구(T48n2014_p0396b12). 이어 '當處'의 '湛然'함에서 二邊을 坐斷하라고 푼다.
不離當處常湛然 불리당처상담연영가(永嘉) 『증도가(證道歌)』 "불리당처상담연(不離當處常湛然), 멱즉지군불가견(覓卽知君不可見)" — 본문 인용의 원문이다. 대조하면 저본 '멱칙(覓則)'은 통행 '멱즉(覓卽)'의 이문이다.
26.9
한문不與萬法爲侶,是什麼人回光自照看?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八角磨盤空裏走。參得透,目前萬法平沉,無始妄想蕩盡。
번역“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빛을 돌이켜 스스로 비추어(回光自照) 보라.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그대에게 일러 주겠다. “여덟 모 난 맷돌이 허공 속을 달린다.” 참구하여 꿰뚫으면 눈앞의 온갖 법이 고요히 가라앉고, 시작 없는 망상(無始妄想)이 모두 쓸려 없어진다.
쉽게 읽기'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런 물음에는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어 보라. 그대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들이켜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비로소 그대에게 일러 주겠다. '여덟 모난 맷돌이 허공 속을 달린다.' 이를 참구하여 꿰뚫으면, 눈앞의 온갖 법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시작 없는 망상도 남김없이 쓸려 없어진다.
풀이 9
一口吸盡西江水 일구흡진서강수'八角磨盤空裏走'는 楊億(大年)의 悟道偈 첫 구(『五燈會元』 권12)이자 『碧巖錄』 제47칙 '雲門六不收'의 著語로도 쓰인 말. 원오는 이를 마조가 미뤄 둔 '일러 줄 말'의 자리에 놓았다.
八角磨盤空裏走 팔각마반공리주'不與萬法爲侶,是什麼人'·'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는 龐居士와 馬祖의 문답이다(『景德傳燈錄』 권8). 圜悟는 馬祖가 말하지 않은 '일러 줄 말'의 자리에 이 구를 놓았다. 같은 법어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도 있다.
回光返照 회광반조'不與萬法爲侶,是什麼人'과 '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는 龐居士와 馬祖의 문답(『景德傳燈錄』 권8 龐蘊章). 그 물음을 回光自照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
一口吸盡西江水 일구흡진서강수〔병렬용례〕 『景德傳燈錄』 龐居士-馬祖章 "不與萬法爲侶者是甚麼人 / 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 — 본문 '不與萬法爲侶'·'一口吸盡西江水'가 이 화두 인용임을 확정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卽向汝道:八角磨盤空裏走'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이 대목은 龐居士가 물은 '不與萬法爲侶者是什麼人'에 馬祖가 답한 '待汝一口吸盡西江水,卽向汝道'의 원화두 구조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八角磨盤空裏走'는 '卽向汝道'가 이르는 轉語 내용이다. 따라서 '…라 일러 주겠다'로 이어 옮긴 현재 번역이 옳고, 책처럼 별개 서술·비유('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로 처리하면 화두 문답 구조가 끊겨 약화된다. 근거: 馬祖道一·龐居士 語錄의 '一口吸盡西江水' 화두.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目前萬法平沉
平沉은 모조리 가라앉아 자취가 없어진다는 말이니, 참구하여 꿰뚫으면 눈앞의 온갖 법이 고요히 가라앉는다는 뜻이다. 책이 平을 땅으로 풀어 '평지가 푹 꺼져서'로 옮긴 것은 바로잡는다. (옛 판정은 부록본 전사 '目前不沈'을 두고 쓴 것이라 2026-10-23 고쳐 씀)
26.10
한문德山隔江招扇,使有人承當;鳥窠吹布毛,尋有人省悟。得非此段大因緣,時至根苗自生耶?抑機感相投有地耶?抑當人密運無間,借師門發揮也?
번역덕산(德山)께서 강 건너에서 부채로 부르자, 곧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조과(鳥窠)께서 베실 한 오라기를 불어 날리자, 이윽고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이 한 단락 큰 인연(大因緣)은, 때가 이르러 뿌리와 싹이 저절로 돋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근기와 감응이 서로 맞아떨어질 자리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남몰래 쉼 없이 굴려 오다가, 스승의 문을 빌려 드러낸 것인가.
쉽게 읽기덕산께서 강 건너에서 부채를 들어 부르자, 곧바로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었다. 조과께서 베실 한 오라기를 불어 날리자, 이윽고 깨닫는 사람이 있었다. 이 한 대목의 큰 인연은, 때가 무르익어 뿌리와 싹이 저절로 돋아난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근기의 감응이 서로 딱 맞아떨어질 자리가 있었던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 사람이 남몰래 끊임없이 공부를 운용해 오다가, 스승의 문을 빌려 드러낸 것인가.
풀이 4
德山宣鑑 덕산선감襄州 高亭簡이 강 건너에서 德山을 보고 '不審'이라 하자 德山이 부채로 불렀고, 高亭이 깨쳐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는 기연(『景德傳燈錄』 권16; 『五燈會元』 권7).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4 조과도림장(鳥窠道林章) — 시자 회통(會通)이 '취포모(吹布毛)'에 깨달은 일화의 출전으로, 본문 '조과취포모(鳥窠吹布毛)'의 근거이다.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景德傳燈錄』卷4 鳥窠道林章 — 시자 會通이 '吹布毛'에 깨달은 일화의 출전으로, 본문 '鳥窠吹布毛'의 근거이다.
26.11
한문何峭絕如此之難,而超證如此之易?古人以輥芥投針爲況,良不虗矣。信得心及,見得性徹,於日用中無絲毫透漏,全世法卽佛法,全佛法卽世法,平等一如,
번역어찌 이토록 가파르게 끊겨 어렵던 것이, 뛰어넘어 깨닫기는 이토록 쉬운가. 옛사람이 겨자씨를 굴려 바늘 끝에 던져 꽂는 일에 견주었으니, 참으로 헛말이 아니다. 믿음이 마음에 사무치고 봄(見)이 성품에 사무쳐야 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쓰는 가운데 털끝만큼도 새어 나감이 없으면, 온전히 세간법(世法)이 곧 불법이요, 온전히 불법이 곧 세간법이다. 평등하여 한결같다.
쉽게 읽기어찌 이토록 험준하고 끊어져 그리 어렵던 것이, 뛰어넘어 증득하기로는 이렇듯 쉬운가. 옛사람은 이를 겨자씨를 굴려 바늘 끝에 던져 꽂히게 하는 일에 견주었다. 참으로 헛된 비유가 아니다. 믿음이 마음에 사무치고 봄이 성품에 사무친다고 하자. 그리하여 일상생활 가운데 털끝만큼도 새어 나감이 없으면, 세간법이 그대로 불법이요 불법이 그대로 세간법이다. 둘은 평등하여 한결같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信得心及。見得性徹'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관용구 '信得及/見得徹'에 心·性을 끼워 넣은 구조로, '믿음이 마음에 사무치고 봄이 성품에 사무친다'(心·性을 도달처로 읽음)와 '마음을 믿어 다다르고 성품을 확연히 본다'(心·性을 목적어로 읽음)가 모두 통사적으로 성립하고 뜻이 수렴한다. 수정된 관용구라 표준 구문이 한쪽을 확정하지 못하므로 양립한다.
26.12
한문豈有說時便有,不說時便無,思量時便有,不思量時便無。如此卽正在妄想情解間,何曾徹證。
번역어찌 말할 때는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때는 없고, 헤아릴 때는 있다가 헤아리지 않을 때는 없겠는가. 이와 같다면 바로 망상과 정에 얽힌 알음알이(情解) 사이에 있는 것이다. 어찌 사무쳐 깨달은 적이 있겠는가.
直得心心念念照了無遺,世法佛法初不間斷,則自然純熟,左右逢原矣。
곧바로 마음마다 생각마다 남김없이 밝게 비추어, 세간법과 불법이 애초에 끊어지지 않게 되면, 저절로 무르익어 좌우 어디서나 근원을 만난다(左右逢原).
쉽게 읽기어찌 말할 때만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때는 없겠는가. 어찌 헤아릴 때만 있다가 헤아리지 않을 때는 없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망상과 정식의 알음알이 사이에 놓인 것이다. 그것이 어찌 참으로 사무쳐 증득한 것이겠는가. 곧바로 마음마다 생각마다 남김없이 밝게 비추어, 세간법과 불법이 애초에 끊어짐이 없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자연히 공부가 순수하게 익어, 좌우 어디로든 근원을 만나게 된다.
26.13
한문有問隨問便對,無問亦湛然常寂,豈非著實透脫生死要綱也。
번역물음이 있으면 물음 따라 곧 대답하고, 물음이 없으면 또 맑고 고요하여 늘 적적하다. 어찌 실답게 생사를 꿰뚫고 벗어나는 요긴한 벼리(要綱)가 아니겠는가.
末後一句都通穿過,有言無言,向上向下,權實照用,卷舒與奪,不消箇勘破了也。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가 모두 통하여 꿰뚫리면, 말이 있든 없든, 위로 향하든 아래로 향하든, 방편과 진실(權實), 비춤과 작용(照用), 거두고 폄과 주고 빼앗음(卷舒與奪)을 굳이 간파(勘破)해 마칠 것도 없다.
誰識趙州這巴鼻,須是吾家種草始得。
누가 조주(趙州)의 이 콧구멍(巴鼻)을 알겠는가. 반드시 우리 집안의 씨앗 될 재목(種草)이라야 한다.
쉽게 읽기물음이 있으면 물음을 따라 곧 응한다. 물음이 없으면 또한 맑고 고요하여 늘 적적하다. 이것이야말로 어찌 생사를 실답게 꿰뚫어 벗어나는 요긴한 강령이 아니겠는가. 최후의 한 구절까지 모두 통하여 꿰뚫린다고 하자. 그러면 말이 있든 없든, 위로 향하든 아래로 향하든, 방편과 진실이며 비춤과 작용이며 말아 들이고 펴며 주고 빼앗음을, 굳이 낱낱이 감파할 것도 없이 그대로 끝난다. 누가 조주의 이 콧구멍, 곧 그 핵심의 급소를 알겠는가. 모름지기 우리 집안의 씨앗이 될 재목이라야 비로소 될 것이다.
풀이 2
勘破 감파末後一句가 有言無言·向上向下·權實·照用·卷舒與奪을 다 꿰뚫으므로 낱낱이 勘驗할 것이 없다는 뜻. 곧이어 '誰識趙州這巴鼻'라 하여 趙州를 든 것은 趙州勘婆의 '勘破了也'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추정). 같은 단락이 『圜悟語錄』 권14에도 있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69
  1. 無明殻子 무명각자

    무명의 껍질이다. 본성(本性)을 감싼 미혹의 껍데기를 가리키는 선어로, 그 '속(裏)'에서 전체(全體)가 응현한다 함이 직지의 요체이다.

  2. 天真自性·本淨明妙 천진자성·본정명묘

    수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구(本具)한 청정 불성(佛性)이다. 화엄(華嚴)·여래장(如來藏) 계열의 말이다.

  3. 含吐十虛 함토십허

    십허(十虛)는 시방허공(十方虛空)이다. 자성이 온 허공을 머금었다 토해냄으로, 법신(法身)의 광대무변을 나타낸다.

  4. 獨脫根塵 독탈근진

    육근(六根)·육진(六塵)의 상대(能所)를 홀로 벗어남이다.

  5. 一片田地 일편전지

    한 조각 밭이라는 뜻으로, 사람마다 본래 지닌 마음자리를 밭에 빗댄 말이다. 본지풍광(本地風光)과 같은 뜻으로 쓴다. 옛 선사는 '이 한 조각 밭을 맡겨 준 지 오래다'라고 했다.

  6. 萬仞懸崖撒手放身 만인현애살수방신

    만 길 벼랑에서 손 놓고 몸을 던짐이다. 분별·의지를 완전히 버리는 대사일번(大死一番)의 상투적 비유이다.

  7. 骨董袋 골동대

    골동주머니이다. 알음알이·갈등(葛藤)을 쟁여둔 잡동사니 자루를 폄하하는 선어이다.

  8. 忘懷絕照 망회절조

    생각을 잊고 능조(能照)마저 끊음이다. 원오(圜悟)가 규정하는 진제(眞諦)의 경계이다.

  9. 牆壁瓦礫以無情說法 장벽와력이무정설법

    담벼락·기와도 설법(說法)함이다. 남양혜충(南陽慧忠) 국사의 무정설법(無情說法)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 오도(悟道) 인연과 연결되는 화두이다.

  10. 一實際 일실제

    하나의 참된 실제(實際), 곧 둘이 없는 참된 진리의 자리. 화엄(華嚴)·열반(涅槃) 계열의 말이다.

  11. 寂滅大寶光 적멸대보광

    적멸(寂滅)의 큰 보배 광명, 곧 적멸한 자리의 큰 광명(大光明)이다. 화엄(華嚴)·열반(涅槃) 계열의 말이다.

  12. 香嚴擊竹 향엄격죽

    향엄지한(香嚴智閑)(위산령우(潙山靈祐) 법사(法嗣))이다. 기왓조각이 대나무에 부딪는 소리에 대오(大悟)하였다(景德傳燈錄).

  13. 靈雲見桃花 영운견도화

    영운지근(靈雲志勤)이 복사꽃을 보고 깨친 일이다. 위산(溈山)에 있을 때 꽃을 보고 깨달아, '삼십 년 칼을 찾던 나그네가 복사꽃 한 번 본 뒤로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의 게송을 지었다. 위산이 그 깨침을 인정했다.

  14. 大仰插鍬 대앙삽초

    대앙(大仰)은 앙산혜적(仰山慧寂)이다. 위앙(潙仰) 사자(師資) 사이에 삽(鍬)을 꽂는 기연으로 금강정체(金剛正體)를 드러낸다(위앙종(潙仰宗) 기연(機緣)).

  15. 地藏種田 지장종전

    지장(地藏)(나한(羅漢))계침(桂琛)(현사사비(玄沙師備) 법사(法嗣), 법안문익(法眼文益)의 스승)의 '종전박반끽(種田博飯喫)' 종전(種田) 기연이다.

  16. 坐斷報化佛頭 좌단보화불두

    보신불·화신불(報化佛)의 머리를 깔고 앉아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부처라는 생각에조차 매이지 않고 그 위로 벗어난 경지를 이른다. 임제(臨濟)의 법문에서 온 말이다.

  17. 覺城東際樓閣門前 각성동제루각문전

    화엄(華嚴) 입법계품(入法界品)으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각성(覺城) 동쪽에서 문수(文殊)를 뵙고 마침내 미륵루각(彌勒樓閣) 문(門) 앞에 이른다. 구법(求法) 순력의 상징이자 굳이 그럴 필요 없음을 말한다.

  18. 惠超問佛 혜초문불

    혜초(慧超)가 법안문익(法眼文益)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법안이 '그대가 혜초이다'라고 답하였고, 혜초가 이 말에 깨달은 공안이다. 원오의 어록에는 물음이 '무엇이 불법입니까'로 실려 있다. 혜초는 뒷날의 귀종책진(歸宗策眞)이며, 『벽암록』 제7칙이다.

  19. 出乎爾者反乎爾者 출호이자반호이자

    맹자(孟子) 양혜왕하(梁惠王下)의 증자(曾子) 말이다.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온다'로, 답이 물음(慧超) 자신에게 있었음을 밝히는 원오(圜悟)의 주어(註語)이다.

  20. 山河大地被這僧一擊百雜碎 산하대지피저승일격백잡쇄

    노숙(老宿)의 염고어(拈古語)이다. 일격(一擊)에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산산조각 남—능소(能所)가 몰록 무너진 경지이다.

  21. 依無住本立一切法 의무주본립일체법

    '머무름 없는 근본에서 온갖 법을 세운다'는 말이다. 『유마경(維摩經)』에 나오는 구절로, 경에는 '의(依)' 대신 '종(從)'으로 되어 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 모든 것의 바탕이라는 뜻이다.

  22. 般若關棙 반야관려

    반야(지혜)가 작동하는 핵심 기틀이다. 관려(關棙)는 문빗장·기관으로, 깨달음의 요처를 가리키는 선종 술어이다.

  23. 不離當處常湛然 불리당처상담연

    영가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 맑고 고요하나,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는 뜻이다. 참성품은 바로 여기 있으되, 따로 찾으면 도리어 놓친다는 말이다.

  24. 覓則知君不可見 멱칙지군불가견

    영가현각(永嘉玄覺) 『증도가(證道歌)』의 구절로, 불리당처상담연(不離當處常湛然)에 이어지는 말이다. '찾으면 그대가 볼 수 없음을 알리라'는 뜻이다. 통행본은 '멱즉지군불가견(覓卽知君不可見)'이다.

  25. 二邊坐斷 이변좌단

    있음과 없음, 옳음과 그름 같은 상대의 두 끝을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도(中道)를 몸소 얻는 것을 이른다.

  26. 不與萬法爲侶是什麼人 불여만법위려시십마인

    방온거사(龐蘊居士)가 마조도일(馬祖道一)에게 물은 화두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이다.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다.

  27. 回光返照 회광반조

    밖으로 내달리던 마음의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되비춘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나 바깥 경계를 좇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선 공부의 요긴한 가르침이다. 임제(臨濟)의 말에 보인다.

  28. 一口吸盡西江水 일구흡진서강수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온갖 것과 짝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마조가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그때 일러 주겠다’고 답한 일이다. 방거사는 이 말끝에 깨쳤다. 헤아림으로는 닿을 수 없는 자리를 보인 말로 일컬어진다.

  29. 八角磨盤空裏走 팔각마반공리주

    '여덟 모난 맷돌이 허공을 달린다'는 말이다. 송나라 문신 양대년(楊大年)이 광혜원련 스님 밑에서 깨치고 지은 게송의 첫 구이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깨달음의 자리를 뜻밖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뒷날 선사들이 짧은 평(착어)으로도 즐겨 썼다.

  30. 德山隔江招扇 덕산격강초선

    덕산이 강 건너에서 부채로 부르자 곧 알아차린 이가 있었다는 일화이다. 말없는 몸짓(機)에 즉각 감응한 예로 인용되나 구체 출전은 미상으로 의심스럽다.

  31.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

    조과도림(鳥窠道林) 선사가 베실 한 올을 불어 보인 일이다. 시자 회통(會通)이 불법을 배우러 떠나겠다고 하자, 조과는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금 있다’며 옷에서 실오라기를 집어 훅 불었다. 회통은 그 자리에서 깨달아 ‘포모시자(布毛侍者)’라 불렸다.

  32. 輥芥投針 곤개투침

    겨자씨를 굴려 바늘 끝에 맞힘이다. 만나기 지극히 어려움의 비유로, 『열반경(涅槃經)』류의 '개투침봉(芥投針鋒)'에서 유래하였다.

  33. 左右逢原 좌우봉원

    『맹자』에서 나온 말로, 깊이 쌓아 몸에 배면 왼쪽에서 집든 오른쪽에서 집든 모두 근원과 맞닿는다는 뜻이다. 선문에서는 공부가 무르익어 하는 일마다 근본과 어긋나지 않음을 이른다.

  34. 末後一句 말후일구

    맨 마지막 한마디, 곧 말후구(末後句)다. 암두(巖頭)가 ‘덕산(德山) 노인도 말후구는 모른다’고 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말과 분별이 다 끊어진 끝자리의 소식을 가리킨다.

  35. 勘破 감파

    낱낱이 따져 보아 속을 꿰뚫어 낸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스승이 상대의 깨침을 시험해 그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을 이른다. 조주(趙州)가 오대산 길의 노파를 두고 '내가 감파했다'고 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36.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37.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38.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39.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40.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41.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설법을 제자 소륭(紹隆) 등이 엮은 20권의 어록이다. 법당 설법과 제자에게 준 법어, 옛 공안에 붙인 평과 게송을 실었다. 『원오심요』의 몇 편이 이 책의 법어에도 실려 있다.

  42. 種草 종초

    씨앗이 될 풀이라는 뜻으로, 종문(宗門)의 법을 이어 퍼뜨릴 재목을 이른다. '우리 집안의 씨앗(吾家種草)'이라 하면 법을 바르게 이을 사람을 가리킨다.

  43. 巴鼻 파비

    붙잡을 데, 곧 요긴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이다. 소의 코를 꿰어 끌듯 꽉 쥘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왔다. '납승의 파비'는 수행자가 꼭 붙들어야 할 핵심을 가리킨다.

  44.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45. 大死人 대사인

    크게 죽은 사람, 곧 분별과 알음알이가 다 끊어져 숨마저 멎은 듯한 사람이다. 조주(趙州)가 투자(投子)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날 때는 어떠한가' 물은 문답이 유명하다.

  46. 法眼文益 법안문익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지장(地藏) 스님 계침의 법을 이었다. 금릉(金陵)의 보은원·청량원에 머물며 크게 교화했고, 법안종의 시조가 되었다. 죽은 뒤 대법안 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47. 無緣慈 무연자

    대상을 가리지 않는 큰 자비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따지는 마음 없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미치는 부처의 자비를 이른다.

  48. 長慶慧稜 장경혜릉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이십 년 동안 좌복 일곱 개가 닳도록 앉았다가, 발을 걷어 올리다 깨쳤다고 한다. 복주(福州) 장경원에 머물렀다.

  49. 鳥窠道林 조과도림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경산도흠(徑山道欽)의 법을 이었다. 항주 진망산의 큰 소나무 위에 살아 '새 둥지 스님'이라 불렸다. 백낙천(白樂天)과 나눈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받들어 하라'는 문답으로 이름났다.

  50. 死火寒灰·枯木朽株 사화한회·고목후주

    꺼진 불 찬 재, 마른 나무 썩은 등걸이다. 정념(情念)이 완전히 식은 자리에서 도리어 낱낱이 밝아짐(고목리룡음(枯木裏龍吟) 류)을 표현한다.

  51. 明明百草頭·明明祖師意 명명백초두·명명조사의

    온갖 풀끝이 그대로 조사의 뜻이다. 방거사(龐居士) 계열 송(頌)으로 널리 회자되는 구절이다.

  52. 青青翠竹·鬱鬱黃花 청청취죽·울울황화

    '청청취죽진시법신(青青翠竹盡是法身),울울황화무비반야(鬱鬱黃花無非般若)'의 축약이다. 법신편재(法身遍在)·무정설법(無情說法)을 말하는 통행구이다(대주혜해(大珠慧海) 인용으로 유명).

  53. 水鳥樹林演苦空無我 수조수림연고공무아

    아미타경(阿彌陀經) '수조수림개실념불념법념승(水鳥樹林皆悉念佛念法念僧)'에서 온 어구이다. 의보(依報) 국토가 곧 설법(說法)함이다.

  54. 南塔光涌 남탑광용

    남탑광용(南塔光涌)(850~938)으로 앙산혜적(仰山慧寂)의 법사(法嗣)이다. '나뭇잎 한 조각 들고 성에 듦이 곧 앙산(仰山)을 옮김'이 그의 기어(機語)이다.

  55. 資福刹竿頭 자복찰간두

    자복여보(資福如寶)(위앙종(潙仰宗), 앙산(仰山) 문하)의 찰간(刹竿) 기연이다. 찰간(刹竿)을 세우거나 눕혀 종지를 드러낸다(전거 추정).

  56. 道吾神杖子 도오신장자

    도오원지(道吾圓智)(769~835, 약산유엄(藥山惟儼) 법사(法嗣))가 신장(神杖) 들고 무무(巫舞)로 불법(佛法)을 보인 고사이다(추정, 신쟁자(神鎗子) 이본 가능).

  57. 徧行三昧 편행삼매

    두루 행하는 삼매이다. 화엄(華嚴)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善財)가 만난 편행외도(遍行外道)의 삼매(三昧)에서 온 이름으로, 일체처(一切處)에 두루한 정(定)이다.

  58. 熊耳曹源 웅이조원

    웅이산(熊耳山)(달마 매신처(埋身處))과 조계원(曹溪源)(육조(六祖))이다. 선종(禪宗) 정통 전법처(傳法處)를 대유한다.

  59. 陞堂入室 승당입실

    당(堂)에 올라 실(室)에 듦이다. 스승께 정식으로 나아가 인가(印可)를 전수받음이다.

  60. 英禪師 영선사

    당대(唐代)의 신이승(神異僧)이다. 밭일 중 흙덩이를 쳐 부수다 대오(大悟)하였다. 실인물은 미상이며(추정) 염고(拈古) 소재로 전한다.

  61. 獻佛不假香多 헌불불가향다

    '부처께 올림에 향이 많을 필요 없다'는 속언이다. 진실(眞實)(정성)이 관건임을 비유한다.

  62. 不測人 불측인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다. 격식 밖의 자유자재한 오달인(悟達人)이다.

  63. 璨上人 찬상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찬상인」을 지어 준 승려 찬이다. '상인'은 덕 높은 수행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64. 知解·情解 지해·정해

    알음알이이다. 개념적·정식적 이해로, 선문에서 깨달음을 막는 병통으로 배척된다.

  65. 無始妄想 무시망상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망상이다.

  66. 世法卽佛法 세법즉불법

    세간법과 불법이 평등무이함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사사무애(事事無礙)적 표현이다.

  67. 權實照用·卷舒與奪 권실조용·권서여탈

    방편과 진실(權實), 임제(臨濟)의 조용(照用), 말고 폄과 주고 빼앗음(권서(卷舒)·여탈(與奪)) 등 종사가 학인을 단련하는 수단이다.

  68. 明明百草頭 명명백초두

    온갖 풀끝이 그대로 조사의 뜻이다. 龐居士 계열 頌으로 널리 회자되는 구절이다.

  69. 青青翠竹 청청취죽

    '青青翠竹盡是法身,鬱鬱黃花無非般若'의 축약이다. 法身遍在·無情說法을 말하는 통행구이다(大珠慧海 인용으로 유명).

이 편의 풀이 2건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제7칙 '법안혜초문불(法眼慧超問佛)'은 본문의 혜초(惠超)-법안(法眼) 공안과 동일하다. 원오(圜悟) 자신이 수시(垂示)·송평(頌評)한 것으로, '여시혜초(汝是慧超)→성오(省悟)' 해석의 직접 전거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獨脫根塵一片田地。惟離念絕情,迥超常格'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자체역은 '一片田地'를 앞의 자성 묘사에 붙여 끊고 '惟離念絕情'을 새 문장의 주어로 세웠으며, 책은 '一片田地'를 뒤 절의 주어(한 뙈기의 심전지)로 읽었다. 구두점이 없어 둘 다 문법적으로 성립하고 실질 의미 손실이 없어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이독으로 유지한다. 다만 '心'은 책의 부연일 뿐 원문에 없다.

문단 13국역본 대조 8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6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