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5편

재선인(才禪人)에게 주는 글

示才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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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한문俱胝見僧及答問,惟豎一指,蓋通上徹下,契證無疑,瘥病不假驢駞藥也。
번역구지(俱胝) 화상은 스님을 만나거나 물음에 답할 때, 오직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위로 통하고 아래로 사무쳐, 맞아떨어진 깨달음(契證)에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병을 고치는 데 나귀와 낙타에 실을 만큼의 약을 빌리지 않았다.
後人不諳來脉,隨例豎箇指頭,漫不分皂白,大似將醍醐作毒藥,良可憐愍。
그런데 뒷사람들은 그 내력(來脈)을 알지 못한다. 관례대로 손가락 하나를 세울 뿐, 흐리멍덩하게 검고 흰 것을 가리지 못한다. 제호(醍醐)를 가져다 독약으로 만드는 것과 아주 닮았다. 참으로 가엾다.
若是真的見透底,始知鄭重,終不作等閑,所謂千鈞之弩,不爲鼷鼠發機。是故須具頂𩕳上眼,方可入作。
참으로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았다면, 비로소 그것을 무겁게 여길 줄 알아 끝내 예사로 여기지 않는다. 이른바 ‘천 근(千鈞)의 쇠뇌는 생쥐를 잡으려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수리 위의 눈을 갖추어야 비로소 손을 댈 수 있다.
쉽게 읽기구지 화상은 누가 찾아오거나 무엇을 물어도 늘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였다. 그 하나로 위아래가 다 통하고 진리에 딱 들어맞았으니, 계합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병을 고치는 데 나귀 등에 실을 만큼의 약도 빌리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뒷사람들은 그 손가락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내력조차 모른다. 그러면서 그저 남을 따라 손가락만 세우고, 흐리멍덩하게 옳고 그름도 가리지 못한다. 이는 제호, 곧 더없이 좋은 약을 도리어 독약으로 만드는 짓이니 참으로 딱하다. 밑바닥까지 꿰뚫어 본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알아 결코 예사로 여기지 않는다. 이른바 천 근짜리 큰 활은 생쥐 한 마리 잡자고 시위를 당기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정수리 위의 눈, 곧 남다른 안목을 갖추어야 비로소 여기에 손을 댈 수 있다.
풀이 2
醍醐作毒藥 제호작독약俱胝의 一指는 '通上徹下,契證無疑'한 것인데, 後人이 '不諳來脉,隨例豎箇指頭'하는 것을 두고 한 말. 같은 법어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도 실려 있다.
25.2
번역훗날 현사(玄沙)가 이를 들어 말했다. “구지가 받아들인 자리는 거칠다. 다만 한 기틀 한 경계(一機一境)만 알아보았을 뿐이다.”
有般拍盲底,隨語作解,便抑屈俱胝,以謂實然。殊不知焦塼打著連底凍,到這裏直須子細,切忌顢頇。
어떤 눈먼 무리는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짓는다. 그러고는 곧 구지를 깎아내리며 정말 그렇다고 여긴다. 벌겋게 단 벽돌을 던졌는데 밑바닥까지 꽁꽁 얼어 버린 줄은 전혀 모른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자세히 살펴야 한다. 결코 얼렁뚱땅 넘기지 말라.
只俱胝臨化去,自言:我得天龍一指頭禪,一生用不盡。豈徒然哉?
구지는 세상을 떠날 즈음 스스로 말했다. “나는 천룡(天龍)의 한 손가락 선(一指頭禪)을 얻어, 한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 어찌 괜한 말이겠는가.
쉽게 읽기훗날 현사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구지가 다다른 자리가 거칠어서, 고작 일기일경, 곧 한 기틀과 한 경계만 알아챘을 뿐이다.’ 그러자 눈먼 무리는 이 말을 그대로 좇아 제멋대로 알음알이를 지었다. 대뜸 구지를 깎아내리고는 정말 그렇다고 여긴다. 이는 벌겋게 단 벽돌을 던지자 그 자리가 밑바닥까지 얼어붙어 버린 줄을 전혀 모르는 짓이다. 이 대목에서는 반드시 찬찬히 살펴야 하며, 결코 얼렁뚱땅 넘겨서는 안 된다. 구지는 임종하여 떠날 때 스스로 ‘내가 천룡에게서 한 손가락 선을 얻어 한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풀이 9
玄沙師備 현사사비'俱胝承當處莽鹵,只認得一機一境'은 『景德傳燈錄』 권11 夾注·『五燈會元』 권4·『碧巖錄』 제19칙 評唱에서 모두 '先曹山'의 말이고, 玄沙의 拈은 '我當時若見,拗折指頭'이다. 『圜悟語錄』 권14도 이 편처럼 玄沙로 적는다.
俱胝 구지원오는 '俱胝承當處莽鹵 只認得一機一境'을 玄沙의 拈으로 드나, 『碧巖錄』 제19칙 評唱은 같은 말을 '先曹山'의 말로 든다(T48n2003_p0159b14).
俱胝一指 구지일지心要는 '玄沙拈曰:俱胝承當處莽鹵,只認得一機一境'이라 했으나, 『景德傳燈錄』 권11 夾註와 『碧巖錄』 제19칙 評唱은 이를 '先曹山云'으로 싣는다. 玄沙의 말은 '我當時若見,拗折指頭'다. 뒤의 '焦塼打著連底凍'은 제19칙에 없고 『從容錄』 제47칙 착어에 보인다.
一機一境 일기일경'俱胝承當處莽鹵,只認得一機一境'을 心要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는 玄沙의 拈으로 들지만, 『景德傳燈錄』 권11 俱胝章 夾注·『碧巖錄』 제19칙 평창·『五燈會元』 권4는 '先曹山云'으로 싣는다. 玄沙의 말은 '我當時若見,拗折指頭'이다.
碧巖錄벽암록(碧巖錄) 제19칙(구지일지두선(俱胝一指頭禪)) : 현사(玄沙) '승당처노망(承當處鹵莽), 지인득일기일경(只認得一機一境)'과 '수불지초전타저련저동(殊不知焦塼打著連底凍)'이 본편 전단과 거의 동일하여, 본단이 이 칙 평창(評唱)과 동원임을 보인다. 현사(玄沙) 염제(拈提)의 독법(비판이 도리어 구지(俱胝)의 깊이를 드러냄)을 확정하는 근거이다.
25.3
한문曹溪大鑑微時,乃新州鬻樵人也,碌碌數十年。一旦聞客誦經,發其本願,棄母出鄉,遠謁黃梅。
번역조계(曹溪) 대감(大鑑) 화상이 미천하던 때에는 신주(新州)에서 땔나무를 팔던 사람이었다. 하잘것없이 수십 년을 지냈다. 어느 날 나그네가 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본래의 원(本願)을 일으켰다. 어머니를 두고 고향을 떠나, 멀리 황매(黃梅)를 찾아가 뵈었다.
纔見數語間,投機隱迹碓坊八箇月,暨與秀師呈偈,始露鋒鋩,黃梅尋舉衣盂授之。
겨우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기연이 맞았다. 자취를 감추고 방앗간(碓坊)에서 여덟 달을 지냈다. 신수(神秀) 대사와 함께 게송을 바치게 되자, 비로소 칼끝을 드러냈다. 황매는 이윽고 가사와 발우(衣盂)를 들어 그에게 전했다.
是時羣眾趂逐,競欲奪取,而蒙山先及於庚嶺,舉之不勝,方悟非可以力爭,稽首乞發藥。
이때 뭇 무리가 뒤쫓아 다투어 빼앗으려 했다. 몽산(蒙山)이 먼저 대유령(大庾嶺)에서 따라잡았다. 그러나 그것을 들어 올리려 해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힘으로 다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머리를 조아려 약을 내려 주기를 빌었다.
大鑒示以不思善惡處本來面目,卽便知歸。以時未至,復遁於四會獵人中。
대감이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자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여 주자, 그는 곧 돌아갈 곳을 알았다. 대감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다시 사회(四會)의 사냥꾼들 속에 숨었다.
久之,然後出番禺,吐風幡心動之語,印宗伸師禮爲之落髮。
오랜 뒤에야 번우(番禺)에 나와, 바람과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風幡心動)을 토해 냈다. 인종(印宗)이 스승의 예를 펴고, 그를 위해 머리를 깎아 주었다.
登具,卽開大法要,董二千眾,聲徹九重,命貴近降紫泥,確然不應。
구족계(具足戒)를 받자 곧 큰 법요(法要)를 열었다. 이천 대중을 거느리니, 그 이름이 구중궁궐에까지 사무쳤다. 임금이 가까운 귀인에게 명해 자줏빛 조서(紫泥)를 내렸으나, 굳게 응하지 않았다.
度龍象數十人,皆大宗師,何其韙哉?
용상(龍象) 같은 이 수십 명을 제도했는데, 모두 큰 종사(宗師)가 되었다. 얼마나 훌륭한가.
쉽게 읽기조계 대감 화상은 미천하던 시절, 신주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잘것없이 수십 년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그네가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듣고 본래의 서원을 일으켰다. 그는 어머니를 남겨 두고 고향을 떠나, 멀리 황매를 찾아가 뵈었다. 겨우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기연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하여 자취를 감추고 방앗간에서 여덟 달을 지냈다. 이윽고 신수 대사와 나란히 게송을 바치면서 비로소 그 예봉을 드러내니, 스승이 마침내 가사와 발우를 들어 그에게 전해 주었다. 이때 여러 무리가 뒤쫓아 다투어 빼앗으려 하였다. 그 가운데 몽산이 먼저 대유령 고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사와 발우를 아무리 들어 올리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제야 힘으로 다툴 일이 아님을 깨닫고, 머리를 조아려 법의 약을 내려 주기를 청하였다. 대감이 선악을 아예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 자리, 곧 본래면목을 보여 주자 몽산은 곧 돌아갈 곳을 알았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으므로, 대감은 다시 사회 땅 사냥꾼 무리 속에 몸을 숨겼다. 오랜 뒤 번우에 나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을 내놓았다. 그러자 인종이 스승으로 섬기는 예를 갖추어 그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구족계를 받자 곧 큰 법의 자리를 열어 이천 대중을 거느리니, 그 명성이 구중궁궐에까지 사무쳤다. 임금이 측근 귀인을 시켜 자줏빛 조서를 내렸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용상 같은 제자 수십 명을 이끌어 깨우쳤는데 모두 큰 종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풀이 4
黃梅 황매'遠謁黃梅'·'黃梅尋舉衣盂授之'의 黃梅는 지명이 아니라 弘忍을 가리키는 換喩. 上/54 '自黃梅趂遂盧老'의 黃梅는 지명.
龍象 용상'度龍象數十人,皆大宗師'는 曹溪 慧能이 길러 낸 法嗣들을 이른다. 『景德傳燈錄』 권5는 '慧能大師法嗣四十三人'을 싣는다.
25.4
한문雖聖賢應世,存亡進退,舉照無遺,然步驟趣向,從微至著,攷之不斷世緣而示妙規,
번역성현이 세상에 응하여 나타나고 사라지며 나아가고 물러남에는, 들어 비춤에 남김이 없다. 그러나 그 걸음과 나아간 방향은 미미한 데서 드러난 데로 이르렀다. 살펴보면, 세상 인연(世緣)을 끊지 않고서 오묘한 법도(妙規)를 보인 것이다.
百世之下無與爲等,到今徧寰海皆其子孫。
백 세대 뒤에도 그와 견줄 이가 없다. 지금에 이르러 온 천하에 두루 퍼진 이가 모두 그의 자손이다.
每仰洪範,輙欲擬其毫末,亦不可得。欲望後進有力量者勉之,聊述梗槩耳。
늘 그 큰 법도(洪範)를 우러르며, 그 털끝만큼이라도 본뜨려 하나 그마저 될 수 없다. 뒤에 오는 이 가운데 역량 있는 사람이 힘쓰기를 바라, 애오라지 그 대강을 적을 뿐이다.
쉽게 읽기성현이 세상에 응하여 나타나고 사라지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 그 밝게 비추는 지혜에는 빈틈이 없다. 그러면서도 육조는 그 걸음과 나아간 방향이 미천한 데서 시작해 저명한 자리에 이르렀다. 이를 보면 세속의 인연을 끊지 않으면서도 오묘한 법도를 몸소 보여 준 것이다. 백 세가 지나도 이에 견줄 이가 없다. 오늘날 온 세상 바다에 두루 퍼진 이들이 모두 그의 자손이다. 늘 그 크나큰 법도를 우러러 털끝만큼이라도 본떠 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이룰 수 없다. 뒤에 오는 이들 가운데 역량 있는 사람이 여기에 힘쓰기를 바라며, 그저 그 대략만 적어 둔다.
풀이 2
洪範 홍범'每仰洪範'은 앞의 '不斷世緣而示妙規'를 받아, 六祖 惠能이 세운 큰 법도를 가리킨다.
25.5
한문現定見聞覺知,是法法離見聞覺知。若著見聞覺知,卽是見聞覺知,非達法也。
번역지금 눈앞에 뚜렷한 보고 듣고 느끼고 앎(見聞覺知)이 바로 법(法)이다. 그러나 법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앎을 떠나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앎에 붙들리면,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앎일 뿐이다. 법을 통달한 것이 아니다.
大凡達法之士,超出見聞覺知,受用見聞覺知,不住見聞覺知,直下透脫,渾是本法。
무릇 법을 통달한 이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앎을 뛰어넘는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앎을 누려 쓰되, 보고 듣고 느끼고 앎에 머물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꿰뚫어 벗어나니, 온통 본래의 법이다.
此法非有非無,非語非默,而能現有現無,現語現默,長時亘然,不變不異。
이 법은 있음도 없음도 아니고, 말도 침묵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있음을 드러내고 없음을 드러내며, 말을 드러내고 침묵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뻗쳐,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다.
是故雲門云:不可說時便有,不說時便無去也。思量時便有,不思量時便無去也。
그러므로 운문(雲門)이 말했다. “말할 때는 있고 말하지 않을 때는 없어진다고 해서는 안 된다. 헤아릴 때는 있고 헤아리지 않을 때는 없어진다고 해서도 안 된다.”
直須妙達此法,令得大用。長時語默縱橫,悉令般若現前,
모름지기 이 법을 오묘하게 통달하여 큰 작용(大用)을 얻어야 한다. 늘 말하든 침묵하든 가로세로 어디서나, 다 반야(般若)가 눈앞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
何必更論在善知識身邊爲親,在田野間作爲是疎。一往直前,自然觸處逢渠也。
어찌 굳이 선지식(善知識) 곁에 있어야 가깝고, 들판에서 일하면 멀다고 다시 따지겠는가. 한결같이 곧장 나아가면, 저절로 닿는 곳마다 그(渠)를 만날 것이다.
쉽게 읽기지금 눈앞에 뚜렷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곧 법이다. 그러나 법은 또한 그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있다. 만약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데에 매달리면,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그칠 뿐 법을 통달한 것이 아니다. 무릇 법을 통달한 이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뛰어넘으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 쓴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곧바로 꿰뚫어 벗어나 온통 근본 그대로이다. 이 법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고, 말도 침묵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능히 있음을 드러내고 없음을 드러내며, 말도 침묵도 드러낸다. 오랜 세월을 뻗쳐 있으면서도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운문 선사는 이렇게 일렀다. ‘말할 때는 있고 말하지 않을 때는 없어지며, 헤아릴 때는 있고 헤아리지 않을 때는 없어진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이 법을 오묘하게 통달하여 큰 작용을 얻어야 한다. 오랜 세월 말을 하든 침묵을 하든, 종횡 어디서나 반야가 눈앞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러니 어찌 선지식 곁에 있으면 가깝고 들판에서 일하면 멀다고 따지겠는가. 오직 한결같이 곧장 나아가면, 자연히 닿는 곳마다 그, 곧 참된 자기를 만나게 된다.
풀이 2
雲門文偃 운문문언『雲門匡眞禪師廣錄』 권중 '不可說時即有,不說時便無也'(T47n1988_p0559b07; 古尊宿語錄 권16도 같음). 뒤의 '思量時便有…' 구는 같은 곳에서 찾지 못했다.
25.6
한문乃佛乃祖,仰重此一端的事,布在羣機之中,高低貴賤,未嘗向背,百種千頭,作爲天真,歷落圓陁陁地。
번역부처도 조사도 이 하나의 확실한 일을 우러러 무겁게 여겨, 뭇 근기 가운데 펼쳐 두었다. 높고 낮고 귀하고 천함에, 일찍이 마주하거나 등진 적이 없다. 백 가지 천 갈래로 하는 일이 그대로 천진(天眞)이다. 뚜렷하고 둥글둥글하다(歷落圓陁陁地).
若特地作佛法玄妙見則虧,儻能不起見,只麼淨倮倮卻全彰。
일부러 불법(佛法)이 현묘하다는 견해를 지으면 곧 이지러진다. 그런 견해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으면, 그저 깨끗이 발가벗은 채 도리어 온전히 드러난다.
所以道:入林不動草,入水不動波,山是山,水是水,僧是僧,俗是俗。見拄杖子,只喚作拄杖子,謂之覿體。
그러므로 말했다. “숲에 들어가도 풀을 흔들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스님은 스님이고 속인은 속인이다. 주장자(拄杖子)를 보면 그저 주장자라 부른다. 이를 본체를 맞대고 봄(覿體)이라 한다.
若向箇裏覰得透,從朝至暮,從暮至朝,無絲毫透漏,全爲我用,一一非分外,渾是本分事,
이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실낱만큼도 새어 나감이 없다. 온통 나의 쓰임이 된다. 하나하나가 분수 밖의 것이 아니고, 온통 본분의 일(本分事)이다.
腳跟下未得諦當,亦不移易絲毫許,豈非端的現成機要耶?
발꿈치 아래가 아직 딱 들어맞지(諦當) 못했더라도, 실낱만큼도 옮기거나 바뀌지 않는다. 어찌 확실하게 그대로 이루어진(現成) 기틀의 요체가 아니겠는가.
直截省要,只消箇現成公案,浩浩作爲,自晝及夜,縱橫十字,喧靜語默,全體運用,一時覰破,從頭與批判將去,不妨快哉。
곧바로 끊어 간명하게 하려면, 다만 이 현성공안(現成公案) 하나면 된다. 넓디넓게 하는 일이 낮부터 밤까지 가로세로 열십자를 이루고, 시끄러움과 고요함, 말과 침묵이 온몸으로 굴러간다. 이것을 한꺼번에 꿰뚫어 보고 처음부터 가려 판단해 나간다면, 참으로 통쾌하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는 이 하나의 확실한 일을 우러러 소중히 여겨, 온갖 근기에 두루 펼쳐 놓았다. 그러니 높든 낮든 귀하든 천하든, 일찍이 그에게 등을 돌리거나 그를 향한 적이 없다. 백 가지 천 가지 갈래의 온갖 행위가 천진 그대로여서, 뚜렷하면서도 두루 원만하다. 여기에 일부러 ‘불법의 현묘함’이라는 견해를 지으면 곧 어그러진다. 반대로 그런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저 깨끗하고 발가벗은 그대로 도리어 온전히 드러난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되 풀을 흔들지 않고, 물에 들어가되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스님은 스님이요 속인은 속인이다. 주장자를 보면 그저 주장자라 부르니, 이를 본체를 그대로 마주함이라 한다. 이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실낱만 한 새어 나감도 없이 온통 나의 작용이 된다. 하나하나가 분수 밖의 것이 아니라 모두 본분의 일이다. 발꿈치 아래에서 아직 딱 들어맞음을 얻지 못했더라도 실낱만큼도 옮기거나 바뀌지 않으니, 어찌 눈앞에 그대로 이루어진 기틀의 요체가 아니겠는가. 곧바로 끊어 간명하고 요긴하게 하려면, 이 눈앞에 이루어진 화두 하나면 된다. 넓게 펼쳐진 온갖 행위가 낮부터 밤까지 종횡으로 열십자를 이루고, 시끄러움과 고요함, 말과 침묵이 온몸으로 굴러간다. 이 모두를 한꺼번에 간파하여 처음부터 가려 판단해 나간다면, 참으로 통쾌하지 않겠는가.
25.7
한문此事若在言語裏,則合一句,語便殺定,更不移改也。云何千句萬句終無窮竭?
번역이 일이 만약 말 속에 있다면, 마땅히 한마디로 딱 못 박아 정해 다시는 옮기거나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천 마디 만 마디를 해도 끝내 다함이 없는가.
將知不在言語裏,要假語句以顯發此事。
이로써 알아야 한다. 이 일은 말 속에 있지 않다. 이 일을 드러내 밝히려면 말과 구절을 빌려야 한다.
靈利漢當須直體此意,超證透語句底,使活鱍鱍地,便能將一句作百千句用,將百千句作一句用也。
영리한 사람(靈利漢)이라면 마땅히 이 뜻을 곧바로 체득해야 한다. 말과 구절을 넘어 깨닫고 꿰뚫어, 펄떡펄떡 살아 있게(活鱍鱍地) 해야 한다. 그러면 한마디를 백천 마디로 쓰고, 백천 마디를 한마디로 쓸 수 있다.
更疑甚麼卽心卽佛,非心非佛,不是心,不是佛,亦不是物,以至心不是佛,智不是道,東山水上行,日午打三更,後園驢喫草,北斗裏藏身,一串穿卻。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나아가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道)가 아니다’, ‘동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上行)’, ‘한낮에 삼경(三更)을 친다’, ‘뒤뜰의 나귀가 풀을 뜯는다’, ‘북두 속에 몸을 감춘다(北斗裏藏身)’ 하는 것들을 한 꼬챙이에 꿰어 버린다.
쉽게 읽기이 일이 만약 언어 속에 있다면, 한마디 말로 딱 못 박아 정해 놓고 다시는 옮기거나 고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 마디 만 마디를 해도 끝내 다함이 없겠는가. 이로써 이 일이 언어 속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말과 구절을 빌려 이 일을 드러내 밝힐 뿐이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이 뜻을 곧바로 체득하여, 말과 구절을 넘어 증득하고 꿰뚫어, 펄펄 살아 뛰는 경지에 이른다. 그리하여 한마디를 백천 마디로도 쓰고, 백천 마디를 한마디로도 쓸 수 있다. 그러면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곧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말, 마음도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라는 말, 나아가 마음이 부처가 아니고 지혜가 도가 아니라는 말, ‘동산이 물 위로 간다’, ‘정오에 삼경을 친다’, ‘뒷동산의 나귀가 풀을 뜯는다’, ‘북두칠성 속에 몸을 감춘다’ 하는 온갖 말들을 한 꼬챙이로 꿰어 버린다.
25.8
한문嚴陽尊者問趙州:一物不將來時如何?州云:放下著。
번역엄양(嚴陽) 존자가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가 말했다. “내려놓아라(放下著).”
進云:某甲一物不將來,未審教放下箇什麼?州云:看汝放不下。言下大悟。
엄양이 다시 나아가 물었다. “저는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네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아라.” 엄양은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後來黃龍頌:一物不將來,兩肩擔不起,明眼人難謾,言下忽知非,退步墮深坑,心中無限喜,如貧得寶,毒惡既忘懷,沒交涉蛇虎,爲知己異類等解,寥寥千百年,清風猶未已。
훗날 황룡(黃龍)이 송(頌)을 지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나 / 두 어깨로 메어도 들지 못하네〔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다〕 / 말끝에 문득 그른 줄 알았네〔뒷걸음치다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 / 마음속 기쁨은 끝이 없네〔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하다〕 / 독하고 모진 것을 이미 마음에서 잊었네〔상관없다〕 / 뱀과 범이 벗(知己)이 되었네〔다른 무리도 똑같이 안다〕 / 쓸쓸히 천백 년이 흘러도 / 맑은 바람은 아직 그치지 않았네.’
放下著。若以常情論之,他道:一物不將來。云何卻向道放下著?
‘내려놓아라.’ 이 말을 보통의 생각(常情)으로 따진다면, 그는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도리어 ‘내려놓아라’ 했겠는가.
將知法眼照於細微,爲他拈出大病,令他知羞慚去。
이로써 알 수 있다. 법의 눈(法眼)이 작은 데까지 비추어, 그를 위해 큰 병을 집어내고 그가 부끄러움을 알게 한 것이다.
他尚不覺,更復進問,再與點過,直得瓦解冰消,方始倒底一時脫去,
그는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다시 나아가 물었다. 거듭 짚어 주자, 곧장 기와가 부서지고 얼음이 녹듯 했다. 비로소 밑바닥까지 한꺼번에 벗어 버렸다.
遂至伏猛虎、馴毒蛇,豈非內感外應耶?
마침내 사나운 범을 굴복시키고 독한 뱀을 길들이기에 이르렀다. 어찌 안으로 느끼고 밖으로 응한 것(內感外應)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엄양 존자가 조주 종심 스님에게 물었다. ‘일물불장래, 곧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가 ‘내려놓아라’라고 하였다.엄양이 다시 물었다. ‘저는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 하십니까?’ 조주가 ‘네가 내려놓지 못하는 그것을 보라’라고 하였다. 엄양은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훗날 황룡이 게송을 지었다. 〔 〕 안은 내가 구절마다 붙인 말이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나 / 두 어깨로 짊어져도 일으키지 못하네〔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다〕 / 말끝에 문득 그름을 알았네〔뒷걸음질 치다 깊은 구덩이에 떨어졌다〕 / 마음속에 한없는 기쁨이라〔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하다〕 / 독하고 악한 것을 이미 마음에서 잊었네〔상관없다〕 / 뱀과 범이 벗이 되었네〔다른 무리도 똑같이 안다〕 / 쓸쓸히 천백 년이 흘러도 / 맑은 바람은 아직 그치지 않았네.’ ‘내려놓아라’라는 이 말을 보통의 상식으로 따진다면, 그가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도리어 ‘내려놓아라’라고 하였겠는가. 이는 법안이 세밀한 데까지 비추어, 그를 위해 큰 병통을 집어내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게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다시 물으니, 거듭 짚어 지적해 주어 마침내 기와가 부서지고 얼음이 녹듯 밑바닥까지 한꺼번에 벗어 버리게 하였다. 드디어 사나운 범을 굴복시키고 독한 뱀을 길들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안으로 감응하고 밖으로 응한 것이 아니겠는가.
풀이 11
一物不將來 일물불장래黃龍頌 사이의 '明眼人難謾'·'退步墮深坑'·'如貧得寶'·'異類等解' 등은 頌의 구가 아니라 圜悟의 著語다. 『從容錄』 제57칙 評唱이 '佛果法語舉. 黃龍頌云'이라 하며 같은 頌을 '(果云. 明眼人難謾)'처럼 협주로 갈라 싣는다.
趙州從諗 조주종심嚴陽善信과의 문답. 『五燈會元』 권4에는 둘째 답이 '放不下,擔取去'로 되어 있고 『趙州錄』에는 첫 문답 '放下著'만 있어, '看汝放不下'와 글이 다르다.
嚴陽尊者 엄양존자黃龍慧南의 頌 '一物不將來,肩頭擔不起,言下忽知非,心中無限喜…'(『黃龍慧南禪師語錄』). 心要는 '如貧得寶' 등 字句를 더해 실었다.
黃龍慧南 황룡혜남이 頌은 『黃龍慧南禪師語錄』에 '一物不將來,肩頭擔不起,言下忽知非…'로 실렸다. 『從容錄』 제57칙 評唱은 '佛果法語'에서 이를 들며 '明眼人難謾'·'退步墮深坑'·'如貧得寶'·'異類等解'를 圜悟의 着語('果云')로 갈랐다.
放下著 방하착'後來黃龍頌' 이하는 黃龍慧南의 頌 여덟 구 사이에 원오가 '明眼人難謾'·'退步墮深坑'·'如貧得寶'·'沒交涉'·'異類等解'의 著語를 끼운 것이다. 『從容錄』 제57칙 평창이 '佛果法語舉'라 하며 이를 '果云'으로 갈라 싣는다.
一物不將來 일물불장래일물불장래(一物不將來)/방하착(放下著) + 황룡혜남(黃龍慧南) 송고(頌古)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1(엄양존자(嚴陽尊者))·조주록(趙州錄)에 화(話)가, 황룡혜남어록(黃龍慧南語錄)에 송(頌)이 병행하여 송(頌)의 귀속(黃龍派)과 판독을 확정한다. 아울러 방온(龐蘊) '난난(難難)/역역(易易)/야불난야불역(也不難也不易)' 삼전어(三轉語)가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오등회원(五燈會元)에 병행하여 가중(家中) 문답의 원형을 확인케 한다.
25.9
한문龐居士渾家向火,居士驀云:難!難!十石油麻樹上攤。龐婆云:易!易!百草頭上祖師意。
번역방(龐) 거사의 온 집안이 불을 쬐고 있었다. 거사가 문득 말했다. “어렵다, 어렵다! 열 섬 참깨를 나무 위에 펴 너는구나.” 방 노파가 말했다. “쉽다, 쉽다! 온갖 풀 끝마다 조사의 뜻이다.”
靈照云:也不難,也不易,飢來喫飯困來睡。
영조(靈照)가 말했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잔다.”
尋常舉向人,多是愛靈照道得省力,嫌龐翁龐婆說難說易,
흔히 이 이야기를 남에게 들어 보일 때, 대개는 영조가 힘 들이지 않고(省力) 말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방 노인과 방 노파가 어렵다 쉽다 한 것을 싫어한다.
只是作隨語解,殊不本其宗猷,所以言迹之興,異途之所由生也。
이는 그저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지은 것이다. 그 근본 종지(宗猷)에 뿌리를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과 자취가 일어나는 것이, 곧 다른 길이 생겨나는 까닭이다.
若能忘言體意,方見此三人各出一手,共提箇沒底藍兒撈蝦摝蜆,著著有殺人之機,處處有出身之路。
말을 잊고 뜻을 체득할 수 있다면, 비로소 보게 된다. 이 세 사람이 저마다 한 손씩 내어, 함께 밑 빠진 바구니(沒底藍兒)를 들고 새우를 건지고 가막조개를 긁는 것을. 수마다 사람을 죽이는 기틀이 있고, 곳곳마다 몸을 빼낼 길이 있다.
쉽게 읽기방 거사의 온 집안이 화롯불을 쬐고 있었다. 거사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어렵고 어렵구나, 열 섬의 참깨를 나무 위에 펴 너는 것 같구나.’ 그러자 방 노파가 말했다. ‘쉽고 쉽구나, 온갖 풀 끝마다 조사의 뜻이로다.’ 이번에는 딸 영조가 말했다. ‘어렵지도 쉽지도 않으니, 배고프면 밥 먹고 고단하면 잠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이야기를 할 때, 대개 영조가 힘 안 들이고 말한 것은 좋아하고, 방 노인과 방 노파가 어렵다 쉽다 한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이는 그저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지은 것일 뿐, 그 근본 종지에는 닿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말과 자취가 일어나는 것이 바로 갈래 다른 길이 생겨나는 빌미가 된다. 만약 말을 잊고 그 뜻을 체득한다면, 비로소 이 세 사람이 저마다 한 손을 내밀어, 함께 밑 빠진 대바구니를 들고 새우를 건지고 조개를 긁어모으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리하면 손마다 사람을 죽이는 기틀이 있고, 곳곳마다 몸을 빼내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된다.
풀이 3
龐居士 방거사이 문답은 『聯燈會要』 권6의 꼴(龐婆 '百草頭邊祖師意', 靈照 '飢來喫飯困來睡')과 거의 같다. 『龐居士語錄』 권1에는 龐婆가 '如下眠床脚踏地', 靈照가 '百草頭上祖師意'라 하여 말의 배당이 다르다.
교감 · 沒底藍兒'沒底藍兒'의 '藍'은 '籃'(바구니)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50
  1. 醍醐作毒藥 제호작독약

    '제호(醍醐)로 독약을 만든다'는 말이다. 제호는 우유를 거듭 정제해 얻는 가장 좋은 맛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에 견준다. 좋은 가르침도 잘못 받으면 도리어 사람을 해치게 됨을 이른다.

  2. 千鈞之弩不爲鼷鼠發機 천균지노불위혜서발기

    '천 근 쇠뇌는 생쥐 잡자고 시위를 당기지 않는다'로, 대기대용(大機大用)은 하찮은 데 쓰지 않음이다. 문선(文選)계 고사로 원오가 벽암록(碧巖錄) 수시(垂示)류에도 활용하였다.

  3. 一機一境 일기일경

    하나의 기틀(機)과 하나의 경계(境)이다. 스승이 학인을 이끌 때 내보이는 한 번의 몸짓이나 말을 가리킨다. 선에서는 그런 한 가지 작용에 매이는 것을 병으로 경계한다.

  4. 焦塼打著連底凍 초전타저련저동

    '그을린 벽돌을 던지니 밑바닥까지 얼어붙었다'로, 현사(玄沙)의 얕은 비판이 도리어 구지(俱胝)의 깊이를 드러낸다. 벽암록(碧巖錄) 19칙(則) 원오 평창(評唱)에 같은 구절이 있다.

  5. 不思善惡處本來面目 불사선악처본래면목

    '선도 악도 생각지 않는 바로 그때 그것이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으로, 혜능(惠能)이 혜명(惠明)에게 준 제시이다. 단경(壇經).

  6. 落髮登具 낙발등구

    삭발하고 구족계(具足戒)(등단수구(登壇受具))를 받음이다.

  7. 九重 구중

    구중궁궐(九重宮闕), 곧 천자·조정이다.

  8. 龍象 용상

    용과 코끼리다. 물에서는 용이, 뭍에서는 코끼리가 가장 힘이 세므로, 뛰어난 수행자나 큰 선지식을 비유한다. 『유마경』에도 이 비유가 나온다.

  9. 洪範 홍범

    큰 법, 크나큰 법도라는 말이다. 본디 서경의 편 이름 「홍범」에서 온 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을 적은 글이다. 전하여 본받아야 할 크나큰 모범을 이른다.

  10. 見聞覺知是法 견문각지시법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견문각지, 見聞覺知)이 곧 법이라는 말이다. 흔히 '법은 견문각지를 떠나 있다(法離見聞覺知)'와 짝지어, 견문각지에 매이면 법에 이르지 못함을 일깨운다.

  11. 法離見聞覺知 법리견문각지

    법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견문각지, 見聞覺知)을 떠나 있다는 말이다. 견문각지에 매달리면 그것에 그칠 뿐 법에 이르지 못한다. 능엄(楞嚴)·정명(淨名) 계열의 정형구로, 『전심법요(傳心法要)』·『종경록(宗鏡錄)』 계열에서도 쓰는 말로 보인다(추정).

  12. 不是心不是佛不是物 불시심불시불불시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를 다시 넘어선 말로, 『전등록』에는 마조의 말로도, 남전(南泉)의 말로도 전한다. 남전이 '남에게 말하지 않은 법'을 묻는 물음에 이 말로 답한 문답이 공안으로 이름났다.

  13. 心不是佛·智不是道 심불시불·지불시도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어구이다(전등록(傳燈錄)·남전어록(南泉語錄) 계열).

  14. 日午打三更·園驢喫草·北斗裏藏身 일오타삼경·원려끽초·북두리장신

    시간·사리를 전도시키는 운문(雲門)계 활구류(活句類). 북두리장신(北斗裏藏身)은 운문(雲門)의 투법신구(透法身句)이다. '일관천각(一串穿卻)'은 이들을 한 꼬챙이로 꿰어 평등히 다룸이다.

  15. 一物不將來 일물불장래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에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고 물었다. 조주는 '내려놓아라(放下著)' 하였다. 엄양이 가져온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느냐고 되물었다. 조주가 다시 내려놓지 못함을 꼬집자, 엄양은 그 말끝에 깨쳤다. 비웠다는 생각마저 짐이 됨을 일깨운 문답으로 읽힌다.

  16.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17.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18. 龐居士 방거사

    당나라의 재가 거사 방온(龐蘊, ?~808)이다. 형양(衡陽) 사람으로, 석두(石頭)에게 먼저 묻고 마조(馬祖)에게서 깨달아 그 법을 이었다. 아내와 딸 영조(靈照)까지 온 집안이 도를 닦은 이야기로 이름났다.

  19. 玄沙師備 현사사비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복주(福州) 사람이다. 젊어서 고기잡이를 하다 서른에 출가했고, 고행을 엄하게 지켜 '비두타(備頭陀)'라 불렸다.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그 계통에서 법안종이 나왔다.

  20. 六祖慧能 육조혜능

    중국 선종의 여섯째 조사(638~713)다. 신주(新州)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으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법을 이었다. 소주(韶州)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에서 가르침을 펴 '조계'라고도 불린다. 남종선을 열었고, 뒤의 선종 여러 갈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21. 放下著 방하착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착(著)은 말끝에 붙어 시키는 뜻을 더한다. 엄양존자(嚴陽尊者)가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묻자 조주(趙州) 스님이 이렇게 답한 일로 널리 알려졌다.

  22.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23. 嚴陽尊者 엄양존자

    엄양선신(嚴陽善信)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조주(趙州) 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주에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묻고, '내려놓아라(放下著)'라는 답에 깨쳤다. 홍주 신흥에 머물며 뱀과 범을 곁에 두고 손으로 먹였다고 한다.

  24. 活鱍鱍 활발발

    물고기가 펄떡펄떡 뛰듯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양이다. 말이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작용하는 깨친 마음을 그린다. 활발발(活潑潑)이라고도 쓴다.

  25. 黃龍慧南 황룡혜남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자명(慈明) 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운문종 늑담회징의 문하에서 이름을 얻었으나, 자명을 만나 크게 깨쳤다. 뒤에 황룡산에 머물며 '황룡파'라는 한 갈래를 열었다.

  26. 新州 신주

    당나라 영남(嶺南)의 고을로, 지금의 중국 광동성 신흥 일대이다. 육조 혜능(慧能)이 자라며 나무를 해다 팔던 곳이다. 혜능은 만년에 이곳 옛집을 절로 삼은 국은사(國恩寺)로 돌아가 입적했다.

  27. 俱胝 구지

    구지화상(俱胝和尙)이다. 당나라 무주(婺州) 금화산의 선승이다. 천룡(天龍) 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그 자리에서 깨쳤다. 그 뒤로는 누가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웠다. 이 일은 『벽암록』과 『무문관』에도 실렸다.

  28. 天龍 천룡

    항주(杭州) 천룡화상(天龍和尙)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대매법상(大梅法常)의 법을 이었다. 구지(俱胝)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여 깨우쳐 준 스승이다.

  29. 黃梅 황매

    기주(蘄州) 황매현으로, 오조홍인(五祖弘忍)이 법을 펴던 곳이다. 선문에서는 흔히 땅 이름으로 홍인 스님 자신을 가리킨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이 이곳에 찾아가 법을 이었다.

  30. 番禺 번우

    중국 광주(廣州)의 옛 이름이다. '반우'로 읽기도 한다. 육조 혜능이 이곳 법성사(法性寺)에서 바람과 깃발 문답으로 인종(印宗)을 감복시키고 머리를 깎았다.

  31. 卽心卽佛·非心非佛 즉심즉불·비심비불

    마조(馬祖)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치다가 뒤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했다. 대매법상(大梅法常)이 앞의 말만 지킨다는 말을 듣고 마조는 '매실이 익었다'며 인정했다. 『무문관』에 두 칙으로 실렸다.

  32. 東山水上行 동산수상행

    운문(雲門)의 공안이다. 한 스님이 '모든 부처가 몸을 드러내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동산이 물 위로 간다'고 답했다. 생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말로 묻는 이의 분별을 끊은 것으로 읽힌다.

  33. 現成公案 현성공안

    이미 다 이루어져 눈앞에 드러나 있는 공안(公案)이다. 따로 화두를 들고 찾을 것 없이, 지금 드러난 이대로가 그대로 공안이라는 뜻이다. 목주(睦州) 선사가 즐겨 한 말로 이름났다.

  34. 心不是佛 심불시불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에 제자들이 매이자 이를 깨뜨리려 한 말이다. 동사여회(東寺如會)와 남전(南泉)의 말로 전한다.

  35. 一指頭禪 일지두선

    구지(俱胝)가 모든 물음에 손가락 하나만 세워 답한 선기(禪機). 동자(童子)가 흉내내자 손가락을 잘라 깨우친 일화로 유명하다.

  36. 頂顙上眼 정상상안

    정수리 위의 눈, 곧 정문안(頂門眼). 정사(正邪)를 꿰뚫는 제삼안(第三眼)·활안(活眼)이다.

  37. 秀師 수사

    신수(神秀). 홍인(弘忍) 문하 상좌(上座).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게송과 혜능(惠能)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의 정게(呈偈)가 대비된다.

  38. 衣盂 의우

    달마(達磨)가 전한 가사와 발우, 곧 전법의 신표. 홍인(弘忍)이 혜능(惠能)에게 밀수하였다.

  39. 蒙山 몽산

    혜명(惠明)(혜명(慧明)), 뒤의 몽산도명(蒙山道明). 본디 사품장군(四品將軍)으로 혜능(惠能)을 대유령(大庾嶺)까지 쫓았으나 의우(衣盂)를 들지 못하고 발심하였다. 단경(壇經)에 보이며, '몽산(蒙山)'은 후대 주석지명으로 지칭한 것이다.

  40. 庾嶺 유령

    대유령(大庾嶺)(매령(梅嶺)). 강서(江西)와 영남(嶺南)의 경계 고개이다.

  41. 四會 사회

    광동(廣東) 조경(肇慶) 사회(四會). 혜능(惠能)이 사냥꾼 무리에 은거한 곳으로 전승상 약 15년이다.

  42. 風幡心動 풍번심동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 그대 마음이 움직인다(仁者心動)'로, 법성사(法性寺) 논쟁이다. 단경(壇經).

  43. 印宗 인종

    인종법사(印宗法師). 법성사(法性寺)에서 혜능(惠能)을 위해 낙발·수구족계하고 도리어 스승으로 섬겼다.

  44. 紫泥 자니

    자줏빛 봉니로 봉한 제왕(帝王)의 조서(詔書). 당(唐) 중종(中宗)이 혜능(惠能)을 경사로 부른 초청(설간(薛簡) 파견)을 혜능(惠能)이 확고히 사양한 사실이다.

  45. 龐婆·靈照 방파·영조

    방온(龐蘊)의 아내와 딸 영조녀(靈照女). '역역백초두상조사의(易易百草頭上祖師意)'와 '야불난야불역(也不難也不易), 기래끽반곤래수(飢來喫飯困來睡)'의 삼전어(三轉語)이다.

  46. 沒底藍兒 몰저남아

    밑 빠진 대바구니. 영조녀(靈照女)가 조리(笊籬)를 팔던 데서 온 상투구로, 무소득(無所得)의 대용(大用)을 비유한다.

  47. 覿體 적체

    본체를 바로 마주 봄(覿面承當). 눈앞 그대로가 곧 실상임이다.

  48. 內感外應 내감외응

    안으로 감(感)하면 밖으로 응(應)함으로, 사자(師資)가 상계하여 기(機)와 용(用)이 딱 맞아떨어짐이다.

  49. 千鈞之弩不爲鼷鼠而發機 천균지노불위혜서이발기

    '천 균 무게의 큰 쇠뇌는 생쥐 한 마리를 잡으려고 시위를 당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큰 솜씨는 하찮은 데 함부로 쓰지 않음을 이른다. 선가에서 크나큰 기틀과 작용을 말할 때 자주 쓰며, 원오는 벽암록 제44칙에서 '서른 근이 한 균'이라 풀며 이 말을 들었다.

  50. 龐婆 방파

    龐蘊의 아내와 딸 靈照女. '易易百草頭上祖師意'와 '也不難也不易, 飢來喫飯困來睡'의 三轉語이다.

문단 9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5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