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인물·용어 · 인물

石頭希遷

석두희천

생몰701~791

貞元 6년(790) 12월 25일 입적 · 91세 — 음력 해로 셈하면 700~790, 날짜를 양력으로 옮기면 701~791(DILA)

다른 이름石頭 석두

풀이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학술 풀이
石頭希遷(701~791). 端州 高要 사람, 俗姓 陳. 青原行思의 法嗣. 天寶 초 衡山 南寺에 이르러 절 동쪽의 臺 모양 바위 위에 암자를 지어 '石頭和尚'이라 불렸다. 貞元 6년(790) 12월 25일(양력 791년) 입적, 壽 91·臘 63. 『參同契』를 지었다. 門下에 藥山惟儼·天皇道悟·大顛 등이 있어, 藥山 계통에서 曹洞宗이, 天皇→龍潭→德山→雪峰 계통에서 雲門·法眼宗이 나왔다. 전기: 『景德傳燈錄』 권14(T51, no. 2076)·『宋高僧傳』 권9(T50, no. 2061).

실린 곳

원오심요 8편

나머지 2곳 더 보기

백운수단 광록 1편

오조법연 어록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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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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