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5편

원빈(元賓)에게 드리는 글

示元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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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한문佛祖大因緣,非名字語言知見解路,作聰明,起思惟,
번역부처와 조사의 큰 인연(大因緣)은 이름과 말,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길로, 총명을 부리고 생각을 일으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所了要忘懷忘緣,外空諸相,內脫識情,退守清虗,安閑澄徹,洞然超諸方便,直透本來妙心,
마음을 잊고 인연을 잊어야 합니다. 밖으로는 모든 모양을 비우고, 안으로는 식정(識情)을 벗어나야 합니다. 물러나 맑고 텅 빈 자리를 지켜, 편안하고 한가로이 맑게 사무치면, 모든 방편을 훤히 뛰어넘어 곧바로 본래의 묘한 마음(妙心)을 꿰뚫습니다.
亘古亘今,湛然不動,萬年一念,一念萬年,永無滲漏,諦當之地,一得永得,無有變異,乃謂之直指人心,見性成佛。
그 자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맑고 고요하여(湛然)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 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 년입니다. 영원히 새는 데가 없는, 참으로 들어맞는 자리입니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 변하거나 달라짐이 없습니다. 이를 일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합니다.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의 큰 인연은, 이름과 말이나 지견과 알음알이의 길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총명을 부리고 생각을 굴려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마음도 잊고 인연도 잊으십시오. 밖으로는 모든 모습을 비우고, 안으로는 분별하는 마음을 벗어나야 합니다. 물러나 맑고 텅 빈 자리를 지키고, 편안하고 한가로이 맑게 사무치십시오. 그러면 온갖 방편을 훤히 뛰어넘어, 곧바로 본래의 묘한 마음을 꿰뚫습니다. 이 자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맑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년입니다. 영원히 새는 데가 없는 참된 자리입니다. 한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일러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고 합니다.
15.2
한문然此如上所說,尚是理論,以言遣言,以理會理,令人漸有趣向。
번역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것도 아직은 이론입니다. 말로 말을 보내고 이치로 이치를 알게 하여, 사람이 차츰 나아갈 곳을 갖게 할 뿐입니다.
從前爲入理蹊徑,拖泥涉水,廉纖之論,及至真實提掇,何有如是周遮?
앞서 한 말은 이치에 드는 샛길을 내느라,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넌 자잘한 논의입니다. 참되고 실답게 곧바로 들어 보이는 데 이르면, 어찌 이렇게 에두르는 말이 있겠습니까?
是故靈山拈花,迦葉乃笑,是中豈可容毫髮說底道理?
그러므로 영산(靈山)에서 꽃을 드시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말로 풀어내는 도리를 들일 수 있겠습니까?
要須透頂透底,盡大千剎海,一舉便透,悉知落處,方諳悉從上來所行正令。
모름지기 정수리를 뚫고 바닥을 뚫어야 합니다. 온 대천(大千) 국토의 바다를 한 번 들어 곧바로 꿰뚫고, 그 떨어지는 곳(落處)을 다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위로부터 행해 온 바른 법령(正令)을 속속들이 압니다.
德山棒,臨濟喝,豈小兒戲耶?若具本分作家手段,不須一劄。
덕산(德山)의 몽둥이와 임제(臨濟)의 할(喝)이 어찌 어린아이 장난이겠습니까? 본분(本分) 작가(作家)의 솜씨를 갖추었다면, 한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所以龐老問石頭:馬祖不與萬法爲侶,是什麼人?石頭掩其口,而馬師道:待你一口吸盡西江水,卽向你道。豈二端耶?
그래서 방 거사(龐居士)가 석두(石頭)에게 물었습니다.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석두는 그 입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마조(馬祖)는 말했습니다.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거든, 그때 그대에게 말해 주겠다.” 어찌 두 갈래이겠습니까?
鞠其至趣,同是入泥入水,安可高下淺深之到箇裏?
그 지극한 뜻을 파고들어 보면, 다 같이 진흙에 들고 물에 드는 것입니다. 어찌 높고 낮음, 얕고 깊음이 이 속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쉽게 읽기그러나 지금 말한 이것도 아직은 이론일 뿐입니다. 말로 말을 보내고 이치로 이치를 알게 하여, 사람이 차츰 나아갈 방향을 잡게 할 뿐이지요. 앞서 한 이 말은 이치로 드는 지름길을 내려 한 것입니다. 진흙을 끌고 물을 건너듯 자잘한 논의를 벌인 것입니다. 하지만 참되게 곧바로 들어 보이는 자리에서야, 어찌 이렇게 에두르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영산에서 부처께서 꽃을 드시자, 가섭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여기에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말로 설명하는 도리가 끼어들겠습니까? 모름지기 정수리를 뚫고 바닥을 뚫어야 합니다. 온 세상의 국토와 바다를 한 번에 들어 곧바로 꿰뚫고, 그 돌아가는 자리를 남김없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위로부터 전해 내려온 바른 법령을 온전히 압니다. 덕산의 몽둥이질과 임제의 고함이 어찌 어린아이 장난이겠습니까? 참된 솜씨를 갖춘 본분 작가라면, 한 번 찌르는 일조차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 거사가 석두희천에게 물었습니다. '온갖 것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자 석두는 그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또 마조는 '그대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시거든, 그때 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둘이 어찌 서로 다른 두 갈래이겠습니까? 그 지극한 뜻을 파고들면 다 같이 진흙에 들고 물에 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찌 높고 낮음, 얕고 깊음을 따지겠습니까?
풀이 8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원오는 '乃謂之直指人心,見性成佛' 바로 뒤에 '尚是理論'이라 하여, 표어로서의 直指人心도 말로 이치를 아는 단계에 둔다. 이어 靈山拈花·德山棒·臨濟喝 같은 '眞實提掇'과 대비한다.
石頭希遷 석두희천龐蘊이 '不與萬法爲侶者是什麼人'을 石頭에게 묻자 '以手掩其口'한 일과, 뒤에 馬祖에게 같은 물음을 던진 일을 나란히 들었다(『龐居士語錄』 권1).
一劄 일차'德山棒,臨濟喝,豈小兒戲耶?若具本分作家手段,不須一劄'으로 이어지므로, 本分 작가의 수단을 갖추면 棒喝도 따로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不須는 다른 편의 不消와 같은 쓰임.
龐居士 방거사방거사(龐居士) '불여만법위려자시십마인(不與萬法爲侶者是什麼人)'과 마조(馬祖) '일구흡진서강수(一口吸盡西江水)' 문답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8 「양주거사방온(襄州居士龐蘊)」장 및 권6 마조도일장(馬祖道一章)에 함께 실린 대표 공안으로, 원오도 《어록(語錄)》에서 자주 인용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龐老問石頭…而馬師道
양립가능한 이독. 책은 방온이 석두와 마조 두 선사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다고 보아 '석두·마조에게 물었다'로 옮겼고, 자체역은 CBETA 자구대로 '석두에게 묻자 석두가 입을 막았고 마조가 답하였다'로 처리하였다. 저본의 '問石頭馬祖' 구를 어디서 끊느냐에 따라 두 읽기가 모두 성립하며, 뒤의 '豈二端耶'가 두 선사의 두 응답을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해도 어느 쪽으로든 무리가 없다.
15.3
한문直須知有,既知有,更須轉去始得。
번역모름지기 그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知有). 그것이 있음을 알았거든, 다시 굴려 나아가야 비로소 됩니다.
切忌守死語,墮窠窟,纔有一毫芒能所作用,玄妙理性,見刺刺人,卒未撥剔得下,作麼生透脫死生,證安樂無爲不動境界去?
죽은 말(死語)을 지켜 소굴에 떨어지는 것을 꼭 삼가십시오. 털끝만큼이라도 주관과 객관(能所)의 작용이나 현묘한 이치와 성품이 있어, 견해의 가시가 사람을 찌르는데도 끝내 떨쳐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고 죽음을 사무쳐 벗어나, 안락하고 함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 경계를 증득하겠습니까?
古人重履踐一門,得坐披衣,向後自看是也。切須管帶,使得力乃善。
옛사람은 밟아 행하는 한 문(門)을 무겁게 여겼습니다. 자리를 얻고 옷을 걸친 뒤로도 스스로 살펴 간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모름지기 잘 지니고 챙겨, 힘을 얻어야 좋습니다.
古賢達具大根器,能自證明,又能力行之,喚做作二。
옛 현달한 이들은 큰 근기(根器)를 갖추어,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고 또 힘써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일러 ‘둘을 아우른다(作二)’고 합니다.
夫長時只覰自己起心動念,纔有毫髮卽及令淨盡,終不用作一種事業資談柄,期勝於人而伏人長知見,作能作勝圖聲名實頭。
그들은 오랜 세월 다만 자기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는 것을 살폈습니다.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손을 써 말끔히 없앴습니다. 끝내 이것을 하나의 일거리로 삼아 이야깃거리의 밑천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남을 이기려 하여 남을 굴복시키고 지견을 키우거나, 잘난 체 뛰어난 체하여 명성의 실속을 꾀하지도 않았습니다.
只爲死生大事,百劫千生不昧不陷墜,古來大有不惜眉毛爲人指出處。
다만 나고 죽는 큰일(生死大事)을 위하였기에, 백 겁 천 생에도 어둡지 않고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로부터 눈썹을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짚어 보여 준 데가 아주 많습니다.
雲門覿體全真,臨際坐斷報化佛頭。德山無事於心,於心無事則虗而靈、寂而照。
운문(雲門)은 마주한 바탕 그대로 온통 참되었고(覿體全真), 임제는 보신불과 화신불(報化佛)의 머리를 앉은 자리에서 끊었습니다. 덕산은 마음에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일이 없으면 비어서 신령하고, 고요하면서 비춥니다.
巖頭只守閑閑地,一切時中無欲無依,自然超諸三昧。
암두(巖頭)는 다만 한가로운 자리를 지켰습니다. 언제나 바라는 것도 기대는 것도 없어, 저절로 모든 삼매(三昧)를 뛰어넘었습니다.
趙州道:我見百千箇漢子,只是覓作佛底,中間覓箇無心道人難得。
조주(趙州)는 말했습니다. “내가 백천 명의 사내를 보았는데, 다만 부처 되기를 찾는 자들뿐이다. 그 가운데 무심한 도인(無心道人) 하나 찾기가 어렵다.”
但熟味其言,休心履踐,它時異日逢境遇緣,乃得力也。要當慎護,勿令滲漏。乃祕訣也。
다만 그 말을 익히 맛보고, 마음을 쉬어 밟아 행하십시오. 훗날 경계를 만나고 인연을 만날 때 힘을 얻습니다. 마땅히 삼가 지켜 새어 나가지 않게 하십시오. 이것이 곧 비결입니다.
쉽게 읽기먼저 그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그것이 있음을 알았거든, 다시 굴려 나아가야 비로소 됩니다. 죽은 말을 붙들고 지켜 소굴에 떨어지는 일을 반드시 삼가십시오. 조금이라도 능·소, 곧 아는 나와 알려지는 대상이라는 작용이 남거나, 현묘한 이치와 성품, 견해의 가시가 남아 사람을 찌른다면, 어떻게 나고 죽음을 벗어나겠습니까? 어떻게 안락하고 함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 경계를 얻겠습니까? 옛사람은 실지로 밟아 행하는 문을 중히 여겼습니다. 자리를 얻어 옷을 입은 뒤로도 스스로를 살펴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잘 지니고 챙겨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옛 현달한 이들은 큰 근기를 갖추었습니다. 스스로 증명하고 또 힘써 행하였으니, 이를 지혜와 실행을 아울러 갖춘 것이라 합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그저 제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는 것만 살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런 것이 있으면 즉시 미쳐 깨끗이 씻어 냈습니다. 끝내 이것을 일거리로 삼아 이야깃거리의 밑천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남을 이기고 굴복시켜 지견을 기르거나, 잘난 척 뛰어난 척하여 명성을 도모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나고 죽는 큰일을 위하여, 수없는 세월 수없는 생에 걸쳐 어두워지지도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예로부터 눈썹을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짚어 보여 준 이가 아주 많았습니다. 운문 선사는 그대로 온전히 참되었습니다. 임제는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를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렸습니다. 덕산은 마음에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일이 없으면 텅 비어 신령하고, 고요하면서도 환히 비춥니다. 암두는 그저 한가로운 자리를 지켰습니다. 언제나 욕심도 없고 기댈 데도 없어, 자연히 모든 삼매를 뛰어넘었습니다. 조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백천 명의 사람을 보니, 죄다 부처 되기를 구하는 자들뿐이다. 그 가운데 무심한 도인을 찾기는 어렵더라.' 그 말을 익히 음미하고 마음을 쉬어 실지로 밟아 행하십시오. 그러면 훗날 어떤 경계와 인연을 만났을 때 힘을 얻습니다. 부디 삼가 지켜 새어 나가지 않게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비결입니다.
풀이 5
得坐披衣 득좌피의'古人重履踐一門,得坐披衣,向後自看是也' — 仰山慧寂의 말(『景德傳燈錄』 권11)을 끌어, 깨친 뒤의 履踐을 무겁게 여긴 옛사람의 뜻으로 삼았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喚做作二
난해구로 양립가능한 이독. 자체역은 '作二'를 '(스스로 증명함과 힘써 행함) 둘을 아울러 갖춤'으로 직역하고, 책은 '공부한다'로 의역하였다. 확정저본의 '作二' 자체가 난해하여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의 여지가 남는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臨際坐斷報化佛頭
책 오역 → 坐斷은 '앉은 채 완전히 끊어 장악함'의 선어인데, 책은 '머리에 눌러 앉는다'로 옮겨 斷(끊음)의 핵심 뜻을 놓쳤다. 자체역 '앉은 자리에서 끊었습니다'가 옳다.
교감 · 臨際'臨際'는 '臨濟'(임제)와 같다. 송 · 원 선적에 흔한 표기다.
15.4
한문裴相國見黃檗,言下有契證,更爲發揮傳心祕要,再三叮嚀,無限量慈悲。
번역배 상국(裴相國)은 황벽(黃檗)을 뵙고 말끝에 맞아떨어져 증득한 것이 있었습니다. 황벽은 다시 그를 위해 마음을 전하는 비밀한 요체(傳心祕要)를 펴 밝히고, 두 번 세 번 간곡히 당부하였으니, 한량없는 자비였습니다.
于頔襄陽參紫玉,一喚便回頭,重爲指黑風飄船,見墮羅剎國,方得渙然。
우적(于頔)은 양양(襄陽)에서 자옥(紫玉)을 참문하였습니다. 한 번 부르자 곧 고개를 돌렸습니다. 자옥이 거듭 그를 위해 ‘검은 바람이 배를 날려 나찰국(羅剎國)에 떨어진 것’을 가리켜 보이자, 비로소 환히 풀렸습니다.
自古士流肯重此事,廢寢忘餐,直下見諦者不勝數,皆由當人根力智見高明爽快,然後能訪尋決擇。
예로부터 사대부들 가운데 이 일을 기꺼이 무겁게 여겨, 잠을 잊고 밥을 잊으며 곧바로 진리를 본 이가 이루 셀 수 없습니다. 모두 그 사람의 근기의 힘과 지견이 높고 밝으며 시원스러웠기에, 그 뒤에 찾아 묻고 가려 뽑을(決擇) 수 있었던 것입니다.
今既與古爲儔,尤宜力行不退,圖深證深入,勿只尚口頭語言,必使心心不觸物,頭頭無處所始得。
이제 이미 옛사람과 짝이 되었으니, 더욱 힘써 행하여 물러서지 마십시오. 깊이 증득하고 깊이 들어가기를 꾀하십시오. 입가의 말만 떠받들지 마십시오. 반드시 마음마다 사물에 닿지 않고, 낱낱에 머무는 곳이 없게 해야 비로소 됩니다.
此道貴單提獨證,與祖佛向上機契合,高出心源,如擊石火、閃電光,不容擬議尋伺,直下便透,不落意根情想。
이 도는 홑으로 들어 홀로 증득함(單提獨證)을 귀히 여깁니다. 조사와 부처의 향상(向上)의 기틀과 맞아떨어져, 마음의 근원보다 높이 솟습니다. 부싯돌 불꽃 같고 번갯불 같아서, 헤아리고 따지며 찾아 살피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꿰뚫어, 의근(意根)과 정상(情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以至說理說性,於機境語句中作窠窟、立解會,遞互傳持,說唯心,融地水火風,以虗空爲量,喚作透根塵下事,只成理論,不出教家三乘五性,權立階梯,返成鈍置。
그런데 이치를 말하고 성품을 말하며, 기연과 경계와 말귀 가운데서 소굴을 짓고 알음알이를 세워, 서로 번갈아 전해 지니는 데까지 이릅니다. 오직 마음뿐(唯心)이라 말하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녹이며, 허공을 척도로 삼아, 이를 근(根)과 진(塵)을 꿰뚫은 자리의 일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다만 이론이 될 뿐입니다. 교가(敎家)의 삼승(三乘) · 오성(五性)이 방편으로 세운 계단을 벗어나지 못하여, 도리어 사람을 굼뜨게 만들고 맙니다(鈍置).
當須了取,未有佛祖已前,箇片田地從甚處來?
마땅히 깨쳐 알아야 합니다. 부처와 조사가 있기 이전에, 이 한 조각 밭(田地)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纔有纖毫有所得,乃是相似般若,應深辨別,勿墮塵機。
털끝만큼이라도 얻은 바가 있으면, 이는 곧 사이비 반야(相似般若)입니다. 마땅히 깊이 가려내어, 티끌의 기틀(塵機)에 떨어지지 마십시오.
到臘月三十日,理地不明,斷割不去,那時慞惶繆亂,悔不可及也。
섣달 그믐날에 이르러 이치의 자리가 밝지 못하고 끊어 내지 못하면, 그때는 두렵고 허둥대며 어지러워져, 뉘우쳐도 이미 늦습니다.
五祖老師常示學徒,須參臨命終時禪。
오조(五祖) 노스승께서는 늘 학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모름지기 목숨이 다할 때의 선(臨命終時禪)을 참구하라.”
此非小事,設使聰明辯慧、八達七通、纖洪理論,絲來線去,不出識學詮文,正是打骨董,究竟無截斷處。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설령 총명하고 말 잘하며 지혜로워 사방팔방 막힘이 없고(八達七通), 잘고 큰 이론을 실오라기 오가듯 엮어 내더라도, 식(識)으로 배운 것과 글 풀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로 골동품 놀음일 뿐이라, 끝내 끊어 낼 곳이 없습니다.
쉽게 읽기배휴 상국은 황벽을 뵙고, 말끝에 계합하여 증득한 바가 있었습니다. 황벽은 다시 마음을 전하는 은밀한 요체를 밝혀, 두 번 세 번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참으로 한량없는 자비였습니다. 우적은 양양에서 자옥 선사를 참문하다가, 한 번 부르는 소리에 곧 고개를 돌렸습니다. 자옥 선사가 다시 그에게 '이것이 검은 바람이 배를 날려 나찰국에 떨어진 것'이라고 가리켜 보이자, 비로소 환히 풀렸습니다. 예로부터 사대부 가운데 이 일을 기꺼이 중히 여긴 이가 많았습니다. 잠을 잊고 밥을 잊으며 곧바로 진리를 본 이가 이루 셀 수 없습니다. 모두 그 사람의 근기의 힘과 지견이 높고 밝으며 시원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찾아 묻고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대는 이미 옛사람과 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힘써 행하여 물러서지 마십시오. 깊이 증득하고 깊이 들어가기를 도모하십시오. 그저 입가의 말만 떠받들지 마십시오. 반드시 낱낱의 마음이 사물에 닿지 않고, 낱낱이 머무는 곳이 없어야 비로소 됩니다. 이 도는 홀로 들어 홀로 증득함을 귀히 여깁니다. 조사와 부처의 향상의 기틀과 계합하여, 마음의 근원보다 높이 솟습니다. 부싯돌의 불꽃이나 번갯불의 빛과 같아서, 헤아리고 따지며 살피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꿰뚫어, 의근과 정상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치를 말하고 성품을 말하며, 기연과 경계와 어구 가운데서 소굴을 짓고 알음알이를 세워 서로 번갈아 전하기도 합니다. 또 오직 마음뿐이라 말하고, 지·수·화·풍을 녹이며, 허공을 잣대로 삼습니다. 이것을 근진을 꿰뚫은 높은 일이라 부르지만, 다만 이론을 이룰 뿐입니다. 이는 교가의 삼승과 오성이 방편으로 세운 계단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도리어 사람을 둔하게 만들고 맙니다.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와 조사가 있기 이전에, 이 한 조각 밭 자리, 곧 본래 마음자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조금이라도 얻은 바가 있다고 여기면, 이는 곧 사이비 반야입니다. 마땅히 깊이 가려내어, 티끌의 기틀에 떨어지지 마십시오. 섣달 그믐날, 곧 목숨이 다하는 때에 이르러 이치의 자리가 밝지 못하고, 끊어 갈라 버리지 못하면 어찌합니까? 그때는 두렵고 당황하여 어지러워지고, 후회해도 이미 늦습니다. 오조 노스승께서는 늘 배우는 이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반드시 목숨이 다할 때의 선을 참구하라.'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설령 총명하고 말 잘하며 지혜롭고 어디에도 막힘이 없어, 자잘한 이론이든 큰 이론이든 실오라기 오가듯 능란하게 다룬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알음알이로 배운 글 풀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골동품이나 두드리는 격이라 끝내 끊어 낼 곳이 없습니다.
풀이 7
黃檗希運 황벽희운'更爲發揮傳心祕要'는 裴休가 기록한 『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T48, no. 2012A)의 일을 가리킨다. 그 첫머리가 '師謂休曰'이다.
五祖法演 오조법연'臨命終時禪'은 이 示徒語에만 보이고 『法演禪師語錄』에서는 같은 말을 찾지 못했다. 앞의 '到臘月三十日'(죽음의 때)과 같은 뜻으로 이어진다.
紫玉道通 자옥도통우적(于頔)이 자옥도통(紫玉道通)에게 물은 '흑풍취선표타라찰귀국(黑風吹船飄墮羅剎鬼國)' 화두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자옥도통(紫玉道通)」장에 있으며, 《법화경(法華經) 보문품(普門品)(관음경(觀音經))》의 경문을 그대로 화두로 삼은 등록(燈錄) 용례이다.
于頔우적(于頔)이 紫玉道通에게 물은 '黑風吹船飄墮羅剎鬼國' 화두 — 《景德傳燈錄》 권6 「紫玉道通」章에 있으며, 《法華經 普門品(觀音經)》의 경문을 그대로 화두로 삼은 등록(燈錄) 용례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以虗空爲量
책 경미한 오역 → 以A爲量은 'A를 척도로 삼다' 구문인데, 책 '허공의 한량을 가지고'는 爲量을 '한량'으로 풀어 구문을 놓쳤다. 자체역 '허공을 척도로 삼아'가 옳다.
15.5
한문所以從上古德大有道宗師,與利根上智奇特之士,如陸亘大夫、王敬常侍、裴相國、甘贄道人、陳操尚書、崔羣、李翱、杜鴻漸、龐老、李勃、于頔,本朝楊內翰大年、李附馬諸人,莫不探賾體究,八面玲瓏,有腳蹋實地處,而能作人所難作,行人所難行,爲內外護於大法海中,津濟帳㨾,不虗出南閻浮提一遭。
번역그러므로 위로부터 옛 덕 높은 이들 가운데 도가 큰 종사(宗師)들과, 영리한 근기와 높은 지혜를 지닌 기특한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육긍 대부(陸亘大夫)·왕경 상시(王敬常侍)·배 상국·감지 도인(甘贄道人)·진조 상서(陳操尚書)·최군(崔群)·이고(李翱)·두홍점(杜鴻漸)·방 거사·이발(李渤)·우적, 그리고 이 왕조의 양 내한 대년(楊大年)·이 부마(李駙馬) 같은 여러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두 깊은 이치를 더듬어 몸소 파고들어, 여덟 면이 영롱하고 발로 실다운 땅을 밟은 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남이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큰 법의 바다 가운데서 안팎으로 지켜 주는 이가 되어, 나루에서 건네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남염부제(南閻浮提)에 한 번 나온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古人既爾,今豈只守尋常,不以自己死生大事及洪持道妙爲至要,放令諸塵緣境牽惹纏縛,名言句數籠羅無出格之作,向上眼目大解脫機爲可惜。
옛사람이 이미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찌 다만 예사로움만 지키겠습니까? 자기의 나고 죽는 큰일과 도의 묘함을 크게 지니는 일을 지극한 요체로 삼지 않고, 온갖 티끌 인연과 경계에 끌리고 얽매이게 내버려 두며, 이름과 말과 구절의 수효에 그물처럼 갇혀 격(格)을 벗어나는 작용이 없게 하겠습니까? 향상의 안목과 큰 해탈의 기틀이 아깝습니다.
大丈夫漢已能打破面皮參請,應須通身是眼,照破幻緣,金剛寶劒截斷愛網,
대장부라면 이미 낯가죽을 깨뜨리고 찾아와 물을 수 있습니다. 마땅히 온몸이 눈이 되어 허깨비 같은 인연을 비추어 깨뜨리고, 금강(金剛) 보검으로 애욕의 그물을 끊어야 합니다.
雖在士流現宰官身,筆頭上好作方便,指揮處好行祖令,使一切聞見皆知因果,俱識起倒,便是與古爲儔也。
비록 사대부의 무리에 있어 벼슬아치(宰官)의 몸을 나타내더라도, 붓끝에서 방편을 잘 지어내고, 지휘하는 자리에서 조사의 법령을 잘 행하십시오. 보고 듣는 모든 이가 다 인과(因果)를 알고, 함께 일어남과 넘어짐(起倒)을 알게 하십시오. 이것이 곧 옛사람과 짝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라야 비로소 굳은 관문(牢關)에 이릅니다. 요긴한 나루를 틀어막아, 범부도 성인도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咄!不可只管落草開眼作夢,也須向頂𩕳上施展始得。
돌(咄)! 다만 풀숲에 떨어져 눈을 뜨고 꿈만 꾸어서는 안 됩니다. 모름지기 정수리 위에서 펼쳐 보여야 비로소 됩니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위로 옛 덕 높은 큰 도의 종사들이 있었습니다. 또 영리한 근기와 뛰어난 지혜를 지닌 기특한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육긍 대부·왕경 상시·배 상국·감지 도인·진조 상서·최군·이고·두홍점·방 거사·이발·우적, 그리고 우리 왕조의 양대년·이부마 같은 여러 사람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깊은 이치를 더듬어 몸소 궁구하였습니다. 여덟 면이 영롱하게 트이고, 발로 실지를 밟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고, 남이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였습니다. 안팎으로 큰 법의 바다 가운데서 불법을 지켜, 나루에서 사람을 건네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남염부제에 한 번 태어난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옛사람이 이미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찌 그저 예사로움만 지키겠습니까? 자기의 생사대사와 도의 묘함을 크게 지니는 것을 지극한 요체로 삼아야 합니다. 온갖 티끌의 반연과 경계에 이끌리고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이름과 말과 구절의 수효에 그물처럼 갇혀, 격식을 벗어난 작용이 없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하여 향상의 안목과 큰 해탈의 기틀을 애석하게 썩혀서야 되겠습니까? 대장부라면 이미 낯가죽을 깨뜨리고 나아가 참문하여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온몸이 눈이 되어, 허깨비 같은 인연을 비추어 깨뜨리십시오. 금강의 보검으로 애욕의 그물을 끊어 버리십시오. 비록 사대부의 무리에 있으면서 벼슬아치의 몸을 드러내더라도, 붓끝에서 방편을 잘 지어내십시오. 또 사람을 지휘하는 자리에서 조사의 법령을 잘 행하십시오. 그리하여 보고 듣는 이들 모두가 인과를 알고, 일어나고 넘어짐을 함께 알게 하십시오. 이것이 곧 옛사람과 짝이 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이릅니다. 그것으로 요긴한 나루를 틀어막아, 범부도 성인도 지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돌! 그저 풀숲에 떨어져, 눈을 뜬 채 꿈꾸듯 해서는 안 됩니다. 모름지기 정수리 위를 향하여 활짝 펼쳐 보여야 비로소 됩니다.
풀이 7
末後一句 말후일구편 끝에 洛浦元安의 示衆語 '末後一句始到牢關,把斷要津不通凡聖'(『景德傳燈錄』 권16; 『聯燈會要』 권23)을 들어 맺는다.
南閻浮提 남염부제'爲內外護於大法海中…不虗出南閻浮提一遭'—앞에 든 陸亘·裴休·龐蘊·楊大年 등이 法의 外護가 되어 세상에 헛되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
巖頭全豁 암두전활〔병렬용례〕 '末後句…把斷要津,不通凡聖'의 牢關 소식 — 巖頭全豁에서 나온 末後句가 《碧巖錄》·《圜悟語錄》에 거듭 등장하여 본편의 결어와 직접 상응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不可只管落草開眼作夢
양립가능한 이독. 자체역은 '落草'를 '풀숲에 떨어짐'으로 직역해 은유를 살렸고, 책은 선문 상용 함의를 좇아 '수준을 낮춘 방편에 머묾'으로 풀었다. 落草는 글자 그대로 '풀에 떨어지다'라는 뜻과 '제이의(第二義)로 낮추어 접인하다'라는 선가 관용의 뜻을 함께 지녀, 뒤의 '向頂䫏上施展'(향상)과의 대비를 고려해도 두 함의가 모두 성립한다.
교감 · 李勃'李勃' — 저본(X69n1357 p0481c05)은 '李勃'이다. 歸宗智常에게 須彌納芥子를 물은 江州刺史는 李渤이니(『景德傳燈錄』 권7, T51n2076 p0256b09) '이발(李渤)'로 옮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41
  1. 一劄 일차

    침으로 한 번 찌르는 것을 이른다. 흔히 '불소일차(不消一劄)'라 하여 '한 번 찌를 것도 없다', 곧 따로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음을 나타낸다.

  2.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3. 得坐披衣 득좌피의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다는 말로, 깨달음에 들어 제 자리를 얻었음을 이른다. 앙산(仰山)이 한 스님에게 '자리를 얻어 옷을 입었으니 이제부터 스스로 살펴라(向後自看)'고 한 말로 널리 쓰였다.

  4. 臨際坐斷報化佛頭 임제좌단보화불두

    임제의현(臨濟義玄). 보화(報化)는 보신불(報身佛)·화신불(化身佛)이다. 《임제록(臨濟錄)》의 '보화비진불(報化非真佛)(보신·화신은 참 부처가 아니다)'을 압축한 표현으로, 방편불을 앉은 채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여기 '임제(臨際)'는 임제(臨濟)의 오자 내지 통용자이다.

  5. 德山無事於心 덕산무사어심

    덕산선감(德山宣鑑). 마음에 일 없음(無事)을 종지로 삼아 허이령(虗而靈)(비어서 신령함)·적이조(寂而照)(고요하면서 비춤)의 경지를 보였다.

  6. 黃檗希運 황벽희운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스승이며, 배휴(裴休)가 그의 법문을 모아 『전심법요』를 엮었다.

  7.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8. 裴相國見黃檗 배상국견황벽

    당나라 재상 배휴가 황벽 희운 스님을 찾아뵌 일이다. 배휴는 황벽의 말끝에 깨달은 바가 있었고, 황벽의 가르침을 기록해 전심법요와 완릉록으로 남겼다.

  9. 龐居士 방거사

    당나라의 재가 거사 방온(龐蘊, ?~808)이다. 형양(衡陽) 사람으로, 석두(石頭)에게 먼저 묻고 마조(馬祖)에게서 깨달아 그 법을 이었다. 아내와 딸 영조(靈照)까지 온 집안이 도를 닦은 이야기로 이름났다.

  10. 于頔襄陽參紫玉 우적양양참자옥

    우적(于頔)(?~818). 당(唐)의 절도사·재상급 사류(士流)이다. 양양(襄陽)에서 자옥도통(紫玉道通)을 참문하여 한 번 부름(一喚)에 고개를 돌리고, '흑풍취선표타라찰귀국(黑風吹船飄墮羅剎鬼國)(검은 바람이 배를 날려 나찰귀국에 떨어짐)' 문답으로 환히(渙然) 풀렸다.

  11. 南閻浮提 남염부제

    수미산(須彌山)을 둘러싼 네 큰 땅 가운데 남쪽 땅으로,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을 이른다. 줄여서 염부제라고도 하고, 남섬부주라고도 한다.

  12. 末後一句 말후일구

    맨 마지막 한마디, 곧 말후구(末後句)다. 암두(巖頭)가 ‘덕산(德山) 노인도 말후구는 모른다’고 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말과 분별이 다 끊어진 끝자리의 소식을 가리킨다.

  13. 咄 돌

    돌이다. 상대를 꾸짖어 미망을 깨는 할(喝) 소리이다.

  14.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15.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16.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17. 德山棒·臨濟喝 덕산방·임제할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와 임제(臨濟) 스님의 고함이다. 덕산은 묻는 이를 몽둥이로 쳤고, 임제는 벼락같은 ‘할’로 맞았다. 말과 헤아림을 단번에 끊는 선문의 매서운 가르침을 이른다.

  18. 正令 정령

    본분(本分)의 바른 명령이라는 뜻이다. 선사가 말이나 이치로 달래지 않고 근본을 곧바로 들이밀어 알음알이를 끊는 엄한 가르침이다. ‘정령당행(正令當行)’이라 흔히 쓴다.

  19. 德山棒 덕산방

    덕산(德山)의 방망이다. 덕산선감은 묻는 이에게 '말해도 서른 방, 말 못 해도 서른 방'이라며 몽둥이로 다그쳤다. 임제(臨濟)의 할과 짝지어, 말과 알음알이를 단번에 끊는 솜씨를 대표한다.

  20. 靈山拈花 영산염화

    영산(靈山)의 법회에서 석가모니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모두 말이 없는데 가섭(迦葉)만 빙그레 웃었다는 이야기다. 부처는 이에 바른 법의 눈, 곧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한다.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으로 법을 전한 일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21. 陳操尚書 진조상서

    진조(陳操)이다. 당나라 때 목주(睦州) 자사를 지낸 관인으로, 상서(尚書)라 불렸다. 목주 스님 진존숙의 법을 이은 재가 제자로, 찾아오는 승려마다 날카롭게 시험했다. 운문(雲門)과 나눈 문답, 자복과의 '원상' 문답이 전한다.

  22.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23. 王敬常侍 왕경상시

    왕경초 상시(王敬初常侍)이다. 상시는 벼슬 이름이다. 당나라 양주(襄州)의 관리로, 위산(溈山)의 법을 이은 재가 제자이다.

  24. 李翱 이고

    당나라 문인 이고(李翱)이며, 습지(習之)는 그의 자(字)이다. 한유(韓愈)의 문인으로 이름난 문장가였다. 낭주자사로 있을 때 약산(藥山)에게 도를 물었다. '구름은 하늘에, 물은 병에'라는 답을 듣고 게송을 지어 바쳤다.

  25. 靈山拈花·迦葉乃笑 영산염화·가섭내소

    세존(世尊)이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자 대가섭(大迦葉)만이 미소하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받았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기원담으로 《무문관(無門關)》 제6칙,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실린다. 여기 가섭(迦葉)은 원오의 스승 오조법연(五祖法演)이 아니라 부처의 상수(上首) 제자 마하가섭이다.

  26. 雲門覿體全真 운문적체전진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 적체전진(覿體全真)은 대상을 마주한 그 자리가 그대로 온전한 참이라는 운문 종풍이다.

  27. 趙州道我見百千箇漢子·覓箇無心道人難得 조주도아견백천개한자·멱개무심도인난득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의 말이다. 부처 되기를 구하는 이는 많되 무심도인(無心道人) 만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28. 紫玉道通 자옥도통

    자옥도통(紫玉道通)(731~813). 마조도일(馬祖道一) 문하이다. '흑풍표선타라찰국(黑風飄船墮羅剎國)'은 《관음경(觀音經)(법화경(法華經) 보문품(普門品))》의 구절을 화두로 삼은 것이다.

  29. 單提獨證 단제독증

    홑으로 들어 홀로 증득함이다. 방편·차제를 거치지 않고 향상기(向上機)와 곧바로 계합하는 최상승 방식이다.

  30. 三乘五性 삼승오성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의 삼승(三乘)과 법상종(法相宗)의 오종성(五種姓)이다. 교가(敎家)가 세운 방편적 계제(階梯)로, 원오는 이를 둔치(鈍置)라 폄한다.

  31. 相似般若 상사반야

    사이비 반야(般若)이다. 조금이라도 소득(所得)이 있으면 참 반야가 아니라 흡사할 뿐이라는 경계어이다.

  32. 五祖老師·臨命終時禪 오조노사·임명종시선

    오조법연(五祖法演)(?~1104). 기주(蘄州) 오조산(五祖山)에 주석한 원오 극근(克勤)의 스승이다. 사공(師公)은 백운수단(白雲守端), 사조(師祖)는 양기방회(楊岐方會)이다. '임명종시선(臨命終時禪)'은 죽음의 순간에도 통하는 참선을 참구하라는 법연의 상투적 가르침이다.

  33. 陸亘大夫 육긍대부

    육긍(陸亘)(764~834).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재가 외호이다. 병 속의 거위(甁中養鵝) 문답으로 유명한 사대부(士大夫)이다.

  34. 甘贄道人 감지도인

    감지행자(甘贄行者). 남전보원(南泉普願) 문하의 재가 수행자(도인(道人)=행자(行者))이다.

  35. 崔羣 최군

    최군(崔羣)(772~832). 당(唐) 재상이다. 선을 궁구한 사대부의 하나로 열거된다.

  36. 杜鴻漸 두홍점

    두홍점(杜鴻漸)(709~769). 당(唐) 재상이다. 보당사(保唐寺) 무주(無住) 선사를 참례한 것이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에 보인다.

  37. 李勃·李渤 이발·이발

    이발(李渤)(773~831). 강주자사(江州刺史)이다. 귀종지상(歸宗智常)에게 '수미납개자(須彌納芥子)(수미산이 겨자씨에 든다)'를 물은 인물이다. 저본의 '발(勃)'은 '발(渤)'이다.

  38. 楊內翰大年 양내한대년

    양억(楊億)(974~1020). 자(字)는 대년(大年), 내한(內翰)(한림학사)이다. 광혜원연(廣慧元璉) 문하의 재가 사류(士流)로 임제종 법맥을 이었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교정(校正)하였다.

  39. 李附馬·李駙馬 이부마·이부마

    이준욱(李遵勗)(988~1038). 부마도위(駙馬都尉)이다. 곡은온총(谷隱蘊聰) 문하로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을 편찬하였다. 저본의 '부마(附馬)'는 '부마(駙馬)'이다.

  40. 末後一句·把斷要津·不通凡聖 말후일구·파단요진·불통범성

    암두전활(巖頭全豁)가 주창한 말후구(末後句)이다.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뇌관(牢關)(견고한 관문)에 이르러 요긴한 나루(要津)를 틀어막아 범(凡)·성(聖) 모두 통하지 못하게 한다는 구경(究竟)의 소식이다.

  41. 趙州道我見百千箇漢子 조주도아견백천개한자

    趙州從諗(778~897)의 말이다. 부처 되기를 구하는 이는 많되 無心道人 만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문단 5국역본 대조 5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