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용어 · 인물
百丈懷海
백장회해
세수가 갈린다 — 『宋高僧傳』 · 『景德傳燈錄』 95세(720~814) / 陳詡 〈百丈懷海禪師塔銘〉 66세(749~814)
풀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
학술 풀이
百丈懷海(720~814; DILA A001897). 福州 長樂 王氏. 馬祖道一의 法嗣. 洪州 新吳 大雄山(百丈山)에 禪院을 열고 淸規를 정했다. 『景德傳燈錄』 권6 '元和九年正月十七日歸寂。壽九十五'에 따라 720년생으로 본다. 長慶 원년 大智禪師라 勅諡하였다. 馬祖의 一喝에 사흘 귀먹은 '百丈再參'과 野鴨子 문답(『碧巖錄』 제53칙)이 유명하다. 法嗣에 黃檗希運·溈山靈祐. 開田說大義의 '百丈'은 『景德傳燈錄』 권9가 百丈惟政(涅槃和尚)의 일로 싣는다.
실린 곳
원오심요 5편
백운수단 어록 2편
백운수단 광록 4편
오조법연 어록 1편
관련 항목
- 馬祖道一 마조도일인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 黃檗希運 황벽희운인물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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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영우(溈山靈祐, 771~853)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위산에 머물며 제자 앙산(仰山)과 함께 위앙종을…
- 百丈惟政 백장유정인물
백장유정(百丈惟政)은 당나라 선승으로, 홍주(洪州) 백장산에 머물렀다. 『열반경』을 잘 강해서 '열반 화상'이라 불렸다. 대중에게 밭을 일구게 한 뒤 큰 뜻을…
- 開田說大義 개전설대의공안
백장산의 스님이 대중에게 '나를 위해 밭을 일구면 큰 뜻을 일러 주겠다' 했다. 밭일을 마친 대중이 큰 뜻을 청하자, 스님은 말없이 두 손을 펴 보였다.…
바깥 참고
- DILA 인명 규범 A001897 — 생몰 · 다른 설 · 출전
이 글을 가리키는 글
- 開田說大義 개전설대의
- 根塵 근진 —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여섯 경계를 함께 이른다. 눈·귀·코·혀·몸·뜻과, 그것이 만나는 빛깔·소리·냄새·맛·닿음·생각의 대상이다. 백장(百丈)의 '근진을 멀리 벗어났다'는 말이 유명하다.
- 大機大用 대기대용 — 큰 기틀과 큰 작용이다. 깨달은 이의 근본 힘과, 그 힘이 걸림 없이 쓰이는 것을 함께 이른다. 황벽(黃檗)이 스승 백장(百丈)의 이야기를 듣고 '마조(馬祖)의 대기대용을 보았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 馬師一喝·三日耳聾 마사일할·삼일이롱 — 백장(百丈)이 마조(馬祖)를 다시 참했을 때 마조(馬祖)의 일할(一喝)로 사흘간 귀먹은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일화이다. 황벽(黃檗)이 백장(百丈)에게서 이를 듣고 토설(吐舌)하였다. 출전은 마조(馬祖)·백장어록(百丈語錄), 벽암록(碧巖錄)이다.
- 馬祖道一 마조도일 —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 方丈 방장 — 절의 주지(住持)가 머무는 방이다. 백장(百丈)의 선원 규식에는 '교화하는 주인이 되면 방장에 머무니, 유마거사(淨名)의 방과 같아 사사로이 자는 방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 普請 보청
- 典座 전좌 — 선원에서 대중의 공양, 곧 죽과 밥을 짓고 차리는 일을 맡은 소임이다. 대중의 공양이 넉넉하고 알맞도록 마음을 쓰되 절 살림을 헛되이 쓰지 않아야 한다. 위산(潙山)이 백장(百丈) 문하에서 전좌를 지낸 일처럼 옛 선사들도 이 소임을 맡았다.
- 黃檗希運 황벽희운 —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스승이며, 배휴(裴休)가 그의 법문을 모아 『전심법요』를 엮었다.
- 溈山靈祐 위산영우 — 위산영우(溈山靈祐, 771~853)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위산에 머물며 제자 앙산(仰山)과 함께 위앙종을 열었다. 시호는 대원(大圓) 선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