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5편

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示隆知藏 住蘇州虎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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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한문示隆知藏 住蘇州虎丘
번역융지장(隆知藏)에게 주는 글 — 소주 호구에 머물 때
쉽게 읽기융지장에게 주는 글 — 소주 호구에 머물 때
5.2
한문有祖以來,唯務單傳直指,不喜帶水拖泥,打露布,列窠窟,鈍置人。蓋釋迦老子三百餘會,對機設教,立世垂範,大段周遮,是故最後省要接最上機。
번역조사(祖師)가 있은 뒤로, 오직 홑으로 전하고 곧바로 가리키는 일(單傳直指)에만 힘썼다. 물 묻히고 진흙 끌듯 질질 끌며(帶水拖泥), 알림 글(露布)을 내걸고 둥지와 굴(窠窟)을 벌여 놓아, 사람을 우둔하게 붙들어 두는 것(鈍置)은 좋아하지 않았다. 석가 노인(釋迦老子)은 삼백여 회의 법회에서 근기에 맞추어 가르침을 베푸시고, 세상에 법도를 세워 본보기를 드리우셨다. 그 방편이 크게 두루 넓었다(周遮). 그래서 맨 마지막에는 요긴한 것만 추려(省要), 가장 뛰어난 근기(最上機)를 맞아 이끄셨다.
쉽게 읽기조사들이 이 땅에 온 뒤로, 선은 오직 한 가지에 힘썼다 —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그대로 전하는 일이다. 말을 물 끌고 진흙 묻히듯 질질 끄는 것, 긴 문서를 내걸고 복잡한 격식을 늘어놓아 사람을 붙들어 두는 것 — 그런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부처님도 평생 수많은 자리에서 사람마다 그릇에 맞추어 가르치고, 세상에 본보기를 세웠으니, 그 방편이 참으로 넓고 자상했다. 그러면서도 맨 마지막에는 핵심만 추려, 가장 뛰어난 사람을 곧장 이끌었다.
풀이 2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帶水拖泥…鈍置人
책의 오역·과의역이다. 帶水拖泥는 질질 끌며 지저분하게 함을 뜻하는 선문 관용어인데, 책은 '사람을 물에 띄우고'로 축자화해 목적어 '사람을'을 지어냈다. 또 鈍置人을 '늘어 놓는다면 바보짓이다'로 옮겨 鈍置의 주체와 뜻을 흐렸다. '사람을 우둔하게 붙들어 두는 것[鈍置]'이 원의에 부합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大段周遮'는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자체역 '방편이 크게 두루 넓었다'는 周遮의 '두루 미침(周=둘러쌈, 遮=덮음)' 뜻을, 책 '번거로운 말씀들'은 '장황함·수다스러움' 뜻을 취했다. 뒤의 省要(요체를 간추림)와 대비되는 문맥에서는 장황함 쪽이 다소 매끄러우나, 周遮가 두 뜻을 겸하므로 어느 쪽도 오류가 아니다. 각주로 병기한다.
5.3
한문雖自迦葉二十八世,少示機關,多顯理致,至於付授之際,靡不直面提持,
번역가섭(迦葉)으로부터 스물여덟 대까지는, 솜씨(機關)를 보인 일은 적고 이치를 드러낸 일이 많았다. 그러나 법을 넘겨줄 때에 이르러서는, 얼굴을 맞대고 곧바로 들어 보이지(直面提持) 않은 적이 없었다.
如倒剎竿,盋水投針,示圓相,執赤幡,把明鑑說,如鐵橛子傳法偈。達磨六宗與外道立義,天下太平,翻轉我天爾狗,皆神機迅捷,非擬議思量所測。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찰간(剎竿)을 넘어뜨린 일, 발우 물에 바늘을 던진 일, 둥근 모양(圓相)을 보인 일, 붉은 깃발(赤幡)을 잡은 일, 맑은 거울(明鑑)을 든 일, ‘무쇠 말뚝(鐵橛子) 같다’고 설한 일, 전법게(傳法偈)로 달마(達磨)가 육종(六宗)·외도(外道)와 맞서 뜻을 세워 천하가 태평해진 일, ‘나는 하늘, 너는 개(我天爾狗)’로 뒤집어 버린 일이다. 모두 신령한 기틀(神機)이 날래고 빨라서, 머뭇거리며 헤아려서는(擬議思量) 잴 수 없는 것이었다.
쉽게 읽기가섭에서 스물여덟 대에 이르도록, 눈에 보이는 솜씨를 부린 일은 드물고 이치를 말로 드러낸 일이 많았다. 그러나 법을 물려줄 때만은 언제나 얼굴을 마주하고 곧바로 건네주었다. 이를테면 세워 둔 깃대를 넘어뜨리게 한 일, 물그릇에 바늘을 던진 일, 허공에 둥근 원을 그려 보인 일, 붉은 깃발을 든 일, 맑은 거울을 들어 보인 일, “무쇠 말뚝 같다”고 한마디로 못 박은 일, 달마가 게송 한 편으로 여섯 학파와 외도를 눌러 천하를 잠재운 일이 다 그렇다. 하나같이 번개처럼 빨라서, 머리로 이리저리 따져서는 도무지 잴 수 없는 솜씨였다.
풀이 3
示圓相 시원상'如倒剎竿,盋水投針,示圓相,執赤幡'은 西天 祖師들이 법을 전할 때 쓴 機關을 늘어놓은 것이다. 示圓相은 龍樹가 자리 위에서 둥근 달 모양(滿月輪)을 나타낸 일(『景德傳燈錄』 권1, T51n2076_p0210b07)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추정).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說如鐵橛子。傳法偈。達磨六宗…'은 양립 가능한 구문 분절이다. 傳法偈를 뒤에 붙여 '전법게로 달마가 육종을 대하고'로 끊거나, 책처럼 앞에 붙여 '무쇠 말뚝처럼 전법게를 설하였다'로 끊고 達磨六宗을 별개 문장으로 볼 수 있다. 傳法偈가 直面提持의 독립 예목(倒剎竿·盞水投針·示圓相·執赤幡·把明鑑와 나란한 항목)일 개연성이 높으나, 두 분절 모두 문법상 성립하고 구두점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각주로 남긴다.
5.4
한문洎到梁游魏,尤復顯言,教外別行,單傳心印,六代傳衣,所指顯著。
번역양나라에 이르고 위나라에 노닐 때에 이르러서는, 더욱 드러내 말했다.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하니(敎外別行), 마음 도장(心印)을 홑으로 전한다.” 여섯 대에 걸쳐 가사를 전하니(六代傳衣), 가리키는 바가 뚜렷했다.
逮曹谿大鑒詳示,說通宗通,歷涉既久,具正眼大解脫宗匠,變格通塗,俾臣滯名相,不墮理性言說,放出活卓卓地,脫灑自由妙機,
조계(曹谿) 대감(大鑒)에 이르러서는, 말로 통함과 종지로 통함(說通宗通)을 자세히 보였다. 세월이 오래 흐르자, 바른 눈(正眼)과 큰 해탈을 갖춘 종장(宗匠)들이 격식을 바꾸고 길을 텄다. 사람들이 이름과 모양(名相)에 걸리지 않고, 이치와 성품(理性)이나 말에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살아 펄떡이고(活卓卓地) 시원스레 자유로운 묘한 기틀(妙機)을 놓아 보였다.
遂見行棒行喝,以言遣言,以機奪機,以毒攻毒,以用破用。
마침내 몽둥이를 쓰고 할을 하는 일(行棒行喝)이 나타났다. 말로 말을 보내고, 기틀로 기틀을 빼앗고, 독으로 독을 치고, 작용으로 작용을 깨뜨리는 것이다.
쉽게 읽기달마가 양나라를 거쳐 위나라로 건너가서는, 교외별전, 곧 “가르침의 글 밖에서 따로 전하는 길이 있다”는 것과, 마음의 도장을 곧바로 하나로 전한다는 것을 더 또렷이 드러내 말했다. 그래서 여섯 대에 걸쳐 물려준 가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환히 드러났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말로 통하는 길과 근본으로 통하는 길을 낱낱이 보여 주었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바른 눈을 갖춘 큰 스승들이 격식을 바꾸고 길을 새로 열었다. 사람들이 이름과 겉모양에 걸리지 않고, 그럴듯한 이치와 말에 빠지지 않도록, 살아 펄떡이는 자리와 걸림 없이 자유로운 솜씨를 끌어냈다. 그리하여 몽둥이로 후려치고 고함을 치며, 말로 말을 물리치고, 솜씨로 솜씨를 빼앗고, 독으로 독을 다스리고, 작용으로 작용을 깨뜨리는 방법이 나왔다.
풀이 3
行棒行喝 행방행할'行棒行喝,以言遣言,以機奪機,以毒攻毒,以用破用' — 언어·機를 그것으로 다시 깨뜨리는 唐宋 선문의 逆說的 接化法을 열거한 것.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도 실려 있다.
교감 · 俾臣滯名相'俾臣滯名相' — 저본(X69n1357)은 '俾臣滯名相'이다.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圜悟佛果禪師語錄』은 '俾不滯名相'이고, 앞뒤 뜻(명상에 걸리지 않게 함)도 不이라야 통한다. → 臣은 不의 잘못으로 보고 '명상(名相)에 걸리지 않게'로 옮긴다.
5.5
한문所以流傳七百餘年,枝分派列,各擅家風,浩浩轟轟,莫知紀極。
번역그래서 칠백여 년을 흘러 전해 오며, 가지가 나뉘고 갈래가 벌어졌다. 저마다 가풍(家風)을 떨치니, 넓고 우렁차서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鞠其歸著,無出直指人心,心地既明,無絲毫隔礙,去勝負、彼我、是非、知見、解會,透到大休大歇安穩之場,
그 돌아가 닿는 곳을 캐 보면,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것(直指人心)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자리(心地)가 밝아지면 실오라기만 한 막힘도 없다. 이기고 짐, 너와 나, 옳고 그름, 앎과 견해(知見), 알음알이(解會)를 떠나, 크게 쉬고 크게 그친(大休大歇) 편안한 자리에 사무쳐 이른다.
豈有二致哉?所謂百川異流,同歸于海。
어찌 두 갈래 이치가 있겠는가. 이른바 ‘온갖 냇물이 흐름은 달라도, 다 같이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쉽게 읽기이렇게 칠백 년 넘게 이어지며 가지가 갈리고 갈래가 벌어져, 저마다 집안의 가풍을 떨쳤다. 그 기세가 넓고 우렁차 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돌아가는 곳을 따져 보면, 모두 직지인심, 곧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한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자리가 이미 밝아 실오라기만 한 걸림도 없고, 이기고 짐·너와 나·옳고 그름·이러쿵저러쿵하는 알음알이를 다 놓아, 크게 쉬고 크게 그친 편안한 자리에 사무쳐 이르는 것이다. 어찌 길이 둘이겠는가. 온갖 냇물이 저마다 다르게 흘러도 결국 한 바다로 모이는 것과 같다.
5.6
한문要須是箇向上根器,具高識遠見,有紹隆佛祖志氣,然後能深入閫奧,徹底信得及,直下把得住,始可印證,堪爲種草。捨此切宜寶祕慎詞,勿容易放行也。
번역모름지기 위로 뚫고 오르는 근기(向上根器)라야 한다. 높은 식견과 먼 안목을 갖추고, 부처와 조사를 이어 일으킬 뜻과 기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깊은 안방(閫奧)까지 들어가, 밑바닥까지 믿음이 미치고(信得及),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붙들어 쥘(把得住)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인가(印證)할 만하고, 씨앗(種草)이 될 만하다. 이런 사람이 아니면, 부디 보배처럼 감추고 말을 삼가서, 가벼이 놓아 주지(放行) 말아야 한다.
쉽게 읽기다만 이 일은 반드시 그릇이 뛰어난 사람이라야 한다. 높은 안목과 먼 식견을 갖추고, 부처와 조사의 가르침을 이어 크게 일으키겠다는 뜻과 기개를 지녀야 한다. 그런 뒤라야 이 깊은 안방까지 들어가 밑바닥까지 믿음이 사무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붙들어 지녀, 비로소 인가를 받고 법을 이을 재목이 된다.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 이 일은 깊이 아껴 감추고 말을 삼가, 함부로 내보이지 말아야 한다.
풀이 3
紹隆佛祖 소륭불조'有紹隆佛祖志氣'는 글을 받는 紹隆의 이름을 걸어 쓴 말로 보인다(추정).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堪爲種草
책의 과의역(경미)이다. 種草(법을 이을 씨앗·법기)를 책은 '본분의 가풍을 감당할 만하리라'로 풀어 씨앗·싹의 은유를 지웠다. '씨앗(種草)이 될 만하다'가 축자·원의에 더 충실하다. 뜻은 상통하므로 경미하다.
5.7
한문五祖老人平生孤峻,少許可人,乾嚗嚗地壁立,只靠此一著。
번역오조(五祖) 노스님은 평생 홀로 높고 가팔라(孤峻), 사람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바싹 마른 채(乾嚗嚗地) 벽처럼 우뚝 서서, 오직 이 한 수(一著)에만 기댔다.
常自云:如倚一座須彌山,豈可落虗弄滑頭謾人?
늘 스스로 말했다. “수미산(須彌山) 하나에 기댄 것 같다.” 그러니 어찌 헛된 데로 떨어져 잔꾀(滑頭)를 부리며 사람을 속이겠는가.
把箇沒滋味鐵酸𨃰,劈頭拈與學者令咬嚼。須到渠桶底子脫,喪卻如許惡知惡見,胷次不掛絲毫,透得淨盡,始可下手煅煉,方禁得拳踢。然後示以金剛王寶劒,
아무 맛도 없는 무쇠 만두(鐵酸餡)를 집어, 다짜고짜 학인에게 주어 씹게 한다. 반드시 그의 통 밑바닥이 쑥 빠져야(桶底子脫) 한다. 그 많은 그릇된 앎과 그릇된 견해를 잃어버리고, 가슴속에 실오라기 하나 걸리지 않아, 말끔히 뚫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손을 대어 달구고 단련할 수 있고, 주먹질 발길질(拳踢)도 견뎌 낸다. 그런 뒤에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을 보인다.
쉽게 읽기나의 스승 오조 법연 스님은 평생 홀로 엄격해서, 사람을 인정해 주는 일이 드물었다. 메마를 만큼 담박하게 벽처럼 우뚝 서서, 오직 이 한 가지에만 기댔다. 늘 스스로 “커다란 산 하나에 기댄 것 같다”고 했으니, 어찌 헛된 말재간을 부려 사람을 속이겠는가. 스승은 아무 맛도 없는 무쇠 만두 같은 화두를 배우는 이의 머리 위로 대뜸 던져 주고 씹게 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밑바닥이 통째로 쑥 빠지듯, 온갖 잘못된 앎과 삿된 견해가 가슴에 실오라기만큼도 남지 않고 말끔히 사라진 뒤라야, 비로소 손을 대어 단련하고, 주먹질 발길질 같은 매서운 담금질도 견디게 했다. 그런 다음에야 가장 날카로운 칼, 금강왕보검을 내보였다.
5.8
한문度其果能履踐負荷,淨然無一事,山是山,水是水,更應轉向那邊千聖籠羅不住處,便契迺祖以來所證傳持正法眼藏。
번역그가 과연 밟아 행하고 짊어질 수 있는지 헤아려 본다. 말끔하여 한 가지 일도 없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되었다면, 다시 저쪽, 천 성인(千聖)도 그물로 가두어 두지 못하는 곳으로 몸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곧 옛 조사 이래로 증득하여 전해 지녀 온 정법안장(正法眼藏)에 들어맞는다.
及至應用爲物,仍當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證驗得十成無滲漏,卽是本分道流也。
남을 위해 응하여 쓸 때(應用爲物)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아야 한다. 그렇게 증험하여 열에 열 온전히 새는 데가 없으면(十成無滲漏), 곧 본분의 수행자(本分道流)다.
摩竭陀國親行此令,少林面壁全提正宗,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서 몸소 이 명령(令)을 행하셨고, 소림(少林)에서는 벽을 마주하고 바른 종지(正宗)를 온전히 들어 보였다.
而時流錯認,遂向泯默,以爲無縫罅、無摸索,壁立萬仞。
그런데 요즘 무리는 이를 잘못 알고, 마침내 입 다물고 잠잠한 데(泯默)로 기운다. 그러고는 ‘틈도 없고 더듬어 찾을 데도 없어, 만 길 벽처럼 우뚝하다(壁立萬仞)’고 여긴다.
殊不知本分事恣情識摶量,便爲高見,此大病也。
본분의 일(本分事)은 전혀 모르고, 알음알이(情識)를 멋대로 부려 헤아린 것을 곧 높은 견해로 삼는다. 이것이 큰 병이다.
쉽게 읽기그 사람이 정말 그 길을 밟아 짊어질 수 있게 되어, 마음이 깨끗해 아무 일도 없고, 산은 그저 산이고 물은 그저 물이 되며, 다시 저 “천 명의 성인도 그물로 가두지 못하는 자리”로 넘어가면, 그제야 조사들이 대대로 깨달아 전해 온 부처의 바른 진리인 정법안장에 딱 들어맞는다. 그 힘을 중생을 위해 쓸 때에는,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듯 매섭게 하여, 조금도 새는 데 없이 완전하게 증명해 보인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제 본분을 사는 참된 수행자다. 부처는 마갈타국에서 몸소 이 법을 폈고, 달마는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한 채 바른 종지를 온전히 드러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걸 잘못 알고, 그저 입 다물고 잠잠한 쪽으로 기울어 “빈틈도 없고 더듬어 잡을 것도 없어 벽이 만 길처럼 우뚝하다”고 여긴다. 이는 본래 그 일을 알지 못한 채, 알음알이를 멋대로 부려 헤아리는 것을 도리어 높은 경지로 착각하는 것이니, 아주 큰 병이다.
풀이 4
山是山水是水 산시산수시수'淨然無一事, 山是山, 水是水'에 이르러도 '更應轉向那邊千聖籠羅不住處'라 하여, 이 경지를 끝자리로 삼지 말라 한다.
摩竭陀國親行此令·少林面壁全提正宗 마갈타국친행차령·소림면벽전제정종'摩竭陀國親行此令,少林面壁全提正宗,而時流錯認,遂向泯默'은 釋迦의 침묵과 達磨의 面壁을 말없이 온전히 드러낸 일(全提)로 짝지어 들고, 이를 泯默으로 잘못 아는 時流를 꾸짖는다. 같은 단락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도 있다(T47n1997_p0777b03). 心要의 다른 편에서도 '摩竭掩室,少林冷坐,毗耶杜詞'로 같은 짝을 든다(X69n1357_p0494b19).
5.9
한문從上來事,本無如是。巖頭云:只露目前些子箇。如擊石火、閃電光,若明不得,不用疑著。此是向上人行履處,除非知有,莫能知之。
번역위로부터 내려온 일(從上來事)은 본래 이렇지 않다. 암두(巖頭)가 말했다. “다만 눈앞의 요 조그만 것을 드러낼 뿐이다. 부싯돌 불꽃 같고 번갯불 같으니, 밝히지 못하거든 의심하지 말라.” 이것은 향상인(向上人)이 걸어가는 자리(行履處)다. ‘그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知有)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쉽게 읽기예로부터 내려온 이 일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암두 스님은 “그저 눈앞의 이 작은 것을 드러낼 뿐이니, 부싯돌 불꽃이나 번갯불처럼 순간이다. 그 자리에서 알아채지 못하겠거든, 아예 의심조차 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위로 뚫고 나아간 사람, 이른바 향상인이 실제로 사는 자리이니, 이미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풀이 3
巖頭全豁 암두전활『碧巖錄』 제40칙 評唱 '巖頭道。此是向上人活計。只露目前些子。如同電拂'(T48n2003_p0178b13). 여기서는 '如擊石火、閃電光'으로 풀어 들었다.
知有 지유'此是向上人行履處,除非知有,莫能知之'는 石霜慶諸가 古侍者를 보내며 한 말 '除非知有,莫能知之'를 이은 것이다. 이 단락(巖頭云…)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도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
5.10
한문趙州喫茶去,祕魔擎杈,雪峰輥毬,禾山打鼓,俱胝一指,歸宗拽石,玄沙未徹,德山棒,臨際喝,並是透頂透底,直截剪斷葛藤,大機大用,千差萬別,會歸一源,
번역조주(趙州)의 ‘차 마시고 가라(喫茶去)’, 비마(祕魔)의 갈래 작대기 치켜들기, 설봉(雪峰)의 공 굴리기, 화산(禾山)의 북 치기, 구지(俱胝)의 손가락 하나, 귀종(歸宗)의 돌 끌기, 현사(玄沙)의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 덕산(德山)의 몽둥이, 임제(臨濟)의 할 — 이것들은 모두 정수리부터 밑바닥까지 꿰뚫어, 칡덩굴(葛藤)을 곧바로 잘라 버린 것이다. 큰 기틀과 큰 작용(大機大用)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달라도, 한 근원으로 모여 돌아간다.
可以與人解黏去縛。若隨語作解,卽須與本分草料。
이것으로 남의 끈끈한 것을 떼어 주고 묶인 것을 풀어 줄(解黏去縛) 수 있다. 만약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짓거든, 곧 본분의 여물(本分草料)을 주어야 한다.
譬如十斛驢乳,只以一滴師子乳滴之,悉皆迸散。
비유하면, 열 섬의 나귀 젖에 사자 젖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모두 흩어져 튀어 버리는 것과 같다.
쉽게 읽기조주 스님이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한 것, 비마 스님이 가지 진 작대기를 치켜든 것, 설봉 스님이 공을 굴린 것, 화산 스님이 북을 친 것, 구지 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세운 것, 귀종 스님이 돌을 끌게 한 것, 현사 스님이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고 한 것, 덕산 스님의 몽둥이, 임제 스님의 고함 — 이 모두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단번에 꿰뚫어, 얽히고설킨 말과 분별을 곧바로 끊어 낸 것이다. 큰 솜씨와 큰 작용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달라 보여도, 결국 한 근원으로 모인다. 이것으로 사람의 끈끈한 집착을 풀고 얽매임을 벗겨 준다. 만약 그 말만 붙잡고 머리로 풀이하려 들거든, 곧바로 매운 처방을 내려 주어야 한다. 열 섬이나 되는 나귀 젖도, 사자 젖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죄다 흩어져 튀어 버리는 것과 같다.
풀이 2
德山棒·臨濟喝 덕산방·임제할'臨際'는 臨濟義玄의 이표기. 心要 다른 편(下/15 '臨際坐斷報化佛頭')에도 같은 표기가 보인다(『圜悟語錄』 권14의 같은 대목은 '臨濟').
교감 · 十斛'十斛' — 저본은 '十斛', 『圜悟佛果禪師語錄』의 같은 글은 '七斛'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 가를 근거가 없어 저본대로 둔다.
5.11
한문要腳跟下傳持,相繼綿遠,直須不徇人情,勿使容易,乃端的也。
번역발밑(腳跟下)에서 전해 지녀 길이길이 이어지게 하려면, 반드시 인정(人情)에 끌리지 말고 쉽게 내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틀림없다(端的).
末後一句,始到牢關。誠哉是言,透脫死生,提持正印,全是此箇時節。惟是蹋著向上關捩子者,便諳悉耶。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라야 비로소 굳게 잠긴 관문(牢關)에 이른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삶과 죽음을 꿰뚫어 벗어나고 바른 도장(正印)을 들어 쥐는 것이, 모두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오직 위로 오르는 빗장(向上關捩子)을 밟아 본 사람이라야 곧 낱낱이 안다.
쉽게 읽기발꿈치 아래에서 이 법을 전해 지녀 대대로 오래 이어지게 하려거든, 반드시 인정에 끌리지 말고 함부로 건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확실하다. “맨 마지막 한마디라야 비로소 굳게 잠긴 관문을 넘는다”고 했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삶과 죽음을 꿰뚫고 벗어나 부처의 바른 도장을 이어 지니는 일이, 온전히 바로 이 대목에 달려 있다. 오직 저 위로 넘어가는 빗장을 제 발로 밟아 넘은 사람이라야, 이 모든 것을 낱낱이 훤히 알 것이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55
  1. 帶水拖泥·打露布·列窠窟·鈍置人 대수타니·타노포·열과굴·둔치인

    질질 끌고 장황한 문서를 내걸며 격식을 늘어놓아 사람을 우둔하게 붙듦—직지에 반하는 번쇄한 접법.

  2. 釋迦老子三百餘會 석가로자삼백여회

    석존이 일대시교(一代時敎)로 연 법회를 통칭. '삼백여회(三百餘會)'는 방편 다수를 이르는 상투적 개수 표현.

  3. 迦葉二十八世 가섭이십팔세

    마하가섭(摩訶迦葉)을 초조로 달마(達磨)에 이르는 서천(西天) 28조. 인도 조사는 기관(機關)보다 이치(理致)를 많이 보였다는 취지.

  4. 倒卻門前剎竿 도각문전찰간

    아난(阿難)이 가섭(迦葉)에게 '세존께서 금란가사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가섭이 '아난아!' 하고 불렀다. 아난이 '예' 하고 대답하자 가섭은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라고 했다. 찰간은 절 앞에 세워 설법이 있음을 알리던 깃대다. 가섭이 아난에게 법을 전한 기연으로 꼽히는 공안이다.

  5. 益水投針 익수투침

    용수(龍樹)가 물 담은 발우를 보이자 가나제바(迦那提婆)가 바늘을 던져 뜻이 계합한 14→15조 부법 고사(景德傳燈錄).

  6. 示圓相 시원상

    둥근 원(원상)을 그려 보이거나 나타내 보여 법을 드러내는 방편이다. 용수 존자가 자리 위에 둥근 달 같은 모습을 나타내자 가나제바가 그 뜻을 알아차렸다는 이야기(경덕전등록 권1)가 이름났고, 뒷날 위앙종이 원상을 즐겨 썼다.

  7. 執赤幡·把明鑑 집적번·파명감

    붉은 깃발을 잡고 밝은 거울을 듦—부법시 직면제지(直面提持)의 기관 예시(구체 조사 특정은 추정).

  8. 鐵橛子 철궐자

    무쇠 말뚝. 파고들 맛도 잡을 곳도 없는 화두(話頭)의 비유어.

  9. 達磨六宗 달마육종

    달마(達磨)가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 입멸 후 인도에서 육종(六宗)(외도 여섯 갈래)을 논파해 굴복시킨 고사(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달마장(達磨章)).

  10. 教外別行 교외별행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으로,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쓴다.

  11. 六代傳衣 육대전의

    달마(達磨)→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 6대에 전한 전법의(傳法衣)(가사(袈裟)).

  12. 說通宗通 설통종통

    능가경(楞伽經)의 '종통(宗通)·설통(說通)'(단경(壇經) '설통급심통(說通及心通)')에서 온 말. 혜능(慧能)이 종지와 언설 양면을 갖춰 보였음을 이름.

  13. 變格通途 변격통도

    낡은 격식을 바꾸고 새 길을 통하게 함—후대 종장(宗匠)들의 접화 방식.

  14. 行棒行喝·以言遣言·以機奪機·以毒攻毒·以用破用 행방행할·이언견언·이기탈기·이독공독·이용파용

    봉할(棒喝)을 비롯한 당송(唐宋) 선문의 역설적(逆說的) 접화법(接化法).

  15.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16.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17. 百川異流同歸于海 백천이류동귀우해

    갈래는 달라도 귀결은 하나라는 비유; 조론(肇論) 계열 이래의 상용 비유.

  18. 紹隆佛祖 소륭불조

    불조의 법을 이어 융성케 함. 수신인 소륭(紹隆)의 이름을 겹친 쌍관어.

  19. 沒滋味鐵酸餡 몰자미철산함

    '아무 맛 없는 무쇠 신 만두'. 붙잡을 의미가 없는 화두의 비유로 법연(法演)·원오가 즐겨 쓴 표현.

  20. 金剛王寶劍 금강왕보검

    금강처럼 단단한 왕의 보검이라는 말이다. 모든 알음알이와 망상을 한칼에 끊는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다. 임제(臨濟) 스님이 할(喝)의 네 가지 쓰임을 말하며 첫째로 들었다.

  21. 山是山水是水 산시산수시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다. 분별을 떠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를 이른다. 운문(雲門)의 법문에 나오며, 그저 아무 일 없다고 안주하는 구실로 잘못 쓰이기도 했다.

  22. 千聖籠羅不住處 천성농라불주처

    천 성인의 그물로도 가두지 못하는 향상의 자리.

  23. 正法眼藏 정법안장

    부처가 깨달은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또는 그 눈으로 본 법의 알맹이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꽃을 들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고, 이때 이 법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전한다. 선종에서는 조사에서 조사로 마음으로 이어 온 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

  24. 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장 아끼고 기대는 것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홀로 서게 하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를 이른다.

  25. 摩竭陀國親行此令·少林面壁全提正宗 마갈타국친행차령·소림면벽전제정종

    세존(世尊)이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서(掩室), 달마(達磨)가 소림(少林)에서 면벽(面壁)으로 말없이 정종(正宗)을 온전히 든 것을 대구로 듦. 조론(肇論) '세존엄실어마갈(世尊掩室於摩竭)' 어법을 이음.

  26. 泯默 민묵

    잠잠히 입만 다무는 병통; 원오가 비판한 묵조적 폐단을 겨냥한 말.

  27. 恣情識摶量 자정식단량

    정식(情識), 곧 알음알이를 멋대로 부려 헤아림. 이것을 곧 높은 견해(高見)로 여기는 것이 큰 병이라 함.

  28. 向上人 향상인

    향상(向上)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취나 부처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고, 그것마저 넘어선 이를 이른다.

  29. 祕魔擎杈 비마경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의 기연이다. 그는 늘 가장귀진 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하면 그것으로 목을 걸고 다그쳤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시켰느냐. 말해도 죽고 말 못 해도 죽는다. 어서 말하라.'

  30. 雪峰輥毬 설봉곤구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가 나무 공을 굴려 보인 일이다. 제자 현사(玄沙)가 ‘이제 큰 작용을 쓰겠다’고 하자, 설봉은 나무 공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려 냈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으로 받았다. 말 없이 몸짓으로 주고받은 큰 작용으로 일컬어진다.

  31. 禾山打鼓 화산타고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의 ‘북 칠 줄 안다’는 답이다. 한 스님이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묻자, 화산은 네 번 모두 ‘북 칠 줄 안다(解打鼓)’고만 답했다. 그래서 ‘화산의 네 번 북 치기’라고도 부른다.

  32.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33. 歸宗拽石 귀종예석

    귀종지상(歸宗智常)(마조(馬祖) 법제자)의 돌 끌기 접기로 추정; 구체 고사 특정은 미상.

  34. 解黏去縛 해점거박

    끈끈하게 들러붙은 것을 떼어 주고 묶인 것을 풀어 준다는 말이다. 스승이 학인의 집착과 얽매임을 풀어 주는 일을 이른다.

  35. 十斛驢乳·一滴師子乳 십곡여유·일적사자유

    나귀 젖 열 섬에 사자 젖 한 방울이면 다 흩어진다—열반경(涅槃經) 비유로, 진실한 한 마디의 위력.

  36. 向上關捩子 향상관열자

    향상의 빗장·기틀. 이를 밟아 얻은 자라야 낱낱이 안다는 결어.

  37.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38.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39.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40. 種草 종초

    씨앗이 될 풀이라는 뜻으로, 종문(宗門)의 법을 이어 퍼뜨릴 재목을 이른다. '우리 집안의 씨앗(吾家種草)'이라 하면 법을 바르게 이을 사람을 가리킨다.

  41.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42. 本分草料 본분초료

    제 몫에 꼭 맞는 꼴과 여물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상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참된 처방, 흔히 말에 매인 이에게 내리는 방망이나 꾸짖음을 이른다. 『벽암록』의 촌평에 자주 나온다.

  43. 知有 지유

    본래의 그 일, 곧 누구에게나 갖추어진 마음자리가 '있음'을 몸소 안다는 말이다. 남전(南泉)이 했다는 '모든 부처는 있음을 모르고, 고양이와 흰 소가 도리어 안다'는 말이 유명하다.

  44. 德山棒·臨濟喝 덕산방·임제할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와 임제(臨濟) 스님의 고함이다. 덕산은 묻는 이를 몽둥이로 쳤고, 임제는 벼락같은 ‘할’로 맞았다. 말과 헤아림을 단번에 끊는 선문의 매서운 가르침을 이른다.

  45. 隆知藏 융지장

    원오가 「시융지장」(원오심요)을 지어 준 승려로, 원오의 법을 이은 호구 소륭(1077–1136)으로 본다. 원오 문하에서 경장을 맡는 지장(장주) 소임을 보았고, 뒤에 소주 호구산에 머물렀다.

  46. 虎丘 호구

    소주(蘇州)(평강부(平江府)) 호구산(虎丘山). 소륭(紹隆)이 주석해 임제종 호구파(虎丘派)의 발상지가 된 곳.

  47. 我天爾狗 아천이구

    조사가 외도와 논의(論義)하며 상대 논리를 뒤집은 고사의 표현으로 추정; 정확한 출전 미상.

  48. 洎到梁游魏 계도량유위

    달마(達磨)가 양(梁) 무제(武帝)를 만난 뒤 강을 건너 북위(北魏)(숭산(嵩山) 소림(少林))로 감. 유(游)=유(遊).

  49. 曹谿大鑒 조계대감

    육조(六祖) 혜능(慧能). '대감선사(大鑒禪師)'는 시호, 조계(曹谿)는 주석지.

  50. 五祖老人 오조노인

    원오의 스승 오조법연(五祖法演)(?–1104). 기주(蘄州) 오조산(五祖山)(동산(東山)) 주석; 5조 홍인(弘忍)이 아니라 산명(山名)에 따른 호칭.

  51. 趙州喫茶去 조주끽다거

    조주종심(趙州從諗)의 '차나 마셔라' 공안(조주록(趙州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52. 玄沙未徹 현사미철

    영운 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깨쳐 게송을 짓자, 이를 전해 들은 현사 스님이 '옳기는 참 옳다마는, 장담하건대 노형은 아직 철저하지 못하다'고 한 이야기다(경덕전등록 권11, 오등회원 권4). 원오도 어록에서 이 말을 거듭 들어 보였다.

  53. 末後一句始到牢關 말후일구시도뇌관

    암두(巖頭) 계열 '말후구(末後句)'설.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뇌관(牢關)(생사의 굳은 관문)에 이른다는 것; 법연(法演)·원오가 즐겨 든 화제.

  54. 摩竭陀國親行此令·少林面壁 마갈타국친행차령·소림면벽

    '마갈타국에서 몸소 이 명령을 행하셨다'는 말과 '소림에서 벽을 마주했다'는 말을 짝지은 것이다. 앞은 부처님이 마갈타국에서 깨친 뒤 문을 닫고 말없이 지낸 일을, 뒤는 달마가 소림사에서 벽을 보고 앉은 일을 가리키며, 둘 다 말 없이 본분을 온통 드러낸 본보기로 든다. '마갈타국친행차령'은 송나라 선사들이 법좌에서 즐겨 쓴 말이다.

  55. 摩竭陀國親行此令 마갈타국친행차령

    '摩竭陀國에서 몸소 이 令을 행하였다'. 釋迦가 成道한 摩竭陀國에서 正令을 몸소 행했다는 禪門 상용구로, 成道 뒤 三七日 동안 말없이 머문 일(釋迦掩室於摩竭 — 『肇論』 涅槃無名論, T45n1858_p0157c13)과 이어 읽힌다(『大慧語錄』 권17 '釋迦老子在摩竭提國三七日中掩室不作聲', T47n1998A_p0885a10). 『景德傳燈錄』 권24 樂淨含匡의 開堂語에 '摩竭提國親行此令'(T51n2076_p0404a20)이 보이고, 圜悟도 入院 때 '摩竭陀親行此令,毘耶離已現神通'이라 하였다(『圜悟語錄』 권3, T47n1997_p0725a06).

문단 11국역본 대조 4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5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