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2
책의 오역·과의역이다. 帶水拖泥는 질질 끌며 지저분하게 함을 뜻하는 선문 관용어인데, 책은 '사람을 물에 띄우고'로 축자화해 목적어 '사람을'을 지어냈다. 또 鈍置人을 '늘어 놓는다면 바보짓이다'로 옮겨 鈍置의 주체와 뜻을 흐렸다. '사람을 우둔하게 붙들어 두는 것[鈍置]'이 원의에 부합한다.
풀이 3
풀이 3
풀이 3
책의 과의역(경미)이다. 種草(법을 이을 씨앗·법기)를 책은 '본분의 가풍을 감당할 만하리라'로 풀어 씨앗·싹의 은유를 지웠다. '씨앗(種草)이 될 만하다'가 축자·원의에 더 충실하다. 뜻은 상통하므로 경미하다.
풀이 4
풀이 2
이 편의 낱말 55
- 帶水拖泥·
打露布· 대수타니·列窠窟· 鈍置人 타노포· 열과굴· 둔치인 질질 끌고 장황한 문서를 내걸며 격식을 늘어놓아 사람을 우둔하게 붙듦—직지에 반하는 번쇄한 접법.
- 釋迦老子三百餘會 석가로자삼백여회
석존이 일대시교(一代時敎)로 연 법회를 통칭. '삼백여회(三百餘會)'는 방편 다수를 이르는 상투적 개수 표현.
- 迦葉二十八世 가섭이십팔세
마하가섭(摩訶迦葉)을 초조로 달마(達磨)에 이르는 서천(西天) 28조. 인도 조사는 기관(機關)보다 이치(理致)를 많이 보였다는 취지.
- 倒卻門前剎竿 도각문전찰간
아난(阿難)이 가섭(迦葉)에게 '세존께서 금란가사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가섭이 '아난아!' 하고 불렀다. 아난이 '예' 하고 대답하자 가섭은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라고 했다. 찰간은 절 앞에 세워 설법이 있음을 알리던 깃대다. 가섭이 아난에게 법을 전한 기연으로 꼽히는 공안이다.
- 益水投針 익수투침
용수(龍樹)가 물 담은 발우를 보이자 가나제바(迦那提婆)가 바늘을 던져 뜻이 계합한 14→15조 부법 고사(景德傳燈錄).
- 示圓相 시원상
둥근 원(원상)을 그려 보이거나 나타내 보여 법을 드러내는 방편이다. 용수 존자가 자리 위에 둥근 달 같은 모습을 나타내자 가나제바가 그 뜻을 알아차렸다는 이야기(경덕전등록 권1)가 이름났고, 뒷날 위앙종이 원상을 즐겨 썼다.
- 執赤幡·
把明鑑 집적번·파명감 붉은 깃발을 잡고 밝은 거울을 듦—부법시 직면제지(直面提持)의 기관 예시(구체 조사 특정은 추정).
- 鐵橛子 철궐자
무쇠 말뚝. 파고들 맛도 잡을 곳도 없는 화두(話頭)의 비유어.
- 達磨六宗 달마육종
달마(達磨)가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 입멸 후 인도에서 육종(六宗)(외도 여섯 갈래)을 논파해 굴복시킨 고사(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달마장(達磨章)).
- 教外別行 교외별행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으로,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쓴다.
- 六代傳衣 육대전의
달마(達磨)→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 6대에 전한 전법의(傳法衣)(가사(袈裟)).
- 說通宗通 설통종통
능가경(楞伽經)의 '종통(宗通)·설통(說通)'(단경(壇經) '설통급심통(說通及心通)')에서 온 말. 혜능(慧能)이 종지와 언설 양면을 갖춰 보였음을 이름.
- 變格通途 변격통도
낡은 격식을 바꾸고 새 길을 통하게 함—후대 종장(宗匠)들의 접화 방식.
- 行棒行喝·
以言遣言· 행방행할·以機奪機· 以毒攻毒· 以用破用 이언견언· 이기탈기· 이독공독· 이용파용 봉할(棒喝)을 비롯한 당송(唐宋) 선문의 역설적(逆說的) 접화법(接化法).
-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 百川異流同歸于海 백천이류동귀우해
갈래는 달라도 귀결은 하나라는 비유; 조론(肇論) 계열 이래의 상용 비유.
- 紹隆佛祖 소륭불조
불조의 법을 이어 융성케 함. 수신인 소륭(紹隆)의 이름을 겹친 쌍관어.
- 沒滋味鐵酸餡 몰자미철산함
'아무 맛 없는 무쇠 신 만두'. 붙잡을 의미가 없는 화두의 비유로 법연(法演)·원오가 즐겨 쓴 표현.
- 金剛王寶劍 금강왕보검
금강처럼 단단한 왕의 보검이라는 말이다. 모든 알음알이와 망상을 한칼에 끊는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다. 임제(臨濟) 스님이 할(喝)의 네 가지 쓰임을 말하며 첫째로 들었다.
- 山是山水是水 산시산수시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다. 분별을 떠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를 이른다. 운문(雲門)의 법문에 나오며, 그저 아무 일 없다고 안주하는 구실로 잘못 쓰이기도 했다.
- 千聖籠羅不住處 천성농라불주처
천 성인의 그물로도 가두지 못하는 향상의 자리.
- 正法眼藏 정법안장
부처가 깨달은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또는 그 눈으로 본 법의 알맹이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꽃을 들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고, 이때 이 법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전한다. 선종에서는 조사에서 조사로 마음으로 이어 온 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
- 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장 아끼고 기대는 것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홀로 서게 하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를 이른다.
- 摩竭陀國親行此令·
少林面壁全提正宗 마갈타국친행차령·소림면벽전제정종 세존(世尊)이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서(掩室), 달마(達磨)가 소림(少林)에서 면벽(面壁)으로 말없이 정종(正宗)을 온전히 든 것을 대구로 듦. 조론(肇論) '세존엄실어마갈(世尊掩室於摩竭)' 어법을 이음.
- 泯默 민묵
잠잠히 입만 다무는 병통; 원오가 비판한 묵조적 폐단을 겨냥한 말.
- 恣情識摶量 자정식단량
정식(情識), 곧 알음알이를 멋대로 부려 헤아림. 이것을 곧 높은 견해(高見)로 여기는 것이 큰 병이라 함.
- 向上人 향상인
향상(向上)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취나 부처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고, 그것마저 넘어선 이를 이른다.
- 祕魔擎杈 비마경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의 기연이다. 그는 늘 가장귀진 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하면 그것으로 목을 걸고 다그쳤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시켰느냐. 말해도 죽고 말 못 해도 죽는다. 어서 말하라.'
- 雪峰輥毬 설봉곤구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가 나무 공을 굴려 보인 일이다. 제자 현사(玄沙)가 ‘이제 큰 작용을 쓰겠다’고 하자, 설봉은 나무 공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려 냈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으로 받았다. 말 없이 몸짓으로 주고받은 큰 작용으로 일컬어진다.
- 禾山打鼓 화산타고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의 ‘북 칠 줄 안다’는 답이다. 한 스님이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묻자, 화산은 네 번 모두 ‘북 칠 줄 안다(解打鼓)’고만 답했다. 그래서 ‘화산의 네 번 북 치기’라고도 부른다.
-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 歸宗拽石 귀종예석
귀종지상(歸宗智常)(마조(馬祖) 법제자)의 돌 끌기 접기로 추정; 구체 고사 특정은 미상.
- 解黏去縛 해점거박
끈끈하게 들러붙은 것을 떼어 주고 묶인 것을 풀어 준다는 말이다. 스승이 학인의 집착과 얽매임을 풀어 주는 일을 이른다.
- 十斛驢乳·
一滴師子乳 십곡여유·일적사자유 나귀 젖 열 섬에 사자 젖 한 방울이면 다 흩어진다—열반경(涅槃經) 비유로, 진실한 한 마디의 위력.
- 向上關捩子 향상관열자
향상의 빗장·기틀. 이를 밟아 얻은 자라야 낱낱이 안다는 결어.
-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 種草 종초
씨앗이 될 풀이라는 뜻으로, 종문(宗門)의 법을 이어 퍼뜨릴 재목을 이른다. '우리 집안의 씨앗(吾家種草)'이라 하면 법을 바르게 이을 사람을 가리킨다.
-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 本分草料 본분초료
제 몫에 꼭 맞는 꼴과 여물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상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참된 처방, 흔히 말에 매인 이에게 내리는 방망이나 꾸짖음을 이른다. 『벽암록』의 촌평에 자주 나온다.
- 知有 지유
본래의 그 일, 곧 누구에게나 갖추어진 마음자리가 '있음'을 몸소 안다는 말이다. 남전(南泉)이 했다는 '모든 부처는 있음을 모르고, 고양이와 흰 소가 도리어 안다'는 말이 유명하다.
- 德山棒·
臨濟喝 덕산방·임제할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와 임제(臨濟) 스님의 고함이다. 덕산은 묻는 이를 몽둥이로 쳤고, 임제는 벼락같은 ‘할’로 맞았다. 말과 헤아림을 단번에 끊는 선문의 매서운 가르침을 이른다.
- 隆知藏 융지장
원오가 「시융지장」(원오심요)을 지어 준 승려로, 원오의 법을 이은 호구 소륭(1077–1136)으로 본다. 원오 문하에서 경장을 맡는 지장(장주) 소임을 보았고, 뒤에 소주 호구산에 머물렀다.
- 虎丘 호구
소주(蘇州)(평강부(平江府)) 호구산(虎丘山). 소륭(紹隆)이 주석해 임제종 호구파(虎丘派)의 발상지가 된 곳.
- 我天爾狗 아천이구
조사가 외도와 논의(論義)하며 상대 논리를 뒤집은 고사의 표현으로 추정; 정확한 출전 미상.
- 洎到梁游魏 계도량유위
달마(達磨)가 양(梁) 무제(武帝)를 만난 뒤 강을 건너 북위(北魏)(숭산(嵩山) 소림(少林))로 감. 유(游)=유(遊).
- 曹谿大鑒 조계대감
육조(六祖) 혜능(慧能). '대감선사(大鑒禪師)'는 시호, 조계(曹谿)는 주석지.
- 五祖老人 오조노인
원오의 스승 오조법연(五祖法演)(?–1104). 기주(蘄州) 오조산(五祖山)(동산(東山)) 주석; 5조 홍인(弘忍)이 아니라 산명(山名)에 따른 호칭.
- 趙州喫茶去 조주끽다거
조주종심(趙州從諗)의 '차나 마셔라' 공안(조주록(趙州錄)·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 玄沙未徹 현사미철
영운 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깨쳐 게송을 짓자, 이를 전해 들은 현사 스님이 '옳기는 참 옳다마는, 장담하건대 노형은 아직 철저하지 못하다'고 한 이야기다(경덕전등록 권11, 오등회원 권4). 원오도 어록에서 이 말을 거듭 들어 보였다.
- 末後一句始到牢關 말후일구시도뇌관
암두(巖頭) 계열 '말후구(末後句)'설.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뇌관(牢關)(생사의 굳은 관문)에 이른다는 것; 법연(法演)·원오가 즐겨 든 화제.
- 摩竭陀國親行此令·
少林面壁 마갈타국친행차령·소림면벽 '마갈타국에서 몸소 이 명령을 행하셨다'는 말과 '소림에서 벽을 마주했다'는 말을 짝지은 것이다. 앞은 부처님이 마갈타국에서 깨친 뒤 문을 닫고 말없이 지낸 일을, 뒤는 달마가 소림사에서 벽을 보고 앉은 일을 가리키며, 둘 다 말 없이 본분을 온통 드러낸 본보기로 든다. '마갈타국친행차령'은 송나라 선사들이 법좌에서 즐겨 쓴 말이다.
- 摩竭陀國親行此令 마갈타국친행차령
'摩竭陀國에서 몸소 이 令을 행하였다'. 釋迦가 成道한 摩竭陀國에서 正令을 몸소 행했다는 禪門 상용구로, 成道 뒤 三七日 동안 말없이 머문 일(釋迦掩室於摩竭 — 『肇論』 涅槃無名論, T45n1858_p0157c13)과 이어 읽힌다(『大慧語錄』 권17 '釋迦老子在摩竭提國三七日中掩室不作聲', T47n1998A_p0885a10). 『景德傳燈錄』 권24 樂淨含匡의 開堂語에 '摩竭提國親行此令'(T51n2076_p0404a20)이 보이고, 圜悟도 入院 때 '摩竭陀親行此令,毘耶離已現神通'이라 하였다(『圜悟語錄』 권3, T47n1997_p0725a06).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