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1편

보현사(普賢寺) 문장로(文長老)에게 드리는 글

示普賢文長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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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한문佛祖以心傳心,蓋彼彼頴悟透脫,如兩鏡相照,非言象所拘,高超格量,箭鋒相拄,初無異緣,
번역부처와 조사(祖師)께서는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셨다. 대개 저마다 환히 깨달아 꿰뚫고 벗어나는 것이다. 두 거울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아서, 말이나 형상에 얽매이지 않는다. 헤아림(格量)을 높이 뛰어넘어, 화살촉과 화살촉이 마주 버티듯 하니, 애초에 다른 인연이 없다.
乃受道妙。嗣祖繼燈,絕意路,出思惟,脫情識,到蕩蕩然寬通自在處,
이렇게 도(道)의 오묘함을 받는다. 조사를 잇고 등불을 이어, 생각의 길(意路)을 끊고 사유에서 벗어나며, 분별하는 마음(情識)을 벗어던진다. 그리하여 텅 비고 훤히 트여 걸림 없이 자재한 자리에 이른다.
逗到擇人付囑,亦要氣異,羽毛頭角體裁全具,然後不墜家聲,得從上爪牙方相應副,
그러니 사람을 가려 부촉(付囑)할 때에도, 그 기상이 여느 무리와 달라야 하고 두각과 체재를 온전히 갖추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가풍의 명성(家聲)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위로부터 내려온 조사의 발톱과 어금니(爪牙)를 얻어야 비로소 서로 맞아떨어진다.
所以數百年紹續,愈久愈光顯,所謂源流深長也。
그런 까닭에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오며 오래될수록 더욱 빛나고 드러났다. 이른바 근원의 흐름이 깊고 길다는 것이다.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는 마음으로 마음을 전했다. 저마다 스스로 환히 깨달아 꿰뚫고 벗어난다. 마치 두 거울이 마주 비추는 것과 같다. 그러니 말이나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온갖 헤아림을 훌쩍 뛰어넘어, 화살촉과 화살촉이 딱 마주치듯 애초에 딴 인연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렇게 도의 오묘함을 받는다. 그리하여 조사를 잇고 등불을 이어 간다. 생각의 길을 끊고 사유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분별하는 마음까지 벗어던진다. 그렇게 텅 비고 훤히 트여 걸림 없이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다. 그러니 사람을 가려 법을 물려줄 때에도 아무나 골라선 안 된다. 그 기틀이 여느 무리와 달라야 하고, 빼어난 자질과 됨됨이를 온전히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뒷날 가풍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위로부터 내려온 조사의 발톱과 어금니를 얻어 비로소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 까닭에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오며 오래될수록 더욱 빛난다. 이것이 이른바 근원의 흐름이 깊고 길다는 것이다.
11.2
한문今則頗失故步,多擅家風,存窠窟,作路布,自既不出徹,轉以爲人,則如老鼠入牛角,漸漸尖小,安得宏綱不委于地哉?
번역그런데 지금은 자못 옛 걸음걸이를 잃고, 제멋대로 가풍을 휘두른다. 소굴(窠窟)에 눌러앉아 말을 늘어놓는다(路布). 자기조차 아직 사무쳐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도리어 남을 위한답시고 나선다.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간 것과 같아서, 점점 더 뾰족하고 좁아진다. 어찌 큰 벼리(宏綱)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쉽게 읽기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옛 걸음걸이를 잃고 제멋대로 가풍을 휘두른다. 낡은 소굴에 눌러앉아 드러내 놓고 문자놀음이나 벌인다. 자기부터 아직 사무쳐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도리어 남을 이끈다고 나선다. 이는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기어든 꼴이다. 갈수록 뾰족하고 좁아지기만 한다. 이러니 어찌 큰 줄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11.3
한문老漢昔初見老師吐呈,所得皆眼裏耳裏機鋒,語句上悉是佛法心性玄妙,
번역이 늙은이가 옛날 처음 노스승(五祖法演)을 뵙고, 얻은 것을 토해 바쳤다. 그러나 모두 눈 속 · 귀 속의 것이요, 기봉(機鋒)과 어구 위의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죄다 불법과 심성(心性)의 현묘함이라 여겼다.
只被此老子舉乾曝嚗兩句云:有句無句,如藤倚樹。
그런데 이 노인께서 바싹 메마른(乾曝嚗) 두 구절을 들어 말씀하셨다. “구절이 있음과 구절이 없음(有句無句)은 등나무가 나무에 기댄 것과 같다.”
初則擺撼用伎倆,次則立諭說道理,後乃無所不至,拈出悉皆約下,
처음에 나는 이리저리 흔들며 온갖 재주를 부렸다. 다음에는 논지를 세워 도리를 말했다. 나중에는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집어 내놓는 족족 모두 눌려 깎여 버렸다(約下).
遂不覺泣下,然終莫能入得。再四懇提耳,
마침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끝내 들어가지는 못하여, 거듭 간절히 귓속말로 여쭈었다.
乃垂示云:你但盡你見解作計較,待一時蕩盡,自然省也。隨後云:我早爲你說了也。
그러자 스승께서 가르침을 내려 말씀하셨다. “너는 다만 네 견해를 다 짜내어 헤아려 따져 보아라. 어느 한때 그것이 모조리 씻겨 다하기를 기다리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뒤이어 말씀하셨다. “나는 진작 너에게 다 말해 주었다.”
쉽게 읽기이 늙은이도 옛날 그랬다. 처음 노스승 오조 법연을 뵈었을 때, 얻은 바를 죄다 토해 바쳤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눈과 귀로 주워들은 것이었다. 날카로운 말솜씨와 그럴듯한 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죄다 불법과 심성의 깊은 이치라 여겼다. 노스승은 아무 맛도 없이 바싹 메마른 두 구절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구절이 있음과 구절이 없음은 마치 등나무가 나무에 기댄 것과 같다.” 처음에 나는 이리저리 흔들며 온갖 재주를 부렸다. 다음엔 논리를 세워 이치를 따졌다. 나중엔 안 해 본 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내놓든 족족 눌려 깎여 나갔다. 마침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끝내 뚫고 들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거듭 간절히 귓속말로 여쭈었다. 그러자 스승이 가르쳐 말했다. “너는 그저 네 생각대로 실컷 헤아려 따져 보아라. 그러다 그것이 어느 순간 말끔히 씻겨 다하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어서 말했다. “나는 진작 너에게 다 말해 주었다.”
풀이 4
五祖法演 오조법연원오가 法演 문하에서 겪은 일을 회고하는 대목. '頻呼小玉 元無事'에 桶底가 빠졌다는 것은 『五燈會元』 권19 克勤章의 小艶詩 인연과 맞는다(X80n1565_p0396a07 이하).
有句無句如藤倚樹 유구무구여등의수'只被此老子舉乾曝嚗兩句云:有句無句,如藤倚樹'의 乾曝嚗은 五祖法演이 든 두 구절을 꾸미는 말이다. 이 두 구절은 福州 大溈安의 示衆으로, 疏山이 찾아가 따져 물은 이야기가 『五燈會元』 권13 疏山章에 있다(X80n1565_p0268b24).
11.4
한문去!去!向衣單下體究,了無縫罅。因入室,信口胡道,乃責云:你胡道作麼?
번역그곳을 떠나 승당(衣單) 아래로 가서 몸소 파고들어 보았으나, 도무지 빈틈(縫罅)이 없었다. 입실(入室)하여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였더니, 스승께서 꾸짖으셨다. “네가 함부로 지껄여 무엇 하겠느냐?”
卽心服真明眼人,透見我胸中事,然竟未入得。
그때 나는 마음으로 탄복했다. 참으로 눈 밝은 분이라, 내 가슴속 일을 꿰뚫어 보신다고 여겼다. 그래도 끝내 들어가지는 못했다.
尋下山,越二載回,始於頻呼小玉:元無事處,桶底子脫。纔始覰見前時所示真藥石也,
이윽고 산을 내려갔다가 두 해가 지나 돌아왔다. 그제야 ‘자꾸 소옥(小玉)을 부르나 본디 일이 없다’는 곳에서, 통 밑바닥(桶底子)이 빠지듯 했다. 그리고서야 예전에 일러 주신 것이 참으로 좋은 약(藥石)이었음을 겨우 엿보아 알았다.
쉽게 읽기그길로 선방으로 내려가 몸소 파고들었다. 그러나 도무지 파고들 빈틈이 없었다. 스승 방에 들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였다. 그러자 스승이 꾸짖었다. “네가 함부로 지껄여 무엇 하겠느냐.” 그때 나는 속으로 탄복했다. 참으로 눈 밝은 분이라, 내 가슴속을 훤히 꿰뚫어 본다고 여겼다. 그래도 끝내 크게 얻지는 못했다. 이윽고 산을 내려가 두 해가 지나 돌아왔다. 그제야 “자꾸 소옥을 부르나 본디 볼일은 없다”라는 대목에서,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앞이 뻥 뚫렸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엿보아 알았다. 예전에 일러 주신 그 말이 참으로 좋은 약이었음을.
풀이 4
桶底子脫 통저자탈원오가 五祖 문하에서 小艶詩 '頻呼小玉元無事,只要檀郎認得聲'을 두고 깨친 일을 이른다(『五燈會元』 권19 圜悟章). 『圜悟語錄』 권12에서도 이때를 '忽然桶底脫'이라 회고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了無縫罅
양립가능한 이독 → 책은 '아무 터진 틈 없는 도리를 얻었다'로 무봉(無縫)의 경지를 성취한 긍정으로, 자체역은 '도무지 (들어갈) 빈틈이 없었다'로 부정으로 읽는다. 문법상 두 독법이 모두 성립하며,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등록·어록·표준 구문)가 없다. 직후의 責·卽心服·然竟未入得, 후일의 桶底子脫로 이어지는 실패-후일 대오 서사에는 부정 독법이 더 정합적이나, 이는 정황 논거일 뿐 확정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결정적 전거로 확정할 수 없어 양립가능한 이독으로 유지하고, 자체역(부정 독법)을 따른다.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58c01). 이체이며 뜻이 같다.
11.5
한문自是迷時透不得,將知真實諦當處。如良遂道:諸人知處,良遂總知;良遂知處,諸人不知。誠哉!是言也。
번역이로부터 알았다. 미혹할 때는 꿰뚫지 못하지만, 장차 참으로 딱 들어맞는 곳(諦當處)을 알게 된다. 양수(良遂)가 말한 것과 같다. “여러 사람이 아는 곳은 양수가 다 알지만, 양수가 아는 곳은 여러 사람이 알지 못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쉽게 읽기이 일로 나는 알게 되었다. 미혹할 때는 아무리 해도 뚫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로 딱 들어맞는 그 자리를 알게 된다. 마치 양수가 한 말과 같다. “여러 사람이 아는 것은 양수가 다 안다. 그러나 양수가 아는 것은 여러 사람이 알지 못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11.6
한문雪峰問德山:從上宗乘中事,學人還有分也無?德山以杖擊之云:你道什麼?
번역설봉(雪峰)이 덕산(德山)에게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종승(宗乘)의 일에, 학인(學人)에게도 몫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덕산이 주장자로 그를 치며 말했다. “네가 무어라 말하느냐?”
峰云:我在德山棒下,似脫卻千重萬重貼肉汗衫。
설봉이 말했다. “나는 덕산의 방망이 아래에서, 천 겹 만 겹의 살에 붙은 땀 젖은 속옷(貼肉汗衫)을 벗어 버린 것 같았다.”
臨濟被黃檗三擊之,到大愚問:有過無過?愚云:黃檗與麼老婆,你更來覓過在。
임제(臨濟)는 황벽(黃檗)에게 세 차례 얻어맞았다. 대우(大愚)에게 가서,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다. 대우가 말했다. “황벽이 그처럼 노파심(老婆)으로 대했는데, 네가 다시 와서 허물을 찾느냐?”
濟猛省,不覺云:元來黃檗佛法無多子。
임제가 퍼뜩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원래 황벽의 불법에 별것 없구나(無多子).”
此二老皆叢林傑出者,並於棒下發明,後來大振此宗,爲世梯航。學者宜回思之,豈是麤淺邪?
이 두 노인은 모두 총림(叢林)에서 빼어난 이들이다. 둘 다 방망이 아래에서 밝혀내어(發明), 훗날 이 종풍을 크게 떨쳤다. 그래서 세상을 건네는 사다리와 배(梯航)가 되었다. 배우는 이는 마땅히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찌 이것이 거칠고 얕은 것이겠는가.
쉽게 읽기설봉이 덕산에게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가르침의 큰 줄기에, 저 같은 배우는 이에게도 몫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덕산은 주장자로 그를 후려치며 말했다. “네가 무어라 말하느냐?” 설봉이 말했다. “나는 덕산의 몽둥이 아래에서, 천 겹 만 겹 살에 달라붙은 땀에 전 속옷을 훌훌 벗어 버린 것 같았다.” 임제도 그랬다. 황벽에게 세 번이나 얻어맞고 대우 선사를 찾아가, 자기에게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다. 대우가 말했다. “황벽이 그토록 노파심으로 널 대했는데, 너는 다시 와서 허물을 찾느냐.” 임제가 그 자리에서 세차게 깨쳤다. 자기도 모르게 말이 터졌다. “황벽의 불법이라는 게 원래 별것 없구나.” 이 두 노인은 모두 총림에서 손꼽히는 이들이다. 둘 다 몽둥이 아래에서 크게 깨쳐 밝혔다. 그리고 훗날 이 종풍을 크게 떨쳐, 세상을 건네는 사다리와 배가 되었다. 그러니 배우는 이라면 마땅히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찌 이것이 거칠고 얕은 일이겠는가.
풀이 2
貼肉汗衫 첩육한삼雪峰이 德山에게 '從上宗乘中事,學人還有分也無'를 묻고 한 방망이에 깨친 일. 전승에서는 깨친 느낌을 '如桶底脫相似'라 하는데(『五燈會元』 권7; 『碧巖錄』 제5칙 評唱), 圜悟는 여기서 '貼肉汗衫을 벗은 듯'으로 바꿔 말했다.
11.7
한문而近世有謂以杖接人,皆墮機境,直須究了心性,談極玄妙,向時中綿綿密密,有針有線,方可入細。
번역그런데 요즘 어떤 이는 말한다. “주장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다 기틀과 경계(機境)에 떨어지는 일이다. 반드시 심성을 끝까지 파고들고 지극히 현묘한 것을 논해야 한다. 언제나 끊임없이 촘촘하게(綿綿密密), 바늘도 있고 실도 있어야(有針有線) 비로소 세밀한 데 들어갈 수 있다.”
只如一大藏教,五教三宗,析微發隱,剖露至真實際,徹佛地理性,豈不爲細?何假祖師西來?
다만 저 일대장교(一大藏敎)의 오교삼종(五敎三宗)을 보라. 미세한 것을 쪼개고 숨은 것을 드러내며, 지극한 진실의 바탕(眞實際)을 갈라 밝혀, 부처님 경지의 이치와 성품을 사무친다. 어찌 세밀하지 않은가. 무엇하러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심(祖師西來)을 빌리겠는가.
將知法流既久,多生異見,不得真傳,乃將醍醐而作毒藥,豈德山、雪峰、黃檗、臨濟之咎哉?諺曰:索短不到深泉。
알아야 한다. 법의 흐름이 오래되자 다른 견해가 많이 생기고, 참된 전함(眞傳)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제호(醍醐)를 가지고 독약을 만든 것이다. 어찌 덕산 · 설봉 · 황벽 · 임제의 허물이겠는가.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샘물에 닿지 못한다.”
쉽게 읽기그런데 요즘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주장자로 사람을 다루는 것은 다 기틀과 경계에 떨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반드시 심성을 끝까지 파고들고 더없이 깊은 이치를 논해야 한다. 언제나 촘촘하고 빈틈없이, 바늘도 있고 실도 있어야 비로소 세밀한 데 들어간다.” 하지만 저 온 대장경의 가르침, 이른바 오교삼종을 보라. 미세한 데까지 쪼개고 숨은 뜻을 드러내며, 지극한 진실의 자리를 밝혀 부처님 경지의 이치까지 사무친다. 이 어찌 세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만으로 될 것이면, 무엇하러 굳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셨겠는가. 알아야 한다. 법이 흘러온 지 오래되니 딴 견해가 자꾸 생겼다. 참된 전함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끝내 제호 같은 좋은 것을 가지고 도리어 독약을 만드는 꼴이 되었다. 이것이 어찌 덕산·설봉·황벽·임제의 허물이겠는가. 속담에도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샘물에 닿지 못한다”라고 했다.
풀이 3
醍醐作毒藥 제호작독약棒으로 사람을 접하는 것은 機境에 떨어진다는 '近世'의 견해를 들고, '不得真傳,乃將醍醐而作毒藥,豈德山、雪峰、黃檗、臨濟之咎哉'라 하여 허물이 德山·臨濟 등의 방편이 아니라 참된 전수를 잃은 뒷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豈不爲細。何假祖師西來
책의 오역·과의역 → 원문은 두 개의 독립된 반어로, 교학은 참으로 세밀한데 그렇다면 무엇하러 祖師西來를 빌리겠는가라는 뜻이며 세밀함이 祖師禪의 본지가 아님을 말한다. 책은 '어찌 조사서래의를 빌림이…'로 두 구를 하나로 묶어 祖師西來마저 세밀함 편으로 뒤집었다. 내 번역이 원의에 부합한다.
11.8
한문魯祖見僧只面壁,南泉云:我有時向道:直須向父母未生已前究取,尚不得一箇半箇。他恁麼驢年去,
번역노조(魯祖)는 승려를 보면 그저 벽을 향해 앉았다. 남전(南泉)이 말했다. “나는 어떤 때에 사람들에게 ‘반드시 부모가 태어나기 전(父母未生已前)을 향해 파고들어 얻으라’고 말했다. 그래도 한 개 반 개도 얻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해서는 나귀 해(驢年)에나 얻을 것이다.”
二老並躅齊眉,不是不知有,因甚卻恁麼地說話?
이 두 노인은 나란히 걸으며 눈썹을 가지런히 한(齊眉) 이들이다. 그것이 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不是不知有). 무엇 때문에 도리어 그렇게 말했겠는가.
還究到魯祖節文處麼?若究到,則見南泉如水入水;若不諳此,乃分疎魯祖,僻執南泉圓轉,隨他語脉路布,卒摸索不著在。
노조가 매듭지은 대목(節文)에까지 파고들어 보았는가. 파고들어 이른다면, 남전을 보는 것이 물에 물이 들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에 통하지 못하면, 노조는 치우쳐 집착했고(僻執) 남전은 원만히 굴렸다(圓轉)고 갈라 잴 것이다. 그 말의 흐름을 따라 늘어놓다가는, 끝내 더듬어 찾아도 붙잡지 못한다.
쉽게 읽기노조 선사는 승려가 오면 그저 벽만 바라보고 앉았다. 남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사람에게 ‘부모가 너를 낳기도 전의 그 자리를 파고들어 얻으라’고 했다. 그래도 한 개 반 개도 얻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나귀 해, 곧 영영 오지 않을 해에나 얻을 것이다.” 이 두 노인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함께 걸어간 이들이다. 그것이 있음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도리어 그렇게 말했을까? 노조 선사가 매듭지어 놓은 그 속뜻까지 파고들어 보았는가? 거기까지 파고들면, 남전을 보기가 물에 물이 섞이듯 훤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통하지 못하면 이렇게 갈라 재게 된다. ‘노조는 한쪽에 치우쳐 집착했고, 남전은 두루 원만했다’고. 그렇게 말의 겉만 좇아가면, 끝내 아무리 더듬어도 붙잡지 못한다.
풀이 9
魯祖面壁 노조면벽南泉의 평은 『景德傳燈錄』 권7이 '向佛未出世時會取', 『從容錄』 제23칙이 '空劫以前承當, 佛未出世時會取'인데, 여기서는 '父母未生已前究取'로 들었다.
南泉普願 남전보원魯祖寶雲이 僧을 보면 面壁하자 南泉이 '我尋常向僧道,向佛未出世時會取,尚不得一箇半箇,他恁麼地驢年去'라 한 말(『景德傳燈錄』 권7 魯祖章). 이 편은 '向佛未出世時'를 '父母未生已前'으로 인용하였다.
驢年 여년魯祖寶雲이 승려를 보면 面壁하자 南泉이 '我尋常向僧道 向佛未出世時會取 尚不得一箇半箇 他恁麼地驢年去'라 평한 말(『景德傳燈錄』 권7 魯祖寶雲章). 전등록의 '向佛未出世時會取'가 여기서는 '向父母未生已前究取'로 되어 있다.
如水入水 여수입수魯祖의 面壁과 南泉의 '驢年去' 비평을 들고, 魯祖의 節文을 궁구하면 '見南泉如水入水'라 한다. 두 老宿의 뜻이 하나로 맞물려 보인다는 쓰임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分疎魯祖僻執南泉圓轉
책의 오역·과의역 → 올바른 구두는 '分疎(변별하여) 魯祖僻執·南泉圓轉'으로, 노조는 편집·남전은 원전이라 이원적으로 갈라 판단함을 가리킨다. 책은 '分疎魯祖/僻執南泉'으로 끊어 남전을 집착한다는 어색한 뜻이 되었다. 내 대비 독법이 원오의 二見 비판 취지에 맞다.
11.9
한문石鞏彎弓發箭,祕魔擎杈驗人,俱胝只豎一指,無業唯言莫妄想。禾山打鼓,雪峰輥毬,趙州喫茶,玄沙蹉過,佛法豈有如許耶?
번역석공(石鞏)은 활을 당겨 화살을 쏘았다. 비마(祕魔)는 나무 작대기를 들어 사람을 시험했다. 구지(俱胝)는 그저 한 손가락을 세웠다. 무업(無業)은 오직 “망상하지 말라(莫妄想)”고만 했다. 화산(禾山)은 북을 쳤고(打鼓), 설봉은 나무공을 굴렸고(輥毬), 조주(趙州)는 차를 마시라(喫茶) 했고, 현사(玄沙)는 “빗나갔다(蹉過)”라고 했다. 불법에 어찌 그처럼 많은 것이 있겠는가.
若一一作方便,下合頭語,便論劫千生也未夢見在。
하나하나를 방편(方便)이라 여겨 딱 들어맞는 말(合頭語)을 붙인다면, 몇 겁 천 생이 지나도록 꿈에도 보지 못할 것이다.
若真實蹋著曹溪正路,則坐觀成敗,覰見這一隊漏逗也。
참으로 조계(曹溪)의 바른 길을 밟아 이른다면, 앉아서 이기고 지는 것을 지켜보듯, 이 한 무리가 흘리는 허물(漏逗)을 훤히 엿보아 알 것이다.
쉽게 읽기석공은 활을 당겨 화살을 겨눴다. 비마는 나무 작대기를 들어 사람을 시험했다. 구지는 그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무업은 오직 “망상하지 말라”고만 했다. 화산은 북을 두드렸고, 설봉은 나무공을 굴렸다. 조주는 “차나 마셔라” 했고, 현사는 “빗나갔다”라고 했다. 불법에 어찌 이토록 많은 것이 있겠는가. 이것들을 하나하나 방편으로 여겨 그럴듯이 들어맞는 말을 갖다 붙인다면, 억만 겁이 지나도록 꿈에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조계의 바른 길을 밟아 이른다면, 앉아서 승패를 지켜보듯 이 무리가 흘리는 허물을 훤히 들여다볼 것이다.
풀이 2
禾山打鼓 화산타고'禾山打鼓,雪峰輥毬,趙州喫茶'의 열거는 『碧巖錄』 제44칙 評唱이 雲門의 말로 끌어 쓴 '雪峯輥毬。禾山打鼓。國師水碗。趙州喫茶。盡是向上拈提'와 짝이 같다. 『圜悟語錄』 권14·15에도 같은 열거가 있다.
11.10
한문子文監寺留此軸,今數年矣。近退院稍閑,因爲出此。所有蓋天蓋地,絕出聖賢一著。子公久參自如,良遂知之矣。
번역자문(子文) 감사(監寺)가 이 두루마리를 맡겨 둔 지 이제 여러 해가 되었다. 근래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조금 한가해졌다. 그래서 이것을 지어 내놓는다. 하늘을 덮고 땅을 덮으며 성현을 뛰어넘는 한 수(一著子)는, 그대가 오래 참구했으니 저절로 알 것이다. 양수가 안 것처럼.
쉽게 읽기자문이라는 살림 맡은 소임이 이 두루마리를 맡겨 둔 지 이제 여러 해가 되었다. 근래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조금 한가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지어 내놓는다. 하늘을 덮고 땅을 덮으며 모든 성현을 뛰어넘는 그 한 수는, 그대가 오래 참구했으니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양수가 스스로 깨달아 안 것처럼.
풀이 3
子文監寺 자문감사'子文監寺留此軸,今數年矣。近退院稍閑,因爲出此'는 子文 監寺가 맡겨 둔 두루마리에, 圜悟가 退院한 뒤에야 글을 써 준 경위를 밝힌 말이다.
교감 · 絕出聖賢一著。子公久參自如구두 '絕出聖賢一著。子公久參自如' — '絕出聖賢一著子,公久參自如'로 끊어 읽는다(一著子 = 한 수). 子는 앞에 붙는다.
11.11
한문建炎三年閏八月十一日,雲居東堂書。
번역건염(建炎) 3년 윤8월 11일, 운거(雲居) 동당(東堂)에서 쓴다.
쉽게 읽기건염 3년 윤8월 11일, 운거 동당에서 쓴다.
풀이 2
雲居東堂 운거동당'建炎三年閏八月十一日,雲居東堂書'는 圜悟가 雲居山에서 退院하여 東堂에 머물던 1129년에 썼다는 말이다. 앞 단락의 '近退院稍閑'과 맞는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54
  1. 佛祖以心傳心 불조이심전심

    부처와 조사가 마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말로, 경전의 글 밖에서 따로 전한다(교외별전)는 선의 근본 명제이다.

  2. 兩鏡相照 양경상조

    두 거울이 서로 비춤으로, 심심상인(心心相印)·언상(言象)에 의지하지 않는 직하상계(直下相契)의 비유이다.

  3. 超格量 초격량

    분별(分別)·헤아림이며, 초격량(超格量)은 사량분별의 척도를 초월함이다.

  4. 箭鋒相拄 전봉상주

    화살촉과 화살촉이 공중에서 맞부딪쳐 버틴다는 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기틀이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고 딱 맞아떨어짐을 이른다. 석두(石頭)의 『참동계』에도 보인다.

  5. 露布 노포

    본래 봉하지 않고 널리 내걸어 알리던 글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내 늘어놓은 말과 설명, 틀에 박힌 문자놀음을 낮추어 이른다. 노포(路布)라고도 적는다.

  6. 老鼠入牛角 노서입우각

    늙은 쥐가 쇠뿔에 들어감으로, 갈수록 좁아져 벗어날 수 없는 사로(死路)의 비유이다.

  7.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8. 眼裏耳裏 안리이리

    눈·귀의 영역, 곧 견문각지(見聞覺知)·지해상의 것이다(폄의).

  9. 有句無句如藤倚樹 유구무구여등의수

    소산(疏山)이 대위(大溈)(위산(溈山))에게 물은 공안으로, 수도등고(樹倒藤枯) 때 뜻이 드러난다. 법연(法演)이 학인 시험에 상용하였고 원오 오도(悟道)의 계기가 되었다(전등록(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10. 約下 약하

    눌러 깎아 물리침으로, 스승이 학인의 견해를 낱낱이 부정하고 봉할(棒喝)로 꺾음이다.

  11. 真實諦當處 진실제당처

    제당(諦當)은 진실·확실이며, 참으로 여실한 자리이다.

  12. 良遂 양수

    강주(講主) 출신 양수좌주(良遂座主)로, 마곡보철(麻谷寶徹)에게 참하여 깨쳤다. '제인지처량수총지(諸人知處良遂總知), 양수지처제인불지(良遂知處諸人不知)'이다(전등록(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13. 雪峰問德山 설봉문덕산

    설봉 의존이 덕산 선감에게 '예부터 전해 온 종문의 일에 저도 몫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덕산이 방망이로 한 대 치며 '무슨 말이냐' 한 공안이다. 설봉은 이 일로 깨친 바가 있어, 뒷날 그때를 '통 밑바닥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벽암록 제5칙 평창, 오등회원 권7).

  14. 貼肉汗衫 첩육한삼

    살에 착 달라붙은 땀 젖은 속적삼이다. 떼어 내기 가장 어려운 마지막 집착이나 알음알이를 비유한다. 선문에서는 이것마저 벗어 버려야 비로소 홀가분해진다고 말한다.

  15.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16. 黃檗希運 황벽희운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스승이며, 배휴(裴休)가 그의 법문을 모아 『전심법요』를 엮었다.

  17. 高安大愚 고안대우

    당나라 선승으로 귀종지상(歸宗智常)의 법을 이었다. 홍주(洪州) 고안(高安)의 대우사(大愚寺)에 머물러 '대우'라 불린다. 황벽(黃檗)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임제(臨濟)가 찾아오자, 황벽의 노파 같은 마음을 일깨워 그 자리에서 깨치게 하였다.

  18. 猛省 맹성

    퍼뜩 세차게 깨침이다.

  19. 黃蘗佛法無多子 황벽불법무다자

    '원래 황벽(黃檗)의 불법도 별것 아니었구나'. 임제가 황벽희운 문하에서 세 번 방(棒)을 맞고 대우(大愚)에게 갔다가 돈오(頓悟)한 뒤 내뱉은 말이다(臨濟錄). 불법이 밖에 따로 대단한 것으로 있지 않음을 이른다. 벽(蘗)은 벽(檗)의 이체자이다.

  20. 梯航 제항

    사다리와 배로, 후학을 이끄는 안내자이다.

  21. 五教三宗 오교삼종

    화엄(華嚴) 교판의 오교(五教)(소(小)·시(始)·종(終)·돈(頓)·원(圓))와 제종(諸宗) 등 교학 분류로, 이론적 세밀함의 대유이다.

  22. 醍醐作毒藥 제호작독약

    '제호(醍醐)로 독약을 만든다'는 말이다. 제호는 우유를 거듭 정제해 얻는 가장 좋은 맛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에 견준다. 좋은 가르침도 잘못 받으면 도리어 사람을 해치게 됨을 이른다.

  23. 索短不到深泉 색단불도심천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샘에 못 닿음으로, 그릇이 얕으면 깊은 뜻에 못 미침이다(속담).

  24. 魯祖面壁 노조면벽

    노조보운(魯祖寶雲)은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스님이 찾아오면 늘 돌아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이를 들은 남전(南泉)은 '부처가 나기 전 자리를 알라고 해도 한둘도 얻지 못하는데, 저렇게 해서는 나귀 해에나 될 것'이라 했다. 말 없는 면벽이 무엇을 보였는지 묻는 공안이다.

  25.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26. 父母未生前 부모미생전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이다. 분별 이전의 본래면목을 묻는 선문의 상투구이다.

  27. 一箇半箇 일개반개

    한 개 반 개이다. 극소수의 법기(法器)를 이르는 선문 관용구이다.

  28. 驢年 여년

    나귀 해라는 뜻이다. 십이지(十二支)에는 나귀 해가 없으므로 '끝내 오지 않는 때', 곧 '영영 ~하지 못한다'는 말로 쓴다.

  29. 蹋齊眉 답제미

    눈썹 높이로 나란히 밟음으로, 노조(魯祖)·남전(南泉) 두 노숙(老宿)이 대등한 경지에 이르렀음이다.

  30. 節文 절문

    본래 예법의 마디와 꾸밈을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요긴한 곡절이나 숨은 뜻을 가리킨다. 노조(魯祖)의 면벽을 두고 흔히 그 절문을 묻는다.

  31. 如水入水 여수입수

    물이 물에 들어가듯, 둘 사이에 아무 틈이나 자취 없이 하나로 들어맞음을 이른다. 흔히 ‘금을 금과 맞바꾼다’는 말과 짝지어, 깨달음이 본래 자리와 꼭 맞는 모습을 그린다.

  32. 石鞏彎弓 석공만궁

    석공혜장(石鞏慧藏)(사냥꾼 출신)이 활을 당겨 학인을 시험한 공안이다(삼평(三平) '간전(看箭)', 전등록(傳燈錄)).

  33. 祕魔擎杈 비마경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의 기연이다. 그는 늘 가장귀진 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하면 그것으로 목을 걸고 다그쳤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시켰느냐. 말해도 죽고 말 못 해도 죽는다. 어서 말하라.'

  34.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35. 禾山打鼓 화산타고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의 ‘북 칠 줄 안다’는 답이다. 한 스님이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묻자, 화산은 네 번 모두 ‘북 칠 줄 안다(解打鼓)’고만 답했다. 그래서 ‘화산의 네 번 북 치기’라고도 부른다.

  36. 雪峰輥毬 설봉곤구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가 나무 공을 굴려 보인 일이다. 제자 현사(玄沙)가 ‘이제 큰 작용을 쓰겠다’고 하자, 설봉은 나무 공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려 냈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으로 받았다. 말 없이 몸짓으로 주고받은 큰 작용으로 일컬어진다.

  37. 合頭語 합두어

    그 자리에 그럴싸하게 들어맞도록 짜 맞춘 말이다. 맞는 듯해도 사람을 얽어매는 죽은 말이라 하여 선문에서 경계한다. 선자(船子) 화상은 이를 만겁의 말뚝이라 했다.

  38. 曹溪正路 조계정로

    육조혜능(六祖慧能)(조계(曹溪))의 정통 선로(禪路)이다.

  39. 子文監寺 자문감사

    보현 문장로를 가리키며, 자문(子文)은 그의 자이다. 일찍이 절 살림을 맡는 감사 소임을 지냈고, 원오가 그에게 「시보현문장로」(원오심요)를 써 주었다.

  40.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41. 一著子 일착자

    바둑의 한 수를 이르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판을 결정짓는 한 수처럼, 모든 말과 기연이 끝내 돌아가는 궁극의 한 소식을 가리킨다. 향상(向上)의 한 수라고도 한다.

  42. 趙州喫茶 조주끽다

    조주(趙州)의 '차나 마시게(喫茶去)' 공안이다. 새로 온 스님에게 여기 와 본 적이 있느냐 묻고, 왔다 해도 안 왔다 해도 '차나 마시게' 했다. 원주가 그 까닭을 묻자 원주를 불러 또 '차나 마시게' 했다. 따지는 마음을 놓고 일상에서 바로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43. 衣單 의단

    선방에서 스님마다 정해진 앉을 자리와, 거기 둔 옷과 바리 따위를 이른다. '의단 아래'는 선방의 제자리, 곧 스스로 공부를 지어 가는 자리를 뜻한다.

  44. 無業莫妄想 무업막망상

    분주무업(汾州無業)의 기연이다. 무업은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당나라 선승이다. 배우는 이가 무엇을 물어 오든 대개 '망상하지 말라(莫妄想)' 한마디로 답했다. 묻고 따지는 그 마음을 그 자리에서 쉬게 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45. 乾曝嚗 건폭박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랐다는 말이다. 맛도 멋도 없이 메마른 모양을 이르고, 군더더기 없이 엄한 가풍을 두고 쓰기도 한다.

  46. 入室 입실

    스승 방에 들어가 사자문답(師資問答)하는 참선 의례이다.

  47. 頻呼小玉元無事 빈호소옥원무사

    소염시(小艷詩) '빈호소옥원무사(頻呼小玉元無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郎認得聲)'의 구절이다. 법연(法演)이 관인(官人)에게 읊은 것을 원오가 곁에서 듣고 통저탈(桶底脫)한 오도(悟道) 인연이다(오등회원(五燈會元)·나호야록(羅湖野錄)).

  48. 無多子 무다자

    '별것 없구나'로, 임제 오도(悟道)의 일구(一句)이다.

  49. 建炎三年閏八月十一日 건염삼년윤팔월십일일

    1129년(남송(南宋) 고종(高宗))이다. 그해에 실제 윤팔월(閏八月)이 있어 간지(干支)와 부합한다.

  50. 雲居東堂 운거동당

    강서 운거산 진여사의 동당이다. 동당은 주지 자리에서 물러난 앞 주지가 머무는 거처이다.

  51. 頻呼小玉·小艷詩 빈호소옥·소염시

    원오가 깨친 인연이다. 스승 오조 법연이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형 벼슬아치에게, '자꾸 소옥이를 부르는 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낭군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려는 것'이라는 염정시 두 구절을 들어 보였다. 곁에서 이를 들은 원오가 이 일을 계기로 깨쳤다고 한다(오등회원 권19 원오장).

  52. 魯祖寶雲 노조보운

    노조보운(魯祖寶雲)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에 머물렀다. 스님이 찾아오면 말없이 벽을 향해 돌아앉은 일로 이름나, 그 일이 '노조면벽(魯祖面壁)' 공안이 되었다.

  53. 格量 격량

    分別·헤아림이며, 超格量은 사량분별의 척도를 초월함이다.

  54. 頻呼小玉 빈호소옥

    小艶詩의 한 구 '頻呼小玉元無事,只要檀郎認得聲'(자꾸 小玉을 부르는 것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檀郎이 제 목소리를 알아듣기를 바라서일 뿐). 五祖法演이 陳提刑에게 이 詩를 들어 보였을 때 곁에 있던 圜悟克勤이 크게 깨쳤다(『五燈會元』 권19 圜悟章, X80n1565_p0396a22; 『續傳燈錄』 권25, T51n2077_p0634a17). 圜悟 스스로도 '忽因舉頻呼小玉元無事,只要檀郎認得聲,忽然桶底脫'이라 회고한다(『圜悟語錄』 권12, T47n1997_p0768a21).

문단 11국역본 대조 3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54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