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4편

장자고(張子固)에게 드리는 글

示張子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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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한문大道無方,惟是利根種性,一聞千悟,不從外起,不自內得,脫然如湯消冰,初無得喪。
번역큰 도(大道)에는 정해진 방향과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근기가 날카로운 종성(種性)만이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닫습니다. 밖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안에서 얻지도 않습니다. 끓는 물에 얼음이 녹듯 훌쩍 벗어나, 애초에 얻음도 잃음도 없습니다.
蓋此生佛未分已前,廓徹明妙,了無依倚,卓然獨存,但以一念逐緣,背此真體,遂生如許不相應事業,熠熠地飄流,無蹔停息。
대개 이것은 중생과 부처가 아직 나뉘기 전에, 툭 트여 밝고 오묘하며, 기댈 데가 전혀 없이 우뚝 홀로 있었습니다. 다만 한 생각이 인연을 좇아 이 참된 본체를 등진 탓에, 마침내 그 많은 서로 들어맞지 않는 일과 업(業)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번쩍번쩍 떠돌며 잠시도 멈추어 쉬지 못합니다.
取境既熟,心源混濁,習以爲常,見聞皆不出聲色,只以迷妄自縛。
경계를 취하는 일이 익숙해지면, 마음의 근원이 흐려집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예사로 여기니,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소리와 빛깔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저 미혹과 망상으로 스스로를 얽어맬 뿐입니다.
쉽게 읽기큰 도에는 정해진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만이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끓는 물이 얼음을 녹이듯 훌쩍 벗어나니, 애초에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아직 나뉘기 이전에는, 확 트여 밝고 오묘하며 조금도 기댈 데 없이 우뚝 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으로 인연을 좇아 이 참된 본바탕을 등지고, 마침내 서로 어긋나는 온갖 업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번쩍번쩍 떠돌며 잠시도 멈추어 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바깥 경계를 붙잡는 일이 익숙해지면 마음의 바탕이 흐려집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소리와 빛깔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만 미혹과 망상으로 스스로를 얽어맬 뿐입니다.
14.2
한문及至體究大解脫,渺渺茫茫,莫知涯際,識浪滔滔,未嘗蹔住,故無由造入。
번역큰 해탈을 몸소 파고들려 해도, 아득하고 망망하여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식(識)의 물결이 도도히 밀려와 잠시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아가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而復有宿昔薰炙片善,喜樂諦信,要求其所,乃是上善。
그런데 다시 지난날 오래 쬐고 배어든(薰炙) 한 조각 선근이 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참되게 믿어 그 돌아갈 곳을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으뜸가는 선(善)입니다.
逗到伏膺參叩,卻黑漫漫地無它,只是拋離,久不純熟乃爾。
그래서 마음을 굽혀 찾아가 여쭙고 두드리는데도, 도리어 캄캄하기만 하고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놓아두고 떠나 있은 지 오래여서, 아직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쉽게 읽기큰 해탈을 몸소 파고들어도 아득하고 망망하여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알음알이의 물결이 도도히 밀려와 잠시도 머무르지 않으니, 그래서 나아가 들어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날 오래 익히고 배어든 한 조각 선근이 남아 있습니다. 그 힘으로 진리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참되게 믿어 돌아갈 곳을 찾는다면, 이것이 바로 으뜸가는 착한 일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굽혀 스승께 묻고 두드려 보았는데도, 도리어 캄캄하기만 하고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는 놓아 버리고 떠난 지가 오래되어 아직 무르익지 못하였기 때문일 뿐입니다.
14.3
한문如今要直截承當,但辦著身心,冥然叩寂,喪卻心機,一如土木,待渠時節到來,翛然自桶底子脫。
번역이제 곧바로 끊어 떠맡으려 한다면, 다만 몸과 마음을 내어 그윽이 고요함을 두드리십시오. 마음의 꾀(心機)를 잃어버려, 흙이나 나무처럼 되십시오. 그렇게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훌쩍(翛然) 저절로 통 밑바닥이 빠집니다.
契此本光,了此湛湛澄澄、不變不動、清淨無爲、妙淨明性、固蔕深根,到金剛堅固、正體全身擔荷得行,然後方可萬別千差悉歸一致,動與靜一如,心與境俱合,則一明一切明,一了一切了。
이 본래의 빛(本光)에 들어맞아, 이 맑고 맑으며,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깨끗하여 함이 없는, 오묘하고 깨끗한 밝은 성품을 깨쳐 마쳐야 합니다. 꼭지를 굳히고 뿌리를 깊이 내려, 금강(金剛)처럼 굳건해지고, 바른 본체와 온몸을 짊어지고 행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만 가지 차별과 천 가지 다름이 모두 하나로 돌아갑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한결같고, 마음과 경계가 함께 합해집니다. 그러면 하나가 밝으면 모두가 밝고, 하나를 깨치면 모두를 깨칩니다.
舉箇須彌山,道箇庭前栢樹子,一切機境,豈從他發?
수미산(須彌山)을 들어 보이든,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를 말하든, 온갖 기틀과 경계가 어찌 다른 데서 나오겠습니까?
至於行棒下喝,擎扠輥毬,無不一一印定。生死涅槃,猶如昨夢,自然泰定安閑,得休歇處。
방망이를 휘두르고 할(喝)을 내지르며, 작살을 치켜들고 공을 굴리는 데까지, 하나하나 다 도장 찍듯 확인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나고 죽음과 열반이 지난밤 꿈과 같습니다. 저절로 크게 안정되고 한가로워져, 쉬어 그칠 곳을 얻습니다.
쉽게 읽기이제 곧바로 끊어 감당하려면, 다만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십시오. 아득한 고요를 두드려, 이리저리 헤아리는 마음을 떨쳐 버리고 흙덩이나 나무토막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그 시절 인연이 이르기를 기다리면, 훌쩍 저절로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벗어나게 됩니다. 이 본래의 광명에 딱 들어맞아, 담담하고 맑디맑으며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맑고 깨끗하여 함이 없는 오묘하고 깨끗한 밝은 성품을 환히 깨칩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금강처럼 굳건하게 바른 본체와 온몸을 짊어지고 행할 수 있게 된 뒤라야, 비로소 만 가지 차별과 천 가지 다름이 모두 하나로 돌아갑니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한결같고 마음과 경계가 함께 합하니, 곧 하나가 밝으면 일체가 밝고,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칩니다. 수미산을 들어 보이든 뜰 앞의 잣나무를 말하든, 온갖 기연과 경계가 어찌 밖에서 나오겠습니까. 방망이를 휘두르고 할을 내지르며, 작살을 들어 보이고 나무공을 굴리는 데까지 하나하나 다 인가하여 확정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의 꿈과 같아, 자연히 태연하게 안정되고 한가로워져 쉬어 그칠 곳을 얻습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正體全身擔荷得行'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나는 '正體全身'을 '擔荷得行'의 목적어로 보아 '바른 본체와 온몸을 짊어지고 행할 수 있게'로 옮겼고, 출판본은 '正體'를 '到'의 대상으로, '全身'을 부사어로 보아 '진정한 지체에 도달하여'로 읽었다. '到金剛堅固'가 '正體'까지 지배하는지, 아니면 '正體'가 '擔荷'의 목적어인지를 가를 결정적 전거가 없어 구문 분절만 다를 뿐 양쪽이 모두 성립한다.
14.4
한문更疑什麼要用便用,要道便道,遇飯喫飯,遇茶喫茶,契平常心,不起佛見法見。
번역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쓰고 싶으면 곧 쓰고, 말하고 싶으면 곧 말합니다. 밥을 만나면 밥을 먹고, 차를 만나면 차를 마십니다. 평상심(平常心)에 들어맞아, 부처라는 견해도 법이라는 견해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佛見法見,尚乃不起,何況起造業心,發不善意,終不作此態度,撥無因果。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견해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하물며 업을 짓는 마음을 일으키고 착하지 못한 뜻을 내겠습니까? 끝내 이런 태도로 인과(因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由是得坐披衣,調衛降伏,與無心相應,乃是究竟落著之地。
이로써 자리를 얻어 앉고 가사를 걸치며(得坐披衣), 다스리고 지켜 항복받아 무심(無心)과 서로 맞아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에 닿아 내려앉는 자리입니다.
永嘉道:但自懷中解垢衣。巖頭道:只守閑閑地。雲居道:處千萬人中,如無一人相似。曹山道:如經蠱毒之鄉,水也不得沾它一滴。
영가(永嘉)는 말했습니다. “다만 스스로 품속에서 때 묻은 옷을 벗을 뿐이다.” 암두(巖頭)는 말했습니다. “그저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를 지킬 뿐이다.” 운거(雲居)는 말했습니다. “천만 사람 가운데 있어도,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다.” 조산(曹山)은 말했습니다. “독충 우글거리는 고장(蠱毒之鄕)을 지나가듯 하여, 물 한 방울도 묻혀서는 안 된다.”
謂之長養聖胎,謂之染污卽不得,直須放下卻從前作解。
이것을 일러 성인의 태(聖胎)를 오래 기른다 하고, 이것을 일러 물들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모름지기 이전의 알음알이를 놓아 버려야 합니다.
一切淨穢二邊之像,行住坐臥,悉心體究,乃自著底力,非從它人所授,乃是從上古德捷徑也。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두 끝의 온갖 모양을,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 온 마음으로 몸소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들이는 힘이지,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로부터 옛 큰스님(古德)들이 걸어온 지름길입니다.
쉽게 읽기그러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쓰고자 하면 곧 쓰고, 말하고자 하면 곧 말합니다.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차가 오면 차를 마셔 평소의 마음에 딱 들어맞으니, 부처라는 견해도 법이라는 견해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견해조차 일으키지 않거늘, 하물며 업을 짓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착하지 못한 뜻을 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끝내 인과를 없다고 내치지는 않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앉아서 옷을 걸치고 잘 다스려 항복받아 무심과 하나가 되니, 이것이 바로 마지막에 돌아가 안착하는 자리입니다. 영가 스님은 '다만 스스로 품속에서 때 묻은 옷을 벗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암두는 '다만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를 지킬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운거는 '천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조산은 '독벌레의 고장을 지나가듯 물 한 방울도 몸에 묻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일러 성태를 오래 기른다 하고, 이것을 일러 물들이거나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하니, 다만 종전의 알음알이를 놓아 버려야 합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두 가장자리의 온갖 형상을,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 온 마음으로 몸소 파고들면 저절로 몸에 붙는 힘이 생깁니다. 이는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로부터 내려온 고덕들의 지름길입니다.
풀이 7
永嘉玄覺 영가현각「證道歌」 '但自懷中解垢衣。誰能向外誇精進'(T48n2014_p0396a01)의 앞 구.
曹山本寂 조산본적曹山의 保任 答語(『景德傳燈錄』 권17; 『五燈會元』 권13). 永嘉·巖頭·雲居의 말과 나란히 '長養聖胎'의 예로 들었다.
長養聖胎 장양성태앞에 든 曹山의 '如經蠱毒之鄉,水也不得沾它一滴'은 '學人十二時中如何保任'에 대한 답(『景德傳燈錄』 권17 曹山章)이어서, 長養聖胎를 保任과 한 뜻으로 묶는다. 永嘉 구는 「證道歌」 '但自懷中解垢衣'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終不作此態度,撥無因果
책 오역·과의역. 앞 구절 '佛見法見尚乃不起'의 흐름은 깨달은 이가 저절로 그러하다는 서술이고, 終不作(끝내 짓지 않는다)은 서술문이다. 출판본은 '하지를 마십시오'라는 명령·권계형으로 옮겨 不作을 勿作으로 오독한 과의역이다. 내 번역 '끝내 이런 태도로 인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가 문법·문맥에 맞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47
  1. 一聞千悟 일문천오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친다는 말이다. 타고난 그릇이 크고 지혜가 날카로운 사람은 한마디만 듣고도 단번에 다 깨친다는 뜻으로 쓴다.

  2. 湯消冰 탕소빙

    끓는 물(湯)이 얼음을 녹인다. 미혹이 단박에 사라지는 돈오(頓悟)의 비유이다.

  3. 生佛未分已前 생불미분이전

    중생(生)과 부처(佛)가 아직 나뉘기 이전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자리이다.

  4. 熠熠地 습습지

    습습(熠熠)은 번쩍이는 모양이다. 식심(識心)이 분주히 반짝이며 떠도는 상태이다.

  5. 取境 취경

    경계(境)를 취하는 것이다. 육진(六塵)의 대상을 붙잡아 분별한다.

  6. 聲色 성색

    소리와 빛깔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바깥 경계 전체를 대표하여 이르는 말로, 선가에서는 여기에 끌려 다니는 마음을 경계한다.

  7. 識浪滔滔 식랑도도

    식(識)의 물결이 도도하다. 능가경(楞伽經)의 '장식해상주(藏識海常住), 경계풍소동(境界風所動), 종종제식랑(種種諸識浪), 騰躍而轉生'에서 온 장식해(藏識海)·식랑(識浪) 비유이다.

  8. 薰炙 훈자

    향내가 배고 불기운이 스미듯, 오래 가까이 지내며 감화를 받아 몸에 밴다는 말이다. 스승 곁에서 오래 가르침을 받는 일이나, 지난 생부터 닦아 익혀 온 힘을 이른다.

  9. 伏膺 복응

    복응(伏膺)은 마음으로 복응(服膺)하여 굽혀 따름이다. 스승에게 참문(參問)함을 이른다.

  10. 參叩 참고

    참문하고 두드려 물음이다. 고(叩)는 두드릴 고이다.

  11. 黑漫漫地 흑만만지

    캄캄하고 아득한 모양이다. 공부가 아직 순숙(純熟)하지 못한 상태이다.

  12. 冥然叩寂 명연고적

    아득히(冥然) 고요함(寂)을 두드림이다. 분별(分別)을 쉬고 적정(寂靜)에 드는 공부이다.

  13. 喪卻心機 상각심기

    심기(心機)를 여읨이다. 심기(心機)는 분별하는 마음의 기틀이며, 각(卻)은 어조사이다.

  14. 一如土木 일여토목

    흙덩이(土)와 나무토막(木)처럼 됨이다. 정식(情識)이 끊긴 무심(無心)의 비유이다.

  15.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16. 本光 본광

    본래 갖추어진 광명, 곧 사람마다 지닌 제 성품의 신령한 밝음을 이른다.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으나, 스스로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17. 湛湛澄澄 담담징징

    깊고 맑으며 티 없이 맑은 모양이다. 고인 물이 맑게 가라앉은 것처럼, 흐림 없이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바탕을 그린 말이다.

  18. 妙淨明性 묘정명성

    오묘하고 깨끗한 밝은 성품이다. 곧 진여자성(眞如自性)이다.

  19. 固蔕深根 고체심근

    뿌리를 굳고 깊게 내림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59장 '심근고저(深根固柢), 장생구시지도(長生久視之道)'의 심근고저(深根固柢)에서 유래한다.

  20. 一明一切明·一了一切了 일명일체명·일료일체료

    하나가 밝으면 일체가 밝고,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친다. 화엄(華嚴) 일즉일체(一卽一切)의 원돈(圓頓) 사상이다.

  21. 行棒下喝 행방하할

    방망이를 휘두르고 할(喝)을 내림이다. 덕산봉(德山棒)과 임제할(臨濟喝)의 접화(接化) 방편이다.

  22. 擎扠輥毬 경차곤구

    경차(擎扠)는 창·작살을 들어 보임이고, 곤구(輥毬)는 나무공을 굴림이다(설봉의존(雪峰義存)의 목구(木毬) 접화). 모두 언어를 떠난 제창(提唱) 수단이다.

  23. 生死涅槃猶如昨夢 생사열반유여작몽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 꿈과 같다. 이변(二邊)이 본래 공(空)함을 이른다.

  24. 泰定 태정

    크게 안정되어 흔들림이 없음을 이른다. 『장자』의 '마음이 크게 안정된 이는 하늘의 빛을 낸다'는 말에서 왔다.

  25. 佛見法見 불견법견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견해이다. 부처나 진리를 붙들어 두는 생각도 미세한 집착이라 이마저 떨쳐야 한다. 남전(南泉)이 문수와 보현이 이 견해를 일으켰다며 벌한 말이 유명하다.

  26. 撥無因果 발무인과

    인과(因果)를 아예 없다고 물리쳐 버리는 것을 이른다. 공(空)을 잘못 알아 선악의 갚음도 없다고 여기는 그릇된 견해다. 영가(永嘉)는 『증도가』에서 이를 재앙을 부르는 병으로 꼽았다.

  27. 得坐披衣 득좌피의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다는 말로, 깨달음에 들어 제 자리를 얻었음을 이른다. 앙산(仰山)이 한 스님에게 '자리를 얻어 옷을 입었으니 이제부터 스스로 살펴라(向後自看)'고 한 말로 널리 쓰였다.

  28. 蠱毒之鄉 고독지향

    고독(蠱毒)의 고장이다. 고독(蠱毒)은 독충을 부린 독이다. 티끌 하나 묻지 않는 보임(保任)의 철저함을 비유한다.

  29. 長養聖胎 장양성태

    성태(聖胎), 곧 성인이 될 씨앗을 오래 길러 간다는 말이다. 깨친 뒤 그 마음을 잘 지켜 무르익게 하는 공부, 곧 보임(保任)을 이른다. 마조(馬祖)의 말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30. 染污卽不得 염오즉불득

    물들이면 안 됨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육조(六祖)에게 답한 '수증즉불무(修證卽不無), 염오즉불득(染污卽不得)'에서 유래한다.

  31. 淨穢二邊 정예이변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두 극단이다. 깨끗함을 좇고 더러움을 싫어하는 마음도 치우친 분별이니, 어느 쪽에도 기대지 말라는 뜻으로 쓴다. 마조(馬祖)도 같은 가르침을 폈다.

  32. 古德捷徑 고덕첩경

    옛 고덕(古德)이 내려준 지름길이다. 스승에게 받은 것이 아닌 자득(自得)의 힘임을 강조한다.

  33.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34.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35. 曹山本寂 조산본적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 조산에 머물렀다. 스승 동산과 함께 조동종(曹洞宗)의 조사로 받든다. 동산을 떠날 때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

  36.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

    한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답했다. 묻는 말의 뜻을 좇지 않고 눈앞의 것을 곧바로 내민 대답이다. 흔히 잣나무로 옮기지만 본디 측백나무다. 『무문관』과 『종용록』에 실렸다.

  37. 雲門須彌山 운문수미산

    한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허물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수미산이다'라고 답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벌써 산처럼 큰 허물이라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 『종용록』 제19칙에 실린 공안이다. 세계 한가운데 솟았다는 산 자체는 수미(須彌)를 보라.

  38. 示張子固 시장자고

    원오가 장자고(張子固)라는 사람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39. 平常心 평상심

    꾸밈도 분별도 없는 평소 그대로의 마음이다. 마조(馬祖)가 '평상심이 곧 도'라고 했다. 조주(趙州)가 도를 묻자 스승 남전(南泉)도 그렇게 답했다.

  40. 大道無方 대도무방

    대도(大道)에는 정해진 방소(方所)가 없다는 뜻이다. 진리는 특정한 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41. 利根種性 이근종성

    근기(根機)가 예리한 종성(種性)이다. 상근(上根)의 돈오인(頓悟人)을 가리킨다.

  42. 金剛堅固 금강견고

    금강(金剛)처럼 견고함이다. 무너지지 않는 정체(正體)를 형용한다.

  43. 無心相應 무심상응

    무심(無心)과 상응함이다. 구경(究竟)에 낙착(落著)(귀착)하는 자리이다.

  44. 雲居 운거

    운거도응(雲居道膺)(?~902)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이며 조동종(曹洞宗)으로 운거산(雲居山)에 주석하였다. '처천만인중(處千萬人中), 여무일인상사(如無一人相似)'로 인용된다.

  45. 桶底子脫·桶底脫落 통저자탈·통저탈락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통에 담겼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알음알이가 한순간에 떨어져 나가는 크나큰 깨침에 빗댄다. 원오가 어록과 편지에서 즐겨 쓴 비유다.

  46. 一明一切明 일명일체명

    하나가 밝으면 일체가 밝고,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친다. 華嚴 一卽一切의 圓頓 사상이다.

  47. 桶底脫落 통저탈락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막혀 있던 情識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가는 大悟의 비유. 圜悟가 '桶底子脫'로 즐겨 쓴다(『圜悟佛果禪師語錄』 권4 '若得桶底子脫、五色線斷', T47n1997_p0732a24; 권13·14·15·16에도 보인다).

문단 4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