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68편

오교수(吳敎授)에게 드리는 글

示吳敎授

68.1
한문佛祖以禪道設教,唯務明心達本,況人人具足,各各圓成,
번역부처님과 조사(祖師)께서 선의 길(禪道)로 가르침을 베푸신 것은, 오직 마음을 밝혀 근본에 이르게 하는 데 힘쓰신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마다 다 갖추고 있고, 저마다 원만히 이루어져 있음이겠습니까.
但以迷妄背此本心,流轉諸趣,枉受輪回,而其根本初無增減。
다만 미혹과 망상으로 이 본심(本心)을 등지고, 온갖 갈래로 흘러 굴러다니며 부질없이 윤회(輪廻)를 받을 뿐입니다. 그 근본은 애초에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諸佛以爲一大事因緣而出,蓋爲此也。祖師以單傳密印而來,亦以此也。
모든 부처님께서 하나의 큰일의 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상에 나오신 것도 대개 이 때문입니다. 조사께서 홀로 전하는 비밀한 도장(單傳密印)을 가지고 오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若是宿昔蘊大根利智,便能於腳跟直下承當,不從他得,了然自悟,廓徹靈明,廣大虗寂,
만약 예로부터 큰 근기와 날카로운 지혜를 쌓아 온 사람이라면, 곧바로 제 발밑에서 바로 떠맡습니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뚜렷이 스스로 깨닫습니다. 신령한 밝음이 확 트여, 넓고 크며 텅 비고 고요합니다.
從無始來亦未曾間斷,清淨無爲,妙圓真心,不爲諸塵作對,不與萬法爲侶,長如十日並照,離見超情,截卻生死浮幻,如金剛王堅固不動,
이것은 시작 없는 옛적부터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습니다. 맑고 깨끗하며 함이 없는(無爲), 묘하고 원만한 참마음입니다. 온갖 티끌과 맞서 짝하지 않고, 만법(萬法)과 벗하지 않습니다. 늘 열 개의 해가 나란히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봄(見)을 여의고 정(情)을 뛰어넘어, 생사(生死)의 뜬 허깨비를 잘라 버립니다. 금강왕(金剛王)처럼 굳건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乃謂之卽心卽佛,更不外求,唯了自性,應時與佛祖契合,到無疑之地,把得住,作得主,可不是徑截大解脫耶?
이를 일러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 합니다. 다시 밖에서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 성품(自性)을 깨달으면, 그 즉시 부처님과 조사와 딱 들어맞아 의심 없는 자리에 이릅니다. 붙잡아 머물고, 주인 노릇을 합니다. 어찌 지름길로 곧장 이르는 큰 해탈(解脫)이 아니겠습니까.
쉽게 읽기부처님과 조사께서 선의 길로 가르침을 펴신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마음을 밝혀 근본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마음은 사람마다 다 갖추었고, 저마다 이미 온전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미혹과 망상에 빠져 이 본심을 등질 뿐입니다. 그래서 온갖 갈래로 흘러 다니며 부질없이 윤회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애초에 늘지도 줄지도 않습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하나의 큰일의 인연으로 세상에 나오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사께서 단전밀인으로, 곧 한 사람에게만 은밀히 도장을 찍어 주듯 법을 이어 오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큰 근기와 예리한 지혜를 쌓은 이는 곧바로 제 발밑에서 바로 떠맡습니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뚜렷이 스스로 깨닫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밝음이 확 트이고, 넓고 크며, 텅 비고 고요합니다. 이 마음은 시작 없는 옛적부터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습니다. 맑고 함이 없는 이 묘하고 원만한 참마음은, 온갖 티끌과 짝하지 않고 만법과 벗하지 않으며, 마치 열 개의 해가 나란히 비추듯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봄을 여의고 정을 뛰어넘어, 생사의 뜬 허깨비를 잘라 버리고, 금강왕처럼 굳세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마음이 곧 부처요, 다시 밖에서 구하지 않으며 오직 자성을 깨달을 뿐이라 합니다. 그때에 이르면 부처님과 조사와 딱 들어맞아, 의심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붙잡아 머무르고,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찌 지름길로 곧장 이르는 큰 해탈이 아니겠습니까.
풀이 2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況人人具足,各各圓成
況은 사전상 '하물며'의 반어·강조 부사이므로 '하물며 사람마다 다 갖추고 저마다 원만히 이루어져 있음이겠습니까'로 옮긴 자체역이 옳다. 뒤의 '但以迷妄背此本心'과 이루는 況…但 구조와도 부합한다. 況을 '그런데 정작'의 단순 서술 접속으로 푼 책의 독해는 況의 표준 어의(然而가 아님)에 어긋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長如十日並照
十日은 '열 개의 해'다(莊子·淮南子 十日並出 고사). 책은 '천 개의 해'로 十을 千으로 잘못 옮겼으니 '열 개의 해'가 옳다. 뒤 편71 十日並出도 같은 오독이다.
68.2
한문探究此事,要透死生,豈是小緣?應當猛利,誠忘信重,如救頭然,始有少分相應。
번역이 일을 파고드는 것은 생사를 꿰뚫으려는 것이니, 어찌 작은 인연이겠습니까. 마땅히 맹렬하고 날카로워야 합니다. 정성으로 잊고 믿음을 무겁게 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들어맞음이 있습니다.
多見參問之士,世智聦明,只圖資談柄,廣聲譽,以爲高上趣向,務以勝人。但增益我見,如以油投火,其炎益熾。
참학하며 묻는 이들을 흔히 봅니다. 세속의 지혜와 총명으로 그저 이야깃거리를 장만하고, 이름을 널리 내려 합니다. 이것을 높고 뛰어난 지향으로 여겨, 남을 이기는 데만 힘씁니다. 이는 다만 나라는 견해(我見)를 더할 뿐입니다. 기름을 불에 끼얹는 것과 같아서, 그 불꽃이 더욱 거세집니다.
直到﨟月三十日,茫然繆亂,殊不得纖毫力。良由最初已無正因,所以末後勞而無功。
그러다 곧장 섣달 그믐날(臘月三十日)에 이르면, 아득하고 어지러워 털끝만큼의 힘도 얻지 못합니다. 참으로 처음부터 바른 씨앗(正因)이 없었기 때문에, 끝에 가서 애만 쓰고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是故古德勸人參涅槃堂裏禪,誠有旨也。
그러므로 옛 어른께서 사람들에게 열반당(涅槃堂) 속의 선을 참구하라고 권하신 데에는, 참으로 뜻이 있습니다.
쉽게 읽기이 일을 파고드는 것은 삶과 죽음을 꿰뚫으려는 것입니다. 어찌 작은 인연이겠습니까. 마땅히 맹렬하고 날카롭게 매달려야 합니다. 정성으로 다른 일은 잊고, 믿음은 무겁게 지녀야 합니다.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급하게 해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상응함이 있습니다. 흔히 보면, 참학하며 묻는 이들이 세속의 지혜와 총명으로 그저 이야깃거리의 밑천이나 삼습니다. 명성을 널리 퍼뜨리고, 이것을 높고 뛰어난 길로 여기며, 남을 이기려고만 애씁니다. 이는 다만 아견만 더할 뿐입니다. 마치 기름을 불에 끼얹는 것과 같아, 그 불꽃이 더욱 거세집니다. 그러다 섣달 그믐날, 곧 목숨이 다하는 임종의 날에 이릅니다. 그때는 아득하고 어지러워, 털끝만 한 힘도 얻지 못합니다. 진실로 애초에 바른 씨앗이 없었던 까닭에, 끝내 수고롭기만 하고 아무 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어른께서 사람들에게 열반당 속의 선을 참구하라 권하셨으니, 참으로 뜻이 있는 말씀입니다.
풀이 4
古德 고덕涅槃堂은 병든 승려가 머무는 堂(延壽堂)이다(『五燈會元』 권3 百丈章 '涅槃堂又無病人'). '涅槃堂裏禪'을 권한 古德이 누구인지는 찾지 못했다. 圜悟는 '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이라고도 쓴다(『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誠忘信重
'忘'을 忘身·忘懷의 뜻으로 살려 '정성으로 (몸/생각을) 잊고 믿음을 무겁게 한다'로 읽는 자체역과, '忘'을 독립 동사로 살리지 않고 '진실한 마음(誠)과 지중한 신심(信重)으로'로 묶어 옮긴 책의 독해가 양립한다. 誠忘信重은 용례가 드물고 구두(句讀)가 정해지지 않아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다.
교감 · 如救頭然'如救頭然'의 '然'은 '燃'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68.3
한문生死之際,處之良不易。唯大達超證之士,奮利根勇猛,一往截斷則無難。
번역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신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오직 크게 통달하여 뛰어나게 깨친 사람만이, 날카로운 근기와 용맹을 떨쳐 단번에 끊어 버리니 어려움이 없습니다.
然此段雖由自己根力,亦假方便。於常時些子境界中,轉得行,打得徹,不存解,不立見,凜然全體現成,踐履將去,養得純熟。
그러나 이 일은 비록 자기 근기의 힘에 달렸다 해도, 또한 방편(方便)을 빌려야 합니다. 평소 자잘한 경계(境界) 속에서 굴려 갈 수 있고, 쳐서 사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알음알이를 두지 않고 봄을 세우지 않아, 늠름하게 온몸이 그대로 드러나게 합니다. 그렇게 밟아 나가며, 길러서 무르익게 해야 합니다.
到緣謝之時,自然無怖畏。只有清虗瑩徹,無一法當情,如懸崖撒手,棄捨得無留戀。
인연이 다하는 때에 이르면, 저절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맑고 비어 환히 사무쳐서, 한 법도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다. 벼랑 끝에서 손을 놓듯,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습니다.
一念萬年,萬年一念,覓生了不可得,豈有死也?
한 생각이 만 년이요, 만 년이 한 생각입니다. 삶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는데, 어찌 죽음이 있겠습니까.
是故古德坐脫立亡,行化倒蛻,能得勇徤,皆是平昔淘汰得淨潔。
그러므로 옛 어른들은 앉아서 벗어나고 서서 떠났으며, 걸어가다 떠나고 거꾸로 서서 허물을 벗었습니다. 이렇게 용맹하고 굳셀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평소에 씻고 걸러 깨끗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쉽게 읽기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잘 처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오직 크게 통달하고 뛰어나게 증득한 이라야 합니다. 그런 이는 예리한 근기와 용맹을 떨쳐, 한 번에 끊어 버리니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자기의 근본 힘에 달렸다 해도, 또한 방편을 빌려야 합니다. 평소 자잘한 경계 속에서 마음을 굴려 행하고, 쳐서 사무치게 해야 합니다. 알음알이를 두지 않고, 봄을 세우지 않습니다. 늠름히 온몸으로 그대로 드러내어, 밟아 실천해 나가고, 길러서 무르익게 합니다. 그러면 인연이 다하는 때에, 저절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오직 맑고 텅 비어 환히 사무쳐, 한 법도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다. 마치 벼랑 끝에서 손을 놓듯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됩니다. 한 생각이 만 년이요 만 년이 한 생각이라, 삶을 찾으려 해도 끝내 얻을 수 없으니, 어찌 죽음인들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 어른들이 앉아서 벗어나고 서서 죽으며, 걸어가다 떠나고 거꾸로 서서 허물을 벗듯 하여, 용맹하고 굳셈을 얻었습니다. 이는 모두 평소에 씻고 걸러 깨끗이 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풀이 5
懸崖撒手 현애살수'到緣謝之時…如懸崖撒手,棄捨得無留戀' — 臨終(緣謝)에 留戀 없이 몸과 마음을 내려놓음의 비유로 쓴다.
淘汰 도태'古德坐脫立亡,行化倒蛻,能得勇徤,皆是平昔淘汰得淨潔'—坐脫立亡의 힘이 평소의 淘汰에서 나온다는 말.
懸崖撒手 현애살수《벽암록(碧巖錄)》제사십일칙(第四十一則)(조주대사저인(趙州大死底人)) 평창의 "현애살수(懸崖撒手),자긍승당(自肯承當);절후재소(絕後再甦)"는 본편 "여현애살수(如懸崖撒手),棄捨得無留戀"과 동일 취지의 대사일번(大死一番) 어법이다.
68.4
한문香林四十年得成一片,湧泉四十年尚有走作。
번역향림(香林)은 사십 년 만에 한 덩어리를 이루었습니다. 용천(湧泉)은 사십 년이 되어도 오히려 딴 데로 달아나는 때가 있었습니다.
石霜勸人休去歇去,如古廟裏香爐去。永嘉云:體卽無生,了本無速。
석상(石霜)은 사람들에게 쉬고 또 쉬어, 옛 사당 속의 향로처럼 되라고 권했습니다. 영가(永嘉)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으니, 깨달으면 본래 빠름이 없다.”
盖業業競競,念茲在茲,方得無礙自在。
대개 삼가고 또 조심하여 생각마다 여기에 두어야, 비로소 걸림 없이 자재(自在)할 수 있습니다.
既捨生之後,得意生身,隨自意趣,後報悉以理遣,不由業牽,所謂透脫生死耶?
이 삶을 버린 뒤에는 뜻대로 나는 몸(意生身)을 얻어, 제 뜻이 가는 대로 따릅니다. 뒤에 받을 과보도 모두 이치로 떠나보내, 업(業)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생사를 꿰뚫어 벗어남이 아니겠습니까.
報緣未謝,於人間世上有如許參涉交牙,應須處之,使綽綽然有餘裕始得。
과보의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면, 인간 세상에 이처럼 얽히고 맞물린 일들이 있습니다. 마땅히 그것을 잘 처리하여, 넉넉하게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됩니다.
人生各隨緣分,不必厭喧求靜。但令中虗外順,雖在閙市沸湯中,亦恬然安穩。才有纖毫見刺,則打不過也。
사람의 삶은 저마다 인연의 분수를 따르니, 굳이 시끄러움을 싫어하고 고요함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안은 비우고 밖은 따르게 하면, 시끄러운 저잣거리나 끓는 물 속에 있어도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털끝만큼이라도 견해의 가시가 있으면, 뚫고 지나가지 못합니다.
쉽게 읽기향림 선사는 사십 년 만에야 한 조각을 이루었습니다. 용천 선사는 사십 년이 지나서도 오히려 달아나는 바가 있었습니다. 석상 선사는 사람들에게 쉬고 또 쉬어 마치 옛 사당 속의 향로처럼 되라고 권하였습니다. 영가께서는 “본체는 곧 남이 없으니, 깨달으면 본래 빠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개 삼가고 조심하여 생각마다 여기에 있어야, 비로소 걸림 없는 자재함을 얻습니다. 이미 삶을 버린 뒤에는, 뜻대로 나는 몸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뜻과 지향을 따르며, 뒷생의 과보도 모두 이치로써 보내어 업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삶과 죽음을 꿰뚫어 벗어남이 아니겠습니까. 과보의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으면, 인간 세상에서 이처럼 얽히고설킨 온갖 관계와 만남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그것을 잘 처리하여, 넉넉하고 여유롭게 해야 합니다. 사람의 삶은 저마다 인연의 분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굳이 시끄러움을 싫어하고 고요함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안으로 텅 비고 밖으로 순응하게 하면, 비록 시끄러운 저잣거리나 끓는 물 속에 있더라도 편안하고 안온합니다. 조금이라도 견해의 가시가 있으면, 곧 뚫고 지나가지 못합니다.
풀이 12
永嘉玄覺 영가현각六祖가 '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라 묻자 永嘉가 '體即無生,了本無速'이라 답한 대목(『景德傳燈錄』 권5 T51n2076_p0241b05; 『六祖壇經』 T48n2008_p0357c12).
石霜慶諸 석상경제'休去歇去…古廟香爐去'는 九峰道虔이 '先師道'라며 든 石霜慶諸의 말(『五燈會元』 권6). 心要는 그 가운데 둘을 들었다.
走作 주작香林澄遠의 '我四十年方打成一片'(『碧巖錄』 제17칙 평창; 『五燈會元』 권15)과 涌泉景欣의 '我四十九年在這裏,尚自有時走作'(『五燈會元』 권6)을 맞세운 것. 心要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는 涌泉 쪽도 '四十年'으로 쓴다.
香林澄遠 향림징원〔병렬용례〕 《碧巖錄》第十七則(香林 '如何是祖師西來意—坐久成勞') 평창에 香林澄遠이 雲門을 18년 시봉하며 "四十年打成一片"이라 한 일화가 실려 있다. 본편 "香林四十年得成一片"의 직접 전거이다.
休去歇去 휴거헐거《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권십오(卷十五) 석상경제장(石霜慶諸章)에 "휴거헐거(休去歇去)…고묘리향로거(古廟裏香爐去)" 등 칠거(七去) 어(語)가 수록되어 있다. 본편 석상(石霜) 인용의 등록(燈錄) 출처이다.
休去歇去 휴거헐거《景德傳燈錄》卷十五 石霜慶諸章에 "休去歇去…古廟裏香爐去" 등 七去 語가 수록되어 있다. 본편 石霜 인용의 燈錄 출처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體卽無生,了本無速
無速은 六祖壇經 一宿覺 문답의 遲速(빠르고 늦음)이 없다는 뜻이다. 책은 '무상함이 없습니다'로 速을 常으로 오독했으니 '깨달으면 본래 빠름이 없다'가 옳다. 앞구 體卽無生의 體는 '본체'/'체달한즉' 양립 가능하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才有纖毫見刺,則打不過也
打不過는 '가시가 걸려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는 서술이다. 책은 '그대로 쳐버려'로 打를 타파의 명령으로 보아 오역했으니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가 옳다.
교감 · 業業競競'業業競競' — 저본(X69n1357 p0497c14)은 '競競'이다. '兢兢業業'(삼가고 조심함)과 같은 말로 읽는다(下22 교감).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1
  1. 單傳密印 단전밀인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마음에서 마음으로 은밀히 전하는 조사선(祖師禪)의 전법이다. 밀인(密印)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가하는 심인(心印)이다.

  2. 不與萬法爲侶 불여만법위려

    방거사(龐居士)가 마조(馬祖)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은 문답이다. 마조는 '그대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일러 주겠다'고 답했고, 방거사는 그 말끝에 깨쳤다고 한다. 원오는 이 말을 온갖 것에 매이지 않는 본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쓴다.

  3. 十日並照 십일병조

    열 개의 해가 나란히 비춤이다. 《장자(莊子)》·《淮南子》의 '십일병출(十日並出)' 고사를 빌려, 진심의 광명이 끊임없이 두루 비침을 비유한다.

  4. 金剛王 금강왕

    금강 가운데 으뜸, 곧 가장 굳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능엄경』에서 이미 늘 머물러 무너지지 않음을 이 말로 비유했다. 임제(臨濟)의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도 이 말을 칼에 붙인 것이다.

  5. 徑截大解脫 경절대해탈

    경절(徑截)은 '지름길로 곧장 끊음'이다. 우회하는 점수(漸修)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이르는 돈문(頓門)·경절문(徑截門)의 큰 해탈이다. 원오(圜悟)·대혜(大慧)가 즐겨 쓰는 용어이다.

  6. 如救頭然 여구두연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급박함이다. 연(然)은 연(燃)(탈 연)의 본자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등의 '여구두연(如救頭燃)' 상용구이다.

  7. 懸崖撒手 현애살수

    깎아지른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는 말이다. 목숨처럼 붙들던 알음알이와 기댈 곳을 한꺼번에 놓아 버리는 결단을 이른다. '크게 한 번 죽는다(大死一番)'와 통한다.

  8. 一念萬年·萬年一念 일념만년·만년일념

    삼조승찬(三祖僧璨) 《신심명(信心銘)》 "일념만년(一念萬年)"에서 온 말이다(석상칠거(石霜七去)의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와도 통한다). 시간의 장단이 끊긴 절대 현재이다.

  9. 坐脫立亡 좌탈립망

    앉은 채 또는 선 채로 자재하게 목숨을 벗음(遷化)이다. 도력이 무르익은 선사의 죽음이다.

  10. 行化倒蛻 행화도세

    걸어가다 세상을 떠나고, 거꾸로 서서 허물 벗듯 떠난다는 말이다. 화(化)는 교화가 아니라 세상을 떠남(천화, 遷化)이고, 세(蛻)는 매미가 허물을 벗음이다. 흔히 앉거나 선 채로 떠남(좌탈립망, 坐脫立亡)과 짝지어, 도력 있는 선사가 죽음에 자재함을 이른다. 등은봉(鄧隱峰)이 물구나무선 채 떠난 일이 이름나다.

  11. 淘汰 도태

    물에 일어 쌀과 모래를 가려내듯, 잡된 것을 씻어 걸러 깨끗이 한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깨친 뒤에도 공부를 거듭 다듬어 순수하게 하는 일을 이른다.

  12. 走作 주작

    마음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경계를 따라 밖으로 달아나 흩어지는 것을 이른다. 공부가 한결같지 못하고 틈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13. 休去歇去·如古廟裏香爐去 휴거헐거·여고묘리향로거

    석상칠거(石霜七去)의 일부이다. 쉬고 또 쉬어 옛 사당의 향로처럼 싸늘히 식어 일념(一念)도 일지 않는 경지이다. 칠거(七去)=휴거(休去)·헐거(歇去)·冷湫湫地去·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一條白練去이다.

  14. 體卽無生 체즉무생

    《육조단경(六祖壇經)》기연품(機緣品) 일숙각(一宿覺) 문답이다. 육조(六祖)가 "하불체취무생(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어찌 무생(無生)을 체득하고 빠름 없음을 깨닫지 않는가)"라 하자 영가(永嘉)가 답한 말이다. 본체는 본래 남(生)이 없으니 깨닫고 보면 애초에 遲速(지속)이 없다는 돈오무생(頓悟無生)의 뜻이다.

  15. 念茲在茲 염자재자

    『서경(書經)』 「대우모」에서 우(禹)가 순(舜)에게 한 말에서 나왔다. 생각도 여기에, 마음 둠도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늘 한 가지 일을 잊지 않는 한결같음을 이른다.

  16. 中虗外順 중허외순

    안으로는 텅 비워(無心) 밖으로는 인연에 순응함이다. 허(虗)는 허(虛)(빌 허)의 이체자이다.

  17.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18.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19.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20.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21. 香林澄遠 향림징원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22. 見刺 견자

    '견해의 가시'라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제 견해나 알음알이를 세우면 그것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걸림이 된다는 비유다.

  23. 石霜慶諸 석상경제

    당나라 선승(807~888)으로, 도오원지(道吾圓智)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석상산에 20년 머무는 동안 대중이 눕지 않고 앉은 채 지내 '고목중(枯木衆)'이라 불렸다. '쉬고 또 쉬라(休去歇去)'로 시작하는 이른바 석상칠거가 전한다. 송나라의 석상초원, 곧 자명(慈明)과는 다른 사람이다.

  24. 休去歇去 휴거헐거

    쉬고 또 쉬라는 말이다. 당나라 석상경제(石霜慶諸)가 일렀다는 ‘일곱 가지 가라(七去)’ 법문의 첫머리다. 분별하고 구하는 마음을 다 쉬어, 옛 사당의 향로처럼 싸늘해지라는 가르침이다.

  25. 湧泉景欣 용천경흔

    태주(台州) 용천의 경흔(景欣) 선사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석상경저(石霜慶諸)의 가르침을 받고 용천의 암자에 머물렀다. 원오의 법어에는 향림(香林)과 나란히, 사십 년을 닦고도 아직 마음이 달아나곤 했다는 사람으로 나온다.

  26. 吳敎授 오교수

    원오가 법어 「시오교수」를 지어 준 재가 거사로, 그 글이 원오심요와 원오어록 권14에 실려 있다. '교수'는 송나라 때 주와 부의 관학에서 가르치던 벼슬 이름이니, 오씨 성의 지방 교육관이다.

  27. 一大事因緣 일대사인연

    《법화경(法華經)》방편품(方便品) "제불세존유이일대사인연고출현어세(諸佛世尊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세상에 나온 유일한 큰 목적, 곧 중생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28. 涅槃堂裏禪 열반당리선

    열반당(涅槃堂)은 병들고 죽어가는 승려가 머무는 연수당(延壽堂)·병승당(病僧堂)이다. '열반당 속의 선'은 실제 죽음의 문턱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선, 곧 생사(生死)에 시험되는 진짜 공부이다.

  29. 得意生身 득의생신

    의생신(意生身)(manomaya-kāya)은 《능가경(楞伽經)》에 나오는, 업(業)의 견인 없이 뜻대로 나투는 몸이다. 생사를 벗은 뒤 자재히 화현하는 것이다.

  30. 一念萬年 일념만년

    三祖僧璨 《信心銘》 "一念萬年"에서 온 말이다(石霜七去의 '一念萬年去'와도 통한다). 시간의 장단이 끊긴 절대 현재이다.

  31. 趙州大死底人 조주대사저인

    조주(趙州)가 투자(投子)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도리어 살아날 때는 어떠한가' 하고 묻자, 투자는 '밤길을 가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거라' 하고 답했다. 『벽암록』 제41칙에 실린 공안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