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24편

감상인(鑑上人)에게 주는 글

示鑑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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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한문祖師門下,本分提綱,一句截流,萬機寢削,已是涉廉纖了也。
번역조사(祖師)의 문하에서 본분(本分)으로 강령을 들어 보인다. 한 구절로 흐름을 끊고, 온갖 기틀을 잠재워 깎아 없앤다. 그것도 벌써 자잘한 데로 흘러든 것이다.
何況言上生言,機上生機,窮考許多,一堆擔葛藤,汙卻心田,有甚了期?
하물며 말 위에 말을 내고 기틀 위에 기틀을 내며, 그 많은 것을 끝까지 따진다면 어떻겠는가. 한 무더기 갈등(葛藤)을 짊어지고 마음 밭을 더럽힐 뿐이니, 어느 세월에 끝날 날이 있겠는가?
此事若在言句機境上,盡被聰明解會,浮根虗識者,如學事業一般,逴將去了也,豈更論發悟見性耶?
이 일이 만약 말과 글귀, 기틀과 경계 위에 있다면, 죄다 총명으로 알아듣게 될 것이다. 뿌리가 들뜨고 앎이 헛된 자들이 무슨 일을 배우듯 냉큼 낚아채 가 버릴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시 깨달음을 일으켜 견성(見性)하는 일을 말하겠는가?
쉽게 읽기조사 문하에서는 본분에서 큰 강령을 들어 보인다. 한 구절로 흐름을 끊고, 온갖 기틀을 잠재워 깎아 없앤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조차도 이미 자잘하고 미세한 데로 흘러든 것이다. 하물며 말 위에 다시 말을 얹고, 기틀 위에 다시 기틀을 얹어 그토록 많은 것을 끝까지 따진다면 어떻겠는가. 한 무더기 갈등, 곧 얽히고설킨 말과 생각의 덩굴을 짊어지고 마음 밭을 더럽힌다면, 어느 세월에 끝날 기약이 있겠는가. 이 일이 만약 말과 글이나 접화의 기틀과 경계 위에 있는 것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죄다 총명한 알음알이로 풀이되어, 들뜬 육근과 헛된 의식을 지닌 자들이 무슨 재주나 사업을 배우듯 냉큼 낚아채 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다시 깨달음을 일으켜 제 성품을 보는 일을 논할 수 있겠는가.
풀이 4
廉纖 염섬'本分提綱,一句截流,萬機寢削'조차 '已是涉廉纖'이라 하여, 무엇이든 드러내는 순간 미세한 분별에 떨어진다고 했다. 『五燈會元』 권17 超化靜의 上堂 '聲前認得,已涉廉纖'과 같은 쓰임.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 '萬機寢削'은 자체역이 옳다. 이 편은 機를 境과 구분해 쓰며(機境, 機上生機, 一機一境), 여기 萬機도 一句截流와 짝하여 심기(心機)·분별의 뭇 기틀을 가리킨다. 機를 경계로 옮긴 책('모든 경계를 다 없앰')은 機·境을 뭉뚱그린 부정확이고, 機를 기틀로 보아 '온갖 기틀을 잠재워 깎아 없앰'으로 옮긴 자체역이 옳다.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逴將去了也
책오역. 책은 '아득히 동떨어지리니'로 옮겨 逴을 멀다(遠)로 읽었으나, 뒤의 완료·이동 보어 '將去了也'는 낚아채 가다는 동사를 요구한다. 문맥이 언구·기경에 붙들리면 총명한 알음알이가 재주 배우듯 죄다 훔쳐가 버린다는 뜻이므로 逴=掠(낚아채다)로 봄이 문의·통사에 부합한다. 다만 逴=遠의 사전적 뜻도 있어 확정은 아니다.
24.2
한문釋迦佛一周出現,無窮奇特勝妙,尚只道曲爲時緣,至末梢始密付此印。
번역석가불(釋迦佛)께서 한 생애에 세상에 나오시어, 다함없이 기특하고 빼어난 묘리를 보이셨다. 그러나 그것도 다만 시절 인연에 맞추어 굽히신 것이라 하셨다. 맨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도장(印)을 은밀히 맡기셨다.
達磨老師少林九年冷坐,獨有可祖承當得,故謂之教外別行,單傳心印。
달마(達磨) 노사께서 소림(少林)에서 아홉 해를 차갑게 앉아 계셨다. 오직 혜가(慧可) 조사만이 이를 받아 감당했다. 그래서 이를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하여, 마음 도장(心印)을 홀로 전한다’고 한다.
只如此印,且如何傳?莫是揚眉瞬目麼?莫是舉拂敲床麼?
그렇다면 이 도장은 대체 어떻게 전하는가?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는 것인가? 불자(拂子)를 들고 선상(禪床)을 두드리는 것인가?
莫是總無言說,只以行住動用麼?莫是總不與麼便承當麼?
도무지 말없이, 다만 다니고 머무는 움직임으로 하는 것인가?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고 곧바로 받아 감당하는 것인가?
莫是向上向下,面前背後,別有奇特麼?莫是道理論性,深入淵源麼?似此正如掉棒打月,有甚交涉?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따로 무슨 기특한 것이 있는가? 도리를 따지고 성품을 논하여 깊은 연원으로 파고드는 것인가? 이런 것은 바로 막대기를 휘둘러 달을 치려는 것과 같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석가불이 한 생애에 걸쳐 세상에 나와, 다함없이 기특하고 수승한 묘리를 보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다만 시절 인연에 맞추어 굽힌 것이라 일렀고, 맨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도장을 은밀히 물려주었다. 달마 노사가 소림사에서 아홉 해를 차갑게 앉아 있었으나, 오직 혜가 조사만이 이를 감당하여 받았다. 그러므로 이를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하는 것이요, 마음의 도장을 홀로 전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도장을 대체 어떻게 전한다는 것인가. 혹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는 것인가. 혹 불자를 들고 선상을 치는 것인가. 혹 아무 말도 없이 다만 다니고 머무는 몸짓과 작용으로 하는 것인가. 혹 그렇게 하지도 않은 채로 곧바로 감당하는 것인가. 혹 위로 아래로, 앞으로 뒤로, 따로 무슨 기특함이 있는 것인가. 혹 도리를 따지고 성품을 논하여 깊은 연원으로 파고드는 것인가. 이런 것들은 바로 막대기를 휘둘러 달을 치려는 격이니,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풀이 4
瞬目揚眉 순목양미'只如此印 且如何傳 莫是揚眉瞬目麼 莫是舉拂敲床麼…似此正如掉棒打月'이라 하여, 心印 전수를 몸짓·형식으로 여기는 견해를 反問으로 부정한다.
掉棒打月 도방타월위의 여러 형식적 짐작이 心印과 무관함을 나타낸다.
24.3
한문將知非世間麤浮淺識所料,要須如龍象蹴蹋,直㧞超昇,大徹大證始得。
번역그러니 세간의 거칠고 들뜨고 얕은 앎으로 헤아릴 바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용과 코끼리가 힘차게 내딛듯, 곧장 뽑혀 뛰어올라 크게 사무치고 크게 증득해야 비로소 된다.
一等參請,須教透去,莫只守住窠窟,不唯自賺,亦乃累人。
기왕 참문하고 청익(請益)할 바에야, 반드시 꿰뚫고 나가야 한다. 소굴을 지키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속일 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누를 끼친다.
所以從上來作家宗師,仰重此一段,不輕分付,不輕印可。
그래서 예로부터 작가(作家) 종사들은 이 한 대목을 우러러 무겁게 여겼다. 가벼이 내어 주지 않고, 가벼이 인가(印可)하지 않았다.
不見永嘉道:粉骨碎身未足酬,一句了然超百億。
영가(永嘉)께서 하신 말씀을 보지 못했는가? “뼈를 가루 내고 몸을 부수어도 다 갚지 못한다. 한 구절에 환히 깨치면 백억을 뛰어넘는다.”
祕魔平生只持一木杈,見人便道:甚魔魅教你出家?甚魔魅教你行腳?道得也杈下死,道不得也杈下死。
비마(祕魔) 화상은 평생 끝이 갈라진 나무 막대(木杈) 하나만 지니고, 사람을 보면 곧 말했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하게 했느냐? 어떤 마귀가 너를 행각(行脚)하게 했느냐? 말해도 막대 아래 죽고, 말하지 못해도 막대 아래 죽는다.”
原其一場,豈是虗設?蓋入草求人,爾若是知有底,豈有多端?
그 한바탕을 따져 보면, 어찌 부질없이 벌인 것이겠는가? 풀숲에 들어가 사람을 찾은 것이다(入草求人). 그대가 만약 있음을 아는 사람(知有底)이라면, 어찌 여러 갈래가 있겠는가?
纔涉紛紜,卽千里萬里也。跳得金剛圈,吞得栗棘蓬,自然知落處。
조금이라도 어지러이 얽히면, 곧 천 리 만 리 어긋난다. 금강권(金剛圈)을 뛰어넘고 율극봉(栗棘蓬)을 삼켜야, 저절로 떨어지는 자리(落處)를 안다.
쉽게 읽기그러니 이것이 세간의 거칠고 들뜨고 얕은 지식으로 헤아릴 바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용과 코끼리가 힘차게 내딛듯 곧장 뽑아 뛰어올라, 크게 사무치고 크게 증득하여야 비로소 된다. 참문하고 청익, 곧 스승에게 물어 가르침을 청하는 일에 나섰거든, 반드시 끝까지 꿰뚫고 나가야 한다. 다만 소굴을 지키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면 자신을 속일 뿐 아니라 남까지 얽어매게 된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내려온 작가 종사들은 이 한 대목을 우러러 중히 여겨, 가벼이 내어 주지 않고 가벼이 인가하지 않았다. 영가 스님이 이른 말을 보지 못하였는가. “뼈를 가루 내고 몸을 부순들 갚기에 부족하나, 한 구절을 환히 깨치면 백억을 뛰어넘는다.” 비마암 화상은 평생 오직 끝이 갈라진 나무 막대 하나만을 지녔다. 사람을 보면 곧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하게 하였느냐? 어떤 마귀가 너를 행각하게 하였느냐? 말해도 이 막대 아래 죽을 것이요, 말하지 못해도 이 막대 아래 죽으리라.” 그 한바탕을 근원까지 따져 본다면, 어찌 부질없이 베푼 것이겠는가. 대개 풀숲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 함이니, 그대가 참으로 그것이 있음을 아는 이라면 어찌 이러니저러니 여러 갈래가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어지러운 분별에 얽히면 곧 천 리 만 리 어긋난다. 금강권을 뛰어넘고 율극봉, 곧 목에 걸리는 밤송이 가시 같은 화두를 삼킬 수 있어야, 자연히 낙처, 곧 돌아가 떨어질 그 자리를 저절로 알게 된다.
풀이 5
永嘉玄覺 영가현각「證道歌」 '粉骨碎身未足酬。一句了然超百億'(T48n2014_p0396c20). 원오는 『碧巖錄』 제1칙·제14칙 評唱에서도 이 두 구를 들었다.
永嘉玄覺 영가현각영가(永嘉) 증도가(證道歌) 인용: '粉骨碎身未足酬, 일구료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은 영가현각(永嘉玄覺) 「증도가(證道歌)」의 원구로, 원오의 여러 법어에서 한 구절로 단박에 뛰어넘음을 강조할 때 즐겨 인용되는 상투 전거이다.
祕魔巖 비마암'祕魔平生只持一木杈…道得也杈下死,道不得也杈下死'는 五臺山 祕魔巖和尚의 이야기를 줄여 든 것이다. 『景德傳燈錄』 권10에 '常持一木叉。每見僧來禮拜,卽叉卻頸云:那箇魔魅教汝出家?那箇魔魅教汝行脚?道得也叉下死,道不得也叉下死'라 하였다(T51n2076_p0280a29). 心要는 叉를 '杈'로, '那箇'를 '甚'으로 적었다.
24.4
한문此宗省要,唯是休意休心,直令如枯木朽株,冷湫湫地,根塵不偶,動靜絕對,根腳下空勞勞,無安排,存坐它處,脫然虗凝。所謂人無心合道,道無心合人。
번역이 종문(宗門)의 요긴한 것은 오직 뜻을 쉬고 마음을 쉬는 것(休意休心)이다. 곧바로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처럼 싸늘하게 한다. 육근과 육진(根塵)이 짝하지 않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를 끊는다. 발밑이 텅 비어 아득하여, 안배할 것도 없고 다른 곳에 두어 앉힐 것도 없다. 훌쩍 벗어나 텅 빈 채 엉긴다. 이른바 “사람이 무심(無心)하여 도에 합하고, 도가 무심하여 사람에 합한다”는 것이다.
至於應物隨緣,不生異見,只據現定,一機一境,悉是坐斷,更說甚麼棒喝?
나아가 사물에 응하고 인연을 따르되, 다른 견해를 내지 않는다. 다만 현전한 정(定)에 의거하여, 낱낱의 기틀과 낱낱의 경계를 다 앉은 자리에서 끊는다(坐斷). 다시 무슨 방망이와 할을 말하겠는가?
照用權實,一擬便透,唯我能知,更無餘事。長時如此履踐,何憂本分事不辦耶?
비추어 씀(照用)과 방편·진실(權實)은 한 번 헤아리기만 하면 곧 꿰뚫는다. 오직 나만이 알 뿐, 다시 다른 일이 없다. 오랫동안 이렇게 밟아 나간다면, 어찌 본분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근심하겠는가?
쉽게 읽기이 종문의 요긴한 대목은 오직 뜻을 쉬고 마음을 쉬는 데 있다. 곧바로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처럼 되어 싸늘하고 고요하며, 육근과 육진이 서로 짝하지 않고,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를 끊으며, 발밑이 텅 비어 아득하여 따로 안배하거나 다른 데 두어 앉힐 것이 없이, 훌쩍 벗어나 텅 빈 채 응결되는 데 있다. 이른바 “사람이 무심하여 도에 합하고, 도가 무심하여 사람에 합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물에 응하고 인연을 따르되 다른 견해를 내지 않고, 다만 눈앞에 드러난 정에 의거하여 낱낱의 기틀과 낱낱의 경계를 죄다 좌단, 곧 앉은 자리에서 단칼에 끊어 버린다. 그러니 다시 무슨 방과 할을 말하겠는가. 비추어 씀과 방편과 진실을 한 번 헤아리기만 하면 곧 꿰뚫으니, 오직 나만이 능히 알 뿐 다시 다른 일이 없다. 오랜 세월 이와 같이 밟아 실천한다면, 어찌 본분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근심하겠는가.
풀이 4
棒喝 방할'只據現定,一機一境,悉是坐斷,更說甚麼棒喝' — 現前한 定에 의거해 機境을 모두 坐斷하면 棒喝도 군더더기가 된다는 말.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只據現定'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자체역은 定을 삼매로 읽어 '현전한 정에 의거'로 옮기고 이어지는 一機一境을 좌단(坐斷)의 목적어로 처리한다. 책은 現定을 '지금 그대로'로 보아 一機一境을 그 수식·목적으로 삼는다. 現定이 삼매의 술어인지 현전한 소여(所與)인지 확정할 전거가 없어 둘 다 성립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更說甚麼棒喝?照用權實,一擬便透'는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자체역은 CBETA 구두(棒喝 뒤에 '?', 照用權實이 一擬便透와 한 절로 묶임)에 따라 照用權實을 一擬便透의 주어로 삼아 '照用·權實을 한 번 헤아리면 곧 꿰뚫는다'로 읽는다. 책은 棒·할·조·용·권·실 여섯을 한 반문에 몰아넣고 一擬便透를 무주어 독립절로 본다. 후자도 임제 접화 범주(棒喝·四照用·權實)의 나열로서 성립하여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46
  1. 本分提綱 본분제강

    본분은 학인 본래의 참면목·본분사이다. 제강(提綱)은 그물의 벼리(綱)를 들 듯 종지의 핵심을 들어 보이는 것이다.

  2. 一句截流 일구절류

    한 구절로 학인의 정식(情識)의 흐름을 끊음이다. 절류(截流)는 임제·운문 계통에서 즐겨 쓴 접화 수법을 가리키는 상용어이다.

  3.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말과 글, 곧 깨달음에 보탬이 안 되는 군더더기 말을 이른다. 선사들은 자기 법문을 낮추어 '갈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4. 浮根虗識 부근허식

    부근(浮根)은 들뜬 육근(六根), 허식(虗識)은 헛된 의식이다. 진실한 견성이 아닌 분별의 주체를 낮춰 이른다.

  5. 可祖承當 가조승당

    가조(可祖)는 제2조 혜가(慧可)이다. 눈 속에 팔을 끊어 구법(求法)하여 달마의 심인을 승당(承當)(감당하여 이어받음)한 것을 가리킨다.

  6. 拂子 불자

    총채 모양 법구이다. 선사가 설법·거량 시 들어 종지를 나타낸다.

  7. 禪床 선상

    좌선하는 평상, 또 선사가 올라앉아 법을 설하는 높은 자리다. 상당한 선사는 말을 맺으며 손이나 주장자로 선상을 치거나, 선상에서 내려오는 몸짓으로 법을 보이기도 한다.

  8. 掉棒打月 도방타월

    몽둥이를 휘둘러 달을 친다는 말이다.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헛수고를 빗댄다. 선문에서는 말이나 알음알이로 본분을 붙잡으려는 일을 두고 흔히 쓴다.

  9. 龍象蹴蹋 용상축답

    용과 코끼리가 힘차게 차고 밟는다는 말이다. 『유마경』에서 '용과 코끼리의 발길질은 나귀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 데서 왔다. 큰 그릇의 수행자가 거침없이 나아감을 비유한다.

  10. 作家 작가

    선가에서 솜씨와 안목을 두루 갖춘 노련한 스승을 이른다. 배우는 이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 자유자재로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는 뜻이 다르다.

  11. 入草求人 입초구인

    풀숲에 몸소 들어가 사람을 구제함이다. 종사가 학인을 위해 스스로 낮추어 방편의 진흙탕에 들어감을 이르는 선어이다. '위인불석미모(爲人不惜眉毛)'와 통한다.

  12. 金剛圈 금강권

    金剛圈은 뛰어넘을 수 없는 금강의 쇠고리, 栗棘蓬은 삼킬 수 없는 밤송이 가시이다. 정식으로는 뚫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話頭·관문을 상징하는 비유이다. 원오의 스승 五祖法演과 그 스승 白雲守端 계통에서 상용된 어구이다.

  13. 落處 낙처

    말이나 행동이 떨어져 닿는 자리, 곧 그 말이 참으로 가리키는 속뜻을 이른다. 선에서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낙처를 알아채는 것을 눈 밝은 사람의 일로 친다.

  14. 枯木朽株 고목후주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헛된 생각과 분별이 다 끊겨 크게 한 번 죽은 듯 고요해진 자리를 비유한다. 그 자리에서 다시 큰 작용이 살아나야 한다고 본다.

  15. 根塵不偶 근진불우

    근(根)은 육근(六根), 진(塵)은 육진(六塵)이다. 육근과 육진이 서로 짝하지 않아 반연(攀緣)이 끊어짐이다.

  16. 坐斷 좌단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단번에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온갖 분별과 경계를 꽉 눌러 끊어 아무것도 끼어들 틈이 없게 함이다. ‘시방을 좌단한다’처럼 쓴다.

  17.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18.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19.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20. 教外別行 교외별행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으로,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쓴다.

  21.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

    금강권(金剛圈)은 뛰어넘기 어려운 쇠테, 율극봉(栗棘蓬)은 삼키기 어려운 밤송이다. 양기(楊岐) 스님이 납자를 시험하던 관문의 말로, 머리로 헤아려서는 뚫을 수 없는 화두를 이른다.

  22. 廉纖 염섬

    본래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를 이르는 말이다. 선어록에서는 자잘하고 번거로운 생각, 곧 미세한 분별이나 말의 군더더기를 가리킨다.

  23. 瞬目揚眉 순목양미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올린다는 말이다. 선승이 말 대신 몸짓으로 뜻을 보이던 방편을 이른다. 마조(馬祖)가 약산(藥山)에게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게 한다'고 한 문답으로 널리 알려졌다.

  24. 教外別行·單傳心印 교외별행·단전심인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하고, 마음의 도장(心印)을 한 줄기로만 전한다는 말이다. 문자에 기대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잇는다는 선종의 근본 표방이다. 흔히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한다.

  25. 棒喝 방할

    방(棒)은 몽둥이로 치는 것, 할(喝)은 크게 고함치는 것이다. 말과 생각의 길을 단번에 끊어 깨치게 하던 선승의 가르침 방식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가장 이름났다.

  26. 示鑑上人 시감상인

    감(鑑) 상인에게 준 글의 제목이다. 상인(上人)은 덕과 지혜를 갖춘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감 상인이 누구인지는 더 알려져 있지 않다.

  27. 見性 견성

    자기의 본래 성품을 사무쳐 본다는 말이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고, 제 안에 본디 갖춘 성품을 몸소 깨닫는 일이다. 선종은 이것을 깨침의 핵심으로 삼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28. 作家宗師 작가종사

    솜씨가 뛰어나고 안목이 밝은 큰 스승을 이른다. 작가(作家)는 학인을 다루는 수완이 능숙한 선지식, 종사(宗師)는 종문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벽암록』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29. 祖師 조사

    한 종파를 열었거나 그 법을 이어 전한 큰 스승이다. 선종에서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이어 전한 달마를 비롯한 역대 조사를 이른다.

  30. 萬機寢削 만기침삭

    만기(萬機)는 학인이 일으키는 온갖 심기·분별이다. 침(寢)은 잠재움, 삭(削)은 깎아 없앰이다. 온갖 기틀을 잠재워 제거함이다.

  31. 心田 심전

    마음을 밭(田)에 견준 말이다. 온갖 종자(種子)가 뿌려지고 자라는 곳으로서의 마음이다.

  32. 言句機境 언구기경

    언구(言句)는 언어문자, 기경(機境)은 접화의 기틀(機)과 그 대상 경계(境)이다. 이 자리에 붙들리면 총명한 알음알이로 훔쳐가 버린다고 경계한다.

  33. 曲爲時緣·密付此印 곡위시연·밀부차인

    석가가 일대(一代)의 설법조차 '시절 인연(時緣)에 굽혀 맞춘 방편'이라 하고, 맨 끝에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가섭(迦葉)에게 염화미소(拈花微笑)로 이 심인을 은밀히 부촉했다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전승이다. 차인(此印)은 곧 심인(心印)이다.

  34. 達磨少林九年冷坐 달마소림구년냉좌

    달마(菩提達磨)가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아홉 해 동안 면벽하고 냉좌(冷坐)한 고사이다. 냉좌(冷坐)는 면벽(面壁)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35. 揚眉瞬目·舉拂敲床 양미순목·거불고상

    '양미순목'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는 것, '거불고상'은 불자(먼지떨이 모양의 법구)를 들어 보이거나 선상을 치는 것이다. 모두 선사들이 법을 드러내 보일 때 쓰던 몸짓이다.

  36. 印可 인가

    스승이 학인의 깨달음을 점검하여 인정·증명함이다. 분부(分付)(부촉)와 짝하여 쓰인다.

  37. 祕魔 비마

    오대산(五臺山) 비마암화상(祕魔巖和尚)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法嗣)로 전하며, 평생 나무 작대기(木杈) 하나를 지니고 오는 학인의 목을 걸치며 '어떤 마매(魔魅)가 너를 출가·행각케 했느냐, 말해도 작대기 아래 죽고 못해도 작대기 아래 죽는다'고 다그친 공안으로 유명하다.

  38. 魔魅 마매

    마귀·도깨비(魑魅)이다. 사람을 홀리는 사매(邪魅)로, 비마암이 학인의 출가·행각의 근본 동기를 되물어 정식을 끊어내는 말이다.

  39. 休意休心 휴의휴심

    뜻(意)을 쉬고 마음(心)을 쉼이다. 분별 조작을 온통 그침이다. 이 종문의 요체로 제시된다.

  40. 人無心合道·道無心合人 인무심합도·도무심합인

    '사람이 무심하여 도에 합하고, 도가 무심하여 사람에 합한다'이다. 무심합도(無心合道)를 표방하는 선종의 상용 게구로, 여러 어록·『종경록』등에 보인다.

  41. 應物隨緣 응물수연

    사물에 응하고 인연을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딴 견해를 내지 않고 현전한 정(定)에 의거함을 말한다.

  42. 照用權實 조용권실

    조용(照用)은 임제(臨濟)의 사조용(四照用), 권실(權實)은 방편(權)과 진실(實)이다. 임제종 접화의 핵심 범주로, '한 번 헤아리기만 하면 곧 꿰뚫는다(一擬便透)'고 한다.

  43. 祕魔巖·木叉 비마암·목차

    오대산 비마암 화상의 '나무 작살' 공안이다. 화상은 늘 나무 작살 하나를 쥐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하면 작살로 목을 걸고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시켰느냐, 어떤 마귀가 너를 행각하게 했느냐, 말해도 작살 아래 죽고 말 못해도 작살 아래 죽는다' 하였다(경덕전등록 권10). 마조 스님의 제자 영단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이것을 구지의 한 손가락, 조주의 '차 마시게' 같은 공안과 나란히 들곤 했다(원오어록 권14·15).

  44. 曲爲時緣 곡위시연

    석가가 일대(一代)의 설법조차 '시절 인연(時緣)에 굽혀 맞춘 방편'이라 하고, 맨 끝에 靈山會上에서 迦葉에게 拈花微笑로 이 심인을 은밀히 부촉했다는 敎外別傳의 전승이다. 此印은 곧 心印이다.

  45. 人無心合道 인무심합도

    '사람이 무심하여 도에 합하고, 도가 무심하여 사람에 합한다'이다. 무심합도(無心合道)를 표방하는 선종의 상용 게구로, 여러 어록·『종경록』등에 보인다.

  46. 祕魔巖 비마암

    五臺山 祕魔巖和尚. 永泰寺 靈湍의 法嗣다. 늘 나무 작대기(木叉) 하나를 들고 있다가 僧이 와서 절하면 목에 걸고 '那箇魔魅教汝出家,那箇魔魅教汝行脚,道得也叉下死,道不得也叉下死'라 하였다(『景德傳燈錄』 권10, T51n2076_p0280a29).

문단 4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6저본 《卍新纂續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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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