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23편

조선인(照禪人)에게 주는 글

示照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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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1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무주석공혜장장(撫州石鞏慧藏章) : '三十年張弓架箭, 지사득반개성인(只射得半箇聖人)'으로, 본편 서두 궁술 공안의 원출전이다(삼평의충(三平義忠) 문답 포함).
23.1
한문石鞏三十年一張弓、兩隻箭,只射得半箇人,爲甚不全去?
번역석공(石鞏)은 삼십 년 동안 활 한 자루와 화살 두 대로, 겨우 반쪽짜리 사람만 쏘아 맞혔다. 어찌하여 온전히 맞히지 못했는가?
蓋是中豈可容如此?何故?不見道:向上一路,千聖不傳。
대저 이 가운데에 어찌 이런 것을 들일 수 있겠는가. 무슨 까닭인가?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는가. “향상(向上)의 한 길은 천 성인(千聖)도 전하지 못한다.”
若體得不傳之意,則盡底裏直言此事,無你用心機處,無你湊泊存坐處。
전하지 못한다는 그 뜻을 몸소 깨치면, 이 일을 밑바닥까지 곧바로 다 말해 준다 해도 그대가 마음의 기틀을 쓸 곳이 없다. 그대가 달라붙어 자리 잡고 앉을 곳이 없다.
是故從上來,唯是特唱直指,要人格外玄悟,不拖泥水,不墮塵緣。
그러므로 예로부터 오직 곧바로 가리키는 것만을 특별히 내세웠다. 사람들이 격식 밖에서 그윽이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진흙과 물을 끌고 다니지 않고, 티끌 같은 인연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쉽게 읽기석공은 삼십 년 동안 활 한 자루와 화살 두 대만 지녔다. 그러나 겨우 반쪽짜리 사람 하나를 쏘아 맞혔을 뿐이다. 어찌하여 석공은 온전한 한 사람을 맞히지 못하였는가? 이 자리에는 그런 어중간한 것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향상으로 오르는 한 길은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전하지 못한다는 그 뜻을 몸소 깨치면, 이 일을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곧바로 일러 주어도 그대는 머리를 굴릴 데가 없고, 달라붙어 앉을 데가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스승들은 오직 곧바로 가리켜 보이기만 하였다. 그렇게 하여 사람이 격식 밖에서 그윽이 깨닫게 하였다. 진흙과 물을 끌고 다니지 않게 하고, 티끌 같은 인연에 떨어지지 않게 한 것이다.
풀이 3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4 「漳州三平義忠」: 石鞏이 '三十年一張弓兩隻箭,只謝得半箇聖人'이라 하고 활을 꺾었다(『五燈會元』 권5는 '秖射得半箇聖人'). 뒤의 '向上一路,千聖不傳'은 권7 盤山寶積章의 말이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칠(卷七) 반산보적장(盤山寶積章) : '향상일로(向上一路), 천성불전(千聖不傳), 학자로형(學者勞形), 여원착영(如猿捉影)'으로, 본문 '향상일로천성불전(向上一路千聖不傳)' 상투구의 원출전이다.
23.2
한문所以道:他上流聊聞舉著,剔起便行,萬機收他不著,千聖籠羅他不住。
번역그래서 말한다. 저 윗길의 무리(上流)는 잠깐 들어 보이는 것을 듣기만 해도 번쩍 일어나 곧장 간다. 온갖 기틀로도 그를 거두어 잡지 못하고, 천 성인도 그를 그물로 가두어 두지 못한다.
要如是參究證入,要如是提掇舉唱,豈論懵底?
이렇게 참구(參究)하여 증득해 들어가야 하고, 이렇게 들어 일으켜 외쳐 보여야 한다. 어리석고 아둔한 자야 어찌 따지겠는가?
箇箇須眼似流星,殺人不眨眼,始得相應。
누구든 눈이 별똥별 같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비로소 서로 들어맞는다.
若踟蹰凝佇,則蹉卻千萬了也。有此一至寶之地,乃可以建立萬差。
머뭇거리며 우두커니 서 있으면, 천만 리나 어긋나 버린다. 이 하나의 지극한 보배 자리가 있어야, 비로소 온갖 차별을 세울 수 있다.
쉽게 읽기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뛰어난 그릇을 지닌 상근기의 무리는 잠깐 들어 보이는 것만 들어도 곧바로 떨쳐 일어나 가 버린다. 온갖 솜씨로도 그를 붙잡지 못하고, 천 명의 성인이라도 그를 그물로 가두지 못한다. 이렇게 파고들어 참구하여 몸소 증득해 들어가야 한다. 또 이렇게 종지를 들어 일으켜 펼쳐 보여야 한다. 어찌 어리석고 둔한 자를 상대로 하는 말이겠는가? 하나하나 그 눈이 별똥별처럼 빨라야 한다. 사람을 베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비로소 서로 들어맞는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며 우두커니 서 있으면 천만 리나 어긋나고 만다. 이 하나의 지극한 보배 같은 경지가 있어야 비로소 온갖 차별을 세울 수 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聊聞舉著,剔起便行'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舉著는 聞의 목적어로 '잠깐 제기됨(들어 보임)을 듣기만 하여도 곧 떨쳐 일어나 간다'로 읽는 것이 표준 구문이다. 舉著를 상근기 주체의 동작('듣자마자 들어보이고')으로 본 책 독해는 뒤의 剔起便行과 주체 동작이 겹쳐 부자연스러우며, 상근기가 '남이 제기한 화두를 듣기만 해도 즉시 벗어난다'는 문맥과도 맞지 않는다. 자체역이 옳다.
23.3
한문儻真實到恁麼,終不揑恠作相,畫㨾起摸,只守閑閑,尚不可得。
번역참으로 이런 경지에 이르면, 끝내 괴이한 짓을 꾸며 모양을 짓지 않는다. 본을 그려 더듬어 찾지도 않는다. 그저 한가로움을 지키려 해도, 그마저 얻을 수 없다.
至於立己透脫,爲物解黏去縛,無不皆是踞地時節。
자기를 세워 꿰뚫어 벗어나는 일이나, 남을 위해 끈끈한 것을 풀고 얽매임을 벗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땅을 딛고 웅크린 사자(踞地)의 때 아닌 것이 없다.
臨濟道:山僧見處,也要諸人共知,直下坐斷報化佛頭。
임제(臨濟)께서 말씀하셨다. “산승이 본 자리를 여러분도 다 함께 알았으면 한다. 곧바로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의 머리를 앉은 채로 끊어 버려라.”
據此垂示,既坐報化佛,向上更有箇甚?豈是世間麤想所度?
이 가르침대로라면, 이미 보신불과 화신불을 깔고 앉았다. 그 위로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어찌 세간의 거친 생각으로 헤아릴 것이겠는가?
쉽게 읽기참으로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끝내 괴이한 짓을 꾸미지 않는다. 없는 모양을 지어내거나 본을 그려 더듬어 찾지도 않는다. 그저 한가로움만 지키려 해도 도리어 그마저 얻지 못한다. 자기를 세워 꿰뚫어 벗어나고, 남을 위해 끈끈하게 들러붙은 것을 풀어 주며, 얽매임을 벗겨 준다. 그 하나하나가 땅을 딛고 웅크린 사자가 아닌 때가 없다. 임제의현이 이렇게 일렀다. '내가 본 자리를 여러분도 다 함께 알기 바란다. 곧바로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를 앉은 채로 끊어 버려라.' 임제의 이 말대로라면 이미 보신불과 화신불을 깔고 앉은 것이다. 그 위로 향상하여 다시 무엇이 더 있겠는가? 어찌 세간의 거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풀이 3
臨濟義玄 임제의현『臨濟錄』 示衆 '道流取山僧見處,坐斷報化佛頭'(T47n1985_p0497c09). 원오는 '山僧見處,也要諸人共知,直下坐斷報化佛頭'로 풀어 들었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直下坐斷報化佛頭'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坐斷을 책은 '눌러 앉다(깔고 앉다)'로, 자체역은 '앉은 채 끊다'로 읽는다. 바로 뒤 '既坐報化佛'이 斷 없이 坐만 쓰므로 圜悟 자신이 '깔고 앉음'으로 재독한 정황이 있어 책도 성립하고, 臨濟錄 원의의 斷(截斷)을 살린 자체역도 정당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23.4
한문要須打摒從前妄想計較,執著情塵勝劣見解,明辨性理終非本分,一刀截卻,直得脫然自得如毫末許,
번역모름지기 지난날의 망상과 헤아림, 정의 티끌(情塵)에 매달리는 것, 낫고 못함을 가리는 견해를 다 쳐서 물리쳐야 한다. 성품과 이치를 밝게 가리는 것조차 끝내 본분(本分)이 아니다. 한칼에 끊어 버려, 곧바로 털끝만큼이라도 훌쩍 벗어나 스스로 얻어야 한다.
盡十方界塵無不包攝,全作用是佛祖、全佛祖是作用,一棒一喝、一句一機並無窠窟,一切以實證印之,如靈藥點鐵成金,無不皆從我轉。
그러면 온 시방세계(十方世界)의 티끌을 감싸 거두지 않음이 없다. 온전한 작용이 그대로 불조(佛祖)요, 온전한 불조가 그대로 작용이다. 한 방망이, 한 할(喝), 한 구절, 한 기틀에 모두 소굴이 없다. 모든 것을 참된 증득으로 도장 찍는다. 신령한 약이 쇠에 닿아 금을 만들듯, 무엇이든 나를 따라 굴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既久參問,多作知見解路,只益多聞,終非實事。
오래도록 참문(參問)했으면서도 흔히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길만 짓는다면, 그저 많이 들은 것만 늘릴 뿐이다. 끝내 실다운 일이 아니다.
須一歇一切歇、一了一切了,見此本來面目、達此本地風光,然後作爲一切成現,不假心力,如風偃草,
모름지기 하나를 쉬면 모두가 쉬고, 하나를 마치면 모두가 마쳐야 한다. 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고, 이 본지풍광(本地風光)에 사무쳐야 한다. 그런 뒤라야 짓고 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져 드러난다. 마음의 힘을 빌리지 않으니, 바람이 풀을 눕히는 것과 같다.
雖山林城市亦無二種,喚作把得住、作得主,
산속이든 저잣거리든 두 가지가 없다. 이것을 ‘꽉 붙잡았다’,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權衡含生命脉在自手中,隨心意作何判斷,便謂之無用道,豈非至要至妙、安穩大解脫哉?
저울(權衡)과 뭇 생명의 목숨줄이 제 손안에 있어, 마음 가는 대로 어떤 판단을 내린다. 이것을 곧 ‘쓸 데 없는 도(無用道)’라 한다. 어찌 지극히 요긴하고 지극히 묘한, 편안한 큰 해탈(大解脫)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이전의 망상과 이리저리 재는 헤아림을 모조리 쳐서 물리쳐야 한다. 티끌에 물든 분별하는 마음에 대한 집착도, 잘나고 못남을 가리는 견해도 다 쳐 내야 한다. 성품과 이치를 밝게 가려내는 것조차 끝내 본분이 아니다. 한칼에 끊어 버려 털끝만큼이라도 훌쩍 벗어나 스스로 얻어야 한다. 그리하면 온 시방세계의 티끌이 다 감싸 거두어진다. 온전한 작용이 그대로 부처와 조사요, 온전한 부처와 조사가 그대로 작용이 된다. 한 방망이질과 한 고함, 한 구절과 한 기틀이 모두 숨어들 구멍이 없다. 그리하여 온갖 것을 참된 증득으로 도장 찍듯 한다. 마치 신령한 약을 쇠에 대어 금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니 무엇이든 나로부터 굴러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오래도록 참문하고도 흔히 분별하는 앎과 알음알이의 길만 짓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그저 많이 들은 것만 늘려 가면 끝내 실다운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를 쉬면 일체가 쉬고, 하나를 마치면 일체가 마쳐야 한다. 이 본래면목, 곧 제 본래 참모습을 보아야 한다. 또 이 본지풍광, 곧 본디 제 자리의 경계에 사무쳐야 한다. 그런 뒤라야 짓고 행하는 모든 것이 저절로 드러난다. 마음의 힘을 빌리지 않으니, 마치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 것과 같다. 산속에 있든 저잣거리에 있든 다를 것이 없다. 이를 두고 '꽉 잡아 지녔다',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저울질하여 사람을 재는 저울과 뭇 생명의 목숨줄이 제 손안에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떤 판단을 내리든, 이것을 곧 '쓸 곳 없는 도'라 한다. 어찌 지극히 요긴하고 지극히 묘하며, 더없이 편안한 큰 해탈이 아니겠는가?
풀이 3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明辨性理終非本分'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오역이다. 禪의 向上 부정 상투로 '성리를 밝게 분별함조차 끝내 본분이 아니다'가 정독이며, 뒤의 一刀截卻의 대상이 곧 이 明辨性理다. 책은 '본성의 이치를 가려야 한다'로 明辨性理를 긍정 명령으로 끊고 終非本分을 별개 주어로 처리하여, 온갖 지견을 베어버린다는 문맥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내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一句一機並無窠窟'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미세 오역이다. 一機의 機는 기틀·機鋒인데 책은 '하나의 경계'로 옮겨 境과 혼동했다. 내 번역 '한 기틀'이 정확하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如靈藥點鐵成金'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오역·과의역이다. 點鐵成金은 '쇠에 대어 금이 되게 하다'라는 확정 성어다. 책은 '무쇠를 두들겨 금덩이가 되듯'으로 靈藥을 만드는 대상으로 오독하고 원문에 없는 '두들겨(打)'를 넣었다. 내 번역 '신령한 약이 쇠에 대어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가 정확하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2
  1. 石鞏三十年一張弓兩隻箭 석공삼십년일장궁량척전

    '석공은 삼십 년 동안 활 한 자루와 화살 두 대'라는 말이다. 석공혜장(石鞏慧藏)이 늘 활을 겨누어 찾아온 학인을 시험한 일을 가리킨다. 삼평의충(三平義忠)이 절하자 활을 겨누며 '화살을 보라(간전, 看箭)' 하였고, 삼평이 가슴을 열며 '이는 사람 죽이는 화살이니, 사람 살리는 화살은 어떤 것입니까' 하자 석공이 활시위를 세 번 튕겼다.

  2. 只射得半箇人 지사득반개인

    '겨우 반쪽짜리 사람을 쏘아 맞혔을 뿐'이라는 말이다. 석공혜장(石鞏慧藏)이 활시위를 세 번 튕기자 삼평의충(三平義忠)이 절하니, 석공이 '삼십 년 활을 당기고 화살을 걸었으나 겨우 반쪽 성인을 쏘았다(三十年張弓架箭, 只射得半箇聖人)'고 한 데서 나왔다. '반개인(半箇人)'은 '반개성인(半箇聖人)'을 줄인 말이다.

  3. 石鞏 석공

    석공혜장(石鞏慧藏)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法嗣)(법을 이은 제자)다. 본래 사냥꾼이었다가 마조에게 귀의하였고, 늘 활을 겨누어 학인을 시험한 '장궁(張弓)' 기연으로 유명하다. 무주(撫州) 석공산(石鞏山)에 주석하였다.

  4. 向上一路·千聖不傳 향상일로·천성불전

    '위로 향하는 한 길은 천 명의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마지막 자리는 말이나 가르침으로 건네줄 수 없고 스스로 사무쳐야 한다는 뜻이다. 반산보적(盤山寶積)의 법문에서 나왔다.

  5. 湊泊 주박

    배를 대어 머문다는 뜻으로, 어떤 자리에 가 닿아 붙는 것을 이른다. 선에서는 흔히 '주박하기 어렵다'고 하여, 분별로는 다가붙을 틈이 없는 자리를 나타낸다.

  6. 格外玄悟 격외현오

    언교·격식의 규격(格) 밖(外)에서 그윽이 깨달음(玄悟)이다. 문자·상식의 틀을 벗어난 오입(悟入)이다.

  7. 提掇舉唱 제철거창

    종지(宗旨)를 들어 일으켜(提掇) 대중에게 제창·창도(唱導)함, 곧 제창(提唱)이다.

  8. 眼似流星 안사유성

    '눈이 별똥별 같다'는 말. 기틀을 알아보는 눈이 별똥별처럼 빠른, 준렬한 작가(作家, 걸출한 종사)의 기봉(機鋒)을 그린 상투 표현이다. '살인불잡안(殺人不眨眼)'과 짝지어 쓰며, 원오(圜悟)가 벽암록(碧巖錄)에서 즐겨 썼다.

  9. 殺人不眨眼 살인불잡안

    ‘사람을 베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배우는 이의 분별과 집착을 사정없이 끊어 주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와 기개를 이른다.

  10. 踞地 거지

    거지사자(踞地師子)(땅을 딛고 웅크린 사자)다. 살활자재(殺活自在)한 종사(宗師)의 위엄을 비유하는 선어(禪語)다.

  11. 山僧見處 산승견처

    '산승(나)이 본 자리'라는 말로, 임제(臨濟)가 자기의 견처(見處)를 가리킨 말이다. 『임제록』의 '약산승견처(約山僧見處), 좌단보화불두(坐斷報化佛頭)'에서 나왔다.

  12. 坐斷報化佛頭 좌단보화불두

    보신불·화신불(報化佛)의 머리를 깔고 앉아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부처라는 생각에조차 매이지 않고 그 위로 벗어난 경지를 이른다. 임제(臨濟)의 법문에서 온 말이다.

  13.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14. 報化佛 보화불

    보신불(報身佛)과 화신불(化身佛)이다. 보신은 수행의 결과로 이룬 몸, 화신은 중생을 건지려 나타낸 몸이다. 임제(臨濟)의 '보신불·화신불의 머리를 끊는다'는 말이 이름났다.

  15.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16. 如靈藥點鐵成金 여령약점철성금

    신령한 약을 쇠에 대면 금이 되듯, 종사의 한 기틀·한 마디가 범부를 그대로 성인으로 전환시킴의 비유다(點鐵成金).

  17.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18.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19. 權衡·命脉 권형·명맥

    권형(權衡)(저울)은 학인을 감별·재단하는 권한, 명맥(命脉)은 뭇 생령(生靈)의 목숨줄이다. 종사가 살활(殺活)의 자재(自在)를 손안에 쥠을 비유한다.

  20. 無用道 무용도

    '쓸 곳 없는 도'로, 인위의 작용(心力)을 빌리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무공용(無功用)의 경지다. 여풍언초(如風偃草)(바람이 풀을 눕히듯)의 안온한 대해탈(大解脫)로 귀결한다.

  21.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2. 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 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

    臨濟義玄(慧照禪師)의 語錄. 흔히 『臨濟錄』이라 한다(T47n1985). 示衆의 '取山僧見處,坐斷報化佛頭,十地滿心猶如客作兒'(T47n1985_p0497c09)가 이름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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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무주석공혜장장(撫州石鞏慧藏章) : '三十年張弓架箭, 지사득반개성인(只射得半箇聖人)'으로, 본편 서두 궁술 공안의 원출전이다(삼평의충(三平義忠) 문답 포함).

문단 4국역본 대조 5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