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7편
선자(禪者)에게 주는 글
示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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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낱말 27
- 威音王 위음왕
『법화경』에 나오는 아득한 옛 부처, 위음왕불(威音王佛)이다. 같은 이름의 부처 가운데 맨 처음 부처다. 선어록에서는 '위음왕 이전'이라 하여 시간과 분별이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 增上緣 증상연
사연(四緣)의 하나(adhipati-pratyaya). 다른 법이 생겨나는 것을 도와 힘을 더해 주는 유력한 조건. 선지식이 수행자에게 '증상연(增上緣)'이 된다는 뜻이다.
- 一牛吼地 일우후지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리(약 일리(一里) 남짓). 세존(世尊)이 미래세에 '일우후지(一牛吼地)'마다 선지식이 있어 서로 채찍질·권면하며 수행하리라 수기(授記)했다는 전거를 원오가 인용한 것이다.
-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 轉物 전물
《능엄경(楞嚴經)》의 '약능전물(若能轉物), 즉동여래(卽同如來)'. 경계(사물)에 끌려 굴림당하지 않고 도리어 경계를 굴려 쓰면 곧 여래(如來)와 같다는 뜻이다.
-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 根塵 근진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여섯 경계를 함께 이른다. 눈·귀·코·혀·몸·뜻과, 그것이 만나는 빛깔·소리·냄새·맛·닿음·생각의 대상이다. 백장(百丈)의 '근진을 멀리 벗어났다'는 말이 유명하다.
- 管帶 관대
늘 붙들어 챙기고 몸에 지닌다는 말이다. 깨친 마음자리를 잠시도 놓치지 않고 이어 지켜 가는 공부를 이른다. 보임(保任)과 뜻이 통한다.
- 保任 보임
깨친 뒤에 그 자리를 잃지 않도록 잘 지키고 길러 가는 공부다. 흔히 보림이라고도 읽는다. 옛사람은 소 치는 이가 소를 지켜보아 남의 곡식을 밟지 않게 하듯 하라고 비유하였다.
-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 回光返照 회광반조
밖으로 내달리던 마음의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되비춘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나 바깥 경계를 좇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선 공부의 요긴한 가르침이다. 임제(臨濟)의 말에 보인다.
- 有爲有漏 유위유루
유위(有爲)는 인연이 모여 지어진 것, 유루(有漏)는 번뇌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둘을 아울러 생겨났다 사라지며 번뇌에 물든 세간의 모든 일을 이른다. 반대말은 무위(無爲)·무루(無漏)다.
- 無生無爲 무생무위
남이 없고(無生) 억지로 지어냄이 없다(無爲)는 말이다. 나고 죽음과 인위의 조작을 모두 벗어난 열반의 경지를 이른다.
- 種性 종성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타고난 바탕이나 소질을 이른다. 큰 법을 감당할 만한 근기를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 達磨祖師 달마조사
보리달마(菩提達磨)(Bodhidharma). 남천축 출신으로 중국에 건너온 선종(禪宗) 초조(初祖). 서천(西天)(인도) 28조(祖)이자 동토(東土)(중국) 초조(初祖).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의 종지를 상징한다.
- 天竺 천축
인도의 옛 이름. '자천축서래(自天竺西來)'는 달마가 인도에서 동쪽 중국으로 온 일을 '서쪽에서 옴'으로 표현한 것으로, 곧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그 서래(西來)다.
- 敎外旨 교외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뜻. 경교(經敎)의 문자 밖에서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는(以心傳心) 별전(別傳)의 종지다.
- 十虗 십허
십허(十虛). 시방(十方)의 허공(虛空). '함토십허(含吐十虗)'는 시방 허공을 머금었다 토한다는 뜻으로 심량(心量)의 광대무변함을 형용한다.
- 菩提心 보리심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참되고 바른 마음이다. 범어 보디치타를 옮긴 말이다.
- 威音那邊 위음나변
위음왕불(威音王佛) 저편, 곧 '위음왕이전(威音王已前)'. 위음왕불(威音王佛)은 《법화경(法華經)》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의 가장 오래고 최초인 부처로, 선문(禪門)에서 분별 이전·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본지(本地)를 가리키는 상투어다. '나변(那邊)'은 그 저쪽 소식이다.
- 二六時中·
十二時 이육시중·십이시 하루를 12시(時)(각 2시간)로 나눈 온 하루. '이육시중(二六時中)'은 곧 종일이며, 뒤의 '십이시(十二時)'도 같은 뜻이다.
- 百草頭邊薦取 백초두변천취
'온갖 풀 끝에서 알아차리라'. 눈앞의 온갖 사물·일상 그대로에서 조사(祖師)의 뜻(本分事)을 곧바로 알아차리라는 선어(禪語)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흔히 방거사(龐居士)에 귀속) 계열의 표현이다.
- 鏡清道怤 경청도부
당말·오대의 선승(868~937)으로 설봉의존(雪峰義存)의 법을 이었다. 월주(越州) 경청사에 머물러 경청이라 불리고, 뒤에 항주 용책사로 옮겼다. 줄탁(啐啄) 문답과 '문밖에 무슨 소리냐'는 빗소리 문답이 『벽암록』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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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