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60편

혜공지객(慧空知客)에게 주는 글

示慧空知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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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
한문諸佛出世,祖師西來,鞠其旨歸,斷無他事,
번역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고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것은, 그 뜻을 캐어 보면 결코 다른 일이 아니다.
唯以同體大悲、無緣等慈,揭示此段大因緣,圖利根上智,越格超宗,直下領略,所謂教外別行,單傳心印。
오직 동체대비(同體大悲)와 무연등자(無緣等慈)로 이 큰 인연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높은 이가 격식을 넘고 종지(宗旨)를 넘어, 그 자리에서 곧장 알아차리기를 바라셨다. 이것이 이른바 교(敎) 밖에서 따로 행하여 마음 도장(心印)을 홀로 전하는 일이다.
是故於十萬眾前拈花,只有迦葉特證,不覺微笑,由是釋尊付授。
그래서 십만 대중 앞에서 꽃을 드셨을 때, 오직 가섭(迦葉)만이 홀로 깨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이로 말미암아 석존(釋尊)께서 법을 맡기셨다.
而達麼游梁歷魏,尋人在少林,面壁久之,獨得二祖深信,立雪斷臂,一言之下安心,遂傳衣鉢,此豈小事哉?
또 달마(達磨)께서는 양(梁)나라에 노니시고 위(魏)나라를 거쳐 사람을 찾으시다가, 소림(少林)에서 오래도록 벽을 마주하셨다. 그리하여 오직 이조(二祖)의 깊은 믿음을 얻으셨다. 이조는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었고, 한마디 말끝에 마음이 편안해져 마침내 의발(衣鉢)을 전해 받았다. 이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쉽게 읽기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고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것은, 그 뜻을 헤아려 보면 결코 다른 일이 아니다. 오직 동체대비와 무연등자로 이 큰 인연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뿐이다. 동체대비란 너와 나를 한 몸으로 여기는 자비이고, 무연등자란 아무 조건 없이 평등하게 베푸는 자비다. 이 자비로,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이들이 격식을 뛰어넘고 종지를 넘어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차리기를 바라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하여 마음의 도장을 홀로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십만 대중 앞에서 꽃을 들어 보이셨을 때, 오직 가섭만이 홀로 깨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이 일로 석존이 법을 물려주셨다. 또 달마는 양나라를 지나 위나라로 건너가 사람을 찾다가, 소림사에서 오래도록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오직 이조 혜가의 깊은 믿음을 얻었다. 이조는 눈 속에 서서 제 팔을 끊고, 한마디 말끝에 마음을 편안히 한 뒤 마침내 의발을 전해 받았다. 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60.2
한문蓋從上來皆聖賢應世,主勝根強,龍象蹴蹋,源既淵深,流不短淺。
번역대개 예로부터 이어 온 이들은 모두 성현이 세상에 응하여 나신 분들이다. 주인이 뛰어나고 근기가 굳세어, 용과 코끼리(龍象)처럼 차고 밟았다. 근원이 이미 깊으니, 흐름도 짧거나 얕지 않았다.
自四七二三之後,間世英靈相繼傑出,如思護、馬師、石頭寰中獨步,德山爇疏鈔,臨濟燒禪板,藥嶠、天皇、百丈、黃蘗及五家宗主各立門風,
서천의 스물여덟 조사와 동토의 여섯 조사(四七二三) 뒤로도, 세상에 드문 뛰어난 이들이 잇달아 나왔다. 행사(行思)·회양(懷讓)·마조(馬祖)·석두(石頭) 같은 분들은 천하를 홀로 걸었다. 덕산(德山)은 소초(疏鈔)를 불살랐고, 임제(臨濟)는 선판(禪板)을 태웠다. 약산(藥山)·천황(天皇)·백장(百丈)·황벽(黃檗)과 오가(五家)의 종주(宗主)들이 저마다 문풍(門風)을 세웠다.
如布縵天網,垂萬里鉤,莫不透頂透底。有過千萬人作略出沒,卷舒擒縱,照用權實,豈只守一途一轍、一知一見,存窠臼,立知解,死水裏浸殺,以實法繫綴人?
마치 하늘 그물을 펼치고 만 리에 낚싯바늘을 드리운 듯, 정수리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지 않은 이가 없었다. 천만 사람을 넘어서는 솜씨(作略)로 나타났다 숨었다 하며, 말았다 폈다, 잡았다 놓았다, 비추고 쓰며(照用), 방편과 진실(權實)을 부렸다. 어찌 한 가지 길, 한 가지 자취, 한 가지 앎, 한 가지 견해만 지켰겠는가. 어찌 낡은 틀(窠臼)에 머물고 알음알이를 세워, 괸 물속에 잠겨 죽으며, 실다운 법으로 사람을 얽어매었겠는가.
所以徧寰海列剎相望,數百年綱宗不墜,的的相承,源源相繼,非單見淺聞、皮膚幽陋所能負擔。
그러므로 온 천하에 절들이 서로 바라보며 늘어섰고, 수백 년 동안 종문의 벼리(綱宗)가 무너지지 않았다. 또렷또렷 서로 이어받고, 끊임없이 서로 이어 왔다. 이는 좁게 보고 얕게 들은 이나, 겉만 알고 어둡고 좁은 이가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쉽게 읽기대개 예로부터 이 법을 이어 온 이들은 모두 성현으로서 때에 맞추어 세상에 나신 분들이다. 주인 될 그릇이 뛰어나고 근기가 강하여, 용상 같은 큰 인물들이 거침없이 밟고 다녔다. 그러니 근원이 이미 깊고 그윽하여, 그 흐름 또한 짧거나 얕지 않았다. 사칠이삼, 곧 서천의 스물여덟 조사와 동토의 여섯 조사 뒤로도 세상에 드문 뛰어난 이들이 잇달아 나왔다. 청원 행사와 남악 회양, 마조와 석두 같은 분들은 천하를 홀로 걸었다. 덕산은 《금강경》을 풀이한 글을 불살랐고, 임제는 좌선하던 널판을 태웠다. 약산·천황·백장·황벽과 다섯 집안, 곧 오가의 종주들이 저마다 가풍을 세웠다. 마치 하늘 그물을 펼쳐 만 리에 낚싯줄을 드리운 듯, 정수리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지 않은 이가 없었다. 천만 사람을 넘어서는 그 솜씨, 곧 잡았다 놓고 말았다 펴며 비추었다 쓰는 온갖 방편이 어찌 한 가지 길, 한 가지 자취, 한 가지 앎, 한 가지 견해만 지키는 것이겠는가. 낡은 틀에 갇히고 알음알이를 세워, 괸 물속에 빠져 죽으며 죽은 법으로 사람을 얽어매는 것이겠는가. 그렇게 이어 왔기에 온 천하에 절들이 서로 바라보며 늘어섰고, 수백 년 동안 종문의 큰 벼리가 무너지지 않아 또렷또렷 서로 이어받았다. 이는 얕은 견문이나 겉핥기의 좁은 소견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풀이 3
德山宣鑑 덕산선감'爇疏鈔'는 德山이 깨친 뒤 『靑龍疏鈔』를 법당 앞에 쌓아 불사른 일. 『五燈會元』 권7 '師將疏鈔堆法堂前。舉火炬…遂焚之'.
臨濟義玄 임제의현黃檗이 侍者에게 '百丈先師禪板机案'을 가져오라 하자 臨濟가 '侍者將火來'라 한 일(『臨濟錄』 行錄; 『景德傳燈錄』 권12). 실제로 태웠다는 기록은 없다.
60.3
한문要是蘊卓識奇姿,跂步越佛祖器量,蓋天蓋地,初出窠來,迥然殊絕,先了卻自己根腳,靠本色咬猪狗手段,大達宗師向順違境界透脫,辦粉骨碎身志見,圖大不圖細,圖遠不圖近,於千艱萬苦至難至嶮如銀山鐵壁處,放身捨命撒手那邊,承當此大事因緣,
번역요컨대 탁월한 식견과 남다른 자질을 품어야 한다. 내딛는 걸음이 부처와 조사의 그릇을 넘어서고, 하늘을 덮고 땅을 덮어야 한다. 처음 둥지에서 나올 때부터 훤칠하게 남달라야 한다. 먼저 자기의 밑바탕(根腳)을 마쳐야 한다. 그리고 본색(本色)으로 돼지와 개를 물어뜯는 솜씨를 지닌, 크게 통달한 종사(宗師)에게 기대어, 순한 경계와 거스르는 경계에서 뚫고 벗어나야 한다. 뼈가 가루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할 뜻과 견해를 갖추어야 한다. 큰 것을 꾀하고 작은 것을 꾀하지 않으며, 먼 것을 꾀하고 가까운 것을 꾀하지 않는다. 천 가지 어려움과 만 가지 괴로움, 더없이 어렵고 험한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곳에서 몸을 던지고 목숨을 버려야 한다. 손을 놓아 버린 저편에서 이 큰일의 인연(大事因緣)을 떠맡아야 한다.
絕情離見,歇卻狂機業識,闢大解脫門,了卻自己生死大事,酬初發心志,
정식(情識)을 끊고 견해를 여의며, 미쳐 날뛰는 기틀과 업식(業識)을 쉬어야 한다. 큰 해탈의 문을 열어 자기의 나고 죽는 큰일을 마치고, 처음 마음을 낸 뜻에 보답해야 한다.
視六根四大五蘊十二處十八界七大性,如虗空狂花亂起亂滅,唯全稟承不思議乃祖乃佛所證,廓徹靈明廣大虗寂金剛正體深根寧極。
육근(六根)·사대(四大)·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칠대성(七大性)을, 허공의 헛꽃이 어지러이 일었다 어지러이 스러지는 것처럼 본다. 오직 헤아릴 수 없는 그것, 조사와 부처가 증득한 것을 온전히 이어받는다. 그것은 신령한 밝음이 두루 사무치고, 넓고 크며 텅 비어 고요한 금강(金剛)의 바른 바탕이다. 뿌리가 깊고 더없이 편안하다.
餉間舉一毛一塵一機一句,靡不從根本中發,雖謂之大機大用,早是胡亂名摸了也,
잠깐 사이에 한 터럭, 한 티끌, 한 기틀, 한 구절을 들어도 근본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그것을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 불러도 벌써 어지러이 이름 붙여 더듬은 것이다.
更向甚處著心著性著玄著妙著理著事?
그러니 다시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성품을 붙이고, 현(玄)을 붙이고, 묘(妙)를 붙이고, 이치를 붙이고, 일을 붙이겠는가.
到箇裏如紅鑪上一點雪,聞禪與道削迹吞聲,猶未是極致,
여기에 이르면 붉은 화로 위의 한 점 눈과 같다. 선(禪)이니 도(道)니 하는 말을 들으면 자취를 지우고 소리를 삼킨다. 그래도 아직 끝자리가 아니다.
況其餘光影色聲、山河大地、露柱燈籠、眼見耳聞、擔枷抱鎖?
하물며 그 나머지 빛과 그림자, 빛깔과 소리, 산하대지(山河大地), 드러난 기둥(露柱)과 등롱(燈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야. 어찌 칼을 메고 자물쇠를 찬 것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요컨대 식견이 탁월하고 자질이 남달라야 한다. 그 걸음이 부처와 조사의 그릇을 뛰어넘고 하늘과 땅을 뒤덮으며, 처음 소굴에서 나올 때부터 훤칠하게 빼어나야 한다. 먼저 제 밑바탕을 밝혀 마쳐야 한다. 그리고 개나 돼지라도 물어뜯을 만큼 매서운 참 솜씨를 지닌, 크게 통달한 종사에게 기대어, 순한 경계든 거스르는 경계든 다 뚫고 벗어나야 한다. 뼈를 가루 내고 몸을 부수는 각오를 갖춘다. 크게 도모할 뿐 작게 도모하지 않고, 멀리 내다볼 뿐 가까이 붙잡지 않는다. 천 가지 어려움과 만 가지 괴로움, 지극히 험한 은빛 산과 쇠 벽처럼 꽉 막힌 곳, 곧 은산철벽 같은 자리에서 몸을 던지고 목숨을 버린다. 손을 아주 놓아 버린 저편에서 이 큰일의 인연을 짊어진다. 이리저리 따지는 마음을 끊고 온갖 견해를 여의며, 미쳐 날뛰는 마음의 기틀과 업식을 쉰다. 그리하여 큰 해탈의 문을 열고, 제 나고 죽는 큰일을 끝내어 처음 마음 낸 뜻에 보답한다. 눈·귀·코·혀·몸·뜻의 육근, 땅·물·불·바람의 사대, 그리고 오온·십이처·십팔계·칠대성을 보되, 병든 눈에 어리는 허공의 헛꽃, 곧 허공광화가 어지러이 일어났다 스러지듯 여긴다. 오직 헤아릴 수 없는 그것, 조사와 부처가 깨달은 것을 온전히 이어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신령한 밝음이 두루 사무치고, 광대하며 텅 비고 고요하여, 무너지지 않는 굳센 참바탕, 곧 금강정체가 뿌리 깊고 더없이 편안한 경지다. 잠깐 사이에 한 터럭, 한 티끌, 한 기틀, 한 구절을 들더라도 그 근본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 그것을 큰 기틀의 큰 씀, 곧 대기대용이라 불러도 벌써 어지러이 이름 붙여 더듬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다시 어디에 마음을 붙이고 성품을 붙이며, 현묘함을 붙이고 묘함을 붙이며, 이치를 붙이고 일을 붙이겠는가. 이 자리에 이르면 마치 붉게 달군 화로 위에 떨어진 한 점 눈과 같다. 선이니 도니 하는 말을 들어도 그 자취를 지우고 소리를 삼켜야 하는데, 그래도 아직 지극한 경지는 아니다. 하물며 그 나머지 빛과 그림자, 빛깔과 소리, 산과 강과 온 땅, 기둥과 등롱,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야 어떻겠는가. 어찌 목에 칼을 메고 자물쇠에 묶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풀이 3
大機大用 대기대용'雖謂之大機大用,早是胡亂名摸了也' — 一毛一塵一機一句가 모두 근본에서 나온다고 한 뒤, 그것을 大機大用이라 이름 붙이는 것마저 군더더기라 하여 그 말까지 놓아 버린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靡徹靈明'의 '靡'는 CBETA 정본 '廓'의 오각으로, 이를 彌로 보면 '신령한 밝음이 두루 사무치고', 虛로 보면 '확연히 사무치고'가 된다. 어느 쪽이든 '徹靈明(신령한 밝음이 사무침)'이라는 취지는 다르지 않으나, 정본의 '廓'조차 '넓다(두루)'와 '뚜렷하다(廓然=확연)' 양쪽으로 새겨질 수 있어(뒤의 廣大와 호응하면 '두루'도 유력) 어느 한 독해를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다. 경쟁 교감에 따라 수식어의 뜻이 실제로 갈리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60.4
한문豈不見德山入門便棒、臨濟入門便喝、睦州現成公案?子細看來,渠已是入泥入水老婆心切。
번역보지 못했는가. 덕산은 문에 들어서면 곧 방망이를 쓰고, 임제는 문에 들어서면 곧 할(喝)을 하며, 목주(睦州)는 현성공안(現成公案)을 내놓았다. 자세히 보면, 그들도 벌써 진흙에 들고 물에 들어가는 노파심(老婆心)이 간절한 것이다.
所以道,若一向舉揚宗教,法堂上須草深一丈,自餘方便門軒,知是不得已抑而爲之,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한결같이 종문의 가르침(宗敎)만 드날린다면, 법당 위에 풀이 한 길은 우거질 것이다.” 그 밖의 방편의 문은, 분명히 알고 보면 마지못해 억지로 한 것이다.
是皆從上來大善知識垂慈運悲,作異世標榜,使有志之士窮到撲不破處,八面玲瓏,匪唯自利,亦以利人,傳無盡燈,續佛惠命。
이는 모두 예로부터 큰 선지식(善知識)들이 자비를 드리우고 연민을 베풀어, 뒷세상의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뜻있는 이가 끝까지 파고들어 쳐도 깨지지 않는 곳에 이르러, 여덟 면이 영롱하게(八面玲瓏) 하려는 것이다. 스스로를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여, 다함없는 등불을 전하고 부처님의 지혜 목숨을 잇게 하려는 것이다.
쉽게 읽기어찌 보지 못하는가. 덕산은 문에 들어서면 곧 방망이질을 하고, 임제는 문에 들어서면 곧 고함을 질렀다. 목주 선사는 눈앞에 다 드러나 있는 화두, 곧 현성공안을 그대로 내놓았다. 자세히 보면 이것도 벌써 진흙에 들고 물에 들어가는 노파심이 간절한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오로지 종문의 종지만 드날리면 법당 앞에는 응당 풀이 한 길이나 우거지리라'라고 하였다. 그러니 그 밖의 온갖 방편의 문은, 분명히 알고 보면 부득이하여 억지로 세운 것이다. 이는 모두 예로부터 내려온 큰 선지식들이 자비를 드리우고 가엾이 여겨, 뒷사람을 위해 세운 본보기다. 뜻있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파고들어 쳐도 깨지지 않는 곳에 이르게 하고, 여덟 면이 두루 환히 트이는 경지, 곧 팔면령롱에 이르게 하려 함이다. 이는 스스로를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남까지 이롭게 하여, 다함없는 등불, 곧 무진등을 전하고 부처님의 지혜 목숨을 잇게 하려는 것이었다.
풀이 5
睦州道明 목주도명『景德傳燈錄』 권12 睦州章 '師見僧來云。見成公案放汝三十棒'. 德山棒·臨濟喝과 나란히 든 接化 방식이다.
現成公案 현성공안德山入門便棒·臨濟入門便喝과 나란히 든 '睦州現成公案'은 睦州가 승을 보자마자 '見成公案,放汝三十棒'이라 한 接化(『景德傳燈錄』 권12 睦州章)를 가리킨다.
교감 · 方便門軒,知是不得已'方便門軒,知是不得已' — 저본(X69n1357 p0473c05)은 '自餘方便門軒,知是…'로 '軒'을 앞 구에 붙였으나, '軒知'(분명히 알고 보면, 上13 교감)로 이어 읽어 '그 밖의 방편의 문은 분명히 알고 보면 부득이하여 억지로 한 것'으로 옮긴다.
60.5
한문自唐歷五季以至國初,負重望,據祖位,龍馳虎驟,奔南走北,與人拔楔抽釘、解黏去縛者何限?
번역당(唐)나라에서 오대(五季)를 거쳐 이 왕조 초기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명망을 지고 조사의 자리에 앉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용처럼 내닫고 범처럼 달려 남으로 북으로 다녔다. 사람들에게 쐐기를 뽑고 못을 빼 주며, 끈끈한 것을 풀고 묶인 것을 끌러 준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近世不道,無人求全材獨脫,奮本分鉗鎚,啟作家鑪鞴,誠不可多得。
요즘이라고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온전한 재목으로 홀로 벗어나, 본분(本分)의 집게와 망치(鉗鎚)를 떨쳐 휘두르고 작가(作家)의 화로와 풀무(鑪鞴)를 연 이를 찾자면, 참으로 많이 얻을 수 없다.
蓋緣師因循淺陋,資又無深根固蔕,只圖易曉,便如膠漆,使祖宗無上道妙、高遠大機或幾乎絕矣。
대개 스승은 그럭저럭 지내며 얕고 좁다. 제자 또한 깊은 뿌리와 굳은 꼭지(深根固蔕)가 없다. 다만 쉽게 알기만 꾀하여, 곧 아교와 옻처럼 들러붙는다. 그리하여 조종(祖宗)의 위없는 도의 묘함과 높고 원대한 큰 기틀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
쉽게 읽기당나라에서 오대를 거쳐 송나라 초기, 곧 오계와 국초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명망을 지고 조사의 자리에 앉은 이가 많았다. 그들은 용처럼 내닫고 범처럼 달려 남으로 북으로 바삐 다녔다. 사람들을 위해 쐐기를 뽑고 못을 빼주며 끈끈함을 풀고 속박을 없애 준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요즘이라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온전한 재목으로 홀로 우뚝 서서, 학인을 벼리는 집게와 망치, 화로와 풀무, 곧 겸추노구를 갖춘 이는 드물다. 솜씨가 무르익은 눈 밝은 종장, 곧 작가의 살림을 활짝 열어젖힌 이는 참으로 만나기 어렵다. 대개 스승 된 이는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며 얕고 옹색하다. 제자 또한 깊은 뿌리와 굳은 꼭지, 곧 심근고체가 없어, 쉽게 알기만을 꾀하다가 이내 아교와 옻처럼 들러붙는다. 그리하여 조사와 종문이 물려준 위없는 도의 묘함과, 높고 원대한 큰 기틀이 거의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풀이 2
作家 작가'奮本分鉗鎚,啟作家鑪鞴' — 鉗鎚(집게·망치)와 鑪鞴(화로·풀무)를 대구로 써서, 학인을 단련하는 宗師의 수단을 대장간에 비유했다.
60.6
한문尚賴後昆有拔類離倫底,與古爲儔,不顧是非得喪、彼我取捨,以鐵石心辦不可卷、不可移之志,攻苦食淡,不怕艱難,向前體究,可以繼芳躅,續往世高風,爲人間明燭,作昏衢日月,此私心常所渴望者也。
번역그래도 뒷사람에게 기댄다. 그 가운데 무리에서 빼어나고 동류를 벗어나, 옛사람과 짝이 될 이가 있을 것이다. 그는 옳고 그름, 얻고 잃음, 너와 나, 취하고 버림을 돌아보지 않는다. 쇠와 돌 같은 마음(鐵石心)으로, 말 수도 없고 옮길 수도 없는 뜻을 갖춘다. 괴로움을 견디고 담박하게 먹으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몸소 파고든다. 그래서 아름다운 발자취를 잇고 지난 세상의 높은 기풍을 이어, 사람 세상의 밝은 촛불이 되고 어두운 거리의 해와 달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내 사사로운 마음이 늘 간절히 바라는 바다.
쉽게 읽기바라건대 뒷사람 가운데 무리에서 훌쩍 빼어나 옛사람과 짝이 될 이가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이는 옳으니 그르니, 얻느니 잃느니, 너니 나니, 가지니 버리니 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쇠와 돌 같은 굳은 마음으로, 꺾을 수도 옮길 수도 없는 뜻을 품는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담박하게 먹는 삶, 곧 공고식담으로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을 향해 몸소 파고든다. 그리하여 옛 스승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잇고, 지난 세상의 높은 기풍을 이어, 사람 사는 세상의 밝은 촛불이 되고 어두운 거리의 해와 달이 된다. 이것이 내가 늘 간절히 바라는 바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伺賴後昆…此私心常所渴望者也
책 오역(시제 오독) → 책은 '있었으니…될 수 있었다'(p.155)로 이미 이루어진 과거 기정사실로 옮겼으나, 문말 '此私心常所渴望者也'(아직 이루지 못해 늘 간절히 바라는 바)와 충돌한다. '伺'는 '冀'(바라다)의 오각이며 '冀賴後昆'은 미래의 소망이니, '뒷사람 가운데…있어…되기를'이 문맥에 부합한다.
60.7
한문今既憤悱圖起發,切在盡始盡終,擇海上具殺人不眨眼手段宗師圖取徹去,則豈唯酬自己超方本心,抑亦於佛法大海出一隻手。
번역이제 그대는 분발하여 떨쳐 일어나려 하고, 그 간절함은 처음과 끝을 다하는 데 있다. 세상에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솜씨를 갖춘 종사를 골라, 끝까지 사무쳐 가려 한다. 그렇다면 어찌 자기의 격을 뛰어넘는 본마음(超方本心)에 보답할 뿐이겠는가. 또한 불법의 큰 바다에 한 손을 내미는 일이 될 것이다.
矧此門絕人我、離愛憎,只貴正知正見,安在乎論誰家之子哉?
하물며 이 문은 남과 나를 끊고 미움과 사랑을 여의어, 오직 바른 앎과 바른 견해(正知正見)만 귀히 여긴다. 누구 집안의 자식인지를 따질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等是曹溪門下,何有彼宗此派於其間也?
다 같은 조계(曹溪) 문하인데, 그 사이에 어찌 저 종(宗) 이 파(派)가 있겠는가.
쉽게 읽기이제 그대가 이미 떨쳐 일어나기를 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려는 간절함을 냈다. 그리하여 바다처럼 넓은 총림에서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매서운 솜씨, 곧 살인불잡안수단을 갖춘 종사를 골라, 사무쳐 뚫고 벗어나기를 이루려 한다. 그렇다면 어찌 다만 격식을 뛰어넘은 제 본래 마음, 곧 초방본심에 보답할 뿐이겠는가. 또한 불법의 큰 바다에서 한쪽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하물며 이 문은 남과 나를 끊고 미움과 사랑을 여의어, 오직 바른 앎과 바른 견해만을 귀히 여긴다. 그러니 어찌 누구 집안의 자식인지를 따지는 데 매이겠는가. 다 같은 육조 스님의 문하, 곧 조계 문하인데, 그 사이에 어찌 저 종이니 이 파니 하는 나눔이 있겠는가.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49
  1. 諸佛出世·祖師西來 제불출세·조사서래

    부처가 세상에 나오고 달마(達磨)가 서쪽에서 온 일이다. 선문(禪門)이 즐겨 쓰는 개제(開題) 상투구로, 그 귀결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의 직지임을 말한다.

  2. 同體大悲 동체대비

    중생을 자기와 한 몸으로 여겨 일으키는 대비(大悲)이다.

  3. 無緣等慈 무연등자

    대상·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평등히 베푸는 자(慈)(무연자비(無緣慈悲))이다. 위 동체대비(同體大悲)와 짝을 이루는 불(佛)의 두 가지 자비(慈悲)이다.

  4. 教外別行·單傳心印 교외별행·단전심인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하고, 마음의 도장(心印)을 한 줄기로만 전한다는 말이다. 문자에 기대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잇는다는 선종의 근본 표방이다. 흔히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한다.

  5. 十萬眾前拈花 십만중전염화

    영산회상(靈山會上) 세존(世尊)이 꽃을 드니 오직 가섭(迦葉)만 미소(微笑)하여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받았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 고사이다. 선문(禪門) 전용의 출전은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위경)이다. 교외별전(教外別傳)의 상징이다.

  6. 四七二三 사칠이삼

    넷에 일곱을 곱한 스물여덟과, 둘에 셋을 곱한 여섯을 말한다. 인도의 스물여덟 조사와 중국의 여섯 조사, 곧 마음 법을 이어 온 선종의 역대 조사를 이른다. 달마(達磨)는 인도의 스물여덟째이자 중국의 첫째 조사다.

  7. 五家 오가

    임제(臨濟)·위앙(潙仰)·조동(曹洞)·운문(雲門)·법안(法眼)의 오종(五宗)이다. 각기 문풍(門風)(가풍(家風))을 세웠다.

  8. 銀山鐵壁 은산철벽

    은으로 된 산, 쇠로 된 벽이라는 말이다. 머리로 헤아려서는 도무지 뚫을 수 없는 꽉 막힌 관문을 비유한다. 『벽암록』은 뚫기 전에는 은산철벽 같지만, 뚫고 나면 제가 바로 그 벽이라 했다.

  9. 七大性 칠대성

    능엄경(楞嚴經)의 칠대(七大)(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견(見)·식(識))이다.

  10. 虛空狂花 허공광화

    능엄경(楞嚴經)·원각경(圓覺經)의 공화(空華)이다. 병든 눈이 헛보는 헛꽃으로 망상(妄相)·생멸(生滅)을 비유한다.

  11. 金剛正體 금강정체

    금강처럼 단단해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바른 본바탕이라는 뜻으로, 사람마다 본래 갖춘 참마음을 이른다. 어떤 일을 겪어도 변하거나 무너지지 않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12. 大機大用 대기대용

    큰 기틀과 큰 작용이다. 깨달은 이의 근본 힘과, 그 힘이 걸림 없이 쓰이는 것을 함께 이른다. 황벽(黃檗)이 스승 백장(百丈)의 이야기를 듣고 '마조(馬祖)의 대기대용을 보았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13. 紅爐上一點雪 홍로상일점설

    시뻘겋게 달군 화로 위에 떨어진 한 점 눈이라는 말이다. 닿자마자 녹아 자취도 없듯, 알음알이나 말이 붙을 틈이 없는 자리를 빗댄다. 장자 스님이 석두 스님에게 한 말로 전하며(오등회원 권5), 벽암록 제69칙 수시에도 나온다.

  14. 德山入門便棒·臨濟入門便喝 덕산입문변방·임제입문편할

    덕산 스님은 찾아온 이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방망이를 내리고, 임제 스님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렀다는 말이다. 말과 생각을 끊어 곧장 깨우치는 선가의 대표적인 솜씨로 '덕산의 방, 임제의 할'이라 일컫는다. 원오는 벽암록 여러 곳에서 이 말을 들었다(제85칙 등).

  15. 現成公案 현성공안

    이미 다 이루어져 눈앞에 드러나 있는 공안(公案)이다. 따로 화두를 들고 찾을 것 없이, 지금 드러난 이대로가 그대로 공안이라는 뜻이다. 목주(睦州) 선사가 즐겨 한 말로 이름났다.

  16. 老婆心切·入泥入水 노파심절·입니입수

    진흙물에 몸소 들어가는 노파심이다. 궁극에서 방편으로 내려와 학인을 이끄는 하화(下化)의 간절함이다.

  17. 若一向舉揚宗教·法堂上須草深一丈 약일향거양종교·법당상수초심일장

    '오로지 종지(宗旨)만 드날리면 배우러 오는 이가 없어 법당 앞 풀이 한 길이나 우거지리라'는 선가(禪家) 상용구이다. 궁극의 종지는 접인이 어려워 부득이 방편문(方便門)을 연다는 뜻이다.

  18. 八面玲瓏 팔면영롱

    여덟 면이 모두 맑고 환하게 트였다는 말이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막힘 없이 투명하고 원만한 경지를 형용한다.

  19. 無盡燈 무진등

    다함이 없는 등불이다. 『유마경』에서 한 등불이 백천 등불에 불을 옮겨도 빛이 줄지 않듯, 한 사람이 많은 이를 깨우쳐도 법이 다함없이 이어짐을 비유했다.

  20. 五季·國初 오계·국초

    오계(五季)=오대(五代), 국초(國初)=송초(宋初)이다. 원오가 본 선문(禪門) 성쇠의 시대 구획이다.

  21. 拔楔抽釘·解黏去縛 발설추정·해점거박

    쐐기 뽑고 못 빼며, 끈끈함을 풀고 속박을 제거함이다. 학인을 알음알이에서 풀어 준다.

  22. 鉗鎚·鑪韝 겸추노구

    집게·망치와 화로·풀무이다. 학인을 단련하는 작가(作家)의 접화(接化) 도구이다.

  23. 作家 작가

    선가에서 솜씨와 안목을 두루 갖춘 노련한 스승을 이른다. 배우는 이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 자유자재로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는 뜻이 다르다.

  24. 深根固蔕 심근고체

    뿌리를 깊이 내리고 꼭지를 단단히 한다는 말이다. 『노자』의 말에서 왔다. 선에서는 공부의 바탕을 깊고 굳게 다져 흔들리지 않게 함을 이른다.

  25. 攻苦食淡 공고식담

    괴로움을 무릅쓰고 담박한 음식을 먹는다는 말이다. 고생을 견디며 검소하게 사는 것을 이른다. 본디 『사기』에 나오는 세상 말인데, 선문에서는 옛 스님들의 고된 수행을 기릴 때 쓴다.

  26. 慧空知客 혜공지객

    이 시중(示衆)을 받은 대상 승려이다. 지객(知客)은 총림(叢林)에서 빈객(賓客)을 응대하는 소임이다(육지사(六知事)의 하나).

  27. 殺人不眨眼手段 살인불잡안수단

    사람을 죽이되 눈 하나 깜짝 않는 준엄한 접화(殺人刀活人劍)의 수단이다.

  28. 超方本心 초방본심

    방소·격식을 뛰어넘은 본래의 마음이다.

  29. 六祖慧能 육조혜능

    중국 선종의 여섯째 조사(638~713)다. 신주(新州)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으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법을 이었다. 소주(韶州)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에서 가르침을 펴 '조계'라고도 불린다. 남종선을 열었고, 뒤의 선종 여러 갈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30.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31.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32.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33.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34.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35.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36. 百丈懷海 백장회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

  37. 睦州道明 목주도명

    목주도명(睦州道明)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황벽(黃檗) 스님의 법을 이었다. 성이 진씨라 진존숙(陳尊宿)이라 불렸고, 짚신을 삼아 어머니를 봉양해 진포혜라고도 했다. 매서운 기봉으로 운문(雲門)을 처음 깨우쳐 주었다.

  38. 摩訶迦葉 마하가섭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 부처님의 큰 제자로, 욕심을 떨치는 두타(頭陀) 수행이 으뜸이었다. 영산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홀로 미소 지어 법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선종에서는 인도의 첫 조사로 받들며, 금색두타라고도 부른다.

  39. 天皇道悟 천황도오

    천황도오(天皇道悟, 748~80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고, 형주(荊州) 천황사에 머물렀다. 제자 용담숭신을 거쳐 덕산(德山)으로 법이 이어졌다.

  40. 黃檗希運 황벽희운

    황벽희운(黃檗希運, ?~850)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고안현의 황벽산에 머물러 '황벽'이라 불린다. 임제(臨濟)의 스승이며, 배휴(裴休)가 그의 법문을 모아 『전심법요』를 엮었다.

  41. 釋尊 석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42. 梁魏 양위

    달마(達磨)가 거친 남조(南朝) 양(梁)(양무제(梁武帝))과 북조(北朝) 북위(北魏)이다.

  43. 少林 소림

    숭산(嵩山)에 있는 절 소림사(少林寺)다. 달마가 이 절에 머물며 날마다 벽을 마주하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름나, 선종이 비롯된 곳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44. 二祖慧可 이조혜가

    중국 선종의 둘째 조사(487~593)로, 달마(達磨)의 법을 이었다. 처음 이름은 신광(神光)이다.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어 법을 구했다는 '입설단비(立雪斷臂)'와, 달마에게 마음을 편안케 해 달라고 하자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하여 깨친 '안심(安心)' 문답이 전한다. 그 법은 삼조 승찬(僧璨)에게 이어졌다.

  45. 思讓 사양

    사(思)=청원행사(青原行思), 양(讓)=남악회양(南嶽懷讓)이다.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두 법사(法嗣)로, 각각 석두(石頭) 계통과 마조(馬祖) 계통의 원류이다.

  46. 藥山·藥嶠 약산·약교

    약산유엄(藥山惟儼)이다. 석두희천(石頭希遷) 법사(法嗣)이다. '교(嶠)'는 '산(山)'의 이체나 오각으로 의심된다(교감 참조).

  47. 續佛慧命 속불혜명

    부처의 지혜 생명을 이음, 곧 전등(傳燈)이다.

  48. 世尊拈花·迦葉微笑 세존염화·가섭미소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대중은 모두 말이 없는데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고, 이에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전했다는 이야기이다. 말과 글 밖에 따로 전하는 선의 근원으로 든다(무문관 제6칙).

  49. 若一向舉揚宗教 약일향거양종교

    '오로지 宗旨만 드날리면 배우러 오는 이가 없어 법당 앞 풀이 한 길이나 우거지리라'는 禪家 상용구이다. 궁극의 종지는 접인이 어려워 부득이 方便門을 연다는 뜻이다.

문단 7국역본 대조 2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