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14
箭鋒은 '화살촉'만 가리켜 '칼'이 없다(紀昌·飛衛 고사). 책 '화살과 칼 끝'이라 한 것은 箭鋒에 없는 '칼(劍)'을 끼워 넣은 오독이다. 내 번역 '화살 끝이 서로 맞부딪친 것'이 옳다.
御는 '부리다·다스리다'의 뜻이므로 자체역 '이치를 자유로이 부리는 경지'가 축자에 가깝다. 다만 책의 '이치가 맞는 상황'도 悟境(계합한 깨달음의 경계)을 가리키는 것으로 통하며, 理御가 고정된 표준 구문이 아니어서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양쪽 다 성립하는 이독으로 유지한다.
底는 상태를 명사화하는 조사(…한 경지)이고 滲漏는 洞山 三種滲漏(見·情·語)의 병통이다. 책 '번뇌를 끊는 사람'은 滲漏를 번뇌로, 底를 사람으로 옮긴 과의역이다. 내 번역 '소굴도 없고 새는 틈도 끊어진 경지'가 원의에 충실하다.
풀이 3
'땅에 던지면 쇳소리가 난다'(성취의 확고·순정, 孫綽 '擲地作金石聲')가 본의이다. 책 '금성옥진을 땅에 올렸다'는 擲地를 뒤집고 金聲을 金聲玉振으로 바꾼 과의역이다. 내 번역이 옳다.
풀이 4
풀이 4
脫體를 '탈락·투탈'로 읽어 '온몸째 벗어난'(자체역)으로 볼 수도 있고, '전부·완전히'의 강조로 읽어 '완전히(몹시) 안온한'(책)으로 볼 수도 있다. 禪語에서 脫體는 두 용법이 모두 쓰여(脫體現成 류의 '전부·통체' 용법과 '벗어남'의 용법) 결정적 전거로 한쪽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양립 가능한 이독으로 유지한다.
이 편의 낱말 55
- 二祖禮拜 이조예배
선종 동토(東土)(중국) 이조(二祖) 혜가(慧可)(487~593)이다. 달마(達磨)에게 팔을 끊어 구법하고(斷臂) '안심(安心)'(마음을 편안케 함) 문답 뒤 예배하여 심인(心印)이 계합한 고사이다. 여기 '예배(禮拜)'는 언설 없이 절 한 번으로 계합했음을 가리킨다.
- 神契理御 신계리어
신묘하게 계합하고(神契) 이치를 자유로이 부림(理御)이다. 언사(言思)(말과 생각)로 헤아릴 수 없는 오경(悟境)이다.
- 旦莫 단막
아침과 저녁, 곧 잠깐 사이이다. '막(莫)'은 '暮'의 고자(古字)이다. 천만억(千萬億) 겁도 아침저녁 한때와 같다는 뜻이다.
- 純剛打就 순강타취
순수한 강철(純鋼)을 두들겨 만들 듯 이근상지(利根上智)를 담금질하여 완성함의 비유이다.
- 如膠投漆 여교투칠
아교(膠)를 옻(漆)에 던진 듯 한 몸으로 착 붙음이다. 사자(師資) 계합의 긴밀함을 나타내는 교칠지교(膠漆之交)의 비유이다.
- 阿轆轆地 아록록지
도르래·수레바퀴(轆轤)처럼 걸림 없이 구르는 모양의 송대 구어이다. '아(阿)…지(地)'는 상태를 나타내는 접사이다.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굴러감이다.
-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 滲漏 삼루
물이 스며 새어 나간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견해나 말에 남은 작은 빈틈과 허물을 이른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학인을 가늠하며 든 ‘세 가지 삼루’, 곧 견해·감정·말의 샘이 이름났다.
- 盤錯交加 반착교가
반근착절(盤根錯節)(뿌리와 마디가 얽힘)이 뒤섞인 난처(難處)이다. 아무리 캐물어도(窮詰) 뚫기 어려운 곳에서도 여유로움을 말한다.
- 壁立萬仞 벽립만인
만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서 있다는 말이다. 알음알이나 말로는 붙을 데가 없는 깨침의 자리, 또는 그런 엄한 가르침을 이른다. 원오의 『벽암록』에도 자주 나온다.
- 驚羣敵勝 경군적승
무리를 놀라게 하고(驚羣) 적수(敵手)를 이김(敵勝)이다. 뛰어나 뭇사람을 압도하는 기용(機用)이다.
- 源深流長 원심류장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길다는 말이다. 바탕을 깊고 튼튼히 다져야 그 힘과 영향이 멀리, 오래 간다는 비유로 쓴다.
- 擲地金聲 척지금성
땅에 던지면 쇳소리가 나는 옥(玉)·금속(金屬)이다. 성취가 확고·순정함의 비유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문학(文學)》 손작(孫綽)의 '척지당작금석성(擲地當作金石聲)'에서 온 전고이다.
- 湛湛澄澄 담담징징
깊고 맑으며 티 없이 맑은 모양이다. 고인 물이 맑게 가라앉은 것처럼, 흐림 없이 고요하고 맑은 마음의 바탕을 그린 말이다.
- 吞爍羣象 탄삭군상
군상(羣象)(=만상(萬象), 삼라만상)을 삼켜 녹임이다. '삭(爍)'은 '鑠(녹이다)'과 통용된다. 마음의 광명(光明)이 일체를 포섭·용해함이다.
- 闤闠 환궤
저잣거리이다. '환(闤)'은 시장의 담이고 '궤(闠)'은 시장의 문이다. 번잡한 도시 한복판으로 산림(山林)과 대비된다.
-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 打地和尚 타지화상
마조도일(馬祖道一) 문하의 타지화상(打地和尚)이다. 무슨 질문을 받든 오직 주장자로 땅을 한 번 쳐 보였을 뿐이라 '타지(打地)'로 불린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권(卷)3에 보인다.
- 祕魔擎杈 비마경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祕魔巖) 화상의 기연이다. 그는 늘 가장귀진 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다가, 스님이 와서 절하면 그것으로 목을 걸고 다그쳤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시켰느냐. 말해도 죽고 말 못 해도 죽는다. 어서 말하라.'
- 無業莫妄想 무업막망상
분주무업(汾州無業)의 기연이다. 무업은 마조(馬祖)의 법을 이은 당나라 선승이다. 배우는 이가 무엇을 물어 오든 대개 '망상하지 말라(莫妄想)' 한마디로 답했다. 묻고 따지는 그 마음을 그 자리에서 쉬게 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 降魔舞笏 강마무홀
홀(笏)(목간(木簡))을 들고 춤추는 일기(一機)로 학인을 제접한 접화이다. '강마(降魔)'는 신수(神秀) 문하 숭산(嵩山) 강마장선사(降魔藏禪師)로 볼 수 있으나, 蓮花冠을 쓰고 목간(木簡)을 들고 노래·춤춘 이는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 원지(圓智)로 널리 전하므로 '무홀(舞笏)' 주인공에는 이설(異說)이 있다(의심).
- 見刺 견자
'견해의 가시'라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제 견해나 알음알이를 세우면 그것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걸림이 된다는 비유다.
- 鬼窟裏弄精魂 귀굴리농정혼
귀신 굴 속에서 넋을 희롱한다는 말이다. 캄캄한 데 틀어박혀 알음알이로 헛된 궁리를 짜내는 잘못된 공부를 꾸짖는다. '귀신 굴'은 생각만 맴도는 어두운 자리를 빗댄 것이다.
- 靈利漢 영리한
영리한 사내, 곧 눈치가 빠르고 근기가 날카로운 수행자를 이른다. 한마디만 들어 보여도 곧바로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 腳跟點地 각근점지
발꿈치가 땅에 붙음, 곧 착실히 발 딛고 선 확고한 경지이다. 반대는 '각근불점지(腳跟不點地)'(들뜸)이다.
- 脊梁硬似鐵 척량경사철
등뼈가 쇠처럼 곧고 굳셈이다. 흔들림 없는 지절(志節)·기개이다.
- 見性成佛 견성성불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경전 공부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음을 깨닫는 선종의 근본 표방으로, 흔히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로 함께 쓴다.
-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 塵勞 진로
번뇌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티끌처럼 마음을 더럽히고 지치게 한다 하여 진로라 한다. 『유마경』은 이 진로가 곧 부처가 될 씨앗이라고도 하였다.
-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 保任 보임
깨친 뒤에 그 자리를 잃지 않도록 잘 지키고 길러 가는 공부다. 흔히 보림이라고도 읽는다. 옛사람은 소 치는 이가 소를 지켜보아 남의 곡식을 밟지 않게 하듯 하라고 비유하였다.
- 箭鋒相拄 전봉상주
화살촉과 화살촉이 공중에서 맞부딪쳐 버틴다는 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기틀이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고 딱 맞아떨어짐을 이른다. 석두(石頭)의 『참동계』에도 보인다.
- 靈山拈花 영산염화
영산(靈山)의 법회에서 석가모니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자, 모두 말이 없는데 가섭(迦葉)만 빙그레 웃었다는 이야기다. 부처는 이에 바른 법의 눈, 곧 정법안장(正法眼藏)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한다.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으로 법을 전한 일의 상징으로 일컬어진다.
- 摩訶迦葉 마하가섭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 부처님의 큰 제자로, 욕심을 떨치는 두타(頭陀) 수행이 으뜸이었다. 영산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홀로 미소 지어 법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선종에서는 인도의 첫 조사로 받들며, 금색두타라고도 부른다.
- 入處 입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자리, 곧 처음 깨쳐 든 실마리를 이른다. 선에서는 입처를 얻은 뒤에도 거기 머물지 말고 끝까지 사무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 利根上智 이근상지
근기(根機)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다. 근기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그릇을 말한다. 한 번 듣고 곧바로 알아차리는 큰 그릇을 이른다.
- 淘汰 도태
물에 일어 쌀과 모래를 가려내듯, 잡된 것을 씻어 걸러 깨끗이 한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깨친 뒤에도 공부를 거듭 다듬어 순수하게 하는 일을 이른다.
- 世尊拈花·
迦葉微笑· 세존염화·拈花微笑 가섭미소· 염화미소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세존이 꽃을 들자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만 미소하여, 부처가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을 그에게 부촉했다는 선문 전심(傳心)(마음을 전함)의 근본 고사이다. 교외별전(教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의 상징이며,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무문관(無門關)》 제6칙 등에 실린 중국 찬술 계열 이야기이다.
- 迦葉·
大迦葉 가섭·대가섭 마하가섭이다. 부처의 열 큰 제자 가운데 두타(검소한 고행) 수행이 으뜸이었고, 선종에서는 인도의 첫째 조사로 받든다. 아난에게 법을 넘겨주며 '법과 법이 본래 법이니…' 하는 게송을 읊었다고 전한다(경덕전등록 권1).
- 向上宗風 향상종풍
향상일로(向上一路), 곧 부처·조사의 자취마저 넘어선 궁극의 선풍이다. 지견(知見)·계급(階級)을 초월한 최상승(最上乘)의 가풍(家風)이다.
- 舉一明三 거일명삼
하나를 들어 보이면 셋을 밝게 아는 영민한 근기의 형용이다. 원오는 흔히 '거일명삼(擧一明三),목기수량(目機銖兩)'으로 병칭한다(《벽암록(碧巖錄)》 제1칙 수시(垂示)).
- 未來際 미래제
미래의 끝(bhūtakoṭi)이다. '궁미래제(窮未來際)'는 시간이 끝나도록 영원함이다.
- 四大六根 사대육근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몸)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감관)이다. 몸과 감관마저 살림살이(가구(家具), 자기 소유의 세간 도구)일 뿐이다.
- 納祐 납우
복(福祐)을 받음이다. 때에 응하여(應時) 저절로 복(福)이 이른다.
- 遇飯喫飯·
遇茶喫茶 우반끽반·우다끽다 밥 나오면 밥 먹고 차 나오면 차 마심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무심(無心)한 일상 그대로의 작용이다.
- 蓮華座 연화좌
부처가 앉는 연꽃 자리, 곧 최고로 존귀한 지위이다.
- 九泉 구천
땅속 깊은 곳, 곧 황천(黃泉)·저승이다. 가장 낮고 비천한 처지이다.
- 大迦葉云·
法法本來法· 대가섭운·無法無非法· 何於一法中· 有法有不法 법법본래법· 무법무비법· 하어일법중· 유법유불법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이조(二祖) 아난(阿難)에게 법을 전하며 읊은 전법게(傳法偈)이다. 일체법(一切法)이 본래 그대로의 법이어서 법·비법(非法)의 분별이 서지 않음을 노래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1 소재이다.
- 直指妙心 직지묘심
곧바로 묘한 마음을 가리켜 보임(直指人心)이다. 언설·계급(階級)을 거치지 않는 직절(直截)한 접화이다.
- 祕魔巖 비마암
五臺山 祕魔巖和尚. 永泰寺 靈湍의 法嗣다. 늘 나무 작대기(木叉) 하나를 들고 있다가 僧이 와서 절하면 목에 걸고 '那箇魔魅教汝出家,那箇魔魅教汝行脚,道得也叉下死,道不得也叉下死'라 하였다(『景德傳燈錄』 권10, T51n2076_p0280a29).
- 遇飯喫飯 우반끽반
밥 나오면 밥 먹고 차 나오면 차 마심이다. '平常心是道'의 無心한 일상 그대로의 작용이다.
- 大迦葉云 대가섭운
摩訶迦葉이 二祖 阿難에게 법을 전하며 읊은 傳法偈이다. 一切法이 본래 그대로의 법이어서 법·非法의 분별이 서지 않음을 노래한다. 《景德傳燈錄》 卷1 소재이다.
- 達磨廓然無聖 달마확연무성
양나라 무제(武帝)가 달마(達磨)에게 '거룩한 진리의 첫째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달마는 '텅 비어 거룩하다 할 것도 없다(廓然無聖)'고 답했다. 무제가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누구냐'고 다시 묻자 '모른다'고 했다. 뜻이 통하지 않자 달마는 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 『벽암록』 첫째 칙으로 널리 알려진 공안이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