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7
CBETA는 倜儻으로 새기며, 倜儻은 '얽매이지 않고 빼어나다'는 표준 어휘이고 앞의 驀然이 이미 '문득'을 담당한다. 偶儻으로 보아 '우연히'로 옮긴 책은 사전·표준 구문에 어긋나므로, 얽매이지 않고 꿰뚫어 벗어난다는 자체역이 옳다.
了를 '이루다·마치다'(완성)로 보는 독법과 '알다·요달'로 보는 책의 독법이 갈린다. 선가 상투구 '一了一切了'는 요달과 완성 두 뜻이 다 통하므로 양립한다.
풀이 3
且說을 발화 연결어로 보면 頭頭物物…便與佛祖無殊까지 통사적으로 이어지고, 책은 '다시 무슨 세간법·불법을 말하랴'라는 반어 종결로 끊었다. 저본 자형이 更說甚/且說其로 미확정인 데다 두 독법이 각기 성립하여 양립한다.
책 '원래 그가 아니며'는 无非(=无不, 이중부정으로 '다름 아닌 그것')를 단순 부정으로 뒤집어 의미가 역전되었다. '信手拈…信口言,无非它'는 손·발·입 가는 대로 해도 그것(자성) 아닌 것이 없다는 긍정이며, '그것 아닌 것이 없고'가 옳다.
선가 상용구 '省力得力處'(大慧書 '省力處便是得力處')에 비추면 省은 省力(힘을 덞)이며 得力과 짝을 이룬다. 省察(요점을 살핌)로 새긴 책은 이 상용구에 어긋나므로, 힘을 덜고 요긴하게 힘을 얻는 곳이라는 자체역이 옳다.
풀이 8
乍可는 寧可(차라리 ~할지언정)로, '차라리 몸이 부서져 티끌이 될지언정 끝내 이 승려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겠다'는 양보 구문이다. 저본이 瞎(눈을 멀게 하다)이라 책의 '눈을 멀게 하진 않겠다'는 맞고, 乍를 '잠깐'으로 읽은 것만 바로잡는다. (옛 판정은 부록본 전사 瞞(속이다)을 두고 쓴 것이라 2026-10-23 고쳐 씀)
풀이 9
이 편의 낱말 25
-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 劫火洞然 겁화동연
'겁화(劫火)가 활활 타오른다'는 말이다. 세계가 무너지는 괴겁(壞劫) 끝에 큰불이 일어나 온 우주(大千世界)를 다 태운다고 한다. 선문에서는 그때 '이것'도 무너지느냐는 물음으로 이름났으니, 대수(大隨)는 '무너진다'고 하고 수산주(修山主)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 縱橫十字 종횡십자
종으로 횡으로 십자로 뻗어 걸림 없이 자유자재함이다. 묘용(妙用)의 걸림 없음을 형용한 말이다.
- 雪峰義存 설봉의존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천주(泉州) 남안(南安) 사람이다.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 설봉산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 운문(雲門)과 현사(玄沙)의 계통에서 운문종과 법안종이 나왔다.
- 不惜眉毛 불석미모
'눈썹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법을 함부로 많이 말하면 눈썹이 빠진다는 옛 속설에 기대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자상하게 다 일러 줌을 이른다.
-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 銀山鐵壁 은산철벽
은으로 된 산, 쇠로 된 벽이라는 말이다. 머리로 헤아려서는 도무지 뚫을 수 없는 꽉 막힌 관문을 비유한다. 『벽암록』은 뚫기 전에는 은산철벽 같지만, 뚫고 나면 제가 바로 그 벽이라 했다.
- 宗乘 종승
선종(禪宗)의 종지(宗旨)를 실은 가르침의 수레. 교문(教門)의 교승(敎乘)에 대(對)하는 말.
- 本分草料 본분초료
제 몫에 꼭 맞는 꼴과 여물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상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참된 처방, 흔히 말에 매인 이에게 내리는 방망이나 꾸짖음을 이른다. 『벽암록』의 촌평에 자주 나온다.
- 趙州勘婆 조주감파
오대산(五臺山) 가는 길목의 한 노파는 길을 묻는 스님마다 '곧장 가시오(驀直去)' 하고는, 스님이 몇 걸음 가면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군' 하고 비웃었다. 조주(趙州)가 이 말을 듣고 직접 가서 똑같이 묻고 돌아와 '내가 그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간파했다(勘破了也)'고 했다. 조주가 무엇을 간파했는지를 묻는 공안이다.
- 叢林 총림
많은 스님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큰 절이나 선원을 이른다. 나무가 빽빽이 모여 숲을 이루듯 대중이 모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넓게는 선문의 수행자 사회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 罷參 파참
참학(參禪)을 마침이다. 더 배워 물을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인가하는 표현이다.
-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 金剛正體 금강정체
금강처럼 단단해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바른 본바탕이라는 뜻으로, 사람마다 본래 갖춘 참마음을 이른다. 어떤 일을 겪어도 변하거나 무너지지 않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말과 글, 곧 깨달음에 보탬이 안 되는 군더더기 말을 이른다. 선사들은 자기 법문을 낮추어 '갈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 承當 승당
받아들여 떠맡는다는 뜻이다. 선에서는 제 본래 마음을 남의 말에 기대지 않고 몸소 받아들이는 일을 이른다. 흔히 직하승당(直下承當), 곧 그 자리에서 곧바로 떠맡는다고 쓴다.
- 大事 대사
큰일이라는 말로, 선문에서는 나고 죽는 문제를 깨쳐 벗어나는 일을 이른다. 『법화경』에서 부처가 '하나의 큰일의 인연'으로 세상에 나왔다고 한 말과 통한다.
- 羣靈 군령
뭇 신령한 것, 곧 모든 중생을 이른다. 부처나 조사와 맞세워 범부 중생을 가리킬 때가 많다. '군령을 건진다'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 三祖僧璨 삼조승찬
중국 선종의 셋째 조사 승찬(僧璨, ?~606)이다. 이조 혜가(慧可)의 법을 이어 사조 도신(道信)에게 전했다. 마음의 도리를 넉 자 운문으로 읊은 『신심명(信心銘)』을 지었다고 전한다.
- 逾上人 유상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유상인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승려이다. '상인'은 안으로 덕과 지혜를 갖추고 밖으로 뛰어난 행을 지녀 존경받는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 大施門開 대시문개
'큰 베풂의 문이 열림'이다. 근원이 밝아 걸림 없이 대기대용(大機大用)이 나타남을 말하며, 화엄(華嚴)계 표현('대시문개무옹색(大施門開無壅塞)')을 선가에서 가져다 쓴 것이다.
- 馬師·
馬祖道一 마사·마조도일 육조 혜능에서 남악 회양으로 이어진 법을 이은 스님으로, 홍주종의 조사이다. 방거사가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누구입니까' 묻자 '네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면 일러 주겠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경덕전등록 권8).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