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9편

정선인(淨禪人)에게 주는 글

示淨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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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한문淨道人因入室,遂請益所疑云:此一段事,爲何宗師多示人這邊那邊尋語之據?本分截斷,豈有如許?
번역정 도인(淨道人)이 방에 들어와(入室) 의심나는 것을 여쭈었다. “이 한 가지 일에 대해, 어째서 종사(宗師)들께서는 사람들에게 이쪽이니 저쪽이니 하며 말의 근거를 좇아 찾게 하는 가르침을 그토록 많이 보이십니까? 본분(本分)은 딱 끊어져 있는데, 어찌 그렇게 여러 갈래가 있겠습니까?”
쉽게 읽기정 도인이 스승의 방에 들어와, 마침내 품고 있던 의심을 여쭈었다. “이 하나의 일을 두고, 어째서 큰 스승들은 사람들에게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며 말의 자취를 좇아 찾게 하는 가르침을 그토록 많이 베푸십니까? 본분의 자리는 딱 끊어져 있는데, 어찌 그렇게 여러 갈래가 있겠습니까?”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尋語之據
책 오역(misparse) → 이 구는 '示人這邊那邊'에 이어져 종사가 학인에게 말의 근거를 좇아 찾게 함을 뜻하며 淨道人 질문의 일부이다. 책은 질문을 '이쪽 저쪽을 제시합니까'에서 끊고 尋語之據를 '이 말을 살피건대'라는 화자 개입 어구로 처리해 尋語之據를 질문에서 탈락시키고 문답 경계를 흐렸다. '然'이 원오의 답을 여는 표지이므로 尋語之據~豈有如許는 모두 淨道人 발화로 붙는 독법이 원문 구조에 부합한다.
49.2
한문然垂手方便,貴圖箇入路,乃強分之意,實無二種耳。不見僧問曹山:古人提持那邊人,教學人如何趣向?山云:退步就己,萬不失一。其僧有省。
번역그러나 손을 드리워(垂手) 방편을 베푸는 것은, 무엇보다 들어갈 길 하나를 열어 주려는 것이다. 억지로 나눈 뜻일 뿐, 실은 두 가지가 없다. 보지 못했는가.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저쪽 사람을 들어 쥐었다(提持)고 하는데, 배우는 이에게는 어떻게 나아가라고 하십니까?” 조산이 말했다.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오면, 만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 스님이 깨친 바가 있었다.
쉽게 읽기그러나 손을 드리워 방편을 베푸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무엇보다 들어갈 길 하나를 열어 주려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갈라놓은 뜻일 뿐, 실은 두 가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스님이 조산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저쪽 사람을 붙들어 이끌었다고 하는데, 배우는 이를 어떻게 나아가게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오면 만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 말에 그 스님은 문득 깨쳤다.
풀이 7
曹山本寂 조산본적『五燈會元』 권13에 撫州曹山 智炬 禪師가 '先曹山'(本寂)에게 '古人提持那邊人,學人如何體悉'을 묻고 '退步就己,萬不失一'의 말끝에 '頓忘玄解'한 것으로 실려 있다.
提持 제지'古人提持那邊人'과 曹山의 답 '退步就己,萬不失一'은 『五燈會元』 권13에 뒤에 曹山에 산 智炬가 先曹山(本寂)에게 물은 말로 실려 있다(물음 끝은 '學人如何體悉').
垂手 수수'多示人這邊那邊尋語之據?本分截斷,豈有如許'라는 물음에, 這邊·那邊의 施設은 入路를 열려는 垂手方便일 뿐 실은 두 가지가 아니라 답했다. 이어 曹山의 '退步就己,萬不失一'을 들었다.
曹山本寂 조산본적〔병렬용례〕 조산본적(曹山本寂) 문답 '僧問…古人提持那邊人…山云 退步就己 萬不失一'은 曹洞 燈錄(曹山本寂 章, 『五燈會元』卷13 계열·曹山語錄)의 那邊/這邊·就己 문답과 직접 병렬한다. 본편은 이를 그대로 引證하였다.
49.3
한문所謂識取鉤頭意,莫認定盤星。只要及盡今時,便承當得向上事。
번역이른바 ‘낚싯바늘 끝의 뜻을 알아채라. 저울의 첫 눈금(定盤星)을 붙들지 마라’는 것이다. 다만 지금(今時)을 다하기만 하면, 곧 향상(向上)의 일을 떠맡아 얻는다.
且今時作麼生及得盡?只在當人快著精彩,擺撥緣塵,直令胸中脫灑,不立纖毫,透頂透底,洞然虗寂。
그러면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오직 그 사람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는 데 달려 있다. 반연하는 티끌(緣塵)을 떨쳐 버리고, 곧장 가슴속을 시원히 벗어 털끝만큼도 세우지 않는다. 정수리부터 밑바닥까지 꿰뚫어, 훤히 트여 텅 비고 고요하다.
쉽게 읽기이른바 낚싯바늘 끝에 걸린 참뜻을 알아채야 한다. 저울의 첫 눈금을 참된 것인 줄로 잘못 붙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을 남김없이 다하기만 하면, 곧바로 향상의 일을 떠맡아 얻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다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오직 당사자에게 달려 있다. 재빨리 정신을 바짝 차려, 온갖 얽히고설킨 티끌을 떨쳐 버리고, 가슴속을 시원하게 벗어던져 털끝만큼도 세우지 않으며, 정수리에서 발밑까지 온통 꿰뚫어, 툭 트인 채 텅 비고 고요해지는 것이다.
풀이 5
向上事 향상사〔병렬용례〕 '向上事·今時' 및 '垂手方便이 强分일 뿐 二種 아님'의 논리는 圜悟 자신의 『語錄』·『碧巖錄』에 반복되는 向上一路·入廛垂手 開示와 일관한다. 死句가 아닌 活句로 入路를 여는 방편론이다.
定盤星 정반성〔병렬용례〕 '莫認定盤星'은 禪門에서 상용하는 '定盤星(고정된 死句·언어 자취)에 집착 말라'는 경책 용례와 상통한다. 원오가 즐겨 쓰는 活句 참구 지침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便承當得向上事
. 承當은 스스로 떠맡아 체득함이지 남을 알아차리게 하는 사역이 아니다. '只要…便…'의 조건-귀결 구문에서 及盡今時와 承當의 주어는 동일한 當人이며, 바로 뒤의 '只在當人快著精彩'가 그 주어를 확정한다. 그러므로 학인이 향상의 일을 감당해 체득한다는 자체역이 옳고, 曹山·古人의 교화 의도로 주어를 옮겨 '알아차리게 하려 함'으로 읽은 책은 承當에 없는 사역을 더한 오독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且今時作麼生及得盡
. '作麼生及得盡'을 '지금을 어떻게 다하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으로 읽는 것과, '지금 이 순간이란 무엇이며 / 그것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두 물음으로 나누어 읽는 것이 모두 성립한다. 뒤에 '只在當人…'으로 스스로 답하는 자문자답 구조여서 합쳐 읽든 나누어 읽든 큰 뜻이 같으므로 양립가능한 이독으로 유지한다.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70b01). 이체이며 뜻이 같다.
49.4
한문切忌作勝量解會,直待與本來相應,自然自悟自證,得大安穩之地也。此豈紙上所能話會耶?請自著眼看。
번역부디 헤아려 아는 견해(勝量解會)를 짓지 마라. 곧바로 본래(本來)와 서로 맞아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저절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크게 편안한 자리를 얻는다. 이것이 어찌 종이 위에서 말로 알 수 있는 것이겠는가. 부디 스스로 눈을 붙여 보라.
쉽게 읽기부디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견해를 짓는 일만은 절대 삼가라. 곧바로 본래의 자리와 서로 맞아떨어지기를 기다려라. 그러면 저절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크게 안온한 경지를 얻는다. 이것이 어찌 종이 위의 글로 따져 알아낼 수 있는 것이겠는가. 부디 스스로 눈을 붙여 살펴보라.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自然自悟自證得大安穩之地
책 오역(경미 누락) → 自悟·自證의 두 말이 병렬인데 책 '자연히 스스로 깨달아 얻을'은 自證을 흡수해 생략하였다. 내 번역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가 원문 병렬을 보존한다. 경미하나 분명한 축약이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15
  1. 那邊·這邊 나변·저변

    조동(曹洞) 편정(偏正) 논리의 대구이다. 나변(那邊)은 향상(向上)·본분(本分)·절대(理)이고 저변(這邊)은 금시(今時)·현실 작용(事)이다. 종사가 방편으로 억지로 나눈 것일 뿐 '실무이종(實無二種)'이다.

  2. 垂手 수수

    손을 아래로 드리운다는 뜻으로, 스승이 몸을 낮추어 배우는 이를 이끄는 일을 이른다. 흔히 방편을 베푸는 일과 함께 말한다. 곽암(廓庵)의 『십우도』 마지막 그림 '입전수수(入鄽垂手)'로 널리 알려졌다.

  3. 提持 제지

    들어 올려 붙든다는 뜻으로, 스승이 근본 뜻을 들어 보이며 학인을 다잡아 이끄는 일을 이른다. 『벽암록』에서는 펼쳐 놓아 주는 '평전(平展)'과 짝을 이루는 말로도 쓴다.

  4. 退步就己·萬不失一 퇴보취기·만불실일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오면 만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음이다. 회광반조(迴光返照)·반조자기(反照自己)로, 밖으로 어구를 좇지 말라는 조동식(曹洞式) 지시이다.

  5. 識取鉤頭意 식취구두의

    낚싯바늘 끝에 담긴 뜻을 알아채라는 말이다. 낚싯바늘 끝의 살아 있는 뜻(활구, 活句)을 알아차리라는 것으로, 선자덕성(船子德誠) 계열의 낚시 비유다. '막인정반성(莫認定盤星)', 곧 저울의 첫 눈금을 참된 것으로 잘못 알지 말라는 말과 짝지어 사구(死句) 집착을 경계한다.

  6. 定盤星 정반성

    저울대(秤)의 기준 눈금, 곧 영점(零點) 별표이다. 착인정반성(錯認定盤星)은 기준점 자체를 잘못 앎, 곧 근본에서 어긋난 착오를 뜻한다.

  7. 擺撥緣塵 파발연진

    반연하는 육진(六塵)·번뇌 경계(緣塵)를 떨쳐 버림이다. 흉중탈쇄(胷中脫灑)·불립섬호(不立纖毫)로 이어지는 탕척(蕩滌) 공부이다.

  8.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9. 曹山本寂 조산본적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 조산에 머물렀다. 스승 동산과 함께 조동종(曹洞宗)의 조사로 받든다. 동산을 떠날 때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

  10. 淨道人·淨禪人 정도인·정선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정선인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선승이다. 글 속에서는 '정도인'으로도 불렀다. 원오의 방에 들어 의심나는 것을 물었으며, 생애와 법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11. 今時 금시

    동산(洞山) 공훈위(功勳位)이자 조동(曹洞) 술어로 '바로 지금 이 자리의 현실 작용처'이다. '급진금시(及盡今時)'는 지금을 사무쳐 다하면 곧 향상사(向上事)를 감당함이다.

  12. 向上事 향상사

    언어·계급을 넘어선 궁극의 일로 향상일로(向上一路)이다. 금시(今時)를 다한 자리에서 승당(承當)된다.

  13. 勝量解會 승량해회

    알음알이로 뛰어난 이치를 헤아려 짓는 분별의 견해이다. 선가에서는 깨달음을 가로막는 병으로 경계한다.

  14. 那邊 나변

    曹洞 偏正 논리의 대구이다. 那邊은 向上·本分·절대(理)이고 這邊은 今時·현실 작용(事)이다. 종사가 방편으로 억지로 나눈 것일 뿐 '實無二種'이다.

  15. 退步就己 퇴보취기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오면 만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음이다. 迴光返照·反照自己로, 밖으로 어구를 좇지 말라는 曹洞式 지시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