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52편

영상인(瑛上人)에게 주는 글

示瑛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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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한문道本無言,因言顯道。若真體道之人,通之於心,明之於本,直下脫卻千重萬重貼肉汗衫,豁然契悟本來真淨明妙、冲虗寂淡、如如不動、真實正體,
번역도(道)는 본래 말이 없다. 그러나 말로 말미암아 도가 드러난다. 참으로 도를 몸소 깨친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통하고 근본에서 밝힌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천 겹 만 겹 살에 달라붙은 땀받이 속옷을 벗어 버린다. 그리고 확 트이듯(豁然) 본래의 참되고 맑고 밝고 묘하며, 텅 비고 고요하고 담박하며,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는, 참되고 진실한 바른 본체(正體)에 맞아떨어져 깨닫는다.
到一念不生、前後際斷處,蹋著本地風光,更無許多惡覺知見、彼我是非、生死垢心,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의 경계가 끊어진 곳에 이르러,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는다. 그러면 다시는 그 많은 그릇된 앎과 알음알이, 너와 나, 옳고 그름, 생사(生死)에 물든 마음이 없다.
拔白露淨信得及,與他從上來人無二無別,
말갛게 벗어나 깨끗함이 드러나고, 확실히 믿어 사무친다. 예로부터 내려온 이들과 둘도 아니고 다름도 없다.
等閑不作爲、不確執,虗通自在,圓融無際,
무심히 지어내지 않고, 굳게 붙잡지 않는다. 텅 비어 통하고 자재(自在)하며, 원융(圓融)하여 가없다.
隨時應節,喫飯著衣,契證平常,謂之無爲無事真正道人。
때를 따르고 철에 맞추어, 밥 먹고 옷 입으며 평상(平常)에 맞아떨어져 깨닫는다. 이를 일러 함이 없고 일 없는(無爲無事) 참되고 바른 도인(道人)이라 한다.
쉽게 읽기도는 본래 말이 없다. 그러나 말이 있어야 도가 드러난다. 참으로 도를 몸으로 깨친 사람은 마음으로 도와 통하고 근본을 환히 밝힌다. 그리하여 천 겹 만 겹으로 살에 달라붙어 땀에 전 속옷을 벗어 던지듯, 한순간에 활연히 깨닫는다. 본래 참되고 맑으며 밝고 오묘한 것, 텅 비고 그윽하며 고요하고 담박한 것, 여여히 흔들리지 않는 참된 본체와 하나가 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의 경계가 끊어진 곳에 이르러, 저마다 본래 지닌 참모습인 본지풍광을 밟는다. 그러면 그 숱한 그릇된 앎과 알음알이, 너와 나, 옳고 그름, 나고 죽음에 물든 마음이 다 사라진다. 말갛게 벗어나 맑음이 드러나고, 확실히 믿어 사무친다. 이런 사람은 예로부터 내려온 조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무심히 애써 지어내지 않고, 억지로 붙잡지도 않는다. 텅 비어 두루 통하고 걸림 없이 자재하며, 모난 데 없이 원융하다. 때를 따르고 철에 맞추어, 밥 먹고 옷 입는 일마다 평상에 딱 들어맞는다. 이런 이를 무위하고 일 없는 참되고 바른 도인이라 한다.
풀이 2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시(示)·법어(法語) 계열): 본지풍광(本地風光)·득좌피의향후자간(得坐披衣向後自看)·세법불법타성일편(世法佛法打成一片)·관대(管帶)·요시십자가두저력(鬧市十字街頭著力) 등 동일 상투구가 원오의 다른 시중 법어에 반복 출현한다. 본편이 원오 특유의 활선(活禪)·반묵조(反默照) 시중 정형을 공유함을 보인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貼肉汗衫
汗衫은 살에 닿는 땀받이 속옷(속적삼)인데, 책은 '땀 냄새 밴 장삼'으로 옮겨 겉옷 長衫과 혼동하였다. '살에 붙은 땀에 젖은 속옷'이 옳다.
52.2
한문蓋緣根本既明,六根純靜,智理雙冥,境神俱會,
번역근본이 이미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근(六根)이 순수하고 고요하다. 지혜와 이치가 함께 그윽해지고, 경계와 정신이 함께 만난다.
無深可深,無妙可妙,至於行履自會融通,
깊다 할 깊음도 없고, 묘하다 할 묘함도 없다. 나날의 행동거지(行履)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막힘없이 통하게 된다.
喚作得坐披衣。向後自看,終不肯只向言句中話路、古人公案間、埋沒鬼窟裏、黑山下作活計,
이를 일러 ‘자리를 얻어 옷을 걸치고, 그 뒤로는 스스로 살핀다(得坐披衣,向後自看)’고 한다. 이런 이는 끝내 말과 글귀 속 이야기 길이나 옛사람의 공안(公案) 사이에서, 귀신 굴 속에 파묻혀 흑산(黑山) 아래 살림을 꾸리려 하지 않는다.
唯以悟入深證爲要,自然到至簡至易、平常無事處,
오직 깨달아 들어가 깊이 증득하는 것을 요체로 삼는다. 그러면 저절로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평상하여 일 없는 곳에 이른다.
然亦終不肯死殺坐卻墮在無事界裏。
그렇다고 또 끝내 죽은 듯 눌러앉아, 일 없는 경계(無事界) 속에 떨어져 있으려 하지도 않는다.
쉽게 읽기근본이 이미 밝아졌으니, 여섯 감각의 뿌리가 순수하고 고요해진다. 지혜와 이치가 함께 아득해지고, 바깥 경계와 내 정신이 하나로 만난다. 더 깊이 팔 깊음도 없고, 더 파고들 오묘함도 없다. 그리하여 나날의 삶과 행동에 이르면 저절로 막힘없이 통한다. 이를 두고 자리를 얻어 옷을 걸치고 이후로 스스로 살펴본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끝내 말과 글 속 이야기 길이나 옛사람의 공안을 붙들고 늘어지지 않는다. 귀신 굴 속에 파묻히거나 캄캄한 산 밑에서 살림 차리듯, 알음알이에 갇혀 지내지도 않는다. 오직 깨쳐 들어가 깊이 증득하는 것만을 요체로 삼는다. 그래서 저절로 더없이 쉽고 간명하며, 평상하여 일 없는 자리에 이른다. 그렇다고 죽은 듯 눌러앉아, 일 없는 경계에 빠져 있지도 않는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得坐披衣向後自看'→‘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圜悟는 같은 「示瑛上人」편 앞부분에서 '古德云:得坐披衣,向後自看'이라 하여 이 여덟 자를 옛 어른의 한 구절로 통째 인용한다. 나아가 「示元賓」의 '得坐披衣,向後自看是也'(是也가 두 구를 함께 묶음)와 「示興祖居士」의 '得坐披衣,向後自看,正要人作…'에서도 一體의 상투구로 쓴다. 따라서 본문 '喚作得坐披衣。向後自看'에 찍힌 CBETA의 마침표는 편의적 분절일 뿐이며, 向後自看까지 喚作의 인용 대상에 드는 것이 옳다. 得坐披衣만 인용하고 向後自看을 '이후로 스스로 살펴서'라는 후속절로 떼어낸 책 독해는 저본 자체의 용례에 어긋나므로, 여덟 자를 一體로 묶어 읽은 자체역이 옳다.
52.3
한문是故從上作家,古德行棒行喝,立宗旨,明與奪,設照用三要,三玄五位,偏正峻機,電卷言前,格外旁提正按,
번역그러므로 예로부터 작가(作家)인 옛 큰스님들은 방(棒)을 쓰고 할(喝)을 했다. 종지(宗旨)를 세우고, 주고 빼앗음(與奪)을 밝히고, 비춤과 씀(照用)을 베풀었다. 삼요(三要)와 삼현(三玄), 오위(五位)의 편정(偏正) 같은 준엄한 기틀이 번개처럼 휘몰아쳤다. 말 이전에, 격식 밖에서, 옆으로 들어 올리고 바로 눌러 주었다.
只貴當人活卓卓地,千人萬人羅籠不住,知有向上宗乘,終不指注定殺,掘坑埋人。
다만 귀하게 여긴 것은 이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서 우뚝하여(活卓卓地), 천 사람 만 사람이 그물을 쳐도 붙잡아 두지 못한다. 향상(向上)의 종승(宗乘)이 있음을 알아, 끝내 딱 정해 못 박아 죽이거나 구덩이를 파서 사람을 묻지 않는다.
若有如此者,定是弄泥團,非慷慨透脫真正具眼衲子。
만약 이렇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진흙덩이나 주무르는 자다. 기개 있게 꿰뚫어 벗어난, 참되고 바른 눈 갖춘 납자(衲子)가 아니다.
所以不喫人殘羹𩜯飯,被繫驢橛子綴住,不唯埋沒宗風,抑亦自己透脫生死不得。
그러므로 남이 먹다 남긴 국이나 쉰밥을 먹지 않는다. 나귀 매는 말뚝에 묶여 매이면, 종풍(宗風)을 파묻을 뿐 아니라 자기도 생사를 꿰뚫어 벗어나지 못한다.
況復展轉將路布窠窟,解路傳授與後學,遂成一盲引眾盲,相將入火坑,豈是小禍?
하물며 다시 짜 놓은 말틀(路布)과 소굴(窠窟), 알음알이의 길을 이리저리 뒷사람에게 전해 준다. 마침내 한 눈먼 이가 뭇 눈먼 이를 이끌고, 서로 데리고 불구덩이로 들어가게 된다. 어찌 작은 재앙이겠는가.
復令正宗只見淡薄,祖佛綱紀委地,豈不痛哉?
또 바른 종지를 그저 밍밍하게만 보이게 하고, 조사와 부처의 벼리(綱紀)를 땅에 떨어뜨린다.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그러므로 예로부터 눈 밝은 옛 큰스님들, 곧 작가들은 방으로 때리고 할로 고함쳤다. 종지를 똑바로 세우고, 주는 때와 빼앗는 때를 밝혔다. 비출 때와 쓸 때를 자유로이 부렸다. 삼요와 삼현, 조동종의 오위편정 같은 준엄한 기틀을 번개처럼 몰아쳤다. 말이 나오기 전에, 격식 밖에서, 옆으로 들어 올리고 바로 눌러 주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한 가지를 귀히 여겨서다. 곧 배우는 이가 스스로 펄펄 살아 움직여, 천만 사람이 얽어매도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또 위로 뚫고 오르는 참길, 곧 향상의 종승이 따로 있음을 알아, 끝내 못 박듯 딱 정하고 구덩이를 파서 사람을 묻어 버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못 박고 가두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진흙덩이나 주무르는 자다. 시원스레 꿰뚫어 벗어난, 참되고 바른 눈 밝은 납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남이 먹다 남긴 국이나 쉰밥을 먹지 않는다. 나귀 매는 말뚝에 묶이지도 않는다. 남은 국을 먹고 말뚝에 매이는 짓은 종풍을 파묻을 뿐이다. 게다가 제 몸마저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하물며 짜 놓은 말틀과 소굴, 알음알이의 길을 뒷사람에게 그대로 물려주면 어찌 되겠는가. 마침내 한 눈먼 자가 뭇 눈먼 자를 이끌고 함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꼴이 되니, 이 어찌 작은 재앙이겠는가. 그뿐 아니라 바른 종지를 그저 밍밍하게만 보이게 하고, 조사와 부처의 벼리를 땅에 떨어뜨린다.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所以不喫人殘羹餿飯,被繫驢橛子綴住
내 번역이 '먹지 않으며 매이지 않는다'로 맺어 뒤의 '이는 종풍을 파묻을 뿐…'과 논리가 단절된다. '被繫驢橛子綴住'에는 不이 없으므로 不은 喫에만 걸리고, 말뚝에 매이는 그 일이 곧 '不唯埋沒宗風'의 주어(조건)이다 — '먹지 않는다. 말뚝에 매이면 종풍을 파묻을 뿐 아니라…'로 읽어 주어를 덧붙이지 않는다(법문 말투 원고에서 고침). 개정 대상이다. 책은 '먹으면서 매이지 않아야 한다'로 금지문화하여 정합을 얻었으나 不喫의 부정을 喫에서 떼어낸 흠이 있다.
52.4
한문所以學道先須擇正知正見師門,然後放下複子,
번역그러므로 도를 배우려면 먼저 바른 앎과 바른 견해(正知正見)를 갖춘 스승의 문을 가려야 한다. 그런 뒤에야 걸망을 내려놓는다.
不論歲月,用做事綿綿相續,不怕苦硬難入,參取管須徹去。
세월을 따지지 말고, 공부를 끊임없이 이어 가라. 괴롭고 딱딱하여 들어가기 어려운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참구하되 반드시 사무쳐야 한다.
不見睦州道:未得箇入頭,須得箇入頭處;若得箇入頭處,不得辜負老僧。
목주(睦州)가 한 말을 보지 못했는가. “아직 들어갈 곳(入頭)을 얻지 못했거든, 반드시 들어갈 곳을 얻어야 한다. 들어갈 곳을 얻었거든, 이 노승을 저버리지 마라.”
既操誠日久,大經鉗鎚,洪鑪煅煉,日近日親,田地穩密,
정성을 다잡은 지 오래되어, 큰 집게와 망치(鉗鎚)를 크게 겪고 큰 화로에서 달구어지면, 날로 가까워지고 날로 친해진다. 마음자리(田地)가 빈틈없이 여문다.
只更辦悠久管帶,使如證如悟,始終無間,世法佛法打成一片,
다만 다시 오래도록 챙겨 지님(管帶)에 힘써, 증득한 듯 깨달은 듯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짐이 없게 하라. 세간법(世法)과 불법(佛法)이 한 덩어리(打成一片)가 되게 하라.
物物頭頭有出身處,不墮塵機,不爲物轉,
그러면 낱낱의 것마다 몸을 빼낼 곳이 있어, 티끌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사물에 끌려 굴려지지 않는다.
閙市裏十字街頭,活浩之中正好著力也。
시끄러운 저잣거리 네거리, 왁자한 한가운데가 바로 힘쓰기 좋은 곳이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도를 배우려면, 먼저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는 스승의 문을 잘 가려야 한다. 그런 뒤에야 걸망을 내려놓고 눌러앉는다. 세월이 얼마나 걸리든 따지지 마라. 공부를 실낱처럼 끊임없이 이어 가라. 괴롭고 딱딱해 뚫기 어려워도 겁내지 마라. 참구하되 반드시 끝까지 사무쳐야 한다. 목주 선사의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아직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거든 기어이 들어갈 곳을 얻어라. 이미 들어갈 곳을 얻었거든 이 노승을 저버리지 마라.' 이렇게 오래도록 정성을 다잡아라. 그러면 큰 집게와 망치로 다루어지고 큰 화로에 달구어지듯 단련되어, 날로 가까워지고 날로 친해진다. 마음자리가 빈틈없이 여물어 간다. 다만 오래도록 관대, 곧 그 소식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챙겨 지녀라. 그리하여 증득한 듯 깨달은 듯,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짐이 없게 하라. 세상 살림과 부처의 법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지게 하라. 그러면 온갖 것마다 몸을 빼낼 길이 열린다. 티끌 같은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바깥 사물에 끌려 휘둘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끌벅적한 저잣거리 네거리 한복판이야말로 힘을 쏟기에 꼭 좋은 곳이다.
풀이 5
睦州道明 목주도명'汝等諸人還得箇入頭處也未。若未得箇入頭處,須覓箇入頭處。若得箇入頭處,已後不得孤負老僧'(『五燈會元』 권4 睦州章)의 줄임. 心要는 '辜負'로 적었다.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병렬용례〕 이 편의 '得坐披衣'·'世法佛法打成一片'은 원오의 다른 설법에도 거듭 쓰였다: '得坐披衣'(『語錄』 권16, T47n1997_p0786b16), '世法佛法打成一片'(권4 p0733a10·권8 p0747b22).
碧巖錄벽암록(碧巖錄) 제10칙(睦州) 및 임제·조동 관련 제칙(諸則): 본문의 목주(睦州) '입두처(入頭處)' 인용과 삼현삼요(三玄三要)·오위편정(五位偏正)·조용(照用)·봉할(棒喝)·여탈(與奪)로 종강(宗綱)을 열거·비판하는 서술 방식은, 원오가 벽암록 수시(垂示)·평창(評唱)에서 오가(五家) 강령을 논하는 어투와 일치한다(예: 제1칙 평창의 임제·덕산 봉할(棒喝) 논평).
五位偏正 오위편정벽암록(碧巖錄) 제10칙(睦州) 및 임제·조동 관련 諸則: 본문의 睦州 '入頭處' 인용과 三玄三要·五位偏正·照用·棒喝·與奪로 종강(宗綱)을 열거·비판하는 서술 방식은, 원오가 벽암록 수시(垂示)·평창(評唱)에서 오가(五家) 강령을 논하는 어투와 일치한다(예: 제1칙 평창의 임제·덕산 棒喝 논평).
52.5
한문五祖老師平昔爲人最捷徑,每示徒,多舉古德有漏笊籬,無漏木杓;大乘井索,小乘錢貫。覿面相呈時,如何分付典座?如何是玄旨?壁上掛錢財。謂學人:你若使與麼會得徹底去,便可罷參。
번역오조(五祖) 노스님은 평소 사람을 위하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셨다. 늘 대중에게 보이실 때면, 옛 큰스님들의 말을 흔히 들어 보이셨다. “새는 조리(有漏笊籬)와 새지 않는 나무 국자(無漏木杓), 대승(大乘)의 우물 두레박줄과 소승(小乘)의 돈꿰미.” “얼굴을 맞대고 서로 드러내 보일 때, 어떻게 전좌(典座)에게 분부하는가?” “무엇이 그윽한 종지(玄旨)인가? 벽에 돈과 재물을 걸어 두었다.” 그러고는 학인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만약 이렇게 밑바닥까지 알아 가면, 곧 참구를 마쳐도 좋다.”
所謂唯此一事實,直得赤心片片,不隔一絲髮許。
이른바 “오직 이 한 가지 일만이 진실하다(唯此一事實)”는 것이다. 곧바로 붉은 마음(赤心)이 조각조각이 되어, 실 한 올 터럭 하나만큼도 사이가 뜨지 않아야 한다.
若真究得到此田地,始堪提持綱宗,傳正法眼也。
참으로 파고들어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종문의 벼리(綱宗)를 들어 지니고 바른 법의 눈(正法眼)을 전할 만하다.
쉽게 읽기오조 노스님은 평소 사람을 이끄는 솜씨가 가장 빠르고 곧으셨다. 대중에게 보이실 때마다, 흔히 옛 큰스님들의 화두를 들어 참구하게 하셨다. 이를테면 '새는 조리와 새지 않는 나무 국자', '대승의 우물 두레박줄과 소승의 돈꿰미' 같은 것이다. 또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드러내 보일 때, 어떻게 부엌 살림 맡은 전좌에게 이르겠는가', '무엇이 그윽한 종지인가—벽에 돈과 재물을 걸어 두었다' 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참구하게 하시고는, 배우는 이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이렇게 해서 밑바닥까지 철저히 꿰뚫어 얻어 가면, 그때는 참구를 그만두어도 좋다.' 이것이 바로 '오직 이 한 가지 일만이 참되다'는 말이다. 붉은 마음이 조각조각 그대로 드러나, 터럭 한 올만큼도 틈이 벌어지지 않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참으로 파고들어 이 자리에 다다르면, 비로소 종문의 큰 벼리를 높이 들어 지니고, 정법안장을 전할 만하다.
풀이 7
五祖法演禪師語錄 오조법연선사어록'有漏笊籬,無漏木杓…覿面相呈時,如何分付典座'는 鄂州 清平令遵의 문답이다(『景德傳燈錄』 권15 '如何是有漏。師曰。笊籬…覿面相呈時如何。師曰。分付與典坐'). 『法演禪師語錄』 권상 謝典座上堂에도 '小繩錢貫,大繩井索,日急要用笊籬木杓'이 있다.
典座 전좌'覿面相呈時,如何分付典座'는 法演의 문답 형식이다.
五祖法演禪師語錄 오조법연선사어록오조법연선사어록(五祖法演禪師語錄)(만속장(卍續藏) 소수): 본문 말미 '유루조리(有漏笊籬)·무루목표(無漏木杓)·대승정색(大乘井索)·소승전관(小乘錢貫)'과 '적면상정시여하분부전좌(覿面相呈時如何分付典座)'·'여하시현지(如何是玄旨)—벽상괘전재(壁上掛錢財)'는 원오가 스승 오조법연의 상당·시중 어구를 그대로 거량·재천명한 직접 병렬용례이다. 원오 저작 곳곳에서 법연 시중을 재인용하는 전형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覿面相呈時如何分付典座
分付典座는 '전좌에게 분부하는가'(고증: 법연의 문답 형식)인데, 책은 典座를 호격('전좌여')으로 떼어 다음 구에 붙여 오독하였다. '전좌에게 분부하는가'가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如何是玄旨,壁上掛錢財
'壁上掛錢財'는 '무엇이 현지인가'에 대한 즉물적 截斷 답어(고증)인데, 책은 '벽 위에 돈을 걸어놓고'로 별개 동작화하여 문답 구조를 잃었다. 답어로 처리함이 옳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5
  1. 一念不生前後際斷 일념불생전후제단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 앞뒤가 뚝 끊어진 자리를 이른다. 지난 생각과 올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지금 이 자리만 오롯한 경지다. 화엄의 징관(澄觀)이 황태자에게 답한 글에도 보인다.

  2.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3. 得坐披衣·向後自看 득좌피의·향후자간

    자리를 얻어 가사를 걸침, 곧 안착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뒤에도 다시 돌이켜 살피라는 선문의 경책이다.

  4. 黑山下·鬼窟裏 흑산하·귀굴리

    흑산귀굴(黑山下鬼窟裏). 사량분별·알음알이에 갇힌 어두운 죽은 경계의 비유이다. 언구·공안을 정식(情識)으로 파고드는 병통을 가리킨다.

  5. 五位偏正 오위편정

    조동종 동산양개의 편정오위(정중편(正中偏)·편중정(偏中正)·정중래(正中來)·겸중지(兼中至)·겸중도(兼中到))이다.

  6. 宗乘 종승

    선종(禪宗)의 종지(宗旨)를 실은 가르침의 수레. 교문(教門)의 교승(敎乘)에 대(對)하는 말.

  7. 殘羹餿飯 잔갱수반

    남이 먹다 남긴 국·쉰밥이니, 조사의 죽은 언구를 답습·전수함의 비유이다.

  8. 繫驢橛子 계려궐자

    나귀 매는 말뚝이다. 임제록(臨濟錄) 출전이다. 언구·개념·죽은 공안에 매여 벗어나지 못함의 비유이다.

  9. 露布·窠窟解路 노포·과굴해로

    짜 놓은 말틀과 틀어박힌 소굴, 알음알이의 길을 아울러 이른다. 노포는 본래 봉하지 않고 내걸어 알리던 글로, 선에서는 미리 짜 놓고 늘어놓는 말과 설명을 낮추어 이르며 노포(路布)라고도 적는다. 과굴은 빠져나오지 못하는 틀에 박힌 소굴, 해로는 알음알이로 풀어 가는 길이다.

  10. 一盲引眾盲·相將入火坑 일맹인중맹·상장입화갱

    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어 불구덩이에 든다는 뜻이다. 열반경·법구 계열에서 유래한 선어록의 상투 비유이다.

  11. 世法佛法打成一片 세법불법타성일편

    세상살이의 법과 부처의 법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으면 일상의 온갖 일과 수행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12. 正法眼藏 정법안장

    부처가 깨달은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또는 그 눈으로 본 법의 알맹이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꽃을 들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고, 이때 이 법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전한다. 선종에서는 조사에서 조사로 마음으로 이어 온 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

  13. 圜悟佛果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설법을 제자 소륭(紹隆) 등이 엮은 20권의 어록이다. 법당 설법과 제자에게 준 법어, 옛 공안에 붙인 평과 게송을 실었다. 『원오심요』의 몇 편이 이 책의 법어에도 실려 있다.

  14. 管帶 관대

    늘 붙들어 챙기고 몸에 지닌다는 말이다. 깨친 마음자리를 잠시도 놓치지 않고 이어 지켜 가는 공부를 이른다. 보임(保任)과 뜻이 통한다.

  15. 照用 조용

    비춤(照)과 씀(用)이다. 지혜로 환히 비추어 살피는 일과, 그 지혜를 부려 배우는 이를 다루는 일을 이른다. 임제(臨濟)가 이 둘을 넷으로 짜 맞춘 '사조용(四照用)'이 유명하다.

  16. 睦州道明 목주도명

    목주도명(睦州道明)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황벽(黃檗) 스님의 법을 이었다. 성이 진씨라 진존숙(陳尊宿)이라 불렸고, 짚신을 삼아 어머니를 봉양해 진포혜라고도 했다. 매서운 기봉으로 운문(雲門)을 처음 깨우쳐 주었다.

  17.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18. 五祖法演禪師語錄 오조법연선사어록

    오조법연(五祖法演)의 설법을 모은 어록이다. 법연이 사면산·태평·해회·동산(오조산)에 머물며 한 법문을 제자들이 엮었다. 원오는 법연의 법을 이은 제자다.

  19. 圜悟克勤·圜悟 원오극근·원오

    원오극근(1063–1135). 임제종 양기파. 오조법연의 법제자이며 벽암록 편저자이다. 「심요(心要)(원오심요(圜悟心要))」는 그의 서간·시중 법어집이다. 법맥은 사조(師祖) 양기방회(楊岐方會) → 사공(師公) 백운수단(白雲守端) → 사(師) 오조법연(五祖法演) → 원오극근(圜悟克勤)이다.

  20. 五祖老師·五祖·師 오조노사·오조·사

    오조 법연 스님(?–1104)이다. 기주 황매의 오조산에 머물렀기에 오조라 부른다. 백운 수단 스님의 법을 이었고, 원오 극근의 스승이다.

  21. 楊岐方會·師祖 양기방회·사조

    양기방회(992–1049). 자명초원(慈明楚圓) 법제자이며 임제종 양기파 개조이다. 백운수단의 스승이자 원오의 사조(師祖)이다.

  22. 得坐披衣向後自看 득좌피의향후자간

    선문 상투구이다. 깨달아 자리를 얻은 뒤 스스로 점검·보임(保任)하라는 뜻이다. 원오가 시중에서 즐겨 쓴 표현이다.

  23. 無事界 무사계

    무사경계. 아무 일 없음에 안주해 죽은 선(墮在無事)이다. 원오·대혜가 경계한 정좌(靜坐) 침공(沈空)의 병통이다.

  24. 三要三玄 삼요삼현

    임제의현의 삼현삼요(三玄三要)(체중현·구중현·현중현 등)이니, 임제종의 접화 강령이다.

  25. 照用·與奪·棒喝 조용·여탈·방할

    임제의 사조용(四照用)(선조후용(先照後用) 등)·살활여탈(與奪)과 덕산의 방(棒)·임제의 할(喝)이다. 종사가 학인을 다루는 기틀이다.

  26. 複子 복자

    복자. 행각승의 봇짐(걸망)이다. '방하복자(放下複子)'는 바른 스승을 가려 정한 뒤 짐을 내려놓고 안거·참구함이다.

  27. 鉗鎚·洪鑪煆煉 겸추·홍로하련

    집게·망치(鉗鎚)와 큰 화로의 단련이다. 종사가 학인을 오래 벼려 익히는 비유이다.

  28. 唯此一事實 유차일사실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유차일사실(唯此一事實),여이칙비진(餘二則非眞)'에서 왔다. 오직 일대사(一大事)만이 진실이라는 뜻이다.

  29. 有漏笊籬·無漏木杓·大乘井索·小乘錢貫 유루조리·무루목표·대승정색·소승전관

    오조법연의 시중 화두(오조법연선사어록(五祖法演禪師語錄) 계통)이다. 유루·무루와 대·소승을 일상 기물(조리·국자·두레박줄·돈꿰미)에 빗댄 접화어이다.

  30. 典座 전좌

    선원에서 대중의 공양, 곧 죽과 밥을 짓고 차리는 일을 맡은 소임이다. 대중의 공양이 넉넉하고 알맞도록 마음을 쓰되 절 살림을 헛되이 쓰지 않아야 한다. 위산(潙山)이 백장(百丈) 문하에서 전좌를 지낸 일처럼 옛 선사들도 이 소임을 맡았다.

  31. 玄旨·壁上掛錢財 현지·벽상괘전재

    '여하시현지(如何是玄旨)—벽상괘전재(壁上掛錢財)'는 법연 특유의 즉물적 대꾸(截斷) 문답이다. 현묘한 종지를 언설로 굴리지 않고 눈앞 사물로 되받는다.

  32. 綱宗·正法眼 강종·정법안

    강종은 종문의 대강령이다. 정법안(장)은 부처가 가섭에게 전한 정법안장이니, 종지 전승의 대칭이다.

  33. 赤心片片 적심편편

    적심편편. 조각조각 드러난 적나라한 진심이니, 한 올 터럭만큼의 간격도 없는 철저한 계합의 경지이다.

  34. 一盲引眾盲 일맹인중맹

    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어 불구덩이에 든다는 뜻이다. 열반경·법구 계열에서 유래한 선어록의 상투 비유이다.

  35. 有漏笊籬 유루조리

    오조법연의 시중 화두(五祖法演禪師語錄 계통)이다. 유루·무루와 대·소승을 일상 기물(조리·국자·두레박줄·돈꿰미)에 빗댄 접화어이다.

문단 5국역본 대조 5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