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1편

화장 명수좌(華藏明首座)에게 주는 글

示華藏明首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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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4
臨濟錄임제록(臨濟錄)과 벽암록(碧巖錄) 제100칙(巴陵吹毛劍) : 임제 사할(四喝)의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취모용료급수마(吹毛用了急須磨)'이다. 본편 말미 살인도활인검(殺人刀活人劍)·활구 논의의 전거로 원오가 반복해 썼다.
殺人刀活人劍 살인도활인검임제록(臨濟錄)과 碧巖錄 제100칙(巴陵吹毛劍) : 임제 四喝의 '金剛王寶劍'과 '吹毛用了急須磨'이다. 본편 말미 殺人刀活人劍·활구 논의의 전거로 원오가 반복해 썼다.

화장 명수좌는 금관·협산·종부 시절부터 나를 따라 십여 년을 함께 지냈다.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도, 남보다 뛰어나다는 이해도 이미 다 내던졌고, 이 문에 들어와서는 비춤과 작용, 날랜 재치, 알음알이로 풀어 가는 길까지 남김없이 쳐 물리쳤다. 오직 위로 곧장 뚫고 오르는 그 한 수만을 방 안에서 백 번 단련하고 천 번 제련하였다. 근래 세상에 나가 백성을 돕게 되니, 이 늙은이는 아침저녁 곁에 두던 그와 헤어지게 됨을 아쉬워한다. 또 그가 붓으로 써 줄 말을 얻고자 하기에, 이렇게 몇 장을 조목조목 벌여 그에게 부친다.

1.1
쉽게 읽기화장 명수좌에게 보이는 글 — 강녕부 천녕사에 머물 때
1.2
쉽게 읽기깨달은 옛 스승들은 진리를 곧바로 가리켜 보였다. 거기에는 에둘러 가는 곁길이 없다. 그들은 오직 곧장 위로 나아가는 사람, 이른바 향상인만을 귀하게 여겼다. 그런 사람은 스승이 슬쩍 실마리만 보여도 곧바로 일어나 떠난다. 그래도 눈 밝은 이가 보면 그것마저 벌써 굼뜬 짓이다. 옛사람도 “한 모서리를 들어 보였는데 나머지 세 모서리를 스스로 알아내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하나를 들으면 셋을 밝히고, 눈어림만으로 저울눈의 티끌 같은 차이까지 가려낼 만큼 빈틈없이 빨라야, 비로소 ‘종지를 들어 이끄는 솜씨’라 할 수 있다.
1.3
쉽게 읽기보지 못하였는가. 양수가 마곡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양수가 인사드리자마자 마곡은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양수는 의아했다. 두 번째로 찾아가자 이번엔 마곡이 성큼성큼 채마밭으로 가 버렸는데, 바로 그 순간 양수가 문득 깨쳤다. 그는 마곡에게 말하였다. “스님,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제가 와서 뵙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열두 가지 경전과 논서에 속아 한평생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이만하면 참으로 힘을 던 것이다. 양수는 돌아와 대중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나도 다 알지만, 내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다.” 정말 그렇다. 그가 아는 자리에는 바람 한 점 들지 못하니, 남들이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가히 참된 사자 새끼라 할 만하다. 그 집안의 대를 이으려면, 스승보다 한 머리 더 뛰어나야 비로소 된다.
1.4
쉽게 읽기달마는 양나라를 거쳐 위나라로 들어가, 풀숲에 몸을 낮추어 사람을 찾았다. 소림사에서 아홉 해를 차갑게 앉아, 깊은 눈 속에서 마침내 한 사람을 얻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무엇을 얻었느냐” 묻자, 그 사람은 그저 세 번 절하고 제자리로 물러섰을 뿐이다. 여기서 “골수를 얻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에 뒷사람들은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듯, 말없이 절하고 선 그 모습만을 ‘골수를 얻은 깊은 경지’라 여겼다. 칼은 이미 물에 빠져 멀리 떠내려갔는데, 뱃전에 자리만 새겨 두고 찾는 격임을 모르는 것이다. 이래서야 꿈엔들 조사를 뵙겠는가. 참되고 바른 수행자라면 알음알이와 견해를 뛰어넘어 제 나름의 길이 따로 있어야 하고, 괸 물 같은 죽은 자리에서 살림을 꾸리지 말아야 비로소 그 집안의 살림을 물려받는다. 이 자리에 이르면 예로부터 내려온 그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하혜를 잘 배우는 사람은 그 겉모습까지 그대로 흉내 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딱 들어맞는 한마디가 도리어 만 겁토록 나귀를 매어 두는 말뚝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풀이 3
1.5
쉽게 읽기‘있다’는 집착을 깨뜨리는 법왕, 곧 부처가 세상에 나와 중생의 바람을 따라 갖가지로 설법한다. 하지만 그 설법이 모두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오직 집착을 깨고 의심을 깨며, 알음알이의 길과 ‘나’라는 견해를 깨기 위함일 뿐이다. 그 숱한 그릇된 앎과 그릇된 견해가 없었다면 부처님도 굳이 세상에 나올 까닭이 없었을 텐데, 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할 까닭이 있었겠는가.
1.6
쉽게 읽기옛사람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 깊은 산속 띠집과 돌방으로 들어가,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십 년, 이십 년을 보냈다. 그렇게 세상을 아주 잊고 티끌 같은 속세를 영영 하직하였다. 지금이야 감히 그렇게까지 바라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름과 자취를 감춘 채 제 본분을 지키는, 꾸밈없는 노스님은 되어야 한다. 스스로 깨달아 증득한 것을 제 힘껏 살려 쓰고, 묵은 업을 녹이며 지난 버릇을 풀어 없애야 한다. 혹 남은 힘이 있거든 그 힘을 남에게 미루어, 반야의 인연을 맺어 주고, 자기 발밑을 갈고닦아 무르익게 해야 한다. 비유하면 거친 풀숲을 한가로이 헤쳐 한 사람 반 사람이라도 가려내어, 함께 진리를 알고 함께 나고 죽음을 벗어나, 앞날을 더욱 이롭게 하여 부처와 조사의 깊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 같다.
1.7
쉽게 읽기또 부득이하게, 서리와 이슬에 열매가 익듯 때가 무르익어 떠밀려 세상에 나와, 인연에 응하고 형편에 맞추어 사람들을 이끌어 열더라도, 끝내 무엇을 바라는 마음은 두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권세에 기대어 세속에 영합하는 엉터리 스승 노릇으로 범부를 속이고 성인을 업신여기며, 구차히 이익과 이름을 좇아 무간지옥에 떨어질 무거운 죄업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설령 이렇다 할 인연이 없더라도, 그저 이렇게 조용히 한세상 지내기만 하면 나쁜 과보가 없으니, 참으로 티끌을 벗어난 나한이라 하겠다.
풀이 1
1.8
쉽게 읽기한 스님이 천황 스님에게 “무엇이 계·정·혜입니까” 물으니, 천황 스님은 “내겐 그런 한가한 살림살이가 없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덕산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덕산은 “부처는 서천의 늙은 비구다”라고 하였다. 석두에게 “무엇이 도입니까” 물으니 “나무토막이다”, “무엇이 선입니까” 물으니 “벽돌이다”라고 하였다. 운문 선사에게 “무엇이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은 말입니까” 물으니 “호떡이다”라고 하였다. 조주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물으니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하였다. 청평 스님에게 “무엇이 번뇌가 새어 나가는 것입니까” 물으니 “조리다”, “무엇이 번뇌가 새지 않는 것입니까” 물으니 “나무 국자다”라고 하였다. 삼각 스님에게 “무엇이 삼보입니까” 물으니 “벼·조·콩이다”라고 하였다. 이 모두가 앞 시대의 본분종사들이 참된 자리를 몸소 밟고서 본분 그대로 자비로 건넨 말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오직 금강 같은 바른 눈을 갖추어야만, 그 말이 떨어진 참뜻을 알 수 있다.
1.9
쉽게 읽기이 문은 언뜻 스치듯 벗어나 계합하고 증득하면 그만이다. 본래 누구에게도 꺾이거나 눌린 적 없던 사람이, 어두운 눈으로 아무것도 모르다가도, 하루아침에 근기 날카로운 억센 사내가 되어 곧장 뚫고 그 자리에서 바로 떠맡는다. 쓰고 싶으면 쓰고 가고 싶으면 간다. 그 숱한 마음의 잔재주 없이 무르익어, 있는 그대로 단박에 놓아 버리면 곧 쉬어 편안해져, 종일 배불리 코를 골며 지내니, 이야말로 참되고 바르다. 정작 손보기 가장 어려운 것은 어중간하게 반쯤 걸친 사람이다. 그는 눈앞에 어른대는 빛과 그림자를 붙들어 알음알이로 여기고, 소리를 듣되 소리에 끌리지 않는 그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지키며, 그것을 더없는 보배로 삼아 가슴에 품는다. 그러고는 종일 또랑또랑 신령한 척하며 잡스러운 앎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에게도 깨친 자리가 있다”라고 한다. 게다가 예전에 스승에게 인가받은 적이 있다 하여 ‘나’라는 견해만 키우고, 옛일과 지금 일을 제멋대로 헐뜯고 재단하며, 부처와 조사를 인가한다면서 온갖 것을 가벼이 깎아내리고, 물으면 재주를 부려 한 무더기로 끈적하게 붙여 놓는다. 정작 처음부터 저울눈을 잘못 읽은 줄은 전혀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방편을 써서 집착을 풀고 결박을 벗겨 주면, 도리어 “사람을 이리저리 옮기고 비튼다”라며 삐딱한 마음을 낸다. 이런 자를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오직 스스로 문득 제 그름을 깨달아, 그 견해마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1.10
쉽게 읽기선지식이 되어 이런 무리를 만나면, 반드시 큰 솜씨로 단련시켜야 한다. 한 사람 반 사람이라도 구제해 사무치게 하면 참으로 삿됨을 뒤집어 바름을 이룬 것이니, 이야말로 그릇이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람이다. 어째서인가. 병을 많이 앓아 본 사람이 약의 성질을 잘 아는 법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깨친 사람은 이리저리 따지는 마음이 뚝 그치고, 환히 비추어 안다는 그 앎마저 잊어, 무엇 하나 움켜쥔 것 없이 그저 텅 빈 듯 한가로운 자리에 머문다. 그리하여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곳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그를 찾지 못한다. 깊고 깊은 바다 밑을 다니듯 하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툭 풀리며, 하는 일이 더없이 평범해 두메 마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이런 자리에 이르도록 길러도 그는 거기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털끝만 한 것이라도 남아 있으면 태산이 가로막은 듯 여겨 곧 떨쳐 버린다. 순수한 이치의 자리라도 취하지 않으니, 취해 집착하면 곧 눈에 박힌 가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는 무심히 사람과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와 합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스스로 “나는 깨친 사람이다”라고 뽐내겠는가. 오히려 남이 알까 봐 몹시 꺼린다. 참으로 “배움을 끊고 함이 없이 옛사람과 짝하는” 참된 도인이라 할 만하다.
풀이 1
1.11
쉽게 읽기하루는 공양이 늦어지자 덕산 노스님이 발우를 들고 방장실에서 내려왔다. 설봉 선사가 “종도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덕산은 고개를 숙이고 곧 돌아갔다. 암두가 이 말을 듣고 “그 대단한 덕산이 아직 마지막 한마디를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이 “네가 이 노승을 인정하지 않느냐” 하니, 암두는 은밀히 제 뜻을 아뢰었다. 이튿날 덕산이 법좌에 오르니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암두가 손뼉을 치며 대중에게 “기쁘구나, 노인이 마지막 한마디를 알았다. 그렇긴 하나 삼 년뿐이리라” 하였다. 이 공안을 두고 총림에서 머리로 풀이하는 이는 많으나, 확실히 뚫은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는 “참으로 그런 한마디가 따로 있다” 하고, 어떤 이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 주고받았을 뿐 실은 그런 말이 없다” 하며, 어떤 이는 “이 한마디는 은밀히 전해 받아야 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다 말로 헤아려 아는 데 그쳐, 잔머리 굴리는 길만 키울 뿐 본분과는 아주 멀다. 그래서 “제호의 으뜸가는 맛을 세상은 귀히 여기지만, 이런 사람이 먹으면 도리어 독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는 살아 있는 말을 참구하지, 죽은 말을 참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말 아래서 알아차리면 영원토록 잊지 않지만, 죽은 말 아래서 알아차리면 제 몸조차 구하지 못한다.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되려면 반드시 살아 있는 말을 밝혀야 한다. 운문은 한마디를 던지면 예리한 칼로 잘라 내는 듯하였고, 임제도 “취모검을 쓰고 나면 곧바로 갈아 두라” 하였다. 이것이 어찌 알음알이가 노니는 자리의 일이겠는가. 세상의 얕은 지혜와 말재간으로 미칠 바도 아니다. 곧장 근원을 깊이 사무쳐, 예전에 남에게 기대어 짓던 알음알이와 밝음·어둠·거스름·따름을 쳐서 떨어뜨리고, 금강 같은 바른 도장으로 딱 찍어 정하며, 금강왕보검을 휘둘러 본분의 솜씨를 쓴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려면 살인도라야 하고, 사람을 살리려면 활인검이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미 죽였으면 살릴 줄도 알아야 하고, 이미 살렸으면 죽일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외따로 들면 치우쳐 떨어진다. 손쓸 때에는 방편을 잘 살펴, 칼날을 상하거나 제 손을 다치지 않게 하고, 낱낱이 상대가 빠져나갈 길을 열어 준 다음, 여덟 방향에서 환히 꿰뚫어 본 뒤에야 칼을 내려야 한다. 또 반드시 빈틈없어야 하니, 조금이라도 느슨하면 이리저리 어긋나 버린다. 자기 자신은 예사 자리에서도 털끝만큼도 남기지 않아, 남은 것이 있으면 베어 세 동강을 낼 판인데, 하물며 이 종문에 위로부터 내려온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이겠는가. 그 가운데 될 만한 사람을 만나 막 집어 보였을 때, 기틀이 맞으면 함께 쓰고 맞지 않으면 잘라 낸다. 이것을 요체로 삼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니, 부디 힘써 행하라.
풀이 2
1.1
한문示華藏明首座
번역〔화장 명수좌(華藏明首座)에게 보이는 글 — 강녕부 천녕사에 머물 때〕
1.2
한문祖師直示,豈有如許蹊徑?只貴向上人聊聞舉著,剔起便行,明眼覰來,早是鈍置。
번역조사(祖師)가 곧바로 가리켜 보이는 데에, 어찌 그 많은 샛길이 있겠는가. 오직 향상인(向上人), 곧장 위로 뚫고 오르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런 사람은 슬쩍 들어 보이는 것을 듣기만 해도 번쩍 일어나 곧장 간다. 눈 밝은 사람이 보면 그것도 벌써 굼뜬 짓이다.
古者道:舉一隅不以三隅反者,吾不與也。
옛사람이 말했다. “한 모서리를 들어 주었는데 세 모서리로 되짚어 오지 못하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하지 않는다.”
箇箇須是舉一明三,目機銖兩,轉轆轆地,疎通俊快,始稱提持。
그러니 누구든 하나를 들으면 셋을 밝혀야 한다. 눈어림으로 저울눈의 작은 차이까지 가려내고(目機銖兩), 데굴데굴 구르듯 막힘없이 시원하고 날래야, 비로소 ‘들어 쥐었다(提持)’고 할 수 있다.
1.3
한문豈不見良遂見麻谷,第一番見谷,便入方丈閉卻門,渠疑著。
번역보지 못했는가. 양수(良遂)가 마곡(麻谷)을 뵈러 간 일을. 처음 뵈러 가자, 마곡은 곧장 방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양수는 의심이 들었다.
及至第二次,谷驟步去菜園裏,渠便瞥地,
두 번째로 가자, 이번에는 마곡이 성큼성큼 채마밭으로 가 버렸다. 그 순간 양수가 언뜻 깨쳤다.
乃謂谷曰:和尚莫謾良遂,若不來見和尚,洎被十二本經論賺過一生。看渠恁地,不妨省力。
그래서 마곡에게 말했다. “스님,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제가 스님을 뵈러 오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열두 가지 경론에 속아 한평생을 보낼 뻔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을 보면, 참으로 힘을 덜었다(省力).
既歸,謂徒曰:諸人知處,良遂摠知;良遂知處,諸人不知。
그는 돌아와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양수가 다 알지만, 양수가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른다.”
信知渠知處有不通風,諸人卒未薦得,可謂真師子兒。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가 아는 자리에는 바람도 통하지 않는 데가 있어서, 여러분이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참된 사자 새끼라 할 만하다.
要作他家種草,直須更出他一頭地始得。
그 집안의 씨앗(種草)이 되려면, 반드시 그보다 한 머리 더 솟아야 비로소 된다.
풀이 3
良遂오등회원(五燈會元) 권4 마곡보철(麻谷寶徹)의 법사(法嗣) 양수(良遂) 조 : 양수가 마곡을 찾아가 깨치고 '계피경론잠과일생(洎被經論賺過一生)'·'양수지처제인불지(良遂知處諸人不知)'라 한 이야기가 실린다.
麻谷寶徹 마곡보철오등회원(五燈會元) 卷3 麻谷寶徹章 : 馬祖道一의 법사 麻谷寶徹의 기연을 싣는다. 제자 良遂가 그를 찾아가 깨친 이야기('洎被經論賺過一生')는 卷4 良遂 조에 따로 실린다.
교감 · 十二本經論'十二本經論' — 저본(X69n1357 p0452c22)은 '洎被十二本經論賺過一生'이고, 원오의 같은 글을 실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T47n1997 p0777c03)도 '十二本經論'이다. 양수 이야기를 실은 다른 책은 『雲門廣錄』 권중·『聯燈會要』 권7·『五燈會元』 권4가 '洎被經論賺過一生', 『景德傳燈錄』 권9가 '幾空過一生'이고, '十二分教'는 송말 『虛堂和尚語錄』 권1(T47n2000 p0989c17)에만 보인다. 本은 경론을 세는 말이니(『臨濟錄』 '百本經論' · 『圜悟佛果禪師語錄』 권7 '一兩本經論') '十二本經論'은 '열두 가지 경론'이고, 十二部(十二分教)를 잘못 쓴 글자가 아니다. → 저본 글자 그대로 '十二本經論'으로 읽고, 번역도 '열두 가지 경론'으로 옮긴다.
1.4
한문達磨游梁入魏,落草尋人,向少林冷坐九年,深雪之中覓得一箇,
번역달마(達磨)는 양나라에 갔다가 위나라로 들어가, 풀숲에 몸을 낮추고(落草) 사람을 찾았다. 소림(少林)에서 아홉 해를 차갑게 앉아 있다가, 깊은 눈 속에서 한 사람을 찾아 얻었다.
及至最後問得箇什麼,卻只禮三拜,依位而立,遂有得髓之言。
마지막에 이르러 “무엇을 얻었느냐” 물으니, 그는 그저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가 섰을 뿐이다. 그래서 “골수를 얻었다(得髓)”는 말이 나왔다.
至令守株待兔之流,競以無言禮拜依位爲得髓深致,
그러다 보니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兔) 무리가, 말없이 절하고 제자리에 선 것을 다투어 ‘골수를 얻은 깊은 경지’로 여기게 되었다.
殊不知劒去久矣。爾方刻舟,豈曾夢見祖師?
칼이 떠난 지 오래인 줄을 전혀 모른다. 그대는 이제야 뱃전에 자국을 새기고 있으니(刻舟), 어찌 꿈에서라도 조사를 본 적이 있겠는가.
若是本色真正道流,要須超情離見,別有生涯,終不向死水裏作活計,方承紹得他家基業。
본색(本色) 그대로 참되고 바른 수행자라면, 반드시 헤아림을 넘고 견해를 떠나(超情離見) 따로 살아갈 길이 있어야 한다. 끝내 죽은 물속에서 살림을 꾸리지 않아야, 비로소 그 집안의 터전을 이어받는다.
到箇裏,直須知有從上來事,所謂善學柳下惠,終不師其迹。
여기에 이르면, 반드시 위로부터 내려온 일(從上來事)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하혜(柳下惠)를 잘 배우는 사람은 끝내 그 자취를 본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是故古人道:一句合頭語,萬劫繫驢橛。誠哉!
그래서 옛사람이 말했다. “딱 들어맞는 한마디 말(合頭語)이 만 겁 동안 나귀 매는 말뚝(繫驢橛)이 된다.” 참으로 옳다!
풀이 6
守株待兔 수주대토達磨가 얻은 바를 묻자 慧可가 '禮三拜,依位而立'하여 '汝得吾髓'를 받은 고사(『景德傳燈錄』 권3). 그 無言禮拜의 겉꼴을 得髓의 깊은 뜻으로 여기는 무리를 守株待兔에 견주고, 이어 刻舟求劍으로 꼬집는다. 『圜悟語錄』 권14에 같은 글.
落草 낙초'達磨游梁入魏,落草尋人'은 達磨가 梁·魏를 거치며 몸을 낮추어 法器를 찾은 일을 落草로 말한 것으로, 긍정의 뜻이다.
刻舟求劍 각주구검'競以無言禮拜依位爲得髓深致,殊不知劒去久矣,爾方刻舟'—慧可의 三拜依位를 흉내 내어 得髓의 깊은 뜻으로 삼는 무리를 刻舟에 견주었다. 바로 앞의 守株待兔와 짝을 이룬다.
柳下惠 유하혜'善學柳下惠,終不師其迹'은 옛사람의 자취(형식)가 아니라 그 정신을 배우라는 뜻으로, 앞의 達磨 '得髓' 공안에서 말없이 절하는 겉모습만 흉내 내는 무리를 경계한 것과 이어진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達磨…落草尋人
책은 '낙초자비(落草慈悲)로 사람을 찾으며'라 하여 원문에 없는 자비를 보태었으니 의역이다. '풀숲에 떨어져(落草)'로 직역함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一句合頭語,萬劫繫驢橛
책은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으로 옮겼으나 驢는 나귀이니 '노새'는 어휘 오류이다. '나귀 매는 말뚝'이 옳다.
1.5
한문破有法王出現世間,隨眾生欲種種說法,將知所說皆爲方便,只爲破執、破疑、破解路我見,並無許多惡覺、惡見,佛亦不必出現,而況說種種法耶?
번역있음(有)을 깨뜨리는 법왕(法王)이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이 바라는 대로 갖가지로 법을 설하신다. 설하신 것은 모두 방편(方便)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다만 집착을 깨고, 의심을 깨고, 알음알이의 길과 ‘나’라는 견해(我見)를 깨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 많은 그릇된 앎과 그릇된 견해가 아예 없었다면, 부처님도 굳이 나오실 까닭이 없었다. 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하실 까닭이 있었겠는가.
1.6
한문古人得旨之後,向深山茆茨石室,折腳鐺子煑飯喫,十年二十年,大忘人世,永謝塵寰。
번역옛사람은 종지를 얻은 뒤에 깊은 산 띠집이나 돌방으로 들어가, 다리 부러진 솥(折腳鐺子)에 밥을 지어 먹었다. 그렇게 십 년, 이십 년을 지내며 사람 세상을 까맣게 잊고 티끌 세상과 영영 작별했다.
今時不敢望如此,但只韜名晦迹,守本分,作箇骨律錐老衲,以自所契所證,隨己力量受用,消遣舊業,融通宿習。
지금은 감히 그렇게까지 바랄 수 없다. 다만 이름을 감추고 자취를 숨겨 본분(本分)을 지키는, 뼈만 남은 송곳 같은 늙은 납자(骨律錐老衲)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계합하고 깨달은 것을 제 힘만큼 누려 쓰고, 묵은 업을 녹이고 지난 버릇을 풀어 내야 한다.
或有餘力,推以及人,結般若緣,鍊磨自己腳跟純熟。
혹 힘이 남거든 남에게까지 넓혀 반야(般若)의 인연을 맺어 주고, 제 발밑(腳跟)을 갈고닦아 무르익게 해야 한다.
譬如閑荒草裏,撥剔一箇半箇同知有,共脫生死,轉益未來,以報佛祖深恩。
비유하면 이렇다. 한가로이 거친 풀숲을 헤쳐 한 사람 반 사람(一箇半箇)이라도 가려낸다. 함께 ‘그것’이 있음을 알고(知有), 함께 생사를 벗어나, 앞날을 더욱 이롭게 한다. 그렇게 부처와 조사의 깊은 은혜를 갚는 것이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作箇骨律錐老衲
책은 骨律錐를 '오로지 도에 순숙한'으로 옮겨 '뼈만 남은 송곳=꾸밈없는 본분납자'라는 비유를 잃었으니 과의역이다. '뼈만 남은 송곳 같은 노납'으로 직역함이 원의에 맞다.
1.7
한문抑不得已,霜露果熟,推將出世,應緣順適,開拓人天,終不操心於有求。
번역또는 마지못해, 서리와 이슬에 열매가 익듯(霜露果熟) 떠밀려 세상에 나가게 될 수도 있다. 그때는 인연에 응해 알맞게 따르며 사람과 하늘(人天)을 열어 주되, 끝내 무엇을 구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
何況依倚貴勢,作流俗阿師舉止,欺凡罔聖,苟利圖名,作無間業。
하물며 권세 있는 이에게 기대어 세속에 물든 중(阿師) 노릇을 하며, 범부를 속이고 성인을 속이며, 구차하게 이익과 이름을 노려 무간지옥의 업(無間業)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縱無機緣,只恁度世,亦無業果,真出塵羅漢也。
설령 이렇다 할 인연(機緣)이 없더라도, 그저 이렇게 세상을 지내면 업의 과보도 없다. 참으로 티끌을 벗어난 나한(出塵羅漢)이다.
풀이 1
出塵羅漢 출진나한'縱無機緣,只恁度世,亦無業果'에 이어지는 말로, 출세해 교화할 機緣이 없어도 名利를 좇지 않고 한세상을 지내는 이를 가리킨다.
1.8
한문僧問天皇:如何是戒定慧?皇云:我這裏無恁閑家具。
번역어떤 스님이 천황(天皇)에게 물었다. “무엇이 계·정·혜(戒定慧)입니까?” 천황이 말했다. “내 여기에는 그런 한가한 살림살이가 없다.”
又問德山:如何是佛?山云:佛是西天老比丘。
또 덕산(德山)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덕산이 말했다. “부처는 서천(西天)의 늙은 비구다.”
又問石頭:如何是道?答云:木頭。如何是禪?云:碌塼。
또 석두(石頭)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석두가 답했다. “나무토막이다.” “무엇이 선입니까?” “벽돌이다.”
僧問雲門:如何是超佛越祖之譚?答云:餬餅。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를 넘어서고 조사를 뛰어넘는 말(超佛越祖之譚)입니까?” 운문이 답했다. “호떡이다.”
又問趙州:如何是祖師西來意?云:庭前栢樹子。
또 조주(趙州)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다.”
又問清平:如何是有漏?答云:笊籬。又問無漏?答云:木杓。
또 청평(清平)에게 물었다. “무엇이 유루(有漏)입니까?” 청평이 답했다. “조리다.” 또 무루(無漏)를 묻자 답했다. “나무 국자다.”
問三角:如何是三寶?答云:禾粟豆。
삼각(三角)에게 물었다. “무엇이 삼보(三寶)입니까?” 삼각이 답했다. “벼·조·콩이다.”
是皆前世本分宗師,腳蹋實地,本分垂慈之語。
이는 모두 앞 시대의 본분종사(本分宗師)들이 제 발로 실다운 땅을 딛고 서서, 본분 그대로 자비를 드리운 말이다.
若隨他語,卽成辜負。若不隨他語,又且如何領略?除非具金剛正眼,卽知落處耳。
그 말을 그대로 따르면 곧 저버리는 것이 된다.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또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금강 같은 바른 눈(金剛正眼)을 갖춘 이라야, 그 말이 떨어진 곳(落處)을 안다.
풀이 1
碧巖錄〔병렬용례〕 벽암록(碧巖錄) 제77칙(雲門餬餅) : '僧問雲門 如何是超佛越祖之談 門云 餬餅'으로 본편 雲門 문답과 자구가 일치한다. 원오 자신의 평창 공안이므로 해석 확정의 직접 근거이다.
1.9
한문此門瞥脫契證,卻是素來未曾經人壞持拍盲,百不知一。旦以利根種性,孟八郎便透,直下承當,要用便用,要行卽行,無如許般心行純熟,頓放著所在,便得休歇安樂,終日飽齁齁地,不妨真正最難整理。是半前落後,
번역이 문에서 언뜻 벗어나 계합하고 깨닫는 이(瞥脫契證)는 도리어 이런 사람이다. 본래 남의 손에 망가진 적 없이, 눈먼 듯 백에 하나도 모르던 사람이다. 하루아침에 날카로운 근기(利根)를 타고나, 막무가내 사내(孟八郎)처럼 단번에 뚫고 나간다. 그 자리에서 바로 떠맡아(直下承當), 쓰려면 쓰고 가려면 간다. 그 많은 마음 씀(心行)을 무르익힐 것도 없이, 놓인 자리에서 단박에 놓아 버리니, 곧 쉬어 편안해진다. 종일 배불리 먹고 코를 골며 지내니, 참으로 참되고 바르다. 가장 손보기 어려운 것은 반쯤 앞서고 반쯤 뒤처진(半前落後) 사람이다.
認得瞻視光影,聽聞不隨聲,守寂湛之性,便爲至寶。懷在胷中,終日昭昭靈靈,雜知雜解,自擔負我,亦有見處。
그는 보고 살피는 빛과 그림자(光影)를 그것이라 알아 붙든다. 소리를 들어도 소리를 따르지 않고, 고요하고 맑은 성품(寂湛之性)을 지켜 더없는 보배로 삼는다. 그것을 가슴에 품고 종일 또렷또렷 신령스럽게(昭昭靈靈) 지낸다. 잡된 앎과 잡된 이해를 스스로 짊어지고는, “나도 본 곳(見處)이 있다”라고 한다.
曾得宗師印證,惟只增長我見,便雌黃古今,印證佛祖,輕毀一切,問著卽作伎倆,黏作一堆,殊不知末上便錯認定槃星子也。
또 일찍이 종사에게 인가(印證)를 받았다 하여, 오직 ‘나’라는 견해만 키운다. 그러고는 옛날과 지금을 함부로 고쳐 평하고(雌黃), 부처와 조사를 인증하며, 모든 것을 가볍게 헐뜯는다. 물으면 곧 재주를 부려, 한 무더기로 끈적끈적 붙여 놓는다. 맨 처음부터 저울눈(定槃星)을 잘못 알아본 줄은 전혀 모른다.
及至與渠作方便,解黏去縛,便謂移換人、捩轉人,作恁麼心行,似此有甚救處?
그에게 방편을 써서 끈끈한 것을 풀어 주고 묶인 것을 벗겨 주면(解黏去縛), 도리어 “사람을 바꿔치기한다, 사람을 비틀어 돌린다”라고 한다. 이런 마음을 쓰니, 이런 사람을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除是驀地自解知非,卻將來須放得下,
오직 문득 스스로 그릇됨을 알아, 그것마저 가져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풀이 2
孟八郞 맹팔랑'以利根種性,孟八郎便透,直下承當'은 날카로운 근기를 지닌 이가 거리낌 없이 곧장 뚫고 들어가, 그 자리에서 떠맡는 모습을 그린 말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便謂移換人、捩轉人
책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구나…'류로 극화·의역하여 移換人(사람을 옮겨 바꿈)·捩轉人(비틀어 돌림)의 직지가 흐려졌다. 직역이 원문에 가깝다(둘 다 대의는 통한다).
1.10
한문爲善知識。遇著此等,須是大手腳與烹鍊,救得一箇半箇得徹,不妨飜邪成正,卻是箇沒量大人。何故?只爲病多諳藥性。
번역그래야 선지식(善知識)이 된다. 이런 무리를 만나면 반드시 큰 솜씨로 달구고 단련해야 한다. 한 사람 반 사람이라도 구해 내어 사무치게 하면, 참으로 삿됨을 뒤집어 바름을 이룬 것이다. 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람(沒量大人)이다. 어째서인가? 병을 많이 앓아서 약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이다.
得底人心機泯絕,照體已忘,渾無領覽,只守閑閑地,
참으로 얻은 사람은 마음의 기틀(心機)이 끊어져 없어지고, 비추는 바탕(照體)마저 이미 잊어, 도무지 거두어 잡는 것이 없다. 그저 한가하고 한가한 자리를 지킬 뿐이다.
而諸天捧花無路,魔外潛覰,不見深深海底行,漏盡意解,所作平常,似三家村裏無以異。
그래서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깊고 깊은 바다 밑을 다니는 그를 보지 못한다.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漏盡意解) 하는 일이 그저 평상(平常)하니, 세 집뿐인 산골 마을(三家村)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直下放懷,養到恁麼處,亦未肯住在。纔有纖毫,便覺如泰山,似礙塞人,便卽擺撥。
곧바로 마음을 탁 놓아 이런 곳에 이르도록 길러도, 거기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털끝만 한 것이라도 있으면 곧 태산처럼 느낀다. 사람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 곧바로 떨쳐 버린다.
雖淳是理地,亦無可取。若取著,卽是見刺。
비록 순전한 이치의 자리(理地)라 해도 취할 것이 없다. 취해서 붙들면 곧 견해의 가시(見刺)가 된다.
所以道:道無心合人,人無心合道。豈肯自衒?我是得底人,
그래서 말했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게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러니 어찌 스스로 뽐내며 “나는 얻은 사람이다” 하겠는가.
原他深不欲人知,喚作絕學無爲,與古爲儔,真道人也。
따져 보면 그는 남이 알까 깊이 꺼린다. 이런 이를 ‘배움을 끊고 함이 없다(絕學無爲)’고 하니, 옛사람과 짝하는 참된 도인이다.
풀이 1
沒量大人 몰량대인'不妨飜邪成正 卻是箇沒量大人 何故 只爲病多諳藥性'. 스스로 병통을 겪은 이가 남의 병을 고친다는 뜻으로, 삿됨에 빠졌던 이를 단련해 큰 그릇으로 만든다는 맥락이다.
1.11
한문德山一日齋晚,老子持鉢自方丈下來,
번역덕산이 하루는 공양이 늦어지자, 이 노인이 발우를 들고 방장실에서 내려왔다.
雪峯云:鐘未鳴,鼓未響,托鉢向什麼處去?山低頭,遂回。
설봉(雪峯)이 말했다. “종도 아직 울리지 않고 북도 아직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십니까?” 덕산은 고개를 숙이고 곧 돌아갔다.
巖頭聞,云:大小德山未會末後句在。德山謂:汝不肯老僧那?巖頭遂密啟其意。
암두(巖頭)가 이를 듣고 말했다. “그 대단한 덕산이 아직 마지막 한마디(末後句)를 모르는구나.” 덕산이 말했다. “네가 이 노승을 인정하지 않느냐?” 암두는 이에 은밀히 그 뜻을 아뢰었다.
山次日陞座,與尋常迥殊,巖頭拊掌謂大眾云:且喜老漢會末後句。雖然如是,只得三年。
이튿날 덕산이 법좌에 오르니,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암두가 손뼉을 치며 대중에게 말했다. “기쁘구나, 늙은이가 마지막 한마디를 알았다. 그렇기는 하나, 다만 삼 년뿐이다.”
此箇公案,叢林解會極多,然少有的確透得者,
이 공안(公案)을 총림에서 머리로 풀어 아는 이는 아주 많지만, 확실하게 뚫은 이는 드물다.
有以謂真有此句,有以謂父子唱和實無此句,有以謂此句須密傳授,不免只是話會,增長機路,去本分甚遠。
어떤 이는 “정말로 이 한마디가 따로 있다” 하고, 어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부르고 답했을 뿐, 실은 이 한마디가 없다” 하며, 어떤 이는 “이 한마디는 반드시 은밀히 전해 주어야 한다”라고 한다. 이것은 말로 헤아려 아는 것(話會)을 면치 못한다. 따지는 길(機路)만 키우니, 본분과는 아주 멀다.
所以道:醍醐上味,爲世所珍,遇此等人,飜成毒藥。
그래서 말했다. “제호(醍醐)의 으뜸가는 맛은 세상이 보배로 여기지만,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도리어 독약이 된다.”
他參活句,不參死句。活句下薦得,永劫不忘;死句下薦得,自救不了。若要與祖佛爲師,須明取活句。
그는 살아 있는 말(活句)을 참구하지, 죽은 말(死句)을 참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말 아래서 알아차리면 영원토록 잊지 않는다. 죽은 말 아래서 알아차리면 제 몸도 구하지 못한다.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려면, 반드시 살아 있는 말을 밝혀 얻어야 한다.
韶陽出一句,如利刀剪卻,臨際亦云:吹毛用了急還磨。此豈陰界中事?亦非世智辯聰所及,
소양(韶陽), 곧 운문은 한마디를 내면 날카로운 칼로 싹둑 잘라 내는 것 같았다. 임제(臨濟)도 “취모검(吹毛劍)은 쓰고 나면 얼른 다시 갈아 두라”라고 했다. 이것이 어찌 오음·십팔계(陰界) 안의 일이겠는가. 세상의 지혜와 말재주(世智辯聰)로 미칠 바도 아니다.
直是深徹淵源,打落從前,依他作解,明昧逆順,以金剛正印印定,麾金剛王寶劒,用本分手段。
곧장 근원을 깊이 사무쳐, 예전에 남에게 기대어 지은 알음알이와, 밝음·어둠·거스름·따름을 쳐서 떨어뜨린다. 금강의 바른 도장(金剛正印)으로 찍어 정하고,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을 휘둘러 본분의 솜씨를 쓴다.
所以道:殺人須是殺人刀,活人須是活人劒。
그래서 말했다. “사람을 죽이려면 반드시 사람 죽이는 칼(殺人刀)이라야 하고, 사람을 살리려면 반드시 사람 살리는 검(活人劍)이라야 한다.”
既殺得人,須活得人;既活得人,須殺得人。若只孤單,則偏墮也。
사람을 죽였으면 살릴 줄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살렸으면 죽일 줄도 알아야 한다. 한쪽뿐이면 치우쳐 떨어진다(偏墮).
垂手之際,卻看方便,勿使傷鋒犯手,著著有出身之路,八面玲瓏照破他,方與下刃,
손을 드리울(垂手) 때에는 방편을 잘 살펴, 칼날을 상하게 하거나 제 손을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한 수 한 수마다 몸을 빼낼 길이 있게 하고, 여덟 방향으로 환하게 상대를 비추어 꿰뚫은 뒤에야 칼을 내려야 한다.
亦須緊密始得,稍寬緩卽落七落八也。
또 반드시 빈틈이 없어야 한다. 조금만 느슨해도 곧 이리저리 흩어져 버린다(落七落八).
只自己等閑尚不留毫髮許,設有亦斬作三段,何況此宗門從上牙爪?
자기 자신에게조차 예사로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않는다. 설령 남은 것이 있어도 베어서 세 동강을 낸다. 하물며 이 종문(宗門)에 위로부터 내려온 어금니와 발톱(牙爪)이겠는가.
遇其中人纔拈出,若投機則共用,不投機則剗卻,
그 안의 사람(其中人)을 만나 막 꺼내 보였을 때, 기틀이 맞으면 함께 쓰고, 맞지 않으면 깎아 없앤다.
以是爲要,無不了底事,切在力行之。
이것을 요체로 삼으면 마치지 못할 일이 없다. 부디 힘써 행하라.
풀이 3
殺人刀活人劍 살인도활인검'臨際亦云:吹毛用了急還磨'부터 '若只孤單則偏墮也'까지는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4에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 '吹毛用了…'는 臨濟의 遺偈 끝 구다(『景德傳燈錄』 권12).
活句 활구'他參活句,不參死句。活句下薦得,永劫不忘;死句下薦得,自救不了'는 원오가 『碧巖錄』 評唱에서 '所以道'로 거듭 드는 古語다. 이 대목('…須明取活句,韶陽出一句')은 『圜悟語錄』 권14 法語에도 거의 같은 글로 실렸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只自己等閑尚不留毫髮許
等閑은 선어록·사전(漢語大詞典 등)에서 '평상히·예사로이·함부로'를 뜻하는 부사로 쓰이는 표준 어휘이고, 이 문장은 뒤의 '何況此宗門從上牙爪'와 이어지는 '尚…何況…(∼조차 …하거늘 하물며 …)' 호응 구문 속에 있어 '尚'이 부사 等閑과 자연스럽게 짝한다. 等閑을 명사('무심하다는 그것')로 새길 어휘적 근거는 없고 앞의 '只守閑閑地'와의 어감상 연상에 기댄 것에 불과하므로, 부사로 읽은 자체역이 옳다.
1.12
한문華藏明首座,自錦官夾山鍾阜,從余游十餘年,
번역〔편 끝에 붙인 글〕 화장 명수좌는 금관(錦官)·협산(夾山)·종부(鍾阜) 시절부터 나를 따라 십여 년을 함께 지냈다.
其情理勝解,悉已拈去。入此門來,照用機智解路,靡不打摒,惟向上一著,室中百煅千煉。
그는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情理)과 남보다 뛰어난 이해(勝解)를 이미 모두 집어 던졌다. 이 문에 들어와서는 비춤과 작용(照用), 날랜 재치, 알음알이로 풀어 가는 길을 남김없이 쳐서 물리쳤다. 오직 향상의 한 수(向上一著)만을 방 안에서 백 번 달구고 천 번 단련했다.
比出,佐民老以謂違去朝夕,欲得筆語,因條列數章以付之。
근래 세상에 나가 백성을 돕게 되자, 이 늙은이는 아침저녁 곁에 있던 그가 떠나게 된다고 여겼다. 또 그가 붓으로 쓴 말을 얻고자 하기에, 몇 장을 조목조목 벌여 적어 그에게 준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佐民老以謂違去朝夕
책은 佐民老를 붙여 '민로를 보살피느라 자주 나가게 되었다'로 옮겼으나 이는 오독이다. 佐民(출세하여 백성을 도움)과 老(원오의 자칭)로 끊음이 옳고 民老라는 인명은 근거가 없다. 違去朝夕이 한 구이니 朝夕은 違去에 붙어야 하며, 책이 朝夕을 欲得筆語에 붙인 것도 옳지 않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82
  1. 祖師直示 조사직시

    달마 이래 조사가 곧바로 본분을 가리킴이다. 이하 양수(良遂)·달마(達磨)의 사례로 예증하였다.

  2. 向上人 향상인

    향상(向上)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취나 부처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고, 그것마저 넘어선 이를 이른다.

  3. 舉一隅不以三隅反 거일우불이삼우반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 공자 어구('거일우불이삼우반칙불복야(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를 원용한 것이다. 원오가 '고자도(古者道)'로 인용하였다.

  4. 目機銖兩 목기수량

    눈길 한 번에 저울눈의 아주 작은 무게까지 가려낸다는 말이다. 상대의 그릇과 역량을 한눈에 정확히 알아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이른다.

  5. 麻谷寶徹 마곡보철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이며 양수(良遂)의 스승이다.

  6. 良遂參麻谷 양수참마곡

    양수(良遂)가 마곡보철(麻谷寶徹)을 참하여 깨친 공안이다. '양수지처제인불지(良遂知處諸人不知)'·'계피경론잠과일생(洎被經論賺過一生)'이 요어이며 오등회원(五燈會元) 권(卷)4에 실린다.

  7. 不通風 불통풍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남이 엿볼 수 없는 철저한 깨달음의 경계를 이른다.

  8. 種草·出他一頭地 종초·출타일두지

    그 집안의 씨앗(法嗣)이 되려면 스승보다 한 머리 더 뛰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9.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10. 達磨得髓 달마득수

    달마가 제자를 시험하여 혜가(慧可)가 절하고 물러서자 '득오수(得吾髓)'라 한 것이다(皮肉骨髓).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3에 실린다.

  11. 守株待兔 수주대토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것을 한 번 본 농부가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만 지켰다. 한 번 들어맞은 방법에 매달려 변통할 줄 모름을 비유한다.

  12. 刻舟求劍 각주구검

    강에 칼을 빠뜨리고 뱃전에 자국을 새겨 두었다가, 배가 멎은 뒤 그 아래에서 칼을 찾았다는 『여씨춘추』 이야기다. 바뀐 형편을 모르고 지난 자취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칼이 떠난 지 오래인데 이제야 뱃전에 새긴다'고 쓴다.

  13. 超情離見 초정리견

    알음알이(정식, 情識)와 견해를 벗어남.

  14. 死水裏作活計 사수리작활계

    죽은 물속에서 살림살이를 꾸림. 고요함에 가라앉아(침체한 적정(寂靜)에) 머물러 살아 있는 작용을 잃은 병통을 이른다.

  15. 柳下惠 유하혜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어진 대부로, 이름은 전획(展獲), 자는 금(禽)이다. 더러운 임금도 마다하지 않고 낮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으면서 끝내 바름을 잃지 않아, 맹자가 '조화를 이룬 성인'이라 일컬었다. 어떤 처지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본보기로 쓰인다.

  16. 一句合頭語萬劫繫驢橛 일구합두어만겁계려궐

    딱 들어맞는 한마디가 도리어 만겁의 나귀 매는 말뚝(속박)이 된다는 선문 상투구이다.

  17. 破有法王出現世間隨眾生欲種種說法 파유법왕출현세간수중생욕종종설법

    게송 인용이다. 유(有) 집착을 깨는 법왕(부처)의 방편설을 노래한 것으로 대보적경(大寶積經) 계열이며(추정) 원오가 즐겨 쓴 구이다.

  18. 茆茨石室 묘자석실

    띠로 지붕을 이은 집과 돌방이다. 깊은 산에 숨어 가난하게 수행하는 거처를 이르는 상투적 표현이다.

  19. 折腳鐺子 절각당자

    다리 부러진 솥이다. 산중에서 가난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는 상투적 표현이다.

  20. 韜名晦迹 도명회적

    이름을 감추고 자취를 숨김이다.

  21. 骨律錐 골률추

    뼈만 남은 송곳이라는 말이다(골률(骨律)=골돌(骨突)). 꾸밈없이 본분만 지키는 납자를 비유한다.

  22. 一箇半箇 일개반개

    한 개 반 개이다. 극소수의 법기(法器)를 이르는 선문 관용구이다.

  23. 霜露果熟 상로과숙

    서리와 이슬에 열매가 익듯 때가 무르익어 부득이 출세·응연(應緣)함이다.

  24. 出塵羅漢 출진나한

    티끌세상을 벗어난 나한(羅漢)이라는 말이다. 이름과 이익을 좇지 않고 홀로 나고 죽는 일을 벗어난 수행자를 기리는 말로 쓴다.

  25. 天皇道悟 천황도오

    천황도오(天皇道悟, 748~80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고, 형주(荊州) 천황사에 머물렀다. 제자 용담숭신을 거쳐 덕산(德山)으로 법이 이어졌다.

  26. 無恁閒家具 무임한가구

    '내겐 그런 한가한 세간살이가 없다.' 한 스님이 '무엇이 계·정·혜입니까(如何是戒定慧)' 묻자 천황도오(天皇道悟)가 한 대답으로, 석두(石頭) 문하의 공안이다.

  27.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28. 佛是西天老比丘 불시서천노비구

    '부처는 서천(西天, 인도)의 늙은 비구다'라는 말이다. '무엇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라는 물음에 덕산선감(德山宣鑑)이 한 대답이다.

  29.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30. 木頭 목두

    나무토막이다. 석두(石頭)가 '무엇이 도(道)입니까'라는 물음에 한 답으로, '녹전(碌磚, 벽돌)'과 짝을 이루어 도(道)·선(禪)을 개념으로 붙잡을 수 없음을 보인다.

  31. 碌磚 녹전

    벽돌 조각이다. '전(塼)'은 '전(磚)(벽돌 전)'의 이체자로 뜻이 같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의미한 답으로 분별을 끊는다.

  32.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33. 超佛越祖之談 초불월조지담

    한 승려가 운문에게 부처를 뛰어넘고 조사를 넘어서는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운문은 '호떡(餬餅)'이라고 답했다. 높고 묘한 말을 찾는 물음을 눈앞의 먹을거리 하나로 끊어 버린 대답이다. 『벽암록』 제77칙에 실렸다.

  34. 胡餅 호병

    호떡·밀가루 떡이다. '호병(胡餅)(호병(餬餅))' 공안은 본디 운문문언의 것으로 《벽암록》 77칙 '운문호병(雲門餬餅)'에 수록되어 유명하다.

  35. 清平令遵 청평령준

    취미무학(翠微無學)의 법을 이은 선사. '무엇이 유루(有漏)인가'라는 물음에 '조리(笊籬)', '무엇이 무루(無漏)인가'라는 물음에 '나무 국자(木杓)'라고 답한 문답이 있다.

  36. 笊籬 조리

    쌀을 이는 데 쓰는 조리. 청평령준(清平令遵)이 '무엇이 유루(有漏)인가'라는 물음에 이것으로 답하였다.

  37. 木杓 목작

    나무 국자. 청평령준(清平令遵)이 '무엇이 무루(無漏)인가'라는 물음에 이것으로 답하였다.

  38. 三角 삼각

    삼각산(三角山) 화상(和尚)이다(정확한 인물은 미상·추정이며 전등계(傳燈系)이다).

  39. 禾粟豆 화속두

    벼·조·콩이다. 삼각산(三角山) 화상(和尚)이 '무엇이 삼보(三寶)입니까'라는 물음에 답한 말이다.

  40. 瞥脫 별탈

    언뜻 벗어나 계합함이다.

  41. 直下承當 직하승당

    본분사를 그 자리에서 곧장 떠맡음. 원오 상용어. 무제이개(無第二箇)=본분의 '한 물건'뿐 둘이 없음.

  42. 頓放 돈방

    단박에 놓아 버림이다.

  43. 寂湛之性 적담지성

    고요하고 맑은 성품. 선문에서는 이 적적담담한 자리를 지켜 더없는 보배(지보, 至寶)로 삼아 집착하는 것을 병통으로 경계한다.

  44. 昭昭靈靈 소소령령

    또렷또렷하고 신령함. 선문에서는 이 밝고 신령한 알음알이를 참된 자리로 여겨 붙드는 것을 병통으로 경계한다.

  45. 雌黃 자황

    함부로 시비를 고쳐 재단함이다(고금을 자황함).

  46. 沒量大人 몰량대인

    헤아릴 수 없이 큰 그릇을 지닌 사람이다. 선가에서는 '이런 큰 사람도 말의 결에 휘둘린다'고 하여, 아무리 뛰어난 이라도 방심할 수 없음을 경계할 때 자주 쓴다.

  47. 病多諳藥性 병다암약성

    '병을 많이 앓아 본 이가 약의 성질을 잘 안다'는 말이다. 스스로 병통을 겪어 본 사람이라야 남을 구제할 수 있음을 이른다.

  48. 道無心合人人無心合道 도무심합인인무심합도

    무심으로 도와 사람이 서로 합함을 이르는 게송구이다(전거 미상·추정).

  49. 絕學無爲與古爲儔 절학무위여고위주

    영가현각(永嘉玄覺) 증도가(證道歌) '절학무위한도인(絕學無爲閒道人)…'을 원용한 것이다.

  50. 德山托鉢 덕산탁발

    덕산(德山)이 발우를 들고 내려왔다가 설봉(雪峰)의 말에 돌아간 일에서 비롯한, 덕산(德山)·설봉(雪峰)·암두(巖頭)의 말후구(末後句) 공안이다. 암두(巖頭)의 '회말후구(會末後句)…지득삼년(只得三年)'으로 이어지며, 오등회원(五燈會元)·원오어록(圜悟語錄)에서 논의된다.

  51. 末後句 말후구

    맨 마지막 한마디, 곧 말후구(末後句)다. 암두(巖頭)가 ‘덕산(德山) 노인도 말후구는 모른다’고 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말과 분별이 다 끊어진 끝자리의 소식을 가리킨다.

  52. 醍醐作毒藥 제호작독약

    '제호(醍醐)로 독약을 만든다'는 말이다. 제호는 우유를 거듭 정제해 얻는 가장 좋은 맛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에 견준다. 좋은 가르침도 잘못 받으면 도리어 사람을 해치게 됨을 이른다.

  53. 活句 활구

    살아 있는 말이다. 생각으로 헤아려 붙잡을 수 없어, 듣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깨닫게 하는 말을 이른다. 뜻을 따져 알게 되는 죽은 말, 곧 사구(死句)와 맞선다.

  54. 死句 사구

    죽은 말. 뜻을 따져 알게 되어 이치의 길에 걸린 말이다. 살아 있는 말, 곧 활구(活句)와 맞선다. '활구 아래서 알아차리면 영원토록 잊지 않고, 사구 아래서 알아차리면 제 몸조차 구하지 못한다(自救不了)'고 한다.

  55. 吹毛劍 취모검

    칼날에 털을 불어 대기만 해도 잘릴 만큼 날카로운 칼이다. 선가에서는 망념과 분별을 단번에 끊는 지혜에 빗댄다. 파릉 스님에게 '무엇이 취모검입니까' 묻자 '산호 가지마다 달이 걸렸다'고 답한 문답(벽암록 제100칙)이 이름났다.

  56. 金剛王寶劍 금강왕보검

    금강처럼 단단한 왕의 보검이라는 말이다. 모든 알음알이와 망상을 한칼에 끊는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다. 임제(臨濟) 스님이 할(喝)의 네 가지 쓰임을 말하며 첫째로 들었다.

  57.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58. 種草 종초

    씨앗이 될 풀이라는 뜻으로, 종문(宗門)의 법을 이어 퍼뜨릴 재목을 이른다. '우리 집안의 씨앗(吾家種草)'이라 하면 법을 바르게 이을 사람을 가리킨다.

  59. 三家村 삼가촌

    집 서너 채뿐인 외딴 시골 마을이다. 선문에서는 사람 드문 외진 곳을 이르거나, 꾸밈없고 어수룩한 시골 사람에 빗대어 깨닫고도 티를 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을 그린다.

  60. 從上來事 종상래사

    예로부터 부처와 조사가 대대로 이어 온 그 일, 곧 깨달음이라는 근본의 일을 이른다. 말이나 방편 이전의 본분사(本分事)를 가리킨다.

  61. 半前落後 반전락후

    앞에도 못 미치고 뒤에도 처졌다는 말이다. 깨친 듯하면서도 철저하지 못해 어중간하게 머문 공부를 이른다. 원오는 이런 이를 가장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다.

  62. 解黏去縛 해점거박

    끈끈하게 들러붙은 것을 떼어 주고 묶인 것을 풀어 준다는 말이다. 스승이 학인의 집착과 얽매임을 풀어 주는 일을 이른다.

  63. 提持 제지

    들어 올려 붙든다는 뜻으로, 스승이 근본 뜻을 들어 보이며 학인을 다잡아 이끄는 일을 이른다. 『벽암록』에서는 펼쳐 놓아 주는 '평전(平展)'과 짝을 이루는 말로도 쓴다.

  64. 殺人刀活人劍 살인도활인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다. 학인의 망상을 끊어 없애는 솜씨와 다시 살려 내는 솜씨를 아울러 이른다. 『벽암록』은 이를 '예부터의 법도이자 지금의 요긴한 일'이라 했다.

  65. 華藏明首座 화장명수좌

    수신자이다. 금관(錦官)(성도(成都))·협산(夾山)·종부(鍾阜)를 거쳐 원오 문하에서 10여 년 수학한 수좌(首座)(선원 수좌)로 뒤에 출세하였다. 구체적 법명과 행적은 미상이다.

  66. 提持·鈍置 제지·둔치

    제지(提持)는 종지를 들어 세워 지님이고, 둔치(鈍置)는 둔하게 앉혀 놓아 이미 한 수 뒤처지게 함이다.

  67. 般若緣·腳跟 반야연·각근

    반야연(般若緣)은 반야의 인연을 남에게 맺어줌이고, 각근(腳跟)은 발꿈치로 각자의 본분·근본자리이다.

  68. 趙州從諗·祖師西來意·庭前柏樹子 조주종심·조사서래의·정전백수자

    조주의 대표 공안이다(무문관(無門關) 37칙·조주록(趙州錄)).

  69. 金剛正眼·落處 금강정안·낙처

    금강정안(金剛正眼)은 금강 같은 바른 안목이고, 낙처(落處)는 말이 떨어진 참뜻·귀결처이다.

  70. 孟八郞 맹팔랑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덤비는 거친 사람을 이르는 선문의 속어이다.

  71. 定槃星 정반성

    저울대의 영점 눈금(첫 별)이다. 처음부터 기준을 잘못 잡음의 비유이다('말상편착인정반성(末上便錯認定槃星)').

  72. 殺人刀活人劍·金剛王寶劍·吹毛 살인도활인검·금강왕보검·취모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은 임제 사할(四喝)의 하나이고, 취모검(吹毛劍)은 '취모용료급수마(吹毛用了急須磨)'이다(臨濟錄). 살활자재의 종사 수단이다.

  73. 落七落八·誵訛 낙칠락팔·효와

    낙칠락팔(落七落八)은 이리저리 떨어져 어긋남이고, 효와(誵訛)는 혼란되고 잘못되어 헷갈리는 대목이다.

  74. 錦官·夾山·鍾阜 금관·협산·종부

    금관(錦官)은 성도(成都)(촉(蜀)), 협산(夾山)은 예주(澧州) 협산(夾山)(상(湘)), 종부(鍾阜)는 종산(鍾山)으로 금릉(金陵)(건강(建康))이다. 명(明)수좌의 편력지이다.

  75. 佐民 좌민

    나가서 백성을 도움이다. 명(明)수좌가 출세(주지 등)로 나감을 이른다(추정).

  76. 照用機智解路·向上一著 조용기지해로·향상일착

    조용(照用)은 임제의 조(照)(비춤)·용(用)(작용)이고, 향상일착(向上一著)은 향상의 한 수로 궁극의 본분사이다.

  77. 般若緣 반야연

    般若緣은 반야의 인연을 남에게 맺어줌이고, 腳跟은 발꿈치로 각자의 본분·근본자리이다.

  78. 雲門文偃·韶陽 운문문언·소양

    碧巖錄 제77칙이다. 餬餅은 胡餅(호떡)이며, 韶陽은 운문으로 韶州에 있다.

  79. 金剛正眼 금강정안

    金剛正眼은 금강 같은 바른 안목이고, 落處는 말이 떨어진 참뜻·귀결처이다.

  80. 醍醐上味 제호상미

    제호(涅槃經의 최상미) 비유에, 근기가 못 미치면 도리어 독약이 된다는 선문 상투구이다.

  81. 落七落八 낙칠락팔

    落七落八은 이리저리 떨어져 어긋남이고, 誵訛는 혼란되고 잘못되어 헷갈리는 대목이다.

  82. 照用機智解路 조용기지해로

    照用은 임제의 照(비춤)·用(작용)이고, 向上一著은 향상의 한 수로 궁극의 본분사이다.

이 편의 풀이 4건

臨濟錄임제록(臨濟錄)과 벽암록(碧巖錄) 제100칙(巴陵吹毛劍) : 임제 사할(四喝)의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취모용료급수마(吹毛用了急須磨)'이다. 본편 말미 살인도활인검(殺人刀活人劍)·활구 논의의 전거로 원오가 반복해 썼다.
殺人刀活人劍 살인도활인검임제록(臨濟錄)과 碧巖錄 제100칙(巴陵吹毛劍) : 임제 四喝의 '金剛王寶劍'과 '吹毛用了急須磨'이다. 본편 말미 殺人刀活人劍·활구 논의의 전거로 원오가 반복해 썼다.

문단 11(쉽게 읽기) · 12(깊이 읽기)국역본 대조 6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82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