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下권 67편
장지만조봉(張持滿朝奉)에게 드리는 글
示張持滿朝奉
풀이 6
. 出峽은 蜀을 떠나며 長江 三峽을 빠져나옴을 뜻하는 상용어다. 출판본 '협산에서 나와'는 峽을 지명으로 좁혀 읽은 것이다. 내 번역('협곡을 나온 이래')이 표준 이해에 부합하나 경미하다.
. '多'는 不告倦을 수식하는 부사('대부분')로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내 번역 '따르는 이가 많아도 대개 피곤하다 하지 않았다'는 多를 '많아도'와 '대개'로 이중 반영해 어색·중복이다. 출판본 '대부분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가 더 매끄러우니 개정 대상이다.
. 저본 구두 '平常心本源,天真自性也'를 따르면 '평상심의 본원이요 천진한 자성'으로 읽히고, 출판본은 謂之平常心 / 本源天真自性也로 끊어 '본원천진의 자성'으로 읽는다. 平常心·天真自性이 모두 선문의 상용어여서 어느 구두로도 문리가 통하고, 燈錄·語錄상 이 구절의 표준 구두를 한쪽으로 확정할 전거가 없으므로 양립 가능한 이독으로 유지한다.
풀이 6
풀이 17
. 似兀(멍함 — 兀兀, 우두커니 무심함)·峭措(준엄함)까지 옮겨야 하는데 출판본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과도 같아서'로 如癡만 옮기고 나머지를 누락한 과소번역이다. 내 번역('어리석은 듯 멍한 듯하면서도 준엄하여')이 원문에 충실하다.
. 조주 원어록 '除二時粥飯是雜用心力處,餘外更無用心處'의 취지, 곧 '죽·밥 두 때만이 雜用心處이고 그 밖에는 用心處가 없다'는 결론은 어느 쪽으로 읽어도 보존된다. 자체역은 생략된 '餘外更無用心處'를 함의로 반영해 '두 때를 제외하고는 잡되게 쓴 곳이 없다'로 옮겼고, 출판본은 남은 단편을 '그때는 잡되게 쓴 곳'으로 직역했을 뿐 도달하는 뜻이 같다. 결정적 전거로 우열을 가릴 수 없어 양립 이독으로 유지한다.
. '十八上'은 '열여덟 살 무렵'으로, 향림·용천의 40년과 대비되는 남전의 조숙을 드러낸다. 출판본 '열여덟번 만에야'는 十八을 18회로 오독하여 대비 구도를 잃었다. 내 번역('열여덟에')이 옳다.
. 龍門(용문불안청원)과 智海는 원오의 두 동학(사람)이니 '동학 가운데 오직 용문과 지해만이'로 읽어야 한다. 출판본 '용문을 뚫는 바다같은 지혜'는 龍門을 잉어가 오르는 관문으로, 智海를 지혜의 바다로 분해한 오역이다. 내 번역이 옳다.
이 편의 낱말 41
- 出峽 출협
협(峽)은 장강(長江) 삼협(三峽) 일대. 촉(蜀)(사천)을 떠나 협곡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행각한 일이다.
- 念茲在茲 염자재자
『서경(書經)』 「대우모」에서 우(禹)가 순(舜)에게 한 말에서 나왔다. 생각도 여기에, 마음 둠도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늘 한 가지 일을 잊지 않는 한결같음을 이른다.
-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 深深海底行·
高高峰頂立 심심해저행·고고봉정립 깊은 바다 밑을 다니고 높은 봉우리에 섬. 이(理)와 사(事), 은(隱)과 현(顯)의 양극을 자재히 함을 이르는 선문 상용구다.
- 德山棒 덕산방
덕산(德山)의 방망이다. 덕산선감은 묻는 이에게 '말해도 서른 방, 말 못 해도 서른 방'이라며 몽둥이로 다그쳤다. 임제(臨濟)의 할과 짝지어, 말과 알음알이를 단번에 끊는 솜씨를 대표한다.
- 臨濟喝 임제할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학인을 이끌 때 '할!' 하고 크게 소리친 일이다. 덕산(德山)의 몽둥이와 함께 '덕산방 임제할'이라 하여, 생각을 단번에 끊는 선가의 솜씨를 대표한다.
- 閑閑地 한한지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라는 말이다. 깨친 사람이 아무 일도, 바라는 것도 없이 넉넉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이른다. ‘지(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끝이다.
- 德山亦云 덕산역운
'여단무사어심(汝但無事於心) 어심무사(於心無事) 칙허이령(則虛而靈) 적이조(寂而照)'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5 덕산선감장(德山宣鑒章)의 시중어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다.
- 任運騰騰 임운등등
인연·운에 내맡겨 유유자적함. 남악(南嶽) 懶瓚(나찬)의 「낙도가(樂道歌)」 구절에서 유래한다.
- 孤運獨照·
照體獨立 고운독조·조체독립 홀로 운용하고 홀로 비추되 비추는 본체가 홀로 섬. 영가(永嘉) 『증도가(證道歌)』·규봉(圭峰) 계열의 적조 어법과 통한다.
- 如斬一綟絲·
一斬一切斬 여참일려사·일참일체참 한 타래(綟)의 실을 자르면 단번에 모두 잘림. 돈오의 비유이며 선문 상용구다.
- 佛見法見 불견법견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견해이다. 부처나 진리를 붙들어 두는 생각도 미세한 집착이라 이마저 떨쳐야 한다. 남전(南泉)이 문수와 보현이 이 견해를 일으켰다며 벌한 말이 유명하다.
- 驢胎馬腹 여태마복
나귀의 태와 말의 배 속이라는 말이다. 짐승으로 태어나는 윤회, 곧 축생(畜生)의 길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털끝만 한 분별이라도 남으면 이런 데로 떨어진다고 경계할 때 흔히 쓴다.
- 管帶 관대
늘 붙들어 챙기고 몸에 지닌다는 말이다. 깨친 마음자리를 잠시도 놓치지 않고 이어 지켜 가는 공부를 이른다. 보임(保任)과 뜻이 통한다.
-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 香林澄遠 향림징원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 騰騰任運 등등임운
얽매임 없이 느긋하게, 되어 가는 대로 맡겨 지낸다는 말이다. 등등은 자유롭고 느긋한 모양, 임운은 억지 없이 맡김이다. 등등화상(騰騰和尚)의 노래에 '오늘은 임운등등, 내일은 등등임운'이라 한 데서 널리 쓰였다.
- 無生 무생
나고 사라짐이 본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참으로는 생겨난 적이 없으니 사라질 것도 없다는 참모습을 이른다. 이를 깨달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인 경지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한다.
- 渠 거
'그'를 가리키는 옛 입말이다. 선어록에서는 자기의 참모습, 곧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남처럼 '그'라 부르기도 한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물을 건너다 깨치고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고 읊은 것이 대표적이다.
- 平常心 평상심
꾸밈도 분별도 없는 평소 그대로의 마음이다. 마조(馬祖)가 '평상심이 곧 도'라고 했다. 조주(趙州)가 도를 묻자 스승 남전(南泉)도 그렇게 답했다.
- 孤運獨照 고운독조
홀로 움직이고 홀로 비춘다는 말이다. 마음이 바깥 대상이나 분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작용하며 환히 비추는 모습을 이른다.
- 湧泉景欣 용천경흔
태주(台州) 용천의 경흔(景欣) 선사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석상경저(石霜慶諸)의 가르침을 받고 용천의 암자에 머물렀다. 원오의 법어에는 향림(香林)과 나란히, 사십 년을 닦고도 아직 마음이 달아나곤 했다는 사람으로 나온다.
- 張持滿朝奉 장지만조봉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시장지만조봉」을 지어 준 사대부이다. '지만'은 이름이고, '조봉'은 송나라 문관 벼슬 조봉랑 · 조봉대부를 줄인 말이다. 원오 스님에게 참선을 물은 재가 거사이다.
- 訥堂 눌당
원오가 촉을 나온 뒤 머문 당우(堂宇)·거처의 이름. 눌(訥)은 과묵함의 뜻이다.
- 正脈 정맥
바른 법맥. 조사로부터 정통으로 이어진 종지다.
- 天真自性 천진자성
인위로 조작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참된 자성이다.
- 當處全真 당처전진
그 자리 그대로가 온전히 참됨. 즉처즉진의 뜻이다.
- 大圓鏡 대원경
대원경지(大圓鏡智). 만법을 남김없이 비추는 거울 같은 지혜다.
- 半提·
全提 반제·전제 반제(半提)는 종지를 절반만 듦, 전제(全提)는 온전히 다 듦. 접화의 정도를 가리키는 원오의 상용 어법이다.
- 文殊普賢 문수보현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실천과 서원을 상징하는 보현보살, 두 큰 보살이다.
- 牧牛 목우
소 치기. 마음 길들임의 오랜 비유다. 석공혜장(石鞏慧藏)·대안(大安) 등의 목우(牧牛) 화두와 후대 『십우도(十牛圖)』의 연원이다.
- 龍門清遠 용문청원
용문불안청원(龍門佛眼淸遠)(1067~1120).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은 원오의 동학·사형제다. 서주(舒州) 용문산(龍門山)에 주하였고, 원오·太平佛鑑慧懃과 함께 법연 문하 '삼불(三佛)'이다.
- 智海 지해
원오의 동학. 동경(東京)(개봉) 지해선원(智海禪院)에 주한 오조법연(五祖法演) 문하의 인물로 추정되나 정확한 법명 동정은 어렵다.
- 泊頭處 박두처
배를 대어 머무는 곳, 곧 궁극의 안주처다.
- 深深海底行 심심해저행
깊은 바다 밑을 다니고 높은 봉우리에 섬. 理와 事, 隱과 顯의 양극을 자재히 함을 이르는 선문 상용구다.
- 如斬一綟絲 여참일려사
한 타래(려, 綟)의 실을 자르듯 한다는 말이다. 한 타래 실을 단칼에 다 끊듯, 모든 번뇌와 견해를 한꺼번에 몰록 끊음에 견준다.
- 香林坐久成勞 향림좌구성로
『碧巖錄』 제17칙. 僧이 香林澄遠에게 '如何是祖師西來意'라 묻자 '坐久成勞'(오래 앉아 있었더니 고단하다)라 답하였다(T48n2003_p0157a19). 評唱에 香林이 '我四十年方打成一片'이라 했다는 말이 실려 있다(T48n2003_p0157b08).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