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66편

성도(成都) 뇌공열거사(雷公悅居士)에게 드리는 글

示成都雷公悅居士

66.1
쉽게 읽기이제 본심을 밝게 비추어 깨달으면, 두루 통하여 끝이 없습니다. 색과 소리를 비롯한 온갖 티끌이 어찌 그 상대가 되겠습니까. 홀로 벗어나 텅 비고 고요하며 밝고 오묘합니다. 반드시 철저히 붙들어 지니십시오. 얕고 들뜨지 않게 하십시오. 바로 그 자리가 높아서 그 위가 없고, 넓어서 끝까지 다다를 수 없습니다. 발가벗은 듯 깨끗하고 둥글둥글 원만합니다. 새어 나감도 지어냄도 없습니다. 천 명의 성인이 이것을 근본으로 삼고, 온갖 것이 이로 말미암아 세워집니다. 마땅히 단박에,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어야 합니다. 형상을 끊어 버리고, 또렷이 원만하게 증득하십시오. 온갖 변화 속에서도 바뀌거나 옮겨 감이 없습니다. 이를 두고 금강왕이라 하고, 법신을 꿰뚫었다고 합니다.
66.2
쉽게 읽기잠깐 사이의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동작에도 꿰뚫어 사무치지 않음이 없습니다. 낱낱의 사물마다 조금의 틈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말끔히 드러나 깨끗하며 오직 자기 마음만을 홀로 밝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저 그렇게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지켜 머물면 곧 소굴에 떨어지고 맙니다. 도리어 맹렬히 베고 맹렬히 끊어, 남김없이 버려야 합니다. 버릴수록 더욱 밝아지고, 멀어질수록 더욱 가까워집니다. 죽기로 두들겨 다스려 목숨마저 끊어지게 하십시오. 비로소 숨이 끊어진 사람이라야, 향상의 행리, 곧 실제로 밟아 가는 수행을 알 수 있습니다.
66.3
쉽게 읽기향상의 행리를 말하자면, 오직 자기만이 스스로 알 뿐입니다. 그 앎마저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석가와 미륵, 문수와 보현, 덕산과 임제조차도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이 어찌 기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 방망이질과 한 번의 할, 한 구절 한 마디가, 미세하든 거칠든, 색이든 향이든, 한꺼번에 꿰뚫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무심의 경계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66.4
쉽게 읽기이렇게 갓난아이를 기르듯 길러 내면, 순수하고 온화하며 담박합니다. 비록 번뇌 가운데 있어도 그 번뇌에 물들지 않습니다. 맑고 오묘한 곳에 머물러도, 그 맑음과 오묘함이 그를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성품을 따르고 인연에 맡겨,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십니다. 선한 일에조차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하물며 악한 일을 어찌 다시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르기를, "인연을 따라 묵은 업을 녹이되, 다시는 새 재앙을 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66.5
쉽게 읽기또 보이신다.
66.6
쉽게 읽기도는 무심을 귀하게 여기고, 선은 이름과 이치를 끊습니다. 오직 생각을 잊고 분별을 없애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빛을 돌이켜 안을 비추고, 온통 그대로 꿰뚫어 통합니다. 다시는 헤아려 따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통의 밑바닥이 빠지듯 하여, 이 크고 원만하며 고요히 비추는 수승하고 미묘한 해탈문에 들어갑니다.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치니, 다만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를 지키십시오. 처음부터 너와 나, 나음과 못함을 나누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털끝만 한 견해의 가시가 있으면, 곧 아프게 깎아 내십시오. 팔방으로 통달하고 칠방으로 트이도록 풀어놓아, 자유자재하며 빈틈없이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 명의 성인이라도 엿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66.7
쉽게 읽기자기 자신조차 오히려 원수와 같습니다. 다만 멀리 떠나 곁에 기대지 않기를 구하십시오. 초연히 맑고 고요하며, 비었으되 신령하고 고요하되 비추어야 합니다. 용맹하게 끊어 잘라, 털끝만큼도 가슴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없게 하십시오. 이것을 남전 왕 노사께서는 살림살이를 짓는 것이라 이르셨습니다. 조주께서는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이 마음을 잡되게 쓰는 때'라 하셨습니다. 오래도록 실천하고 밟아, 순수하게 익히십시오. 그리하여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무심으로 도를 체득함이, 은밀하고 은밀하게 작용합니다. 스스로 그 공부를 보게 되고, 마지막 매듭에 이르러, 자연히 벼랑에서 손을 놓아 버리는 것과 같이 된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풀이 2
66.1
한문如今照了本心,圓融無際。色聲諸塵,那可作對。逈逈獨脫,虗靜明妙。
번역이제 본래 마음(本心)을 밝게 비추어 알면, 두루 통하여 끝이 없습니다. 빛깔과 소리 같은 온갖 티끌이 어찌 맞설 수 있겠습니까? 아득히 홀로 벗어나, 텅 비고 고요하며 밝고 묘합니다.
要須徹底提持,勿令浮淺直下。高而無上,廣不可極。淨躶躶,圓垛垛,無漏無爲。
반드시 철저히 들어 지녀, 얕고 들뜨지 않게 하십시오. 바로 그 자리가 높아서 위가 없고, 넓어서 끝까지 다다를 수 없습니다. 발가벗은 듯 깨끗하고, 둥글둥글 원만하며, 새어 나감도 없고 함도 없습니다(無漏無爲).
千聖依之作根本,萬有由之建立。應須斗頓,回光自照。令絕形段,分明圓證。
천 명의 성인이 이것에 기대어 근본으로 삼고, 온갖 것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세워집니다. 마땅히 단박에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십시오. 모양을 다 끊고, 또렷하게 원만히 증득하십시오.
萬變千化,無改無移。謂之金剛王,謂之透法身。
천만 가지로 바뀌어도 고쳐지거나 옮겨 가지 않습니다. 이것을 금강왕(金剛王)이라 하고, 법신(法身)을 꿰뚫었다고 합니다.
풀이 4
碧巖錄 벽암록『碧巖錄』에는 '淨裸裸赤灑灑'가 여러 곳(제9·27칙 등)에 나오고, 제31칙 著語에는 '淨躶躶赤洒洒'로 적혔다(병렬용례).
淨躶躶 정나나벽암록(碧巖錄) 여러 칙의 평창(評唱)에 '정나나(淨裸裸)、적쇄쇄(赤灑灑)'·'원타타지(圓陀陀地)、광삭삭(光爍爍)' 식의 자성 형용이 반복 등장한다. 본편 '정나나(淨躶躶)、圓垛垛'와 같은 계열의 상투구다.
四喝임제록(臨濟錄)(진주림제혜조선사어록(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 사할(四喝)의 '유시일할여금강왕보검(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은 본편 '위지금강왕(謂之金剛王)'의 직접 전거다.
四喝임제록(臨濟錄)(鎮州臨濟慧照禪師語錄) 四喝의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은 본편 '謂之金剛王'의 직접 전거다.
66.2
한문餉間行住坐臥,無不透徹。物物頭頭,靡有間隔。喚作乾白露淨,單明自心。
번역잠깐 사이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데(行住坐臥)에 꿰뚫어 사무치지 않음이 없습니다. 낱낱 사물마다 조금의 틈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말끔히 드러나 깨끗하며, 오직 자기 마음만을 홀로 밝힌다고 합니다.
不可只麼守之,守住便落窠窟。卻須猛割猛斷,十分棄捨。轉捨轉明,轉遠轉近。
그러나 그저 이렇게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지켜 머물면 곧 굴(窠窟)에 떨어집니다. 도리어 사납게 베고 사납게 끊어, 남김없이 버려야 합니다. 버릴수록 더 밝아지고, 멀어질수록 더 가까워집니다.
抵死打疊,令斷卻命去。始是絕氣息人,方解向上行履。
죽기로 두들겨 다스려, 목숨마저 끊어지게 하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숨이 끊어진 사람이니, 그제야 향상(向上)의 걸음걸이(行履)를 알게 됩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喚作乾白露淨,單明自心'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책은 乾白露淨을 自心의 술어적 수식으로 보아 '마음을 하얗게 드러내'로 읽고, 자체역은 乾白露淨을 상태 형용으로 삼고 單明(홀로 밝힘)을 얹어 읽는다. 통사 분석의 차이일 뿐이며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쪽 모두 성립한다.
66.3
한문若論向上行履,唯己自知,知亦不立。釋迦彌勒,文殊普賢,德山臨濟,不敢正眼覰著,豈不是奇特底事。
번역향상의 걸음걸이를 말하자면, 오직 자기만이 스스로 알 뿐이고, 그 앎마저도 세우지 않습니다. 석가와 미륵, 문수(文殊)와 보현(普賢), 덕산(德山)과 임제(臨濟)도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이 어찌 기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一棒上,一喝下,一句一言,若細若麤,若色若香,一時穿透,方稱無心境界。
한 방망이에, 한 번의 할(喝)에, 한 구절 한 마디가, 가늘든 거칠든, 빛깔이든 향기든, 한꺼번에 꿰뚫려야 비로소 무심(無心)의 경계라 할 만합니다.
66.4
한문養得如嬰兒相似,純和冲淡。雖在塵勞中,塵勞不染。雖居淨妙處,淨妙收它不住。
번역이렇게 갓난아이처럼 길러 내면, 순수하고 온화하며 담박해집니다. 비록 티끌 같은 번뇌(塵勞) 속에 있어도 번뇌가 물들이지 못합니다. 비록 맑고 묘한 곳에 머물러도, 맑고 묘함이 그를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隨性任緣,飢飡渴飲。善尚不起念,惡豈可復爲。
성품을 따르고 인연에 맡겨,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십니다. 선한 일에도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악한 일을 어찌 다시 하겠습니까?
所以道,隨緣消舊業,更莫造新殃。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이고, 다시는 새 재앙을 짓지 말라.”
풀이 3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大珠慧海가 用功을 묻는 이에게 '饑來喫飯,困來即眠'이라 한 말(『景德傳燈錄』 권6)과 같은 뜻의 말이다(병렬용례).
隨性任緣 수성임연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대주혜해장(大珠慧海章)에서 용심을 묻자 '기래끽반(飢來喫飯),곤래즉면(困來卽眠)'이라 답한 것은 본편 '수성임연(隨性任緣),飢飡渴飲'과 병렬 용례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純和冲淡'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 책은 冲을 虛로 보아 '텅 비고 담박하게'로 읽고, 자체역은 冲淡을 하나의 낱말(冲淡·담박)로 처리한다. 冲淡이 성어로 쓰이는 한편 冲에 虛·空의 뜻도 있어, 결정적 전거가 없이 어느 쪽도 오역이 아니다.
66.5
한문▷ 又示(같은 편에 이어 덧붙여 보이신 글) 〔덧붙이는 글〕
번역▷ 又示 〔덧붙이는 글〕
66.6
한문又示:
번역또 보이신다.
66.7
한문道貴無心,禪絕名理,唯忘懷泯絕,乃可趣向。
번역도는 무심을 귀하게 여기고, 선은 이름과 이치를 끊습니다. 오직 생각을 잊고 분별을 없애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습니다.
回光內燭,脫體通透,更不容擬議,直下桶底子,脫入此大圓寂照勝妙解脫門。
빛을 돌이켜 안을 비추고, 온통 그대로 꿰뚫어 통합니다. 다시는 헤아려 따질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통 밑바닥이 빠지듯 하여, 이 크고 원만하며 고요히 비추는, 빼어나고 묘한 해탈문(解脫門)에 들어갑니다.
一了一切了,只守閑閑地,初不分彼我勝劣,才有毫芒見刺,卽痛剗之,放教八達七通,自由自在,長養綿密,千聖亦覰不見。
하나를 깨치면 모두를 깨칩니다. 다만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를 지키고, 애초에 너와 나, 나음과 못함을 나누지 마십시오. 털끝만 한 견해의 가시라도 생기면 곧 아프게 깎아 내십시오. 팔방으로 통하고 칠방으로 트이게 풀어 놓아 자유자재하게 하고, 빈틈없이 길러서, 천 명의 성인도 엿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풀이 4
碧巖錄 벽암록'통저(桶底)(자(子))탈(脫)'은 원오(圜悟)의 상투어로, 『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벽암록(碧巖錄)』 평창(評唱)에 '직득통저탈락(直得桶底脫落)·통저자탈락(桶底子脫落)' 류 표현이 활연대오의 형용으로 거듭 나타난다.
碧巖錄 벽암록'桶底(子)脫'은 圜悟의 상투어로, 『圜悟佛果禪師語錄』·『碧巖錄』 평창(評唱)에 '直得桶底脫落·桶底子脫落' 류 표현이 활연대오의 형용으로 거듭 나타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入此大圓寂照勝妙解脫門'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과의역. 大圓寂照勝妙解脫門은 하나의 명사구(크고 원만하며 적조하는 승묘한 해탈문)이다. 책은 이를 '적조에 들어가…비추게 됩니다'로 쪼개고 없는 동사 '비추다'를 넣어 照를 이중으로 처리하였다. 단일 명사구로 읽는 것이 옳다.
교감 · 直下桶底子,脫入此大圓寂照'直下桶底子,脫入此大圓寂照' — 원문 구두(CBETA)는 '桶底子' 뒤에서 끊었으나, '桶底子脫'(통 밑바닥이 빠지듯 확 트임)이 한 말이므로 '直下桶底子脫,入此大圓寂照…'으로 끊어 읽는다.
66.8
한문自己尚似冤家,只求得遠離不隈傍,翛然澄靜,虗而靈,寂而照,猛勇斷割,徹底無纖毫撓胸次,王老師謂之作活計。
번역자기 자신조차 오히려 원수와 같으니, 다만 멀리 떠나 곁에 기대지 않기를 구하십시오. 초연히 맑고 고요하여, 비었으되 신령하고 고요하되 비추며, 용맹하게 끊어 내어, 털끝만큼도 가슴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없게 하십시오. 이것을 왕 노사(王老師)께서는 ‘살림살이를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趙州除粥飯二時是雜用心,悠久踐履使純熟,
조주(趙州)께서는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이 마음을 잡되게 쓰는 때’라 하셨습니다. 오래도록 몸소 밟아 가서 무르익게 하십시오.
乃令從上來無心體道,密密作用,自見工夫,到下梢結角頭,自然如懸崖撒手,豈不快哉!
그리하여 예로부터 내려온, 무심으로 도를 몸소 아는 일이 빈틈없이 작용하게 하면, 스스로 공부를 보게 됩니다. 마지막 매듭에 이르러 저절로 벼랑에서 손을 놓듯 된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풀이 6
趙州從諗 조주종심『趙州錄』 '除二時齋粥是雜用心力處,餘外更無別用心處'. 두 끼니 때만 마음을 잡되이 썼다는 뜻이지, 나머지 때가 모두 잡된 마음이라는 뜻이 아니다.
南泉普願 남전보원'作活計'는 南泉의 '十八上便解作活計'(『聯燈會要』 권4)에서 빌린 말로 보인다(추정).
示衆조주(趙州) '제이시죽반시잡용심(除二時粥飯是雜用心)'의 원출전은 『조주화상어록(趙州和尚語錄)』(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13~14) 시중(示衆) 「노승십이시중(老僧十二時中),제이시죽반시잡용심력처(除二時粥飯是雜用心力處),여외경무별용심처(餘外更無別用心處)」이다. 원오(圜悟)가 본문에서 그대로 인용한 대목이다.
懸崖撒手 현애살수〔병렬용례〕 '懸崖撒手'는 圜悟 저작(『碧巖錄』 등)에서 '懸崖撒手,自肯承當' 격으로 대사대활을 형용하는 상용 어구로 쓰인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到下梢結角頭'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과의역. 下梢結角頭는 끝머리, 곧 매듭이 맺히는 최후의 관두라는 뜻이다. 책의 '마지막 납월 삼십일'은 臘月三十日(죽음의 날)이라는 별개 관용구를 끌어와 원문에 없는 특정을 덧씌운 것이다. '마지막 매듭 지점'이 원문에 충실하다.
교감 · 撓胸次'撓胸次'의 '胸' — 스토어 원문이 '撓混次'로 잘못 옮겼던 것을 저본대로 바로잡음.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96c17). 撓胸次는 '가슴속을 어지럽힘'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57
  1. 圓融無際 원융무제

    원융하여 끝·경계(際)가 없음이다. 화엄·선문의 상용어다.

  2. 逈逈獨脫 형형독탈

    아득히(형형(逈逈), 형형(迥迥)과 같다) 홀로 벗어남이다. 일체의 상대를 여읜 절대의 모양이다.

  3. 虗靜明妙 허정명묘

    텅 비고(허(虗)=허(虛)) 고요하며 밝고 오묘함이다.

  4. 淨躶躶 정나나

    발가벗은 듯 깨끗하고(나(躶)=나(裸)) 둥글둥글 원만함이다. 선가 상용 구어 '정나나(淨裸裸)·원타타(圓陀陀)'와 같은 계열의 자성 형용이다.

  5. 無漏無爲 무루무위

    번뇌의 샘(漏)이 없고 조작(有爲)이 없음이다. 무루(無漏)·무위(無爲)는 열반의 성질이다.

  6. 千聖依之作根本·萬有由之建立 천성의지작근본·만유유지건립

    뭇 성인이 이 본심을 근본으로 삼고 만유가 이로써 세워진다는 뜻이다. 유심적 표현이다.

  7. 回光返照 회광반조

    밖으로 내달리던 마음의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되비춘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나 바깥 경계를 좇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선 공부의 요긴한 가르침이다. 임제(臨濟)의 말에 보인다.

  8. 令絕形段·分明圓證 영절형단·분명원증

    형체와 단락(形段)을 끊어 분명하게 원만히 증득함이다.

  9. 金剛王 금강왕

    금강 가운데 으뜸, 곧 가장 굳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능엄경』에서 이미 늘 머물러 무너지지 않음을 이 말로 비유했다. 임제(臨濟)의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도 이 말을 칼에 붙인 것이다.

  10. 行住坐臥 행주좌와

    사위의, 곧 일상의 모든 동작이다.

  11. 乾白露淨·單明自心 건백로정·단명자심

    말끔히 드러나 깨끗하여(건백(乾白)·노정(露淨)) 오직 자기 마음만을 홀로 밝힘(單明)이다.

  12.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13. 抵死打疊 저사타첩

    죽기로써(抵死) 두들겨 다스림(打疊)이다. 타첩(打疊)은 '쓸어 정리하다'의 선가 구어다.

  14. 一棒上·一喝下 일방상·일할하

    덕산의 방(棒)과 임제의 할(喝)이다. 종문의 대표적 지도 수단이다.

  15. 養得如嬰兒相似·純和冲淡 양득여영아상사·순화충담

    갓난아이(嬰兒)처럼 길러 순수·온화·담박함이다. 열반경(涅槃經)의 영아행(嬰兒行) 및 노자(老子)의 영아(嬰兒) 비유와 통하는 보임(保任)의 뜻이다.

  16. 隨性任緣 수성임연

    성품을 따르고 인연에 맡겨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심(飡=찬(餐))이다. 대주혜해(大珠慧海)의 '기래끽반(飢來喫飯),곤래즉면(困來卽眠)'류의 무위 살림살이다.

  17. 隨緣消舊業 수연소구업

    '인연 따라 묵은 업을 녹이되 다시는 새 재앙을 짓지 말라'는 뜻이다. 선가에 널리 회자되는 게송으로, 전거는 지공(誌公)(보지(寶誌)) 계열 등으로 전해지나 확정되지 않았다.

  18. 又示 우시

    '또 보인다'는 뜻으로, 같은 사람에게 이어서 써 준 글 앞에 붙이는 말이다. 『원오심요』에서는 거사 뇌공열(雷公悅)에게 준 두 번째 글 머리에 쓰였다.

  19. 道貴無心 도귀무심

    도는 무심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능소·사량분별이 끊어진 마음자리를 종지로 삼는다. 뒤의 왕노사(남전)·조주 계통 '무심체도(無心體道)·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호응한다.

  20. 禪絕名理 선절명리

    선은 명상(이름)과 의리(이치)를 끊는다는 뜻이다. 언설·논리적 헤아림을 여의는 것이 선의 본지임을 말한다.

  21. 回光內燭 회광내촉

    회광반조이다. 밖으로 내닫는 빛(마음)을 돌이켜 안으로 자기 본성을 비춘다. 촉(燭)은 '비출 촉'이다.

  22.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23. 大圓寂照勝妙解脫門 대원적조승묘해탈문

    크고 원만하며(大圓) 고요히 비추는(寂照) 수승미묘한 해탈의 문이다. 적조는 적(寂)(정(定))과 조(照)(혜(慧))가 둘 아님을 가리킨다.

  24. 一了一切了 일료일체료

    '하나를 마치면 모든 것이 다 마쳐진다'는 말이다. 근본인 한마음을 깨치면 온갖 일이 함께 풀린다는 뜻이다. 원오는 '하나가 밝으면 모두 밝다(一明一切明)'와 짝지어 자주 썼다.

  25. 閑閑地 한한지

    한가롭고 한가로운 자리라는 말이다. 깨친 사람이 아무 일도, 바라는 것도 없이 넉넉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이른다. ‘지(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끝이다.

  26. 八達七通 팔달칠통

    칠통팔달이다. 사방팔방으로 막힘없이 트여 걸림이 없음을 이른다.

  27. 綿密 면밀

    면면밀밀이다. 끊임없고 빈틈없이 공부가 이어져 길러짐(長養)을 이른다.

  28. 千聖亦覰不見 천성역처불견

    천 명의 성인도 엿보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처(覰)(엿볼 처)는 처(覷)·覻의 이체이다. 어떤 성인도 헤아릴 수 없는 자증의 경계이다.

  29. 隈傍 외방

    곁에 기대어 붙음, 곧 무엇에 의지하고 집착함을 이른다. '외(隈)'는 본래 굽이 · 모퉁이를 뜻하나, 이 말에서는 '기댈 외(偎)'와 통해 쓴다.

  30. 虗而靈·寂而照 허이령·적이조

    비었으되(허(虗)=허(虛)) 신령하고, 고요하되 비춘다는 뜻이다. 공적영지의 체용을 나타낸다.

  31. 作活計 작활계

    '살림살이를 짓다'이다. 활계(活計)는 생계·세간살이로, 선가에서는 본분의 수행·공부를 자기 살림살이에 비유한다. 남전(왕노사)이 철저히 끊어 사무친 이 공부를 '활계 짓는 일'이라 하였다.

  32. 從上來無心體道 종상래무심체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從上來)' 조사의 무심으로 도를 체득함이다. 종상제성(從上諸聖)·종상래사(從上來事)의 용례와 같은 관용구이다.

  33. 下梢結角頭 하초결각두

    하초(下梢)는 끝·말미, 결각두(結角頭)는 매듭이 맺히는 곳이다. 곧 공부가 마무리되는 최후의 관두이다.

  34. 懸崖撒手 현애살수

    깎아지른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는 말이다. 목숨처럼 붙들던 알음알이와 기댈 곳을 한꺼번에 놓아 버리는 결단을 이른다. '크게 한 번 죽는다(大死一番)'와 통한다.

  35.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36.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37.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38.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39.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40. 塵勞 진로

    번뇌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티끌처럼 마음을 더럽히고 지치게 한다 하여 진로라 한다. 『유마경』은 이 진로가 곧 부처가 될 씨앗이라고도 하였다.

  41. 向上行履 향상행리

    향상(向上), 곧 깨달음마저 넘어선 자리에서의 실제 살림살이와 실천을 이른다. 깨친 데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소 살아 내는 일이다.

  42. 餉間 향간

    잠깐 사이라는 말이다. ‘향(餉)’은 끼니로, 밥 한 끼 먹을 만한 짧은 동안을 뜻한다. 일향(一餉)이라고도 한다.

  43. 無心境界 무심경계

    분별하는 마음이 끊어진 무심(無心)의 경지이다. 무엇을 붙잡거나 따지는 생각이 없어, 일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자유로운 자리를 이른다.

  44. 示成都雷公悅居士 시성도뇌공열거사

    원오가 성도(成都)에 사는 거사 뇌공열(雷公悅)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거사는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불도를 닦는 사람이다. 같은 사람에게 준 두 번째 글이 우시(又示)로 이어 실렸다.

  45. 本心 본심

    본래 마음이다. 밖으로 좇지 않는 청정한 자성(自性)을 가리킨다.

  46. 斗頓 두돈

    陡頓과 같다. '단박에·몰록'의 뜻으로 갑작스러움을 나타내는 선가 구어다.

  47. 透法身 투법신

    법신(진리의 몸)을 꿰뚫어 사무침이다. 운문계(雲門系)의 '투법신구(透法身句)'와 상통한다.

  48. 釋迦彌勒·文殊普賢 석가미륵·문수보현

    석가모니불·미륵보살, 문수보살·보현보살이다. 불·보살조차 엿보지 못하는 향상의 소식임을 강조한다.

  49. 德山臨濟 덕산임제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 봉(棒)으로 유명)과 임제의현(臨濟義玄)(?~866, 할(喝)로 유명)이다. 이른바 '덕산봉(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다.

  50. 冤家 원가

    원수이다. '자기상사원가(自己尚似冤家)'는 능소의 자기(자아)조차 도의 원수처럼 여겨 멀리 떠나야 함을 말한다.

  51. 千聖依之作根本 천성의지작근본

    뭇 성인이 이 본심을 근본으로 삼고 만유가 이로써 세워진다는 뜻이다. 유심적 표현이다.

  52. 令絕形段 영절형단

    형체와 단락(形段)을 끊어 분명하게 원만히 증득함이다.

  53. 乾白露淨 건백로정

    말끔히 드러나 깨끗하여(乾白·露淨) 오직 자기 마음만을 홀로 밝힘(單明)이다.

  54. 釋迦彌勒 석가미륵

    석가모니불·미륵보살, 문수보살·보현보살이다. 불·보살조차 엿보지 못하는 향상의 소식임을 강조한다.

  55. 一棒上 일방상

    덕산의 방(棒)과 임제의 할(喝)이다. 종문의 대표적 지도 수단이다.

  56. 養得如嬰兒相似 양득여영아상사

    갓난아이(嬰兒)처럼 길러 순수·온화·담박함이다. 涅槃經의 嬰兒行 및 老子의 嬰兒 비유와 통하는 보임(保任)의 뜻이다.

  57. 虗而靈 허이령

    비었으되(虗=虛) 신령하고, 고요하되 비춘다는 뜻이다. 공적영지의 체용을 나타낸다.

문단 7(쉽게 읽기) · 8(깊이 읽기)국역본 대조 4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57저본 《卍新纂續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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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