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56편

전차도 학사(錢次道學士)에게 드리는 글

示錢次道學士

56.1
한문人人腳跟具有此一段大事,佛與眾生無異無別。但佛覺證圓融,羣靈染惑遂相懸遠。
번역사람마다 발밑에 이 한 가지 큰일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도 않고 나뉘지도 않습니다. 다만 부처는 깨달아 증득하여 두루 걸림 없이 통하고(圓融), 뭇 중생은 물들고 미혹되어 마침내 서로 아득히 멀어졌을 뿐입니다.
是故諸聖出興,獨唱此大法,謂之直指人心,見性成佛。
그러므로 여러 성인이 세상에 나오시어, 오직 이 큰 법만을 드높이 외치셨습니다. 이를 일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합니다.
特接上機要,利根種性,覿面相呈,更不擬議,逴得便行。
이 법은 특별히 높은 근기와 날카로운 근성을 맞아들여,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헤아리거나 따지지 않고, 잡아채면 곧바로 행합니다.
所以靈山立卻牓㨾,才拈起花,迦葉便笑。若更論他如之若何,則蹉過也。
그런 까닭에 영산(靈山)에서 본보기를 세우셨습니다. 겨우 꽃을 집어 드시자, 가섭(迦葉)이 곧 미소지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다시 그것이 어떠한가를 따진다면, 벌써 어긋나 지나쳐 버립니다.
쉽게 읽기사람마다 제 발밑에 이 한 가지 큰일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도, 나뉠 것도 없습니다. 다만 부처는 깨달아 얻어서 두루 걸림 없이 통합니다. 반면 뭇 중생은 물들고 어두워져, 마침내 서로 아득히 멀어졌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 성인이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오직 이 큰 법 하나만을 드높이 외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이 법은 특별히 뛰어난 그릇인 상근기와 예리한 성품을 맞아들입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곧장 서로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다시 헤아리거나 따지지 않고, 잡아채자마자 곧바로 행합니다. 그런 까닭에 영산회상에서 본보기를 세우셨습니다. 겨우 꽃 한 송이를 집어 드시자, 가섭이 곧 미소 지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다시 '그것이 어떠한가'를 따진다면, 벌써 어긋나 지나쳐 버립니다.
풀이 2
世尊拈花迦葉微笑 세존염화가섭미소세존염화가섭미소(世尊拈花迦葉微笑) — 무문관(無門關) 제6칙·오등회원(五燈會元) 권1에 '세존염화(世尊拈花),가섭파안미소(迦葉破顏微笑)'로 정형화되었다. 본문 '靈山立卻牓㨾,재염기화(才拈起花),가섭편소(迦葉便笑)'와 상응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逴得便行
책의 약한 오역이자 지나친 의역이다. 逴得은 掣得(잡아채다)의 선어 관용으로, 내역 '잡아채면 곧바로 행함'이 정확하다. 책 '우뚝히 행하기를 바란 것'은 逴을 부사로 잘못 읽고 원문에 없는 '바란'을 보탰다.
56.2
한문器量既等,無虗授者,自爾源源到今,得證契悟如恒河沙。
번역그릇과 역량이 이미 대등하여, 헛되이 전수받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도록, 증득하고 맞아떨어져 깨달은 이가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많습니다.
只如俱胝見天龍得一指,鳥窠吹布毛,侍者大悟,豈有許多路布言詮,返惑亂其真性?
예컨대 구지(俱胝)가 천룡(天龍)을 뵙고 한 손가락을 얻은 일, 조과(鳥窠)가 베실 한 올을 불자 시자가 크게 깨달은 일이 그렇습니다. 어찌 그토록 많은 늘어놓은 말과 풀이가 있어서, 도리어 그 참된 성품을 미혹하고 어지럽히겠습니까.
舉要而指,唯是靈利上智,以透脫根塵、截斷生死爲意,向日用中高著眼,覰破萬緣,
요점을 들어 가리키겠습니다. 오직 영리하고 뛰어난 지혜로, 감관과 대상(根塵)을 뚫고 벗어나 생사를 끊는 것을 뜻으로 삼아야 합니다. 날마다 쓰는 가운데 눈을 높이 두어, 온갖 인연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一切勝劣境界了無一實,惟有本來靈明大解脫,亘古洞今,長時活鱍鱍地,
그러면 알게 됩니다. 뛰어나거나 못한 온갖 경계는 하나도 실다움이 없습니다. 오직 본래 신령하고 밝은 큰 해탈만이 있어, 옛을 관통하고 지금을 꿰뚫으며, 오랜 세월 펄떡펄떡 살아 있습니다(活潑潑地).
一念契合,得無𦊱礙,便放下人我知見、世智辯聦、喜慍得失種種執著,坦然一切平懷。
한 생각에 맞아떨어져 걸림 없음을 얻으면, 곧 나와 남이라는 지견, 세속의 지혜와 말재주와 총명, 기뻐하고 성내며 얻고 잃는 갖가지 집착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너그럽고 느긋하게 모든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初不妨日逐作用,築著磕著俱爲本地風光,應物現形,不將不迎,湛然真寂,
그러면서도 애초에 날마다 짓는 작용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부딪치고 마주치는 것이 모두 본지풍광(本地風光)이 됩니다.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나타내되, 보내지도 맞이하지도 않습니다. 맑고 고요하여 참으로 잠잠합니다.
逗到臘月三十日便了當得,所謂把得住,作得主。
이렇게 되면 섣달 그믐날에 이르러도 잘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붙잡아 머물고,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읽기그릇과 역량이 이미 서로 맞먹어서, 헛되이 법을 전해 받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깨달아 얻고 마음이 딱 들어맞은 이가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습니다. 구지가 천룡을 뵙고 한 손가락을 얻은 일이 그러합니다. 조과가 베실 한 올을 불자 시자가 크게 깨달은 일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어찌 그 많은 말과 갖은 설명을 늘어놓겠습니까. 그것은 도리어 참된 성품을 헷갈리게 하고 어지럽힐 뿐입니다. 요점만 짚겠습니다. 오직 영리하고 빼어난 지혜로, 감관과 그 대상인 근진을 뚫고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나고 죽음을 끊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의 삶 속에서 안목을 높이 두고, 온갖 인연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뛰어나거나 못한 온갖 경계가 하나도 참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오직 본래부터 신령하고 밝은 큰 해탈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옛을 관통하고 지금을 꿰뚫으며, 오랜 세월 활발발하게, 곧 물고기가 파닥이듯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한 생각에 딱 들어맞아 걸림 없음을 얻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나와 남이라는 분별과, 세속의 지혜며 말재주며 총명함을 놓아 버립니다. 기뻐하고 성내며 얻고 잃는 온갖 집착도 놓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느긋하게, 모든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짓는 작용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딪치고 마주치는 것이 모두 본래 그 자리의 경계인 본지풍광이 됩니다.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나타내되, 보내지도 맞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맑고 고요하여 참으로 잠잠합니다. 이렇게 되면 섣달 그믐날, 곧 목숨을 마치는 날에 이르러도 잘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붙잡아 머물러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풀이 4
本地風光 본지풍광'築著磕著'은 이리 부딪치고 저리 맞닥뜨림. 일상의 작용 속에서 바로 本地風光을 보라는 말로,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6의 '築著磕著,當頭彰本地風光'과 같은 쓰임이다.
俱胝一指 구지일지구지일지(俱胝一指) — 벽암록(碧巖錄) 제19칙 '구지화상(俱胝和尙),범유소문(凡有所問),지수일지(只竪一指)'. 원오 자신이 수시(垂示)·평창(評唱)한 본칙으로 본문 '구지견천룡득일지(俱胝見天龍得一指)'와 동일 공안이다(원오 저작 내 병렬).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器量既等,無虗授者
양립가능 이독. 현재 번역은 既를 완료('이미 대등하여')로, 者를 사람('전수받은 이')으로 읽었고, 책은 조건절('같으면')과 행위명사('전수함이 없다')로 읽었다. 두 구문이 모두 성립하고 대의도 수렴하므로 결정적 전거로 어느 한쪽을 확정하기 어렵다.
56.3
한문豈不見老龐長養臨行謂于頔相公:但願空諸所有,慎勿實諸所無。枕公膝乃行。
번역어찌 보지 못하셨습니까. 늙은 방거사(龐居士)는 오래도록 길러온 끝에, 떠날 즈음 우적(于頔) 상공에게 일렀습니다. “다만 있는 것을 모두 비우기를 바랄 뿐, 삼가 없는 것을 실답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그러고는 공의 무릎을 베고 이내 떠났습니다.
楊侍郎透徹圓融,立節立朝,下梢啟手足,乃云:漚生與漚滅,二法本來齊。要識真歸處,趙州東院西。不是向結交頭得力也。
양 시랑(楊侍郎)은 속속들이 꿰뚫어 두루 통했고, 절개를 세우고 조정에 섰습니다. 마지막에 임종에 이르러 말했습니다. “물거품이 생기고 물거품이 사라짐, 이 두 법은 본래 나란하다. 참으로 돌아갈 곳을 알고 싶은가. 조주(趙州) 동원(東院)의 서쪽이다.” 이것은 마지막 매듭에 가서야 힘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쉽게 읽기어찌 이런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늙은 방거사는 오래도록 공부를 길러 왔습니다. 그러다 떠날 즈음, 우적 상공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다만 있는 것을 모두 비우기를 바랄 뿐, 부디 없는 것을 참되다고 여기지는 마십시오.' 그러고는 우적 상공의 무릎을 베고 이내 떠났습니다. 양 시랑은 이치에 사무쳐 두루 통했고, 절개를 세워 조정에 섰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임종에 이르러 이렇게 읊었습니다. '물거품이 생기고 물거품이 사라지니, 이 두 법은 본래 나란하다. 참으로 돌아갈 곳을 알고 싶은가? 조주 동원의 서쪽이니라.' 이것은 마지막 매듭에 가서야 얻은 힘이 아닙니다.
풀이 4
龐居士 방거사'但願空諸所有 慎勿實諸所無'는 『景德傳燈錄』 권8(T51n2076_p0263c15)·『龐居士語錄』 권1(X69n1336_p0134b11)의 임종어. 원문은 '好住世間 皆如影響'으로 이어진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老龐長養
양립가능 이독. 책은 長養을 長養聖胎(보임장양)의 선문 관용으로 보아 '성태를 길러나가다가'로 옮겼고, 현재 번역은 長을 시간부사로 읽어 '오래도록 길러온 끝에'로 옮겼다. 책이 관용에 더 부합하나 현재 번역도 문맥상 통하므로 양립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不是向結交頭得力也
책의 오역이다. 結交頭는 마지막 매듭 · 끝 고비다(下03 '到結交頭' · 下66 '下梢結角頭' · 下70 '臨合殺結角頭', 虛堂語錄 T47n2000 '看看趲到結交頭'). 옛 내역은 結交를 사귐으로 읽었으나 오역이라 '마지막 매듭에 가서야 힘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로 고쳤다(앞 방거사의 長養과 맞물림 — 임종의 힘이 끝 고비에 가서야 얻은 것이 아님). 책 '맺힌 곳에서…아니겠습니까'는 結交頭를 끝매듭으로 본 것은 맞으나, 평서 종결사 也를 반어 의문으로 바꿔 뜻을 뒤집었다.
56.4
한문大凡存誠向慕,本不希聞見談柄,正欲確然清身潔意,內守虗閑,外廓聞見,密運慧刃,剸割情慾,返照回光,
번역무릇 정성을 지녀 우러른다는 것은, 본래 보고 들을 거리나 이야깃거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굳게 몸을 맑히고 뜻을 깨끗이 하려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텅 비고 한가로움을 지키고, 밖으로는 보고 듣는 것을 넓힙니다. 은밀히 지혜의 칼날을 놀려 정욕을 베어 내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려는 것입니다(返照回光).
如靈雲見桃花,香嚴聞擊竹,以至不是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非風鈴鳴,我心鳴耳。
마치 영운(靈雲)이 복사꽃을 보고, 향엄(香嚴)이 대나무 치는 소리를 들은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어진 이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데에 이르고, “바람과 풍경이 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울 뿐이다”라는 데에까지 이릅니다.
쉽게 읽기무릇 정성을 다해 우러른다는 것은, 본디 보고 들을 거리나 이야깃거리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굳게 몸을 맑히고 뜻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텅 비고 한가로움을 지키고, 밖으로는 보고 듣는 것을 넓힙니다. 그리고 은밀히 지혜의 칼날을 놀려 정욕을 베어 냅니다. 또 빛을 돌이켜 제 안을 되비추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영운이 복사꽃을 보고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또 향엄이 대나무에 돌 부딪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어진 이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 '바람과 풍경이 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울 뿐이다'라고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0
  1.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2. 靈山拈花·迦葉微笑 영산염화·가섭미소

    영산 법회에서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자 대중이 모두 말이 없는데 마하가섭만 빙그레 웃으니, 세존이 '나에게 있는 바른 법의 눈을 가섭에게 맡긴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한 선종의 상징으로, 무문관 제6칙과 오등회원 권1에 실려 있다.

  3. 恒河沙 항하사

    항하(恒河)(갠지스강)의 모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나타내는 불교 상용 비유이다.

  4.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5.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

    조과도림(鳥窠道林) 선사가 베실 한 올을 불어 보인 일이다. 시자 회통(會通)이 불법을 배우러 떠나겠다고 하자, 조과는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금 있다’며 옷에서 실오라기를 집어 훅 불었다. 회통은 그 자리에서 깨달아 ‘포모시자(布毛侍者)’라 불렸다.

  6.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7.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8. 把得住·作得主 파득주·작득주

    경계에 끌리지 않고 붙잡아 머물러 스스로 주인(主人公) 노릇을 함. 생사에 자재(自在)함을 이른다.

  9. 龐居士 방거사

    당나라의 재가 거사 방온(龐蘊, ?~808)이다. 형양(衡陽) 사람으로, 석두(石頭)에게 먼저 묻고 마조(馬祖)에게서 깨달아 그 법을 이었다. 아내와 딸 영조(靈照)까지 온 집안이 도를 닦은 이야기로 이름났다.

  10. 于頔相公 우적상공

    우적(于頔)(?~818), 자(字) 允元. 당(唐)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양주자사(襄州刺史)로 방거사의 외호자(外護者). 방온이 그의 무릎을 베고 입적하였다. 상공(相公)은 재상급 고관에 대한 존칭이다.

  11. 但願空諸所有 단원공제소유

    '있는 바를 모두 비우기를 바랄 뿐, 삼가 없는 바를 실답게 여기지 말라.' 방거사의 임종 부촉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8 등에 전한다(전본에 따라 절물실제소무(切勿實諸所無)).

  12. 漚生與漚滅 구생여구멸

    물거품(漚)이 생기고 물거품이 사라짐이다. 양 시랑(楊侍郎) 임종게의 첫 구절로, 물거품의 생멸이 본래 평등하다 하여 나고 죽음이 둘이 아님(생사불이, 生死不二)을 노래하였다.

  13. 趙州東院西 조주동원서

    조주(趙州) 동원(東院)의 서쪽이다. 양 시랑(楊侍郎) 임종게의 끝 구절로, 참으로 돌아갈 곳(귀숙처, 歸宿處)을 조주 화두를 빌려 가리켰다.

  14. 回光返照 회광반조

    밖으로 내달리던 마음의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되비춘다는 말이다. 남의 말이나 바깥 경계를 좇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선 공부의 요긴한 가르침이다. 임제(臨濟)의 말에 보인다.

  15. 靈雲見桃花 영운견도화

    영운지근(靈雲志勤)이 복사꽃을 보고 깨친 일이다. 위산(溈山)에 있을 때 꽃을 보고 깨달아, '삼십 년 칼을 찾던 나그네가 복사꽃 한 번 본 뒤로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의 게송을 지었다. 위산이 그 깨침을 인정했다.

  16. 香嚴聞擊竹 향엄문격죽

    향엄지한(香嚴智閑)선사가 길을 쓸다 기왓조각이 대나무에 부딪는 소리(擊竹)를 듣고 활연대오한 문성오도(聞聲悟道)의 고사이다. 위산(潙山) 문하로 영운(靈雲)과 짝을 이루는 대표 오도 인연이다.

  17. 不是風動·不是幡動 불시풍동·불시번동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이 광주 법성사(法性寺)에서 바람과 깃발을 두고 다투는 두 승려에게 한 말로, 이어서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仁者心動)'라고 하였다. 풍번화(風幡話)라 하며 육조단경(六祖壇經)·무문관(無門關) 제29칙(非風非幡)에 실렸다.

  18. 風幡心動 풍번심동

    '바람도 깃발도 아니라 그대 마음이 움직인다(仁者心動)'로, 법성사(法性寺) 논쟁이다. 단경(壇經).

  19. 非風鈴鳴·我心鳴耳 비풍령명·아심명이

    '바람이 풍경(風鈴)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울 뿐'이라는 말. 앞의 풍번화(風幡話) 뜻을 이어 유심(唯心)을 강조한 표현이다.

  20.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21. 根塵 근진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여섯 경계를 함께 이른다. 눈·귀·코·혀·몸·뜻과, 그것이 만나는 빛깔·소리·냄새·맛·닿음·생각의 대상이다. 백장(百丈)의 '근진을 멀리 벗어났다'는 말이 유명하다.

  22. 天龍 천룡

    항주(杭州) 천룡화상(天龍和尙)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대매법상(大梅法常)의 법을 이었다. 구지(俱胝)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여 깨우쳐 준 스승이다.

  23. 榜樣 방양

    본보기·모범(본). 세존이 염화(拈花)로써 직지의 본보기를 세웠다는 뜻이다.

  24. 活鱍鱍地·活潑潑地 활발발지·활발발지

    물고기가 파닥이듯 생생히 살아 있는 모양. 참된 성품의 약동을 형용하는 선어이다.

  25. 楊侍郞 양시랑

    양억(楊億)(974~1020), 자(字) 대년(大年), 工部侍郎·한림학사(翰林學士)로 추정. 임제종 광혜원련(광혜원연(廣慧元璉), 수산성념하(首山省念下)) 문하의 재가 선객이며 강직한 조행으로 이름났다('입절립조(立節立朝)'). 임종게 '구생여구멸(漚生與漚滅)…조주동원서(趙州東院西)'의 주인공이다. 일부 전거는 무위자 양걸(楊傑)(차공(次公), 兵部侍郎)으로도 전하나 시랑(侍郎)·입조(立朝)의 정황은 양억(楊億)에 부합하며 동정은 잠정이다.

  26. 把得住 파득주

    경계에 끌리지 않고 붙잡아 머물러 스스로 주인(主人公) 노릇을 함. 생사에 자재(自在)함을 이른다.

  27. 不是風動 불시풍동

    육조혜능(六祖慧能)이 광주 법성사(法性寺)에서 두 승려의 바람·깃발 논쟁에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그대들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 한 풍번화(風幡話)이다. 六祖壇經·無門關 제29칙(非風非幡).

  28. 非風鈴鳴 비풍령명

    '바람이 풍경(風鈴)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울 뿐'이라는 말. 앞의 風幡話 뜻을 이어 유심(唯心)을 강조한 표현이다.

  29. 世尊拈花迦葉微笑 세존염화가섭미소

    석가세존이 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이자 대중 가운데 迦葉만이 빙그레 웃었고, 세존이 '吾有正法眼藏,涅槃妙心…付囑摩訶迦葉'이라 하였다는 공안. 『無門關』 제6칙(T48n2005_p0293c12)·『五燈會元』 권1(X80n1565_p0031a08)에 실렸다.

  30. 龐居士臨終語 방거사림종어

    龐蘊 居士가 임종 때 于頔에게 남긴 말 '但願空諸所有,慎勿實諸所無。好住世間,皆如影響'. 말을 마치고 于頔의 무릎을 베고 입적하였다(『景德傳燈錄』 권8, T51n2076_p0263c15; 『龐居士語錄』 권1, X69n1336_p0134b11).

문단 4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