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6편

법왕(法王)의 충장로(沖長老)에게 드리는 글

法王沖長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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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문從上宗乘,高超直證,師資契會,斷不等閑。
번역위로부터 이어 온 종승(宗乘)은 높이 뛰어넘어 곧바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맞아떨어지는(師資契會) 일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所以二祖立雪斷臂,黃梅負舂,自餘服勤三十二十載,豈容易印可哉。
그래서 이조(二祖)는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었고, 혜능은 황매(黃梅)에서 방아를 지고 찧었다. 그 밖의 이들도 이삼십 년을 부지런히 섬겼다. 어찌 쉽게 인가(印可)했겠는가.
蓋觀機逗教,百煅千煉,纔有偏執疑情,盡爲決破,俾徹底放下得平穩,履踐轉換到撲不破之地,
대개 근기를 살펴 가르침을 맞추고(觀機逗教), 백 번 달구고 천 번 단련한다. 치우친 집착이나 의심(疑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남김없이 깨뜨려 결판낸다. 철저히 내려놓아 평온해지게 하고, 밟아 나가며 바꾸어 가 쳐도 깨지지 않는 자리에 이르게 한다.
如皮可漏子相似,禁當得然後放出,接物利生。此非小小因緣,
질긴 가죽 부대(皮漏子)처럼 무엇이든 견뎌 낼 수 있게 된 뒤에야 내보내어, 사람을 맞아 중생을 이롭게 하게(接物利生) 한다. 이는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다.
纔一不周,卽模子不正,脫得出來,七凹八凸,取笑作者。
하나라도 두루 미치지 못하면, 곧 거푸집(模子)이 바르지 못한 것이다. 빼내 보면 울퉁불퉁하여(七凹八凸), 안목 있는 이들의 웃음을 산다.
是故古德唯務周正,八面玲瓏,內於己行持潔清如冰玉,外則圓通謳和覧羣情善回互如陂澤。立參之際,一一以本分事敲點,待其領略,卽放手段與琢磨。
그러므로 옛 큰스님(古德)은 오로지 두루 바르고 여덟 면이 영롱하기(八面玲瓏)를 힘썼다. 안으로는 자기 행지(行持)를 얼음과 옥처럼 깨끗하게 지켰다. 밖으로는 두루 통하는 방편(圓通謳和)으로 뭇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못물이 온갖 물을 받아들이듯 잘 감싸 어우러졌다(回互). 학인이 모여 와 뵐 때에는, 하나하나 본분사(本分事)로 두드려 짚어 주었다(敲點). 그가 알아차리기를 기다렸다가, 곧 솜씨를 놓아 함께 갈고닦았다(琢磨).
譬如一器水傳一器,切忌滲漏其間,驅耕奪飢,神鬼莫測,只憑仗一大解脫,更不生異類相中頭角,妥貼無爲,真五戒十善出塵阿羅漢也。
비유하면 한 그릇의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붓는 것과 같다. 그 사이에 새어 나가는 것(滲漏)을 몹시 꺼린다.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듯 하여(驅耕奪飢),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게 한다. 오직 하나의 큰 해탈(大解脫)에만 기대어, 다시는 이류(異類)의 상(相) 가운데 두각(頭角)을 드러내지 않는다. 함이 없음(無爲)에 편안히 자리 잡으니, 참으로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으로 티끌세상을 벗어난 아라한(阿羅漢)이다.
達磨有言:行解相應,名之曰祖。
달마(達磨)께서 말했다. “행(行)과 앎(解)이 서로 맞아야, 이를 조사(祖)라 이름한다.”
쉽게 읽기위로부터 이어 온 이 종문의 가르침은, 높이 뛰어넘어 곧바로 깨치는 것이다. 그러니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음이 맞아 하나로 통하는 일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조 혜가는 눈 속에 서서 제 팔을 잘랐고, 황매의 육조 혜능은 방앗간에서 방아 찧는 일을 도맡았다. 다른 이들도 이삼십 년을 부지런히 스승을 섬겼으니, 인가가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스승은 제자의 그릇을 살펴 거기 맞게 가르치며, 백 번 달구고 천 번 두드린다. 조금이라도 치우친 집착이나 남은 의심이 있으면 남김없이 깨뜨려, 철저히 내려놓아 마음이 평온해지게 하고, 갈고닦아 흔들어도 부서지지 않는 자리에 이르게 한다. 마치 아무리 담아도 새지 않는 질긴 가죽 부대처럼 무엇이든 능히 감당하게 된 뒤에야, 세상에 내보내어 사람을 만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다. 하나라도 두루 갖추지 못하면 거푸집이 비뚤어진 셈이라, 빚어낸 그릇이 울퉁불퉁하여 안목 있는 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옛 큰스님들은 오직 두루 바르고 여덟 면이 다 영롱하기를 힘썼다. 안으로는 제 몸가짐과 수행을 얼음과 옥처럼 맑게 지키고, 밖으로는 두루 통하는 방편으로 뭇사람의 마음을 살피며, 못물이 온갖 물을 받아들이듯 서로 잘 어우러졌다. 학인이 모여 와 뵐 때에는, 한결같이 저마다 본래 갖춘 그 일을 두드려 짚어 주고, 그가 알아차리기를 기다렸다가 곧 솜씨를 놓아 함께 갈고닦았다. 이는 한 그릇의 물을 다른 그릇으로 고스란히 옮기는 것과 같아서, 그사이에 한 방울이라도 새어 나가는 것을 몹시 꺼린다. 밭 가는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듯 다그쳐 귀신도 그 속을 못 헤아리게 하고, 오직 하나의 큰 해탈에만 기댄다. 그리하여 온갖 것에 뒤섞여 있으면서도 다시는 그 속에서 뿔을 내밀듯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함이 없는 참된 자리에 편안히 자리 잡으니, 오계와 십선을 온전히 지켜 티끌세상을 벗어난 아라한이라 할 만하다. 달마는 “행과 앎이 딱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조사라 부른다”라고 했다.
풀이 9
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驅耕奪飢'는 '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의 약어. 心要의 다른 편에도 '驅耕奪飢,廼活句也'로 보인다.
菩提達磨 보리달마『景德傳燈錄』 권3, 期城太守 揚衒之가 '西天五印師承為祖,其道如何'라 묻자 '明佛心宗,行解相應,名之曰祖'라 답했다. 『少室六門』에도 항목으로 실렸다.
回互 회호'外則圓通謳和,覧羣情,善回互如陂澤'으로, 回互를 남과 원만히 맞물려 감싸 줌의 뜻으로 썼다. 『參同契』의 술어적 쓰임과는 결이 다르다.
滲漏 삼루'譬如一器水傳一器,切忌滲漏其間'은 師資 사이의 傳法이 온전해야 함을 그릇의 물을 옮겨 붓는 데 빗댄 것이다. 이 비유의 경전 출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更不生異類相中頭角'을 책은 '뿔 달린 이류로 태어남'으로 축자적으로 새겼으나, 溈山·南泉의 '異類中行' 교의에 비추면 頭角은 자취·흔적을 뜻하고 相中은 '상(相) 가운데'를 가리키므로 '이류의 相 가운데 두각(자취)을 내지 않는다'로 새김이 옳다. 상에 두각을 내어 자취를 남기지 말라는 독법이 교의상 정합적이니, 책의 축자역은 부정합하고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6.2
한문行腳超方,本爲生死事大,接物利生爲大。善知識止發明大事因緣,此相須相資之理,自古以然。
번역행각(行腳)하며 사방을 넘나드는(超方) 것은 본디 나고 죽는 일(生死)이 크기 때문이다. 사람을 맞아 중생을 이롭게 하여 큰 선지식(善知識)이 되는 것도, 오직 큰일의 인연(大事因緣)을 밝히는 데 있다. 이는 서로 기다리고 서로 돕는(相須相資) 이치이니, 예로부터 그러했다.
唯堪任荷負大法器,乃能於壁立萬仞宗師鑪韛鉗鎚中煅煉成就,
오직 큰 법의 그릇(大法器)을 짊어질 만한 이라야, 만 길 벼랑처럼 우뚝 선(壁立萬仞) 종사(宗師)의 화로와 풀무, 집게와 망치(鑪韛鉗鎚) 속에서 단련되어 이루어질 수 있다.
始末真正,除是不出,一出必驚羣動眾定也。
처음부터 끝까지 참되고 바르다. 이런 이는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나오면 틀림없이 뭇사람을 놀라게 하고 대중을 움직인다.
蓋緣承當處既不莽鹵,付授時亦不率易,
대개 이어받는 자리(承當處)가 애초에 거칠지 않았기에, 물려줄 때에도 가볍게 하지 않는다.
如讓師在曹溪八年,馬祖之與觀音、德嶠之與龍潭、仰山之於大圓、臨濟之於斷際,皆不下一二十載,
이를테면 남악회양(讓師)은 조계(曹溪)에서 여덟 해를 머물렀다. 마조(馬祖)가 관음(觀音)을, 덕교(德嶠)가 용담(龍潭)을, 앙산(仰山)이 대원(大圓)을, 임제(臨濟)가 단제(斷際)를 섬긴 것도, 모두 일이십 년을 밑돌지 않았다.
是故一言一句、一機一境,金聲玉振,後世莫能窺覰,
그러므로 한마디 말, 한 구절, 하나의 기틀, 하나의 경계(一機一境)가 쇠북 소리와 옥 소리처럼 울려(金聲玉振), 뒷세상 누구도 엿보지 못했다.
惟超證到乎大同之地,自然必其落處。
오직 뛰어나게 깨달아 크게 하나 된 자리(大同之地)에 이르러야, 저절로 반드시 그 말이 떨어진 곳(落處)을 안다.
憶昔馬祖爲西堂云:子曾看教麼?藏云:教豈異耶?
생각해 보면 옛날 마조가 서당(西堂)에게 물었다. “그대는 경교(教)를 본 적이 있는가?” 서당이 말했다. “교가 어찌 다르겠습니까?”
祖云:不然,子已後爲人,若東道西說。藏云:某病須自養,豈敢爲人?祖云:子末年必大興於世。已而果然。
마조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대가 뒷날 남을 가르칠 때, 동에서 말하고 서에서 설한다면 어쩌겠는가?” 서당이 말했다. “저는 병이 있어 스스로 돌봐야 합니다. 어찌 감히 남을 가르치겠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뒷날 반드시 세상에 크게 일어날 것이다.” 그 뒤 과연 그러했다.
쉽게 읽기이곳저곳 스승을 찾아다니며 여러 지방을 넘나드는 것은, 본디 나고 죽는 큰일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 이롭게 하여 큰 스승이 되는 것이 큰일이니, 오직 이 한 가지 큰 인연을 밝히는 데 그 뜻이 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필요로 하고 서로 돕는 이 이치는, 예로부터 그러했다. 오직 큰 법의 그릇을 짊어질 만한 이라야, 만 길 벼랑처럼 우뚝 선 종사의 담금질 속에서 단련되어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되고 바른 사람은,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나오면 반드시 뭇사람을 놀라게 하고 대중을 움직인다. 이어받는 자리가 애초에 어설프지 않았기에, 물려주는 때에도 소홀히 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악회양은 조계의 육조 밑에서 여덟 해를 머물렀고, 마조도일이 관음을, 덕산이 용담을, 앙산이 위산을, 임제가 황벽을 섬긴 것이 모두 이삼십 년을 밑돌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한마디 말, 한 구절, 하나의 기틀 하나의 경계가 쇠북과 옥이 울리듯 맑게 울려, 뒷사람이 감히 엿보지 못했다. 오직 뛰어나게 깨쳐 다 같이 하나 되는 자리에 이르러야, 저절로 그 말이 떨어진 참뜻을 알게 된다. 생각해 보라.옛날 마조가 서당 지장에게 물었다. “그대는 경전 가르침을 본 적이 있는가?” 서당이 답했다. “경전 가르침이 어찌 선과 다르겠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대가 뒷날 남을 가르칠 때 이랬다저랬다 하면 어쩌려는가?” 서당이 “저는 병이 있어 제 몸부터 돌봐야 하니, 어찌 감히 남을 가르치겠습니까?” 하니, 마조가 “그대는 뒷날 반드시 세상에 크게 법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했다. 뒤에 과연 그리되었다.
풀이 4
馬祖道一 마조도일'馬祖之與觀音'의 觀音은 南嶽 觀音臺에 머문 南嶽懷讓(『宋高僧傳』 권9 「唐南嶽觀音臺懷讓傳」). 같은 문단의 馬祖·西堂 문답 '子何不看經…'은 『景德傳燈錄』 권7 西堂智藏章, '子末年必興於世'는 『五燈會元』 권3에 보인다.
壁立萬仞·千仞 벽립만인·천인'於壁立萬仞宗師鑪韛鉗鎚中煅煉成就'의 壁立萬仞은 뒤의 宗師를 꾸미는 말로 읽는다.
6.3
한문細詳古人,豈不是大徹大悟向上一段大因緣,
번역옛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라. 어찌 크게 사무쳐 크게 깨달은(大徹大悟), 향상(向上)의 한바탕 큰 인연이 아니겠는가.
絕言像、離分別,硬糾糾處唯己自知,獨樂安閑休歇去處?
말과 형상을 끊고 분별을 떠난 자리, 굳세고 빈틈없는(硬糾糾) 그곳은 오직 자기만이 스스로 안다. 홀로 편안하고 한가로이 쉬어 마친(休歇) 곳을 즐길 뿐이다.
然馬師尚激勵如此,正欲圓通轉變,不守一隅,泥著一處,須該括古今,踐履融攝,混圓無際,
그런데도 마조 스님은 오히려 이처럼 다그쳐 격려했다. 이는 바로 두루 통하며 굴러 변하게 하여(圓通轉變), 한 모퉁이를 지키거나 한 곳에 눌어붙지(泥著) 않게 하려는 것이다. 모름지기 예와 지금을 다 아우르고(該括古今), 밟아 행함이 녹아 하나로 거두어져(融攝), 뒤섞여 둥글고 끝이 없어야 한다.
貴利物之時八面受敵,撥得草窟裏一箇半箇焦尾堪作種草,豈非方便作報佛祖恩德事業耶?
중생을 이롭게 할 때에는 여덟 방향에서 오는 적을 다 받아 냄(八面受敵)을 귀히 여긴다. 풀 덤불(草窟) 속에서 씨앗(種草)이 될 만한, 꼬리 그슬린 놈(焦尾)을 한 마리 반 마리라도 헤쳐 찾아낸다. 이 어찌 방편으로 부처와 조사의 은덕에 보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要須打辦精神,垂手方便,一著著須有出身之機,免瞎人眼,迷果謬因,卻不利益,此最爲知識要徑也。
모름지기 정신을 다잡고(打辦精神) 손을 드리워(垂手) 방편을 베풀어야 한다. 한 수 한 수마다 반드시 몸을 빼낼 기틀(出身之機)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의 눈을 멀게 하고, 결과를 헷갈리고 원인을 그르쳐(迷果謬因) 도리어 이롭지 못하게 되는 일을 면한다. 이것이 선지식의 가장 요긴한 지름길(要徑)이다.
黃龍老南大禪師嘗有語:端居丈室,以本分事接方來人,乃長老之職也。
황룡(黃龍)의 노남(老南) 대선사가 일찍이 말했다. “방장실(丈室)에 단정히 머물며 본분사로 사방에서 오는 이를 맞이하는 것이 곧 장로(長老)의 직분이다.
쉽게 읽기옛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모두가 크게 사무쳐 크게 깨친 저 위로 솟구치는 한 가지 큰 인연이 아니겠는가. 말과 형상을 끊고 분별을 떠난, 그 굳세고 빈틈없는 자리는 오직 자기만이 스스로 알며, 홀로 편안하고 한가로이 푹 쉬는 자리를 즐긴다. 그런데도 마조 스님조차 서당을 저렇게 다그쳐 격려했다. 이는 바로 두루 원만하게 굴러 변하여, 한 모퉁이만 지키거나 한 자리에 눌어붙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모름지기 옛날과 지금을 다 아울러, 밟아 행함이 하나로 녹아들어 두루 둥글고 끝이 없어야 한다. 남을 이롭게 할 때에는 여덟 방향에서 밀려드는 상대를 다 받아 내는 것을 귀히 여긴다. 그렇게 풀 덤불 속에서 꼬리 그슬린 한 마리 반 마리, 곧 될성부른 놈을 가려내어 가풍을 이을 씨앗으로 삼는다. 이 어찌 방편으로 부처와 조사의 은덕에 보답하는 큰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정신을 바짝 다잡고, 손을 내밀어 방편을 베풀되, 한 수 한 수마다 반드시 상대가 빠져나올 길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남의 눈을 멀게 하거나, 원인과 결과를 헷갈리게 하여 도리어 해를 끼치는 일을 면한다. 이것이 선지식이 걸어야 할 가장 요긴한 지름길이다. 황룡 노남 대선사가 일찍이 말했다. “방장실에 단정히 머물며, 본래의 그 일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이를 맞이하는 것, 그것이 곧 장로의 직분이다.
풀이 5
黃龍慧南 황룡혜남'端居丈室,以本分事接方來人,乃長老之職也'는 圜悟가 黃龍慧南의 말로 든 것인데, 『黃龍慧南禪師語錄』·『禪林僧寶傳』·『五燈會元』·『禪林寶訓』에서 같은 구를 찾지 못했다(출전 미상). 같은 주제로 『禪林寶訓』 권1의 黃龍 語 '夫長老之職乃道德之器'가 있다.
本分事 본분사黃龍(慧南)의 말로 든 '端居丈室,以本分事接方來人,乃長老之職也'는 같은 글귀를 傳燈錄·會要·會元·僧寶傳에서 찾지 못했다. 『禪林寶訓』 권1에 黃龍의 '夫長老之職乃道德之器'가 있다. 여기 本分事는 제접의 뜻(②).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撥得草窟裏一箇半箇焦尾'의 '焦尾'를 책은 각주에서 登龍門 전설의 '꼬리 그슬린 큰 잉어'로 새겼으나, 이는 물과 관련된 형상이어서 草窟(범의 굴)과 어긋난다. '草窟裏 一箇半箇焦尾'는 굴속에서 꼬리 그슬린 焦尾大蟲(범)을 가려낸다는 뜻이며, 이 편 말미의 '擒虎兕'(범을 사로잡음)와도 호응하므로 범 독법이 결정적으로 우위다. 잉어로 특정하지 않은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6.4
한문其餘細事,付之知事,無不辦者。誠哉!然用人之際,必須慎擇委任,令不敗事始得。
번역그 밖의 자잘한 일은 지사(知事)에게 맡기면, 처리되지 않을 것이 없다.” 참으로 옳다! 그러나 사람을 쓸 때에는 반드시 신중히 가려 맡겨,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해야 비로소 된다.
大溈真如云:住山無巧,只貴善用人。思之!思之!
대위(大溈)의 진여(真如)가 말했다. “산을 맡아 사는 데 별난 재주는 없다. 다만 사람을 잘 쓰는 것을 귀히 여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諺語云:伎倆不如帳㨾。只如百丈大智,創立規繩,千古撲它底不破。今時但謹遵守,自己率先,不違他雅範,則眾人無有不從去也。
속담에 “재간(伎倆)이 본보기(帳㨾)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저 백장(百丈) 대지(大智)가 청규(規繩)를 세운 일만 해도, 천고에 아무도 깨뜨리지 못했다. 지금은 다만 삼가 지켜, 제가 앞장서서 그 아름다운 법도(雅範)를 어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뭇사람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最後折倒衲子,透脫死生,須知有千聖羅籠,不住截斷命根底一著始得。
맨 마지막으로, 납자(衲子)를 꺾어 넘어뜨려 생사를 꿰뚫어 벗어나게 하려면, 모름지기 천 명의 성인도 그물로 가두지 못하고(千聖羅籠不住) 목숨 뿌리(命根)를 끊어 버리는 한 수(一著)가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된다.
古德大有道:能擒縱,善殺活,得大解脫,知識無不用之。
옛 큰스님이 크게 일렀다. “능히 잡고 놓으며(擒縱) 잘 죽이고 살려서(善殺活) 큰 해탈을 얻으면, 선지식이 이를 쓰지 않음이 없다.”
非知之難見,於行事當機瞥脫,斷得行,方始久遠得力也。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을 해 나가는 데서 드러내어, 기틀을 만나 언뜻 벗어나(當機瞥脫) 끊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오래도록 힘을 얻는다.
쉽게 읽기그 밖의 자잘한 일은 소임 맡은 이에게 넘기면, 처리되지 않을 것이 없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다만 사람을 쓸 때에는 반드시 신중히 가려 맡겨,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해야 한다. 대위의 진여 모철 스님은 “산중 절을 맡는 데 별난 재주가 따로 없다. 오직 사람을 잘 쓰는 것이 귀하다”라고 했으니, 거듭 깊이 새길 일이다. 속담에도 “제 재간이 정해진 본보기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저 백장 회해 스님이 세운 총림의 규칙은, 천고에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 삼가 그것을 지키고, 제가 먼저 앞장서 그 훌륭한 본보기를 어기지 않으면, 뭇사람이 따르지 않는 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납자 몇을 꺾어 넘어뜨려 나고 죽음을 꿰뚫어 벗어나게 하려면, 천 명의 성인이 그물로도 가두지 못하고 목숨 줄을 단칼에 끊어 버리는 한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옛 큰스님이 크게 이르기를, 잡았다 놓았다 하고 죽이고 살리기를 잘하여 큰 해탈을 얻으면, 선지식이 그 힘을 쓰지 않는 일이 없다고 했다. 아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다. 정작 일을 당해 그 자리에서 언뜻 벗어나 딱 끊어 낼 줄 알아야, 비로소 오래도록 힘을 얻는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最後折倒兩子透脫死生'의 '最後'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과의역. '最後'는 '맨 마지막(으로)'이 자연스러운데, 책은 '末後句를 꺾어'로 새겨 '最後'를 末後句로 본 과의역 소지가 있다.
6.5
한문楊岐祖師倡起金剛圈、栗棘蓬,用辨龍蛇擒虎兕。若本色是他家裏人,等閑拈出,便坐斷衲子舌頭也。
번역양기(楊岐) 조사는 금강권(金剛圈)과 밤송이(栗棘蓬)를 들고 일어나, 이것으로 용과 뱀을 가려내고 범과 외뿔소(虎兕)를 사로잡았다. 만약 본색(本色)이 참으로 그 집안사람이라면, 예사로 집어 내어도 곧바로 납자의 혀끝을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린다.
쉽게 읽기양기 조사는 금강권과 밤송이를 들어, 이로써 용과 뱀을 가려내고 범을 사로잡았다. 만약 참으로 이 집안사람이라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툭 집어내어도, 그 자리에서 곧 납자의 혀끝을 딱 끊어 놓을 것이다.
풀이 2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楊岐祖師倡起金剛圈、栗棘蓬'은 『五燈會元』 권19 楊岐章의 室中語와 맞는다. 楊岐는 圜悟의 師祖다(楊岐 → 白雲守端 → 五祖法演 → 圜悟克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47
  1. 二祖立雪斷臂 이조립설단비

    혜가(慧可)가 소림에서 달마 앞에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어 구법의 정성을 보인 고사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3 혜가장(慧可章).

  2. 黃梅負舂 황매부용

    황매산(黃梅山) 오조홍인(五祖弘忍) 문하에서 혜능(慧能)이 방앗간에서 방아 찧으며 공역한 일이다(六祖壇經). 부용(負舂)의 주체는 홍인(弘忍)이 아니라 혜능(慧能)이며 황매(黃梅)는 홍인(弘忍)의 주산이다.

  3. 鑪韝鉗鎚 노구겸추

    화로·풀무·집게·쇠망치로, 종사가 학인을 단련하는 수단의 비유이다.

  4. 回互 회호

    서로 맞물려 넘나든다는 말이다. 석두(石頭)의 『참동계』에서 모든 경계가 ‘넘나들면서도 넘나들지 않는다’고 한 데서 이름났다. ‘잘 어우러짐’이나 ‘뒤섞임’을 뜻하기도 한다.

  5. 滲漏 삼루

    물이 스며 새어 나간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견해나 말에 남은 작은 빈틈과 허물을 이른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학인을 가늠하며 든 ‘세 가지 삼루’, 곧 견해·감정·말의 샘이 이름났다.

  6. 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장 아끼고 기대는 것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홀로 서게 하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를 이른다.

  7. 異類中行·頭角 이류중행·두각

    위산(溈山)·남전(南泉)의 이류중행(異類中行)이다. 이류의 상(相)에 두각(뿔)을 내어 자취를 남기지 말라는 뜻이다.

  8. 五戒十善·出塵 오계십선·출진

    계행 청정한 소승 아라한 단계이다. 원오는 이를 일대해탈(一大解脫)의 한 국면으로 거론하였다.

  9. 壁立萬仞·千仞 벽립만인·천인

    만 길 벼랑이 깎아지른 듯 서 있다는 말이다. 어떤 알음알이도 붙을 틈이 없는 엄준한 기상을 이르며, 원오의 벽암록 수시(머리말)에 자주 나온다.

  10. 讓師在曹溪八年 양사재조계팔년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조계(曹溪)에서 8년간 시봉하였다. 전등록(傳燈錄).

  11. 金聲玉振 금성옥진

    쇠북과 옥경 소리처럼 시종 완전함이다. 맹자(孟子) 만장하(萬章下)의 공자 평이다.

  12. 馬祖·西堂 마조·서당

    마조(馬祖)가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 '자증간교마(子曾看教麼)'…'자(子)(타(他))연필대흥어세(年必大興於世)'라 예언한 고사이다. 전등록(傳燈錄) 서당지장장(西堂智藏章).

  13.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14. 焦尾 초미

    초굴(草窟) 속 꼬리 그슬린 대충(大蟲)(범), 곧 숨은 뛰어난 법기이다. 원오가 가려 종초(種草)(법의 씨앗)로 삼는 대상이다.

  15. 垂手 수수

    손을 아래로 드리운다는 뜻으로, 스승이 몸을 낮추어 배우는 이를 이끄는 일을 이른다. 흔히 방편을 베푸는 일과 함께 말한다. 곽암(廓庵)의 『십우도』 마지막 그림 '입전수수(入鄽垂手)'로 널리 알려졌다.

  16.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17. 長老 장로

    한 절을 이끄는 주지(住持)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18. 伎倆不如帳樣 기량불여장양

    정해진 본보기·장부 양식이다. '잔재주가 정해진 규범만 못하다'는 속담이다.

  19. 金剛圈 금강권

    金剛圈은 뛰어넘을 수 없는 금강의 쇠고리, 栗棘蓬은 삼킬 수 없는 밤송이 가시이다. 정식으로는 뚫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話頭·관문을 상징하는 비유이다. 원오의 스승 五祖法演과 그 스승 白雲守端 계통에서 상용된 어구이다.

  20. 他家裏人 타가리인

    양기(楊岐)(자기 법가) 집안의 참된 사람으로, 본색 종자를 이중으로 뜻한다.

  21. 祖禰舌頭 조녜설두

    조(祖)(선조)·예(禰)(아버지 사당), 곧 역대 조사이다. 그 혀끝을 끊음은 조사의 언구마저 초월함이다.

  22.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23. 壁立萬仞 벽립만인

    만 길 낭떠러지처럼 우뚝 서 있다는 말이다. 알음알이나 말로는 붙을 데가 없는 깨침의 자리, 또는 그런 엄한 가르침을 이른다. 원오의 『벽암록』에도 자주 나온다.

  24.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25. 楊岐方會 양기방회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92~1049)이다. 자명초원(慈明楚圓)의 법을 잇고 원주(袁州) 양기산에서 법을 폈다. 그 법맥을 양기파라 부르며, 백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을 거쳐 원오극근에게 이어졌다.

  26.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

    금강권(金剛圈)은 뛰어넘기 어려운 쇠테, 율극봉(栗棘蓬)은 삼키기 어려운 밤송이다. 양기(楊岐) 스님이 납자를 시험하던 관문의 말로, 머리로 헤아려서는 뚫을 수 없는 화두를 이른다.

  27. 百丈懷海 백장회해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마조(馬祖)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 백장산에 선원을 열고 선원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처음 세웠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로 이름났다. 제자로 황벽(黃檗)과 위산(溈山)이 있다.

  28. 黃龍慧南 황룡혜남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자명(慈明) 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운문종 늑담회징의 문하에서 이름을 얻었으나, 자명을 만나 크게 깨쳤다. 뒤에 황룡산에 머물며 '황룡파'라는 한 갈래를 열었다.

  29. 圜悟心要 원오심요

    원오극근(圜悟克勤)이 제자와 사대부에게 써 준 법어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원오의 법을 이은 자문(子文)이 엮었으며, 모두 4권으로 전한다.

  30. 作者 작자

    글을 지은 사람이 아니라, 참된 안목과 솜씨를 갖춘 선지식을 이른다. 작가(作家)와 같은 뜻이다. 그런 이라야 상대의 기틀을 알아보고 서로 통한다고 한다.

  31. 八面玲瓏 팔면영롱

    여덟 면이 모두 맑고 환하게 트였다는 말이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막힘 없이 투명하고 원만한 경지를 형용한다.

  32. 達磨·行解相應名之曰祖 달마·행해상응명지왈조

    보리달마에 가탁된 상용 인용구로, 행과 해가 상응해야 조사라 함이다(少室六門類).

  33. 馬祖之與觀音 마조지여관음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남악(南嶽) 관음대(觀音臺)(반야사(般若寺))의 남악회양(南嶽懷讓)을 섬긴 일이다. '관음(觀音)'은 회양(懷讓)의 주석처를 가리킨다(마전작경(磨磚作鏡) 고사).

  34. 德嶠之與龍潭 덕교지여용담

    덕산선감(德山宣鑒)(덕교(德嶠))이 용담숭신(龍潭崇信)에게 참하여 깨친 일이다. 전등록(傳燈錄) 덕산장(德山章).

  35. 仰山之於大圓 앙산지어대원

    앙산혜적(仰山慧寂)이 대원선사(大圓禪師) 위산령우(潙山靈祐)를 섬긴 일이다(潙仰宗). 대원(大圓)은 영우(靈祐)의 사시이다.

  36. 臨濟之於斷際 임제지어단제

    임제의현(臨濟義玄)이 단제선사(斷際禪師) 황벽희운(黃檗希運)을 섬긴 일이다. 단제(斷際)는 희운(希運)의 사시이다.

  37. 大潙真如 대위진여

    대위모철(大潙慕喆)(진여모철(眞如慕喆), ?~1095)로, 취암가진(翠巖可眞)의 법사이며 양기하(楊岐下)이다. 「주산무교지귀선용인(住山無巧只貴善用人)」구(句)는 선림보훈(禪林寶訓)에도 수록되었다.

  38.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관문의 비유이다. 양기(楊岐) 이래의 준엄한 접화수단으로 용사(龍蛇)를 가린다.

  39. 觀機逗敎 관기두교

    근기를 살펴 알맞게 가르침을 맞춤이다.

  40. 皮可漏子 피가루자

    질긴 가죽 부대, 곧 육신을 가리키는 선어이다. 단련을 견뎌내는 그릇의 비유이다.

  41. 出身之機 출신지기

    학인이 스스로 벗어나 살아날 기틀·활로이다.

  42. 千聖羅籠不住·命根 천성나롱불주·명근

    천 성인도 가두지 못하는 자재와, 생사의 뿌리(命根)를 끊는 일착(一著)이다.

  43. 方丈 방장

    절의 주지(住持)가 머무는 방이다. 백장(百丈)의 선원 규식에는 '교화하는 주인이 되면 방장에 머무니, 유마거사(淨名)의 방과 같아 사사로이 자는 방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44. 可 가

    질긴 가죽 부대, 곧 육신을 가리키는 선어이다. 단련을 견뎌내는 그릇의 비유이다.

  45. 五戒十善 오계십선

    계행 청정한 소승 아라한 단계이다. 원오는 이를 一大解脫의 한 국면으로 거론하였다.

  46. 帳樣 장양

    정해진 본보기·장부 양식이다. '잔재주가 정해진 규범만 못하다'는 속담이다.

  47. 知事 지사

    선원의 살림과 여러 일을 맡아보는 소임이다. 법당 동쪽 줄(동서, 東序)에 서는 도사(都寺)·감사(監寺)·유나(維那)·부사(副寺)·전좌(典座)·직세(直歲) 같은 이들을 함께 이른다. 서쪽 줄에 서는 수좌(首座)·서기(書記) 같은 두수(頭首)와 짝을 이룬다.

문단 5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