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3편

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示圓首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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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문示圓首座
번역원수좌(圓首座)에게 주는 글
쉽게 읽기원수좌에게 주는 글
3.2
한문得道之士,立處既孤危峭絕,不與一法作對,行時不動纖塵,豈止入林不動草,入水不動波?
번역도(道)를 얻은 사람은 서 있는 자리가 이미 홀로 높고 깎아지른 듯 우뚝하다. 어떤 법 하나와도 맞서 짝하지 않는다. 움직일 때에도 가는 티끌 하나 흔들지 않는다. 어찌 숲에 들어가도 풀을 건드리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 데에 그치겠는가.
蓋中已虗寂,外絕照功,翛然自得,徹證無心,雖萬機頓赴,豈能撓其神、干其慮哉?
대개 안이 이미 텅 비어 고요하고 밖으로 비추는 작용마저 끊어지면, 유연히(翛然) 스스로 얻어 무심(無心)을 사무쳐 깨닫는다. 온갖 일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해도, 어찌 그 정신을 흔들고 그 생각을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平時只守閑閑地,如癡似兀,及至臨事物,初不作伎倆,準擬剸割,風旋電轉,靡不當機,豈非素有所守也?
평소에는 그저 한가하고 한가한 자리를 지켜, 어리석은 듯 멍한 듯하다. 그러다 일과 사물을 만나면, 애초에 재주를 부려 헤아리고 재지 않는다. 단칼에 베어 가르듯, 바람이 돌고 번개가 치듯, 기틀에 딱 맞지 않는 것이 없다. 어찌 본디 지켜 온 것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도를 얻은 사람은, 서 있는 자리가 아득히 높고 홀로 우뚝하다. 어떤 하나의 법과도 마주 서서 짝하지 않고, 움직일 때에도 티끌 하나 흔들지 않는다. 숲에 들어가도 풀 한 포기 건드리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물결 하나 일으키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겠는가. 그보다 더하다. 안이 텅 비어 고요하고, 밖으로 무언가를 비추어 안다는 작용마저 끊어지면, 아무 걸림 없이 저절로 무심을 사무쳐 깨친다. 그렇게 되면 온갖 일이 한꺼번에 몰려와도, 그 정신을 흔들거나 그 생각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평소에는 그저 한가한 자리를 지켜 어리석은 듯 멍한 듯하다가도, 막상 일을 만나면 잔재주를 부려 이리저리 재고 헤아리지 않는다. 칼로 단번에 베어 가르듯, 바람 돌고 번개 치듯, 그때그때 딱 들어맞는다. 이것이 어찌 평소에 지켜 온 바탕 없이 되겠는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翛然自得
翛然은 『莊子』大宗師 '翛然而往翛然而來'의 어휘로 걸림 없이 유연한 모양이다. 내 번역 '유연히'는 이 어의를 살렸으나 책 번역 '어느덧'은 翛然을 시간부사로 오독해 원의를 놓쳤다.
3.3
한문是故古德道:如人學射,久久方中。悟則剎那履踐功夫,須資長遠。
번역그러므로 옛 스님(古德)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활쏘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오래오래 익혀야 비로소 맞힌다.” 깨달음은 한 찰나이지만, 몸으로 밟아 가는 공부는 반드시 길고 오래 쌓아야 한다.
如鵓鳩兒出生下來,赤骨𩪸地,養來餧去,日久時深,羽毛既就,便解高飛遠舉。所以悟明透徹,政要調伏。
비둘기 새끼와 같다. 갓 태어났을 때는 뼈가 드러난 벌거숭이다. 먹이고 기르며 날이 오래되고 때가 깊어 깃털이 다 갖추어지면, 곧 높이 멀리 날 줄 안다. 그러므로 깨달아 밝게 사무쳤으면, 바로 길들여 다스려야(調伏) 한다.
只如諸塵境界,常流於中,窒礙到得底人分上,無不虗通,全是自家大解脫門。
이를테면 온갖 티끌 경계가 늘 그 속을 흘러, 막히고 걸리게 한다. 그러나 다다른 사람에게는 텅 트이지 않는 것이 없다. 모두가 그대로 제 자신의 큰 해탈문(大解脫門)이다.
終日作爲,未嘗作爲,了無欣厭,亦無倦怠,度盡一切而無能所,況生厭墮耶?
종일 하면서도 한 적이 없다. 좋아함도 싫어함도 전혀 없고, 지치거나 게으름도 없다. 모든 것을 다 건지되, 건지는 이와 건져지는 이(能所)가 없다. 하물며 싫증 내어 물러나는 일이 생기겠는가.
쉽게 읽기그래서 옛 스님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도 오래오래 익혀야 비로소 과녁을 맞힌다”라고 했다. 깨달음은 한 찰나에 오지만, 그것을 살려 가는 공부는 반드시 길고 멀어야 한다. 비둘기 새끼가 갓 나왔을 때는 뼈만 앙상한 벌거숭이지만, 먹여 기르고 품어 주어 오랜 날이 지나 깃털이 다 자라면, 그제야 높이 멀리 날 줄 아는 것과 같다. 그러니 깨달음이 밝고 투철해지려면, 무엇보다 마음을 길들여 다스리는 일이 요체다. 온갖 바깥 경계가 늘 흘러들어 속을 꽉 막는 듯해도, 참으로 사무친 사람에게는 어느 것 하나 훤히 뚫리지 않는 것이 없어, 모두가 그대로 제 자신의 큰 해탈문이 된다. 하루 종일 온갖 일을 하면서도 정작 한 것이 없고, 좋아함도 싫어함도 없으며, 지치거나 싫증 내는 일도 없다. 온 중생을 다 건지면서도 ‘건지는 나’와 ‘건져지는 남’이라는 나눔이 없는데, 하물며 싫증이 나서 물러나는 일이 있겠는가.
3.4
한문苟性質偏枯,尤當增益所不能,放教圓通以謳和,
번역만약 성품과 자질이 치우치고 메말랐다면, 제가 못하는 것을 더욱 보태어 원만히 통하게(圓通) 하라. 그리고 솜씨 좋은 방편(謳和)으로
攝化開權,俯仰應接,俾高低遠邇,略無差悞。
중생을 거두어 교화하고 방편의 문을 열어(開權), 굽히고 우러르며 응대하라. 높은 이와 낮은 이, 먼 이와 가까운 이에게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하라.
行常不輕行,學忍辱仙人,遵先佛軌儀,成就三十七品助道法,堅固四攝,
상불경(常不輕)보살의 행을 행하고, 인욕선인(忍辱仙人)을 배워라. 앞선 부처님들의 법도와 몸가짐을 따르고, 깨달음을 돕는 서른일곱 가지 법(三十七品助道法)을 이루며, 네 가지 거두는 법(四攝)을 굳게 지녀라.
行到大用現前,喧寂一致,如下水船,不勞篙棹,混融含攝,圓證普賢行願,乃世出世間大善知識也。
그렇게 행하여 큰 작용(大用)이 눈앞에 드러나는 데 이르면,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하나가 된다. 물길 따라 내려가는 배처럼 삿대와 노를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녹여 하나로 머금고 거두어, 보현행원(普賢行願)을 원만히 깨달아 이룬다. 이것이 곧 세간과 출세간의 큰 선지식(善知識)이다.
쉽게 읽기만약 타고난 성품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메말랐거든, 모자란 데를 더 채워 두루 통하게 하라. 그리고 솜씨 좋은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 교화하고 형편에 맞는 길을 열어, 낮은 이는 굽어보고 높은 이는 우러러 두루 응대하되, 높든 낮든 멀든 가깝든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하라. 누구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상불경보살처럼 행하고, 욕됨을 참아 낸 인욕선인을 본받으며, 앞선 부처님이 남긴 본보기와 몸가짐을 따라, 깨달음을 돕는 서른일곱 가지 수행법을 이루고, 남을 거두는 네 가지 행을 굳게 지녀라. 그리하여 큰 작용이 눈앞에 드러나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하나로 될 때에 이르면, 물길 따라 내려가는 배가 삿대와 노를 힘들이지 않듯, 모든 것을 두루 녹여 안아 보현보살의 큰 서원과 행을 원만히 이룬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간과 출세간을 아우르는 큰 스승, 선지식이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苟性質偏枯尤當增益所不能
'苟…尤當'은 뒤 문장 전체(放教圓通以謳和·攝化開權·俯仰應接)와 마찬가지로 圓首座 자신을 향한 가정·권계 구문이다. '增益所不能'은 자신이 못하는 바를 스스로 늘려 보완한다는 재귀적 독해가 표준 어법이며, 글 전체가 圓首座에게 주는 훈계인 정황과도 합치한다. 성품이 치우치고 메마른 타인의 부족을 선지식이 보태준다는 책 독해는 주어를 잘못 잡은 것이니, 자기수양으로 새긴 자체역이 옳다.
3.5
한문古德云:三家村裏,須自箇叢林。蓋無叢林處,雖有志之士,亦喜自便。
번역옛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집뿐인 산골 마을(三家村)에서도 모름지기 스스로 총림(叢林)을 이루어야 한다.” 대개 총림이 없는 곳에서는, 뜻 있는 사람이라도 제 편한 대로 하기를 좋아한다.
到恁麼,尤宜執守,唯在強勉,以不倦終之。
그런 처지에 이를수록 더욱 굳게 지켜야 한다. 오직 힘써 애쓰는 데 달렸으니, 게으르지 않음으로 끝까지 마쳐야 한다.
至於喧靜亦復爾,喧處周旋應變,於中虗寂;靜處能不被靜縛,則隨所至處,皆我活業。唯中虗外順,有根本者能然。
시끄러움과 고요함에 대해서도 그렇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두루 응대하고 변화에 맞추되, 그 속은 텅 비어 고요해야 한다. 고요한 곳에서는 고요함에 묶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나의 살아 있는 살림(活業)이다. 오직 안은 비고 밖은 순하게 따르며 근본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럴 수 있다.
쉽게 읽기옛 스님은 “집이 서너 채뿐인 두메 마을에 있더라도, 스스로 총림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했다. 총림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뜻있는 사람이라도 제 편한 대로 흐르기 쉽다. 그런 처지일수록 더욱 굳게 지켜야 하니, 오직 부지런히 애써 끝까지 게으르지 않는 데 달렸다. 시끄러움과 고요함도 마찬가지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두루 응대하고 변화에 맞추되 그 속은 텅 비어 고요하고, 고요한 곳에서는 그 고요함에마저 묶이지 않는다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가 나의 살아 있는 살림살이가 된다. 오직 안은 비고 밖은 순하게 따르는, 뿌리 선 사람이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풀이 2
三家村 삼가촌'古德云:三家村裏,須自箇叢林'—叢林이 없는 외진 곳에서도 스스로 叢林의 規矩를 지니라는 뜻. 인용된 古德의 원출은 확인하지 못했다.
3.6
한문大凡爲善知識,當慈悲柔和,善順接物,以平等無諍自處。
번역무릇 선지식이 된 사람은 자비롭고 부드러워야 한다. 잘 따르며 사람을 맞고, 평등하여 다툼 없음(無諍)으로 처신해야 한다.
彼以惡來,及以惡聲名色加我,非理相干,訕謗毀辱,但退步自照,於己無歉。一切勿與較量,亦不動念嗔恨,
저쪽이 악한 마음으로 오기도 하고, 험한 소리와 갖은 명색(名色)을 내게 덧씌우기도 한다. 이치에 어긋나게 덤벼들어 헐뜯고 욕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다만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비추어 보라. 내게 흠이 없거든, 그와 조금도 견주어 따지지 말고,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只與直下坐斷如初,不聞不見,久久魔孽自消。
그저 그 자리에서 딱 끊어 버리고(坐斷), 처음부터 듣지도 보지도 않은 듯이 하라. 오래오래 가면 마의 재앙이 저절로 사라진다.
爾若與之較,則惡聲相反,豈有了期?又不表顯自己力量,與常流何以異?切力行之,自然無思不服。
그대가 만약 그와 견주면, 험한 소리가 서로 되받아칠 것이다. 어찌 끝날 날이 있겠는가. 또 자기 역량을 드러내지도 못하니, 여느 무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디 힘써 행하라. 그러면 저절로 따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쉽게 읽기무릇 선지식이 된 사람은, 자비롭고 부드럽게 남을 대하며, 모두를 평등히 보아 다투지 않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상대가 나쁜 마음으로 다가오거나, 험한 말과 억지 트집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이치에 어긋나게 끼어들어 헐뜯고 욕보이더라도,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보아 내게 잘못이 없거든, 결코 맞서 따지지 말고 성내거나 미워하는 마음도 내지 말라. 그저 그 자리에서 마음을 딱 끊어, 처음부터 듣지도 보지도 않은 듯이 있으라. 그렇게 오래 지나면 마군의 훼방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대가 맞서 싸우면 험한 말이 오가며 끝날 날이 없고, 제 힘도 드러내지 못하니, 세속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부디 힘써 이대로 행하면, 저절로 마음마다 따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3.7
한문椎拂之下,開發人天,俾透脫生死,豈小因緣?
번역방망이와 불자(椎拂) 아래에서 사람과 하늘을 열어 일깨워, 생사를 벗어나게 한다. 어찌 작은 인연이겠는가.
應恬和詞色,當機接引勘對,辨其由來,驗其存坐,攻其所偏墜,奪其所執著,直截指示,令見佛性,到大休大歇安樂之場。所謂抽釘拔楔,解黏去縛,
말씨와 낯빛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기틀에 맞게 이끌어 들이고, 맞대어 떠보아(勘對) 그가 어디서 왔는지 가려라. 그가 눌러앉은 자리를 시험하고, 치우쳐 떨어진 데를 쳐 내고, 붙들고 있는 것을 빼앗아라. 곧바로 잘라 가리켜 불성(佛性)을 보게 하고, 크게 쉬고 크게 그친(大休大歇) 안락의 자리에 이르게 하라. 이른바 ‘못을 뽑고 쐐기를 빼며, 끈끈한 것을 풀고 묶인 것을 벗긴다’는 것이다.
切不可將實法繫綴人,令如是住,如是執,勿受別人移倒。
결코 실다운 법(實法)으로 사람을 얽어매어, 이렇게 머물고 이렇게 붙들며, 남에게 옮겨지고 뒤집히지 않게 해서는 안 된다.
此毒藥也,令渠喫著,一生擔板賺悞,豈有利益耶?
이것은 독약이다. 그에게 먹이면 한평생 널빤지를 짊어진 채(擔板) 속아 그르친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방망이와 불자를 들어 사람들을 일깨워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하는 일이 어찌 작은 인연이겠는가. 말씨와 낯빛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여, 그때그때 알맞게 이끌라. 문답으로 그 사람을 떠보아 어디서 왔는지 가려내고, 어디에 눌러앉아 있는지 살피며, 어느 쪽으로 치우쳐 빠졌는지 다스리고, 무엇에 매달려 집착하는지 빼앗아, 곧바로 잘라 가리켜 제 불성을 보게 하라. 그리하여 크게 쉬고 크게 놓아 버린 안락의 자리에 이르게 하라. 이것이 바로 못을 뽑고 쐐기를 빼며, 들러붙은 것을 떼고 묶인 것을 풀어 주는 일이다. 결코 ‘이것이 진짜 법이다’ 하는 것으로 남을 옭아매어, 그 자리에 붙박여 집착하게 하지 말고, 남의 말에 이리저리 끌려 뒤집히지도 않게 하라. 그런 것은 독약이라, 한 번 먹이면 그 사람은 한평생 널빤지 하나 짊어진 채 한쪽만 보며 속아 그르치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3.8
한문佛祖出興,特唱此段大因緣,謂之單傳心印,不立文子語句,
번역부처님과 조사(祖師)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특별히 이 한 가지 큰 인연(大因緣)을 외치셨다. 이를 일러 ‘마음 도장만을 홀로 전하고(單傳心印), 문자와 어구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接最上機,只貴一聞千悟,直下承當了修行,不求名聞利養,唯務透脫生死。
가장 높은 근기를 맞아, 다만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쳐 그 자리에서 곧바로 떠맡는 것(直下承當)을 귀히 여길 뿐이다. 닦아 가되 이름과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생사를 벗어나는 데 힘쓴다.
今既作其兒孫,須存它種草,看他古來大有道之士,
이제 그 자손이 되었으니, 반드시 그 집안의 씨앗(種草)을 간직해야 한다. 예로부터 크게 도를 지닌 이들을 보라.
動是降龍伏虎,神明授戒,攻苦食淡,大忘人世,永謝塵寰,
걸핏하면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켰다. 신명(神明)에게 계를 주었고, 괴로움을 견디며 담박하게 먹었다. 사람 세상을 까맣게 잊고, 티끌 세상과 영영 작별했다.
三二十年折腳鐺兒煑飯喫,遁迹埋名,往往坐脫立亡。
이삼십 년을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묻었다. 종종 앉은 채로, 선 채로 세상을 떠났다(坐脫立亡).
於中一箇半箇,諸聖推出,建立宗風,無不秉高行,務報佛恩,流通大法。始出一言半句,出於抑不得已,明知是接引入理之門,敲門瓦子,
그 가운데 한 사람 반 사람(一箇半箇)을 여러 성인이 밀어내어 종풍(宗風)을 세우게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높은 행을 지녀, 부처님 은혜를 갚고 큰 법을 널리 폈다. 비로소 한마디 반 구절을 내놓은 것도 마지못해서였다. 그것이 진리로 이끌어 들이는 문이요,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敲門瓦子)임을 분명히 알라.
其體裁力用,不妨爲後昆模範,當宜師法之,轉相勉勵,追復古風,切忌希名苟利,茲深祝也。
그들의 법도와 솜씨는 참으로 뒷사람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마땅히 이를 스승 삼아 본받고, 서로 이어 가며 힘써 격려하여 옛 가풍을 되찾아야 한다. 부디 이름을 바라고 이익을 구차히 좇는 것을 꺼려라. 이것을 깊이 축원한다.
쉽게 읽기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신 것은, 오직 이 한 가지 큰 인연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마음의 도장 하나만 오롯이 전할 뿐, 글자나 말을 세우지 않는다’라고 한다.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만나, 하나를 듣고 천을 깨쳐 그 자리에서 곧바로 떠맡는 것을 귀히 여긴다. 수행에서는 이름과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데에만 힘쓴다. 이제 그 자손이 된 이상, 반드시 그 가풍의 씨앗을 간직해야 한다. 예로부터 크게 도를 이룬 이들을 보라.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켰으며, 신령이 찾아와 계를 받았고, 괴로움을 견디며 담박한 음식을 먹고, 사람 사는 세상을 아주 잊어 티끌 세상을 영영 등졌다. 이삼십 년을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지어 먹으며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묻었고, 때로는 앉은 채로 또 선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런 이들 가운데 한 사람 반 사람을, 여러 성인이 세상으로 밀어내어 한 문중의 가풍을 세우게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높은 행실로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큰 법을 널리 폈으며, 겨우 내놓은 한마디 반 구절조차 마지못해 억눌러 나온 것이었다. 그 한마디가 곧 진리로 들어가는 문이요,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임을 분명히 알라. 그 솜씨와 힘은 뒷사람의 본보기가 될 만하니, 마땅히 이를 스승 삼아 서로 이어 가며 힘써 격려하여 옛 가풍을 되살려야 한다. 부디 이름을 바라고 이익을 좇는 일만은 경계하라. 이것을 깊이 당부한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神明授戒
내 번역 '신명(神明)에게 계를 주었고'는 神明을 온전한 한 낱말로 보았으나, 책 번역 '불보살이 신통으로 계를 주었다'는 明을 신통으로 오분석하고 神明을 불보살로 치환한 의역이다. 授戒의 방향은 원오어록 같은 글 '與神明受戒'(T47n1997 p0781c11)와 嵩嶽 元珪가 嶽神에게 계를 준 일(『景德傳燈錄』 권4)에 따라 '신명에게 계를 줌'으로 읽는다(2026-10-30 법문 말투 개역).
3.9
한문馬祖昔歸鄉,以簸箕之譏,畏難行道,因再出峽,緣會江西。
번역마조(馬祖)께서는 옛날 고향에 돌아가셨다가, ‘키 만드는 집 자식’이라는 비웃음 때문에 도를 펴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셨다. 그래서 다시 협(峽) 땅을 나와 강서(江西)에서 인연을 만나셨다.
大隋昔歸鄉,先於龍懷路口,三載茶湯結眾緣,遂隱於木菴,道行於蜀。
대수(大隋)께서는 옛날 고향에 돌아가, 먼저 용회(龍懷) 길목에서 세 해 동안 차와 탕을 끓여 대며 뭇사람과 인연을 맺으셨다. 마침내 목암(木菴)에 숨으셨고, 도가 촉(蜀) 땅에 퍼졌다.
香林昔歸鄉,潛神隱照於水晶宮,成四十年一片事,撥正智門老祚尋出,雪竇大雲門正宗或留再出,皆以緣斷。
향림(香林)께서는 옛날 고향에 돌아가, 수정궁(水晶宮)에서 정신을 잠그고 비춤을 감추어, 사십 년 만에 한 덩어리를 이루셨다. 지문광조(智門光祚)를 다잡아 바로 세우셨고, 이윽고 설두(雪竇)가 나와 운문(雲門)의 바른 종지를 크게 떨쳤다. 머물기도 하고 다시 나오기도 하셨으나, 모두 인연을 따라 결단하신 것이다.
今既萬里西歸,但存行腳本志,亦不必拘去留也。
이제 만 리 길을 서쪽으로 돌아가니, 다만 행각(行腳)의 본뜻만 간직하면 된다. 가고 머무름에 굳이 얽매일 것 없다.
쉽게 읽기마조는 옛날 고향에 돌아갔을 때, ‘키 만드는 집안 자식’이라는 비웃음 때문에 도를 펴기 어렵겠다 싶어, 다시 협 땅을 떠나 강서에서 인연을 만났다. 대수 스님은 고향에 돌아가, 먼저 용회 길목에서 삼 년 동안 차를 끓여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뒤, 마침내 목암에 숨어 촉 땅에서 도를 폈다. 향림 스님은 고향에 돌아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빛을 감춘 채 수정궁에서 사십 년 만에 한 조각 큰일을 이루었다. 그러고는 지문광조 스님을 바로 세워 뒤를 잇게 했고, 그 문하에서 설두가 나와 운문 선사의 정통 종지를 크게 폈다. 이렇게 숨기도 하고 다시 세상에 나오기도 했으나, 모두 인연을 따라 결단한 것이다. 이제 그대가 만 리 서쪽으로 돌아가더라도, 오직 처음 길 떠날 때의 그 뜻만 지니면 되니, 가고 머무름에 굳이 얽매일 것 없다.
풀이 11
雲門文偃 운문문언'雪竇大雲門正宗'은 雪竇重顯(980~1052, 智門光祚의 法嗣)이 雲門宗의 정통을 크게 떨쳤다는 말. 香林澄遠→智門光祚→雪竇로 이어진 雲門 法系를 차례로 들었다.
馬祖道一 마조도일'簸箕之譏'는 馬祖가 고향 漢州(蜀)에 돌아갔을 때 '키 만드는 집 자식'이라 조롱받았다는 전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추정). '再出峽'은 다시 三峽을 나와 江西로 간 일. 이 전승의 등사 출전은 燈錄·語錄류에서 찾지 못하였다.
香林澄遠 향림징원'水晶宮'은 香林이 처음 머문 西川 導江縣 迎祥寺 天王院의 별칭(『景德傳燈錄』 권22 '時謂水精宮'). 뒤의 '撥正智門老祚'는 그 법을 이은 智門光祚를 가리킨다.
碧巖錄 벽암록『碧巖錄』 제29칙 評唱에 大隋가 歸川해 堋口山 길가에서 3년 차를 달여 대접한 일이, 제17칙 評唱에 香林이 雲門 侍者 18년 뒤 歸蜀해 導江 水晶宮에 머물고 智門祚가 찾아온 일과 '我四十年方打成一片'(嘗云)이 실렸다.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제17칙(향림(香林) '좌구성로(坐久成勞)') 평창(評唱) : 원오(圜悟)가 향림징원(香林澄遠)의 운문(雲門) 18년 시봉과 향림(香林)→지문광조(智門光祚)→설두(雪竇)→운문종(雲門宗) 법맥, 임종어 '사십년방타성일편(四十年方打成一片)'을 서술하니 본문 향림(香林) 단락 및 '지문광조(智門光祚)'·'사십년일편사(四十年一片事)' 해독의 직접 전거이다.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제29칙(대수겁화(大隋劫火), '대수수타거야(大隋隨他去也)') : 대수법진(大隋法真)의 대표 공안으로 본문 대수(大隋) 언급의 인물 동정 근거이다.
교감 · 智門老祚'智門老祚' — 저본(X69n1357 p0455b01)은 '撥正智門老祚尋出'이다. 香林의 법을 이어 雪竇를 길러 낸 이는 智門光祚이니(『聯燈會要』 권27 X79n1557 p0240c12 '隋州智門光祚禪師法嗣' 아래 雪竇) '老'는 '光'의 잘못으로 보고, 번역은 '지문광조(智門光祚)'로 옮긴다.
3.10
한문慈明昔辭汾陽,祝云:修造自有人,且與佛法爲主。
번역자명(慈明)께서 옛날 분양(汾陽)을 하직할 때, 분양께서 축원하셨다. “짓고 고치는 일은 절로 맡을 사람이 있다. 우선 불법(佛法)의 주인이 되라.”
自爾五據大剎,不動一椽,唯提振臨際正宗,遂得楊岐、黃龍、翠巖三大士,而子孫徧寰海,果不辜所付授。
그로부터 큰 절에 다섯 번 머무르셨으나, 서까래 하나 건드리지 않으셨다. 오직 임제(臨濟)의 바른 종지만 들어 떨치셨다. 마침내 양기(楊岐)·황룡(黃龍)·취암(翠巖) 세 큰 사람을 얻으셨고, 자손이 온 세상에 두루 퍼졌다. 과연 부촉하신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
蓋古人擇可以荷擔之士,不輕如此。信嚴飾壯麗,梵苑未足以奇佛法也。
대개 옛사람은 짐을 걸머질 만한 사람을 고르는 데 이렇게 가벼이 하지 않았다. 참으로 절을 장엄하게 꾸며 웅장하고 화려하게 한들, 그것으로는 불법을 빛내기에 모자란다.
쉽게 읽기자명 선사가 옛날 분양 스님을 하직할 때, 분양이 당부하며 말했다. “절을 짓고 고치는 일은 절로 맡을 사람이 나오는 법이니, 그대는 오직 불법의 주인이 되라.” 그 뒤로 자명은 큰 절에 다섯 번이나 머물렀지만 서까래 하나 손대지 않고, 오직 임제의 바른 종지만을 들어 떨쳤다. 마침내 양기·황룡·취암 세 큰 선사를 길러 내어 그 자손이 온 세상에 퍼졌으니, 과연 물려받은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옛사람이 큰 짐을 맡길 만한 사람을 이토록 신중히 골랐다. 절을 아무리 크고 화려하게 꾸민들, 그것만으로는 불법을 빛내기에 모자란다.
풀이 3
慈明楚圓 자명초원汾陽의 부촉 '修造自有人 且與佛法爲主'와 '五據大剎 不動一椽'의 일화는 『五燈會元』·『續傳燈錄』·『禪林僧寶傳』에서 찾지 못하였다. '三大士'는 楊岐方會·黃龍慧南·翠巖可真이다(X80n1565_p0247b09, p0351c08).
翠巖可真 취암가진慈明 문하 '楊岐·黃龍·翠巖 三大士'의 翠巖은 石霜楚圓의 法嗣 翠巖可真이다(『五燈會元』 권12 '石霜圓禪師法嗣洪州翠巖可真'). 大愚守芝의 法嗣인 文悅은 慈明의 제자가 아니므로 여기에 들지 않는다.
3.11
한문佛道懸曠,久受勤苦,乃可得成。
번역불도(佛道)는 아득하고 넓다. 오래도록 애쓰고 괴로움을 겪어야 비로소 이룰 수 있다.
祖師門下,斷臂立雪,腰石舂碓,擔麥推車,事園作飯,開田疇,施湯茶,般土拽磨,皆抗志絕俗,自強不息,圖成功業者乃能之,所謂未有一法從嬾墮懈怠中生。
조사의 문하에서는 팔을 끊고 눈 속에 서 있었고(斷臂立雪), 허리에 돌을 매고 방아를 찧었다(腰石舂碓). 보리를 짊어지고 수레를 밀었으며, 채마밭을 돌보고 밥을 지었다. 밭을 일구고 차와 탕을 베풀었으며, 흙을 나르고 맷돌을 돌렸다. 모두 뜻을 높이 세워 세속을 끊고, 스스로 힘써 쉬지 않으며 공업(功業)을 이루려 한 사람이라야 해낸 일이다. 이른바 ‘한 법도 게으르고 느슨한 가운데서 생긴 것은 없다’는 것이다.
既以洞達淵源,至難至險,人所不能達者尚能,而於涉世應酬,屈節俯仰,而謂不能,此不爲非不能也。
이미 깊은 근원을 훤히 꿰뚫었다. 지극히 어렵고 지극히 험해서 남들은 이르지 못하는 데에도 오히려 능하다. 그런데 세상을 살며 사람을 응대하고, 몸을 굽혀 숙이고 우러르는 일은 못 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못 하는 것이 아니다.
當稍按下雲頭,自警自策,庶幾方便門寬曠,不亦善乎。
마땅히 구름머리를 조금 눌러 내리고(按下雲頭),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채찍질하라. 그러면 방편의 문이 넓게 트일 것이니, 또한 좋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불도는 아득하고 넓어, 오래도록 부지런히 애쓴 뒤라야 이룰 수 있다. 조사의 문하에서 옛사람들은 팔을 잘라 눈 속에 서 있었고, 허리에 돌을 매달고 방아를 찧었으며, 보리를 지고 수레를 밀고, 채마밭을 가꾸고 밥을 지으며, 밭을 일구고 차를 끓여 나누고, 흙을 나르고 맷돌을 끌었다. 이 모두가 뜻을 곧추세워 세속을 끊고, 스스로 쉼 없이 힘써 도업을 이루려던 이들이라야 해낸 일이다. 그래서 “어떤 법도 게으름과 나태 속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미 깊은 근원을 훤히 꿰뚫어, 남들은 이르지 못하는 지극히 어렵고 험한 자리까지 해내는 사람이, 정작 세상을 살며 사람을 응대하고 때로 몸을 굽혀 어울리는 일에는 서툴다고 한다면, 그것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 높이 치솟은 구름머리를 조금 눌러 내려, 스스로 다그치고 채찍질하라. 그리하면 남을 건지는 방편의 문이 넓게 트일 터이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풀이 2
按下雲頭 안하운두首座가 '涉世應酬 屈節俯仰'을 못 한다고 하지 말고 '稍按下雲頭'하라는 대목. 고고함을 낮추어 세간의 일과 사람을 맞으라는 뜻.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9
  1. 入林不動草入水不動波 입림불동초입수불동파

    지극한 사람은 움직여도 자취를 남기지 않음을 이르는 선문 상투구이다.

  2. 如人學射久久方中 여인학사구구방중

    '활쏘기는 오래 익혀야 적중한다'—깨달음은 찰나이나 실천 공부는 길고 멀어야 함(頓悟漸修)을 비유한 고덕(古德)의 말이다.

  3. 鵓鳩兒 발구아

    비둘기 새끼이다. 갓 나서 뼈만 앙상한 알몸이던 새끼가 오래 먹여 길러져 깃털을 다 갖춘 뒤에야 높이 멀리 나는 것에, 깨친 뒤에도 오래 길러 가는 공부(보임, 保任)를 견준다.

  4. 赤骨躶地 적골나지

    적골립(赤骨立).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본래 그대로의 벌거벗음(나(躶)=나(裸) 이체)이다.

  5. 羽毛既就 우모기취

    깃털이 다 갖추어짐이다. 새끼 새가 오래 길러져 깃털을 다 갖춘 뒤에야 높이 날 줄 알듯, 깨친 뒤 오래 다스리고 길들이는 공부(조복, 調伏)를 거쳐야 자유로워짐을 견준다.

  6. 常不輕 상불경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 『법화경(法華經)』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만인을 예경하며 '여등개당작불(汝等皆當作佛)'이라 한 보살이다.

  7. 忍辱仙人 인욕선인

    『금강경(金剛經)』·『열반경(涅槃經)』 소재.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이 잘려도 성냄이 없던 부처의 전신이다.

  8. 三家村 삼가촌

    집 서너 채뿐인 외딴 시골 마을이다. 선문에서는 사람 드문 외진 곳을 이르거나, 꾸밈없고 어수룩한 시골 사람에 빗대어 깨닫고도 티를 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을 그린다.

  9. 抽釘拔楔解黏去縛 추정발설해점거박

    학인의 집착(정(釘)·설(楔)·점(黏)·박(縛))을 뽑고 풀어주는 접화 작용이다. 원오(圜悟)의 상용구이다.

  10. 單傳心印不立文字 단전심인불립문자

    교외별전(敎外別傳)·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선종 종지이다.

  11. 折腳鐺·遯迹埋名·坐脫立亡 절각당·둔적매명·좌탈립망

    다리 부러진 솥으로 밥해 먹으며 자취와 이름을 감추고, 앉거나 선 채 자재히 입적함—청빈둔세(淸貧遯世)의 높은 행이다.

  12. 簸箕之譏 파기지기

    마조(馬祖)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옛 이웃 노파가 '키(簸箕) 만드는 마(馬)씨네 아이'라 알아본 고사(격벽로파(隔壁老婆)·향당난화(鄕黨難化)의 예증)이다. 등록(燈錄) 소재.

  13. 翛然 소연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모양을 이른다. 『장자(莊子)』에서 참사람은 '훌쩍 가고 훌쩍 올 뿐'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14. 佛道懸曠久受勤苦乃可得成 불도현광구수근고내가득성

    『법화경(法華經)』(신해품(信解品))계 표현의 원용(추정)이다.

  15. 此不爲非不能也 차불위비불능야

    『맹자(孟子)』양혜왕상(梁惠王上) '시불위야(是不爲也), 비불능야(非不能也)'의 인용이다.

  16. 按下雲頭 안하운두

    구름머리를 눌러 내린다는 말이다. 구름 위 높은 자리에 있던 이가 아래로 내려오듯, 높은 경지를 고집하지 않고 몸을 낮추어 사람과 일을 맞는 것을 이른다.

  17.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18.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19. 馬祖道一 마조도일

    당나라의 선승(709~788)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을 잇고 강서(江西)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가르침으로 이름났다. 백장·남전·방거사가 그 문하다.

  20. 香林澄遠 향림징원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21. 敲門瓦子 고문와자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이다. 문이 열리면 버리는 물건이듯, 조사의 말과 공안(公案)은 깨달음에 들게 하는 방편일 뿐이니 들어간 뒤에는 붙들지 말라는 비유다.

  22. 楊岐方會 양기방회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92~1049)이다. 자명초원(慈明楚圓)의 법을 잇고 원주(袁州) 양기산에서 법을 폈다. 그 법맥을 양기파라 부르며, 백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을 거쳐 원오극근에게 이어졌다.

  23. 慈明楚圓 자명초원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86~1039)으로, 석상초원(石霜楚圓)이라고도 한다. 분양선소(汾陽善昭)의 법을 이었고, 그 문하에서 양기방회(楊岐方會)와 황룡혜남(黃龍慧南)이 나와 임제종의 두 갈래를 이루었다.

  24. 黃龍慧南 황룡혜남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자명(慈明) 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운문종 늑담회징의 문하에서 이름을 얻었으나, 자명을 만나 크게 깨쳤다. 뒤에 황룡산에 머물며 '황룡파'라는 한 갈래를 열었다.

  25. 大隋法真 대수법진

    당말·오대의 선승(834~919)으로 복주(福州) 장경대안(長慶大安)의 법을 이었다. 젊어서 위산(溈山) 회하에서 고되게 수행하였다. 촉(蜀) 익주(益州) 대수산(大隋山)에 머물러 '대수'라 불린다. 공안 '대수겁화(大隋劫火)'(『벽암록(碧巖錄)』 29칙)로 유명하다. 고향에 돌아와 길목에서 3년 동안 차를 끓여 오가는 이들과 인연을 맺고, 대수산 나무 암자(목암, 木庵)에 숨어 살았다.

  26. 智門光祚 지문광조

    송나라 운문종의 선승으로, 향림징원(香林澄遠)의 법을 이었다. 수주(隨州) 쌍천(雙泉)에 머물다 지문(智門)으로 옮겼다. 설두중현(雪竇重顯)이 그의 법을 이었다.

  27. 雪竇重顯 설두중현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 지문광조(智門光祚) 법사, 운문종(雲門宗) 중흥조. 『송고백칙(頌古百則)』(벽암록(碧巖錄)의 본칙(本則)·송(頌)) 저자이다.

  28. 汾陽善昭 분양선소

    분양선소(汾陽善昭)(946~1023), 수산성념(首山省念) 법사(臨濟宗). 자명(慈明)의 스승. '수조(修造)는 절로 사람이 있으니 불법(佛法)의 주인이 되라'고 부촉하였다.

  29. 三十七品助道法 삼십칠품조도법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사여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팔정도(八正道)의 37조도품(助道品)이다.

  30. 四攝 사섭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이다.

  31. 普賢行願 보현행원

    『화엄경(華嚴經)』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십대원(十大願)이다.

  32. 擔板漢 담판한

    널빤지(板)를 어깨에 짊어져 한쪽밖에 못 보는 사내이다. 한 변에 치우친 편견자를 이르는 선가의 상투어이다.

  33. 斷臂立雪 단비입설

    이조혜가(二祖慧可)가 눈 속에서 팔을 끊어 달마(達磨)께 구법한 고사이다.

  34. 腰石舂碓 요석용대

    육조혜능(六祖慧能)이 황매(黃梅) 방앗간에서 몸이 가벼워 허리에 돌을 매고 방아 찧은 고사이다.

  35. 抽釘拔楔·解黏去縛·解粘去縛 추정발설·해점거박·해점거박

    박힌 못을 뽑고 쐐기를 빼며, 들러붙은 것을 떼고 묶인 것을 풀어 준다는 말이다. 스승이 배우는 이의 집착과 알음알이를 풀어 주는 솜씨를 이르며, 원오가 벽암록(제1칙 평창)과 어록에서 즐겨 쓴 말이다.

  36. 智門光 지문광

    智門光祚(?~1031), 香林澄遠 법사·雪竇重顯의 스승. 저본 '老祚'는 인명 '光祚'의 오자이다. 香林이 그를 세워(撥正) 종풍을 이었다는 뜻이니 참고역의 '노스님의 복'은 오독이다.

  37. 鵷鳩兒 원구아

    갓난 새끼가 알몸에서 깃털을 갖춰 나는 것에 悟後의 保任·調伏의 오랜 공부를 견준다.

  38. 解粘去縛 해점거박

    들러붙은 것을 떼고 묶인 것을 풀어 줌. 宗師가 學人의 執著과 知解의 속박을 풀어 주는 接化를 이르며, '抽釘拔楔'(못을 뽑고 쐐기를 뺌)과 짝지어 쓴다. 『碧巖錄』 제1칙 評唱 '達磨本來茲土,與人解粘去縛,抽釘拔楔'(T48n2003_p0141b01); 『圜悟語錄』 권5 '盡與人抽釘拔楔,解黏去縛'(T47n1997_p0735b02). '解黏去縛'으로도 적는다.

  39. 翠巖可真 취암가진

    송나라 임제종 선승으로, 석상초원, 곧 자명(慈明)의 법을 이었다. 복주(福州) 사람이며, 홍주(洪州) 서산의 취암사에 머물러 취암이라 불린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 운봉문열(雲峰文悅)과는 다른 사람이다.

문단 11국역본 대조 3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