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2편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示宗覺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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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번역종문(宗門)은 날카로운 근기와 높은 지혜를 지닌 이를 맞아, 들어 이끌어 생사(生死)에서 벗어나게 한다. 지견(知見)을 끊고, 말을 여의고, 성인과 범부를 넘어서게 하는 오묘한 길이다.
豈淺識小見,理道機境,解路上作活計者所能擬議?
그러니 얕은 식견과 좁은 소견으로, 이치니 도리니 기틀이니 경계니 하며 알음알이 길 위에서 살림을 꾸리는 자가 어찌 헤아려 따질 수 있겠는가.
要須如龍似虎,殺人不眨眼漢,用瞥脫快利力量,聊聞舉著,剔起便行,
반드시 용 같고 범 같아,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는 사내라야 한다. 번쩍 벗어나는 날래고 날카로운 힘을 써서, 슬쩍 들어 보이는 것을 듣기만 해도 번쩍 일어나 곧장 가야 한다.
外棄世間縛著,內捨聖凡情量,直得孤迥迥,峭巍巍,不依倚絲毫,當陽薦透,全身擔荷,佛來也炫惑不動。
밖으로는 세간의 얽매임과 집착을 버리고, 안으로는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헤아림(情量)을 놓아 버려야 한다. 곧장 홀로 아득히 우뚝하고 가파르게 높아, 실오라기 하나에도 기대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서 사무쳐 알아, 온몸으로 짊어진다. 그러면 부처가 와서 홀려도 꿈쩍하지 않는다.
況祖師宗匠,語句機鋒,一刀截斷,更不顧藉,自餘諸雜,甚譬如閑,方可攀上流,少分相應也。
하물며 조사(祖師)와 종장(宗匠)의 말과 기봉(機鋒)이겠는가. 한칼에 끊어 버리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그 밖의 온갖 잡된 것은 아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야 비로소 윗길(上流)에 올라, 조금이나마 들어맞을 수 있다.
不見永嘉纔跨曹溪,便師子吼,丹霞聞馬師示選佛場,當下決破,
보지 못했는가. 영가(永嘉)는 조계(曹溪)에 발을 들이자마자 곧 사자후(師子吼)를 했다. 단하(丹霞)는 마조(馬祖)가 선불장(選佛場)을 보였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판을 냈다.
逗到二師之前,逆流投契,亮坐主四十二本經論,言下冰消,德山吹紙燭,便燒疏鈔,臨濟六十棒,後乃翻擲,
두 스승 앞에 이르러, 흐름을 거슬러 딱 맞아떨어졌다. 양좌주(亮座主)는 마흔두 권 경론(經論)이 한마디 말끝에 얼음 녹듯 녹았다. 덕산(德山)은 종이 촛불을 불어 끄자 곧 소초(疏鈔)를 불살랐다. 임제(臨濟)는 예순 방망이를 맞은 뒤에 도리어 뒤집어 던졌다.
並皆透脫,不知曾入室幾回,請益幾次。
이들은 모두 뚫고 벗어났다. 몇 번이나 입실(入室)하고 몇 차례나 청익(請益)했는지 모른다.
쉽게 읽기종문은 영리한 근기와 뛰어난 지혜를 지닌 이를 이끄는 길이다. 그를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고, 알음알이를 끊게 하며, 말과 설명을 여의게 한다. 성인과 범부의 경계마저 뛰어넘게 하는 오묘한 길이다. 그러니 식견이 얕고 소견이 좁은 자가 어찌 이를 헤아리겠는가. 이치니 도리니 기틀이니 경계니 따지며, 알음알이의 길 위에서 살림살이나 꾸리는 자는 될 수 없다. 모름지기 용 같고 범 같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라야 한다. 번쩍 벗어나는 날래고 예리한 힘을 써야 한다. 조금 들어 보이기만 해도 곧바로 떨쳐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밖으로는 세간의 얽매임과 집착을 버려라. 안으로는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분별하여 재는 마음을 놓아 버려라. 그리하여 홀로 아득히 우뚝 솟아라. 털끝만큼도 무엇에 기대지 말고, 정면으로 뚫어 알아차려 온몸으로 짊어져야 한다. 그러면 부처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조사와 종장의 어구와 기봉이겠는가. 단칼에 끊어 버리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그 나머지 온갖 잡다한 것은 부질없이 여기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높은 경지에 올라 조금이나마 상응할 수 있다. 보지 못했는가. 영가 스님은 조계에 막 발을 들여놓자마자 사자후를 토했다. 단하는 마조가 선불장을 일러 보였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곧장 깨쳐 버렸다. 이렇듯 두 스승 앞에 이르러 흐름을 거슬러 계합했다. 양좌주는 마흔두 권의 경론에 통달했으나, 한마디 말끝에 얼음 녹듯 사라졌다. 덕산은 종이 심지를 훅 불어 끄자마자 주석서를 불살랐다. 임제는 예순 방망이를 맞은 뒤에 도리어 그것을 뒤집어 던져 버렸다. 이들은 모두 뚫고 벗어난 이들이다. 일찍이 몇 번이나 입실하고 몇 차례나 가르침을 청했는지 알 수 없다.
풀이 8
六祖慧能 육조혜능永嘉玄覺이 東陽 策禪師와 함께 曹谿에 이르러 '振錫携瓶,繞祖三匝'하고 문답한 뒤 하룻밤 묵어 '一宿覺'이라 불린 일(『景德傳燈錄』 권5 永嘉章).
選佛場 선불장『景德傳燈錄』 권14 丹霞章에서는 길에서 만난 禪客이 '江西馬大師出世,是選佛之場'이라 일렀고, 丹霞가 찾아가자 馬祖는 그를 石頭에게 보냈다. '馬師示選佛場'은 이 일을 줄여 쓴 것.
德山到溈山 덕산도위산『벽암록(碧巖錄)』제4칙(德山到溈山) 원오(圜悟) 평창(評唱) : 덕산(德山)이 주금강(周金剛)으로 청룡소초(靑龍疏鈔)를 짊어졌다가 용담(龍潭)에서 깨치고 소초(疏鈔)를 불사른 전말을 서술하니, 본문 「덕산취지촉편소소초(德山吹紙燭便燒疏鈔)」의 동일 전거이다.
黃檗噇酒糟漢 황벽당주조한『벽암록(碧巖錄)』제11칙(黃檗噇酒糟漢) 원오(圜悟) 평창(評唱) : 임제(臨濟)가 황벽(黃檗)에게 삼도문(三度問)·삼돈봉(三頓棒) 후 대우(大愚)에게서 대오(大悟)해 돌아온 일과 황벽(黃檗)의 「대당국리무선사(大唐國裏無禪師)」를 서술하니, 본문 「임제육십봉후내번척(臨濟六十棒後乃翻擲)」 및 「대당국리호종간간멸(大唐國裏胡種看看滅)」과 병렬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接利根上智,提持出生死,絕知見,離言說,越聖凡道妙
자체역은 '종문이 利根上智를 접인하여 出生死·絕知見·離言說케 提持한다'로, 提持 이하를 종문의 능동작용으로 읽었다. 책은 '생사를 벗어나…제접한다'로 提持出生死 이하를 제접받는 근기가 이미 갖춘 속성으로 돌렸다. 접인받는 근기가 이미 출세·초범했다면 접인이 불필요해 논리가 어긋난다. 提持는 종문의 능동작용이므로 자체역 구조가 우세하며, 책은 과의역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逗到二師之前,逆流投契
'二師'는 丹霞天然이 차례로 참한 馬祖·石頭 두 스승이므로 이 구절 주어는 丹霞이다. 자체역은 '두 스승 앞에 이르러…계합하였고'로 단하로 이어 옳게 옮겼다. 책은 '이들은 두 스님 앞에 이르자마자'로 주어를 복수(永嘉·丹霞)로 뭉뚱그려 지시대상을 흐렸다. 영가의 스승은 六祖 한 분이라 二師와 어긋나니 책 오역이다.
22.2
한문近時學道之士,不道他不用工夫,多只是記憶公案,論量古今,持擇言句,打葛藤,學路布,幾時得休歇?如斯只贏得一場骨董,
번역요즈음 도를 배우는 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대개는 그저 공안(公案)을 외우고, 고금을 따지고, 말귀를 가려 쥔다. 말의 덩굴(葛藤)을 엮고, 짜 놓은 말길(路布)을 배운다. 어느 때에 쉴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그저 한바탕 골동품 놀음만 얻을 뿐이다.
推源窮本。蓋上梢不遇作家,自己不負大丈夫志氣,曾不退步就己,打辦精神,放下從前已後勝妙知見,直截獨脫,領取本分大事因緣,
뿌리를 캐고 근본을 따져 보자. 대개 처음부터 참다운 작가(作家)를 만나지 못했고, 스스로 대장부의 뜻과 기개를 지니지 못했다. 한 번도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예전부터 지금까지의 훌륭하고 묘한 지견을 내려놓지 않았다. 곧바로 홀로 벗어나 본분(本分)의 큰 일 인연(大事因緣)을 알아차리지 않았다.
是故半前落後,不分不曉。若只恁麼,縱一生勤苦,亦未夢見在。
그래서 어중간하여, 가르지도 못하고 밝히지도 못한다. 이렇게만 해서는, 한평생 애써 고생해도 꿈에도 보지 못한다.
是故昔人云:菩提離言說,從來無得人。德山道:我宗無語句,亦無一法與人。趙州道:佛之一字,吾不喜聞。
그래서 옛사람이 말했다. “보리(菩提)는 말을 떠났으니, 예로부터 얻은 사람이 없다.” 덕산은 말했다. “우리 종문에는 말귀가 없고, 사람에게 줄 법 하나도 없다.” 조주(趙州)는 말했다. “부처라는 한 글자, 나는 듣기 싫다.”
看他早是摋土塗糊人了也。若更於棒頭求玄,喝下覓妙,瞠眉努眼,舉手動足,展轉落野狐窠窟去也。
보라. 이것도 벌써 흙을 뿌리고 진흙을 발라 사람을 더럽힌 것이다. 그런데 다시 방망이 끝에서 현묘함을 구하고, 할(喝) 아래에서 묘함을 찾는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라리고, 손을 들고 발을 움직인다. 그러면 굴러굴러 여우 굴(野狐窠窟)로 떨어져 들어간다.
쉽게 읽기요즈음 도를 배우는 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대개는 그저 공안을 외운다. 고금을 논하고, 말귀나 가려잡는다. 갈등을 벌이고, 판에 박힌 문구나 배운다. 그러니 어느 때에야 쉬겠는가. 이래서는 한바탕 골동품 놀음만 얻을 뿐이다. 그 뿌리를 캐 보자. 대개 처음부터 참다운 스승, 곧 작가를 만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스스로 대장부의 뜻과 기개를 저버렸다. 한 걸음 물러서서 자기에게로 돌이켜 정신을 가다듬은 적이 없다. 이전이든 이후든 훌륭하고 오묘하다는 알음알이를 놓아 버린 적도 없다. 곧바로 홀로 벗어나 본분의 큰 일 인연을 알아차린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앞뒤가 어긋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끝내 밝히지 못한다. 이렇게만 해서는 평생을 애써도 꿈에서조차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말했다. “보리는 말을 여읜 것이라 예로부터 얻은 사람이 없다.” 덕산도 말했다. “우리 종문에는 어구도 없고, 사람에게 줄 법도 하나 없다.” 조주도 말했다. “부처라는 한 글자, 나는 듣기조차 싫다.” 보라. 이 말들조차 벌써 흙을 뿌리고 진흙을 발라 사람을 더럽힌 것이다. 그런데 다시 방망이 끝에서 현묘함을 구하겠는가. 할 아래에서 오묘함을 찾겠는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손을 들고 발을 놀린다. 그러면 굴러굴러 여우 굴로 떨어지고 만다.
풀이 3
五燈會元『오등회원(五燈會元)』권4 조주종심장(趙州從諗章)(및 『조주록(趙州錄)』) : 「불지일자(佛之一字) 오불희문(吾不喜聞)」의 원전으로, 본문 인용구의 출처이며 원오가 『어록(語錄)』·『심요(心要)』에서 거듭 인용하는 차견(遮遣) 일구(一句)이다.
五燈會元『五燈會元』卷4 趙州從諗章(및 『趙州錄』) : 「佛之一字 吾不喜聞」의 원전으로, 본문 인용구의 출처이며 원오가 『語錄』·『心要』에서 거듭 인용하는 遮遣 一句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蓋上梢不遇作家
'上梢'는 송대 구어로 '애초에/처음'의 뜻이다. 자체역은 '처음부터 참다운 작가를 만나지 못한'으로 옳게 옮겼다. 책은 '위로는 아직 작가를 만나지'로 上을 공간어로 오독하고 梢를 흘렸으니 책 오역이다.
22.3
한문此宗惟貴悟明,到銀山鐵壁,萬仞孤峭,擊石火,閃電光,擬不擬便墮坑落穽。
번역이 종문은 오직 깨달아 밝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은산철벽(銀山鐵壁), 만 길 외로운 벼랑에 이르면, 부싯돌 불꽃이 튀고 번갯불이 번쩍한다. 헤아리려 하든 말든, 곧 구덩이와 함정에 떨어진다.
所以從上護惜箇一著子,同到同證,無你撮摸處。
그래서 예로부터 이 한 수(一著子)를 아끼고 감쌌다. 함께 이르고 함께 깨닫되, 그대가 더듬어 붙잡을 곳은 없다.
既能辦心,能舍緣,累修行,依知識。若更不耐心,向千難萬難不可湊泊處放下身心,體究教徹底,誠爲可惜。
이미 마음을 다잡고 인연을 놓았으며, 수행을 쌓고 선지식(知識)에 의지했다. 그런데 다시 끈기 있게 견디지 못하여, 천 가지 만 가지로 어려워 발붙일 수 없는 곳에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몸소 파고들어 밑바닥까지 사무치지 못한다면,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只如千生百劫到今,還有間斷也無?既無間斷,疑箇甚生死去來?軒知屬緣,於本分事了無交涉。
천 생 백 겁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어진 적이 있었는가. 끊어진 적이 없는데, 무슨 생사의 오고 감을 의심하는가. 분명히 알고 보면, 그것은 인연에 속한 일이라 본분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五祖老師常說:我在此五十年,見卻千千萬萬禪和,到禪床角頭,只是覓佛做,說佛法,並不曾見箇本分衲子。誠哉!
오조(五祖) 노스님께서 늘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 오십 년을 있으면서 천천만만 선객(禪和)을 보았다. 선상(禪床) 모서리에 와서는 그저 부처를 찾아 되려 하고 불법을 말할 뿐, 본분납자(本分衲子)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쉽게 읽기이 종문은 오직 깨달아 밝힘을 귀하게 여긴다. 은산철벽 같은 만 길 외로운 벼랑에 이르러 보라. 부싯돌 불빛과 번갯불 섬광처럼 빠르다. 헤아리려 하든 헤아리지 않든, 곧 구덩이에 떨어지고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 한 소식을 아끼고 지켰다. 함께 이르고 함께 증득하되, 그대가 붙잡고 더듬을 곳이 없게 한 것이다. 이제 그대는 마음을 다잡고 인연을 놓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세월 수행을 쌓고 선지식에 의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마음을 참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온갖 어렵고 어려워 발붙일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을 향해 몸과 마음을 던져 철저히 파고들지 못한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천 생 백 겁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이 일이 도리어 끊어진 적이 있었는가. 이미 끊어짐이 없다. 그런데 무슨 생사의 오고 감을 의심하겠는가. 분명히 알고 보면 그것은 인연에 속한 일일 뿐, 본분의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조 노스님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곳에 오십 년을 있으면서 천천만만의 선객을 보았다. 그러나 참선 자리 모서리에 이르러서는, 그저 부처를 찾아 만들려 하고 불법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참다운 본분의 수행자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풀이 1
교감 · 軒知屬緣'軒知屬緣' — '軒知'는 '분명히 알고 보면'의 뜻이다(上13 교감). 생사의 오고 감은 알고 보면 인연에 속한 일이라 본분의 일과 상관없다는 말로 옮긴다.
22.4
한문看卻今時,只說佛法底也難得,何況更求本分人?
번역지금 세상을 보면, 불법을 말하는 이조차 얻기 어렵다. 하물며 다시 본분의 사람을 구하겠는가.
時節澆季,去聖愈遠,大唐國裏胡種看看滅也。
시절이 말세(澆季)라 성인에게서 멀어질수록, 대당국 안의 오랑캐 씨(胡種)가 눈앞에서 사라져 간다.
或得一箇半箇有操持,不敢望似已前龍象,但只知履踐趣向,頭正尾正,早是火中出蓮。
혹 지조를 지키는 이를 하나나 반쯤 얻더라도, 감히 예전의 용상(龍象)만 하기를 바라지 못한다. 다만 밟아 행하며 나아갈 줄 알아, 머리도 바르고 꼬리도 바르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불 속에서 연꽃이 핀 것이다.
切宜撥退諸緣,便能識破古來大達大悟底蘊,隨處休歇,行密行,諸天無路,捧花魔外覓行蹤,不見是真出家了徹。
부디 온갖 인연을 물리쳐라. 그러면 예로부터 크게 통달하고 크게 깨친 이들의 속 깊은 데를 꿰뚫어 알 것이다. 가는 곳마다 쉬고, 은밀한 행(密行)을 행하라. 모든 하늘(諸天)이 꽃을 바칠 길이 없고, 마구니와 외도(魔外)가 자취를 찾아도 보지 못한다. 이것이 참된 출가요, 사무쳐 마친 것이다.
自己如有福報因緣出來,垂一隻手,亦不爲分外,但辦肯心,必不相賺。只老僧恁麼,也是普州人送賊。
만일 자기에게 복된 인연이 있어 세상에 나와 한 손을 드리운다 해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즐겨 하는 마음(肯心)만 갖추면, 반드시 속이지 않는다. 다만 노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보주(普州) 사람이 도적을 배웅하는 격이다.
쉽게 읽기지금 세상을 보라. 불법을 이야기하는 이조차 얻기 어렵다. 하물며 본분의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시절이 말세로 흐른다. 성인과 멀어질수록, 대당국 안의 종자마저 눈앞에서 사라져 간다. 혹 절조를 지키는 한 개 반 개를 얻는다 해도, 감히 이전의 용상만 하기를 바라지는 못한다. 다만 밟아 행하고 나아갈 줄 알아, 머리도 바르고 꼬리도 바르다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불 속에서 연꽃이 핀 격이다. 부디 온갖 인연을 물리쳐 떨쳐내라. 그러면 예로부터 크게 통달하고 크게 깨친 이들의 깊은 뜻을 알아볼 수 있다. 이르는 곳마다 쉬어라. 은밀한 행을 행하라. 그리하여 하늘 신중도 꽃을 바칠 길을 찾지 못하게 하라. 마군 외도도 그 행적을 찾지 못하게 하라. 그래야 참으로 출가하여 철저히 사무친 것이다. 자기에게 만일 복덕의 인연이 있다 하자. 세상에 나와 한 손을 드리운다 해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즐겨 하는 마음만 갖춘다면, 반드시 서로 속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노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 또한, 보주 사람이 도적을 배웅하는 격일 따름이다.
풀이 2
火中出蓮 화중출련'時節澆季,去聖愈遠'의 말세에 '一箇半箇'라도 履踐하는 이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火中出蓮이라 한 것으로, 희유함의 비유로 썼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0
  1. 殺人不眨眼漢 살인불잡안한

    사람을 죽여도 눈 깜짝 않는 자이다. 정식(情識)·지견(知見)을 단칼에 끊는 살인도(殺人刀) 수단을 갖춘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납자로, 원오가 즐겨 쓰는 상투 표현이다.

  2. 選佛場 선불장

    부처를 뽑는 과거 시험장이란 뜻으로, 선원이나 법회 자리를 이른다. 단하천연(丹霞天然)이 과거 보러 가다가 '관리 뽑기보다 부처 뽑기가 낫다'는 말을 듣고 마조(馬祖)에게 간 일에서 나왔다.

  3. 逗到二師之前 두도이사지전

    단하(丹霞)가 차례로 참한 두 스승, 곧 마조도일(馬祖道一)과 석두희천(石頭希遷)이다.

  4.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말과 글, 곧 깨달음에 보탬이 안 되는 군더더기 말을 이른다. 선사들은 자기 법문을 낮추어 '갈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5. 作家 작가

    선가에서 솜씨와 안목을 두루 갖춘 노련한 스승을 이른다. 배우는 이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 자유자재로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는 뜻이 다르다.

  6. 菩提離言說·從來無得人 보리이언설·종래무득인

    '깨달음(菩提)은 말을 떠나 있어, 예로부터 그것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말로 붙잡거나 따로 손에 넣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옛 선사의 말로 인용되며, 처음 나온 곳은 밝혀지지 않았다.

  7. 我宗無語句·亦無一法與人 아종무어구·역무일법여인

    덕산선감(德山宣鑒)의 유명한 시중어(示衆語)이다. 입언(立言)·수법(授法)을 부정하는 격외 종지의 표방이다.

  8. 銀山鐵壁 은산철벽

    은으로 된 산, 쇠로 된 벽이라는 말이다. 머리로 헤아려서는 도무지 뚫을 수 없는 꽉 막힌 관문을 비유한다. 『벽암록』은 뚫기 전에는 은산철벽 같지만, 뚫고 나면 제가 바로 그 벽이라 했다.

  9. 大唐國裏胡種看看滅 대당국리호종간간멸

    「대당국 안에 호(胡)(달마(達磨))의 종자가 눈앞에서 멸해간다」이다. 호종(胡種)은 벽안호(碧眼胡) 달마(達磨)의 법손(선종(禪宗) 법맥)이다. 황벽(黃檗)의 「대당국리무선사(大唐國裏無禪師)」(벽암(碧巖) 11칙)를 밟은 말법 쇠퇴의 탄식이다.

  10. 龍象 용상

    용과 코끼리다. 물에서는 용이, 뭍에서는 코끼리가 가장 힘이 세므로, 뛰어난 수행자나 큰 선지식을 비유한다. 『유마경』에도 이 비유가 나온다.

  11. 火中出蓮 화중출련

    불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말이다. 있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귀한 일을 비유한다. 『유마경(維摩經)』에서 욕망 속에 살면서 선을 닦는 일을 불 속의 연꽃에 견준 데서 왔다.

  12.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13. 魔外潛覰不見 마외잠처불견

    마군(魔軍)과 외도(外道)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누구도 그 속을 넘볼 수 없음을 이른다. 흔히 '여러 하늘이 꽃을 바칠 길이 없다(諸天捧花無路)'는 말과 짝지어 쓴다.

  14. 六祖慧能 육조혜능

    중국 선종의 여섯째 조사(638~713)다. 신주(新州)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으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법을 이었다. 소주(韶州)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에서 가르침을 펴 '조계'라고도 불린다. 남종선을 열었고, 뒤의 선종 여러 갈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15. 示宗覺禪人 시종각선인

    원오가 종각(宗覺)이라는 선승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6. 宗門 종문

    선종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는 교문(敎門)과 달리,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깨닫게 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17. 永嘉·纔跨曹溪便師子吼 영가·재과조계편사자후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이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을 조계(曹溪)에서 참하여 요상삼잡(遶床三匝)·진석이립(振錫而立), 일문일답(一問一答)에 곧 인가(印可)받고 하룻밤 묵어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증도가(證道歌)』의 저자이다.

  18. 丹霞·聞馬師示選佛場 단하·문마사시선불장

    단하천연(丹霞天然)(739~824)이다. 과거(選官) 보러 가다 선불(選佛)장이 낫다는 말을 듣고 강서(江西) 마조(馬祖)를 찾았고, 마조(馬祖)가 석두희천(石頭希遷)에게 보내어 대오(大悟)하였다. 마조(馬祖)·석두(石頭) 이사(二師) 문하를 거쳤다.

  19. 亮座主·四十二本經論言下冰消 양좌주·사십이본경론언하빙소

    서산양좌주(西山亮座主)이다. 경론(經論) 수십 본을 강하던 강주(講主)였으나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문, 「심(心)이 어디 있느냐」류의 문답 끝에 알음알이가 얼음 녹듯 무너져(冰消) 서산(西山)에 숨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마조장(馬祖章)에 실려 있다.

  20. 德山·吹紙燭便燒疏鈔 덕산·취지촉편소소초

    덕산선감(德山宣鑒)(782~865)이다. 본래 『금강경(金剛經)』에 밝아 주금강(周金剛)이라 불리며 청룡소초(靑龍疏鈔)를 지녔으나, 용담숭신(龍潭崇信) 문하에서 지촉(紙燭) 불어 끄는 데 대오(大悟)하고 이튿날 소초(疏鈔)를 불살랐다. 「아종무어구(我宗無語句)…」도 그의 말이다.

  21. 臨濟·六十棒後乃翻擲 임제·육십방후내번척

    임제의현(臨濟義玄)(?~866)이다. 황벽희운(黃檗希運)에게 불법대의(佛法大意)를 세 번 묻고 세 번 방망이(삼돈봉(三頓棒), 합 육십방)를 맞은 뒤 대우(大愚)에게서 대오(大悟), 돌아와 도리어 황벽(黃檗)을 후려쳤다(翻擲). 임제종(臨濟宗) 개조(開祖)이다.

  22. 趙州·佛之一字吾不喜聞 조주·불지일자오불희문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이다. 「부처라는 한 글자, 나는 듣기조차 싫다」— 불(佛)·조(祖)의 자취마저 쓸어버리는 차견(遮遣)의 일구(一句)이다. 『조주록(趙州錄)』·『오등회원(五燈會元)』 권(卷)4에 실려 있다.

  23. 野狐窠窟 야호과굴

    야호선(野狐禪)이다. 잘못 깨친 체하는 삿된 선(禪)으로, 백장야호(百丈野狐) 공안에서 유래하는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24. 銀山鐵壁·萬仞孤峭 은산철벽·만인고초

    은산·철벽·만 길 벼랑이다. 사량분별로는 발붙일 수 없는 화두(話頭)·격외 경계의 비유이다.

  25. 五祖老師·我在此五十年 오조노사·아재차오십년

    원오가 스승 오조법연(?~1104)을 부르는 말이다. 법연은 기주 황매의 오조산(동산)에 오래 머물러 오조라 불렸고, 법맥은 양기방회 · 백운수단 · 오조법연 · 원오극근으로 이어진다. 원오는 원오심요의 「시종각선인」에서 스승이 늘 '내가 여기서 50년 동안 수많은 선객을 보았지만 본분 납자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26. 普州人送賊 보주인송적

    「보주 사람이 도적을 배웅한다」이다. 도적으로 유명한 보주(普州)의 사람은 도적을 전송하니 곧 한패라는 속담이다. 자신의 설법도 결국 알음알이를 보태는 격이라는 자조이다.

  27. 我宗無語句 아종무어구

    德山宣鑒의 유명한 示衆語이다. 立言·授法을 부정하는 격외 종지의 표방이다.

  28. 諸天無路·不見 제천무로·불견

    자취를 끊은 참 수행자는 諸天도 길을 찾지 못하고 꽃 받쳐 든 天魔·外道도 행적을 못 본다는 뜻이다. 牛頭法融이 四祖 참문 후 百鳥銜花가 끊긴 고사를 밟은 표현이다.

  29. 德山到溈山 덕산도위산

    『碧巖錄』 제4칙. 德山宣鑑이 溈山에 이르러 보따리를 낀 채 法堂을 동서로 오가다 '無無'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坐具를 들고 '和尚' 하니 溈山이 拂子를 집으려 하자 喝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溈山은 '此子已後向孤峯頂上盤結草庵,呵佛罵祖去在'라 하였다(T48n2003_p0143b04). 圜悟의 評唱은 德山이 『金剛經』 疏鈔를 짊어지고 남방에 갔다가 龍潭이 紙燭을 불어 끄는 데서 깨치고 疏鈔를 불사른 일을 함께 서술한다(p0143b23–c18).

  30. 黃檗噇酒糟漢 황벽당주조한

    『碧巖錄』 제11칙. 黃檗希運이 대중에게 '汝等諸人盡是噇酒糟漢(술지게미나 퍼먹는 놈들)…還知大唐國裏無禪師麼'라 하고, 한 僧이 '諸方의 匡徒領衆은 어떠냐' 묻자 '不道無禪,只是無師'라 답한 公案(T48n2003_p0151b12). 圜悟의 評唱은 黃檗이 天台에서 물 위를 걷는 僧을 꾸짖은 일, 百丈이 馬祖의 一喝에 三日耳聾한 일, 臨濟가 黃檗 문하에서 大愚에게 가 깨친 일 등을 함께 서술한다.

문단 4국역본 대조 3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