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3편

조부사(詔副寺)에게 드리는 글

示詔副寺

이 편의 풀이 1
교감 · 長慶慧稜'說似一物卽不中稜。師至雪嶺' — 원문 구두(CBETA)는 '稜'을 앞 구에 붙였으나, 稜은 뒤의 '師'와 함께 '稜師'(長慶慧稜)이다 → '卽不中。稜師至雪嶺十五載'로 끊어 읽는다.
43.1
한문昔雪山童子爲半偈捨全軀,可祖斷臂,立雪沒胯,求一句子。
번역옛날 설산동자(雪山童子)는 반 게송을 위하여 온몸을 버렸다. 이조(二祖) 혜가(慧可) 대사는 팔을 끊었고, 눈이 넓적다리를 덮도록 눈 속에 서서 한 구절을 구하였다.
老盧八箇月負舂,象骨飯頭擔桶杓,同巖頭、事園、欽山補紐,而九上洞山,三到投子,只爲究此段。
노로(老盧)는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었다. 상골(象骨)은 밥 짓는 소임을 맡아 물통과 국자를 메고 다녔다. 암두(巖頭)와 함께 지내며 채마밭을 가꾸었고, 흠산(欽山)은 옷을 기웠다. 동산(洞山)에 아홉 번 오르고 투자(投子)를 세 번 찾아간 것도,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파고들기 위해서였다.
其餘効勤勠力,臥雪眠霜,攻苦食淡,蓋不可勝數。
그 밖에 부지런히 힘을 다하여, 눈 위에 눕고 서리 속에 자며, 고되게 닦고 거친 밥을 먹은 이들은 이루 다 셀 수 없다.
鞠其趣向,初不爲名聞、苟利養,並以死生大事爲懷,紹隆佛祖種草作務。
그들이 향한 바를 살펴보라. 애초에 이름을 얻거나 구차하게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나고 죽는 큰일(生死大事)을 마음에 품고, 부처와 조사의 씨앗을 이어 일으키려고 울력(作務)을 하였다.
是故雖埋光雪林,聲迹不到人間,往往有終老至死,脫然獨得,如鳥出籠,了然明證,萬世不移。
그러므로 빛을 눈 덮인 숲에 묻어 이름과 자취가 세상에 이르지 않았어도, 늙어 죽기에 이르도록 지내다가 훌쩍 홀로 얻은 이들이 이따금 있었다. 새가 새장을 벗어나듯 또렷이 밝게 깨달아, 만세토록 바뀌지 않았다.
전기(傳記)에 실린 이들로 말하면, 태산에 난 터럭 끝의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백천만 가운데 아주 적은 몫일 뿐이다.
其爲高隱深遁,流轉溝壑,長往不顧,豈有涯量哉?
높이 숨고 깊이 파묻혀 산골짜기를 떠돌며, 아주 떠나가 돌아보지 않은 이들이야 어찌 그 끝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쉽게 읽기옛날 설산동자는 반 게송을 얻으려고 제 온몸을 던졌다. 이조 혜가 대사는 팔을 끊고 눈 속에 섰다. 눈이 넓적다리까지 차오르도록 서서 한 구절을 구하였다. 육조 혜능, 곧 노로는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었다. 설봉, 곧 상골은 밥 짓는 반두 소임을 맡아 물통과 국자를 메고 다녔다. 암두와 함께 지내며 채마밭을 가꾸었다. 흠산은 해진 옷을 기웠다. 동산 선사를 아홉 번 찾고 투자 선사를 세 번 찾아간 것도,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파고들기 위함이었다. 이 밖에도 부지런히 힘을 다한 이들이 있었다. 눈 위에 눕고 서리 속에 잠자며, 고되게 닦고 거친 밥을 먹은 이들은 이루 다 셀 수 없다. 그들이 바란 바를 살펴보라. 애초에 이름을 얻거나 잇속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나고 죽는 큰일을 마음에 품었다. 부처와 조사의 씨앗을 이어 크게 키우려고, 온갖 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제 빛을 눈 덮인 숲에 묻고, 이름도 자취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늙어 죽도록 닦다가, 어느 날 홀로 훌쩍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새가 새장을 벗어나듯 환하게 깨쳐, 만세토록 그 깨달음이 변치 않았다. 전기에 적힌 이들은 태산에 난 터럭 끝의 십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백천만 사람 가운데 아주 적은 몫일 뿐이다. 높이 숨고 깊이 파묻혀 산골짜기를 떠돌며, 아주 떠나가 돌아보지 않은 이들이야 어찌 그 수를 셀 수 있겠는가?
풀이 6
洞山良价 동산양개'九上洞山,三到投子'는 雪峰義存이 巖頭·欽山과 행각하며 洞山良价를 아홉 번, 投子大同을 세 번 찾은 일이다(『碧巖錄』 제5칙 평창 '凡三到投子九上洞山').
巖頭事園 암두사원벽암록(碧巖錄) 제51칙(雪峰) 평창(評唱)에서 원오가 암두(巖頭) '말후구(末後句)' 화두를 상세히 착어한다. 본편 '경수지유말후구시득(更須知有末後句始得)'과 병렬한다.
末後句 말후구벽암록(碧巖錄) 제51칙(雪峰) 評唱에서 원오가 巖頭 '末後句' 화두를 상세히 착어한다. 본편 '更須知有末後句始得'과 병렬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同巖頭、事園、欽山補紐'는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事園의 주어를 雪峰으로 보아 '암두와 함께 채마밭을 가꾼' 것으로 읽을 수도 있고, 巖頭로 보아 '원두(園頭) 소임을 본 암두'로 읽을 수도 있다. 欽山補紐의 '인물+소임' 병렬 구조는 巖頭事園(암두=원두) 독해를 지지하지만, 雪峰·巖頭·欽山이 함께 행각한 삼인이었던 정황은 同巖頭(암두와 함께)로 묶어 雪峰의 소임으로 읽는 독해도 뒷받침한다. 어느 한쪽을 확정할 결정적 전거(燈錄·語錄)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太山毫芒十一,於百千萬特少分爾
책 과의역(경미). 十一은 십분의 일이라는 극소의 비유이다. 출판본은 '한 털 끝이나'로 十一 수치를 흘려 지극히 작음만 전한다. 터럭 끝의 십분의 일로 옮긴 내 번역이 원의를 더 정밀히 보존한다.
43.2
한문是故諸佛垂世,祖師西來,大意全機,超情識,越詮表,逾影迹,出聖量,豈細事耶?
번역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고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큰 뜻과 온전한 기틀(全機)은 분별하는 마음(情識)을 뛰어넘는다. 말과 드러냄(詮表)을 넘어선다. 그림자와 자취를 벗어나고, 성인의 헤아림마저 벗어난다.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唯大有志之士,宿薰種勝,根力不羣,然後能堪此任。
오직 크게 뜻을 둔 사람이라야 한다. 지난 세상에 익힌 것(宿薰)으로 뛰어난 씨앗을 심었고, 근기와 힘이 남달라야 한다. 그런 뒤에야 이 소임을 감당할 수 있다.
雖頭目髓腦,不自愛惜,況小小艱勤哉?
머리와 눈, 골수와 뇌마저 스스로 아끼지 않거늘, 하물며 자잘한 어려움과 수고이겠는가?
쉽게 읽기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고,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그 큰 뜻과 온전한 작용은 남다르다. 이 뜻은 분별하는 마음을 뛰어넘는다. 말과 글의 규정도 넘어선다. 그림자와 자취에서도 벗어난다. 성인의 헤아림마저 벗어난다. 이것이 어찌 사소한 일이겠는가? 오직 크게 뜻을 세운 사람이라야 이 소임을 감당한다. 곧 지난 세상에서 쌓은 익힘으로 뛰어난 씨앗을 심고, 그릇과 힘이 남다른 사람이다. 이런 이는 제 머리와 눈, 골수와 뇌마저 아끼지 않았다. 하물며 자잘한 어려움과 수고쯤이야 무엇이 아깝겠는가?
43.3
한문往時大達之士,得旨之後,深關牢藏,起順違方便,故意作害,現怒罵鞭叱,百種千端,要試驗學人。
번역지난날 크게 통달한 이는 종지(宗旨)를 얻은 뒤에도 깊이 걸어 잠그고 굳게 감추었다.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는 방편을 일으켜, 짐짓 해코지하듯 하였다. 성내어 꾸짖고 매질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배우는 이를 시험하려 하였다.
待其經苦楚不動心,乃與一拶一挨,垂片言纖機,如大飢困人得食,如醍醐甘露灌注,珍重忻快,拳拳不失,成就大法器,踐履向上人道徑,
그가 갖은 고초를 겪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다렸다. 그런 뒤에야 한 번 다그치고 한 번 밀치며(一拶一挨), 한마디 말과 가는 기틀을 내려 주었다. 크게 굶주려 지친 사람이 밥을 얻은 것 같고, 제호(醍醐)와 감로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며, 간절히 지녀 잃지 않았다. 큰 법의 그릇(法器)을 이루고, 위로 나아가는 사람(向上人)의 길을 밟아 갔다.
猶須爛骨董地熟,始可委付。如讓祖之於曹溪八年,始道得箇說似一物卽不中稜。
그래도 푹 무르녹도록 익어야 비로소 맡길 수 있었다. 회양(懷讓) 조사가 조계(曹溪)에게서 여덟 해 만에 비로소 “한 물건이라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師至雪嶺十五載,坐破七箇蒲團,靈雲三十年,涌泉四十祀,德山、臨濟皆依師門,歲月甚久。
혜릉(慧稜) 선사는 설령(雪嶺)에 이르러 열다섯 해 동안 방석 일곱 개를 앉아서 해어지게 하였다. 영운(靈雲)은 서른 해, 용천(涌泉)은 마흔 해였다. 덕산(德山)과 임제(臨濟)도 모두 스승의 문하에 의지한 세월이 매우 오래였다.
蓋此道迺千聖不傳之妙,豈可以輕心慢心而趣入哉?
무릇 이 도는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 묘함이다. 어찌 가벼운 마음, 게으른 마음으로 나아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永嘉云:粉骨碎身未足酬,一句了然超百億。
영가(永嘉)가 말했다. “뼈를 갈고 몸을 부수어도 갚기에 모자라니, 한 구절을 또렷이 깨치면 백억을 뛰어넘는다.”
쉽게 읽기지난날 크게 통달한 이는 종지를 얻은 뒤에도, 문을 깊이 걸어 잠그고 제 살림을 굳게 감추었다. 그러고는 때로 고분고분 받아 주고 때로 매몰차게 거스르며, 짐짓 해코지하듯 방편을 부렸다. 성내어 꾸짖기도 하고 매질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배우는 이를 시험하였다. 그 사람이 갖은 고초를 겪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다렸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한 번 다그치고 한 번 밀치며, 한마디 말과 자그마한 실마리를 내려 주었다. 이는 크게 굶주려 지친 사람이 밥을 얻은 것과 같았다. 또 제호와 감로가 쏟아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배우는 이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며, 간절히 지녀 잃지 않았다. 그렇게 큰 그릇을 이루고, 곧장 위로 나아가는 사람의 길을 밟아 나아갔다. 그럼에도 뼛속까지 무르익어 완전히 익은 뒤라야, 비로소 법을 맡길 수 있었다. 이는 회양 조사가 조계 문하에서 여덟 해 만에야, 비로소 “한 물건이라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라는 한마디를 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혜릉 선사는 설령, 곧 설봉에서 열다섯 해 동안 방석 일곱 개를 앉아서 해어지게 하였다. 영운은 삼십 년, 용천은 사십 년을 보냈다. 덕산과 임제도 모두 스승의 문하에서 지낸 세월이 매우 오래였다. 무릇 이 도는 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 묘리이다. 어찌 가벼운 마음, 게으른 마음으로 나아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영가가 이르기를, “뼈를 갈고 몸을 부수어도 그 은혜를 갚기에 부족하나, 한 구절을 분명히 깨치면 백억을 뛰어넘는다”라고 하였다.
43.4
한문霜華諸道者在大溈執務,一日庫前自篩米大圓過,拾遺一粒米,謂云:道者勿輕此粒,百千粒從此粒生。
번역상화(霜華)의 경제(慶諸) 도자가 대위산(大溈山)에서 소임을 보고 있었다. 하루는 창고 앞에서 몸소 쌀을 까부르는데, 대원(大圓) 화상이 지나가다가 떨어진 쌀 한 톨을 주워 들고 말했다. “도자여, 이 한 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백천 톨이 이 한 톨에서 나오느니라.”
諸迺返徵:百千粒既從此粒生,和尚且道這一粒從甚處生?
경제가 도리어 되물었다. “백천 톨이 이미 이 한 톨에서 난다면, 화상께서는 말씀해 보십시오. 이 한 톨은 어디서 납니까?”
大圓拂袖而去。晚小參,謂眾云:大眾!米裏有虫。
대원은 소매를 떨치고 가 버렸다. 저녁 소참(小參)에서 대중에게 말했다. “대중이여, 쌀 속에 벌레가 있느니라.”
趙州到桐城,路逢投子挈一油瓶,遂云:久嚮投子,只見賣油翁。
조주(趙州)가 동성(桐城)에 이르러, 길에서 투자가 기름병 하나를 들고 가는 것을 만났다. 이내 말했다. “오래도록 투자를 우러러 왔는데, 기름 파는 늙은이만 보이는구나.”
投子云:公且不識投子。州云:如何是投子?
투자가 말했다. “그대는 아직 투자를 알지 못하는구나.” 조주가 물었다. “무엇이 투자입니까?”
投子提起油瓶云:油油米裏虫,何似油裏虫?
투자가 기름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기름이오, 기름이오.” 쌀 속의 벌레가 어찌 기름 속의 벌레만 하겠는가?
若參得投子,卽見石霜。何故?豈不見道眾裏有人?
투자를 참구하여 얻으면 곧 석상(石霜)을 볼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대중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衲僧家第一須得具金剛眼,第二須得金剛寶劒,第三須得柱杖子,第四須得衲僧巴鼻,直饒一一透得,更須知有末後句始得。
납승(衲僧)이라면 첫째로 금강의 눈(金剛眼)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금강보검(金剛寶劍)을 얻어야 한다. 셋째로 주장자를 얻어야 한다. 넷째로 납승의 콧구멍(巴鼻)을 얻어야 한다. 설령 하나하나 다 꿰뚫었다 하더라도, 다시 마지막 한마디(末後句)가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된다.
쉽게 읽기석상산의 경제 도자가 대위산에서 소임을 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창고 앞에서 쌀을 까부르고 있었다.그때 대원, 곧 위산 화상이 지나가다가, 떨어진 쌀 한 톨을 주워 들고 말하였다. “도자여, 이 한 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백천 톨이 이 한 톨에서 나오느니라.”경제가 도리어 되물었다. “백천 톨이 이미 이 한 톨에서 난다면, 화상께서는 말씀해 보십시오. 이 한 톨은 어디서 납니까?” 대원은 소매를 떨치고 가 버렸다. 그날 저녁 소참에서 대중에게 일렀다. “대중이여, 쌀 속에 벌레가 있느니라.” 조주가 동성에 이르러, 길에서 투자가 기름병 하나를 들고 가는 것을 만났다. 이내 말하였다. “오래도록 투자를 흠모해 왔는데, 기름 파는 늙은이만 보이는구나.” 투자가 “그대는 아직 투자를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였다. 조주가 “무엇이 투자입니까?”라고 물었다. 투자가 기름병을 들어 올리며 “기름이오, 기름이오”라고 하였다. 쌀 속의 벌레가 어찌 기름 속의 벌레만 하겠는가? 투자를 참구하여 얻으면, 곧 석상을 보게 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대중 가운데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납승이라면 이러하다. 첫째로 금강의 눈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금강보검을 얻어야 한다. 셋째로 주장자를 얻어야 한다. 넷째로 납승의 콧구멍, 곧 요체를 얻어야 한다. 설령 이것들을 하나하나 다 꿰뚫었다 하더라도, 다시 말후구가 있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된다.
풀이 14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5 投子大同章: 趙州가 桐城縣 길에서 投子를 만나, 기름병을 든 그에게 '久嚮投子,到來只見箇賣油翁'이라 하자 '汝只見賣油翁,且不識投子'라 하고 '油油'라 답했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石霜慶諸가 大溈山에서 米頭를 맡았을 때 溈山(靈祐, 諡 大圓禪師)과 나눈 문답이다(『景德傳燈錄』 권15 石霜慶諸章 '百千粒從遮一粒生…大眾米裏有蟲'). 傳燈錄에서는 溈山이 '呵呵笑歸方丈'했다고 한다.
小參 소참溈山과 石霜慶諸의 쌀 한 톨 문답은 『景德傳燈錄』 권15·『聯燈會要』 권20에 실렸고, 거기서는 '晚後上堂'·'至晚上堂'에서 '大眾米裏有蟲'이라 했다. 心要는 이를 '晚小參'으로 적었다.
石霜慶諸 석상경제'霜華諸道者'의 霜華는 石霜山 — 慶諸가 머물며 '霜華山'이라 불렀다(『禪林僧寶傳』 권5). 慶諸가 大溈山에서 米頭를 맡았을 때의 일이고(『景德傳燈錄』 권15), 뒤의 '若參得投子,卽見石霜'의 石霜도 이 쌀 한 톨 문답의 慶諸다.
趙州投子 조주투자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조주종심장(趙州從諗章)·투자대동장(投子大同章)에 조주(趙州)가 桐城서 투자(投子)를 만나 '지견매유옹(只見賣油翁)'/투자(投子) '유(油)!유(油)!' 하는 인연이 실려 있다. 본편 조주투자(趙州投子) 삽화의 출전이다.
米裏有虫 미리유충전등록(傳燈錄) 석상경제장(石霜慶諸章)·위산령우장(溈山靈祐章) 등 등사(燈史)에 위산(溈山) 미두(米頭) 경제(慶諸)의 '백천립종저일립생(百千粒從這一粒生)'·'미리유충(米裏有虫)' 고사가 실려 있다. 본편 삽화의 출전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一日庫前自篩米,大圓過,拾遺一粒米
책 오역(경미, 주체 오귀속). 遺(흘려진 쌀)의 주체는 石霜의 키질이고 大圓은 지나다 그 한 톨을 주운 것이다. 출판본 '대원스님이 떨어뜨린 쌀'은 흘린 주체를 大圓으로 잘못 돌렸다. 떨어진 쌀 한 톨을 주웠다고 옮긴 내 번역이 타당하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挈一油瓶…只見賣油翁…投子提起油瓶云:油油
책 오역. 출판본은 油瓶·賣油翁·油·油裏虫을 '인절미' 계열로 일관되게 옮겼으나, 저본은 油瓶(기름병)이고 이 인연은 投子大同의 賣油 고사이며 趙州가 만난 것도 油瓶이다. 기름·기름병으로 옮긴 내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豈不見道眾裏有人?衲僧家第一須得…
책 오역·오분절. 眾裏有人은 米裏有虫과 짝하는 상투구로 '豈不見道「眾裏有人」'으로 인용되어야 하고 衲僧家…는 별개 문장이다. 출판본은 '대중 속에 있는 사람아'라는 호격으로 붙여 뒤 四事까지 한 인용문으로 묶었다. 인용과 별개 문장을 나눈 내 번역이 옳다.
교감 · 油油米裏虫,何似油裏虫표점 '油油米裏虫,何似油裏虫' — '油油。米裏虫,何似油裏虫?'로 끊어 읽는다. 투자의 답은 '油油'뿐이고(『景德傳燈錄』 권15 投子大同章 T51n2076_p0319a12 '師曰。油油' · 『五燈會元』 권5 X80n1565_p0122a23 '提起油缾曰。油。油'), 뒤는 앞의 大圓 '米裏有虫'과 맞대어 원오가 평한 말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7
  1. 雪山童子 설산동자

    석가모니의 전생이다. 열반경(涅槃經)의 설산 수행자로, 나찰이 읊은 반 게송(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의 나머지 반(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을 얻고자 몸을 던졌다. 반게사전구(半偈捨全軀)의 전거이다.

  2. 老盧負舂 노로부용

    노로(老盧)는 육조(六祖) 혜능(慧能)(속성 노(盧))이다. 황매(黃梅) 오조(五祖) 홍인(弘忍) 문하에서 여덟 달 방아 찧는 노역(負舂)을 하였다.

  3. 巖頭事園 암두사원

    암두전활(巖頭全豁)은 덕산선감(德山宣鑑) 법사이자 설봉(雪峰)·흠산(欽山)과 도반이다. 사원(事園)은 채마밭(園頭) 소임을 산 것이다.

  4. 洞山良价 동산양개

    당나라 선승(807~869)으로,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을 이었고 조동종(曹洞宗)을 연 사람으로 받든다. 균주(筠州) 동산에서 크게 가르쳐 동산이라 불린다. 죽은 뒤 오본대사(悟本大師)라는 시호를 받아 오본이라고도 부른다. 조산(曹山)이 그의 제자다. 운문의 제자 동산수초(洞山守初)와는 다른 사람이다.

  5. 泰山毫芒 태산호망

    태산(太山)은 태산(泰山)이다. 태산에 난 터럭 끝—지극히 작은 부분의 비유이다.

  6. 醍醐甘露 제호감로

    제호(醍醐)(최상의 유제품)와 감로(甘露)로, 최상의 법미(法味) 비유이다.

  7. 石霜慶諸 석상경제

    당나라 선승(807~888)으로, 도오원지(道吾圓智)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석상산에 20년 머무는 동안 대중이 눕지 않고 앉은 채 지내 '고목중(枯木衆)'이라 불렸다. '쉬고 또 쉬라(休去歇去)'로 시작하는 이른바 석상칠거가 전한다. 송나라의 석상초원, 곧 자명(慈明)과는 다른 사람이다.

  8. 溈山靈祐 위산영우

    위산영우(溈山靈祐, 771~853)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백장(百丈) 스님의 법을 이었다. 담주(潭州) 위산에 머물며 제자 앙산(仰山)과 함께 위앙종을 열었다. 시호는 대원(大圓) 선사이다.

  9. 米裏有虫 미리유충

    위산(溈山)이 경제(慶諸)의 되물음에 소매 떨치고 물러난 뒤 소참(小參)에서 던진 착어이다. '쌀 속에 벌레가 있다'—대중 가운데 안목 밝은 자가 있다는 뜻과 통한다.

  10. 眾裏有人 중리유인

    '대중 가운데 안목 갖춘 사람이 있다'로, 미리유충(米裏有虫)과 짝하는 상투어이다.

  11. 衲僧 납승

    누더기(衲) 옷을 입은 선승이다. 참선 수행자를 가리키는 선가의 상투어다.

  12. 金剛眼睛 금강안정

    금강처럼 단단하고 밝은 눈동자, 곧 무엇에도 흐려지지 않고 참과 거짓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선어록에서 눈 밝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눈으로 자주 말한다.

  13. 金剛寶劒 금강보검

    어떤 번뇌·분별도 끊어 버리는 금강의 검이다. 반야(般若)의 지혜, 곧 일체견(一切見)을 베어 없애는 자성의 작용을 비유한다.

  14. 拄杖 주장

    선사가 짚는 지팡이, 곧 주장자(拄杖子)다. 상당 때 이것을 들어 보이거나 바닥·법상을 내리쳐 법을 드러내므로, 선사의 손에 든 대표적인 법구(法具)가 되었다. 주장자 자체가 문답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15. 巴鼻 파비

    붙잡을 데, 곧 요긴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이다. 소의 코를 꿰어 끌듯 꽉 쥘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왔다. '납승의 파비'는 수행자가 꼭 붙들어야 할 핵심을 가리킨다.

  16. 末後句 말후구

    맨 마지막 한마디, 곧 말후구(末後句)다. 암두(巖頭)가 ‘덕산(德山) 노인도 말후구는 모른다’고 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말과 분별이 다 끊어진 끝자리의 소식을 가리킨다.

  17.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18. 向上人 향상인

    향상(向上)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취나 부처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고, 그것마저 넘어선 이를 이른다.

  19. 小參 소참

    방장이 침당이나 법당에서, 흔히 저녁에 대중을 모아 베푸는 설법이다. 법당에 올라 정식으로 하는 상당(上堂)과 짝이 되는 말이다. 집안의 가르침이라 하여 '가훈(家訓)'이라고도 했다.

  20. 末後一句 말후일구

    맨 마지막 한마디, 곧 말후구(末後句)다. 암두(巖頭)가 ‘덕산(德山) 노인도 말후구는 모른다’고 한 일화로 널리 알려졌다. 말과 분별이 다 끊어진 끝자리의 소식을 가리킨다.

  21. 示詔副寺 시조부사

    원오가 부사(副寺) 소임을 맡은 조(詔)라는 승려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부사는 절의 돈과 곡식이 드나드는 것을 맡아 살림을 돕는 소임이다. 조(詔)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2. 可祖斷臂 가조단비

    이조(二祖) 혜가(慧可)이다. 소림(少林)에서 달마(達磨)에게 법을 구하며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은 입설단비(立雪斷臂) 고사이다. 沒胯는 눈이 넓적다리(胯)까지 찬 것이다.

  23. 象骨飯頭 상골반두

    상골(象骨)은 설봉의존(雪峰義存)이다. 주석처 설봉산(雪峰山)의 별칭이 상골산(象骨山)이라 이리 부른다. 여러 총림에서 반두(飯頭)(공양주)로 통표(桶杓)(물통·국자)을 메고 고행하였다.

  24. 欽山補紐 흠산보뉴

    흠산문수(欽山文邃)는 동산양개(洞山良价) 법사이다. 젊어 설봉(雪峰)·암두(巖頭)와 함께 행각하며 옷을 꿰맨(補紐) 일이다.

  25. 九上洞山三到投子 구상동산삼도투자

    설봉의존(雪峰義存)이 자신의 행각을 술회한 말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를 아홉 번, 투자대동(投子大同)을 세 번 찾아 참문하였다는 것이다.

  26. 讓祖曹溪八年 양조조계팔년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조계(曹溪) 육조(六祖) 문하에서 8년을 지낸 뒤 오도한 인연이다.

  27. 說似一物卽不中 설사일물즉불중

    육조(六祖)가 '십마물임마래(什麼物恁麼來)' 물음에 회양(懷讓)이 한 답이다. 일물(一物)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자성을 가리킨다.

  28. 稜師坐破七箇蒲團 능사좌파칠개포단

    능사(稜師)는 장경혜능(長慶慧稜), 설봉(雪峰) 법사이다. 설봉(雪峰)(설령(雪嶺))에서 십수 년 참구하며 방석 일곱 개를 앉아 해뜨린 뒤 捲簾(주렴 걷음)에서 대오한 고사이다. 원문 능(稜)은 앞 구(句)가 아니라 뒤 사(師)에 붙어 능사(稜師)(혜능(慧稜))이다.

  29. 靈雲三十年 영운삼십년

    영운지근(靈雲志勤), 위산령우(溈山靈祐) 법사이다. 30년 참구 끝에 복사꽃(桃花)을 보고 오도하였다.

  30. 涌泉四十祀 용천사십사

    涌泉景欣, 설봉의존(雪峰義存) 법사이다. 40년의 오랜 참학이다. 사(祀)는 해(年)이다.

  31. 德山臨濟依師門 덕산임제의사문

    덕산선감(德山宣鑑)은 용담숭신(龍潭崇信),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황벽희운(黃檗希運) 문하에서 오래 의지한 것이다.

  32. 永嘉云 영가운

    영가현각(永嘉玄覺), 육조(六祖) 법사이다. 인용구 '粉骨碎身未足酬 일구료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다.

  33. 趙州投子 조주투자

    조주종심(趙州從諗)이 桐城 길에서 투자대동(投子大同)을 만난 인연이다. '久嚮投子 지견매유옹(只見賣油翁)'의 떠봄에 투자(投子)가 기름병을 들어 '유(油)!유(油)!'로 응하였다.

  34. 全機 전기

    정량(情量)·언설을 벗어난 불조(佛祖)의 온전한 작용(大機大用)이다.

  35. 情識·詮表·影迹·聖量 정식·전표·영적·성량

    정식(情識)(분별의식)·전표(詮表)(언어개념의 규정)·영적(影迹)(그림자·자취)·성량(聖量)(성인의 헤아림)으로, 모두 초월해야 할 대상이다.

  36. 一拶一挨 일찰일애

    찰(拶)(다그침)과 애(挨)(밀침)이다. 학인을 몰아세워 시험·접화하는 수단이다.

  37. 蒲團 포단

    좌선용 부들 방석이다.

이 편의 풀이 1건

교감 · 長慶慧稜'說似一物卽不中稜。師至雪嶺' — 원문 구두(CBETA)는 '稜'을 앞 구에 붙였으나, 稜은 뒤의 '師'와 함께 '稜師'(長慶慧稜)이다 → '卽不中。稜師至雪嶺十五載'로 끊어 읽는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