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편
유서기(裕書記)에게 주는 글
示裕書記(住杭州靈隱智禪師)
풀이 1
양립가능. 책은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만듦'으로, 자체역은 '골동이나 두드리게 만들고'로 옮겼다. '打骨董'은 잡동사니를 뒤섞어 다룸/골동을 두드림의 상투어로 '打'를 동사 접두(다루다)로도 타격(두드리다)으로도 읽을 수 있어 결정적 전거가 없이 양쪽 다 성립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풀이 3
양립가능. 책은 '한마디 한마디가 낚시밥'으로 옮겨 '意在'를 생략하고 鉤頭를 미끼로 풀었고, 자체역은 '뜻이 낚싯바늘 끝(鉤頭)에 있었다'로 '意在'를 살려 더 축자적이다. 둘 다 낚시로 학인을 낚아채는 방편의 비유를 담아 성립하고, 책 독해를 결정적으로 배척할 전거(표준 구문·사전)가 분명치 않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풀이 11
풀이 1
풀이 2
이 편의 낱말 29
- 裕書記 유서기
불지단유(佛智端裕)(1085–1150)이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법사(法嗣)로 원오(圜悟) 문하에서 서기(書記) 소임을 보았다. 뒤에 항주 영은사(靈隱寺)에 주석하고 사호가 불지(佛智)였으므로 협주의 '지(智)'는 별인이 아니라 단유(端裕)의 사호 '불지(佛智)'를 줄인 것, 곧 수신자 본인이다(추정 아님, 등사(燈史) 일치).
-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 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장 아끼고 기대는 것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홀로 서게 하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를 이른다.
- 黃龍慧南 황룡혜남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자명(慈明) 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운문종 늑담회징의 문하에서 이름을 얻었으나, 자명을 만나 크게 깨쳤다. 뒤에 황룡산에 머물며 '황룡파'라는 한 갈래를 열었다.
- 露布 노포
본래 봉하지 않고 널리 내걸어 알리던 글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내 늘어놓은 말과 설명, 틀에 박힌 문자놀음을 낮추어 이른다. 노포(路布)라고도 적는다.
- 守株待兔 수주대토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것을 한 번 본 농부가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만 지켰다. 한 번 들어맞은 방법에 매달려 변통할 줄 모름을 비유한다.
- 金剛王寶劍 금강왕보검
금강처럼 단단한 왕의 보검이라는 말이다. 모든 알음알이와 망상을 한칼에 끊는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다. 임제(臨濟) 스님이 할(喝)의 네 가지 쓰임을 말하며 첫째로 들었다.
- 俱胝指 구지지
구지화상(俱胝和尚)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이다.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 하나를 세운다(벽암록(碧巖錄) 제19칙, 무문관(無門關) 제3칙).
- 雪峰輥毬 설봉곤구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가 나무 공을 굴려 보인 일이다. 제자 현사(玄沙)가 ‘이제 큰 작용을 쓰겠다’고 하자, 설봉은 나무 공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려 냈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으로 받았다. 말 없이 몸짓으로 주고받은 큰 작용으로 일컬어진다.
- 禾山打鼓 화산타고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의 ‘북 칠 줄 안다’는 답이다. 한 스님이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묻자, 화산은 네 번 모두 ‘북 칠 줄 안다(解打鼓)’고만 답했다. 그래서 ‘화산의 네 번 북 치기’라고도 부른다.
- 趙州喫茶 조주끽다
조주(趙州)의 '차나 마시게(喫茶去)' 공안이다. 새로 온 스님에게 여기 와 본 적이 있느냐 묻고, 왔다 해도 안 왔다 해도 '차나 마시게' 했다. 원주가 그 까닭을 묻자 원주를 불러 또 '차나 마시게' 했다. 따지는 마음을 놓고 일상에서 바로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 楊岐栗棘蓬·
金剛圈 양기율극봉·금강권 양기방회(楊岐方會) 계열의 상투 관문어다. '금강권을 뚫고 밤송이를 삼킨다' — 의리로 뚫을 수 없는 투관(透關)의 비유다. 원오(圜悟)의 사공(師公) 오조법연계(五祖法演系)에서 애용하였다.
- 玄沙師備 현사사비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복주(福州) 사람이다. 젊어서 고기잡이를 하다 서른에 출가했고, 고행을 엄하게 지켜 '비두타(備頭陀)'라 불렸다.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그 계통에서 법안종이 나왔다.
- 半前落後 반전락후
앞에도 못 미치고 뒤에도 처졌다는 말이다. 깨친 듯하면서도 철저하지 못해 어중간하게 머문 공부를 이른다. 원오는 이런 이를 가장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다.
- 慈明楚圓 자명초원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86~1039)으로, 석상초원(石霜楚圓)이라고도 한다. 분양선소(汾陽善昭)의 법을 이었고, 그 문하에서 양기방회(楊岐方會)와 황룡혜남(黃龍慧南)이 나와 임제종의 두 갈래를 이루었다.
- 四喝 사할
임제(臨濟)가 쓴 네 가지 고함(할)이다. 보검처럼 끊는 할, 웅크린 사자처럼 위엄을 떨치는 할, 장대와 풀 그림자로 떠보듯 상대를 살피는 할, 할로 쓰지 않는 할이다.
- 靈雲志勤 영운지근
영운지근(靈雲志勤)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복주(福州) 장계(長溪) 사람이다. 위산(溈山) 회하에서 복사꽃을 보고 깨쳐 '삼십 년 동안 칼을 찾던 나그네'로 시작하는 게송을 지었고, 위산이 그 깨침을 인정하였다. 복주 영운(靈雲)에 머물러 '영운'이라 불린다.
- 臨濟金剛王寶劍 임제금강왕보검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사할(四喝) 중 '유시일할여금강왕보검(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이다(臨濟錄).
- 德山末後句 덕산말후구
덕산선감(德山宣鑒) 관련이다. 암두전활(巖頭全奯)이 '덕산로한미회말후구(德山老漢未會末後句)'라 한 데서 유래한 말후구(末後句)다(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전등록(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 秘魔杈 비마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화상(秘魔巖和尚)이다. 나무 집게(목차(木叉)/차(杈))로 납자의 목을 눌러 '도득야차하사(道得也叉下死) 도불득야차하사(道不得也叉下死)'로 다그친 기연이다(景德傳燈錄).
- 那伽在定 나가재정
'나가상재정(那伽常在定) 무유불정시(無有不定時)'이다(대지도론(大智度論) 등). 나가(那伽)=용(龍)(또는 상(象))으로, 항상 삼매에 있다. 동정(動靜)에 두루 정(定)을 잃지 않는 대정력의 비유다.
- 鑪鞴鉗鎚 노비겸추
풀무·집게·망치다. 종사가 학인을 단련하는 방편(鍛冶) 도구의 상투 비유다.
- 依草附木 의초부목
의지처 없는 정혼(精魂)이 초목에 붙듯, 본분을 잃고 언구·경계에 빌붙음이다.
- 拔楔抽釘 발설추정
못과 쐐기를 뽑음이다 — 집착·막힘을 풀어줌이다.
- 認指爲月 인지위월
능엄경(楞嚴經)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오인함 — 방편을 실체로 착각함이다.
- 見與佛齊猶有佛地障在 견여불제유유불지장재
'견처가 부처와 나란해도 불지(佛地)라는 장애가 남음'이다. '견여사제감사반덕(見與師齊減師半德), 견과어사방감전수(見過於師方堪傳授)'(백장(百丈)·위산(潙山)계 전수관)의 취지를 불지장(佛地障)으로 밀고 나간 표현이다.
- 靈隱智禪師 영은지선사
佛智端裕(1085–1150)이다. 圜悟克勤의 법사(法嗣)로 圜悟 문하에서 書記 소임을 보았다. 뒤에 항주 靈隱寺에 주석하고 사호가 佛智였으므로 협주의 '智'는 별인이 아니라 端裕의 사호 '佛智'를 줄인 것, 곧 수신자 본인이다(추정 아님, 燈史 일치).
- 驅耕夫之牛 구경부지우
밭가는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음이다. 학인의 집착을 남김없이 앗아가는 준열한 탈(奪)의 작용이다. 臨濟系·雲門계 상투구로 圜悟가 즐겨 썼다.
- 雲峰文悅 운봉문열
송나라 임제종 선승(997~1062)으로, 대우수지(大愚守芝)의 법을 이었다. 스승을 따라 홍주 서산의 취암사에 있었고 뒤에 그곳에서 법을 펴 취암이라고도 불리며, 만년에는 남악 운봉사에 머물렀다. 황룡혜남(黃龍慧南)에게 자명(慈明)을 찾아가라고 권한 사람이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