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편

유서기(裕書記)에게 주는 글

示裕書記(住杭州靈隱智禪師)

4.1
한문示裕書記(住杭州靈隱智禪師)
번역〔협주: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에 머문 지(智) 선사. 곧 이 글을 받은 유서기(裕書記)의 뒷날 이름입니다. ‘지’는 유서기가 임금에게서 받은 호 ‘불지(佛智, 佛智端裕)’를 줄인 것입니다. 판본에 따라 ‘불지 선사(佛智禪師)’로도 적습니다.〕
쉽게 읽기제목에 딸린 작은 글씨: 항주 영은사에 머문 지(智) 선사 — 곧 이 글을 받은 유서기의 뒷날 이름입니다. '지'는 임금이 유서기에게 내린 호 '불지'를 줄인 것으로, 책에 따라 '불지 선사'로도 적습니다.
4.2
한문腳蹋實地,到安穩處,時中無虗棄底工夫,綿綿不漏絲毫,湛寂凝然,佛祖莫知,魔外無捉摸,是自住無所住大解脫。雖歷無窮劫,亦只如如地,況復諸緣耶?
번역발로 참된 땅(實地)을 딛고 편안한 곳에 이르면, 하루 내내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 끊임없이 이어져 실오라기만큼도 새지 않는다. 맑고 고요하게 엉겨 있어(湛寂凝然), 부처와 조사도 알지 못하고 마군과 외도도 붙잡거나 더듬지 못한다. 이것이 스스로 머묾 없는 데 머무는(無所住) 큰 해탈(大解脫)이다. 끝없는 겁(劫)을 지나도 그저 한결같을(如如) 뿐인데, 하물며 온갖 인연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발로 진짜 땅을 딛고 안온한 자리에 이르면, 하루 온종일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어, 실오라기 하나 새지 않고 면면히 이어진다. 맑고 고요히 한데 엉겨, 부처도 조사도 그 속을 알지 못하고, 마군도 외도도 붙잡거나 더듬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머무는 큰 해탈이다. 끝없는 세월이 흘러도 그저 한결같을 뿐인데, 하물며 그 밖의 온갖 인연이야 무슨 걸림이 되겠는가.
4.3
한문安住是中,方可建立,與人拔楔抽釘,亦只令渠無住著去,此謂之大事因緣。
번역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야, 비로소 법을 세워(建立) 남의 쐐기를 뽑고 못을 빼 줄(拔楔抽釘) 수 있다. 그것도 다만 그가 어디에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게 할 뿐이다. 이것을 큰일의 인연(大事因緣)이라 한다.
如來有密語,迦葉不覆藏。迦葉不覆藏,乃如來真密語也。
여래(如來)께 은밀한 말씀(密語)이 있었으나, 가섭(迦葉)은 감추지 않았다. 가섭이 감추지 않은 그것이 곧 여래의 참된 은밀한 말씀이다.
當不覆藏卽密,當密卽不覆藏,此豈可與繫情量、立得失、存窠臼作解?會者,舉也。
감추지 않는 바로 그것이 은밀함이요, 은밀한 바로 그것이 감추지 않음이다. 이것을 어찌 헤아림(情量)에 매이고, 얻고 잃음을 세우고, 제 소굴(窠臼)을 두고서 알음알이를 짓는 사람과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要須透脫到實證之地,向出格超宗頂𩕳上領始得。
반드시 꿰뚫어 벗어나 몸소 증득한(實證)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틀을 벗어나고 종지를 뛰어넘은(出格超宗) 맨 정수리 위에서 알아차려야 비로소 된다.
既已領略,應當將護遇上根大器,方可印授耶?
이미 알아차렸으면, 마땅히 잘 지켜 간직해야 한다. 근기가 뛰어난 큰 그릇(上根大器)을 만나야, 비로소 인가하여 건네줄 수 있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이 자리에 편안히 머물러야 비로소 한 문중을 세워, 남을 위해 쐐기를 뽑고 못을 빼 줄 수 있다. 그것도 결국은 그 사람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을 큰일의 인연이라 한다. 여래께 은밀한 말씀, 곧 밀어가 있었으나, 가섭은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감추지 않은 그것이 바로 여래의 참된 밀어다. 감추지 않음이 곧 은밀함이요, 은밀함이 곧 감추지 않음이다. 이것을 어찌, 머리로 따지고 얻고 잃음을 가르며 제 소굴을 파고 앉아 알음알이나 짓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훤히 벗어나 몸소 사무쳐 증득한 자리에 이르러, 격식을 벗고 종지를 뛰어넘은 맨 정수리 위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이미 알아차렸거든, 잘 지켜 보호하다가, 근기가 뛰어난 큰 그릇을 만나야 비로소 인가하여 건네줄 수 있다.
4.4
한문秉拂。據位稱宗師,若無本分作家手段,未免賺悞方來,引他入草窠裏打骨董去也。
번역불자(拂子)를 잡고 자리를 차지해 종사(宗師)라 불리면서, 본분 작가(本分作家)다운 솜씨가 없다면, 갓 찾아온 이들을 속이고 그르치기를 면하지 못한다. 그를 풀 소굴(草窠) 속으로 끌어들여, 골동이나 두드리게 만들고 만다.
若具金剛正眼,須灑灑落落,唯以本分事接之,直饒見與佛齊,猶有佛地障在。
만약 금강 같은 바른 눈(金剛正眼)을 갖추었다면, 시원하고 말쑥하게(灑灑落落) 오직 본분의 일(本分事)로 그를 맞아야 한다. 설령 그 안목이 부처와 나란하더라도, 아직 ‘부처 자리’라는 장애(佛地障)가 남아 있다.
쉽게 읽기불자를 잡고 법좌에 올라 종사라 불리면서도, 본디 제구실 하는 솜씨가 없다면, 갓 찾아온 이를 속여 그르치기 마련이다. 그를 풀 소굴 속으로 끌어들여, 쓸데없는 골동이나 두드리게 만들고 만다. 금강처럼 흔들림 없는 바른 눈을 갖추었거든, 모름지기 시원하고 말끔하게, 오직 본분의 일로만 그를 맞이해야 한다. 설령 그 안목이 부처와 나란할 만해도, 거기엔 아직 ‘부처 자리’라는 걸림이 남아 있다.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打骨董去也
양립가능. 책은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만듦'으로, 자체역은 '골동이나 두드리게 만들고'로 옮겼다. '打骨董'은 잡동사니를 뒤섞어 다룸/골동을 두드림의 상투어로 '打'를 동사 접두(다루다)로도 타격(두드리다)으로도 읽을 수 있어 결정적 전거가 없이 양쪽 다 성립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4.5
한문是故,從上來行棒行喝、一機一境、一言一句,意在鉤頭,只貴獨脫,切忌依草附木,所謂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若不如是,盡是弄泥團漢。
번역그러므로 예로부터 몽둥이를 쓰고 고함을 치는 것(行棒行喝)이나, 한 기틀 한 경계(一機一境), 한마디 한 구절이나, 그 뜻이 낚싯바늘 끝(鉤頭)에 있었다. 오직 홀로 벗어나는 것(獨脫)을 귀히 여기고, 풀에 기대고 나무에 붙는 것(依草附木)을 몹시 꺼린다. 이른바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이렇지 않다면, 모두 진흙덩이나 주무르는 사람(弄泥團漢)이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예로부터 스승들은 몽둥이를 휘두르고 벼락같이 고함치며, 한 번의 기틀 한 번의 경계, 한마디 말 한 구절에 뜻을 낚싯바늘 끝처럼 걸어 두었다. 오직 홀로 훌쩍 벗어나는 것을 귀히 여기고, 남의 것에 기대어 붙어사는 짓을 몹시 꺼렸다. 이른바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모두 진흙덩이나 주무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풀이 3
驅耕夫之牛 구경부지우'구경부지우(驅耕夫之牛) 탈기인지식(奪飢人之食)' 및 '양기률극봉(楊岐栗棘蓬)·금강권(金剛圈)'은 벽암록(碧巖錄) 수시(垂示)와 원오어록(圜悟語錄)(연조(演祖)·양기(楊岐) 기연 인용)에서 탈(奪)·투관(透關)의 작용을 표하는 상투구로 반복 쓰인다.
驅耕夫之牛 구경부지우'驅耕夫之牛 奪飢人之食' 및 '楊岐栗棘蓬·金剛圈'은 碧巖錄 垂示와 圜悟語錄(演祖·楊岐 기연 인용)에서 탈(奪)·투관(透關)의 작용을 표하는 상투구로 반복 쓰인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一言一句。意在鉤頭
양립가능. 책은 '한마디 한마디가 낚시밥'으로 옮겨 '意在'를 생략하고 鉤頭를 미끼로 풀었고, 자체역은 '뜻이 낚싯바늘 끝(鉤頭)에 있었다'로 '意在'를 살려 더 축자적이다. 둘 다 낚시로 학인을 낚아채는 방편의 비유를 담아 성립하고, 책 독해를 결정적으로 배척할 전거(표준 구문·사전)가 분명치 않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4.6
한문方來衲子有夙根作工夫,驀地得入者,不遇真正宗師,返引他作露布,墮在機境中,無繩自縛,半前落後,似是不是,最難整理。
번역갓 찾아온 납자(衲子) 가운데, 전생부터의 바탕(夙根)이 있어 공부하다가 문득 깨쳐 든 이가 있다. 그런데 참된 종사를 만나지 못하면, 도리어 그를 이끌어 말자취(露布)나 짓게 하고 기틀과 경계(機境) 속에 떨어뜨린다. 그러면 그는 밧줄도 없이 스스로 묶이고(無繩自縛), 반쯤 앞서고 반쯤 뒤처져(半前落後), 옳은 듯하나 옳지 않다(似是不是). 이런 이가 가장 손보기 어렵다.
要須識其病脉,辨其落著,徵其所偏墜而發起之,俾捨執著住滯,
반드시 그 병의 맥(病脈)을 알고, 어디에 걸려 있는지(落著) 가려내야 한다. 어느 쪽으로 치우쳐 떨어졌는지 캐물어 일으켜 세우고, 집착하여 머물러 막힌 것을 버리게 해야 한다.
然後示以本分正宗,使無疑惑,了然得大解脫,居大寶宅,自然趂亦不去,
그런 뒤에 본분의 바른 종지(正宗)를 보여 의혹이 없게 한다. 그러면 환히 큰 해탈을 얻어 큰 보배 집(大寶宅)에 산다. 이제는 쫓아내도 절로 떠나지 않는다.
可以洪濟大法傳續祖燈,堪報不報之恩也。
이렇게 해야 큰 법을 널리 건지고 조사의 등불(祖燈)을 이어 갈 수 있다. 갚을 길 없는 은혜(不報之恩)를 갚을 만하다.
쉽게 읽기갓 찾아온 납자 가운데, 지난 생의 좋은 바탕이 있어 공부하다 문득 깨쳐 든 이가 있어도, 참된 종사를 만나지 못하면 도리어 잘못 이끌려, 겉으로 드러난 말자취나 짓고 기틀과 경계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묶는 밧줄도 없이 스스로 얽매이고, 앞선 것도 뒤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옳은 듯하나 옳지 않게 되니, 가장 바로잡기 어렵다. 반드시 그 병의 맥을 짚고, 어디에 걸려 있는지 가려내며, 어느 쪽으로 치우쳐 빠졌는지 캐물어 일으켜 세워, 집착과 막힘을 버리게 해야 한다. 그런 뒤에 본분의 바른 종지를 보여 의심이 없게 하면, 그는 환히 큰 해탈을 얻어 큰 보배 집에 머무니, 이제는 쫓아내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어야 큰 법을 널리 펴고 조사의 등불을 이어, 갚을 길 없는 은혜를 갚을 수 있다.
4.7
한문黃龍老南禪師,昔未見石霜,會一肚皮禪,翠巖憫之,勸謁慈明,
번역황룡 노남(黃龍老南) 선사는 옛날 석상(石霜)을 뵙기 전, 뱃속 가득 선(一肚皮禪)을 알고 있었다. 취암(翠巖)이 그를 딱하게 여겨 자명(慈明)을 찾아뵈라고 권했다.
只窮究玄沙語,靈雲未徹處,應時瓦解冰消,遂受印可三十年,只以此印拈諸方解路瘥病,
그는 오직 ‘영운(靈雲)이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고 한 현사(玄沙)의 말을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기와가 부서지고 얼음이 녹듯(瓦解冰消) 풀려, 마침내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 뒤 서른 해 동안, 오직 이 도장(印) 하나를 들어 여러 곳(諸方)의 알음알이 길(解路)이 든 병을 고쳤다.
不假驢駞藥,緊要處豈有許多佛法也。
나귀와 낙타에 실을 만큼 많은 약(驢駞藥)은 빌리지 않았다. 요긴한 곳에 어찌 그리 많은 불법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황룡 노남 선사는 옛날 석상을 뵙기 전에는, 뱃속 가득 찬 선에 관한 지식만 지니고 있었다. 취암 스님이 그를 딱하게 여겨 자명 선사를 찾아가 뵈라고 권했다. 노남은 오직 ‘영운이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고 한 현사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파고들다가, 때가 무르익자 기와 부서지듯 얼음 녹듯 확 풀려 마침내 인가를 받았다. 그 뒤 서른 해 동안, 오직 이 도장 하나로 여러 곳 학인들의 알음알이 병을 고쳐 냈다. 나귀나 낙타에 실을 만큼 많은 약을 쓰지도 않았으니, 정작 요긴한 자리에 무슨 그리 많은 불법이 필요하겠는가.
풀이 11
玄沙師備 현사사비靈雲志勤의 桃花 悟道에 대해 玄沙가 '諦當甚諦當,敢保老兄猶未徹'이라 한 말(『景德傳燈錄』 권11 靈雲章 夾注; 『五燈會元』 권4).
慈明楚圓 자명초원黃龍慧南이 만나기 전의 '石霜'은 慈明楚圓이다. 雲峰文悅이 '石霜楚圓手段出諸方'이라며 그를 찾아가라 권했다(『禪林僧寶傳』 권22). 같은 단락의 '慈明'과 한 사람이다.
雲峰文悅 운봉문열慧南에게 慈明(石霜楚圓)을 찾아가라 권한 이는 文悅이다(『禪林僧寶傳』 권22 '石霜楚圓手段出諸方。子欲見之'; 『五燈會元』 권17도 같음). 그때 文悅의 스승 守芝가 翠巖에 있었고('悅師翠嵓'), 文悅 자신도 뒤에 翠巖에 出世했다.
黃龍慧南 황룡혜남圜悟는 慧南이 玄沙의 '敢保老兄未徹在'(靈雲 桃花 機緣)를 궁구해 깨쳤다 하나(『圜悟語錄』 권15에도 같은 글), 『禪林僧寶傳』 권22·『五燈會元』 권17은 慈明이 물은 趙州 '勘破婆子'에서 깨쳐 '傑出叢林是趙州' 頌을 바쳤다고 적는다.
靈雲志勤 영운지근玄沙가 靈雲의 悟道를 '諦當甚諦當,敢保老兄未徹在'라 평했고, 慧南이 이 '玄沙道靈雲未徹處'를 참구하다 대오하였다(『景德傳燈錄』 靈雲章 및 玄沙 기연).
五燈會元황룡로남(黃龍老南) 대목의 근거다. 혜남(慧南)이 현사(玄沙)의 '감보로형미철재(敢保老兄未徹在)'(영운도화(靈雲桃花) 평)를 궁구하다 자명(慈明)에게 인가받은 이야기는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오등회원(五燈會元) 혜남전(慧南傳) 및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일치하여, 본문의 '궁구현사어령운미철처(窮究玄沙語靈雲未徹處)…수수인가(遂受印可)' 해석을 확정해 준다.
4.8
한문大宗師爲人,雖不立窠臼路布,久之學徒妄認,亦成窠臼路布也。益以無窠臼爲窠臼,無路布作路布也,應須及之令盡,無令守株待兔,認指爲月。
번역큰 종사는 사람을 이끌 때 소굴과 말자취를 세우지 않는다. 그래도 오래되면 배우는 무리가 잘못 알아, 그것이 또 소굴과 말자취가 된다. 더욱이 소굴 없음을 소굴로 삼고, 말자취 없음을 말자취로 삼는다. 그러니 마땅히 여기까지 미쳐 남김없이 없애야 한다.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거나(守株待兔), 손가락을 달로 아는(認指爲月)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쉽게 읽기큰 종사가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아무런 소굴이나 상투적인 말자취를 세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래 지나면 배우는 이들이 제멋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또 소굴로, 또 상투로 굳혀 버린다. 심지어 ‘소굴 없음’을 다시 소굴로 삼고, ‘말자취 없음’을 다시 말자취로 삼는다. 그러니 거기까지 미쳐 남김없이 없애 주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거나,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잘못 아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풀이 4
守株待兔 수주대토'以無窠臼爲窠臼,無路布作路布'하는 병을 끝까지 없애 '守株待兔,認指爲月'하지 않게 하라는 말. 『圜悟語錄』 권15에 같은 글.
窠臼 과구宗師가 窠臼·路布를 세우지 않아도 學人이 잘못 알아 다시 窠臼·路布로 삼고, '無窠臼'를 窠臼로 삼게 된다는 대목.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에도 실려 있다.
4.9
한문鑒在機先,風塵草動亦照其端倪,況應酬擾擾哉。非胸次虗靜,無一法當情,安能圓應無差,先機照物耶。此皆那伽在定之効也。
번역비춤(鑒)은 기틀보다 앞서 있다(機先). 그래서 바람에 티끌이 일고 풀이 흔들리는 데서도 그 낌새(端倪)를 비춘다. 하물며 어지러이 오가는 응대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가슴속이 텅 비고 고요하여(胸次虛靜) 한 법도 마음에 걸리지 않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 어긋남 없이 두루 응하고 기틀에 앞서 사물을 비출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용(那伽)이 선정에 들어 있는(在定) 보람이다.
쉽게 읽기참된 비춤은 기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있어, 바람에 티끌 일고 풀 한 포기 흔들리는 데서도 그 낌새를 먼저 안다. 하물며 어수선한 응대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가슴속이 텅 비고 고요하여 한 법도 마음에 걸리지 않아야, 어긋남 없이 두루 응하고 기틀에 앞서 사물을 비출 수 있다. 이는 모두 용이 늘 선정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힘에서 나온다.
풀이 1
교감 · 胸次'胸次'의 '胸' — 저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55c22). 이체이며 뜻이 같다.
4.10
한문臨濟金剛王寶劒,德山末後句,藥嶠一句子,秘魔杈,俱𦙁指,雪峯輥毬,禾山打鼓,趙州喫茶,楊岐栗棘蓬,金剛圈,皆一致耳。
번역임제(臨濟)의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 덕산(德山)의 마지막 한마디(末後句), 약산(藥嶠)의 한 구절, 비마(秘魔)의 나무 집게, 구지(俱胝)의 손가락, 설봉(雪峯)의 공 굴리기, 화산(禾山)의 북 치기, 조주(趙州)의 차 마시기, 양기(楊岐)의 밤송이(栗棘蓬)와 금강권(金剛圈)이 모두 한 이치일 뿐이다.
契證得,直下省力,一切佛祖言教,無不通達,唯在當人善自洪持耳。
계합해 증득하면(契證), 그 자리에서 힘이 덜어진다(省力). 부처와 조사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훤히 꿰뚫지 못할 것이 없다. 오직 그 사람이 스스로 잘 받들어 지니는(洪持) 데에 달렸을 뿐이다.
쉽게 읽기임제의 금강왕보검, 덕산의 마지막 한마디, 약산의 한 구절, 비마의 나무 집게, 구지의 손가락 하나, 설봉의 공 굴리기, 화산의 북 치기, 조주의 ‘차나 마셔라’, 양기의 밤송이와 금강권 — 이 모두가 결국 한 이치다. 이것을 사무쳐 증득하면 그 자리에서 힘이 덜리고, 부처와 조사의 온갖 가르침을 훤히 꿰뚫지 못할 것이 없다. 오직 그 사람이 스스로 잘 지녀 널리 쓰는 데 달렸을 뿐이다.
풀이 2
四喝 사할四喝 가운데 첫째인 金剛王寶劍으로 臨濟를 대표하여, 德山末後句·俱胝指·禾山打鼓(『碧巖錄』 제44칙)·楊岐栗棘蓬 등과 함께 '皆一致'라 했다.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에도 실려 있다.
臨濟金剛王寶劍 임제금강왕보검말미 공안 열거는 원오(圜悟)의 상투다. '임제금강왕보검(臨濟金剛王寶劍)(사할(四喝))'·'덕산말후구(德山末後句)'·'화산해타고(禾山解打鼓)(벽암록(碧巖錄) 제44칙)'·'구지일지(俱胝一指)(벽암록(碧巖錄) 제19칙)' 등은 벽암록(碧巖錄) 본칙·수시(垂示)에 반복 등장하며, 여러 기틀을 하나로 회통하는 원오(圜悟) 특유의 편집 논법이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9
  1. 裕書記 유서기

    불지단유(佛智端裕)(1085–1150)이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법사(法嗣)로 원오(圜悟) 문하에서 서기(書記) 소임을 보았다. 뒤에 항주 영은사(靈隱寺)에 주석하고 사호가 불지(佛智)였으므로 협주의 '지(智)'는 별인이 아니라 단유(端裕)의 사호 '불지(佛智)'를 줄인 것, 곧 수신자 본인이다(추정 아님, 등사(燈史) 일치).

  2.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3. 驅耕夫之牛·奪飢人之食 구경부지우·탈기인지식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는다’는 말이다. 배우는 이가 가장 아끼고 기대는 것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홀로 서게 하는, 스승의 매서운 솜씨를 이른다.

  4. 黃龍慧南 황룡혜남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자명(慈明) 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운문종 늑담회징의 문하에서 이름을 얻었으나, 자명을 만나 크게 깨쳤다. 뒤에 황룡산에 머물며 '황룡파'라는 한 갈래를 열었다.

  5. 露布 노포

    본래 봉하지 않고 널리 내걸어 알리던 글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내 늘어놓은 말과 설명, 틀에 박힌 문자놀음을 낮추어 이른다. 노포(路布)라고도 적는다.

  6. 守株待兔 수주대토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는 것을 한 번 본 농부가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만 지켰다. 한 번 들어맞은 방법에 매달려 변통할 줄 모름을 비유한다.

  7. 金剛王寶劍 금강왕보검

    금강처럼 단단한 왕의 보검이라는 말이다. 모든 알음알이와 망상을 한칼에 끊는 지혜의 작용을 비유한다. 임제(臨濟) 스님이 할(喝)의 네 가지 쓰임을 말하며 첫째로 들었다.

  8. 俱胝指 구지지

    구지화상(俱胝和尚)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이다.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 하나를 세운다(벽암록(碧巖錄) 제19칙, 무문관(無門關) 제3칙).

  9. 雪峰輥毬 설봉곤구

    설봉의존(雪峰義存) 선사가 나무 공을 굴려 보인 일이다. 제자 현사(玄沙)가 ‘이제 큰 작용을 쓰겠다’고 하자, 설봉은 나무 공 세 개를 한꺼번에 굴려 냈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으로 받았다. 말 없이 몸짓으로 주고받은 큰 작용으로 일컬어진다.

  10. 禾山打鼓 화산타고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의 ‘북 칠 줄 안다’는 답이다. 한 스님이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마음도 부처도 아닌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차례로 묻자, 화산은 네 번 모두 ‘북 칠 줄 안다(解打鼓)’고만 답했다. 그래서 ‘화산의 네 번 북 치기’라고도 부른다.

  11. 趙州喫茶 조주끽다

    조주(趙州)의 '차나 마시게(喫茶去)' 공안이다. 새로 온 스님에게 여기 와 본 적이 있느냐 묻고, 왔다 해도 안 왔다 해도 '차나 마시게' 했다. 원주가 그 까닭을 묻자 원주를 불러 또 '차나 마시게' 했다. 따지는 마음을 놓고 일상에서 바로 보라는 뜻으로 읽힌다.

  12. 楊岐栗棘蓬·金剛圈 양기율극봉·금강권

    양기방회(楊岐方會) 계열의 상투 관문어다. '금강권을 뚫고 밤송이를 삼킨다' — 의리로 뚫을 수 없는 투관(透關)의 비유다. 원오(圜悟)의 사공(師公) 오조법연계(五祖法演系)에서 애용하였다.

  13. 玄沙師備 현사사비

    현사사비(玄沙師備, 835~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복주(福州) 사람이다. 젊어서 고기잡이를 하다 서른에 출가했고, 고행을 엄하게 지켜 '비두타(備頭陀)'라 불렸다.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그 계통에서 법안종이 나왔다.

  14. 半前落後 반전락후

    앞에도 못 미치고 뒤에도 처졌다는 말이다. 깨친 듯하면서도 철저하지 못해 어중간하게 머문 공부를 이른다. 원오는 이런 이를 가장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다.

  15. 慈明楚圓 자명초원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86~1039)으로, 석상초원(石霜楚圓)이라고도 한다. 분양선소(汾陽善昭)의 법을 이었고, 그 문하에서 양기방회(楊岐方會)와 황룡혜남(黃龍慧南)이 나와 임제종의 두 갈래를 이루었다.

  16. 四喝 사할

    임제(臨濟)가 쓴 네 가지 고함(할)이다. 보검처럼 끊는 할, 웅크린 사자처럼 위엄을 떨치는 할, 장대와 풀 그림자로 떠보듯 상대를 살피는 할, 할로 쓰지 않는 할이다.

  17. 靈雲志勤 영운지근

    영운지근(靈雲志勤)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복주(福州) 장계(長溪) 사람이다. 위산(溈山) 회하에서 복사꽃을 보고 깨쳐 '삼십 년 동안 칼을 찾던 나그네'로 시작하는 게송을 지었고, 위산이 그 깨침을 인정하였다. 복주 영운(靈雲)에 머물러 '영운'이라 불린다.

  18. 臨濟金剛王寶劍 임제금강왕보검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사할(四喝) 중 '유시일할여금강왕보검(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이다(臨濟錄).

  19. 德山末後句 덕산말후구

    덕산선감(德山宣鑒) 관련이다. 암두전활(巖頭全奯)이 '덕산로한미회말후구(德山老漢未會末後句)'라 한 데서 유래한 말후구(末後句)다(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 전등록(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20. 秘魔杈 비마차

    오대산(五臺山) 비마암화상(秘魔巖和尚)이다. 나무 집게(목차(木叉)/차(杈))로 납자의 목을 눌러 '도득야차하사(道得也叉下死) 도불득야차하사(道不得也叉下死)'로 다그친 기연이다(景德傳燈錄).

  21. 那伽在定 나가재정

    '나가상재정(那伽常在定) 무유불정시(無有不定時)'이다(대지도론(大智度論) 등). 나가(那伽)=용(龍)(또는 상(象))으로, 항상 삼매에 있다. 동정(動靜)에 두루 정(定)을 잃지 않는 대정력의 비유다.

  22. 鑪鞴鉗鎚 노비겸추

    풀무·집게·망치다. 종사가 학인을 단련하는 방편(鍛冶) 도구의 상투 비유다.

  23. 依草附木 의초부목

    의지처 없는 정혼(精魂)이 초목에 붙듯, 본분을 잃고 언구·경계에 빌붙음이다.

  24. 拔楔抽釘 발설추정

    못과 쐐기를 뽑음이다 — 집착·막힘을 풀어줌이다.

  25. 認指爲月 인지위월

    능엄경(楞嚴經)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오인함 — 방편을 실체로 착각함이다.

  26. 見與佛齊猶有佛地障在 견여불제유유불지장재

    '견처가 부처와 나란해도 불지(佛地)라는 장애가 남음'이다. '견여사제감사반덕(見與師齊減師半德), 견과어사방감전수(見過於師方堪傳授)'(백장(百丈)·위산(潙山)계 전수관)의 취지를 불지장(佛地障)으로 밀고 나간 표현이다.

  27. 靈隱智禪師 영은지선사

    佛智端裕(1085–1150)이다. 圜悟克勤의 법사(法嗣)로 圜悟 문하에서 書記 소임을 보았다. 뒤에 항주 靈隱寺에 주석하고 사호가 佛智였으므로 협주의 '智'는 별인이 아니라 端裕의 사호 '佛智'를 줄인 것, 곧 수신자 본인이다(추정 아님, 燈史 일치).

  28. 驅耕夫之牛 구경부지우

    밭가는 소를 몰아가고 굶주린 이의 밥을 빼앗음이다. 학인의 집착을 남김없이 앗아가는 준열한 탈(奪)의 작용이다. 臨濟系·雲門계 상투구로 圜悟가 즐겨 썼다.

  29. 雲峰文悅 운봉문열

    송나라 임제종 선승(997~1062)으로, 대우수지(大愚守芝)의 법을 이었다. 스승을 따라 홍주 서산의 취암사에 있었고 뒤에 그곳에서 법을 펴 취암이라고도 불리며, 만년에는 남악 운봉사에 머물렀다. 황룡혜남(黃龍慧南)에게 자명(慈明)을 찾아가라고 권한 사람이다.

문단 10국역본 대조 2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