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33편

해지욕(諧知浴)에게 주는 글

示諧知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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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한문此箇大法,三世諸佛同證,歷代祖師共傳,一印印定,直指人心,見性成佛,不立文字語句,謂之教外別行,單傳心印。
번역이 큰 법(大法)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깨달으신 것이고, 역대 조사(祖師)들이 함께 전하신 것이다. 한 도장으로 찍어 정한다.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 문자와 말을 세우지 않는다. 이를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함(教外別行), 마음 도장만 홀로 전함(單傳心印)이라 한다.
若涉言詮路布,立階立梯,論量格外格內,則失卻本宗,辜負先聖。
만약 말로 풀어 늘어놓는 것(言詮路布)에 발을 들여, 계단을 세우고 사다리를 세우며, 격(格) 밖이니 격 안이니 따지고 헤아린다면, 본래의 종지(本宗)를 잃고 앞선 성인들을 저버리는 것이다.
쉽게 읽기이 큰 법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함께 깨쳐 얻으신 것이다. 역대 조사들도 하나같이 이것을 전해 오셨다. 오직 하나의 인, 곧 마음의 도장 하나로 인가하여 정한다.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한다. 여기에는 글자나 말을 세우지 않는다. 이를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함, 오직 마음의 인만을 홀로 전함이라 한다. 그런데 말로 이리저리 풀어 늘어놓고, 계단을 세우고 사다리를 놓아, 틀 밖이니 틀 안이니 따지고 헤아린다고 하자. 그러면 곧 본래의 종지를 잃고, 앞서가신 성인들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33.2
한문要須最初入作,便遇本分人,直截根源,退步就己,以鐵石心,將從前妄想見解、世智辯聰、彼我得失,倒底一時放卻,
번역반드시 맨 처음 공부에 들어설 때, 곧 본분(本分)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근원을 곧바로 끊고,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쇠와 돌 같은 마음으로, 지난날의 망상과 견해, 세간의 지혜와 말재주(世智辯聰), 나와 남, 얻음과 잃음을 밑바닥까지 한꺼번에 놓아 버려야 한다.
直下如枯木死灰,情盡見除,到淨倮倮、赤灑灑處,豁然契證,與從上諸聖不移易一絲毫許,
그리하여 당장 마른 나무와 식은 재(枯木死灰)처럼 되어, 정(情)이 다하고 견해가 없어진다. 말끔히 벌거벗고 씻은 듯한 자리에 이르러, 확 트이며 맞아떨어지게 깨닫는다(豁然契證). 그러면 예로부터 내려온 모든 성인과 털끝만큼도 달라지지 않는다.
諦信得及,明見得徹,此始爲入理之門。
참으로 믿음이 사무치고, 밝게 보아 꿰뚫는다. 이것이 비로소 이치에 들어가는 문(入理之門)이다.
更須教一念萬年,萬年一念,二六時中,純一無雜,
다시 한 생각이 만 년이고 만 년이 한 생각이게 해야 한다. 하루 열두 때 내내 순일하여 섞임이 없어야 한다.
纔有纖塵起滅,則落二十五有無出離之期,抵死謾生咬教斷,
가는 티끌만 한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도 있으면, 곧 이십오유(二十五有)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다. 죽기 살기로 물어뜯어 끊어야 한다.
然後田地穩密,聖凡位中收攝不得,始是如鳥出籠,自休自了處,得坐披衣,真金百煉,
그런 뒤에야 그 자리(田地)가 든든하고 빈틈없어진다.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자리 안에 거두어 넣을 수 없다. 비로소 새가 새장을 벗어난 듯, 스스로 쉬고 스스로 마친 자리다. 자리에 앉아 옷을 걸칠 수 있으니(得坐披衣), 백 번 단련한 참된 금이다.
舉動施爲,等閑蕩蕩地,根塵生死,境智玄妙,如湯沃雪,
움직이고 행하는 것이 그저 한가롭고 툭 트인다. 육근과 육진(根塵), 나고 죽음(生死), 경계와 지혜(境智)의 그윽하고 묘함이, 끓는 물을 눈에 붓듯 한다.
遂自知時,更無分外底,名爲無心道人。
마침내 스스로 때를 알아, 다시는 분수 밖의 것이 없다. 이를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한다.
以此修證,轉開未悟,令如是履踐,豈不爲要道哉。
이렇게 닦아 깨닫고,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을 돌이켜 열어 주어 이렇게 밟아 가게 한다면, 어찌 요긴한 도(要道)가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처음 공부에 들어설 때에는 반드시 본분의 사람, 곧 참된 스승을 만나야 한다. 그 앞에서 근원을 곧바로 끊고, 한 걸음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이켜라. 철석 같은 굳센 마음을 내어라. 지난날의 헛된 생각과 온갖 견해, 세속의 얕은 지혜와 말재간, 나와 남, 얻음과 잃음을 밑바닥까지 한꺼번에 놓아 버려라. 그리하여 당장에 마른 나무나 다 타 버린 재처럼 되어라. 정이 다하고 견해가 사라져, 깨끗이 발가벗은 듯 씻은 듯 텅 빈 자리에 이른다. 바로 거기서 활연히 확 열려 계합하여 증득한다. 그러면 위로 여러 성인과 터럭 한 올만큼도 어긋나지 않는다. 참으로 믿어 이르고, 분명히 보아 사무친다. 이것이 비로소 이치에 들어가는 문이다. 다시, 한 생각이 만년이 되고 만년이 한 생각이 되게 하라. 하루 열두 때 내내 오롯이 하나로 이어져 잡됨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티끌 같은 생각이 일었다 꺼졌다 하면, 곧 이십오유, 곧 중생이 헤매는 온갖 미혹의 세계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다. 그러니 죽기로 각오하고 어떻게든 물어뜯어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런 뒤라야 그 경지가 안온하고 은밀해진다.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자리에도 가두어 넣을 수 없다. 이것이 비로소 새가 새장을 벗어나듯 스스로 쉬고 스스로 마친 자리이다. 그제야 자리에 앉아 옷을 걸치니, 곧 스스로 주인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참된 금을 백 번 단련한 것과 같다. 움직이고 베풀어 행하는 것이 한가롭고 툭 트인다. 육근과 육진, 나고 죽음, 경계와 지혜의 그윽하고 묘한 얽힘이, 마치 쌓인 눈에 끓는 물을 붓듯 다 녹아 버린다. 마침내 스스로 때를 알아, 다시는 제 분수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무심한 도인이라 한다. 이렇게 스스로 닦아 증득한 뒤, 아직 깨닫지 못한 이를 돌이켜 열어 주어 이와 같이 밟아 실천하게 한다면, 어찌 요긴한 도가 아니겠는가.
풀이 3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收攝不得
후치 구조 'V+不得'은 가능보어로서 '~될(할) 수 없다'(불가능)를 나타내며, 금지의 전치 '不得+V'(~해서는 안 된다)와 구별된다. 따라서 '收攝不得'은 '거두어 넣을(가둘) 수 없다'로, 穩密해진 田地가 성(聖)·범(凡) 어느 자리에도 收攝되지 않음을 뜻한다. 不得을 당위(들어가지 않아야)로 처리하고 收攝을 '들어감'으로 바꾼 책의 새김은 구문을 오독한 것이니, 자체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如湯沃雪
沃은 '물을 대다·붓다'로 그 대상은 雪이다. 곧 '如湯沃雪'은 '끓는 물을 눈에 붓듯'이 축자이며, 눈이 삽시간에 녹는 如湯消雪·如湯澆雪류의 상투 비유와도 합치한다. 책의 '끓는 물에 눈을 뿌리는'은 沃의 주객(부어지는 대상)을 뒤바꾼 오독이니, 자체역이 옳다.
교감 · 枯木死灰'枯木死灰'의 '灰' — 저본 글자는 CBETA 조자 CB01926 [厂@火](CBETA 정규자 灰)이고 유니코드로는 CJK 호환 한자 U+2F835뿐이다. 데이터에 호환 한자를 쓰지 않으므로 통합 한자 '灰'(U+7070)로 실음(X69n1357 p0465c20). 뜻은 같다. '枯木死灰'(마른 나무·죽은 재)는 상투구다.
33.3
한문古人爲此一段因緣,豈止忘餐廢寢,至捨頭目髓腦,斷臂負舂,動是三二十年。
번역옛사람들은 이 한 가닥 인연(因緣)을 위하여, 어찌 끼니를 잊고 잠을 거르는 데서 그쳤겠는가. 머리와 눈, 골수와 뇌까지 버렸다. 팔을 끊고(斷臂) 방아를 지기까지(負舂) 했다. 걸핏하면 이삼십 년이었다.
只如巖頭、雪峰、欽山,雖同歷涉叢林,各執一務効勤,九度洞山,三到投子,凡所至處,未嘗放過一宵一霎,必遞相舉較,互相切瑳,䆳契新豐,豁存領旨。
저 암두(巖頭) · 설봉(雪峰) · 흠산(欽山)을 보라. 그들은 함께 총림(叢林)을 두루 다녔지만, 저마다 소임 하나씩 맡아 부지런히 힘썼다. 동산(洞山)에 아홉 번, 투자(投子)에 세 번 갔다. 이르는 곳마다 하룻밤 한순간도 그냥 흘려보낸 적이 없었다. 반드시 서로 들어 견주고, 서로 갈고닦았다. 그리하여 신풍(新豐)의 종지에 깊이 맞아들어, 그 뜻을 환히 지녔다.
德嶠觀其跂步體裁,可謂法門龍象,後學之人可以仰其陳躅,無使虗棄光陰,有忝昔賢耳。
덕산(德嶠)은 그들의 걸음걸이와 몸가짐을 보고, 법문(法門)의 용상(龍象)이라 할 만하다고 하였다. 뒤에 배우는 이들은 그 남긴 자취를 우러러야 한다. 헛되이 세월을 버려 옛 현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昔天台韶國師少負俊才,游叢林,所至投機,已領師席。
옛날 천태(天台)의 소국사(韶國師)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총림을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기틀이 맞아(投機), 이미 스승의 자리를 맡았다.
最後抵金陵清涼大法眼禪師會下,已倦咨參,唯勉進隨侍之者,摳衣籌室。
마지막으로 금릉(金陵) 청량(淸涼)의 대법안(大法眼) 선사 회하에 이르렀다. 이미 묻고 참구하는 데에 지쳐서, 오직 시봉하는 이들 틈에서 힘써 나아가며, 옷자락을 여미고 방장실(籌室)에 들었다.
一日,隨眾僧參,有問:如何是曹源一滴水?答云:是曹源一滴水。
하루는 대중을 따라 참문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계(曹源)의 한 방울 물입니까?” 법안이 답했다. “이것이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
師聞之,前之證解渙若冰釋,方爲得大安穩。
소국사는 이 말을 듣자, 앞서 깨닫고 알았던 것이 얼음 녹듯 풀렸다. 그제야 크게 안온함을 얻었다.
是知學解因人所領十言、一句、一機、一境,只益多聞,到究竟至實之處,須是桶底子脫始得。
이로써 알겠다. 배워서 얻은 앎은 남에게서 받은 열 마디 말, 한 구절, 한 기틀, 한 경계일 뿐이다. 그저 많이 들음(多聞)에 보탬이 될 뿐이다. 마지막 지극히 참된 곳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통 밑바닥이 쑥 빠져야(桶底子脫) 비로소 된다.
此事斷定不在言句中,若執著記憶以爲己見,如𦘕餅豈可充飢?
이 일은 결코 말과 글귀(言句) 속에 있지 않다. 기억한 것에 매달려 자기 견해로 삼는다면, 그림의 떡과 같다. 어찌 주린 배를 채우겠는가.
쉽게 읽기옛사람들은 이 한 가닥 큰 인연을 위하여 애쓰셨다. 어찌 먹기를 잊고 잠을 마다하는 데에만 그쳤겠는가. 심지어 머리와 눈, 골수와 뇌까지 아낌없이 버렸다. 팔을 끊고, 방아를 지기까지 하며, 걸핏하면 이삼십 년을 바쳤다. 저 암두·설봉·흠산만 보아도 그렇다. 세 사람은 함께 총림을 두루 돌아다녔다. 저마다 한 소임을 맡아 부지런히 힘썼다. 동산 스님께 아홉 번 가고, 투자 스님께 세 번 이르렀다. 이르는 곳마다 하룻밤, 한순간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았다. 반드시 서로 화두를 들어 견주고, 갈고닦았다. 그리하여 신풍, 곧 동산양개의 종지에 깊이 계합하여 그 뜻을 환히 지녔다. 덕산은 그들이 걸음을 내딛는 몸가짐과 격식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법문의 용상, 곧 큰 그릇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뒷날 배우는 이들은 그 남긴 자취를 우러러야 한다. 헛되이 세월을 버려, 옛 현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옛적에 천태 소국사 덕소가 있었다. 젊어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총림을 다니며 이르는 곳마다 근기가 척척 들어맞아, 이미 스승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마지막으로 금릉 청량의 대법안 선사 회하에 이르렀다. 그때는 이미 묻고 참구하는 데 지친 터였다. 그저 힘써 시봉하는 무리에 들어, 옷깃을 여미고 방장실에 나아갔다.하루는 대중을 따라 참문하는데,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조계의 한 방울 물입니까?” 대법안이 답하였다. “그것이 바로 조계의 한 방울 물이다.” 소국사가 이 말을 듣는 순간, 앞서 얻었던 증득과 이해가 얼음 녹듯 확 풀렸다. 그제야 비로소 크게 편안함을 얻었다. 이로써 알아야 한다. 배워서 얻은 이해란, 남에게서 받은 열 마디 말, 한 구절, 한 기틀, 한 경계일 뿐이다. 그것은 많이 들음에나 보탬이 될 뿐이다. 마지막 지극히 참된 곳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통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한다. 곧 알음알이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야 비로소 된다. 이 일은 결코 말과 글귀 속에 있지 않다. 기억에 매달려 그것을 제 견해로 삼는다면, 그림의 떡과 같으니 어찌 주린 배를 채우겠는가.
풀이 11
巖頭全豁 암두전활『碧巖錄』 제22칙 評唱 '雪峯與巖頭欽山同行。凡三到投子九上洞山'(T48n2003_p0162c12). '九度洞山,三到投子'는 본디 雪峰의 행각으로 전하며(제5칙 評唱), '德嶠'는 德山.
雪峰義存 설봉의존'三到投子,九上洞山'은 雪峰의 행각을 이르는 말(『景德傳燈錄』 권26; 『碧巖錄』 권3은 巖頭·欽山과 同行하며 '凡三到投子九上洞山'이라 함). 이 편은 세 사람의 행각에 함께 붙였다.
洞山良价 동산양개雪峰이 巖頭·欽山과 함께 '三到投子 九上洞山'하였다는 이야기(『碧巖錄』 권3, T48n2003_p0162c12). '新豐'은 洞山良价가 新豐山에서 학도를 이끈 데서 그의 가풍을 가리킨다(T51n2076_p0322a09).
負舂 부용斷臂는 二祖 慧可가 達磨 앞에서 팔을 끊어 법을 구한 일(『景德傳燈錄』 권3 '汝今斷臂吾前'), 負舂은 慧能의 碓坊 노역.
投子大同 투자대동'三到投子'의 投子이며, '九度洞山,三到投子'는 부지런한 행각을 형용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學解因人所領十言一句一機一境,只益多聞
책은 '因人所領'을 '사람을 피곤케 함'으로 옮겼으나, 이는 '남에게서 받은 바'의 오독이다. 구조는 學解가 곧 남에게서 받은 十言·一句·一機·一境이어서 다만 多聞에나 보탬이 된다는 것이므로, '남에게서 받은…'으로 새김이 옳다.
33.4
한문然大達之士超證諦實,及至投機,於語句間迥出塗轍,機境筌蹄籠羅他不住。
번역그러나 크게 통달한 사람은 단숨에 뛰어 깨달아, 참되고 실답다. 기틀이 맞는 자리에 이르면, 말과 글귀 사이에서 낡은 길을 훌쩍 벗어난다. 기틀과 경계, 통발과 올무(筌蹄)로도 그를 가두어 얽어맬 수 없다.
只如石頭問藥山:你在此作什麼?對云:一物不爲。
석두(石頭)가 약산(藥山)에게 물은 일과 같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답했다. “한 물건도 하지 않습니다.”
頭云:如此則閑坐也。對云:閑坐則爲也。
석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이구나.” 약산이 답했다. “한가로이 앉아 있다면, 그것이 곧 하는 것입니다.”
石頭又問:子道不爲,不爲箇什麼?對云:千聖亦不識。
석두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하지 않는다 하니, 무엇을 하지 않는가?” 약산이 답했다. “천 명의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石頭乃以頌贊云:從來共住不知名,任運相將只麼行。
석두는 이에 게송을 지어 기렸다. “예로부터 함께 살아도 그 이름을 모르고, 되는 대로 서로 이끌며 그저 이렇게 갈 뿐이다.
自古上賢猶不識,造次凡流豈可明?
예로부터 높은 현인도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경솔한 범부들이 어찌 밝히겠는가.”
似此豈不是徹證底人?語話、機量、言句何曾拘束得他?
이러하니 어찌 사무쳐 깨달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말과 이야기, 기틀의 헤아림, 말과 글귀가 언제 그를 얽어맨 적이 있었는가.
若理地不明,胷次有物問著,如氈上拽猫兒。
만약 이치의 바탕(理地)이 밝지 않아 가슴속에 무언가가 걸려 있으면, 물음을 받았을 때 담요 위에서 고양이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是故祖師道:心隨萬境轉,轉處實能幽。隨流認得性,無喜亦無憂。
그러므로 조사가 말했다.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구르니, 구르는 그곳이 참으로 그윽하다. 흐름을 따라 성품을 알아차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다.”
叢林兄弟參問:最初的有正因,於善知識邊自陳生死事大,己事未明。
총림의 형제들이 참문할 때, 맨 처음에는 참으로 바른 인(正因)이 있다. 선지식(善知識) 앞에서 스스로 아뢴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제 일이 아직 밝지 않습니다.”
推此所言,豈是汎汎爲名爲位,爲我能我勝?
이 말을 미루어 보면, 어찌 그저 이름을 위하고 지위를 위하며, ‘내가 잘한다, 내가 낫다’ 하려는 것이겠는가.
若始終一貫,常持此心,不憂己事不明,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늘 이 마음을 지닌다면, 제 일이 밝지 않을까 근심할 것이 없다.
及更親近稍久,自己分上未有毫末相應處,便論量如之若何。彼見解長短,增長我見,覓箇出頭處,他時一瓣香不敢辜負和尚。
그런데 좀 더 오래 가까이 지내고도 자기 몫(分上)에 털끝만큼도 들어맞는 곳이 없으면, 곧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따진다. 저 견해가 길다 짧다 견주며 ‘나’라는 견해(我見)를 키우고, 머리를 내밀 자리를 찾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훗날 향 한 조각(一瓣香)을 사르며 화상(和尚)을 감히 저버리지 않겠다.”
殊不知失卻元初正因,卻墮在魔界去。古人道:設有眷屬莊嚴,不來自至。
애초의 바른 인을 잃고, 도리어 마(魔)의 경계에 떨어지는 줄은 전혀 모른다. 옛사람이 말했다. “권속(眷屬)과 장엄이 있을 것이라면,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既是一等蹋破草鞋,宜應了卻初心,期脫透生死,最爲至要。時不待人,各宜勉力。
이왕 다 같이 짚신을 닳리며 다니는 처지다. 마땅히 처음 마음(初心)을 이루어 마치고, 나고 죽음을 꿰뚫어 벗어나기를 기약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요긴하다. 때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저마다 힘써야 한다.
쉽게 읽기그러나 크게 통달한 이는 다르다. 단숨에 뛰어넘어 깨달으니, 참되고 실답다. 근기가 딱 맞는 자리에 이르면, 말과 글귀 사이에서 아득히 낡은 자취를 벗어난다. 기틀과 경계, 통발과 올무 같은 그물로도 그를 가두어 얽어맬 수 없다. 바로 이런 것이다.석두희천이 약산에게 물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약산이 답하였다. “한 물건도 하지 않습니다.” 석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이로구나.” 약산이 답하였다. “한가로이 앉아 있다면, 그것이 곧 하는 것입니다.”석두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하지 않는다 하니, 무엇을 하지 않는가?” 약산이 답하였다. “천 명의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석두가 이에 게송을 지어 기렸다. “예로부터 함께 살아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인연 따라 서로 이끌며 그저 이렇게 갈 뿐이다. 예로부터 높은 현인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경솔한 범부의 무리가 어찌 밝힐 수 있겠는가.” 이만하면 어찌 사무쳐 증득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말과 이야기, 기틀의 헤아림, 글귀가 언제 그를 얽어맨 적이 있었는가. 만약 이치의 바탕이 밝지 못하면, 가슴속에 걸리는 것이 생긴다. 그러면 물음을 받았을 때, 마치 담요 위에서 고양이를 끌어당기듯 발톱이 걸려 꼼짝하지 못한다.그래서 조사가 이렇게 일렀다.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구르나, 구르는 그곳이 참으로 그윽하다. 흐름을 따라 성품을 알아차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다.” 총림의 형제들이 처음 참문할 때를 보라. 애초에는 참으로 바른 발심이 있다. 선지식 앞에서 이렇게 아뢴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제 일이 아직 밝지 못합니다.” 이 말을 곰곰이 미루어 보라. 어찌 그저 이름을 위하고 지위를 위하며, 나는 잘한다, 나는 낫다 하는 마음이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이 마음을 지닌다면, 제 일이 밝지 못할까 근심할 일이 없다. 그런데 얼마간 가까이 모시고도, 제 몸에 털끝만큼도 들어맞는 데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곧 “어떠한가,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따진다. 그러면서 저마다 견해의 길고 짧음을 견주어, ‘나’라는 아상만 키운다. 나설 자리를 찾으며 이렇게 말한다. “훗날 한 조각 향을 사르며 스승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애초의 바른 발심을 잃고, 도리어 마군의 경계에 떨어지는 줄은 전혀 알지 못한다. 옛사람이 이렇게 일렀다. “설사 딸린 권속과 그 꾸밈이 있더라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이왕에 다 같이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처음 먹은 그 마음을 이루어, 나고 죽음을 벗어나 꿰뚫기를 기약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요긴하다. 때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저마다 마땅히 힘써야 한다.
풀이 7
石頭希遷 석두희천石頭·藥山 문답과 石頭의 讚偈 '從來共住不知名…'은 『景德傳燈錄』 권14 藥山惟儼章에 있다. 燈錄에는 藥山의 첫 답이 '一切不爲'로 되어 있다.
從來共住不知名 종래공주불지명석두(石頭)·약산(藥山) 「일물불위(一物不爲)」 문답 및 석두(石頭) 송(頌) '종래공주불지명(從來共住不知名), 임운상장지마행(任運相將只麼行), 자고상현유불식(自古上賢猶不識), 조차범류기가명(造次凡流豈可明)'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4 「약산유엄(藥山惟儼)」장에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一瓣香 일판향'覓箇出頭處,他時一瓣香不敢辜負和尚'은 嗣法의 禮를 出世와 名利를 바라는 發願으로 삼는 것이다. 원오는 이를 들어 '失卻元初正因,卻墮在魔界去'라 꾸짖는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胷次有物問著
問著를 '물음을 받았을 때'(피동·비인칭)로 새기면 뒤의 氈上拽猫兒(발톱이 걸려 옴짝달싹 못함) 비유와 긴밀히 맞고, 語錄에서 '問著'가 흔히 '물으면·물었을 때'로 쓰이는 관용에도 부합한다. 다만 '질문을 해도'(능동)로 새겨도 '막힌다'는 귀결은 같고 능동 독해를 결정적으로 배제할 전거는 없으므로, 피동을 우선하되 양립으로 둔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覓箇出頭處
出頭處는 '드러남'과 '벗어남'의 양의를 지니나, 이 대목은 增長我見에 이어 一瓣香·不敢辜負和尚의 자기현시로 귀결되므로 '두각을 낼(머리 내밀) 자리를 찾음'으로 새겨야 문맥이 관통한다. 出頭를 出離(빠져나옴)로 본 책의 새김은 명리 추구를 경계하는 논지와 어긋나니, 자체역이 옳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8
  1. 負舂 부용

    방아를 진다는 말로, 육조 혜능이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 문하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며 지낸 일을 이른다. 허리에 돌을 매달고 방아를 찧었다고 전하며, 몸을 잊고 법을 구한 본보기로 든다.

  2. 曹源一滴水 조원일적수

    '조계(曹溪)(혜능(慧能))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한 방울 물'이다. 덕소(德韶)가 법안(法眼) 회하에서 이 문답을 듣고 앞선 알음알이가 얼음 녹듯 풀렸다. 출전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5 천태덕소(天台德韶)장이다.

  3. 從來共住不知名 종래공주불지명

    석두(石頭)가 앉아 있는 약산(藥山)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약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것은 천 명의 성인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석두가 이를 기려 지은 게송의 첫 구가 '예로부터 함께 살아도 이름을 모른다'이다. 늘 함께하면서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본래 자리를 노래한 것으로 읽힌다.

  4. 心隨萬境轉 심수만경전

    서천(西天) 제22조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의 전법게(傳法偈)이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 선가(禪家)에서 '수처작주'의 전거로 널리 인용된다.

  5. 一瓣香 일판향

    향 한 조각이라는 말이다. 선사가 처음 법석을 열 때 향을 사르며 '이 한 조각 향은 아무개 스님께 올린다'고 하여, 법을 이은 스승을 밝히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일을 이른다. 오조법연은 스승 백운수단에게, 원오는 스승 오조법연에게 이렇게 향을 올렸다.

  6. 眷屬莊嚴不來自至 권속장엄불래자지

    '설사 권속의 장엄이 있더라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는 고인(古人)의 말이다. 도를 이루면 명리는 저절로 따라옴을 말한다.

  7.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8.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9.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10.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11.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12. 得坐披衣 득좌피의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다는 말로, 깨달음에 들어 제 자리를 얻었음을 이른다. 앙산(仰山)이 한 스님에게 '자리를 얻어 옷을 입었으니 이제부터 스스로 살펴라(向後自看)'고 한 말로 널리 쓰였다.

  13. 雪峰義存 설봉의존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천주(泉州) 남안(南安) 사람이다.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 설봉산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 운문(雲門)과 현사(玄沙)의 계통에서 운문종과 법안종이 나왔다.

  14.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15. 藥山惟儼 약산유엄

    약산유엄(藥山惟儼, 746~829)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석두(石頭) 스님의 법을 이었고, 마조(馬祖)에게도 배웠다. 예주(澧州) 약산에 머물렀다. 석두가 '무엇을 하느냐' 묻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문답이 유명하다. 그 법은 조동종으로 이어졌다.

  16. 洞山良价 동산양개

    당나라 선승(807~869)으로,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을 이었고 조동종(曹洞宗)을 연 사람으로 받든다. 균주(筠州) 동산에서 크게 가르쳐 동산이라 불린다. 죽은 뒤 오본대사(悟本大師)라는 시호를 받아 오본이라고도 부른다. 조산(曹山)이 그의 제자다. 운문의 제자 동산수초(洞山守初)와는 다른 사람이다.

  17. 二十五有 이십오유

    중생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삼계(三界)를 스물다섯 갈래로 나눈 것이다. 욕계에 열넷, 색계에 일곱, 무색계에 넷이 있다. 윤회하는 온 세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쓴다.

  18. 諧知浴 해지욕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해지욕」을 지어 준 승려 해(諧)이다. '지욕'은 절의 목욕간을 맡아보는 소임(욕주)이다.

  19. 欽山 흠산

    흠산문수(欽山文邃)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法嗣)(청원(靑原)계)이며, 암두(巖頭)·설봉(雪峰)과 함께 총림을 편력한 '삼인동행(三人同行)' 고사의 한 사람이다.

  20. 投子大同 투자대동

    투자대동(投子大同, 819~914)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서주(舒州) 회녕(懷寧) 사람이다.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서 종지를 깨치고 고향 투자산(投子山)에 숨어 살아 '투자'라 불린다. 조주(趙州)와 주고받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21. 德嶠·德山 덕교·덕산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사(法嗣)(청원(靑原)계)이자 암두(巖頭)·설봉(雪峰)의 스승이다. '덕교(德嶠)'는 덕산(德山)의 별칭이며(교(嶠)는 뾰족한 높은 산), 문하 두 사람을 '법문룡상(法門龍象)'이라 평하였다.

  22. 新豐 신풍

    동산양개(洞山良价)의 주석지 신풍산(新豐山)이다. '䆳契新豐'은 동산(洞山)(조동(曹洞))의 종지에 깊이 계합함을 뜻한다.

  23. 天台韶國師 천태소국사

    천태덕소(天台德韶)(891–972)로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사(法嗣)이며 법안종(法眼宗)이다. 오월국(吳越國)의 국사(國師)로, '조원일적수(曹源一滴水)' 한 마디에 대오(大悟)한 인물이다.

  24. 清涼大法眼 청량대법안

    법안문익(法眼文益)(885–958)으로 법안종(法眼宗) 개조이자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법사(法嗣)이다. 금릉(金陵) 청량원(淸涼院)에 주석하여 '청량(淸涼)'으로 칭하며, 덕소(德韶)의 스승이다.

  25. 斷臂 단비

    이조(二祖) 혜가(慧可)가 달마(達磨)에게 팔을 끊어 구법(求法)한 고사이다. 구도의 결연함을 상징한다.

  26. 敎外別行·單傳心印·直指人心·見性成佛 교외별행·단전심인·직지인심·견성성불

    선문(禪門)의 종지를 표방하는 상투 표현이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의 인(印)만을 홀로 전한다는 뜻이다.

  27. 正因·魔界 정인·마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밝히려는 최초의 바른 발심(正因)을 잃고 아견(我見)을 키우면 도리어 마(魔)의 경계에 떨어짐을 경계한 것이다.

  28. 心隨萬境轉·轉處實能幽·隨流認得性·無喜亦無憂 심수만경전·전처실능유·수류인득성·무희역무우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구르나, 구르는 곳마다 참으로 그윽하다. 흐름을 따르며 본성을 알아보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다'는 게송이다. 인도의 제22조 마나라 존자가 법을 전하며 읊었다고 전하며(경덕전등록 권2), 원오도 벽암록 제22칙에서 앞 두 구를 들었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8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