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3
후치 구조 'V+不得'은 가능보어로서 '~될(할) 수 없다'(불가능)를 나타내며, 금지의 전치 '不得+V'(~해서는 안 된다)와 구별된다. 따라서 '收攝不得'은 '거두어 넣을(가둘) 수 없다'로, 穩密해진 田地가 성(聖)·범(凡) 어느 자리에도 收攝되지 않음을 뜻한다. 不得을 당위(들어가지 않아야)로 처리하고 收攝을 '들어감'으로 바꾼 책의 새김은 구문을 오독한 것이니, 자체역이 옳다.
沃은 '물을 대다·붓다'로 그 대상은 雪이다. 곧 '如湯沃雪'은 '끓는 물을 눈에 붓듯'이 축자이며, 눈이 삽시간에 녹는 如湯消雪·如湯澆雪류의 상투 비유와도 합치한다. 책의 '끓는 물에 눈을 뿌리는'은 沃의 주객(부어지는 대상)을 뒤바꾼 오독이니, 자체역이 옳다.
풀이 11
책은 '因人所領'을 '사람을 피곤케 함'으로 옮겼으나, 이는 '남에게서 받은 바'의 오독이다. 구조는 學解가 곧 남에게서 받은 十言·一句·一機·一境이어서 다만 多聞에나 보탬이 된다는 것이므로, '남에게서 받은…'으로 새김이 옳다.
풀이 7
問著를 '물음을 받았을 때'(피동·비인칭)로 새기면 뒤의 氈上拽猫兒(발톱이 걸려 옴짝달싹 못함) 비유와 긴밀히 맞고, 語錄에서 '問著'가 흔히 '물으면·물었을 때'로 쓰이는 관용에도 부합한다. 다만 '질문을 해도'(능동)로 새겨도 '막힌다'는 귀결은 같고 능동 독해를 결정적으로 배제할 전거는 없으므로, 피동을 우선하되 양립으로 둔다.
出頭處는 '드러남'과 '벗어남'의 양의를 지니나, 이 대목은 增長我見에 이어 一瓣香·不敢辜負和尚의 자기현시로 귀결되므로 '두각을 낼(머리 내밀) 자리를 찾음'으로 새겨야 문맥이 관통한다. 出頭를 出離(빠져나옴)로 본 책의 새김은 명리 추구를 경계하는 논지와 어긋나니, 자체역이 옳다.
이 편의 낱말 28
- 負舂 부용
방아를 진다는 말로, 육조 혜능이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 문하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며 지낸 일을 이른다. 허리에 돌을 매달고 방아를 찧었다고 전하며, 몸을 잊고 법을 구한 본보기로 든다.
- 曹源一滴水 조원일적수
'조계(曹溪)(혜능(慧能))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한 방울 물'이다. 덕소(德韶)가 법안(法眼) 회하에서 이 문답을 듣고 앞선 알음알이가 얼음 녹듯 풀렸다. 출전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5 천태덕소(天台德韶)장이다.
- 從來共住不知名 종래공주불지명
석두(石頭)가 앉아 있는 약산(藥山)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약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것은 천 명의 성인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석두가 이를 기려 지은 게송의 첫 구가 '예로부터 함께 살아도 이름을 모른다'이다. 늘 함께하면서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본래 자리를 노래한 것으로 읽힌다.
- 心隨萬境轉 심수만경전
서천(西天) 제22조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의 전법게(傳法偈)이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 선가(禪家)에서 '수처작주'의 전거로 널리 인용된다.
- 一瓣香 일판향
향 한 조각이라는 말이다. 선사가 처음 법석을 열 때 향을 사르며 '이 한 조각 향은 아무개 스님께 올린다'고 하여, 법을 이은 스승을 밝히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일을 이른다. 오조법연은 스승 백운수단에게, 원오는 스승 오조법연에게 이렇게 향을 올렸다.
- 眷屬莊嚴不來自至 권속장엄불래자지
'설사 권속의 장엄이 있더라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는 고인(古人)의 말이다. 도를 이루면 명리는 저절로 따라옴을 말한다.
-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 巖頭全豁 암두전활
암두전활(巖頭全奯, 828~887)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다. 설봉(雪峰)·흠산과 함께 행각한 도반으로, 오산(鰲山)에서 눈에 갇혔을 때 설봉을 일깨웠다. 도적의 칼 앞에서 크게 외치고 입적했다. 원오는 그의 한한지(閑閑地) 법문을 자주 들었다.
- 石頭希遷 석두희천
석두희천(石頭希遷, 701~79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청원행사(青原行思)의 법을 이었다. 남악 형산(衡山)의 절 동쪽 너럭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살아 '석두 화상'이라 불렸다. 『참동계(參同契)』를 지었고, 그 법맥에서 조동·운문·법안 세 종파가 나왔다.
- 得坐披衣 득좌피의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다는 말로, 깨달음에 들어 제 자리를 얻었음을 이른다. 앙산(仰山)이 한 스님에게 '자리를 얻어 옷을 입었으니 이제부터 스스로 살펴라(向後自看)'고 한 말로 널리 쓰였다.
- 雪峰義存 설봉의존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천주(泉州) 남안(南安) 사람이다. 덕산(德山)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 설봉산에 머물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 운문(雲門)과 현사(玄沙)의 계통에서 운문종과 법안종이 나왔다.
- 無心道人 무심도인
분별하고 꾸미는 마음이 다 쉬어 아무 데도 매이지 않은 도인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전심법요』에 ‘시방의 부처를 공양함이 무심도인 하나를 공양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 藥山惟儼 약산유엄
약산유엄(藥山惟儼, 746~829)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석두(石頭) 스님의 법을 이었고, 마조(馬祖)에게도 배웠다. 예주(澧州) 약산에 머물렀다. 석두가 '무엇을 하느냐' 묻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문답이 유명하다. 그 법은 조동종으로 이어졌다.
- 洞山良价 동산양개
당나라 선승(807~869)으로, 운암담성(雲巖曇晟)의 법을 이었고 조동종(曹洞宗)을 연 사람으로 받든다. 균주(筠州) 동산에서 크게 가르쳐 동산이라 불린다. 죽은 뒤 오본대사(悟本大師)라는 시호를 받아 오본이라고도 부른다. 조산(曹山)이 그의 제자다. 운문의 제자 동산수초(洞山守初)와는 다른 사람이다.
- 二十五有 이십오유
중생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삼계(三界)를 스물다섯 갈래로 나눈 것이다. 욕계에 열넷, 색계에 일곱, 무색계에 넷이 있다. 윤회하는 온 세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쓴다.
- 諧知浴 해지욕
원오가 원오심요의 「시해지욕」을 지어 준 승려 해(諧)이다. '지욕'은 절의 목욕간을 맡아보는 소임(욕주)이다.
- 欽山 흠산
흠산문수(欽山文邃)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法嗣)(청원(靑原)계)이며, 암두(巖頭)·설봉(雪峰)과 함께 총림을 편력한 '삼인동행(三人同行)' 고사의 한 사람이다.
- 投子大同 투자대동
투자대동(投子大同, 819~914)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서주(舒州) 회녕(懷寧) 사람이다.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서 종지를 깨치고 고향 투자산(投子山)에 숨어 살아 '투자'라 불린다. 조주(趙州)와 주고받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 德嶠·
德山 덕교·덕산 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사(法嗣)(청원(靑原)계)이자 암두(巖頭)·설봉(雪峰)의 스승이다. '덕교(德嶠)'는 덕산(德山)의 별칭이며(교(嶠)는 뾰족한 높은 산), 문하 두 사람을 '법문룡상(法門龍象)'이라 평하였다.
- 新豐 신풍
동산양개(洞山良价)의 주석지 신풍산(新豐山)이다. '䆳契新豐'은 동산(洞山)(조동(曹洞))의 종지에 깊이 계합함을 뜻한다.
- 天台韶國師 천태소국사
천태덕소(天台德韶)(891–972)로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법사(法嗣)이며 법안종(法眼宗)이다. 오월국(吳越國)의 국사(國師)로, '조원일적수(曹源一滴水)' 한 마디에 대오(大悟)한 인물이다.
- 清涼大法眼 청량대법안
법안문익(法眼文益)(885–958)으로 법안종(法眼宗) 개조이자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법사(法嗣)이다. 금릉(金陵) 청량원(淸涼院)에 주석하여 '청량(淸涼)'으로 칭하며, 덕소(德韶)의 스승이다.
- 斷臂 단비
- 敎外別行·
單傳心印· 교외별행·直指人心· 見性成佛 단전심인· 직지인심· 견성성불 선문(禪門)의 종지를 표방하는 상투 표현이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의 인(印)만을 홀로 전한다는 뜻이다.
- 正因·
魔界 정인·마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밝히려는 최초의 바른 발심(正因)을 잃고 아견(我見)을 키우면 도리어 마(魔)의 경계에 떨어짐을 경계한 것이다.
-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심수만경전·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전처실능유·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마음은 온갖 경계를 따라 구르나, 구르는 곳마다 참으로 그윽하다. 흐름을 따르며 본성을 알아보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다'는 게송이다. 인도의 제22조 마나라 존자가 법을 전하며 읊었다고 전하며(경덕전등록 권2), 원오도 벽암록 제22칙에서 앞 두 구를 들었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