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9편

가중현량(嘉仲賢良)에게 드리는 글

示嘉仲賢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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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한문全心卽佛,全佛卽人,人佛無異,始爲道矣。此諦實之言也。
번역온 마음이 그대로 부처요, 온 부처가 그대로 사람입니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道)가 됩니다. 이것은 참되고 진실한 말입니다.
但心真則人佛俱真,是故祖師惟直指人心,俾見性成佛。
다만 마음이 참되면 사람도 부처도 다 참됩니다. 그러므로 조사(祖師)께서는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然此心雖人人具足,從無始來清淨無染,初不取著,寂照凝然,了無能所,十成圓陀陀地。
그런데 이 마음은 사람마다 다 갖추고 있습니다. 시작 없는 옛적부터 맑고 깨끗하여 물듦이 없습니다. 애초에 붙잡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고요히 비추며 엉겨 있어, 보는 자도 보이는 것도 전혀 없습니다. 열에 열 온전히 둥글고 두렷합니다.
只緣不守自性,妄動一念,遂起無邊知見,漂流諸有根腳下,恒常佩此本光,未嘗曖昧,而於根塵枉受纏縛。
다만 자기 성품(自性)을 지키지 못하고 한 생각을 망령되이 움직인 탓에, 마침내 가없는 지견(知見)을 일으켜 온갖 존재의 발밑으로 떠돌게 되었습니다. 늘 이 본래의 빛(本光)을 지니고 있어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건만, 감각 기관과 그 대상(根塵)에 부질없이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쉽게 읽기온 마음이 그대로 부처요, 온 부처가 그대로 사람입니다.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도가 됩니다. 이것이 참된 말씀입니다. 마음이 참되면 사람도 부처도 다 함께 참됩니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 마음은 사람마다 온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시작 없는 옛적부터 맑아 물듦이 없고, 처음부터 무엇을 취하거나 붙잡지도 않습니다. 고요히 비추어 흔들림 없이 엉겨 있고, 보는 나도 보이는 대상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원만하고 두렷합니다. 다만 그 자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 생각을 잘못 일으킨 탓에, 끝없는 분별심을 일으켜 온갖 존재의 발밑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늘 이 본래 갖춘 밝은 빛을 지녀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건만, 감각기관과 바깥 경계 사이에서 부질없이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풀이 3
本光 본광'漂流諸有根腳下,恒常佩此本光,未嘗曖昧,而於根塵枉受纏縛' — 윤회 속에서도 本光은 잃은 적이 없는데 根塵에 공연히 얽매인다는 대비. 『圜悟語錄』 권15에 같은 글이 있다('未常靄昧').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漂流諸有根腳下,恒常佩此本光
양립가능. CBETA 표점은 '諸有根腳下'로 끊어 根腳下를 앞의 漂流에 붙이므로 자체역('온갖 존재의 발밑으로 떠돌게')이 저본 표점에 부합한다. 그러나 根腳下를 뒤 구에 붙여 '근본 자리에서 늘 이 본광을 차고'로 읽는 책의 독법도 의미상 성립하며(漂流諸有—根腳下 恒常佩此本光의 표면·근본 대비), 오히려 未嘗曖昧와 잘 이어진다. 편집 표점 외에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한다.
9.2
한문若能蘊宿根,遇諸佛祖師直截指示處,便倒底脫卻膩脂衲襖,赤條條,淨倮倮,直下承當,不從外來,不從內出,當下廓然明證此性,更說甚人佛心?
번역만약 오래 쌓아 온 근기가 있어, 여러 부처와 조사께서 곧바로 끊어 가리켜 보이시는 자리를 만난다면 어떻겠습니까. 곧 밑바닥까지 기름때 전 누더기를 벗어 버려, 발가벗은 채 말끔해집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떠맡습니다.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당장에 툭 트여 이 성품을 밝게 깨칩니다. 그러니 다시 무슨 사람이니 부처니 마음이니를 말하겠습니까?
如紅爐上著一點雪,何處更有如許多忉怛也?
벌겋게 단 화로 위에 눈 한 점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에 다시 그 많은 번거로움이 있겠습니까?
是故此宗不立文字語句,惟許最上乘根器,如飄風疾雷,電激星飛,脫體契證,截生死流,破無明殻,了無疑惑,直下頓明,二六時中轉一切事緣,皆成無上妙智。
그러므로 이 종문(宗門)은 문자와 말을 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가장 높은 근기(最上乘根器)만을 허락합니다. 회오리바람과 빠른 우레처럼, 번개가 치고 별이 날듯이, 몸째로 벗어나 맞아떨어지게 깨칩니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무명(無明)의 껍질을 깨뜨려, 의혹이 조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단박 밝힙니다. 그리하여 하루 온종일 온갖 일과 인연을 굴려, 모두 위없는 묘한 지혜를 이룹니다.
쉽게 읽기만약 오래 쌓인 근기가 있어, 여러 부처와 조사께서 곧바로 끊어 가리켜 보이시는 자리를 만난다고 합시다. 그러면 밑바닥까지 기름때 전 누더기를 벗어 버리듯, 발가벗어 말끔히 비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감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당장에 확연히 이 성품을 밝게 증득하는데, 다시 무슨 사람이니 부처니 마음이니를 따지겠습니까? 마치 벌겋게 단 화로 위에 눈송이 하나를 떨구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무슨 번거로운 군더더기가 다시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종문은 문자와 어구를 세우지 않고, 오직 가장 높은 가르침을 받을 근기만을 허락합니다. 회오리바람과 빠른 우레처럼, 번개가 치고 별똥이 나는 듯이, 온몸째 벗어나 계합하여 증득합니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무명의 껍질을 깨뜨려, 조금의 의혹도 없이 그 자리에서 단박 밝힙니다. 그리하여 하루 온종일 온갖 일과 인연을 굴리면서, 모두 위없는 묘한 지혜를 이룹니다.
9.3
한문豈假厭喧求靜,棄彼取此,一真一切真,一了一切了,總萬有於心源,握權機於方外,而應物現形,無法不圓,何有於我哉?
번역어찌 시끄러움을 싫어하여 고요함을 구하고,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가 참되면 모든 것이 참되고, 하나를 깨치면 모든 것을 깨칩니다. 만유(萬有)를 마음의 근원에 거두고, 방편의 기틀을 격식 밖에서 쥡니다.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나타내되, 어떤 법도 원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나에게 걸림이 있겠습니까?
要須先定自己落著立處,既硬糾糾地,自然風行草偃。
모름지기 먼저 자기가 딛고 설 자리를 정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굳세고 단단해지면,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듯 저절로 됩니다.
所以王老師十八上便解作活計,香林四十年乃成一片。
그래서 왕노사(王老師, 南泉)께서는 열여덟에 벌써 살림살이를 꾸릴 줄 아셨고, 향림(香林)께서는 사십 년 만에야 한 덩어리를 이루셨습니다.
쉽게 읽기그러니 어찌 시끄러움을 싫어해 고요함을 구하고, 저것을 버려 이것을 취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가 참되면 모든 것이 참되고, 하나를 깨치면 모든 것을 깨칩니다. 온갖 존재를 마음의 근원으로 거두어들이고, 방편의 기틀을 격식 밖에서 쥡니다. 그리하여 사물에 응하여 온갖 모습을 나타내되, 어떤 법도 원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나를 걸림으로 붙잡겠습니까? 다만 먼저 자기가 딛고 설 자리를 정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굳세고 단단하면, 자연히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감화가 절로 미칩니다. 그래서 남전 왕노사는 열여덟에 벌써 살림살이를 지을 줄 아셨고, 향림 선사는 사십 년 만에야 비로소 한 덩어리를 이루셨습니다.
풀이 3
南泉普願 남전보원南泉 示衆 '王老師十八上便解作活計'(『聯燈會要』 권4). 心要는 이를 '香林四十年乃成一片'과 맞세웠다. 趙州의 '十八上便解破家散宅'과 짝으로도 들린다(『五燈會元』 권20).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無法不圓,何有於我哉
양립가능. 자체역은 두 구를 분리해 '何有'(무슨 어려움·걸림이 있으랴, 論語 '何有於我哉' 출전)를 살려 '어떤 법도 원만하지 않음이 없거늘, 어찌 나에게 걸림이 있으랴'로 읽었고, 책은 '何有於我'를 앞 구에 이어 '어찌 나에게 원만하지 않은 법이 있으랴'로 병합해 읽었다. 何有가 '무엇이 있으랴'로 두 방향 다 통하여 양립한다.
9.4
한문塵勞之儔,爲如來種,只在當人善自看風使帆,念念相續,心心不住,向此長生路上行履,卽與佛祖同德同體,同作同證。
번역번뇌(塵勞)의 무리가 여래(如來)의 씨앗이 됩니다. 이는 오직 그 사람이 스스로 바람을 잘 살펴 돛을 부리는 데 달려 있습니다. 생각생각 이어 가되 마음마음 머물지 않고, 이 오래 사는 길(長生路) 위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불조(佛祖)와 덕도 같고 몸도 같으며, 짓는 것도 같고 깨친 것도 같아집니다.
況百里之政併在手頭,安民利物卽是自安,萬化同此一機,千差並此一照,盡剎塵法界可以融通,何況人佛無異耶?
하물며 백 리 고을의 정사(政事)가 손안에 다 있으니, 백성을 편안케 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스스로를 편안케 하는 것입니다. 온갖 변화가 이 한 기틀과 같고, 천 가지 차별이 이 한 비춤에 아우러집니다. 온 세계 티끌만큼 많은 법계(法界)도 두루 통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쉽게 읽기번뇌의 무리가 도리어 여래의 씨앗이 됩니다. 이는 오직 당사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 바람을 살펴 돛을 잘 부려, 생각생각 이어 가되 마음마음 머물지 않고, 이 장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곧 불조와 더불어 덕도 같고 몸도 같으며, 지음도 같고 증득도 같아집니다. 더구나 백 리 고을의 정사가 손안에 다 있으니, 백성을 편안케 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일이 그대로 자기를 편안케 하는 일입니다. 온갖 변화가 이 하나의 기틀에서 나오고, 천 가지 차별이 이 하나의 비춤으로 아우러집니다. 온 세계 티끌처럼 많은 법계마저 두루 통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풀이 3
塵勞之儔·爲如來種 진로지주·위여래종〔병렬용례〕 이 대목('塵勞之儔爲如來種…同作同證')은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 법어에도 거의 같은 글로 실려 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況百里之政併在手頭
책 오역. '併在手頭'는 '정사가 모두 손안에 갖춰져 있다'는 서술로 뒤의 '安民利物卽是自安'과 순접한다. 책의 '손 끝에나 있겠습니까'는 서술문을 폄하성 반어의문으로 오독한 것이다. 나의 '손안에 다 있으니'가 정확하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安民利物
양립가능. '物'을 자체역은 '만물'(民과의 대구·治民 문맥)로, 책은 '중생'(불가의 利物=利生)으로 옮겼다. 物이 사물·타인·중생의 양의를 지녀 治民 문맥에서 둘 다 무방한 이독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5
  1. 全心卽佛·全佛卽人 전심즉불·전불즉인

    마음과 부처와 사람이 온전히 하나임을 세우는 서두. 원오가 선종의 즉심즉불(卽心卽佛)·심불중생무차별(心佛衆生無差別)의 종지를 재가자에게 압축해 제시한 대문.

  2.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3. 無始 무시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이다. '무시이래(無始以來)'의 준말로, '무시래(無始來)'라고도 쓴다.

  4. 十成圓陀陀地 십성원타타지

    완전무결하게 원만하고 두렷한 모양. '십성(十成)'은 '십분(十分)·완전히', '타타(陀陀)'는 원만함을 형용하는 첩어(疊語)로 '圓陁陁'로도 쓴다.

  5. 本光 본광

    본래 갖추어진 광명, 곧 사람마다 지닌 제 성품의 신령한 밝음을 이른다.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으나, 스스로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6. 根塵 근진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여섯 경계를 함께 이른다. 눈·귀·코·혀·몸·뜻과, 그것이 만나는 빛깔·소리·냄새·맛·닿음·생각의 대상이다. 백장(百丈)의 '근진을 멀리 벗어났다'는 말이 유명하다.

  7. 膩脂衲襖 이지납오

    기름때(니지)가 밴 누더기 옷. 오래 쌓인 습기(習氣)·집착의 비유. 선어의 '脫卻膩脂帽子·鶻臭布衫'처럼 낡은 견해를 벗음을 상징.

  8. 赤條條·淨倮倮 적조조·정라라

    발가벗어 걸림 없이 말끔히 빈 모양. 선문 상용어 '적쇄쇄(赤灑灑) 정나나(淨裸裸)'와 같으며 '나(倮)'는 '나(裸)'의 이체자.

  9. 紅爐上著一點雪 홍로상저일점설

    벌겋게 단 화로 위 한 점 눈이 순식간에 녹듯 번뇌·의혹이 자취 없이 사라짐을 비유하는 선문 상투어(紅爐一點雪).

  10. 忉怛 도달

    번거롭고 자질구레함. '도도달달(忉忉怛怛)'의 준말로 잔말·군더더기를 뜻함.

  11. 不立文字 불립문자

    글자나 말을 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경전의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일컫는다.

  12.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13. 一真一切真·一了一切了 일진일체진·일료일체료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고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침. 화엄의 일즉일체(一卽一切)와 통하는 원융(圓融)의 논리.

  14. 握權機於方外 악권기어방외

    방편의 기틀(權機)을 격식·상규의 밖에서 쥠. '권(權)'은 방편(權變), '방외(方外)'는 곧 격외(格外).

  15. 應物現形 응물현형

    중생의 기틀(物)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냄. 달·물그림자의 비유처럼 근기에 따라 응현(應現)함.

  16. 風行草偃 풍행초언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다는 말이다. 덕 있는 이의 교화가 억지 없이 저절로 사람들에게 미침을 비유한다. 『논어』에서 온 말이다.

  17. 塵勞之儔·爲如來種 진로지주·위여래종

    '번뇌의 무리가 여래의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유마경(維摩經)』에서 가섭이 문수의 설법에 감탄하며 한 말이다. 번뇌를 떠나 따로 깨달음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18. 看風使帆 간풍사범

    바람을 살펴 돛을 부림. 형편·기틀에 따라 알맞게 대응함의 비유.

  19. 百里之政 백리지정

    백 리 되는 고을의 정사, 곧 현(縣) 하나를 다스리는 지방관의 직무. 수자(受者) 가중(嘉仲)이 지방관(현령급)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대문.

  20. 剎塵法界 찰진법계

    무수한 국토(剎)와 티끌(塵) 수만큼 많은 법계, 곧 온 우주 법계 전체.

  21.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22. 香林澄遠 향림징원

    향림징원(香林澄遠, ?~987)이다.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으로, 운문(雲門)을 열여덟 해 동안 시자로 모시다 깨쳐 그 법을 이었다. 촉(蜀) 땅 청성산 향림원에 머물렀다. 세상을 떠날 때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조각을 이루었다'고 한 말이 이름났다.

  23.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24. 能所 능소

    주관과 객관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능(能)은 보고 아는 쪽이고, 소(所)는 보이고 알려지는 쪽이다. 선에서는 이렇게 둘로 가르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깨침에 걸림이 된다고 본다.

  25. 嘉仲賢良 가중현량

    원오가 법어를 써 준 재가 관료로, 그 글이 원오심요에 실려 있다. '가중'은 그의 자, '현량'은 관인을 높여 부르는 말로 보인다. 그 글 끝에 '백 리 고을의 정사가 손에 달렸다'고 하였으니 한 고을을 다스리던 지방관이었던 듯하다.

  26. 不守自性·妄動一念 불수자성·망동일념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忽然念起(홀연염기)·일념무명(一念無明) 사상과 통하는 표현. 본래 청정한 마음이 자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 생각을 망령되이 일으켜 생사에 유전함을 말함.

  27. 最上乘根器 최상승근기

    가장 뛰어난 가르침(최상승)을 감당할 근기, 곧 돈오(頓悟)의 상근기(上根機).

  28. 長生路 장생로

    장생(長生)의 길. 생사를 벗어난 불생불멸의 본분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의 길을 비유.

  29. 王老師·南泉 왕노사·남전

    남전 보원 스님이 스스로를 부르던 말이다. 남전의 속성이 왕씨였기 때문이다(경덕전등록 권8). '왕노사는 열여덟에 벌써 살림을 꾸릴 줄 알았다'는 남전의 말이 이름났다(연등회요 권4).

  30. 香林·四十年打成一片 향림·사십년타성일편

    향림 징원 스님이 '나는 사십 년 만에 비로소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고 한 말이다. 오랜 세월 끊임없이 닦아 마침내 공부가 한 조각으로 무르익었음을 이른다. 벽암록 제17칙 평창에 실렸고, 원오도 어록에서 거듭 들었다.

  31. 塵勞之儔爲如來種 진로지주위여래종

    '번뇌의 무리가 곧 여래의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유마경 불도품에서 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이라고 한 대목에서 왔다. 번뇌를 떠나 따로 깨달음이 있지 않다는 뜻으로 선가에서 즐겨 든다.

  32. 全心卽佛 전심즉불

    마음과 부처와 사람이 온전히 하나임을 세우는 서두. 원오가 선종의 卽心卽佛(즉심즉불)·心佛衆生無差別의 종지를 재가자에게 압축해 제시한 대문.

  33. 不守自性 불수자성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忽然念起(홀연염기)·一念無明 사상과 통하는 표현. 본래 청정한 마음이 자성을 지키지 못하고 한 생각을 망령되이 일으켜 생사에 유전함을 말함.

  34. 赤條條 적조조

    발가벗어 걸림 없이 말끔히 빈 모양. 선문 상용어 '赤灑灑 淨裸裸'와 같으며 '倮'는 '裸'의 이체자.

  35. 一真一切真 일진일체진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고 하나를 깨치면 일체를 깨침. 화엄의 一卽一切와 통하는 원융(圓融)의 논리.

문단 4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