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50편

엄(嚴)·수(殊) 두 도인에게 주는 글

示嚴殊二道人

50.1
한문參須實參,見須實見,用須實用,證須實證。若纖毫不實,卽落虗也。
번역참구는 실답게 참구해야 하고, 보는 것은 실답게 보아야 한다. 쓰는 것은 실답게 써야 하고, 증득은 실답게 증득해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실답지 못하면 곧 헛됨에 떨어진다.
此實地乃三世諸佛所證,歷代祖師所傳,惟此一實,謂之腳蹋實地。
이 진실한 땅(實地)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것이요, 역대 조사(祖師)께서 전하신 것이다. 오직 이 하나의 진실을 두고 ‘발로 진실한 땅을 밟는다(腳蹋實地)’고 한다.
初則須大悟,若只認門頭戶底,作窠窟說路,布立機境,照用取捨解會,則不徹也。
처음에는 반드시 크게 깨쳐야 한다. 문 앞이나 문지방 밑만 알아보고서 그것으로 소굴을 지어 길을 말하거나, 기틀과 경계를 벌여 세워 비춤과 씀(照用), 취하고 버림으로 알음알이를 짓는다면, 사무쳐 뚫지 못한다.
쉽게 읽기참구는 참답게 참구하고, 봄은 참답게 보며, 씀은 참답게 쓰고, 증득은 참답게 증득해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참답지 못하면 곧 헛됨에 떨어진다. 이 진실한 자리야말로 삼세의 모든 부처가 증득한 바요, 대를 이어 온 조사가 전한 바다. 오직 이 하나의 진실을 두고 '발로 실지를 밟는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반드시 크게 깨쳐야 한다. 문 앞이나 문지방 아래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소굴을 짓고 말길을 세우며, 기틀과 경계를 벌여 놓고, 비춤과 씀이나 취하고 버림으로 알음알이를 지으면 끝내 사무쳐 뚫지 못한다.
풀이 4
照用 조용'布立機境,照用取捨解會,則不徹也' — 照用을 機境처럼 세워 두고 取捨·解會의 틀로 삼으면 透徹하지 못한다고 경계한다.
腳蹋實地 각답실지'參須實參,見須實見,用須實用,證須實證…惟此一實,謂之腳蹋實地' — 實參·實見·實用·實證의 '一實'을 腳蹋實地라 정의한다.
50.2
한문此透生死要徑,到﨟月三十日,一千二百斤擔子,須是自有力量,荷負得行,方可翛然獨脫。
번역이것이 생사(生死)를 뚫는 요긴한 지름길이다. 섣달 그믐날에 이르면, 일천이백 근의 짐을 반드시 스스로 힘이 있어 지고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홀로 벗어난다.
是故無業國師垂示:臨終之際,若一毫凡聖情量未盡,纖毫思慮未忘,便乃輕重五陰去也。
그래서 무업(無業) 국사께서 이렇게 보이셨다. “임종할 때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헤아림(情量)이 다하지 않고, 실낱만큼이라도 생각이 잊히지 않으면, 곧 가볍고 무거운 오음(五陰)을 따라가 버리게 됩니다.”
古人以生死事大,是以訪道尋師決擇,豈可只學語言,理會古人公案,下得三五百轉好語,便當得也。
옛사람은 생사의 일을 큰일로 여겼다. 그래서 도를 찾고 스승을 찾아 가려 판가름했다(決擇). 어찌 그저 말만 배우고 옛사람의 공안(公案)을 이리저리 헤아려, 삼백 마디 오백 마디 그럴듯한 말을 굴려 낸 것으로 얻었다 하겠는가.
쉽게 읽기이것이 생사를 뚫는 요긴한 지름길이다. 섣달 그믐날, 곧 목숨이 다하는 임종의 순간에는 일천이백 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때 반드시 스스로 힘이 있어 그 짐을 지고 나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걸림 없이 홀로 벗어난다. 그러므로 무업 국사는 이렇게 일러 보였다. '목숨이 다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범부와 성인이라는 헤아림이 다하지 못하고, 실낱만큼이라도 생각이 잊히지 못하면, 곧 가볍고 무거운 오음을 따라 윤회하러 갑니다.' 옛사람은 나고 죽는 일을 큰일로 여겼다. 그래서 도를 찾고 스승을 찾아 옳고 그름을 가렸다. 그런데 어찌 그저 말과 글만 배우고, 옛사람의 공안을 이리저리 헤아려, 삼백 마디 오백 마디 그럴듯한 말을 굴려 낸 것으로 얻었다 하겠는가.
풀이 6
圜悟克勤 원오극근원오는 『碧巖錄』 評唱에서도 '臘月三十日'을 생사의 마지막 때로 썼다: 제9칙 '及到臘月三十日。換手搥胸'(T48n2003_p0149c08)·제91칙 '於臘月三十日著得力'(T48n2003_p0215c15).
燈錄 등록汾州無業의 上堂語 '臨終之時,一豪凡聖情量不盡,纖塵思念未忘,隨念受生輕重五陰'(『景德傳燈錄』 권28 諸方廣語, T51n2076_p0444c24). 권8 無業章의 임종 유훈('汝等見聞覺知之性…')과는 다른 대목이다.
公案 공안'豈可只學語言,理會古人公案,下得三五百轉好語,便當得也'—公案을 知解로 헤아려 下語만 익히는 것을 꾸짖는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下得三五百轉好語
책은 '轉好語'를 '선문답을 하면서'로 느슨히 옮겼고, 자체역은 轉語(전어)의 어감을 살려 '그럴듯한 말을 굴려 낸 것으로' 옮겼다. 헛된 언변을 배움으로 삼는 태도에 대한 경계라는 귀결은 같으나, 三五百轉이 가리키는 것(선문답 자체인가, 굴려낸 전어의 수인가)이 갈려 양립한다.
50.3
한문將知聰明黠慧,皆爲障道之本,要須冥然扣寂,不怕放教身心如土木瓦礫,驀然翻卻業根種子,
번역그러니 알아야 한다. 총명함과 약삭빠른 지혜는 모두 도를 가로막는 뿌리다. 반드시 그윽이 고요함을 두드려야 한다. 몸과 마음을 흙과 나무, 기와와 자갈처럼 놓아 버리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다 문득 업의 뿌리와 씨앗을 뒤집어엎으면,
便乃知非見學佛學法,如中毒藥相似,然後透出佛法,乃體得本分事也。
곧 그릇됨을 알게 된다. 부처를 배우고 법을 배우는 것이 독약에 맞은 것과 같다고 보게 된다. 그런 뒤에야 불법(佛法)을 뚫고 나와 본분사(本分事)를 몸소 얻는다.
쉽게 읽기마땅히 알아야 한다. 총명함과 약삭빠른 지혜는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뿌리가 된다. 반드시 그윽한 고요함을 두드려야 한다. 몸과 마음을 흙과 나무, 기와와 자갈처럼 놓아 버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문득 업의 뿌리와 종자를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리하여 곧 제 그릇됨을 알아야 한다. 부처를 배우고 법을 배운다는 것마저 독약을 삼키는 일과 같음을 알아챈 뒤에야, 비로소 불법을 뚫고 벗어나 본분사를 몸소 얻게 된다.
50.4
한문此非小緣就分,是久參之士,尤宜放下,不擔著禪道,不輕毀上流,
번역이것은 작은 인연으로 분수껏 되는 일이 아니다. 오래 참구한 사람일수록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 선(禪)이니 도(道)니 하는 것을 짊어지지 말고, 윗길의 사람을 함부로 헐뜯지 말아야 한다.
愈透徹愈低細,愈高明愈韜晦,作箇百不知百不會無用處底人,
사무쳐 뚫을수록 더욱 낮추고 세밀해야 하며, 높고 밝을수록 더욱 감추어야 한다. 백 가지를 모르고 백 가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行不動塵,言不驚眾,澹然安閑,常行恭敬,
걸어도 티끌이 일지 않고, 말해도 대중이 놀라지 않으며, 담담하고 한가로워 늘 공경해야 한다.
始堪保任於一切違順境界,心不動搖,志無改易,達磨謂之一相三昧。
그래야 비로소 온갖 거스르고 따르는 경계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뜻이 바뀌지 않게 지켜 갈(保任) 수 있다. 달마(達磨)께서는 이를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하셨다.
一行三昧,切宜履踐純熟,以至古今作用機緣,便七達八通,亦不留在胸次,等閑蕩蕩地,觸著便轉,捺著便動,拘牽惹絆,不得居千人萬人之中,如無一人相似。不是強爲任運如此,
일행삼매(一行三昧)는 간절히 밟아 익혀 무르익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와 지금의 작용과 기연(機緣)에 이르기까지 일곱으로 트이고 여덟으로 통하되(七達八通), 그것마저 가슴속에 남겨 두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툭 트여서, 건드리면 곧 구르고 누르면 곧 움직인다. 얽매고 끌어당기고 걸어 묶으려 해도 그럴 수 없다.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어도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任運) 이러하다.
그러고도 다시 저 마지막 한마디(末後一語)와 같아야 비로소 된다. 참구하라.
쉽게 읽기이것은 작은 인연으로 분에 맞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래 참구한 이일수록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 선과 도를 짊어지지 말고, 윗길 사람을 함부로 헐뜯지 말아야 한다. 사무쳐 뚫을수록 더욱 낮고 자잘해지고, 높고 밝을수록 더욱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 백 가지를 알지 못하고 백 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걸어도 티끌을 일으키지 않고, 말해도 대중을 놀라게 하지 않으며, 담담하고 편안하여 늘 공경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온갖 거스르고 순한 경계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뜻이 바뀌지 않으니, 이를 지켜 지녀 보임할 수 있다. 달마는 이를 일상삼매라 하였다. 일행삼매는 간절히 밟아 익혀 무르익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나 지금의 작용과 기연에 이르러서도 곧 일곱 군데로 통하고 여덟 군데로 사무치되, 그마저 가슴속에 담아 두지 않아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훤히 트인 자리에서, 건드리면 곧 구르고 누르면 곧 움직여, 얽매이거나 끌리거나 걸리지 않아야 한다.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어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해야 한다. 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저 맨 마지막 한 마디와 같아야 비로소 옳다. 참구하라.
풀이 8
菩提達磨 보리달마'一相三昧·一行三昧'는 『景德傳燈錄』 권5 慧能 示衆과 『六祖壇經』에 보이고, 達磨의 말로 실린 곳은 찾지 못했다(少室六門 포함).
任運 임운'不是強爲,任運如此'로 끊어 '억지로 함이 아니라 저절로 이와 같다'로 읽힌다. 心要의 다른 편과 『圜悟佛果禪師語錄』 권8에 같은 구가 '不是強為,任運如此'로 끊겨 있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不輕毀上流
책은 '不輕毀'를 '경솔하게 다치지 않는다'로 옮기고 '上流'를 뒤 문장의 주어로 붙였으나, 이는 윗길의 높은 이를 함부로 헐뜯지 말라는 뜻이며 뒤 '愈透徹愈低細'의 주어는 久參之士 자신이다. 윗길의 사람을 함부로 헐뜯지 말라는 독법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一行三昧,切宜履踐純熟
책은 '達磨謂之一相三昧。一行三昧'를 이어 붙여 달마가 일상삼매·일행삼매 두 삼매를 함께 이른 것으로 읽었고, 자체역은 CBETA 저본 표점을 좇아 '일행삼매는 밟아 익혀 순숙케 하라'로 끊어 읽었다. 앞의 '심부동요·지무개역'(부동의 고요)을 一相三昧로, 뒤의 '고금 작용기연·칠달팔통'(활발한 작용)을 一行三昧로 나누어 잇는 교리 구도와 저본 표점은 자체역을 뒷받침하나, 一相·一行을 짝지어 달마에게 귀속하는 선가의 관례 또한 오래되어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물리치기 어렵다. 양립.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更須如末後一語始得
如는 '~과 같다'의 뜻으로 원문에 뚜렷하므로, '말후일어와 같아야 비로소 옳다'로 如를 살려 옮긴 자체역이 원문에 충실하다. 책의 '마지막 한마디를 알아야 한다'는 如(같다)를 실질상 知(알다)로 바꾸어 원문에서 벗어난다. 자체역이 옳다.
교감 · 胸次'胸次'의 '胸' — 저본·부록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자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93a07). '不留在胸次'는 가슴속에 남겨 두지 않음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9
  1. 三世諸佛 삼세제불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짝을 이루어 불조가 함께 증득·전수한 하나의 진실(一實)을 강조한다.

  2. 門頭戶底 문두호저

    문 앞과 문지방 아래이다. 근본에 사무치지 못하고 겉·입구에만 머무는 얕은 이해를 비유한다.

  3.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4.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5. 照用 조용

    비춤(照)과 씀(用)이다. 지혜로 환히 비추어 살피는 일과, 그 지혜를 부려 배우는 이를 다루는 일을 이른다. 임제(臨濟)가 이 둘을 넷으로 짜 맞춘 '사조용(四照用)'이 유명하다.

  6.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7. 一千二百斤擔子 일천이백근담자

    일천이백 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이다. 임종에 홀로 짊어지고 넘어가야 할 생사의 큰 짐을 무게로 형상화한 말이다.

  8. 翛然獨脫 소연독탈

    얽매임 없이 훌쩍 홀로 벗어난다는 말이다. 소연(翛然)은 걸림 없이 홀가분한 모양을 이른다. 생사와 세속 인연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일을 말할 때 자주 쓴다.

  9. 凡聖情量 범성정량

    범부와 성인을 나누어 헤아리는 정식(情識)의 분별이다. 이 이원적 헤아림이 다하지 못하면 윤회한다는 무업 가르침의 핵심어이다.

  10. 黠慧 힐혜

    약삭빠른 지혜, 잔꾀 섞인 총명함이다. '총명힐혜(聰明黠慧)'는 도리어 도를 막는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11. 冥然扣寂 명연구적

    그윽이(冥然) 고요함을 두드림(扣寂)이다. 알음알이를 쉬고 적적한 근원에 사무쳐 드는 공부를 이른다.

  12. 業根種子 업근종자

    업의 뿌리와 종자이다. 윤회를 일으키는 업의 근본 습기·씨앗을 가리키며, 이를 뒤집어엎어야(翻卻) 함을 말한다.

  13. 違順境界 위순경계

    거스르는(違) 경계와 순한(順) 경계이다. 뜻에 거슬리거나 맞는 온갖 상황을 아우른다.

  14. 一相三昧 일상삼매

    하나의 상(相)에 든 삼매이다. 모든 경계에서 상대적 차별을 여의어 마음이 한결같이 흔들리지 않는 평등한 정(定)이다. 뒤의 '일행삼매(一行三昧)'와 짝을 이루며 『육조단경(六祖壇經)』 등에서 함께 설해진다.

  15. 一行三昧 일행삼매

    하나의 행(行)으로 이어지는 삼매이다. 어느 때 어디서나 곧은 마음(直心)이 한결같이 이어지는 정(定)이다. '절의리천순숙(切宜履踐純熟)'은 이를 밟아 익혀 순숙케 하라는 당부이다.

  16. 任運 임운

    억지로 짓지 않고 흐름에 맡겨 저절로 그러함을 이른다. 선에서는 애쓰는 마음이 쉬어 일상의 움직임이 꾸밈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지를 말한다. 흔히 '등등임운(騰騰任運)'처럼 쓴다.

  17.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18. 菩提達磨 보리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다. 남인도에서 중국에 와 선(禪)을 전한 첫 조사로, 중국 선종의 초조라 부른다. 양나라 무제를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가서,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다. 눈 속에서 제 팔을 끊고 법을 구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

  19.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20. 燈錄 등록

    선종 스님들의 법의 계보와 문답을 차례로 적은 역사서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비롯한 다섯 책이 대표적이며, 이를 하나로 엮은 것이 『오등회원(五燈會元)』이다.

  21. 保任 보임

    깨친 뒤에 그 자리를 잃지 않도록 잘 지키고 길러 가는 공부다. 흔히 보림이라고도 읽는다. 옛사람은 소 치는 이가 소를 지켜보아 남의 곡식을 밟지 않게 하듯 하라고 비유하였다.

  22. 腳蹋實地 각답실지

    발로 참된 땅을 딛고 선다는 말이다. 관념에 들뜨지 않고 깨달음의 실제 자리에 단단히 발붙인 경지를 이른다. 흔히 각답실지(腳踏實地)라고 쓴다.

  23. 公案 공안

    옛 조사들이 주고받은 문답이나 깨달음의 계기를 들어, 참선하는 이가 붙들고 궁구하게 한 것이다. 본래 관아의 판결 문서를 이르던 말이다. 화두(話頭)로 들어 의심을 일으키는 재료가 된다.

  24. 汾州無業 분주무업

    분주무업(汾州無業)(761~822)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法嗣)로, 배우러 오는 이에게 무엇을 묻든 늘 '망상하지 말라(莫妄想)'고만 하였다. 《경덕전등록》 권8.

  25. 嚴殊二道人 엄수이도인

    원오 스님이 원오심요의 「시엄수이도인」을 지어 준 두 사람이다. '엄'과 '수'는 두 사람의 이름 가운데 한 글자씩이고, '도인'은 도를 닦는 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26. 五陰 오음

    =오온(五蘊). 색·수·상·행·식의 다섯 무더기이다. '경중오음(輕重五陰)'은 업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오음을 받아 다시 태어나(隨念受生) 윤회함을 뜻한다.

  27. 七達八通 칠달팔통

    =칠통팔달(七通八達). 일곱 군데로 통하고 여덟 군데로 사무침, 곧 어느 곳에도 막힘없이 두루 통달함(자재무애)을 이른다.

  28. 胸次 흉차

    가슴속, 마음속이다. '不留在胸次'는 통달한 기연조차 가슴에 담아 두지 않음(자취를 남기지 않음)을 뜻한다.

  29. 末後一語 말후일어

    =말후구(末後句). 온갖 말을 다한 끝에 오는 맨 마지막 한 마디, 궁극의 소식이다. 특히 암두전활(巖頭全豁)의 '말후구(末後句)'로 유명한 선문의 화두적 주제로, 임운의 경지마저 다시 넘어서야 함을 가리킨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