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4
풀이 4
. 周易 乾卦 文言傳 '與日月合其明'의 축약으로, 주체인 사람이 해·달과 그 밝음을 합한다는 뜻이다. 앞뒤 齊德·同吉凶과 같은 '주체+대상+합/제/동' 구문이다. 출판본 '일월은 합당히 밝으며'는 合을 '합당'으로 오독해 주객을 뒤집고 병렬구조를 깬 오역이다. '해와 달과 밝음을 합하며'가 옳다.
풀이 3
풀이 7
이 편의 낱말 35
- 道妙至簡至易 도묘지간지역
'도의 오묘함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는 말이다. 도는 아득하고 깊은 데 있지 않고 저마다의 발밑에 있다는 뜻이다. 원오가 영상인에게 써 준 글(원오심요)의 첫머리와 끝에 거듭 나온다.
- 混沌未分·
天地未成立 혼돈미분·천지미성립 혼돈이 아직 갈라지지 않고 천지가 아직 서지 않은 태초이다. 장자(莊子)·열자(列子) 계열의 우주 발생론적 표현으로, '공겁이전(空劫已前)'과 짝을 이루어 도를 시공 이전의 지극히 그윽한 것으로만 여기는 미달의 견해를 묘사한다.
- 杳冥恍惚 묘명황홀
아득하고 어두우며 흐릿하여 붙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노자(老子)』가 도(道)를 그린 말에서 왔다. 원오는 도를 이런 신비한 곳에 두는 견해를 물리칠 때 이 말을 썼다.
- 根腳下圓成 근각하원성
'발밑에서 이미 원만히 이루어져 있다.' 근각하(根腳下)는 각자의 발밑, 곧 지금 여기의 자기 자신이다. 원성(圓成)은 원만성취로, 도가 밖이 아니라 사람마다 일용 가운데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뜻한다.
- 淨倮倮 정라라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깨끗이 발가벗었다는 말이다. 아무것에도 가려지거나 기대지 않은 본래 마음의 맨모습을 그린다. 흔히 정라라적쇄쇄(淨倮倮赤灑灑)로 이어 쓴다.
- 被一切機·
徧一切處 피일체기·편일체처 온갖 기틀(機)에 응하고 온갖 곳(處)에 두루 미침이다. 편(徧)은 편(遍)의 통용자이다. 본래 성품이 어느 때·어느 곳에서도 작용하지 않음이 없음(무시불용(無時不用)·무유불촉(無幽不燭))을 말한다.
- 祖師西來 조사서래
조사(祖師) 달마(達磨)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일이다. 선에서는 그 뜻을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데 둔다. 그 뜻을 묻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선문의 대표적인 물음이다.
-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 平常無事之心 평상무사지심
꾸미거나 일을 만들지 않는 평소 그대로의 마음, 일 없는 마음이다. 마조 스님이 '평상심이 곧 도'라 하고, 조주가 도를 묻자 남전 스님이 '평상심이 도'라고 답한 문답(무문관 제19칙)과 뜻이 이어진다.
- 天機自張 천기자장
천기(天機)가 저절로 펼쳐짐이다. 천기(天機)는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기기욕심자(其耆欲深者), 기천기천(其天機淺)'에서 온 말로 자연히 발동하는 신묘한 작용이다. 인위(拘·집(執)·주(住)·저(著))를 더하지 않아 본래의 기틀이 스스로 열림을 뜻한다.
- 與天地齊德·
日月合明 여천지제덕·일월합명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 '부대인자(夫大人者),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 여일월합기명(與日月合其明), 여사시합기서(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의 축약·변용이다. 무심에 계합한 경지를 유가의 대인 형상을 빌려 그린 것으로, 선에서 삼교 어휘를 회통해 쓰는 전형적 용례이다.
- 都盧瑩徹 도로영철
남김없이 모조리(都盧) 환하게 사무침(瑩徹)이다. 도로(都盧)는 '전부·모두'를 뜻하는 구어로 도래(都來)와 같다. 영(瑩)은 옥처럼 맑게 빛남이니, 빈 몸(空身)의 전체가 통째로 투명하게 밝아짐을 형용한다.
- 大方無外 대방무외
큰 방위(方)에는 바깥이 없음이다. 장자(莊子) 천하(天下)편 '지대무외(至大無外), 위지대일(謂之大一)'에 바탕한 표현으로, 온 우주가 자기 아님이 없어 어디든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放下身心) 자리라는 뜻으로 전용된다.
- 放下身心 방하신심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내려놓음이다. 아상(我相)과 집착을 통째로 방하하는 것으로, 선 수행의 요체를 이르는 상용어이다.
- 塵勞之儔·
爲如來種 진로지주·위여래종 '번뇌의 무리가 여래의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유마경(維摩經)』에서 가섭이 문수의 설법에 감탄하며 한 말이다. 번뇌를 떠나 따로 깨달음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 觀身實相·
觀佛亦然 관신실상·관불역연 『유마힐경(維摩詰經)』 견아촉불품(見阿閦佛品) '여자관신실상(如自觀身實相), 관불역연(觀佛亦然)(자기 몸의 실상을 관하듯 부처를 관함도 그러하다)'의 인용이다. 앞의 '진로지주위여래종(塵勞之儔爲如來種)'과 함께 원오가 '고자도(古者道)'로 묶어 든 유마경 두 구절이다.
- 大機大用 대기대용
큰 기틀과 큰 작용이다. 깨달은 이의 근본 힘과, 그 힘이 걸림 없이 쓰이는 것을 함께 이른다. 황벽(黃檗)이 스승 백장(百丈)의 이야기를 듣고 '마조(馬祖)의 대기대용을 보았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 打成一片 타성일편
여럿이 한 덩어리로 뭉쳐 틈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공부가 무르익어,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세상일과 불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경지를 이른다.
- 能所 능소
주관과 객관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능(能)은 보고 아는 쪽이고, 소(所)는 보이고 알려지는 쪽이다. 선에서는 이렇게 둘로 가르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깨침에 걸림이 된다고 본다.
- 見刺 견자
'견해의 가시'라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제 견해나 알음알이를 세우면 그것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혀 걸림이 된다는 비유다.
- 餉間 향간
잠깐 사이라는 말이다. ‘향(餉)’은 끼니로, 밥 한 끼 먹을 만한 짧은 동안을 뜻한다. 일향(一餉)이라고도 한다.
- 空劫 공겁
세계가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비는 네 시기 가운데, 무너진 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시기다. 선문에서는 '공겁 이전'이라 하여 천지가 생기기 전의 본래 자리를 가리킨다.
- 英上人 영상인
원오가 법어를 써 준 승려 영으로, 그 글이 원오심요에 실려 있다. '상인'은 지혜와 덕을 갖춘 스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 蕩然大通·
契合無心 탕연대통·계합무심 툭 트여 크게 통하여 무심에 꼭 들어맞음이다. 탕연(蕩然)은 텅 비어 걸림 없는 모양이다. 능소(能所)를 세우지 않는 무심의 자리를 도의 귀결로 제시한다.
-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무명실성즉불성·환화공신즉법신 영가현각 스님의 「증도가」 앞머리 구절이다. 어리석음(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고,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라는 뜻으로,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가르침을 담았다.
- 四聖六凡 사성육범
십법계(十法界)의 구분이다. 사성은 불·보살·연각·성문, 육범은 천·인·아수라·축생·아귀·지옥이다. 성범·색공·명암이 모두 밖의 사물이 아님(皆非外物)을 말해 만법귀일을 드러낸다.
- 被一切機 피일체기
온갖 기틀(機)에 응하고 온갖 곳(處)에 두루 미침이다. 徧은 遍의 통용자이다. 본래 성품이 어느 때·어느 곳에서도 작용하지 않음이 없음(無時不用·無幽不燭)을 말한다.
- 與天地齊德 여천지제덕
周易 乾卦 文言傳 '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의 축약·변용이다. 무심에 계합한 경지를 유가의 대인 형상을 빌려 그린 것으로, 선에서 삼교 어휘를 회통해 쓰는 전형적 용례이다.
- 無明實性卽佛性 무명실성즉불성
永嘉玄覺 『證道歌』의 구절 '無明實性即佛性,幻化空身即法身'(T48n2014_p0395c10; 『景德傳燈錄』 권30, T51n2076_p0460a16). 無明의 참 성품이 곧 佛性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法身이라 하여, 煩惱卽菩提·生死卽涅槃의 뜻을 드러낸다.
- 觀身實相 관신실상
『維摩詰經』 見阿閦佛品 '如自觀身實相, 觀佛亦然(자기 몸의 실상을 관하듯 부처를 관함도 그러하다)'의 인용이다. 앞의 '塵勞之儔爲如來種'과 함께 원오가 '古者道'로 묶어 든 유마경 두 구절이다.
- 垂示 수시
스승이 學人에게 가르침을 드리워 보임. 『碧巖錄』에서는 圜悟가 本則 앞에 붙인 짧은 서두 법어로 '垂示云'으로 시작한다(제1칙 '垂示云。隔山見煙。早知是火…', T48n2003_p0140a12).
- 觀身實相觀佛亦然 관신실상관불역연
'몸의 참모습을 보듯이 부처도 그렇게 본다'는 말이다. 『유마경』 견아촉불품(見阿閦佛品)에서 유마힐(維摩詰)이 부처를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답한 구절로, 부처를 제 몸의 실상 밖에서 따로 찾지 않음을 이른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