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下권 38편
묘각대사(妙覺大師)에게 드리는 글
示妙覺大師
풀이 2
책은 이를 부실한 수행자의 나열식 결함으로 읽었으나('있음도 모르고 마음도 안 두고 도도 안 배우고 벗어남도 안 구하는 사람'), 圜悟는 곧이어 '三世諸佛不知有'에서 不知有를 도리어 상위 경계로 칭송하고 이 사람을 '雖一往超勝'이라 하므로 不存誠·不學道·不求出離가 결함일 수 없다. 이 구절은 不知의 목적어로서 '有[…者](그러한 향상인이 있음)'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며, 내 번역('그런 경지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이 문맥·일관성에 부합한다. 책은 과분할·오독이다.
풀이 7
내 오류다. '분명 옳지 않다는 이치는 없다'로 옮겨 뜻이 반전되었다(자처해도 잘못이 아니라는 함의가 됨). 뒤 문장 '毫髮許能所…亦了不可得'과 어긋난다. 향상인은 그런 자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분명 그럴 리 없다'(책과 일치)가 옳다. 개정하였다.
풀이 11
책은 向那邊을 처소로 보아 '저쪽에서 손을 탁 놓아야'로, 자체역은 向…去의 방향성을 살려 '손을 놓아 저편으로 건너가야'로 옮긴다. 去의 방향 지시상 자체역이 더 정밀하나, 撒手의 귀결이 '저편'에 있다는 점은 양쪽이 공유하며 의미 손상이 크지 않아, 처소역·방향역이 모두 성립하는 이독이다.
책은 棒打石人頭를 앞의 부정어 影響에 붙여 '그림자·메아리로 돌장승 머리를 치는 격'이라는 헛됨의 비유로 처리했으나, 曝嚗(嚗地, 터지는 소리)은 棒打石人頭를 論實事로 잇는 하나의 긍정적 格外 어구다. 無心(石人)의 자리에서 도리어 실사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내 번역이 정통 독법에 부합한다.
이 편의 낱말 27
- 決擇死生大事 결택사생대사
생사의 큰일을 결단하여 가려냄. 참선의 근본 과제인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를 스승에 의지해 판별해 냄.
- 半塗 반도
반도(半途)와 같음. 도중, 아직 다다르지 못하고 중도에 머무름.
- 向上人 향상인
향상(向上)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취나 부처라는 이름에도 머물지 않고, 그것마저 넘어선 이를 이른다.
- 能所 능소
주관과 객관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능(能)은 보고 아는 쪽이고, 소(所)는 보이고 알려지는 쪽이다. 선에서는 이렇게 둘로 가르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깨침에 걸림이 된다고 본다.
- 癡鈍去 치둔거
어리석고 둔하게 되어감. 남전(南泉)이 순세(順世)(임종) 때 '산하(山下)에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물소)가 되어 가겠다'고 한 이류중행(異類中行)의 뜻과 통함.
- 南泉普願 남전보원
당나라의 선승(748~835)이다. 마조(馬祖)의 법을 잇고 남전산에 머물렀다. 속성이 왕씨여서 스스로 '왕 노사'라 했다. 고양이를 벤 일과 '평상심이 도'라는 말로 이름났고, 조주(趙州)가 그 제자다.
- 三世諸佛不知有 삼세제불불지유
南泉普願의 유명한 示衆(시중). 三世(과거·현재·미래)의 부처도 '있음(眞實의 本分)'을 알지 못하나 삵·흰 물소는 도리어 안다 하여, 聖人의 知見(지견)을 넘어 異類 속에 온전히 사는 자리를 드러냄.
- 狸奴白牯 이노백고
리노(狸奴)(이노)=고양이(삵), 백고(白牯)=흰 암물소(불친 소). 남전(南泉)이 말한 이류중행(異類中行)(중생·축생의 무리 속에서 걸림 없이 행함)의 상징.
- 撒手向那邊去 살수향나변거
손을 놓아(撒手) 저편(향상(向上)·절대(絶對)의 경계)으로 건너감. 삵·물소가 된 자리(온전한 벗어남)마저 놓아버림.
- 任你碧潭清似鏡 임니벽담청사경
夾山의 게송 취지로 引用됨. 마음의 못이 거울처럼 맑아도 밝은 달(眞實·向上)을 그 속으로 끌어내리기는 어렵다 — 淸淨·寂靜(청정·적정)에만 머무는 병통을 경계함. 이 對句는 景德傳燈錄·五燈會元 夾山章에 실림.
- 棒打石人頭 방타석인두
몽둥이로 돌사람(石人)의 머리를 침. 정식(情識)이 끊긴 무심(無心)의 자리에서 도리어 실다운 일을 드러냄을 이르는 격외(格外)의 표현.
- 曝嚗論實事 폭박론실사
딱딱 소리 나게 실다운 일을 논한다는 말이다. 폭박(曝嚗)은 무엇이 터지거나 부딪는 소리를 흉내 낸 말로, 군더더기 없이 단박에 실다운 일을 들어 말함을 이른다.
- 貼肉汗衫 첩육한삼
살에 착 달라붙은 땀 젖은 속적삼이다. 떼어 내기 가장 어려운 마지막 집착이나 알음알이를 비유한다. 선문에서는 이것마저 벗어 버려야 비로소 홀가분해진다고 말한다.
- 出塵得度 출진득도
티끌세상을 벗어나(出塵) 생사(生死)를 건너 제도를 이룸(得度). 함이 없고 일이 없는 대도인(大道人)의 경계.
-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 窠臼 과구
새 둥지와 절구의 우묵한 자리라는 뜻으로, 굳어 버린 틀이나 판에 박힌 격식을 이른다. 선에서는 이런 틀에 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틀에 갇히지 않음을 '무과구(無窠臼)'라 한다.
-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 頂門眼 정문안
정수리에 달렸다는 셋째 눈이다.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꿰뚫어 보는 남다른 안목을 비유한다.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이 눈을 셋 가졌다는 데서 빌려 온 말이다.
- 夾山善會 협산선회
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뱃사공 노릇을 하던 선자덕성(船子德誠)의 법을 이었다. 스승의 노에 맞아 물에 빠졌다가 크게 깨친 일로 이름났다. 그가 머문 예주(澧州) 협산의 절도 '협산'이라 부르며, 뒷날 원오가 이곳에서 『벽암록』을 강설했다.
- 妙覺大師 묘각대사
원오가 원오심요의 「묘각대사에게 드리는 글」을 지어 준 승려이다. '묘각'은 보살 수행 쉰두 단계 가운데 맨 끝, 곧 부처의 경지를 이르는 말로, 이를 따 지은 법호로 보인다. 법맥은 알려져 있지 않다.
- 日損日日損 일손일일손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48장 '위도일손(爲道日損),손지우손(損之又損),이지어무위(以至於無爲)'에서 온 말. 도를 닦음은 날로 덜어내어 무위(無爲)에 이름을 뜻함.
- 三世諸佛不知有·
狸奴白牯卻知有 삼세제불불지유·이노백고각지유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유명한 시중(示衆). 삼세(三世)(과거·현재·미래)의 부처도 '있음(진실(眞實)의 본분(本分))'을 알지 못하나 삵·흰 물소는 도리어 안다 하여, 성인(聖人)의 지견(知見)을 넘어 이류(異類) 속에 온전히 사는 자리를 드러냄.
- 任你碧潭清似鏡·
終教明月下來難 임니벽담청사경·종교명월하래난 협산(夾山)의 게송 취지로 인용(引用)됨. 마음의 못이 거울처럼 맑아도 밝은 달(진실(眞實)·향상(向上))을 그 속으로 끌어내리기는 어렵다 — 청정(淸淨)·적정(寂靜)(청정·적정)에만 머무는 병통을 경계함. 이 대구(對句)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오등회원(五燈會元) 협산장(夾山章)에 실림.
- 影響 영향
그림자(影)와 메아리(響). 실체 없는 방편·자취에 불과함을 이름.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