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33편

유선인(有禪人)에게 주는 글

示有禪人

33.1
한문至道無難,唯嫌揀擇。誠哉是言,纔有揀擇卽生心,心既生卽彼我愛憎、順違取捨樅然而作,其趣至道不亦遠乎?
번역지극한 도(至道)는 어려울 것이 없다. 오직 가려 고르는 것(揀擇)을 꺼릴 뿐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조금이라도 가려 고름이 있으면 곧 마음이 생긴다. 마음이 생기면 남과 나, 사랑과 미움, 따름과 거스름, 취함과 버림이 어지러이 일어난다. 그러니 지극한 도로 나아가는 데서 또한 멀지 않겠는가.
至道之要唯在息心,心既息則萬緣休罷,廓同太虗,了然無寄,是真解脫,豈有難哉?
지극한 도의 요체는 오직 마음을 쉬는 데 있다. 마음이 쉬면 온갖 인연이 그쳐 끊어진다. 텅 비어 큰 허공과 같고, 뚜렷하여 기댈 데가 없다. 이것이 참된 해탈이다.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是故古德蘊利根種,智者聊聞舉著,剔起便行,快自擔當,更無回互,
그러므로 옛 큰스님(古德)들은 날카로운 근기의 씨앗을 품은 지혜로운 이들이었다. 슬쩍 들어 보이는 것을 듣기만 해도 번쩍 일어나 곧장 갔다. 시원스레 스스로 짊어지고, 다시는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다.
如大梅卽佛卽心,龍牙洞水逆流,鳥窠吹布毛,俱胝豎一指,皆是直截根源,更無依倚,脫卻知見解礙,不拘淨穢二邊,超證無上真宗,履踐無爲無作。
대매(大梅)의 “곧 부처요 곧 마음”, 용아(龍牙)의 “동수(洞水)가 거꾸로 흐른다”, 조과(鳥窠)가 베올을 불어 보인 것, 구지(俱胝)가 한 손가락을 세운 것이 그렇다. 모두 곧바로 근원을 끊어 낸 것이다. 다시 기댈 데가 없다.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걸림을 벗어 버리고, 깨끗함과 더러움 두 끝에 얽매이지 않는다. 위없는 참된 종지(眞宗)를 뛰어넘어 증득하고, 함도 없고 지음도 없는(無爲無作) 자리를 밟아 간 것이다.
쉽게 읽기지극한 도에는 어려울 것이 없다. 다만 이것저것 가려 택하는 마음을 꺼릴 뿐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조금이라도 가려 택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마음이 인다. 마음이 일면 남과 나, 사랑과 미움, 따름과 거스름, 잡음과 버림이 어지러이 일어난다. 그러니 지극한 도로 가는 길과는 도리어 멀어지지 않겠는가. 지극한 도의 핵심은 오직 마음을 쉬는 데 있다. 마음을 쉬면 온갖 인연이 그쳐 끊어진다. 텅 비어 저 큰 허공과 같아지고, 환하되 기댈 데가 없다. 이것이 참된 해탈이다. 여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 큰스님들은 날카로운 바탕의 씨앗을 품은 슬기로운 이였다. 잠깐 슬쩍 들어 보이기만 해도 곧바로 떨쳐 일어나 나아갔다. 시원스레 스스로 짊어지고 다시는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다. 대매가 “곧 부처요 곧 마음”이라 한 것, 용아가 “동수가 거꾸로 흐른다”고 한 것, 조과 선사가 베올을 불어 보인 것, 구지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운 것이 그러하다. 모두 곧바로 근원을 끊어 낸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기댈 데가 없다. 알음알이의 앎과 견해의 걸림을 벗어난다. 깨끗함과 더러움 두 극단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위없는 참된 종지를 뛰어넘어 증득하고, 함도 없고 지음도 없는 자리를 몸소 밟아 간 것이다.
풀이 3
趙州至道無難 조주지도무난「벽암록(碧巖錄)」 제2칙(趙州至道無難) 본칙(本則)·평창(評唱) : 원오가 '지도무난(至道無難),唯嫌揀擇'(신심명(信心銘))을 조주 공안으로 삼아 간택(揀擇)·憎愛의 병통을 상세히 제창한다. 본편 서두와 직접 병렬한다.
趙州至道無難 조주지도무난〔병렬용례〕 「碧巖錄」 제57·58·59칙(趙州至道無難 연속 3칙) : '唯嫌揀擇' 화두를 세 칙에 걸쳐 반복 논파한다. 본편의 揀擇·難易 논의와 상통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蘊利根種,智者
양립가능 이독. 나는 CBETA 표점을 따라 利根種(예리한 근기의 종자)과 智者(지혜로운 이)로 끊고, 책은 種智를 一切種智 계열의 합성어(利根種智)로 보아 者를 古德에 귀속한다. 種智가 불전의 술어인 만큼 두 구두(句讀)가 다 성립하며, 문맥상 古德=智者이므로 개정본은 '이근종자를 품은 지혜로운 이'로 다듬어 두 주어의 어색함을 해소하였다. 어느 쪽도 배제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33.2
한문今時學道既有志性,當宜勉旃,與古無儔,心期證徹,到腳蹋實地處,動用全歸本際,千聖不可籠羅,解會併亡,得失俱脫,乃是無欲無依、真正自在自由道人也。
번역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도 이미 뜻과 근성을 갖추었으니, 마땅히 힘써야 한다. 옛사람과 견줄 짝이 없이 마음으로 사무쳐 증득하기를 기약하라. 발이 실지(實地)를 밟는 자리에 이르러, 움직이고 쓰는 것이 온전히 본래 자리(本際)로 돌아간다. 그러면 일천 성인도 그를 그물로 얽어맬 수 없다. 알음알이와 이해가 함께 사라지고, 얻음과 잃음을 함께 벗어난다. 이것이 곧 욕심 없고 기댐 없는, 참으로 자재하고 자유로운 도인(道人)이다.
到此豈更論難之與易哉?則無難無易亦了不可得也。
여기에 이르면 어찌 다시 어려움과 쉬움을 따지겠는가. 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다는 것마저, 끝내 얻을 수 없다.
衲僧家句裏出身,蓋提持向上機,於無句中出句,於無身中現身,言語道斷,心行處絕,等閑蕩蕩地放曠寬閑,纔有機緣卽蓋天蓋地,所謂密密綿綿、無間無隔,
납승(衲僧) 집안은 구절 속에서 몸을 빼낸다. 대개 향상(向上)의 기틀을 들어 쥐고, 구절 없는 데서 구절을 내고, 몸 없는 데서 몸을 나타낸다.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사라진다. 평소에는 넓디넓어 툭 트이고 한가하다가도, 조금이라도 기연(機緣)이 닿으면 곧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이른바 빽빽하고 끊임없어(密密綿綿) 틈도 없고 사이도 없다는 것이다.
不是強爲,任運如此。是以諸天捧花無路,魔外潛覰不見,直得恁麼行履,自然超諸三昧。
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맡겨 두니 이러하다. 그러므로 하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이렇게 밟아 가면, 저절로 온갖 삼매(三昧)를 뛰어넘는다.
쉽게 읽기지금 도를 배우는 이도 이미 뜻과 근성을 갖추었다. 그러니 마땅히 힘써야 한다. 옛사람과 견줄 짝 없이 마음으로 사무쳐 깨치기를 기약한다. 발이 실지에 닿는 곳에 이르러 움직이고 쓰는 것이 온전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일천 성인도 그를 그물로 얽어맬 수 없다. 알음알이와 이해가 함께 사라지고, 얻음과 잃음을 아울러 벗어난다. 이것이 곧 욕심 없고 기댐 없으며 참으로 자재하고 자유로운 도인이다. 여기에 이르면 어찌 다시 어려움과 쉬움을 따지겠는가. 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다는 그 말마저도 끝내 얻을 수 없다. 납승의 집안에서는 구절 속에서 몸을 벗어난다. 대개 향상의 기틀을 들어 지닌다. 구절 없는 가운데 구절을 내고, 몸 없는 가운데 몸을 드러낸다.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끊어진다. 예사롭게 넓디넓어 툭 트이고 한가하다가, 조금이라도 기연이 닿으면 곧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이른바 빽빽하고 면면하여 틈도 없고 사이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에 맡겨 저절로 이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하늘 신들이 꽃을 받들어 올리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이렇게 밟아 가면 자연히 온갖 삼매를 뛰어넘게 된다.
풀이 2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與古無儔
양립가능 이독. 儔는 짝(견줄 이)이니 無儔는 '견줄 짝이 없음'이다. 나='옛사람과 견줄 짝이 없이'로 축자에 충실하고, 책='옛사람과 짝이 되어'로 고인과 대등해짐의 결과 의미를 취하였다. 나의 표현이 '고인을 능가'로 오독될 여지가 있어 각주 보완 대상이나 오역은 아니며, 어느 쪽도 배제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33.3
한문古人以無爲無事爲極致,蓋其心源澄淨,虗融灑落,真實踐履到此境界,
번역옛사람은 함도 없고 일도 없음(無爲無事)을 지극한 경지로 삼았다. 대개 그 마음의 근원이 맑고 깨끗하며, 텅 비어 두루 통하고 시원스레 벗어나 있었다. 참으로 실답게 밟아 가서 이 경계에 이른 것이다.
然亦終不住滯於此,直得如盤走珠。如珠走盤,豈是死煞頓住得底?所以道:雖是死虵,解弄也活。
그러나 끝내 여기에도 머물러 걸리지 않았다.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같고,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 같았다. 어찌 죽은 듯 딱 멈추어 있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
長慶道:撞著道伴交肩過,一生參學事畢酌。
장경(長慶)이 말했다. “도반을 만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니, 한평생 참학(參學)하는 일을 마쳤다.”
然若非獨脫,安能知有此段?信知須是恁麼人,知有恁麼事。
분명하다. 홀로 벗어난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 한 자리가 있음을 알겠는가. 참으로 알겠다. 반드시 이런 사람이라야 이런 일이 있음을 안다.
僧問曹山:因地而倒,因地而起。如何是倒?山云:肯卽是。如何是起?山云:起也。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물었다. “땅으로 인해 넘어지고 땅으로 인해 일어난다 하니, 무엇이 넘어짐입니까?” 조산이 말했다. “수긍하면 곧 그것이다.”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조산이 말했다. “일어남이다.”
明眼人透見,更不別求,只這片田地,不妨嶮峻時直嶮峻,平坦時直平坦,立地也不可明得,坐地也不可明得。
눈 밝은 사람은 꿰뚫어 보고, 다시 따로 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 한 조각 땅이, 험할 때는 그대로 험하고 평탄할 때는 그대로 평탄하다. 서 있어도 밝힐 수 없고 앉아 있어도 밝힐 수 없다.
쉽게 읽기옛사람은 함도 없고 일도 없음을 지극한 경지로 삼았다. 대개 그 마음의 근원이 맑고 깨끗하다. 텅 비어 두루 통하고 시원스레 벗어나, 참으로 실답게 밟아 이 경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끝내 여기에 머물러 걸리지도 않았다. 마치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같고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 같았다. 어찌 죽은 듯이 딱 멈추어 머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비록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고 하였다. 장경 스님은 “도반을 만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니, 한평생의 참학하는 일을 마쳤다”고 하였다. 분명히, 홀로 벗어난 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 한 자리가 있음을 알겠는가. 참으로 알겠다. 반드시 이러한 사람이라야 이러한 일이 있음을 안다.어떤 스님이 조산 선사에게 물었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땅으로 인하여 일어난다 하니, 무엇이 넘어짐입니까.” 조산이 말하였다. “수긍하면 곧 그것이니라.”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조산이 말하였다. “일어남이니라.” 눈 밝은 사람은 꿰뚫어 보아 다시 따로 구하지 않는다. 다만 이 한 조각 땅이 험할 때에는 그대로 험하고, 판판할 때에는 그대로 판판하다. 서 있어도 밝힐 수 없고, 앉아 있어도 밝힐 수 없다.
풀이 7
曹山本寂 조산본적『景德傳燈錄』 권17 曹山章('如何是倒。師曰。肯即是。曰如何是起。師曰。起也'). '如人因地而倒,依地而起'라는 비유 자체는 같은 책 권10 趙州章에도 보인다.
無爲無事 무위무사'古人以無爲無事爲極致…然亦終不住滯於此'는 盤山寶積의 '無為無事人,猶是金鎖難'(『景德傳燈錄』 권7)과 같은 취지로, 無事에도 머물지 않음을 말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如盤走珠。如珠走盤
양립가능 이독. 책='소반이 주옥을 굴리듯…'으로 走를 타동 '굴리다'로 새기고, 나='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으로 주객을 서로 얹어 상호운동을 표현하였다. 책이 축자적으로 더 정확하나, 走의 타동 construe와 상호운동 독법이라는 실제 구문 분기가 있으면서도 양쪽 모두 걸림 없이 활발발한 상호작용의 비유를 살렸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肯卽是
양립가능 이독. 나='수긍하면 곧 그것', 책='하려고 하면 자빠지는 것'. 肯은 수긍·긍정과 기꺼이 하려 함의 두 뜻을 모두 지닌다. 조산(曹山) 공안에서 알음알이로 인정하는 그 자리가 곧 넘어짐(倒)이라는 전통적 독법에서는 나의 '수긍'이 因地而倒 문맥과 더 정합적이나, 책의 '하려고 하면'도 肯의 뜻 범위 안이어서 오역은 아니다. 결정적 전거가 한쪽을 배제하지 못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立地也不可明得,坐地也不可明得
. 也…也로 이어진 두 구가 동일 구문(X地也不可明得)의 병렬 부정이므로 '서 있어도 밝힐 수 없고 앉아 있어도 밝힐 수 없다'로 읽는 자체역이 옳다. 책은 앞 구의 不妨을 끌어와 '선 자리에서 밝히지 못하면…'의 조건절로 처리하나, 조건 표지가 없고 두 구가 대등한 병렬이므로 성립하지 않는다.
교감 · 一生參學事畢酌。然若非獨脫'一生參學事畢酌。然若非獨脫' — 원문 구두(CBETA)는 '酌' 뒤에서 끊었으나, 長慶의 게송은 '一生參學事畢'에서 끝나고 '酌然'(=灼然, 분명히)은 뒤에 붙는다 → '事畢。酌然若非獨脫…'으로 끊어 읽는다.
33.4
한문古人得意之後,向深巖僻洞,茅茨石室,大休大歇,放懷履踐,忘名棄利,與世不相關涉,作自己成辦,
번역옛사람은 뜻을 얻은 뒤에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 지붕과 돌집으로 들어갔다. 크게 쉬고 크게 쉬어(大休大歇), 마음을 놓고 밟아 갔다. 이름을 잊고 이익을 버려, 세상과 서로 얽히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 일을 이루어 마쳤다.
然後隨緣不出則已,及至一出,必驚羣伏眾,蓋源深流長也。
그런 뒤에 인연 따라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번 나왔다 하면, 반드시 무리를 놀라게 하고 대중을 굴복시켰다. 대개 근원이 깊어 흐름이 길기 때문이다.
今既未能入深山窮谷,但只依本分守淡靜,如箇百不知百不會底人,隨處守見,成得安穩,亦乃忘機之本也。
지금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본분(本分)에 기대어 담담하고 고요함을 지키면 된다. 백 가지를 모르고 백 가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곳곳에서 견처(見處)를 지켜 편안함을 이룬다. 이 또한 기심을 잊는(忘機) 근본이다.
쉽게 읽기옛사람은 뜻을 얻은 뒤에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 지붕과 돌집으로 들어갔다. 크게 쉬고 크게 쉬며 마음을 놓아 밟아 갔다. 이름을 잊고 이익을 버려 세상과 얽히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의 일을 이루어 마쳤다. 그런 뒤에는 인연을 따라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한번 나오면 반드시 무리를 놀라게 하고 대중을 굴복시켰으니, 대개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긴 까닭이다. 지금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다만 본분에 기대어 담담하고 고요함을 지킨다. 마치 백 가지를 알지 못하고 백 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곳곳에서 제 견처를 지켜 안온함을 이루면, 이 또한 얕은 꾀를 잊는 근본이 된다.
풀이 4
源深流長 원심류장옛사람이 得意한 뒤 深巖僻洞에서 大休大歇하다가 한번 세상에 나오면 '必驚群伏眾'했다는 대목. 숨어 기른 바탕이 깊어 작용이 컸다는 뜻.
忘機 망기'但只依本分守淡靜,如箇百不知百不會底人,隨處守見,成得安穩,亦乃忘機之本也'는 本分을 지켜 담담하고 고요하며 편안한 것을 忘機의 근본으로 삼는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40
  1. 揀擇 간택

    분별하여 취하고 버림이다. 「신심명(信心銘)」의 핵심어로, 애증·순위(順違)의 분별심을 가리킨다.

  2. 至道無難 지도무난

    삼조(三祖) 승찬(僧璨)의 「신심명(信心銘)」 첫 구절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揀擇)을 꺼릴 뿐'이라는 뜻이다. 원오가 「벽암록(碧巖錄)」 제2칙 및 제57~59칙에서 조주(趙州) 공안으로 거듭 제창한 화두다.

  3. 廓同太虗 곽동태허

    툭 트여 큰 허공과 같음이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다.

  4.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5. 淨穢二邊 정예이변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두 극단이다. 깨끗함을 좇고 더러움을 싫어하는 마음도 치우친 분별이니, 어느 쪽에도 기대지 말라는 뜻으로 쓴다. 마조(馬祖)도 같은 가르침을 폈다.

  6. 衲僧 납승

    누더기(衲) 옷을 입은 선승이다. 참선 수행자를 가리키는 선가의 상투어다.

  7. 言語道斷·心行處絕 언어도단·심행처절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갈 곳이 끊어짐이다. 「瓔珞本業經」·「중론(中論)」 등에 연원한 상투구다.

  8. 蓋天蓋地 개천개지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는 말로, 깨친 이의 작용이 어디에나 가득 드러남을 이른다. 암두(巖頭)가 설봉(雪峰)에게 '네 가슴에서 흘러나와 하늘과 땅을 덮게 하라'고 일러 깨치게 한 말이 유명하다.

  9. 密密綿綿 밀밀면면

    빽빽하고 끊임없이 이어져 조금의 틈도 없다는 말이다. 깨친 뒤의 공부를 빈틈없이 이어 가 자취마저 드러나지 않는 모양을 이른다.

  10.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11. 魔外潛覰不見 마외잠처불견

    마군(魔軍)과 외도(外道)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누구도 그 속을 넘볼 수 없음을 이른다. 흔히 '여러 하늘이 꽃을 바칠 길이 없다(諸天捧花無路)'는 말과 짝지어 쓴다.

  12. 如盤走珠·如珠走盤 여반주주·여주주반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이다. 한곳에 죽어 머물지 않고 걸림 없이 자재로운 활발발(活鱍鱍)한 작용의 비유다.

  13. 雖是死虵·解弄也活 수시사사·해롱야활

    비록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는 말이다. 사(虵)는 사(蛇)의 이체자다. 죽은 듯한 경계도 활용하면 살아 움직인다는 선가의 속담이다.

  14. 長慶慧稜 장경혜릉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이십 년 동안 좌복 일곱 개가 닳도록 앉았다가, 발을 걷어 올리다 깨쳤다고 한다. 복주(福州) 장경원에 머물렀다.

  15. 撞著道伴交肩過·一生參學事畢 당착도반교견과 일생참학사필

    '도반을 만나 어깨를 스쳐 지나가니 한평생 참학의 일을 마쳤다'는 말이다. 장경혜릉(長慶慧稜)의 말로, 향상(向上)의 소식을 읊었다.

  16. 獨脫 독탈

    홀로 벗어남이다. 일체에 의지하지 않고 초연히 벗어난 경지(獨脫無依)다.

  17. 曹山本寂 조산본적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 조산에 머물렀다. 스승 동산과 함께 조동종(曹洞宗)의 조사로 받든다. 동산을 떠날 때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

  18. 因地而倒因地而起 인지이도인지이기

    '땅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땅으로 인하여 일어난다(如人因地而倒 還因地而起)'는 옛 비유. 어떤 스님이 이 말을 들어 조산본적(曹山本寂)에게 '무엇이 넘어짐입니까' 묻자 '수긍하면 곧 그것이니라(肯卽是)',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묻자 '일어남이니라(起也)'라고 답하였다.

  19. 肯卽是 긍즉시

    '수긍하면 곧 그것이다'라는 뜻이다. 알음알이로 인정·긍정하는 그 자리가 바로 넘어짐(倒)임을 드러낸 조산의 답어다.

  20. 深巖僻洞·茅茨石室 심암벽동·모자석실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茅茨) 지붕과 돌집(石室)이다. 깨달은 뒤 몸을 감추는 은거처를 이른다.

  21. 驚羣伏眾 경군복중

    무리를 놀라게 하고 대중을 굴복시킴이다. 한번 세상에 나오면 드러나는 역량을 이른다.

  22. 源深流長 원심류장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길다는 말이다. 바탕을 깊고 튼튼히 다져야 그 힘과 영향이 멀리, 오래 간다는 비유로 쓴다.

  23. 百不知百不會 백불지백불회

    백 가지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함이다. 분별지(分別智)를 다 여읜 순박·무심한 경지의 형용이다.

  24. 忘機 망기

    꾀하고 헤아리는 마음(기심)을 잊는다는 말이다.

  25. 無爲無事 무위무사

    억지로 짓는 일 없는 무위(無爲)와 따로 일삼는 일 없는 무사(無事)를 함께 이른다. 분별과 애씀이 다 쉰 평상한 경지다. 임제(臨濟)는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라 하였다.

  26.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

    조과도림(鳥窠道林) 선사가 베실 한 올을 불어 보인 일이다. 시자 회통(會通)이 불법을 배우러 떠나겠다고 하자, 조과는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금 있다’며 옷에서 실오라기를 집어 훅 불었다. 회통은 그 자리에서 깨달아 ‘포모시자(布毛侍者)’라 불렸다.

  27.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28.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29. 向上機 향상기

    향상(向上)의 기틀, 곧 말과 단계를 넘어 위로 뚫고 나아가는 궁극의 작용을 이른다. 부처와 조사의 자리에도 머물지 않는 선승의 솜씨를 말한다.

  30. 三昧 삼매

    마음을 한곳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고요한 집중, 곧 선정(禪定)을 이른다. 인도 말을 소리대로 옮긴 말이다.

  31. 言語道斷 언어도단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흔히 '마음 가는 곳마저 사라졌다[心行處滅]'는 말과 짝지어, 말로도 생각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참된 실상을 이른다.

  32. 大梅卽佛卽心 대매즉불즉심

    대매법상(大梅法常)(752~839)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이다. 처음 마조에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여 깨닫고 대매산(大梅山)에 은거하였다. 뒤에 마조가 '비심비불(非心非佛)'을 말한다는 전언에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라 하여 인가받았다. 여기 즉불즉심(卽佛卽心)이 그 종지다.

  33. 龍牙洞水逆流 용아동수역류

    龍牙居遁(용아거둔, 835~923)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자 동산이 '동수(洞水)가 거꾸로 흐르거든 일러주마'라 답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역류(逆流)는 상식적 분별을 거스르는 향상(向上)의 소식을 가리킨다.

  34. 無上真宗 무상진종

    위없는 참된 종지(宗旨)다.

  35. 本際 본제

    본래 자리, 근본 바탕이다. 만법이 온전히 돌아가는 본원(本源)을 뜻한다.

  36. 田地 전지

    한 조각 땅, 곧 마음의 경지·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37. 如盤走珠 여반주주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이다. 한곳에 죽어 머물지 않고 걸림 없이 자재로운 활발발(活鱍鱍)한 작용의 비유다.

  38. 雖是死虵 수시사사

    비록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는 말이다. 虵는 蛇의 이체자다. 죽은 듯한 경계도 활용하면 살아 움직인다는 선가의 속담이다.

  39. 深巖僻洞 심암벽동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茅茨) 지붕과 돌집(石室)이다. 깨달은 뒤 몸을 감추는 은거처를 이른다.

  40. 趙州至道無難 조주지도무난

    『碧巖錄』 제2칙. 趙州가 三祖 『信心銘』의 '至道無難,唯嫌揀擇'을 들어 '纔有語言,是揀擇是明白,老僧不在明白裏'라 한 示衆이다(T48n2003_p0141b27). 같은 구를 두고 僧이 趙州에게 물은 문답이 제57·58·59칙으로 이어진다(T48n2003_p0191a03·p0191b12·p0191c17).

문단 4국역본 대조 5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4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