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66편

증대제(曾待制)에게 드리는 글

示曾待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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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한문僧問趙州:如何是祖師西來意?州云:庭前栢樹子。
번역한 승려가 조주(趙州)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말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다.”
天下參問以爲模範作異解者極多,唯直透不依倚、不作知見便能痛領,纔有毫髮見刺則黑漫漫地。
천하의 수행자들이 이 말을 참구하며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딴 뜻으로 알아듣는 이가 아주 많습니다. 오직 곧바로 꿰뚫어,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알음알이를 짓지 않아야 비로소 사무치게 알아차립니다. 털끝만 한 견해의 가시라도 있으면, 곧 캄캄해지고 맙니다.
豈不見法眼舉問覺鐵觜:趙州有箇庭前栢樹子話是不?覺云:和尚莫謗先師,先師無此語。但恁麼體究,便是古人直截處也。
보지 못하셨습니까. 법안(法眼)이 각철취(覺鐵觜)에게 물었습니다. “조주에게 ‘뜰 앞의 잣나무’라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그렇습니까?” 각철취가 말했습니다. “스님, 돌아가신 스승을 헐뜯지 마십시오. 스승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몸소 파고들면, 그것이 곧 옛사람이 곧장 끊어 낸 자리입니다.
쉽게 읽기한 스님이 조주종심에게 물었습니다.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다.” 세상의 수행자들이 이 화두를 붙들고 공부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딴 뜻을 붙여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이가 아주 많았습니다. 오직 그 자리를 곧바로 꿰뚫어야 합니다. 어디에도 기대지 말고, 분별하는 앎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무치게 알아차립니다. 털끝만 한 견해라도 남아 있으면, 마음은 곧 캄캄해지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법안 선사가 각철취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조주에게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가 있다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각철취가 답하였습니다. “스님, 돌아가신 스승을 헐뜯지 마십시오. 스승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바로 이렇게 스스로 파고드는 것, 그것이 옛사람이 군더더기를 곧장 끊어 버린 자리입니다.
풀이 8
趙州從諗 조주종심覺鐵觜는 趙州의 法嗣 揚州 光孝院 慧覺(『景德傳燈錄』 권11). 法眼이 柏樹子話를 묻자 '先師無此語'라 한 일은 『從容錄』 제47칙 評唱과 『五燈會元』에 보인다.
法眼文益 법안문익覺鐵觜 = 揚州 光孝院 慧覺(趙州 法嗣). 『五燈會元』 권4: 法眼이 '承聞趙州有庭前栢樹子話。是否' 묻자 '先師實無此語。和尚莫謗先師好'라 답했다.
燈錄 등록출전: '庭前栢樹子'는 『趙州錄』(古尊宿語錄 권13, X68n1315_p0077c02)·『無門關』 제37칙. 法眼–覺鐵觜 문답과 嚴陽 '一物不將來'는 『五燈會元』 권4. 雲門 '須彌山'은 『雲門廣錄』 권上(T47n1988_p0547c01)·『五燈會元』 권15.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法眼舉問覺鐵觜…先師無此語'는 揚州 光孝院 慧覺章의 일화다. 『五燈會元』 권4에서는 覺이 먼저 '無'라 답하고 法眼이 다그치자 '先師實無此語,和尚莫謗先師好'라 하여, 心要와 말의 차례가 조금 다르다(『從容錄』 제47칙 評唱도 같은 일화를 싣는다).
66.2
한문嚴陽尊者問趙州:一物不將來時如何?州云:放下著。
번역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에게 물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조주가 말했습니다. “내려놓아라.”
者云:一物不將來,未審放下箇什麼?州云:看你放不下。嚴陽遂大悟。
엄양이 말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조주가 말했습니다. “네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아라.” 엄양은 마침내 크게 깨달았습니다.
後來南禪師有頌云:一物不將來,兩肩擔不起。言下忽知非,心中無限喜。
뒷날 남 선사(南禪師)가 게송을 지어 읊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건만 / 두 어깨로 메어도 들어 올리지 못하네. / 그 말끝에 문득 그릇됨을 아니 / 마음속에 한없는 기쁨이 이네.
毒惡既忘懷,蛇虎爲知己。寥寥千百年,清風猶未已。
/ 독하고 모진 마음을 이미 잊으니 / 뱀과 범이 마음 아는 벗이 되네. / 아득하고 고요히 천 년 백 년이 흘러도 / 맑은 바람은 아직 그치지 않네.”
但試自頻舉,一物不將來時如何?州云:放下著。驀然便省也不難。
다만 스스로 자주 들어 보십시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조주는 ‘내려놓아라’ 했습니다. 그러면 문득 깨닫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쉽게 읽기이번에는 엄양존자가 조주에게 물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가 답하였습니다. “내려놓아라.” 엄양이 다시 여쭈었습니다. “한 물건도 지니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까?” 조주가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아라.” 엄양은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뒷날 남 선사가 이 일을 두고 게송을 지어 이렇게 읊었습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건만 / 두 어깨로 짊어져도 일으키지 못하네. / 그 말끝에 홀연 그릇됨을 아니 / 마음속에 한없는 기쁨이 이네. / 독하고 악한 마음을 이미 다 잊으니 / 뱀과 범이 절친한 벗이 되네. / 아득하고 고요히 천 년 백 년이 지나도 / 맑은 바람은 아직도 그치지 않네.” 이 문답을 자주 되새겨 보십시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한가? 조주는 내려놓으라 하였다.” 이렇게 늘 들어 살피면, 문득 깨닫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풀이 8
一物不將來 일물불장래'南禪師'는 黃龍慧南이다. 이 頌은 『黃龍慧南禪師語錄』(T47, no. 1993)에 '一物不將來,肩頭擔不起…'로 실려 있고, 上/25에서는 같은 頌을 '黃龍頌'이라 들었다.
嚴陽尊者 엄양존자南禪師 = 黃龍慧南. 頌은 『黃龍慧南禪師語錄』과 같다. 心要는 '兩肩擔不起'(어록 '肩頭擔不起', 『指月錄』 권13 '兩肩挑不起'), '寥寥千百年'(어록 '光陰幾百年')으로 적었다.
放下著 방하착南禪師는 黃龍慧南. 이 頌은 『黃龍慧南禪師語錄』 上堂에 '一物不將來,肩頭擔不起…光陰幾百年,清風物未已'로 실려 있어 字句가 조금 다르다. 上/25는 같은 頌을 '黃龍頌'으로 든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看你放不下'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이독. 看을 명령('보아라')으로 보아 '네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아라'로 옮긴 내역과, 看을 화자의 관찰('~로군')로 보아 '보아하니 아직 놓아버리지 못하였군'으로 옮긴 책이 모두 성립한다. 선어록에서 '看你~'는 명령('봐라')과 관찰('~로군') 두 용법이 다 통용되고 조주의 응수로 어느 쪽도 무리가 없으며,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한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南禪師' —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원문에는 '南禪師'뿐인데, 이를 원문대로 둔 내역과 黃龍慧南으로 동정하여 '혜남선사(慧南禪師)'로 보충한 책이 모두 성립한다. 책의 동정은 통설·고증에 부합하나 원문에 없는 '慧'를 본문에 넣은 것은 각주감의 본문화이고, 내역은 원문에 충실한 최소역이어서 편집 방침의 차이로 양립한다.
66.3
한문僧問雲門:不起一念,還有過也無?門云:須彌山。此又直截省要也。無事虗心靜慮,且下鈍工夫。只管舉看,久之當自有入處。
번역한 승려가 운문(雲門)에게 물었습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그래도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운문이 말했습니다. “수미산(須彌山)이다.” 이것 또한 곧장 끊어 낸 간결하고 요긴한 말입니다. 일 없이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고요히 하십시오. 우선 우직한 공부를 들이십시오. 그저 들어 보기만 하십시오. 오래되면 저절로 들어갈 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쉽게 읽기또 한 스님이 운문문언에게 물었습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운문이 답하였습니다. “수미산이다.” 이 대답도 흐름을 곧장 끊어, 깨달음의 요긴한 자리를 바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니 부질없는 일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십시오.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우선 우직하게 공부를 붙들어 오직 들어 살피기만 하십시오. 그렇게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들어설 자리가 열릴 것입니다.
풀이 3
雲門文偃 운문문언『雲門廣錄』 권상 '問:不起一念還有過也無?師云:須彌山'(T47n1988_p0547c01). 『從容錄』 제19칙 「雲門須彌」(T48n2004_p0239a29)에 실렸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須彌山'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의 지나친 의역(경미). 운문의 一字關식 즉답으로 원문·내역은 '수미산이니라'이다. 책은 '수미산 만큼!'으로 옮겨 '허물이 수미산처럼 크다'는 비유 해석을 본문에 부연·확정했다. 의도된 함의는 맞으나 원문에 없는 '~만큼'을 더해 격외 즉답의 여백을 줄였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17
  1.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2. 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달마(達磨)가 인도에서 와서 전한 참뜻, 곧 선의 근본을 묻는다. 선문답에서 가장 흔한 물음으로, 조주(趙州)의 '뜰 앞의 잣나무' 답이 이름났다.

  3.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

    한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답했다. 묻는 말의 뜻을 좇지 않고 눈앞의 것을 곧바로 내민 대답이다. 흔히 잣나무로 옮기지만 본디 측백나무다. 『무문관』과 『종용록』에 실렸다.

  4. 先師 선사

    각철취(覺鐵觜)가 가리키는 자기 스승, 곧 조주종심(趙州從諗)이다.

  5. 一物不將來 일물불장래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에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고 물었다. 조주는 '내려놓아라(放下著)' 하였다. 엄양이 가져온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느냐고 되물었다. 조주가 다시 내려놓지 못함을 꼬집자, 엄양은 그 말끝에 깨쳤다. 비웠다는 생각마저 짐이 됨을 일깨운 문답으로 읽힌다.

  6. 放下著 방하착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착(著)은 말끝에 붙어 시키는 뜻을 더한다. 엄양존자(嚴陽尊者)가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묻자 조주(趙州) 스님이 이렇게 답한 일로 널리 알려졌다.

  7. 蛇虎爲知己 사호위지기

    엄양선신(嚴陽善信)이 깨친 뒤 독악지심(毒惡之心)을 잊으매 뱀·범이 벗이 되었다는 고사를 반영한 게송 구절이다.

  8. 不起一念還有過也無 불기일념환유과야무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아도 도리어 허물이 있는가'를 묻는 화두이다.

  9.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10. 燈錄 등록

    선종 스님들의 법의 계보와 문답을 차례로 적은 역사서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비롯한 다섯 책이 대표적이며, 이를 하나로 엮은 것이 『오등회원(五燈會元)』이다.

  11. 嚴陽尊者 엄양존자

    엄양선신(嚴陽善信)이다. 당나라 말의 선승으로 조주(趙州) 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주에게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묻고, '내려놓아라(放下著)'라는 답에 깨쳤다. 홍주 신흥에 머물며 뱀과 범을 곁에 두고 손으로 먹였다고 한다.

  12. 法眼文益 법안문익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다. 오대 때의 선승으로 지장(地藏) 스님 계침의 법을 이었다. 금릉(金陵)의 보은원·청량원에 머물며 크게 교화했고, 법안종의 시조가 되었다. 죽은 뒤 대법안 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13. 雲門須彌山 운문수미산

    한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허물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수미산이다'라고 답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벌써 산처럼 큰 허물이라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 『종용록』 제19칙에 실린 공안이다. 세계 한가운데 솟았다는 산 자체는 수미(須彌)를 보라.

  14. 覺鐵觜 각철취

    당나라 말 선승 혜각(慧覺)으로, 조주종심(趙州從諗)의 법을 이었다. 양주(揚州) 광효원(光孝院)에 머물렀고, 말솜씨가 쇠 부리처럼 날카로워 '쇠부리 각'이라 불렸다. 법안(法眼)이 '조주에게 뜰 앞의 잣나무 화두가 있다던데 그렇습니까' 하고 묻자 '선사께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선사를 비방하지 마십시오' 하고 답한 일로 이름났다.

  15. 南禪師 남선사

    황룡혜남(黃龍慧南)(1002-1069)으로 비정된다. 석상초원(石霜楚圓)(자명(慈明))의 법사(法嗣)이며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이다. 엄양(嚴陽) 고사를 기린 송(頌)의 작자이다(통칭 '황룡남(黃龍南)'·'남선사(南禪師)').

  16. 曾待制 증대제

    원오가 법어를 보낸 송나라 사대부이며, 대제(待制)는 그의 벼슬 이름이다.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증 대제'라 부르며 편지를 주고받은 증개(曾開)와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17. 待制 대제

    송대(宋代)의 관직명이다. 용도각(龍圖閣)·천장각(天章閣)·한림(翰林) 등에 딸린 황제 시종(侍從)·고문직(顧問職)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17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