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20편

일서기(一書記)에게 주는 글

示一書記 住四明雪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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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한문英靈衲子,蘊卓識奇姿,慷慨隳冠,視身世浮名,如游塵浮雲谷響,
번역영특하고 빼어난 납자(衲子)여. 우뚝한 식견과 남다른 자질을 품고, 의기가 북받쳐 벼슬을 내던졌다. 이 몸과 세상의 헛된 이름을 떠도는 티끌이나 뜬구름,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본다.
以宿昔大根器,知有此段超生出死,絕聖越凡,乃三世如來所證金剛正體,歷代祖師單傳妙心,
지난날 심어 둔 큰 그릇(根器)으로, 이 한 가지 일이 있음을 안다. 삶을 뛰어넘고 죽음에서 벗어나며, 성인을 끊고 범부를 넘어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삼세(三世)의 여래(如來)께서 깨달으신 금강(金剛)의 바른 본체요, 역대 조사(祖師)께서 홀로 전해 오신 오묘한 마음이다.
跂步蹴蹋,作香象金翅,要馳驟飛騰於億千萬類之上,截流摩霄,豈肯爲鴻鵠燕雀局促於高低勝負,較目前電光石火間被轉利害耶?
발을 들어 내딛고 걸음을 박차, 향상(香象)과 금시조(金翅鳥)가 되어 억천만 무리 위로 내달리고 날아오르고자 한다. 흐름을 끊고 하늘을 스치는 그 기상이, 어찌 기러기와 고니, 제비와 참새가 되어 높고 낮음, 이기고 짐에 옹색하게 매이려 하겠는가. 어찌 눈앞의 번갯불, 부싯돌 불꽃 같은 사이에 이해에 끌려다니며 따지려 하겠는가.
쉽게 읽기영특하고 빼어난 수행자여. 그대는 남달리 우뚝한 자질을 지녔다. 기개가 높아 벼슬을 미련 없이 벗어던졌다. 제 몸도, 세상의 헛된 이름도 떠도는 티끌이나 뜬구름, 골짜기의 메아리쯤으로 여긴다. 지난 세월에 심어 둔 큰 그릇 덕분에, 그대는 한 가지 큰 일이 있음을 안다. 곧 삶을 뛰어넘고 죽음에서 벗어나며, 성인의 자리도 끊고 범부의 자리도 넘어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삼세의 여래께서 몸소 깨치신 금강의 바른 본체다. 또 대를 이어 온 조사들이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해 온 오묘한 마음이다. 그대는 발을 내딛고 걸음을 옮겨, 큰 코끼리 향상과 큰 새 금시조가 되려 한다. 억천만 온갖 무리 위로 힘차게 치달아 날아오르려 한다. 흐름을 끊고 하늘을 문지르는 그 기상이, 어찌 기러기나 고니, 제비나 참새가 되어 높고 낮음, 이기고 짐에 얽매이려 하겠는가. 어찌 눈앞의 번갯불이나 부싯돌 불꽃 같은 짧은 순간에, 이익과 손해에 끌려다니려 하겠는가.
풀이 2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要馳驟飛騰'의 '要'를 자체역은 뒤의 '豈肯…'과 호응시켜 '~하고자'(의욕)로 읽고, 책은 '요컨대'(要之)로 읽는다. 구조상 '要…豈肯…'은 '치달려 날아오르고자 하니 … 어찌 …하려 하겠는가'로 의욕·의향의 대구를 이루어 자체역이 더 매끄럽다. 다만 '요컨대'로 새겨도 문의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어느 한쪽을 틀렸다고 확정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양립가능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번역 개정은 불요.
20.2
한문是故古之大達,不記細故,不圖淺近,
번역그러므로 옛날 크게 통달한 이는 자잘한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얕고 가까운 것을 꾀하지 않았다.
發志便欲高超佛祖,荷擔一切所不能承當,重任普津,濟四生九類,拔苦與安,破障道愚昧,折無明顛狂毒箭,拈出法眼見刺,使本地風光澄霽,空劫已前面目明顯,
뜻을 내면 곧바로 부처와 조사를 높이 뛰어넘으려 했다.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지고, 사생(四生)과 구류(九類)를 널리 건네주려 했다. 괴로움을 뽑아 주고 편안함을 주려 했다. 도를 가로막는 어리석음과 어둠을 부수고, 무명(無明)의 미쳐 날뛰는 독화살을 꺾고, 법안(法眼)에 박힌 가시를 뽑아내려 했다.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맑게 개게 하고, 공겁(空劫) 이전의 면목을 환히 드러내려 했다.
悉心竭力,不憚寒暑,刻意尚行,向三條椽下,死卻心猿,殺卻意馬,直使如枯木朽株相似,驀地穿透,豈從他得
마음을 다하고 힘을 쏟아, 추위와 더위를 꺼리지 않았다. 뜻을 다잡아 행을 높이며, 세 서까래 아래(三條椽下)로 가서 마음의 원숭이(心猿)를 죽이고 뜻의 말(意馬)을 죽였다. 곧장 마른 나무, 썩은 등걸처럼 되게 하여, 문득 뚫고 사무쳤다. 이것이 어찌 남에게서 얻은 것이겠는가.
쉽게 읽기그러므로 옛적에 크게 통달한 이들은 자잘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얕고 가까운 것을 꾀하지도 않았다. 한번 뜻을 세우면 곧바로 부처와 조사마저 훌쩍 뛰어넘으려 했다. 남들이 감당 못 할 온갖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졌다. 온갖 중생을 널리 건네주었다. 괴로움은 뽑아 주고 편안함은 나누어 주었다. 도를 가로막는 어리석음과 어둠을 부수었다. 무명의 미쳐 날뛰는 독화살을 꺾었다. 진리를 보는 눈에 박힌 가시를 뽑아냈다. 본지풍광, 곧 그 자리의 본래 모습을 맑게 개게 하고, 세상이 생겨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환히 드러내려 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쏟아 추위도 더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뼈를 깎는 뜻으로 수행에 힘써, 삼조연하, 곧 세 서까래 아래의 좁은 자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죽이고, 말처럼 내닫는 뜻을 죽였다. 그리하여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처럼 되어, 어느 순간 문득 뚫고 사무쳤다. 이것이 어찌 남에게서 얻은 것이겠는가.
풀이 7
三條椽下 삼조연하'向三條椽下,死卻心猿,殺卻意馬,直使如枯木朽株相似'는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6에도 거의 같은 글로 실려 있다.
本地風光 본지풍광'使本地風光澄霽,空劫已前面目明顯'은 本地風光·本來面目의 짝을 '空劫已前面目'으로 바꾸어 쓴 대구로, 風光을 날씨처럼 '澄霽'(맑게 갬)라 했다.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6에도 실려 있다.
空劫已前 공겁이전'使本地風光澄霽,空劫已前面目明顯' — 本地風光과 짝지어 空劫已前面目을 本來面目의 뜻으로 쓴다. 『圜悟語錄』 권9~16에도 '空劫已前' 用例가 여럿 있다.
空劫已前 공겁이전공겁이전(空劫已前)(자기(自己)/면목(面目)) : 원오가 「벽암록(碧巖錄)」·「원오어록(圜悟語錄)」에서 '공겁이전(空劫已前)'·'위음나반(威音那畔)'으로 본래면목을 가리키는 용법과 일치한다. 본편 '공겁이전면목명현(空劫已前面目明顯)'의 해석 근거이다.
20.3
한문發覆藏?然暗室明燈,擬䑯航於津要,證大解脫,不起一念,頓成正覺。
번역덮여 감춰진 것을 열어젖힌다. 어두운 방에 밝은 등불을 켜고, 나루의 요긴한 길목에 배를 대려 한다. 큰 해탈(大解脫)을 깨달아,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단박에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룬다.
且通箇入理之門,然後升普光明場,踞無漏清淨殊勝偉特法空之座,口海瀾翻,奮無礙四辯才,立一機,垂一句,現一勝相,普使凡聖有情無情,俱仰威光,受庇庥,
우선 이치에 드는 문(入理之門)을 통한 뒤에야, 널리 밝게 빛나는 도량(普光明場)에 오른다. 새어 나감이 없고 맑고 깨끗하며 빼어나고 우뚝한 법공(法空)의 자리에 걸터앉는다. 입은 바다처럼 물결을 뒤집고, 걸림 없는 네 가지 말솜씨(四辯才)를 떨친다. 한 기틀을 세우고, 한 구절을 드리우고, 한 빼어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범부와 성인, 마음 있는 것과 없는 것(有情無情)이 다 함께 그 위엄의 빛을 우러르고, 그 그늘에 감싸이게 한다.
쉽게 읽기덮이고 감춰진 것을 활짝 열어젖힌다. 어두운 방에 밝은 등불을 켜듯, 나루의 요긴한 길목에 배를 갖다 댄다. 그리하여 큰 해탈을 이루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은 채 단박에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 이 이치로 들어가는 문을 지난 뒤라야, 비로소 널리 밝게 빛나는 도량에 오른다. 그곳에서 번뇌가 새어들지 않고 맑고 뛰어난 법공의 자리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입에서 바닷물처럼 말을 쏟아 내며, 걸림 없는 네 가지 말솜씨를 마음껏 떨친다. 한 기틀을 세우고, 한 구절을 던지고, 한 가지 빼어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범부와 성인, 마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 함께 그 크나큰 빛을 우러러, 그 그늘 아래 감싸여 보호받게 한다.
풀이 1
교감 · 然暗室明燈'然暗室明燈'의 '然'은 '燃'(불을 붙이다)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20.4
한문尚未是絕功勳處,更轉那頭?千聖羅籠不住,萬靈景仰無門,諸天無路捧花,魔外那能旁覰?
번역이렇게 해도 아직은 공훈(功勳)을 끊어 버린 자리가 아니다. 다시 저쪽(那頭)으로 굴려 가면, 천 성인도 그물로 가두지 못한다. 만 신령도 우러러볼 문이 없다. 모든 하늘도 꽃을 바칠 길이 없다. 마구니와 외도(魔外)인들 어찌 곁눈질이나 하겠는가.
放卻知見,卸卻玄妙,颺卻作用,惟飢餐渴飲而已。
지견(知見)을 놓아 버리고, 현묘(玄妙)를 벗어 던지고, 작용(作用)마저 날려 버린다. 그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실 뿐이다.
初不知有心無心,得念失念,何況更戀著從前學解玄妙理性,分劑名相,桎梏知見,
애초에 마음이 있음과 없음, 생각을 얻음과 잃음조차 알지 못한다. 하물며 다시 예전에 배워 안 것과 현묘한 이치에 연연하겠는가. 이름과 모양(名相)을 나누어 따지고, 지견에 차꼬를 채우겠는가.
佛見法見,動地掀天,世智辯聦,自纏自縛,入海筭沙,有何所靠耶?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로 땅을 뒤흔들고 하늘을 들어 올린다. 세상의 지혜와 말재주와 총명으로 제가 저를 얽고 묶는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는 격이니, 무슨 기댈 데가 있겠는가.
쉽게 읽기그렇게 하여도 오히려 아직은 애써 이룬 보람, 곧 공훈마저 다 끊어 버린 자리가 아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저쪽 자리로 굴려 가 보라. 그러면 천 명의 성인도 그를 그물로 가두지 못한다. 온갖 신령도 그를 우러러볼 문이 없다. 모든 하늘도 그에게 꽃을 바칠 길이 없다. 그러니 마군이나 외도인들 어찌 곁눈질이나마 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알음알이를 놓아 버리고, 그윽하고 묘한 이치도 벗어던지고, 온갖 작용마저 떨쳐 버린다. 오직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실 뿐이다. 애초에 마음이 있음과 없음도, 생각을 얻음과 잃음도 따지지 않는다. 그러니 하물며 예전에 배워 둔 앎이나, 그윽하고 묘한 이치의 갈래, 이름과 모양 같은 것에 다시 매여 집착하겠는가. 그런 것들은 알음알이를 옭아매는 족쇄일 뿐이다. 부처라는 견해와 법이라는 견해를 내세워 땅을 뒤흔들고 하늘을 치켜드는 일, 세속의 얕은 지혜와 말재주와 잔꾀로 스스로를 얽고 묶는 일은, 바다에 들어가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다. 거기에 무슨 기댈 것이 있겠는가.
풀이 1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絕功勳處'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오역. 絕功勳處는 功用을 넘어선 向上의 자리이나, 책 '절승한 공훈'은 絕을 絕勝으로 오독해 뜻이 반대로 흐른다. 자체역 '공훈(功勳)을 끊어 버린 자리'가 정확하므로 유지한다.
20.5
한문等是大丈夫應務,敵勝驚羣,滿自己本志願,乃爲本分大心大見大解脫,無爲無事,真道人也。
번역똑같은 대장부라면 마땅히 제 할 일을 다해야 한다. 적을 이기고 무리를 놀라게 하며, 자기 본래의 뜻과 서원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야 본분(本分)의 큰 마음, 큰 견해, 큰 해탈이요, 함도 없고 일도 없는(無爲無事) 참된 도인이다.
쉽게 읽기참된 대장부라면 마땅히 제 소임을 다해야 한다. 적을 이기고 무리를 놀라게 하며, 본래 품은 뜻과 서원을 남김없이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본분의 큰 마음과 큰 견해와 큰 해탈을 갖춘 사람이다. 함도 없고 일도 없는, 참된 도인이라 하겠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1
  1. 三世如來所證金剛正體 삼세여래소증금강정체

    삼세 부처가 증득한 금강(金剛) 같은 참 본체이다. 진여(眞如)·자성(自性)의 다른 이름이다.

  2. 單傳妙心 단전묘심

    세존(世尊)이 염화미소(拈花微笑)로 가섭(迦葉)에게 홀로 전한 열반묘심(涅槃妙心)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의 근거이다(전등(傳燈) 계열).

  3. 香象 향상

    gandhahastin(발정기 코끼리)이다. 강물을 밟아 바닥까지 사무친다는 데서 대력·철저의 비유이다(열반경(涅槃經) 계열).

  4. 金翅 금시

    금시조(金翅鳥)(garuḍa)이다. 용을 잡아먹는 새들의 왕으로 초월적 위력의 상징이다.

  5. 截流摩霄 절류마소

    생사·번뇌의 흐름을 끊고 하늘을 문지름이다.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기상이다.

  6. 鴻鵠燕雀 홍곡연작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연작안지홍곡지지재(燕雀安知鴻鵠之志哉)'에서 온 표현이다. 큰 뜻과 작은 뜻의 대비이다.

  7.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

    부싯돌을 쳐서 튀는 불꽃과 번쩍이는 번갯불이다. 헤아릴 틈 없이 빠른 것을 이르며, 선문에서는 깨달음의 기틀이 그러함을 비유한다. 흔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 한다.

  8. 四生九類 사생구류

    태(胎)·난(卵)·습(濕)·화(化) 사생(四生)과 「금강경(金剛經)」의 구류중생(九類衆生)이다. 일체 중생을 통칭한다.

  9.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10. 空劫已前面目 공겁이전면목

    세계가 이루어지기 전(威音那畔)의 본래면목이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하며, 원오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11. 三條椽下 삼조연하

    '세 개의 서까래 아래'라는 말이다. 승당(僧堂)에서 한 사람에게 주어진 좌선 자리를 가리킨다. 흔히 일곱 자 자리 앞(칠척단전, 七尺單前)과 짝지어, 제자리에 앉아 참구하는 공부를 이른다.

  12. 死卻心猿·殺卻意馬 사각심원·살각의마

    심원의마(心猿意馬)이다. 원숭이처럼 뛰는 마음과 말처럼 내닫는 뜻(散亂心)을 죽여 없앤다는 뜻이다.

  13. 枯木朽株 고목후주

    마른 나무와 썩은 등걸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헛된 생각과 분별이 다 끊겨 크게 한 번 죽은 듯 고요해진 자리를 비유한다. 그 자리에서 다시 큰 작용이 살아나야 한다고 본다.

  14. 絕功勳處 절공훈처

    공훈(功勳)마저 끊어 버린 자리이다. 공훈은 동산오위(洞山五位)의 공훈처럼 향상(向上)으로 나아가며 쓰는 공용(功用)이니, 그 공용의 자취까지 다한 향상의 자리를 말한다.

  15. 千聖羅籠不住 천성나롱불주

    천 성인도 그물로 가두지 못함이다. '천성불전(千聖不傳)'과 짝하는 향상인(向上人)의 초월성이다.

  16. 諸天無路捧花 제천무로봉화

    우두법융(牛頭法融)이 사조(四祖) 도신(道信)을 만나기 전엔 뭇 새·천신이 꽃을 바쳤으나 깨친 뒤엔 찾을 길이 없어졌다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고사이다. 자취 없는 경지의 비유이다.

  17. 飢餐渴飲 기찬갈음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심이다. 대주혜해(大珠慧海) '기래끽반(飢來喫飯) 곤래즉면(困來卽眠)',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경지이다.

  18. 世智辯聰 세지변총

    세상살이의 지혜와 말재주, 총명함을 이른다.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처지(八難)의 하나로 꼽힌다. 똑똑함이 도리어 알음알이를 키워 깨달음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19. 入海筭沙 입해산사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셈이다. 부질없는 명상(名相) 분별이며, 영가(永嘉) 「증도가(證道歌)」 '분별명상불지휴(分別名相不知休) 입해산사도자곤(入海算沙徒自困)'의 전거이다.

  20. 無爲無事 무위무사

    억지로 짓는 일 없는 무위(無爲)와 따로 일삼는 일 없는 무사(無事)를 함께 이른다. 분별과 애씀이 다 쉰 평상한 경지다. 임제(臨濟)는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라 하였다.

  21. 空劫已前 공겁이전

    세계가 이루어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비는 네 시기 가운데 텅 빈 때가 공겁(空劫)이다. 그보다 앞, 아무것도 생기기 전의 근원을 이르며, 선문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가리킨다.

  22. 魔外 마외

    천마(天魔)와 외도(外道)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수행을 방해하는 마왕과 불법 밖의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다. 자취 없는 경지를 '마외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23. 三條椽下·七尺單前 삼조연하·칠척단전

    '서까래 세 개 아래, 일곱 자 자리 앞'이라는 말이다. 승당(僧堂)에서 한 스님에게 주어진 좌선 자리를 가리키며, 곧 저마다 공부하는 바로 그 자리를 이른다.

  24. 一書記 일서기

    원오 문하에서 서기(書記) 소임을 맡았던 승려이다. 서기는 선원의 글과 편지를 맡는 자리이다. 법명 가운데 한 글자를 따 '일 서기'라 불렸다. 뒤에 명주(明州) 설두산의 주지로 갔다.

  25. 一書記·住四明雪竇 일서기·주사명설두

    원오(圜悟) 「심요(心要)」 제21편 수신자와 부임지이다. 서기(書記)는 선원 육두수(六頭首)의 하나로 문서·서한을 맡는 소임이다. 사명(四明)=명주(明州)(현 영파(寧波)), 설두(雪竇)=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이다. 운문종(雲門宗)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이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지은 곳이며, 원오가 그 송고에 착어(着語)·평창(評唱)한 것이 곧 「벽암록(碧巖錄)」이니, 서기(書記)가 설두(雪竇)로 감은 원오에게 각별한 인연이 있다.

  26. 衲子 납자

    누더기 옷(衲衣)을 걸친 수행승이다. 선승의 통칭이다.

  27. 普光明場 보광명장

    「화엄경(華嚴經)」 설법처인 보광명전(普光明殿)이다. 깨달음이 두루 빛나는 도량이다.

  28. 四辯才 사변재

    사무애변(四無礙辯)(법(法)·의(義)·사(辭)·낙설(樂說)의 걸림 없는 변재)이다. 무애자재한 설법 능력이다.

  29. 那頭 나두

    저쪽 머리, 곧 향상일로(向上一路)이다. 성·범과 공훈을 모두 넘어선 절대의 자리이다.

  30. 無爲無事·真道人 무위무사·진도인

    임제(臨濟)의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무위진인(無位眞人) 계열이다. 함없이 본분에 사는 참 도인이다.

  31. 死卻心猿 사각심원

    心猿意馬이다. 원숭이처럼 뛰는 마음과 말처럼 내닫는 뜻(散亂心)을 죽여 없앤다는 뜻이다.

문단 5국역본 대조 2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