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48편

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示禪人

48.1
한문西方大聖人出迦維羅,作無邊量妙用,顯發剎塵莫數難思議殊特正因,以啟迪羣靈。
번역서방(西方)의 큰 성인께서 가유라(迦維羅)에 나시어, 가없는 미묘한 작용을 일으키셨다. 국토의 티끌처럼 셀 수 없고 생각으로 미치기 어려운, 빼어나고 바른 인(正因)을 드러내 밝히셨다. 그렇게 뭇 중생을 일깨우셨다.
其方便順逆開遮,餘言遺典,盈溢寶藏。
그 방편은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며, 열어 주기도 하고 막기도 하였다. 남기신 말씀과 물려주신 경전이 보배 창고에 가득 넘친다.
及至下梢,始露一消息,謂之教外別行,單傳心印。
그러다 맨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소식을 드러내셨다. 이를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함(敎外別行), 마음도장을 오롯이 전함(單傳心印)이라 한다.
金色老子已來,的的綿綿,只論直指人心,見性成佛,不立階梯,不生知見,
금색노자(金色老子) 이래로 또렷하게,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일(直指人心 見性成佛)만 말할 뿐이다. 계단을 세우지 않고, 알음알이와 견해를 내지 않는다.
利根上智,向無明窟子裏瞥破,煩惱根株中活脫,應時超證,得大解脫。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이는 무명(無明)의 굴속에서 언뜻 깨뜨리고, 번뇌의 뿌리 속에서 살아 벗어난다. 그 즉시 뛰어올라 깨닫고, 큰 해탈을 얻는다.
쉽게 읽기서쪽의 크신 성인, 곧 부처님이 가유라에 나셨다. 부처님은 끝없이 미묘한 작용을 일으키셨다. 티끌처럼 많아 헤아릴 수도 없는 바르고 뛰어난 씨앗을 밝히셨다. 그렇게 뭇 중생을 일깨우셨다. 그 방편은 순리로도 가고 거스르기도 했다. 열어 주기도 하고 막아 주기도 했다. 이렇게 두루 펼쳐졌다. 남기신 말씀과 물려주신 경전이 보배 창고에 가득 찼다. 그러다 맨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소식을 드러내셨다. 이를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함이라 한다. 또 마음도장을 오직 한 줄기로 전함이라 한다. 금빛 노인, 곧 마하가섭 이래로 이 법은 또렷하게 이어져 왔다. 여기서는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일만 말한다. 단계를 세우지 않는다. 알음알이나 견해도 내지 않는다. 근기가 날카롭고 지혜가 뛰어난 이는 무명의 굴을 단번에 깨뜨린다. 번뇌의 뿌리 속에서 살아 벗어난다. 그 즉시 훌쩍 뛰어넘어 깨닫고, 큰 해탈을 얻는다.
48.2
한문是故竺乾四七,東土二三,皆龍象蹴蹋,師勝資強,
번역그러므로 천축(竺乾)의 스물여덟 조사와 동토(東土)의 여섯 조사가 모두 용과 코끼리처럼 차고 밟았다. 스승은 뛰어나고 제자는 굳셌다.
機境言句,動用語默,有上上乘根器,格外領略,當下業障冰消,直截承荷。
기연과 경계, 말과 글귀, 움직임과 씀, 말함과 잠잠함에서, 최상승(上上乘)의 그릇은 격식 밖에서 알아차렸다. 그 자리에서 업장(業障)이 얼음 녹듯 사라지고, 곧장 끊어 떠맡았다.
於餘時自能管帶,打作一片,度世絕流,頓契佛地。
그 밖의 때에도 스스로 챙겨 지녀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세상을 건너고 흐름을 끊어, 단박에 부처의 경지에 들어맞았다.
尚不肯向死水裏浸,卻唱出透玄妙,越佛祖,削去機緣,剗斷路布,如桉太阿,凜凜神威,阿誰敢近?
그러고도 죽은 물속에 잠기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현묘함을 꿰뚫고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 노래를 불러냈다. 기연을 깎아 없애고, 짜 놓은 말(路布)마저 잘라 버렸다. 마치 태아검(太阿)을 쥔 듯하니, 그 늠름한 신령한 위엄에 누가 감히 다가서겠는가.
作家漢確實論量,纔有向上向下勝妙理性,作用纖毫,卽叱之不是。
솜씨 있는 이(作家)는 확실하게 따져 헤아렸다. 향상(向上)이니 향하(向下)니 하는 뛰어나고 묘한 이치와 성품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터럭만 한 작용이라도 있으면, 곧 꾸짖어 옳지 않다 하였다.
從來種草,直下十成,煅煉得熟,踐履得實,始與略放過,猶恐異時落草,負累人瞎卻正法眼。
본래부터 심어 온 씨앗(種草)이 곧바로 열에 열이 다 이루어져야 했다. 단련하여 무르익고 밟아 행하여 실다워진 뒤에야, 비로소 조금 놓아 보내 주었다. 그래도 훗날 잡초 속에 떨어져(落草) 남에게 누를 끼치고 바른 법의 눈(正法眼)을 멀게 할까 염려하였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천축의 스물여덟 조사와 동쪽 땅의 여섯 조사가 모두 용과 코끼리처럼 힘차게 내디뎠다. 스승은 뛰어났고 제자는 굳셌다. 이들은 기연과 경계, 말과 글귀, 움직임과 씀, 말함과 침묵함 그 어디에서든 걸림이 없었다. 가장 높은 가르침을 받을 그릇이라, 격식 밖에서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 자리에서 묵은 업이 얼음 녹듯 사라졌다. 그리하여 곧바로 끊고 짊어졌다. 그 밖의 때에도 스스로 잘 챙겨 지녀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세상을 건네고 흐름을 끊어 단박에 부처의 경지에 들어맞았다. 그러고도 괸 물 같은 죽은 자리에 잠기기를 즐기지 않았다. 도리어 현묘함을 꿰뚫었다. 부처와 조사마저 뛰어넘는 노래를 불렀다. 기연을 깎아 없앴다. 늘어놓은 말까지 잘라 버렸다. 마치 태아검을 잡은 듯했다. 그 늠름한 위엄에 누가 감히 다가서겠는가. 안목을 갖춘 이는 또렷이 가려냈다. 조금이라도 위로 향한다거나 아래로 향한다는 뛰어난 이치와 성품이 남아 있으면, 터럭만 한 작용이라도 남아 있으면, 곧바로 꾸짖어 옳지 않다 했다. 본래부터 심어 온 씨앗이 열이면 열 다 여물었다. 단련하여 익고 실천하여 참되게 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 내보냈다. 그러고도 훗날 잡초 속에 떨어져 남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했다. 바른 법의 눈을 멀게 할까 염려했다.
풀이 8
龍象蹴蹋 용상축답'皆龍象蹴蹋 師勝資強'. 資는 弟子(師資).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20에도 실렸다.
正法眼藏 정법안장'猶恐異時落草,負累人瞎卻正法眼' —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이를 놓아주면 뒷날 남을 그르쳐 正法眼을 멀게 할까 두렵다는 뜻.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20에도 있다.
落草 낙초'猶恐異時落草,負累人瞎却正法眼' — 단련이 무르익은 뒤에도 뒷날 本分을 잃고 邪路에 떨어질까 염려한다는 부정의 뜻. 같은 편의 '不覺墮在荒草'도 같은 비유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猶恐異時落草
양립 가능한 이독. 자체역의 '훗날 잡초 속에 떨어져'(부정적 落草)와 책의 '어느 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선어 落草=노파심의 하강 제접)가 落草의 양면 어의로 모두 성립한다. 落草는 저자 원오의 상용어(碧巖錄)이기도 하여 어느 쪽도 배제되지 않으며, 뒤의 負累人瞎卻正法眼이 부정적 결과로 수렴하므로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문맥이 통한다.
교감 · 如桉太阿'如桉太阿'의 '桉'은 '按'(쥐다)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48.3
한문嗟見一流拍盲野狐種族,自不曾夢見祖師,卻妄傳達磨,以胎息傳人,謂之傳法救迷情。
번역아, 안타깝다. 눈먼 들여우 족속인 한 무리를 보니, 스스로는 조사(祖師)를 꿈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도리어 달마(達磨)를 사칭하여 태식(胎息)을 사람에게 전하고는, 이것을 법을 전해 미혹한 마음을 건지는 일이라 한다.
以至引從上最年高宗師,如安國師、趙州之類,皆行此氣。及誇初祖隻履普化空棺,皆謂此術有驗,遂至渾身脫去,謂之形神俱妙。
심지어 예로부터 가장 나이 많았던 종사(宗師), 이를테면 안 국사(安國師)와 조주(趙州) 같은 분들을 끌어대어, 모두 이 기(氣)를 행했다고 한다. 또 초조(初祖)의 외짝 신발과 보화(普化)의 빈 관을 자랑삼아, 모두 이 술법이 영험한 증거라 한다. 마침내 온몸째 벗어나 떠나는 데에 이르면, 이를 몸과 정신이 함께 묘하다(形神俱妙)고 일컫는다.
而人間厚愛此者,怕臘月三十日,慞惶競傳歸真之法,除夜望影,喚主人翁以卜日月,聽樓鼓,驗玉池,覘眼光,以爲脫生死法。
세간에서 이것을 몹시 좋아하는 이들은 섣달 그믐날(臘月三十日)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허둥지둥 다투어 참으로 돌아가는 법(歸眞之法)을 전한다. 그믐밤에 그림자를 바라보고, 주인옹(主人翁)을 불러 그 날과 달을 점친다. 누각의 북소리를 듣고, 옥지(玉池)를 살피고, 눈빛을 엿본다. 이것을 생사를 벗어나는 법으로 여긴다.
真誑諕閭閻,揑偽造窠,貽高人嗤鄙。
참으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겁주는 짓이다. 거짓을 빚어 소굴을 짓는 짓이다. 높은 이들에게 비웃음과 업신여김만 살 뿐이다.
復有一種,假託初祖胎息說、趙州十二時別歌、龐居士轉河車頌,遞互指授,密傳行持,以圖長年。
또 한 부류가 있다. 초조의 태식설(胎息說), 조주의 십이시별가(十二時別歌), 방거사(龐居士)의 전하거송(轉河車頌)을 거짓으로 끌어다 댄다. 서로 번갈아 가리켜 일러 주고, 몰래 전해 닦아 지니며, 오래 살기를 꾀한다.
及全身脫去,或希三五百壽,殊不知此真妄想愛見,本是善因,不覺墮在荒草。
온몸째 벗어나 떠나기를 바라거나, 삼백 년 오백 년의 수명을 바란다. 이것이 참으로 망상이요 애착하는 견해(愛見)임을 전혀 모른다. 본래는 착한 인(善因)이었건만, 저도 모르게 거친 잡초 속에 떨어진 것이다.
而豪傑俊頴之士,高談大辯,下視祖師者,往往信之。
그런데도 호걸스럽고 빼어나며 영민한 선비, 높이 논하고 크게 말을 펴며 조사를 낮추어 보는 이들이 이따금 이것을 믿는다.
豈知失故步,𦘕虎成狸,遭有識大達,明眼覰破。
어찌 알겠는가. 옛 걸음걸이마저 잃고, 범을 그리려다 삵을 그리고 만 것을. 식견 있고 크게 통달한 이, 눈 밝은 이를 만나면 대번에 꿰뚫어 보이고 만다.
쉽게 읽기아, 안타깝다. 눈먼 들여우 같은 무리를 보면 이렇다. 조사를 꿈에서도 뵌 적이 없다. 그러면서 도리어 달마를 사칭한다. 태식, 곧 태아처럼 숨을 고르는 도가의 호흡법을 사람에게 전한다. 그러고는 이것이 법을 전해 미혹한 마음을 구제하는 일이라 내세운다. 심지어 예로부터 가장 연로한 종사까지 끌어댄다. 안 국사나 조주종심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도 모두 이 기의 술법을 행했다고 한다. 또 초조 달마의 외짝 신발과 보화의 빈 관까지 자랑삼는다. 이 모두가 그 술법의 영험이라 한다. 마침내 온몸째 벗어나 떠나는 것을 두고 몸과 정신이 함께 묘해졌다고 일컫는다. 세간에서 이것을 몹시 좋아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섣달 그믐날, 곧 죽는 날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허둥지둥 다투어 이른바 참으로 돌아가는 법을 전한다. 그믐밤에는 제 그림자를 살핀다. 주인옹을 불러 명이 다할 날을 점친다. 누각의 북소리를 듣는다. 입안의 옥지를 들여다본다. 눈빛을 엿본다. 이것을 생사를 벗어나는 법으로 여긴다. 이는 참으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고 겁주는 짓이다. 거짓을 꾸며 소굴을 짓는 짓이다. 안목 높은 이들에게 비웃음과 멸시만 살 뿐이다. 또 다른 한 부류가 있다. 이들은 초조의 태식설과 조주의 십이시별가, 방거사의 전하거송을 함부로 끌어다 쓴다. 서로 번갈아 일러 주고 은밀히 전해 지니며 닦아 오래 살기를 꾀한다. 온몸째 벗어나기를 바란다. 삼백 년에서 오백 년의 수명을 바란다. 이것이 바로 망상과 애착의 견해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본래는 착한 씨앗이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거친 잡초 속에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믿는 이들이 이따금 있다. 호걸스럽고 준수하며 영민한 선비들이다. 높은 담론과 큰 변설로 조사를 낮잡아 보는 자들이다. 어찌 알겠는가. 제 옛 걸음걸이마저 잃은 격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삵을 그리고 마는 격이다. 식견 있고 크게 통달한 이, 밝은 눈을 지닌 이를 만나면 그 정체가 대번에 드러나고 만다.
풀이 8
趙州從諗 조주종심같은 글이 『圜悟語錄』 권20 「破妄傳達磨胎息論」에 있다. 趙州는 壽 120으로 전해져 장수의 예로 끌려 나왔다. '趙州十二時別歌'는 『趙州錄』의 「十二時歌」를 가리키는 듯하다(추정).
隻履 척리隻履西歸 설화를 도인술 영험의 증거로 오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胎息 태식'妄傳達磨,以胎息傳人,謂之傳法救迷情'은 道家의 胎息을 達磨의 법이라 내세우는 무리를 꾸짖는 말이다.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20 「破妄傳達磨胎息論」에 실려 있다(T47n1997_p0809c07).
主人翁 주인옹'除夜望影,喚主人翁以卜日月'은 瑞巖이 날마다 스스로 '主人公' 하고 부른 이야기를, 長生術 하는 이들이 壽命을 점치는 道術로 비틀어 쓴 것을 꾸짖는 말이다.
48.4
한문居常眾中,惟默觀憫憐,豈釋迦文與列祖體裁止如是耶?曾不自回照始末,則居然可知矣。
번역평소 대중 가운데서 나는 오직 잠자코 지켜보며 가엾이 여길 뿐이다. 어찌 석가모니(釋迦文)와 여러 조사의 바탕과 틀이 겨우 이와 같기만 하겠는가. 일찍이 스스로 처음과 끝을 돌이켜 비추어 보지 않으니, 그 결말은 뻔히 알 만하다.
海內學此者,如稻麻竹葦,其高識遠見,自不因循。
온 세상(海內)에 이것을 배우는 이가 벼와 삼, 대와 갈대처럼 많다. 그러나 높은 식견과 먼 안목을 지닌 이라면 스스로 이를 따르지 않는다.
恐乍發意,未入閫奧,揭志雖專,跂步雖遠,遇增上慢導,入此邪見林,末上一錯,永沒回轉,其流浸廣,莫之能遏。
이제 막 뜻을 낸 이는 아직 깊은 안방(閫奧)에 들지 못했다. 세운 뜻이 한결같고 발돋움한 걸음이 멀더라도, 증상만(增上慢)의 길잡이를 만나 이 삿된 견해의 숲에 들어서면, 첫머리의 한 번 잘못으로 영영 빠져 돌이키지 못하고, 그 흐름이 점점 넓어져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될까 두렵다.
因出此顯言,庶有志願於大解脫、大總持可以辨之,而同入無生大薩婆若海,汎小舟,濟接羣品,俾正直妙道流於無窮,豈不快哉!
그래서 이렇게 드러내어 말한다. 부디 큰 해탈과 큰 총지(總持)에 뜻과 원을 둔 이들이 이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 함께 남이 없는(無生) 큰 살바야(薩婆若)의 바다에 들어가, 작은 배를 띄워 뭇 중생을 건네고 이어 주기를 바란다. 바르고 곧은 묘한 도(妙道)가 다함없이 흐르게 한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쉽게 읽기나는 평소 대중 가운데서 이런 무리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저 가엾이 여긴다. 어찌 석가모니와 여러 조사의 본바탕과 규모가 겨우 이 정도이겠는가. 이들은 스스로 처음과 끝을 돌이켜 비추어 보지 않는다. 그러니 그 끝이야 뻔히 알 만하다. 세상에 이것을 배우는 자가 벼와 삼, 대와 갈대처럼 많다. 그러나 높은 식견과 먼 안목을 지닌 이라면 이런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다만 두려운 일이 있다. 이제 막 뜻을 낸 이는 아직 깊은 경지에 들지 못한다. 세운 뜻이 아무리 한결같아도, 내딛는 걸음이 아무리 멀리 나아가도 그렇다. 그런 이가 증상만에 빠진 인도자를 만난다고 하자. 그 삿된 견해의 숲으로 들어선다고 하자. 그러면 첫걸음의 한 번 잘못으로 영영 빠져 돌이키지 못한다. 그 흐름이 점점 번져 아무도 막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두렵다. 그래서 이렇게 드러내어 말한다. 부디 큰 해탈과 큰 총지에 뜻을 둔 이들이 이를 잘 분별하기를 바란다. 다 함께 남이 없는 큰 살바야의 바다에 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작은 배를 띄워 뭇 중생을 건네고 이어 주기를 바란다. 바르고 곧은 묘한 도가 다함없이 흐르게 한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풀이 7
無生 무생薩婆若는 sarvajña의 음역으로 一切智. '入薩婆若海'는 『華嚴經』(60권본) 권51 등에 보인다. 앞의 '大總持'의 總持는 dhāraṇī, 모든 법을 지녀 잃지 않음.
增上慢 증상만邪見으로 이끄는 이(導)를 增上慢으로 규정하여 초심자가 邪見林에 빠짐을 경계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居常眾中,惟默觀憫憐
책 오역(주어 오인). 이 구의 주어는 저자 圜悟 자신으로, '평소 대중 가운데서 나는 오직 묵묵히 지켜보며 가엾이 여길 뿐'이 자연스럽다. 이어지는 豈…止如是耶와 因出此顯言의 1인칭 어조에 부합한다. 책은 미혹한 무리를 주어로 삼아 '묵관하는 가엾은 이들'로 옮겼으나, 그 무리는 胎息과 기술을 행할 뿐 默觀을 하지 않으므로 어긋난다. 나의 번역이 옳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永沒回轉
양립 가능한 이독. 자체역의 '영영 빠져 돌이키지 못하고'(回轉=되돌아옴)와 책의 '영원히 윤회에 빠지고'(回轉=輪廻)가 모두 성립한다. '永沒回轉'은 '永沒하여 回轉하지 못함'으로도, '回轉의 굴레에 永沒함'으로도 읽을 수 있어 결정적 전거가 없다. 다만 永沒과의 구조상 '가라앉아 돌아 나오지 못함'이 다소 우세하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可以辨之
양립 가능한 이독. 자체역의 '이를 분별하여'(辨=辨別)와 책의 '성취할 수 있을 것'(辨=辦, 이룸)이 고전에서 모두 통용된다. 글 전체가 진위를 가려내는 데 취지가 있어 '분별'이 문맥에 더 부합하나, 辨과 辦의 통가(通假)가 널리 쓰여 책의 독해도 성립한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7
  1. 迦維羅 가유라

    迦維羅衛(가유라위, Kapilavastu)의 준말. 석가모니가 태어난 성으로, 중인도 카필라국의 도성이다. '서방대성인출가유라(西方大聖人出迦維羅)'는 부처의 출세를 가리킨다.

  2. 教外別行 교외별행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으로,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쓴다.

  3. 單傳心印 단전심인

    부처의 마음 도장(心印)을 오직 한 줄기로 곧바로 전한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잇는 선종의 전법을 이른다. 흔히 교외별행(教外別行)과 짝지어 쓴다.

  4. 金色老子 금색노자

    '금빛 노인'. 금색두타(金色頭陀)로 불린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 염화미소(拈花微笑)로 부처에게 심인(心印)을 받은 서천 초조로, '금색로자이래(金色老子已來) 적적면면(的的綿綿)'은 가섭 이래의 단전 법맥을 뜻한다. 부처의 금색신(金色身)으로 보아 석가(釋迦)로 읽는 설도 있으나, 뒤의 '단전심인(單傳心印)'을 이어받은 자로 보면 가섭이 자연스럽다.

  5.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6. 竺乾四七 축건사칠

    축건(竺乾)은 천축(天竺)(인도)이다. 사칠(四七)=4×7=28로, 서천 28조를 가리킨다. 가섭(迦葉)으로부터 달마(達磨)까지의 인도 조사 계보이다.

  7. 東土二三 동토이삼

    동토(東土)는 중국이다. 이삼(二三)=2×3=6으로, 동토 6조(달마(達磨)·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를 가리킨다.

  8. 龍象蹴蹋 용상축답

    용과 코끼리가 힘차게 차고 밟는다는 말이다. 『유마경』에서 '용과 코끼리의 발길질은 나귀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 데서 왔다. 큰 그릇의 수행자가 거침없이 나아감을 비유한다.

  9.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10. 正法眼藏 정법안장

    부처가 깨달은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또는 그 눈으로 본 법의 알맹이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꽃을 들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고, 이때 이 법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전한다. 선종에서는 조사에서 조사로 마음으로 이어 온 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

  11. 隻履 척리

    '신 한 짝'이라는 뜻으로, 달마의 척리서귀(隻履西歸) 이야기를 가리킨다. 달마가 세상을 떠나 묻힌 뒤, 서역에서 돌아오던 사신이 고갯길에서 신 한 짝을 들고 서쪽으로 가는 달마를 만났고, 무덤을 열어 보니 빈 관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12.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13. 歸真 귀진

    '참으로 돌아감'이다. 죽음의 완곡어이자 도교에서 신선이 되어 본원으로 돌아감이다. 慞惶競傳歸真之法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이 법을 다투어 전함이다.

  14. 主人翁 주인옹

    참 자기, 곧 본래의 나를 이르는 선가의 말이다. 서암 사언 스님이 날마다 스스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예!' 하고 대답하며 '깨어 있어라, 뒷날 남에게 속지 마라' 했다는 이야기(오등회원 권7, 무문관 제12칙)로 널리 알려졌다.

  15. 樓鼓 누고

    누각의 북소리다. 도교 내단(內丹) 양생에서 귀에 울리는 소리를 기(氣)의 징후로 살펴 생사를 점치는 표지로 삼는다.

  16. 玉池 옥지

    도교 내단(內丹)에서 입안, 또는 입안의 침(옥액, 玉液)을 이른다. 이를 살펴 생사를 점치는 표지로 삼는다.

  17. 胎息 태식

    도교의 양생술이다. 코와 입으로 숨 쉬기를 끊고, 태아처럼 기를 몸 안에서 돌린다는 수련법이다.

  18. 趙州從諗 조주종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이다. 당나라의 선승으로 남전(南泉)의 법을 이었다. 조주 땅 관음원(觀音院)에 오래 머물러 '조주'라 불렸고, 120세를 살았다고 전한다. 쉬운 말로 사람을 일깨웠으니,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같은 문답이 널리 알려졌다.

  19. 十二時別歌 십이시별가

    조주 스님의 「십이시가」(하루 열두 때를 차례로 읊은 노래)에 이름을 빌려 따로 지은 노래로 보인다. 원오는 장생술을 닦는 무리가 이것을 수련 비결로 끌어다 쓴다고 꾸짖었다(원오어록 권20).

  20. 龐居士·龐蘊 방거사·방온

    방온(?~808)이다. 당대(唐代)의 대표적 재가 거사로, 석두(石頭)·마조(馬祖)에게 참문한 선문의 백의(白衣) 종장이다.

  21. 失故步𦘕虎成狸 실고보화호성리

    두 성어의 결합이다. 실고보(失故步)는 『장자(莊子)』 추수(秋水)의 邯鄲學步—수릉의 젊은이가 조나라 걸음을 배우다 제 걸음마저 잃은 고사이다. 화호성리(𦘕虎成狸)는 '화호불성반류구(畫虎不成反類狗)'의 변형으로, 흉내 내려다 도리어 우스운 꼴이 됨을 이른다.

  22. 增上慢 증상만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여기는 교만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가장 깊은 법을 설하려 하자 이런 교만을 품은 비구·비구니 등 오천 명이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수행하는 이가 가장 경계해야 할 마음의 병으로 꼽힌다.

  23. 總持 총지

    다라니(dhāraṇī)를 옮긴 말이다. 모든 법을 거두어 지녀 잃지 않음을 이른다.

  24. 無生 무생

    나고 사라짐이 본래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참으로는 생겨난 적이 없으니 사라질 것도 없다는 참모습을 이른다. 이를 깨달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인 경지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한다.

  25. 薩婆若海 살파약해

    살파약(薩婆若)(sarvajna, 일체지(一切智))의 바다이다. 일체지해(一切智海)에서 주항(舟航)이 되어 중생을 실어 건넨다.

  26.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27. 太阿 태아

    명검 이름이다. 간장막사(干將莫邪)류의 보검으로 오(吳)의 태아검(太阿劍)이다. '여안태아(如按太阿) 늠늠신위(凜凜神威)'는 향상의 살활자재한 기용이 태아검을 잡은 듯 늠름함을 비유한다.

  28. 安國師 안국사

    노안국사(老安國師), 곧 숭산(嵩山) 혜안(慧安)(숭산 혜안)이다. 오조(五祖) 홍인(弘忍)의 제자로 128세를 살았다 전하는 장수 종사이다. '종상최년고종사(從上最年高宗師)'라는 문맥과 장수·기(氣) 화제에 정확히 부합한다. 국사(國師) 칭호가 같은 남양(南陽) 혜충(慧忠)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나이를 든 점에서 노안(老安)이 합당하다.

  29. 普化空棺 보화공관

    보화선사(普化禪師)가 스스로 관에 들어가 전신이 사라져 관이 비었다는 고사이다. 임제종(臨濟宗)의 방외 도인이다. 이 역시 '형신구묘(形神俱妙)'의 증거로 견강부회됨을 지적한다.

  30. 形神俱妙 형신구묘

    도교 신선술의 궁극 목표어이다. 육신(形)과 정신(神)이 함께 묘화하여 온전히 벗어남(渾身脫去)을 말한다. 불교 해탈과 다른 장생불사의 이상을 가리킨다.

  31. 轉河車頌 전하차송

    방거사(龐居士)(방온(龐蘊))에게 가탁된 위송이다. 하차(河車)는 도교 내단에서 정기를 척추를 따라 위로 돌림을 뜻하는 술어로, '전하차(轉河車)'는 소주천류 기 순환법을 가리킨다.

  32. 隻履西歸 척리서귀

    달마가 신 한 짝을 들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달마를 장사 지낸 지 세 해 뒤,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던 송운이 총령에서 신 한 짝을 들고 홀로 가는 달마를 만났고, 뒤에 무덤을 열어 보니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경덕전등록 권3, 벽암록 제1칙 평창).

  33. 主人翁·主人公 주인옹·주인공

    참 자기, 곧 본래의 나를 이르는 선가의 말이다. 서암 사언 스님이 날마다 스스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예!' 하고 대답하며 '깨어 있어라, 뒷날 남에게 속지 마라' 했다는 이야기(오등회원 권7, 무문관 제12칙)에서 왔다.

  34. 普化·全身脫去·空棺 보화·전신탈거·공관

    당나라 보화 스님이 스스로 관에 들어가 못을 박게 하였는데, 사람들이 관을 열어 보니 몸은 간데없고 공중에 방울 소리만 멀어져 갔다는 이야기다. 경덕전등록 권10 보화장과 임제록에 실려 있다.

  35. 失故步𦘕虎成狸 실고보화호성리

    두 성어의 결합이다. 失故步는 『莊子』 秋水의 邯鄲學步—수릉의 젊은이가 조나라 걸음을 배우다 제 걸음마저 잃은 고사이다. 𦘕虎成狸는 '畫虎不成反類狗'의 변형으로, 흉내 내려다 도리어 우스운 꼴이 됨을 이른다.

  36. 普化 보화

    당나라 때의 기이한 선승으로 반산보적(盤山寶積)의 법을 이었다. 진주(鎭州) 거리를 방울을 흔들며 다니면서 엉뚱한 말과 몸짓으로 선기를 보였고, 임제와 가까이 지냈다. 스스로 관에 들어 세상을 떠났는데 관을 열어 보니 몸이 없었다고 한다.

  37. 眼光 안광

    눈빛의 정기다. 도교 내단(內丹) 양생에서 이를 살펴 생사를 점치는 표지로 삼는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7저본 《卍新纂續藏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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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