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 원오심요 · 下권 33편
유선인(有禪人)에게 주는 글
示有禪人
풀이 3
양립가능 이독. 나는 CBETA 표점을 따라 利根種(예리한 근기의 종자)과 智者(지혜로운 이)로 끊고, 책은 種智를 一切種智 계열의 합성어(利根種智)로 보아 者를 古德에 귀속한다. 種智가 불전의 술어인 만큼 두 구두(句讀)가 다 성립하며, 문맥상 古德=智者이므로 개정본은 '이근종자를 품은 지혜로운 이'로 다듬어 두 주어의 어색함을 해소하였다. 어느 쪽도 배제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풀이 2
양립가능 이독. 儔는 짝(견줄 이)이니 無儔는 '견줄 짝이 없음'이다. 나='옛사람과 견줄 짝이 없이'로 축자에 충실하고, 책='옛사람과 짝이 되어'로 고인과 대등해짐의 결과 의미를 취하였다. 나의 표현이 '고인을 능가'로 오독될 여지가 있어 각주 보완 대상이나 오역은 아니며, 어느 쪽도 배제할 결정적 전거가 없어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풀이 7
양립가능 이독. 책='소반이 주옥을 굴리듯…'으로 走를 타동 '굴리다'로 새기고, 나='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으로 주객을 서로 얹어 상호운동을 표현하였다. 책이 축자적으로 더 정확하나, 走의 타동 construe와 상호운동 독법이라는 실제 구문 분기가 있으면서도 양쪽 모두 걸림 없이 활발발한 상호작용의 비유를 살렸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양립가능 이독. 나='수긍하면 곧 그것', 책='하려고 하면 자빠지는 것'. 肯은 수긍·긍정과 기꺼이 하려 함의 두 뜻을 모두 지닌다. 조산(曹山) 공안에서 알음알이로 인정하는 그 자리가 곧 넘어짐(倒)이라는 전통적 독법에서는 나의 '수긍'이 因地而倒 문맥과 더 정합적이나, 책의 '하려고 하면'도 肯의 뜻 범위 안이어서 오역은 아니다. 결정적 전거가 한쪽을 배제하지 못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 也…也로 이어진 두 구가 동일 구문(X地也不可明得)의 병렬 부정이므로 '서 있어도 밝힐 수 없고 앉아 있어도 밝힐 수 없다'로 읽는 자체역이 옳다. 책은 앞 구의 不妨을 끌어와 '선 자리에서 밝히지 못하면…'의 조건절로 처리하나, 조건 표지가 없고 두 구가 대등한 병렬이므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 편의 낱말 40
- 揀擇 간택
분별하여 취하고 버림이다. 「신심명(信心銘)」의 핵심어로, 애증·순위(順違)의 분별심을 가리킨다.
- 至道無難 지도무난
삼조(三祖) 승찬(僧璨)의 「신심명(信心銘)」 첫 구절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揀擇)을 꺼릴 뿐'이라는 뜻이다. 원오가 「벽암록(碧巖錄)」 제2칙 및 제57~59칙에서 조주(趙州) 공안으로 거듭 제창한 화두다.
- 廓同太虗 곽동태허
툭 트여 큰 허공과 같음이다.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다.
-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 淨穢二邊 정예이변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두 극단이다. 깨끗함을 좇고 더러움을 싫어하는 마음도 치우친 분별이니, 어느 쪽에도 기대지 말라는 뜻으로 쓴다. 마조(馬祖)도 같은 가르침을 폈다.
- 衲僧 납승
누더기(衲) 옷을 입은 선승이다. 참선 수행자를 가리키는 선가의 상투어다.
- 言語道斷·
心行處絕 언어도단·심행처절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갈 곳이 끊어짐이다. 「瓔珞本業經」·「중론(中論)」 등에 연원한 상투구다.
- 蓋天蓋地 개천개지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는 말로, 깨친 이의 작용이 어디에나 가득 드러남을 이른다. 암두(巖頭)가 설봉(雪峰)에게 '네 가슴에서 흘러나와 하늘과 땅을 덮게 하라'고 일러 깨치게 한 말이 유명하다.
- 密密綿綿 밀밀면면
빽빽하고 끊임없이 이어져 조금의 틈도 없다는 말이다. 깨친 뒤의 공부를 빈틈없이 이어 가 자취마저 드러나지 않는 모양을 이른다.
-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 魔外潛覰不見 마외잠처불견
마군(魔軍)과 외도(外道)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누구도 그 속을 넘볼 수 없음을 이른다. 흔히 '여러 하늘이 꽃을 바칠 길이 없다(諸天捧花無路)'는 말과 짝지어 쓴다.
- 如盤走珠·
如珠走盤 여반주주·여주주반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이다. 한곳에 죽어 머물지 않고 걸림 없이 자재로운 활발발(活鱍鱍)한 작용의 비유다.
- 雖是死虵·
解弄也活 수시사사·해롱야활 비록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는 말이다. 사(虵)는 사(蛇)의 이체자다. 죽은 듯한 경계도 활용하면 살아 움직인다는 선가의 속담이다.
- 長慶慧稜 장경혜릉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이십 년 동안 좌복 일곱 개가 닳도록 앉았다가, 발을 걷어 올리다 깨쳤다고 한다. 복주(福州) 장경원에 머물렀다.
- 撞著道伴交肩過·
一生參學事畢 당착도반교견과 일생참학사필'도반을 만나 어깨를 스쳐 지나가니 한평생 참학의 일을 마쳤다'는 말이다. 장경혜릉(長慶慧稜)의 말로, 향상(向上)의 소식을 읊었다.
- 獨脫 독탈
홀로 벗어남이다. 일체에 의지하지 않고 초연히 벗어난 경지(獨脫無依)다.
- 曹山本寂 조산본적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 조산에 머물렀다. 스승 동산과 함께 조동종(曹洞宗)의 조사로 받든다. 동산을 떠날 때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
- 因地而倒因地而起 인지이도인지이기
'땅으로 인하여 넘어지고 땅으로 인하여 일어난다(如人因地而倒 還因地而起)'는 옛 비유. 어떤 스님이 이 말을 들어 조산본적(曹山本寂)에게 '무엇이 넘어짐입니까' 묻자 '수긍하면 곧 그것이니라(肯卽是)',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묻자 '일어남이니라(起也)'라고 답하였다.
- 肯卽是 긍즉시
'수긍하면 곧 그것이다'라는 뜻이다. 알음알이로 인정·긍정하는 그 자리가 바로 넘어짐(倒)임을 드러낸 조산의 답어다.
- 深巖僻洞·
茅茨石室 심암벽동·모자석실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茅茨) 지붕과 돌집(石室)이다. 깨달은 뒤 몸을 감추는 은거처를 이른다.
- 驚羣伏眾 경군복중
무리를 놀라게 하고 대중을 굴복시킴이다. 한번 세상에 나오면 드러나는 역량을 이른다.
- 源深流長 원심류장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길다는 말이다. 바탕을 깊고 튼튼히 다져야 그 힘과 영향이 멀리, 오래 간다는 비유로 쓴다.
- 百不知百不會 백불지백불회
백 가지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함이다. 분별지(分別智)를 다 여읜 순박·무심한 경지의 형용이다.
- 忘機 망기
꾀하고 헤아리는 마음(기심)을 잊는다는 말이다.
- 無爲無事 무위무사
억지로 짓는 일 없는 무위(無爲)와 따로 일삼는 일 없는 무사(無事)를 함께 이른다. 분별과 애씀이 다 쉰 평상한 경지다. 임제(臨濟)는 일 없는 이가 귀한 사람이라 하였다.
- 鳥窠吹布毛 조과취포모
조과도림(鳥窠道林) 선사가 베실 한 올을 불어 보인 일이다. 시자 회통(會通)이 불법을 배우러 떠나겠다고 하자, 조과는 ‘불법이라면 나에게도 조금 있다’며 옷에서 실오라기를 집어 훅 불었다. 회통은 그 자리에서 깨달아 ‘포모시자(布毛侍者)’라 불렸다.
- 俱胝一指 구지일지
구지(俱胝) 화상이 무엇을 묻든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인 일이다. 구지는 천룡(天龍) 화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자 크게 깨쳤고, 그 뒤로 평생 그렇게만 답했다. 세상을 떠날 때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 大休大歇 대휴대헐
크게 쉬고 크게 그친다는 말이다. 찾고 헤아리던 마음이 다 쉬어, 더 구할 것 없이 편안해진 깨침의 자리를 이른다.
- 向上機 향상기
향상(向上)의 기틀, 곧 말과 단계를 넘어 위로 뚫고 나아가는 궁극의 작용을 이른다. 부처와 조사의 자리에도 머물지 않는 선승의 솜씨를 말한다.
- 三昧 삼매
마음을 한곳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는 고요한 집중, 곧 선정(禪定)을 이른다. 인도 말을 소리대로 옮긴 말이다.
- 言語道斷 언어도단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흔히 '마음 가는 곳마저 사라졌다[心行處滅]'는 말과 짝지어, 말로도 생각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참된 실상을 이른다.
- 大梅卽佛卽心 대매즉불즉심
대매법상(大梅法常)(752~839)이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법사이다. 처음 마조에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여 깨닫고 대매산(大梅山)에 은거하였다. 뒤에 마조가 '비심비불(非心非佛)'을 말한다는 전언에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라 하여 인가받았다. 여기 즉불즉심(卽佛卽心)이 그 종지다.
- 龍牙洞水逆流 용아동수역류
龍牙居遁(용아거둔, 835~923)이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법사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자 동산이 '동수(洞水)가 거꾸로 흐르거든 일러주마'라 답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역류(逆流)는 상식적 분별을 거스르는 향상(向上)의 소식을 가리킨다.
- 無上真宗 무상진종
위없는 참된 종지(宗旨)다.
- 本際 본제
본래 자리, 근본 바탕이다. 만법이 온전히 돌아가는 본원(本源)을 뜻한다.
- 田地 전지
한 조각 땅, 곧 마음의 경지·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 如盤走珠 여반주주
쟁반 위를 구르는 구슬, 구슬 위를 구르는 쟁반이다. 한곳에 죽어 머물지 않고 걸림 없이 자재로운 활발발(活鱍鱍)한 작용의 비유다.
- 雖是死虵 수시사사
비록 죽은 뱀이라도 다룰 줄 알면 살아난다는 말이다. 虵는 蛇의 이체자다. 죽은 듯한 경계도 활용하면 살아 움직인다는 선가의 속담이다.
- 深巖僻洞 심암벽동
깊은 바위와 외진 골짜기, 띠풀(茅茨) 지붕과 돌집(石室)이다. 깨달은 뒤 몸을 감추는 은거처를 이른다.
- 趙州至道無難 조주지도무난
『碧巖錄』 제2칙. 趙州가 三祖 『信心銘』의 '至道無難,唯嫌揀擇'을 들어 '纔有語言,是揀擇是明白,老僧不在明白裏'라 한 示衆이다(T48n2003_p0141b27). 같은 구를 두고 僧이 趙州에게 물은 문답이 제57·58·59칙으로 이어진다(T48n2003_p0191a03·p0191b12·p0191c17).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