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0편

방청로(方淸老)에게 드리는 글

示方淸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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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한문老達磨來自竺乾,豈嘗持一物?及游梁歷魏,面壁少林,無人識渠,
번역늙은 달마(達磨)께서 천축(竺乾)에서 오셨습니다. 어찌 물건 하나인들 지니고 오셨겠습니까? 양(梁)나라에 노니시고 위(魏)나라를 거쳐 소림(少林)에서 벽을 마주하셨지만, 아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獨可祖効勤,立雪斷臂,始略垂慈,由此卽心。
오직 혜가(慧可) 조사만이 부지런히 힘써,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조금 자비를 드리우시어, 이로 말미암아 곧 마음(卽心)을 가리키셨습니다.
若謂無言,從何而入?如謂有言,向伊道甚?
말씀이 없으셨다고 하면, 무엇을 좇아 들어갔겠습니까?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면, 그에게 무엇을 이르셨겠습니까?
將知須是箇人,始十分領略,乃無滲漏。
그러니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반드시 바로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온전히 알아차려, 조금의 새는 곳(滲漏)도 없게 됩니다.
쉽게 읽기늙은 달마께서 천축에서 오셨습니다. 어찌 물건 하나인들 지니고 오셨겠습니까? 그분은 양나라와 위나라를 두루 거치셨습니다. 그러다 소림사에 이르러 벽을 마주하고 앉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혜가 스님만이 부지런히 힘썼습니다. 눈 속에 서서 제 팔을 끊었습니다. 그제야 달마께서 비로소 조금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만약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면, 무엇을 좇아 그 문에 들어갔겠습니까? 말씀이 있으셨다 한들, 그에게 달리 무슨 말을 더 하셨겠습니까? 바로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온전히 알아차립니다. 그래야 조금도 새는 틈이 없습니다. 이 점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풀이 2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由此卽心'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卽心'에 서술 동사가 없어 양측 모두 보충어를 넣었다. 자체역은 垂慈의 주어를 이어 달마를 주어로 삼아 '마음(卽心)을 가리켰다'로 옮겼고, 책은 혜가를 주어로 삼아 '마음을 깨달았다'로 옮겼다. 주어 연속성은 자체역의 달마 쪽이, 혜가의 안심(安心) 서사는 책 쪽이 각각 근거가 있어 결정적 전거로 확정하기 어렵다. 양립가능 이독으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乃無滲漏
책 과의역. '滲漏'는 洞山良价의 三滲漏(見·情·語)에서 온 선 전문어로 '견해·표현의 새는 곳·결함'이다. 책 '번뇌가 없으리라'는 '漏=번뇌'의 느슨한 통속 대치로 기술어의 함의를 잃었다. 나의 '새는 곳(滲漏)'이 정확하다.
10.2
한문所以入此門來,要是根器猛利,能疾速棄捨從前知見解路,使胷次空勞勞不留毫髮,洞照虗凝,言思路絕,直契本源,泯然無際,
번역그러므로 이 문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근기(根器)가 날카롭고 매서워야 합니다. 지난날의 지견(知見)과 알음알이의 길을 재빨리 버려야 합니다. 가슴속을 텅 비워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환히 사무쳐 비추되 비고 고요해야 합니다. 말길과 생각길이 끊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본래 근원에 들어맞아, 자취 없이 가없어야 합니다.
自得本有無得妙致,方號信及見徹,猶有無量無邊、難測難量大機大用在。
그렇게 본래 갖추어진 ‘얻음 없는(無得)’ 미묘한 자리를 스스로 얻어야, 비로소 ‘믿음이 이르렀다(信及)’, ‘사무쳐 보았다(見徹)’고 일컫습니다. 그러고도 아직 헤아릴 수 없고 가없어 짐작하기 어려운 큰 기틀과 큰 작용(大機大用)이 남아 있습니다.
儻留些能所,墮在緣塵,則卒急未便相應。是故古德勸令直下休去歇去。
만약 조금이라도 보는 자와 보이는 것(能所)을 남겨 반연의 티끌에 떨어지면, 급할 때 곧바로 들어맞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께서 곧바로 쉬고 또 쉬라(休去歇去)고 권하신 것입니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이 문에 들어오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그릇, 곧 근기가 날카롭고 매서워야 합니다. 지난날의 앎과 견해, 곧 지견을 재빨리 버리십시오. 알음알이로 따지던 길도 얼른 놓으십시오. 가슴속을 텅 비워 털끝만큼도 남기지 마십시오. 환히 꿰뚫어 비추면서도 비고 고요해야 합니다. 말길도 생각길도 뚝 끊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본바탕에 딱 들어맞아, 자취도 없고 끝도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본래 갖춘 얻음이 없는 미묘한 자리를 스스로 얻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믿음이 이르고 사무쳐 보았다고 일컫습니다. 그러고도 아직 남은 것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가없는 큰 기틀과 큰 씀씀이, 곧 대기대용이 그것입니다. 만약 주관과 객관를 조금이라도 남긴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면 곧 반연하는 티끌에 떨어져, 급할 때 곧바로 들어맞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께서는 그저 쉬고 또 쉬라라 이르셨습니다.
풀이 6
大機大用 대기대용'方號信及見徹,猶有無量無邊、難測難量大機大用在' — 信及見徹을 끝자리로 보지 않고, 그 위에 다시 大機大用을 둔다.
休去歇去 휴거헐거'古德'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下/68에서 '石霜勸人休去歇去'라 한 것으로 보아 石霜慶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추정). 같은 글이 『圜悟語錄』 권15에도 실렸다.
休去歇去 휴거헐거휴거헐거(休去歇去)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15 석상경제(石霜慶諸)의 '칠거(七去)' 법문(휴거헐거(休去歇去),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冷湫湫地去…)이다. 본문 '고덕권령직하휴거헐거(古德勸令直下休去歇去)'가 이를 전거로 한다.
大機大用 대기대용대기대용(大機大用) — 원오(圜悟) 벽암록(碧巖錄) 평창(評唱)에서 조사(마조(馬祖)·덕산(德山) 등)의 활용을 평할 때 자주 쓰는 어구로, 본문 '대기대용재(大機大用在)'와 동일 용례이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方號信及見徹
책 과의역. '信及'·'見徹'은 원오의 두 자 대구(믿음이 미침 // 봄이 사무침)인데, 책 '신심과 견해가 사무쳤다'는 信·見을 명사로, 徹을 공통 술어로 묶어 '及'의 처리가 모호하다. 나의 대구 분석이 정형에 부합한다. 다에 가까우나 及 탈락으로 나로 판정하였다.
10.3
한문此段譬如快鷹鷂,梢雲突日,迷風背箐,掀騰直截,不容擬議。苟或躊躇,乃蹉過也。其爲教外別行,從可知矣。
번역이 대목을 비유하자면, 날랜 매나 새매와 같습니다. 구름을 스치고 해를 뚫으며, 바람을 헤치고 대숲을 등지고서, 솟구쳐 올라 곧장 끊고 나아갑니다. 헤아릴 겨를을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곧 어긋나 놓치고 맙니다. 이것이 가르침 밖의 별다른 행(敎外別行)임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읽기이 대목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날랜 매나 새매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새는 구름을 스치고 해를 뚫습니다. 바람을 가르고 대숲을 등진 채 솟구쳐 오릅니다. 그러고는 곧장 내리꽂혀, 이리저리 헤아릴 겨를을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곧 어긋나 놓치고 맙니다.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르침 밖에서 따로 행하는 것입니다.
풀이 2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迷風背箐
책 오역. '箐(청)'은 대숲·산속 우거진 덤불이므로 나의 '대숲을 등지고'가 자의에 맞다. 책 '푸른 허공을 등지고'는 箐을 靑(푸름)과 허공으로 풀어 매가 산 덤불을 박차고 솟구치는 구체 형상을 잃었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其爲教外別行'은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가능 이독이다. 확정저본은 '別行'이고 자체역은 이를 '가르침 밖의 별다른 행'으로 충실히 옮겼다. 책 '교 밖에 따로 전한다'는 통행 정형구 '教外別傳'으로 정규화한 것인데, '行'을 유행(流行)·전파의 뜻으로 새기면 '別傳'과 의미가 수렴하므로, 원오의 어변(別行)을 살린 자체역과 別傳 이독이 병존한다.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립가능 이독으로 유지한다.
10.4
한문既有志於是,請放下著,覿體承當,一切成現,則初祖不曾來,自己亦無得。
번역이미 여기에 뜻을 두셨으니, 부디 내려놓으십시오(放下著). 본바탕을 마주하여 그대로 떠맡으면, 온갖 것이 이루어져 드러납니다. 그러면 첫 조사(初祖)께서는 일찍이 오신 적이 없고, 자기 또한 얻은 것이 없습니다.
쉽게 읽기이미 여기에 뜻을 두셨습니까? 그렇다면 부디 다 내려놓으십시오. 이것이 곧 방하착입니다. 본바탕을 곧바로 마주하여 그대로 짊어지십시오. 그러면 온갖 것이 저절로 이루어져 눈앞에 드러납니다. 그리되면 맨 처음 조사께서도 실은 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또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풀이 3
放下著 방하착'請放下著,覿體承當'—공안을 들어 보이지 않고 趙州의 答語를 그대로 권유의 말로 써서, 곧바로 本體를 承當하라 한다.
放下著 방하착방하착(放下著)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조주종심(趙州從諗)과 엄양존자(嚴陽尊者) 문답('일물불장래시여하(一物不將來時如何)' '방하착(放下著)')이다. 본문 '청방하착(請放下著), 적체승당(覿體承當)'의 직접 출처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3
  1. 游梁歷魏 유량역위

    남조(南朝) 양(梁)(502~557)에 노닐다 양무제(梁武帝)와 문답이 계합하지 못하여 강을 건너 북위(北魏)(386~534)로 갔다. 전등(傳燈) 서사이다.

  2. 面壁少林 면벽소림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벽을 향해 9년 좌선하였다(面壁九年). 달마의 대표 일화이다.

  3. 二祖慧可 이조혜가

    중국 선종의 둘째 조사(487~593)로, 달마(達磨)의 법을 이었다. 처음 이름은 신광(神光)이다.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어 법을 구했다는 '입설단비(立雪斷臂)'와, 달마에게 마음을 편안케 해 달라고 하자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하여 깨친 '안심(安心)' 문답이 전한다. 그 법은 삼조 승찬(僧璨)에게 이어졌다.

  4. 二祖立雪斷臂 이조립설단비

    혜가(慧可)가 소림에서 달마 앞에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어 구법의 정성을 보인 고사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卷)3 혜가장(慧可章).

  5. 卽心 즉심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는 선 종지로, 달마가 혜가(慧可)에게 전한 마음의 직지이다.

  6. 根器猛利 근기맹리

    수행자의 자질(根器)이 날카롭고(利) 매섭다(猛).

  7. 洞照虗凝 동조허응

    훤히 사무쳐 비추며(洞照) 비고 고요히 엉긴다(虛凝). 허(虗)는 허(虛)의 이체자이다.

  8. 無得妙致 무득묘치

    얻을 것 없는(無得) 미묘한 경지(妙致)이다. 반야(般若)의 무소득(無所得)과 통한다.

  9. 信及見徹 신급견철

    믿음이 궁극에 이름(信及)과 사무쳐 봄(見徹)이다. 원오가 즐겨 쓰는 대구이다.

  10. 大機大用 대기대용

    큰 기틀과 큰 작용이다. 깨달은 이의 근본 힘과, 그 힘이 걸림 없이 쓰이는 것을 함께 이른다. 황벽(黃檗)이 스승 백장(百丈)의 이야기를 듣고 '마조(馬祖)의 대기대용을 보았다'고 한 말이 유명하다.

  11. 能所 능소

    주관과 객관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능(能)은 보고 아는 쪽이고, 소(所)는 보이고 알려지는 쪽이다. 선에서는 이렇게 둘로 가르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깨침에 걸림이 된다고 본다.

  12. 緣塵 연진

    마음이 붙잡고 따라가는 바깥 경계의 티끌을 이른다. 빛깔·소리 같은 육진(六塵)에 마음이 끌려 분별하고 망상하는 것을 뜻한다.

  13. 休去歇去 휴거헐거

    쉬고 또 쉬라는 말이다. 당나라 석상경제(石霜慶諸)가 일렀다는 ‘일곱 가지 가라(七去)’ 법문의 첫머리다. 분별하고 구하는 마음을 다 쉬어, 옛 사당의 향로처럼 싸늘해지라는 가르침이다.

  14. 快鷹鷂 쾌응요

    날랜 매와 새매. 날카롭고 재빠른 선기(禪機)를 비유한다.

  15. 梢雲突日 초운돌일

    구름을 스치고 해를 뚫음. 날랜 매가 거침없이 솟구치는 기세로, 날카롭고 즉각적인 선기(禪機)를 비유한다.

  16. 背箐 배청

    청(箐)(대숲·산속 우거진 덤불)을 등지고 솟구친다. 매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17. 教外別行 교외별행

    경전의 가르침 밖에서 따로 전한다는 뜻이다. 깨달음은 글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바로 전한다는 선종의 근본 뜻으로,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쓴다.

  18. 放下著 방하착

    ‘내려놓아라’는 말이다. 착(著)은 말끝에 붙어 시키는 뜻을 더한다. 엄양존자(嚴陽尊者)가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묻자 조주(趙州) 스님이 이렇게 답한 일로 널리 알려졌다.

  19. 覿體承當 적체승당

    본바탕(體)을 직접 마주하여(覿) 그대로 짊어진다(承當).

  20. 初祖 초조

    초조는 달마(達磨)이다. 결어 '초조불증래(初祖不曾來)'는 온 바 없음(無來)을 밝힌 것이다.

  21. 滲漏 삼루

    물이 스며 새어 나간다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견해나 말에 남은 작은 빈틈과 허물을 이른다. 동산양개(洞山良价)가 학인을 가늠하며 든 ‘세 가지 삼루’, 곧 견해·감정·말의 샘이 이름났다.

  22. 老達磨 노달마

    보리달마(菩提達磨). 중국 선종 초조. 남인도 출신으로 6세기 초 도래하였다고 전한다. '노(老)'는 친근·존숭의 접두어이다.

  23. 竺乾 축건

    천축(天竺)(India)의 옛 별칭이다. 건축(乾竺)·축건(竺乾)으로 혼용한다. 달마가 온 본토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5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3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