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11편

이의보(李宜父)에게 드리는 글

示李宜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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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풀이 1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並是依草附木精魅,有底道是也。祖師以佛語心爲宗
CBETA는 '是也' 뒤에 마침표를 두어 '有底道是也'(어떤 이는 옳다고 함)를 완결된 구로 보고 '祖師以佛語心爲宗…'을 원오의 별도 파척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 '有底道'를 '어떤 이가 말하되'로 삼아 '祖師…法門'을 그 인용문으로 잇는 독법도 문법상 성립한다. 두 독법 모두 귀결(定盤星을 錯認함)이 동일하며, 결정적 전거가 CBETA의 편집상 표점뿐이어서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는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11.1
한문此道最徑,要不出一言,而此言非佛口所宣、非諸祖所道。
번역이 도(道)는 가장 곧은 지름길입니다. 요컨대 한마디 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한마디는 부처님 입으로 펴신 말도 아니고, 여러 조사(祖師)께서 하신 말도 아닙니다.
若謂卽心非心、卽佛非佛,則刻舟守株,了無交涉。
만약 “마음 그대로가 마음이 아니요, 부처 그대로가 부처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뱃전에 자국을 새기고 그루터기를 지키는 격(刻舟守株)이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若嘿識此言,豈墮唇吻趂塊之流?遂妄卜度,以爲瞬揚舉動未夢見在。
이 한마디를 말없이 알아차린다면, 어찌 입술을 놀리고 흙덩이를 쫓는 무리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런데 함부로 짐작하여,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짓 몸짓 하는 것을 그것이라 여긴다면, 꿈에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쉽게 읽기이 도는 더없이 곧은 지름길입니다. 요컨대 한 마디 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는 부처님이 입으로 이르신 말씀도 아니고, 여러 조사께서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누가 “마음 그대로가 마음이 아니요, 부처 그대로가 부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것은 뱃전에 자국을 새겨 두고 물에 빠진 칼을 찾는 격이요,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는 격이라, 참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를 말없이 알아차린다면, 어찌 입술을 놀리고 흙덩이를 쫓는 무리, 곧 겉말만 좇는 이들 속에 떨어지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함부로 짐작하여,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짓 발짓 하는 것을 도라 여긴다면, 그것은 꿈에서조차 보지 못한 것입니다.
풀이 2
瞬揚舉動 순양거동'遂妄卜度,以爲瞬揚舉動未夢見在' — 몸짓을 道로 여기는 것은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라는 말.
11.2
한문殊不知從上來體裁步驟,且不是作聦明、立知見、論權實、照用境界,抑不得已,遂按下雲頭,棒喝交馳,星飛電擊,俊底聊聞,卽知落處。
번역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내려온 격식과 걸음걸이는 총명을 부리는 일도, 지견(知見)을 세우는 일도, 방편과 진실을 따지는 일도, 비춤과 씀(照用)의 경계를 밝히는 일도 아닙니다. 부득이하여 마침내 구름머리를 눌러 내려, 방(棒)과 할(喝)을 번갈아 내달리며 별이 날고 번개가 치듯 하셨습니다. 영리한 이는 잠깐 듣고도 곧 떨어지는 자리(落處)를 압니다.
쉽게 읽기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그 격식과 차례는, 결코 총명을 부리는 일이 아닙니다. 알음알이를 세우는 일도 아닙니다. 방편과 진실을 따지는 일도 아니요, 비춤과 씀의 경계를 밝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조사께서는 하는 수 없이 구름머리를 눌러 내리셨습니다. 그러고는 방망이질과 고함을 번갈아 몰아치며, 별이 날고 번개가 치듯 하셨습니다. 그러니 영리한 이는 잠깐 듣고도 곧 그 말이 떨어진 속뜻을 압니다.
풀이 5
按下雲頭 안하운두'抑不得已 遂按下雲頭 棒喝交馳'이라 하여, 宗師가 부득이 높은 자리를 낮추어 棒喝의 방편을 베푼 것을 말한다.
權實 권실'且不是作聦明、立知見、論權實、照用境界'—조사 문하의 가풍이 총명·知見·權實 논의·照用의 경계를 세우는 일이 아님을 말한 대목.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遂按下雲頭
按下雲頭는 '높은 구름(향상 경계)을 눌러 내려 하강함', 곧 부득이 방편으로 응함을 뜻하는 상용어이다(西遊記식 하강 표현). 내 '구름머리를 눌러 내려'가 정확하다. 책의 '구름 위에 누르고 앉아'는 방향을 뒤집어 하강의 뜻을 놓친 미세한 오역이다.
11.3
한문且畢竟是那一言?莫是栢樹子、須彌山露、親瞎普錯俱見知麼?
번역그렇다면 끝내 그 한마디란 무엇이겠습니까? 혹 ‘뜰 앞의 잣나무(栢樹子)’, ‘수미산(須彌山)’, ‘드러났다(露)’, ‘가깝다(親)’, ‘눈멀었다(瞎)’, ‘두루하다(普)’, ‘틀렸다(錯)’ 같은 말을 다 보아 알았다는 것이겠습니까?
莫是擔板漢勘破了喫茶去?珍重!敢保老兄未徹在。歇去、參堂去麼?
혹 ‘널빤지를 짊어진 놈(擔板漢)’, ‘간파해 버렸다(勘破了)’, ‘차나 마시고 가라(喫茶去)’ 같은 것이겠습니까? ‘몸조심하라(珍重)’, ‘감히 장담하건대 노형은 아직 사무치지 못했다’, ‘쉬어라’, ‘승당으로 가라’ 같은 것이겠습니까?
並是依草附木精魅,有底道是也。
이것들은 모두 풀에 붙고 나무에 기대는 도깨비(精魅)일 뿐인데, 어떤 이는 그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쉽게 읽기그렇다면 그 한 마디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혹 “뜰 앞의 잣나무”나 “수미산”, 또 ‘드러났다’, ‘가깝다’, ‘눈멀었다’, ‘두루 하다’, ‘틀렸다’ 같은 한 글자 대답들을 다 보아 알았다는 것이겠습니까. 혹 “널빤지를 짊어진 사내”, “다 꿰뚫어 보았다”, “차나 마시고 가라” 하는 것이겠습니까. 또 “부디 몸조심하라”느니, “감히 노형께서 아직 사무치지 못하셨다고 장담한다”느니, “쉬어라”, “선방으로 가라” 하는 것들이겠습니까. 이는 모두 풀에 붙고 나무에 기대는 도깨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그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풀이 6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莫是栢樹子、須彌山…'으로 趙州·雲門 등 古則의 답을 늘어놓고 '並是依草附木精魅'라 하여, 그 답을 一言으로 붙들어 외우는 것을 물리친다.
雲門須彌山 운문수미산'須彌山、露、親…普、錯'은 雲門의 한 글자 대답들을 늘어놓은 것으로 보인다(추정). 『雲門廣錄』 권상에 '露'(須彌山 문답 바로 앞)·'親'·'普'·'錯'이 雲門의 一字 대답으로 보인다.
珍重 진중栢樹子·喫茶去 등과 함께 古人의 상투적 應答을 늘어놓은 대목이다. 이어지는 '敢保老兄未徹在'는 玄沙가 靈雲의 桃花悟道를 두고 '諦當甚諦當,敢保老兄未徹在'라 한 말(『五燈會元』 권4)로, 珍重과는 별개의 구다.
교감 · 須彌山露、親瞎普錯구두 '須彌山露、親瞎普錯' — '須彌山、露、親、瞎、普、錯'으로 끊어 읽는다. 露·親·普·錯은 雲門의 한 글자 대답이고(『雲門匡眞禪師廣錄』 권上 T47n1988_p0547c01 '師云:露' · p0550b11 '親' · p0545c08 '普' · p0545b08 '錯'), 須彌山도 雲門의 답이다(같은 곳 p0547c01). 瞎을 雲門의 답으로 쓴 곳은 『雲門廣錄』에서 찾지 못함.
11.4
한문祖師以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便是錯認定盤星也。直須待桶底子脫,如睡夢覺,大徹大悟,然後可以承當此言也。
번역‘조사께서 부처님 말씀의 마음(佛語心)을 종지로 삼고, 문 없음(無門)을 법문으로 삼았다’고 하는 것, 이것이 곧 저울 눈금(定盤星)을 잘못 아는 것입니다. 반드시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잠에서 꿈을 깨듯, 크게 사무치고 크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라야 이 한마디를 떠맡을 수 있습니다.
쉽게 읽기조사께서는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고,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 하셨습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만 붙든다면, 이는 곧 저울의 눈금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반드시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해야 합니다. 자다가 꿈에서 깨어난 것같이, 크게 사무치고 크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뒤에라야 비로소 이 한 마디를 떠맡을 수 있습니다.
풀이 4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祖師'는 이 구를 '楞伽經云'으로 처음 든 馬祖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추정; 『景德傳燈錄』 권6 馬祖章). 원오는 이를 글자대로 붙드는 것을 '錯認定盤星'이라 경계한다.
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불어심위종·무문위법문'祖師'의 표어로 들고 곧 '便是錯認定盤星也'라 하여 문자대로 붙드는 것을 경계한다. '祖師'는 이 말을 示衆에 쓴 馬祖나 楞伽經을 전한 達磨로 볼 수 있다(추정).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以佛語心爲宗
楞伽經(一切佛語心品)의 '佛語心'은 산스크리트 buddhavacana-hṛdaya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부처님 말씀(佛語)의 핵심·마음(心)'이라는 소유격 구문이 표준 독법이다. 책의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는 佛語와 心을 병렬로 처리한 것이어서 이 경전 술어의 표준 독법과 어긋난다. 경전 전거로 볼 때 현재 번역 '부처님 말씀의 마음(佛語心)'이 옳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25
  1. 卽心非心卽佛非佛 즉심비심즉불비불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 마음이 곧 부처)'과 '비심비불(非心非佛)(마음도 부처도 아님)'을 뒤섞어 부정한 정형구이다. 원오는 이런 어구에 매달림을 각주구검(刻舟求劍)에 견주어 배격하였다.

  2. 刻舟守株 각주수주

    각주구검(刻舟求劍)(여씨춘추(呂氏春秋))과 수주대토(守株待兔)(한비자(韓非子))의 합성어이다. 고정된 자취에 얽매여 살아 있는 도(道)를 놓침을 비유한다.

  3. 唇吻趂塊之流 순문진괴지류

    입술을 놀리고 흙덩이를 쫓는 무리라는 말이다. 말재주만 부리는 이와, 던진 흙덩이를 쫓아가는 미친 개처럼 말끝만 좇는 이를 아울러 낮추어 이른다.

  4. 瞬揚舉動 순양거동

    순목양미(瞬目揚眉), 곧 눈을 깜박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일과 같은 온갖 몸짓을 이른다. 몸짓 하나에도 뜻이 드러날 수 있지만, 몸짓 그 자체를 도로 여기면 어긋난다고 경계한다.

  5. 權實 권실

    방편과 진실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권(權)은 상대에 맞추어 잠시 쓰는 방편이고, 실(實)은 궁극의 참된 가르침이다. 천태 교학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가르는 기준으로 썼다.

  6. 照用 조용

    비춤(照)과 씀(用)이다. 지혜로 환히 비추어 살피는 일과, 그 지혜를 부려 배우는 이를 다루는 일을 이른다. 임제(臨濟)가 이 둘을 넷으로 짜 맞춘 '사조용(四照用)'이 유명하다.

  7. 按下雲頭 안하운두

    구름머리를 눌러 내린다는 말이다. 구름 위 높은 자리에 있던 이가 아래로 내려오듯, 높은 경지를 고집하지 않고 몸을 낮추어 사람과 일을 맞는 것을 이른다.

  8. 擔板漢 담판한

    널빤지(板)를 어깨에 짊어져 한쪽밖에 못 보는 사내이다. 한 변에 치우친 편견자를 이르는 선가의 상투어이다.

  9. 喫茶去 끽다거

    조주종심(趙州從諗)의 공안이다. 왔던 이든 처음 온 이든 가리지 않고 '차나 마시고 가라' 한 것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사(卷四) 조주장(趙州章)에 실린다.

  10. 珍重 진중

    ‘보배처럼 아껴 몸을 잘 돌보라’는 뜻의 인사말이다. 선원에서 법문을 마치거나 헤어질 때 하는 말로, 편지나 법어 끝에도 붙인다. 선사가 문답을 이 한마디로 끊어 맺기도 한다.

  11. 參堂去 참당거

    선당(禪堂)에 들어가 대중과 함께 정진하라는 지시어이다. 역시 사구(死句)의 예로 열거되었다.

  12. 依草附木精魅 의초부목정매

    풀에 붙고 나무에 기대는 도깨비, 곧 정령(精靈)(정매(精魅)=정령(精靈))이다. 본지풍광(本地風光)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식신(識神)·헛수행자를 비유한다. 임제록(臨濟錄) 등에 보인다.

  13. 定盤星 정반성

    저울대(秤)의 기준 눈금, 곧 영점(零點) 별표이다. 착인정반성(錯認定盤星)은 기준점 자체를 잘못 앎, 곧 근본에서 어긋난 착오를 뜻한다.

  14.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15. 庭前柏樹子 정전백수자

    한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답했다. 묻는 말의 뜻을 좇지 않고 눈앞의 것을 곧바로 내민 대답이다. 흔히 잣나무로 옮기지만 본디 측백나무다. 『무문관』과 『종용록』에 실렸다.

  16. 雲門須彌山 운문수미산

    한 스님이 운문(雲門)에게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허물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수미산이다'라고 답했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벌써 산처럼 큰 허물이라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 『종용록』 제19칙에 실린 공안이다. 세계 한가운데 솟았다는 산 자체는 수미(須彌)를 보라.

  17. 佛語心爲宗 불어심위종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마조(馬祖)가 『능가경』의 뜻을 ‘부처님 말씀의 마음을 으뜸으로,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고 간추려 보인 데서 널리 쓰였다.

  18. 棒喝 방할

    방(棒)은 몽둥이로 치는 것, 할(喝)은 크게 고함치는 것이다. 말과 생각의 길을 단번에 끊어 깨치게 하던 선승의 가르침 방식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가장 이름났다.

  19. 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불어심위종·무문위법문

    '부처가 말씀한 마음을 종지로 삼고, 문 없음을 법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마조(馬祖)가 대중에게 『능가경(楞伽經)』의 뜻이라며 들어 보인 표어다. 『무문관』도 이 말로 첫머리를 연다.

  20. 李宜父 이의부

    원오가 법어를 써 준 재가 거사로, 그 글이 원오심요에 실려 있다.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21. 趂塊·趁塊 진괴·진괴

    한로축괴(韓獹逐塊)의 축약이다. 한로(韓獹)라는 개가 던진 흙덩이만 쫓고 던진 사람은 보지 못하니, 어구·현상만 좇고 근본을 못 보는 어리석음이다. 사람을 무는 사자교인(獅子咬人)과 대비되는 상투어이다.

  22. 柏樹子 백수자

    조주종심(趙州從諗)의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뜰 앞의 측백나무)' 공안이다. 무문관(無門關) 제37칙 '정전백수(庭前柏樹)'이다.

  23. 歇去 헐거

    '쉬어라', '쉬어 버려라'라는 말이다. 이리저리 구하고 헤아리는 마음을 쉬라는 선가의 가르침으로, 능엄경의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과 통한다. 석상 스님이 '쉬고 또 쉬어라'라고 권한 말이 이름났다.

  24. 祖師以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조사이불어심위종무문위법문

    '부처님이 말씀하신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문 없음을 법의 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능가경에서 나온 구절로, 마조 스님이 달마가 능가경으로 중생의 마음 바탕을 증명했다며 들었다(경덕전등록 권6). 무문 혜개 스님도 무문관 첫머리에 이 구절을 들고 '문이 없다면 어떻게 뚫고 지나가겠는가' 물었다.

  25. 韓獹逐塊·趂塊 한로축괴·진괴

    '한나라 개가 흙덩이를 쫓는다'는 말이다.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던진 사람이 아니라 흙덩이만 쫓아간다. 말과 겉모양만 좇고 근본은 놓치는 사람에 빗대며, '사자는 사람을 물고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는 말(경덕전등록 권11)로 널리 쓰인다.

이 편의 풀이 1건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並是依草附木精魅,有底道是也。祖師以佛語心爲宗
CBETA는 '是也' 뒤에 마침표를 두어 '有底道是也'(어떤 이는 옳다고 함)를 완결된 구로 보고 '祖師以佛語心爲宗…'을 원오의 별도 파척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 '有底道'를 '어떤 이가 말하되'로 삼아 '祖師…法門'을 그 인용문으로 잇는 독법도 문법상 성립한다. 두 독법 모두 귀결(定盤星을 錯認함)이 동일하며, 결정적 전거가 CBETA의 편집상 표점뿐이어서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는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3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5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