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7편

성수조(成修造)에게 주는 글

示成修造

영상으로 보기 1 → 영상으로 보기 2 →

47.1
한문蔣山門下無禪可說,無道可傳,雖聚半千衲子,唯以箇金剛圈、栗棘蓬,
번역장산(蔣山)의 문하에는 말해 줄 선(禪)도 없고 전해 줄 도(道)도 없다. 비록 오백 납자(衲子)를 모아 두었어도, 오직 금강권(金剛圈)과 율극봉(栗棘蓬) 하나로 다룰 뿐이다.
跳者著力跳,吞者用意吞,莫恠沒滋味,太險峻。
뛰어넘을 사람은 힘을 다해 뛰어넘고, 삼킬 사람은 뜻을 다해 삼켜라. 아무 맛도 없고 너무 험하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마라.
或若驀地體得如晝錦還鄉,千人萬人只仰羨得,要且覓他所從來不得,所謂人人本分事也。
혹 문득 몸소 깨쳐 얻으면, 대낮에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천 사람 만 사람이 그저 우러러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찾으려 해도 끝내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이른바 사람마다의 본분사(本分事)이다.
纔生心動念,承當擔荷,早是不本分了也。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여 떠맡아 짊어지려 하자마자, 벌써 본분이 아니다.
直得萬機休罷,千聖不𢹂,柰猶有依倚在,快須擺撥透脫那邊去始得。
곧바로 온갖 작용(萬機)이 다 쉬고 일천 성인(聖人)도 붙들지 못하는 데에 이르러도, 아직 기대는 데가 남아 있으면 어찌하겠는가. 어서 그것마저 떨쳐 버리고 저편으로 꿰뚫어 벗어나야 비로소 된다.
쉽게 읽기내가 있는 장산의 문하에는 설할 만한 선도 없고, 전할 만한 도도 없다. 오백 명의 납자를 모아 두었어도, 오직 저 금강권과 율극봉 하나로 다룰 뿐이다. 이것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쇠고리와 밤송이다. 뛰어넘을 사람은 힘을 다해 뛰어넘고, 삼킬 사람은 뜻을 다해 삼켜라. 아무 맛도 없고 너무 험하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마라. 혹 문득 스스로 깨쳐 얻으면, 대낮에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천 사람 만 사람이 그저 우러러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어디서 왔는지 찾으려 해도 끝내 찾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마다 본디 지닌 본분사다. 겨우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여 떠맡으려 하면, 벌써 본분에서 어긋나 버린다. 온갖 마음의 작용이 다 쉬고, 일천 성인도 붙잡지 못하는 자리에 이르러도, 아직 기댈 것이 남아 있다. 어서 그것마저 떨쳐 버리고 저편으로 훌쩍 벗어나야 비로소 된다.
풀이 6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蔣山門下無禪可說…唯以箇金剛圈、栗棘蓬,跳者著力跳,吞者用意吞'과 거의 같은 글이 『圜悟佛果禪師語錄』 권15에도 실려 있다.
蔣山 장산'蔣山門下'는 원오의 자칭이다. 원오는 建康府 蔣山에 住持하였고(『圓悟佛果禪師語錄』 권4 '住建康府蔣山'), 下25에서도 스스로를 '蔣山佛果'라 한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蔣山門下
자체역은 저본에 없는 '부산(府山)'으로 옮겼으나 저본은 蔣山이다. 蔣山은 원오가 주지한 建康府 蔣山 太平興國禪院이고 '蔣山門下'는 원오의 자칭이므로 '장산(蔣山)의 문하'로 고쳤다. 책의 '나의 문하'는 자칭을 살린 의역으로 뜻에 맞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원문 '千聖不攜'는 ‘두 읽기가 다 성립함’ 양립 가능한 이독이다. 攜은 携와 통용된다. 자체역은 '일천 성인도 붙들지 못한다'(千聖을 주어로 보고 攜=붙들다·미치다, 대상은 생략)로, 책은 '성인과 함께하지 않는다'(携=손잡다·동행)로 옮겼다. '萬機休罷'와의 대구 및 초월 문맥상 자체역이 우위이나, 携의 동행 의미도 성립하므로 결정적 전거 없이 이독으로 둔다.
47.2
한문所以道:但有纖毫卽是塵,舉意便遭魔所撓。
번역그래서 말했다.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곧 티끌이요, 뜻을 일으키면 곧 마(魔)의 흔듦을 만난다.”
成就一切,總只由他。破壞一切,亦只由他。
모든 것을 이루는 것도 다 오직 그것으로 말미암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도 오직 그것으로 말미암는다.
奇特殊勝緣,恒沙功德藏,無量妙莊嚴,超世希有事,皆所成就。慳貪憎妬,情識執著,有爲有漏,垢染雜亂,解路名相,知見妄情,所破壞也。
기특하고 빼어난(殊勝) 인연, 항하(恒河)의 모래만큼 많은 공덕의 곳간(功德藏),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장엄(莊嚴), 세간을 뛰어넘는 드문 일이 모두 그것으로 이루어진다. 인색과 탐욕과 미움과 질투, 망정과 알음알이의 집착, 함이 있고 새는 것(有爲有漏), 때 묻고 물들어 어지러운 것, 알음알이의 길과 이름과 모양(名相), 지견(知見)과 망령된 정은 모두 그것으로 무너진다.
唯它能轉一切物,一切物不能轉它。雖無形段面目,而包括十虗,舍凡育聖。
오직 그것만이 모든 사물을 굴리고, 모든 사물은 그것을 굴리지 못한다. 비록 형체도 모습도 없으나, 시방의 허공을 다 감싸며 범부를 품고 성인을 기른다.
若作相取,取之卽墮見刺,卒摸𢱢不著。
만약 모양(相)을 지어 붙잡으려 하면, 붙잡는 순간 곧 견해의 가시에 떨어진다. 끝내 더듬어 잡지 못한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옛말에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곧 티끌이요, 생각을 일으키면 곧 마의 흔듦을 만난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이루는 일도 오직 그것으로 말미암고, 모든 것을 허무는 일도 오직 그것으로 말미암는다. 기특하고 빼어난 인연도,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공덕도,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꾸밈도, 세상에 드문 일도 모두 그것으로 이루어진다. 인색과 탐욕과 미움과 질투, 감정과 알음알이의 집착, 함이 있고 번뇌가 새는 것, 때 묻고 물들어 어지러운 일, 이론으로 따지는 헤아림과 이름과 모양, 얕은 앎과 망령된 마음은 모두 그것에 의해 무너진다. 오직 그것만이 모든 사물을 굴리고, 어떤 사물도 그것을 굴리지 못한다. 형체도 모습도 없으나 온 시방의 허공을 다 감싼다. 범부를 품고 성인을 기른다. 만약 겉모습을 지어 붙잡으려 하면, 붙잡는 순간 곧 견해의 가시에 걸려, 끝내 더듬어 잡을 수 없다.
풀이 2
示成修造 시성수조'成就一切 總只由他 破壞一切 亦只由他'는 수신인의 소임 修造(짓고 허묾)와 이름 成에 빗댄 말로 볼 수 있다(추정).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 '奇特殊勝緣…皆所成就'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 책 오역·과의역이다. 책은 '緣'을 동사('공덕장에서 연유하고')로 풀어 네 겹 병렬을 깨뜨렸다. 뒤의 부정 목록이 명사구 나열(慳貪憎妬·情識執著·有爲有漏 등)인 것과 대칭상, 앞도 '奇特殊勝緣·恆沙功德藏·無量妙莊嚴·超世希有事' 네 명사구가 모두 '皆所成就'의 대상이다. 사용자의 병렬 독법이 낫다.
47.3
한문諸佛開示,祖師直指,唯此妙心,徑捷承當,不起一念,透頂透底,無不現成,
번역모든 부처가 열어 보이고 조사(祖師)가 곧바로 가리킨 것은 오직 이 묘한 마음(妙心)이다. 지름길로 곧장 떠맡아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정수리부터 밑바닥까지 사무쳐 그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다.
於現成際,不勞心力,任運逍遙,了無取捨,乃真密印也。
그 이루어져 있는 자리에서는 마음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되어 가는 대로 맡겨 노닐며(逍遙), 취하고 버림이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참된 비밀한 도장(密印)이다.
佩此密印,如暗藏燈,游戲世間,不懷欣怖,盡是我大解脫場,永劫窮年,曾無間斷。
이 도장을 지니면 어둠 속에 등불을 감춘 것과 같다. 세간에서 노닐되 기쁨도 두려움도 품지 않는다. 모두가 나의 큰 해탈(解脫)의 마당이어서, 영겁의 세월이 다하도록 한 번도 끊어짐이 없다.
所以道:丈六金身作一莖草用,一莖草作丈六金身用。豈有他哉?
그래서 말했다. “장륙(丈六)의 금빛 몸을 한 줄기 풀로 쓰고, 한 줄기 풀을 장륙의 금빛 몸으로 쓴다.”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쉽게 읽기모든 부처가 열어 보이고, 조사가 곧바로 가리킨 것도 오직 이 묘한 마음 하나로 가는 지름길뿐이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떠맡으면, 정수리에서 발밑까지 사무쳐 그대로 다 이루어져 있다. 이미 이루어진 그 자리에서는 애써 마음을 쓰지 않는다. 인연에 맡겨 한가로이 노닐 뿐, 취하거나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참된 비밀의 도장이다. 이 밀인을 지니면 어둠 속에 등불을 감춘 것과 같다. 세상에서 노닐어도 기쁨도 두려움도 품지 않는다. 그러니 온 세상이 다 나의 큰 해탈의 자리다. 영원한 세월이 다하도록 끊어짐이 없다. 그러므로 옛말에 “장륙의 금빛 몸을 한 줄기 풀로 쓰고, 한 줄기 풀을 장륙의 금빛 몸으로 쓴다”라고 하였다. 어찌 여기에 딴것이 있겠는가.
풀이 2
密印 밀인'於現成際 不勞心力 任運逍遙 了無取捨 乃真密印也'. 따로 전해 받는 무엇이 아니라 現成 그대로가 밀인이라는 뜻.
47.4
한문雪峰道:是什麼?雲門道:須彌山。洞山道:麻三斤。趙州道:喫茶去。
번역설봉(雪峰)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운문(雲門)은 말했다. “수미산(須彌山).” 동산(洞山)은 말했다. “삼 서 근(麻三斤).” 조주(趙州)는 말했다. “차나 마시고 가라(喫茶去).”
巖頭噓,投子噁,臨濟喝,德山棒,擎杈舉指,打鼓拽磨,一一顯向上宗風,頭頭示本分草料。
암두(巖頭)의 ‘허(噓)’, 투자(投子)의 ‘악(噁)’, 임제(臨濟)의 할(喝), 덕산(德山)의 방(棒), 나무 작살을 받쳐 들고(擎杈) 손가락을 세우고, 북을 치고 맷돌을 끄는 것이 하나하나 향상(向上)의 종풍(宗風)을 드러낸다. 낱낱이 본분의 꼴과 여물(草料)을 내보인다.
大達之士,一覰便透,一舉知落處,堪紹宗風。
크게 통달한 사람은 한 번 흘낏 보고 곧 꿰뚫고, 한 번 들어 보이면 떨어지는 곳(落處)을 안다. 종풍을 이을 만하다.
懵底數沙,當面蹉卻。是故須得俊流,乃作種草。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알을 세다가 눈앞에서 어긋나 놓친다. 그러므로 반드시 빼어난 인물을 얻어야 비로소 씨앗(種草)으로 삼는다.
쉽게 읽기설봉은 “이것이 무엇인가”라 하였다. 운문 선사는 “수미산”이라 하였다. 동산 선사는 “삼 서 근”이라 하였다. 조주는 “차나 마시고 가라”라 하였다. 암두는 “허” 하고 불었고, 투자 선사는 “악” 하고 소리쳤다. 임제는 할로 고함치고, 덕산은 방으로 몽둥이질을 하였다. 나무 작살을 받쳐 들고 손가락을 세우며, 북을 치고 맷돌을 끄는 것 하나하나가 향상의 종풍을 드러낸다. 낱낱이 본분의 꼴풀, 곧 사람을 이끄는 방편을 내보인 것이다. 크게 통달한 이는 한 번 흘낏 보고 곧 꿰뚫는다. 한 번 들자마자 그 말이 떨어진 뜻을 아니, 종풍을 이어받을 만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알이나 헤아리듯 하다가, 눈앞에서 그만 어긋나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반드시 빼어난 인물을 얻어야, 비로소 씨앗이 될 재목으로 삼을 수 있다.
풀이 4
洞山麻三斤 동산마삼근'洞山道麻三斤'은 『碧巖錄』 제12칙 본칙('僧問洞山如何是佛 山云麻三斤')이다. 評唱이 '洞山初參雲門'이라 하여 이 洞山이 雲門의 제자(洞山守初)임을 밝힌다. 다만 '守初'라는 이름은 評唱에 없다.
洞山守初 동산수초벽암록(碧巖錄) 제12칙 「동산마삼근(洞山麻三斤)」 평창(評唱)에서 원오 스스로 이 동산(洞山)이 운문하(雲門下) 동산수초(洞山守初)임을 명기하였다. 본편 '동산도마삼근(洞山道麻三斤)'의 직접 병렬이자 인물 동정의 근거이다.
德山棒 덕산방벽암록(碧巖錄) 수시류(垂示類)와 인천안목(人天眼目) 각가문정(各家門庭)에서 '덕산봉(德山棒)·임제할(臨濟喝)·구지지(俱胝指)·화산고(禾山鼓)·조주다(趙州茶)·운문수미(雲門須彌)' 등의 기용(機用) 열거가 본편 후반 명단과 같은 꼴로 짜여 있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8
  1. 蔣山 장산

    금릉(金陵, 지금의 남경) 종산(鍾山)에 있던 절, 장산 태평흥국선원이다. 원오가 이 절의 주지를 지냈으므로, 원오는 자기 문하를 '장산의 문하'라 하고 자기를 '장산 불과'라 부르기도 했다.

  2. 金剛圈·栗棘蓬 금강권·율극봉

    금강권(金剛圈)은 뛰어넘기 어려운 쇠테, 율극봉(栗棘蓬)은 삼키기 어려운 밤송이다. 양기(楊岐) 스님이 납자를 시험하던 관문의 말로, 머리로 헤아려서는 뚫을 수 없는 화두를 이른다.

  3. 沒滋味 몰자미

    사량분별로 붙잡을 맛이 전혀 없는 화두이다. 곧 무미지담(無味之談)이다.

  4. 晝錦還鄉 주금환향

    대낮에 비단옷 입고 귀향함이니 영현(榮顯)의 극치이다. 사기(史記) 항우(項羽)의 '의수야행(衣繡夜行)'과 반대이며 한기(韓琦) 주금당(晝錦堂) 고사에 이어진다.

  5. 本分事 본분사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근본의 일, 곧 제 본래 모습을 깨닫는 일이다. 또 스승이 방편을 빌리지 않고 바로 그 근본으로 학인을 이끄는 본연의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6. 密印 밀인

    은밀한 도장이라는 뜻이다. 말과 글 밖에서 스승이 제자의 깨침을 마음으로 확인해 주는 증표, 곧 심인(心印)을 이른다.

  7. 丈六金身作一莖草用 장육금신작일경초용

    성(聖)(장육금신(丈六金身))과 범(凡)(일경초(一莖草))의 상즉자재(相卽自在)를 말한 옛 선구(禪句)이다. 원오가 즐겨 인용하였다.

  8. 雪峰道是什麼 설봉도시십마

    설봉의존(雪峰義存)(822-908), 덕산선감(德山宣鑒) 법사, 청원하(靑原下)이다. '시십마(是什麼)'라는 상투적 물음으로 학인을 몰아세운 기(機)이다.

  9. 洞山麻三斤 동산마삼근

    한 스님이 동산수초(洞山守初)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삼 세 근'이라고 답했다. 헤아릴 길을 끊어 버린 대답으로 읽는다. 이 동산은 동산양개가 아니라 운문(雲門)의 제자다. 『벽암록』과 『무문관』에 실렸다.

  10. 德山棒 덕산방

    덕산(德山)의 방망이다. 덕산선감은 묻는 이에게 '말해도 서른 방, 말 못 해도 서른 방'이라며 몽둥이로 다그쳤다. 임제(臨濟)의 할과 짝지어, 말과 알음알이를 단번에 끊는 솜씨를 대표한다.

  11. 擎杈舉指 경차거지

    나무 작살을 받쳐 들고 손가락을 세운다는 말로, 두 선사의 기연을 함께 든 것이다. 오대산 비마암(祕魔巖) 화상은 늘 나무 작살을 들고 있다가 찾아온 스님의 목을 걸고 다그쳤고, 구지(俱胝) 화상은 무엇을 물어도 손가락 하나만 세워 보였다.

  12. 打鼓拽磨 타고예마

    타고(打鼓)는 화산무은(禾山無殷)의 '해타고(解打鼓)'(벽암록(碧巖錄) 44칙(則))이다. 예마(拽磨)는 작무(作務) 그대로 종지(宗旨)를 드러낸 것이나 특정 전거는 확실하지 않다.

  13. 向上宗風 향상종풍

    향상일로(向上一路), 곧 부처·조사의 자취마저 넘어선 궁극의 선풍이다. 지견(知見)·계급(階級)을 초월한 최상승(最上乘)의 가풍(家風)이다.

  14. 本分草料 본분초료

    제 몫에 꼭 맞는 꼴과 여물이라는 말이다. 선문에서는 상대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참된 처방, 흔히 말에 매인 이에게 내리는 방망이나 꾸짖음을 이른다. 『벽암록』의 촌평에 자주 나온다.

  15. 宗風 종풍

    한 종문(宗門)이나 한 스승이 이어 온 가르침의 기풍이다. 선문에서는 새로 법을 펴는 스승에게 '누구 집안의 노래를 부르고, 누구의 종풍을 이었는가' 하고 법을 이은 내력을 묻곤 했다.

  16. 數沙 수사

    입해산사(入海算沙)이니 명상(名相) 분별의 헛수고이다. 영가(永嘉) 증도가(證道歌) '입해산사도자곤(入海算沙徒自困)'에 근거한다.

  17.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18. 種草 종초

    씨앗이 될 풀이라는 뜻으로, 종문(宗門)의 법을 이어 퍼뜨릴 재목을 이른다. '우리 집안의 씨앗(吾家種草)'이라 하면 법을 바르게 이을 사람을 가리킨다.

  19. 師承 사승

    스승에게서 법을 이어받는 일, 또는 그렇게 이어 온 스승과 제자의 계보를 이른다. 선종에서는 스스로 깨쳤더라도 눈 밝은 스승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20. 示成修造 시성수조

    원오가 수조(修造) 소임을 맡은 성(成)이라는 승려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수조는 절의 건물을 짓고 고치는 일을 이른다. 원오가 금릉 장산(蔣山)에 머물 때의 글이다.

  21. 臨濟喝 임제할

    임제의현(臨濟義玄)이 학인을 이끌 때 '할!' 하고 크게 소리친 일이다. 덕산(德山)의 몽둥이와 함께 '덕산방 임제할'이라 하여, 생각을 단번에 끊는 선가의 솜씨를 대표한다.

  22. 半千 반천

    오백(五百)의 다른 이름이다. 납자(衲子) 오백 대중을 가리킨다.

  23. 雲門道須彌山 운문도수미산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이다. '불기일념(不起一念), 환유과야무(還有過也無)? 수미산(須彌山)' 공안이며 운문종(雲門宗) 개조이다.

  24. 洞山守初 동산수초

    오대에서 송나라 초까지 산 선승(910~990)으로, 운문문언(雲門文偃)의 법을 이었다. 양주(襄州) 동산에 40년 머물러 동산이라 불린다. 누가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삼 세 근(麻三斤)'이라고 답한 일로 이름났다. 조동종을 연 동산양개(洞山良价)와는 다른 사람이다.

  25. 趙州道喫茶去 조주도끽다거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 남전보원(南泉普願) 법사, 남악하(南嶽下)이다. 신도(新到) 납자에게 한결같이 '끽다거(喫茶去)'라 한 공안이다.

  26. 巖頭噓 암두허

    암두전활(巖頭全豁)(828-887), 덕산선감(德山宣鑒) 법사이자 설봉(雪峰)의 사형이다. '허(噓)'라 부는 소리로 쓴 기용(機用)이다.

  27. 投子噁 투자악

    투자대동(投子大同)(819-914), 취미무학(翠微無學) 법사, 청원하(靑原下)이다. '악(噁)' 소리로 쓴 기용(機用)이며 투자의청(投子義靑)이 아니다.

  28. 五祖法演語錄 오조법연어록

    五祖法演의 語錄. 『大正藏』에 『法演禪師語錄』 3권(T47n1995)으로 실렸으며, 四面山에서의 첫 住持 語錄부터 차례로 담았다(권상 첫머리 '舒州白雲山海會演和尚初住四面山語錄'). 法演은 圜悟克勤의 스승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3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8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