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11
양립 가능한 이독. 책은 白雲을 주어로 삼아 '늘 경책이 되셨다(경책하셨다)'로 읽고 '如臨深履薄'을 별개 문장으로 끊는다. 개정본은 '늘 이를 경책으로 삼아 여림심리박하라'로 수신인에 대한 훈계로 이어 읽으며, 이는 뒤의 '便可以向百尺竿頭進千百步'와 매끄럽게 연결되고 詩經 小旻 '如臨深淵如履薄冰'의 계칙 문맥에도 부합한다. 다만 詩經 전거는 '如臨深履薄'이 계칙 성어임을 확인해 줄 뿐, '常爲警策'의 주어가 白雲인지 수신인에의 명령인지까지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 결정적 전거가 없어 양쪽 다 성립하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양립 가능한 이독. 책은 大雄을 佛의 별호로 보아 '부처님의 뚜렷한 種草(씨앗)'로 옮긴다. 개정본·고증은 百丈의 大雄峰(獨坐大雄峰, 宗門 본거)으로 보아 종문의 적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다. 이 편 전체가 법맥·宗門을 논하므로 百丈 개연이 있으나, 大雄이 佛의 상용 별호이기도 하여 어느 쪽으로도 확정할 수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이 편의 낱말 38
- 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전분반좌
부처님이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자리 반을 내어 가섭(迦葉)을 나란히 앉힌 일이다. 법을 가섭에게 맡긴다는 표시로 여겨, 선문에서는 꽃을 들어 보인 일과 함께 마음을 전한 자리로 꼽는다.
- 葱嶺西畔隻履獨攜 총령서반척리독휴
달마(達磨)가 입적한 뒤 총령(葱嶺)(파미르)에서 신 한 짝만 들고 서귀(西歸)하였다는 척리서귀(隻履西歸) 설화이다(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달마전(達磨傳)). 서천(西天) 전등의 상징이다.
- 正法眼藏 정법안장
부처가 깨달은 바른 법을 꿰뚫어 보는 눈, 또는 그 눈으로 본 법의 알맹이를 이르는 말이다.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꽃을 들자 가섭(迦葉)이 미소 지었고, 이때 이 법을 가섭에게 맡겼다고 전한다. 선종에서는 조사에서 조사로 마음으로 이어 온 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
- 夾山善會 협산선회
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뱃사공 노릇을 하던 선자덕성(船子德誠)의 법을 이었다. 스승의 노에 맞아 물에 빠졌다가 크게 깨친 일로 이름났다. 그가 머문 예주(澧州) 협산의 절도 '협산'이라 부르며, 뒷날 원오가 이곳에서 『벽암록』을 강설했다.
- 因青山委 인청산위
협산선회(夾山善會)가 청산(青山), 곧 깊은 산에서 법을 지키고 기른(보임, 保任) 끝에 법을 맡겨 전한 일이다. 스승 선자덕성(船子德誠)이 「장신처몰종적(藏身處沒蹤跡)…향심산리멱일개반개접속(向深山裏覓一箇半箇接續)」이라 부촉한 대로 깊은 산에 숨어 보임하였다. 청산(青山)은 인물 이름이 아니라 산중 보임을 가리킨다(추정).
- 掃蹤滅跡 소종멸적
자취와 흔적을 쓸어 없앰이다. 약산(藥山)→선자(船子)→협산(夾山)의 「몰종적처막장신(沒蹤跡處莫藏身)」 계열 어구이다.
- 閃電中別殺訛·
石火裏分皂白 섬전중별살와·석화리분조백 번개·부싯불 같은 한순간에 그릇됨(訛)을 가려 죽이고 시비(皂白)를 분간함이다.
- 不論曹底·
惟務俊流 불론조저·유무준류 조저(曹底)는 범상한 무리(조배(曹輩)·아랫것), 준류(俊流)는 빼어난 근기이다. 평용은 상관 않고 준재만 단련함이다.
- 肘後符 주후부
팔꿈치 뒤에 감춘 부적이니, 사가(師家)가 은밀히 지닌 종문(宗門)의 비밀 수단·인가의 상징이다. 원오(圜悟) 저작에 상용한다.
- 綱宗 강종
종문(宗門) 가르침의 벼리, 곧 종지(宗旨)의 큰 강령이다.
- 單提正令 단제정령
방편을 쓰지 않고 바른 명령(정령, 正令), 곧 곧바로 내리는 본분의 명령만을 홀로 들어 보임이다. 임제(臨濟)·운문(雲門) 문하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 西河弄師子 서하농사자
서하사자(西河師子)이니 통상 분양선소(汾陽善昭)(분주(汾州)=옛 서하군(西河郡))를 가리킨다. 임제(臨濟) 중흥의 조(祖), 송고백칙(頌古百則) 창시자, 양기(楊岐)·황룡(黃龍) 양파의 원조(遠祖)이다. 농사자(弄師子)는 사자(직절 기용)를 자유로이 놀림이다.
- 奔流度刃 분류도인
내닫는 급류에서 칼날을 밟고 건넘이니, 한순간의 준열·모험적 기용의 비유이다(양기(楊岐)·오조(五祖) 계열).
- 選佛場 선불장
부처를 뽑는 과거 시험장이란 뜻으로, 선원이나 법회 자리를 이른다. 단하천연(丹霞天然)이 과거 보러 가다가 '관리 뽑기보다 부처 뽑기가 낫다'는 말을 듣고 마조(馬祖)에게 간 일에서 나왔다.
- 向上關棙子 향상관려자
관려자(關棙子)는 빗장·기틀이다.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관문 장치를 열어 밝힘이다.
- 一滴水一滴凍 일적수일적동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얼어붙듯 냉준·순일한 가풍의 형용이다(오조법연(五祖法演)·원오(圜悟) 계열 상용).
- 己躬下·
爲人處 기궁하·위인처 기궁하(己躬下)는 자기 발밑의 본분사(本分事), 위인처(爲人處)는 남을 위해 여는 자리이다. 여기엔 치우친 얽매임이 없어야 한다.
- 漏逗 누두
새어 나와 드러난다는 말로, 말이나 행동에 빈틈이나 허물이 드러남을 이른다. 선가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말로 내보이면 이미 누두라 한다. 『벽암록』에 자주 보인다.
- 渾崙吞棗 혼륜탄조
대추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는 말이다. 맛을 가려 보지 않고 한꺼번에 삼켜 버림을 이른다. 원오는 벽암록에서 '아는 사람은 잘게 씹어 삼키지만, 모르는 사람은 대추를 통째로 삼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벽암록 제30칙).
- 如臨深履薄 여림심리박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冰)」이니 지극히 삼가고 조심함이다.
- 百尺竿頭須進步 백척간두수진보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수행이 더 오를 데 없는 끝에 이르렀다 해도 거기 머물지 말고 그마저 떨치고 나서야 온 세계가 그대로 제 몸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장사경잠(長沙景岑)의 게송에서 나왔다.
- 撲不破 박불파
내던져도 깨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죽 주머니(피가루자, 皮可漏子)처럼 높은 데서 내던져도 다치지 않는, 철저히 단련된 굳건한 경지를 이른다. 원오의 스승 오조법연(五祖法演)은 '유리병 같은 선은 배우지 말고 가죽 주머니 같은 선을 참구하라'고 하였다.
- 六祖慧能 육조혜능
중국 선종의 여섯째 조사(638~713)다. 신주(新州)에서 나무를 팔던 사람으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황매(黃梅)의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법을 이었다. 소주(韶州)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에서 가르침을 펴 '조계'라고도 불린다. 남종선을 열었고, 뒤의 선종 여러 갈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 五祖法演 오조법연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이다.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으로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다. 사면산·백운산을 거쳐 기주(蘄州) 오조산에 머물러 오조라 불린다. 원오극근(圜悟克勤)의 스승이다.
- 頂門眼 정문안
정수리에 달렸다는 셋째 눈이다.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꿰뚫어 보는 남다른 안목을 비유한다.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이 눈을 셋 가졌다는 데서 빌려 온 말이다.
- 白雲守端 백운수단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1025~1072)으로, 양기방회(楊岐方會)의 법을 이었다. 서주(舒州) 백운산 해회선원에 머물러 '백운'이라 불린다. 그 법이 오조법연(五祖法演)을 거쳐 원오극근(圜悟克勤)에게 이어졌으니, 원오에게는 스승의 스승이 된다.
- 臨濟以瞎驢命惠然 임제이할려명혜연
임제의현(臨濟義玄)이 임종에 「수지오정법안장향저할려변멸각(誰知吾正法眼藏向這瞎驢邊滅卻)」이라 하여 삼성혜연(三聖慧然)(혜연(惠然))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하였다(臨濟錄). 명(命)은 부촉, 할려(瞎驢)는 눈먼 나귀 화(話)이다.
- 三聖慧然 삼성혜연
당나라 임제종 선승으로, 임제의현(臨濟義玄)의 법을 이었다. 진주(鎭州) 삼성원(三聖院)에 머물러 삼성이라 불린다. 임제의 말을 모은 『임제록(臨濟錄)』을 엮은 사람으로 전한다. 임제가 세상을 떠나며 '내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에게서 사라질 줄 누가 알았으랴' 한 일화의 상대가 그다.
- 洛浦·
元安 낙포·원안 협산선회(夾山善會)의 법사(法嗣)이다(한때 임제(臨濟) 시자). 「추원(雛源)」은 인물명이라기보다 '어린 원류'의 형용으로, 낙포(洛浦)가 갈래를 나눠 별파를 이룸을 말한다(추정, 추원(雛源) 의심).
- 龍馳虎驟·
換斗移星 용치호취·환두이성 용과 범이 내닫고 북두를 옮겨 별을 바꿈이니, 종사(宗師)의 신변자재한 수단을 형용한다.
- 超宗越格 초종월격
종(宗)을 뛰어넘고 격식을 벗어남이니, 분양(汾陽)류 격외 종풍이다.
- 楊岐吞栗棘蓬 양기탄률극봉
양기방회(楊岐方會)(992–1049)이니 양기파(楊岐派)의 조(祖)이자 원오(圜悟)의 사조(師祖)이다. 율극봉(栗棘蓬)은 밤송이 가시(투금강권(透金剛圈)·탄률극봉(吞栗棘蓬) 계열 양기(楊岐)·오조(五祖) 가풍)로 삼킬 수 없는 난투의 관문이다.
- 硬著鐵脊梁 경저철척량
무쇠 등뼈를 굳게 세움이니, 대임을 지는 강골의 납승(衲僧)이다(須是鐵脊梁漢).
- 大雄 대웅
'큰 영웅'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법화경 수기품 '대웅맹세존'). 선가에서는 백장 스님이 머문 백장산을 대웅봉이라 부르는데, '무엇이 기특한 일입니까' 하는 물음에 백장이 '홀로 대웅봉에 앉아 있다'고 답한 문답이 이름났다(벽암록 제26칙).
- 瞎驢 할려
'눈먼 나귀'라는 말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이 세상을 떠날 때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이 눈먼 나귀에게서 없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하며, 할(喝)로 답한 제자 삼성혜연(三聖慧然)을 가리켜 쓴 말로 유명하다.
- 夾山·
夾嶕 협산·협초 夾山善會이다. 船子德誠이 「藏身處沒蹤跡…向深山裏覓一箇半箇接續」이라 부촉한 대로, 青山=深山에 은거하여 보임하고 법을 이어 위부하였다. 青山은 인물명이 아니라 船子의 深山 보임 부촉에 따른 산중 보임을 가리킨다(추정). 앞의 「掃蹤滅跡」과 호응한다.
- 不論曹底 불론조저
曹底는 범상한 무리(曹輩·아랫것), 俊流는 빼어난 근기이다. 평용은 상관 않고 준재만 단련함이다.
- 百尺竿頭進·
千百 백척간두진·천백 백 자 장대 끝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감. 이미 얻은 경지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말. 長沙景岑의 偈 '百尺竿頭不動人,雖然得入未爲眞。百尺竿頭須進步,十方世界是全身'(『五燈會元』 권4, X80n1565_p0094c18)에서 나왔다. 『景德傳燈錄』 권10은 '百丈竿頭'로 적었다(T51n2076_p0274b08).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