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36편

달선인(達禪人)에게 주는 글

示達禪人

36.1
한문大道正體,不在混沌未分及杳冥恍惚處,亦不是故作深䆳隱蔽,令人不可窮,不可測量。蓋至明非明,至妙非妙,直下簡易。
번역대도(大道)의 바른 본체는 혼돈이 아직 나뉘지 않은 곳에 있지 않다. 아득하고 흐릿한 곳에 있지도 않다. 일부러 깊고 그윽하게 감추어, 사람이 끝까지 캐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밝은 것은 밝음이 아니고, 지극히 묘한 것은 묘함이 아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
若是宿根純靜,聊聞舉著,便知落處,更不向外馳求,向根腳下千了百當,全體現成,乃至觸境遇緣,悉皆透頂透底,坐得斷,把得住,作得主,終不取他人舌頭路,布及古今言教機境公案,將爲極則。
전생에 심은 뿌리가 순수하고 고요한 사람이라면, 슬쩍 들어 보이는 말만 듣고도 곧 떨어질 자리를 안다. 다시 밖으로 치달아 구하지 않는다. 발밑에서 천 가지가 다 끝나고 백 가지가 다 들어맞아, 온몸이 그대로 드러나 이루어진다. 경계에 부딪치고 인연을 만나는 데까지도, 모두 정수리를 뚫고 밑바닥을 뚫는다. 앉은 자리에서 끊어 내고, 붙잡아 지니고, 주인 노릇을 한다. 끝내 남의 혀끝에서 나온 말길(路布)이나, 옛날과 지금의 가르침과 기연의 경계와 공안(公案)을 가져다, 궁극의 법칙으로 삼지 않는다.
是故從上作家,唯只提持此段,要人自承當擔荷,豈曾更立堦梯地位,漸次如之。
그러므로 예로부터 솜씨 있는 종장들은 오직 이 한 대목만 들어 보여, 사람들이 스스로 받아 짊어지게 했을 뿐이다. 어찌 일찍이 계단과 지위를 세워, 차례차례 나아가게 했겠는가.
쉽게 읽기대도의 바른 본체는 혼돈이 아직 나뉘지 않은 곳에 있지 않다. 아득하고 흐릿한 곳에 있지도 않다. 일부러 깊고 그윽하게 감추어, 사람이 끝내 캐묻지도 헤아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지극한 밝음은 밝음이 아니요 지극한 묘함은 묘함이 아니다. 바로 이곳에서 간단하고 쉽다. 전생의 그릇이 순수하고 고요한 이라면, 잠깐 들어 보이는 말만 듣고도 곧 그 돌아갈 자리를 알아챈다. 다시 밖을 향해 치달아 구하지 않는다. 뿌리 밑에서 천 가지가 다 끝나고 백 가지가 다 들어맞아, 온몸이 그대로 드러나 이루어진다. 경계에 부딪치고 인연을 만나는 데에서도 모두 정수리를 뚫고 밑바닥을 뚫는다. 앉은 그 자리에서 끊어 버리고, 붙잡아 머물게 하며, 주인 노릇을 한다. 끝내 남의 혀끝에서 나온 말펼침이나, 옛날과 지금의 가르침, 기연의 경계와 공안을 가져다 궁극의 법칙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뛰어난 종장들은 오직 이 한 대목만을 들어 지녔다. 사람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짊어지게 하였을 뿐이다. 어찌 계단이나 지위를 세워 차례차례 나아가게 한 적이 있었겠는가.
풀이 3
示衆 시중'千了百當'·'透頂透底'·'作得主'·'萬仞懸崖撒手'는 『圜悟佛果禪師語錄』에도 거듭 보이는 圜悟의 상용구다(透頂透底 15곳, 懸崖撒手 8곳, 作得主 6곳). '腳蹋實地'는 語錄에서 '脚踏實地'로 쓴다(병렬용례).
示衆 시중「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의 시중(示衆)·법어류: '천료백당(千了百當)'·'작득주(作得主)'·'만인현애살수(萬仞懸崖撒手)'·'각답실지(腳蹋實地)'·'투정투저(透頂透底)' 등 본문 상투구가 반복 출현하는 원오 특유의 어법(살수현애(撒手懸崖)·대사일번류(大死一番類) 시어(示語))과 상통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원문'直下簡易' — ‘국역본의 번역을 바로잡음’책 누락. 출판본은 '至妙非妙' 뒤의 '直下簡易'(바로 그 자리에서 간이함)를 빠뜨렸다. 내 번역은 '바로 이 자리에서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 살렸다.
36.2
한문若彼來今時,兄弟不道他全不用心,要是不得省力,
번역요즈음의 형제들을 보면, 그들이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힘을 덜 자리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具大根大器大機大用,一聞千悟,徹骨徹髓,痛領將去,纔一蹉卻毫髮,便入解會理路言詮意識根塵中去。
큰 근기, 큰 그릇, 큰 기틀, 큰 작용을 갖춘 이는,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달아 뼈와 골수에 사무치도록 통렬히 알아 가진다. 그러나 털끝만큼이라도 한 번 어긋나면, 곧 알음알이와 이치의 길, 말과 의식과 근진(根塵)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所以脫他藥網不出,未免漠漠懷疑,便更下鈍工,十年五載終莫能果決。
그래서 약의 그물(藥網)을 벗어나지 못한다. 막막하게 의심을 품게 되고, 다시 둔한 공부를 지어 십 년 오 년이 지나도 끝내 결단하지 못한다.
尋常每勸兄弟,須奮猛利心,棄卻從前學路得失窠臼,似向萬仞懸崖撒手,拌捨性命,從他氣息一點也無。
나는 평소에 늘 형제들에게 권한다. 모름지기 날카롭고 용맹한 마음을 떨쳐 일으켜라. 지금까지 배워 온 길의 얻고 잃는 소굴을 내던져라. 만 길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듯 목숨을 내버리고, 숨결이 한 점도 없게 되더라도 내버려 두어라.
如大死底人,餉間甦醒起來,謾你不得也。
크게 죽은 사람이 잠깐 사이에 되살아나 깨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아무도 그대를 속이지 못한다.
卻爲已到腳蹋實地處,寬若太虗,明如杲日,更不消造化,一切自圓成,二六時中與千聖交參,俱爲殊勝奇特脫灑,信口開,信腳行,更疑箇甚?
이미 발이 실지(實地)를 밟는 자리에 이르렀다면, 넓기는 큰 허공 같고 밝기는 밝은 해 같다. 다시 조화를 빌릴 것도 없이, 모든 것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진다. 하루 열두 때 천 성인과 서로 어울린다. 모두가 남달리 뛰어나고 기특하며, 시원스레 벗어나 있다. 입 가는 대로 열고, 발 가는 대로 걷는다.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豈不見古宿指人道:由悟達法離見聞。若也真的悟去,更憂甚佛不解語?
보지 못했는가. 옛 어른이 사람들에게 가리켜 말씀하셨다. “법을 깨달아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보고 들음을 여읜다.” 참으로 깨달아 간다면, 부처가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쉽게 읽기요즈음의 형제들이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는 못 한다. 다만 힘을 덜 자리를 얻지 못할 뿐이다. 큰 그릇과 큰 기틀, 큰 작용을 갖춘 이는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달아, 뼈에 사무치고 골수에 사무치도록 통렬히 알아 지니고 간다. 그러나 겨우 털끝만큼이라도 한 번 어긋나면, 이내 알음알이와 이치의 길로 빠진다. 언설과 의식과 근진 속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저 약망, 곧 병을 고치려다 도리어 얽어매는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막막한 의심을 면치 못하고, 다시 둔한 공부를 지어 오 년 십 년이 되도록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늘 형제들에게 권한다. 모름지기 날카롭고 용맹한 마음을 떨쳐 일으키라. 이전에 배우던 길에서 얻고 잃던 소굴을, 만 길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 목숨을 내던지듯 훌쩍 버리라. 거기에 숨결 한 점 남기지 말라. 크게 죽은 사람이 잠깐 사이에 도로 살아나 깨어나는 것과 같다. 그리되면 아무도 그대를 속이지 못한다. 그렇게 발이 실지를 밟는 자리에 이르면, 넓기가 큰 허공 같고 밝기가 밝은 해 같다. 다시 조화를 빌릴 것 없이 모든 것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진다. 하루 열두 때 내내 천 성인과 더불어 서로 사귀어 어울린다. 모두가 유달리 뛰어나고 기특하며 벗어나 시원하다. 입에 맡겨 말이 열리고 발에 맡겨 걸어가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어찌 옛 어른이 사람을 두고 이르신 말씀을 보지 못하였는가. '법을 깨달아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보고 들음을 여읜다'라고 하셨다. 참으로 깨달아 나아간다면, 다시 어찌 부처가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풀이 6
碧巖錄「벽암록(碧巖錄)」제41칙(조주문투자(趙州問投子)·대사저인각활(大死底人卻活)): 원오가 대사각활(大死卻活)을 평창(評唱)하며 '현애살수(懸崖撒手),자긍승당(自肯承當);절후재소(絕後再甦),欺君不得'이라 한 구절과, 본문 '사향만인현애살수(似向萬仞懸崖撒手)…여대사저인(如大死底人),향간소성기래(餉間甦醒起來),만이불득야(謾你不得也)'가 어구·논지에서 정확히 병렬된다.
懸崖撒手「碧巖錄」第41則(趙州問投子·大死底人卻活): 원오가 大死卻活을 평창(評唱)하며 '懸崖撒手,自肯承當;絕後再甦,欺君不得'이라 한 구절과, 본문 '似向萬仞懸崖撒手…如大死底人,餉間甦醒起來,謾你不得也'가 어구·논지에서 정확히 병렬된다.
藥網 약망'便入解會理路言詮意識根塵中去。所以脫他藥網不出'은 알음알이(解會)가 도리어 얽매임이 되는 것을 藥網에 빗댄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由悟達法離見聞
. 由(悟達法)離見聞으로 끊어 '법을 깨달아 통달함으로써 견문을 여읜다'로 읽는 자체역(達=達禪人 어희에 부합)과, 由悟達 / 法離見聞으로 끊어 '깨달음으로 말미암고, 법은 견문을 떠난다'로 읽는 출판본이 양립한다. 두 구두 모두 문법적으로 성립하고 실질 해석이 갈리나, 출판본 독법을 배제할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근거: 5자구의 구두 차이일 뿐 燈錄·語錄 등 확정 전거 부재.
교감 · 若彼來今時'若彼來今時' — 저본(X69n1357 p0487c20)은 '豈曾更立堦梯地位,漸次如之。若彼來今時,兄弟…'로 끊었다. 下62의 같은 꼴 '如之?若彼直饒'는 원오어록 같은 글(T47n1997 p0787b01)이 '如之若何,直饒'라 彼가 何의 잘못이니, 여기도 '漸次如之若何?來今時兄弟…'(차례차례 이러쿵저러쿵 했겠는가)일 수 있다. 다만 이 글은 원오어록에 같은 글이 없고, 저본대로도 '차례차례 이렇게 하겠는가 · 저 요즈음 형제들은'으로 읽히며, 어느 쪽이든 번역의 뜻은 같다. → 저본대로 둔다(보류).
36.3
한문切須向日用中不起異見,放教胸中灑灑落落,打辦精神自覰見,久之須有信入處。
번역부디 날마다 쓰는 가운데 다른 견해를 일으키지 말라. 가슴속을 시원하고 깨끗하게 놓아 두고, 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 엿보아라. 오래 하면 반드시 믿어 들어가는 자리가 있다.
若只守閑,閉眉合眼,要參露柱燈籠,也須知有佛種性底,終不向死水裏折倒,但辦肯心,必不相賺。
그저 한가함만 지켜, 눈썹을 내리고 눈을 감은 채 노주(露柱)와 등롱(燈籠)을 참구하려 하더라도, 모름지기 부처 될 성품(佛種性)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끝내 죽은 물속에서 꺾여 넘어지지 않는다. 다만 즐겨 하는 마음을 갖추기만 하면, 결코 서로 속이지 않는다.
菩提離言說,從來無得人。具摩醯正眼,靈利衲子聊聞舉著,卽便覰透,終不作限量,墮在解脫深坑中。
보리(菩提)는 말을 여의었으니, 예로부터 얻은 사람이 없다. 마혜수라(摩醯首羅)의 바른 눈을 갖춘 영리한 납자(衲子)는, 슬쩍 들어 보이는 말만 듣고도 곧 꿰뚫어 본다. 끝내 한계를 긋고 헤아리지 않으니,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는다.
有般底容有路布,卽謂離言說。真言說無得人,乃實證之人,
그런데 어떤 무리는 짜 놓은 말길(路布)을 좀 갖추고서, 곧 이렇게 말한다. “말을 여읨이 참된 말이요, 얻은 사람이 없음이 곧 실답게 증득한 사람이다.”
當面蹉卻,被葛藤纏倒,終不明得從上來事。
그러나 이런 이는 바로 눈앞에서 어긋나 버리고, 칡넝쿨(葛藤)에 감겨 넘어진다. 끝내 예로부터 내려온 일을 밝히지 못한다.
是故此宗雖務冥契密付,既作諸佛苗裔,應須紹續門風,明全提正印深機,脫生死塵勞惡作執縛。
그러므로 이 종문(宗門)은 그윽이 계합하고 은밀히 부촉하기를 힘쓰기는 하지만, 이미 모든 부처의 후손이 되었으면 마땅히 가풍을 이어야 한다. 온전히 들어 보이는 바른 도장과 깊은 기틀을 밝혀, 생사와 번뇌와 나쁜 짓과 집착의 얽매임을 벗어나야 한다.
永嘉乃云:大丈夫,秉慧劒,般若鋒兮金剛焰。豈容擬議於其間哉?
영가(永嘉)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야(般若)의 칼끝이요 금강(金剛)의 불꽃이다.” 어찌 그 사이에 헤아려 따짐을 용납하겠는가.
쉽게 읽기부디 일상생활 가운데 딴 견해를 일으키지 말라. 가슴속을 시원하고 깨끗하게 비우고, 정신을 가다듬어 스스로 엿보라. 오래 이어 가면 반드시 믿어 들어가는 자리가 열린다. 그저 한가함만 지켜 눈썹을 내리고 눈을 감은 채, 노주와 등롱, 곧 법당 앞 기둥과 등불 같은 무정물을 참구하려 하더라도, 반드시 불종성이 있음을 알아야 끝내 죽은 물속에서 꺾여 넘어지지 않는다. 다만 즐겨 하는 마음만 갖추면 결코 서로 속이는 일은 없다. 보리는 말을 여읜 자리라, 예로부터 이를 얻은 사람이 없다. 마혜수라의 바른 눈을 갖춘 영리한 납자는, 잠깐 들어 보이는 말만 듣고도 곧 엿보아 꿰뚫는다. 끝내 한계나 헤아림을 짓지 않아,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부류는 말을 늘어놓는 데에 빠져서, '언설을 여읨이 곧 참된 언설이요, 얻을 이 없음이 곧 실답게 증득한 사람이다'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이는 정작 눈앞에서 어긋나 버린다. 갈등에 얽혀 넘어져, 끝내 예로부터 내려온 이 일을 밝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종문은 그윽이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은밀히 법을 물려주기를 힘쓴다. 이미 모든 부처의 싹이 된 이상, 마땅히 문풍을 이어야 한다. 온전히 든 바른 도장과 깊은 기틀을 밝혀, 생사와 진로와 나쁜 짓과 집착의 얽매임을 벗어나야 한다. 영가 스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대장부가 지혜의 검을 잡으니, 반야의 칼끝이요 금강의 불꽃이라.' 어찌 그 사이에 헤아려 따지는 짓을 용납하겠는가.
풀이 8
永嘉玄覺 영가현각「證道歌」 '大丈夫秉慧劍。般若鋒兮金剛焰'(T48n2014_p0396b03).
露柱燈籠 노주등롱「벽암록(碧巖錄)」제칙(諸則)(특히 운문계(雲門系))의 '노주등롱(露柱燈籠)'·정문정안(頂門正眼)(마혜수라안(摩醯首羅眼)) 용례: 무정(無情)의 소재와 정문일척안(頂門一隻眼)의 표현이 본문 '요참로주등롱(要參露柱燈籠)'·'구마혜정안(具摩醯正眼)'과 병렬된다.
苗裔 묘예'既作諸佛苗裔,應須紹續門風'은 諸佛의 苗裔, 곧 法孫이 되었으니 門風을 이으라는 말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要參露柱燈籠,也須知有佛種性底,終不向死水裏折倒
. 要를 '欲(~하려 하다)'로 보아 若…也須知 상관구조로 '노주·등롱을 참구하려 하더라도 또한 알아야 한다'로 읽는 자체역과, 要를 '요컨대'로 보아 '노주·등롱에게 참문하라'를 명령문으로 분리한 출판본이 양립한다. 若…也須知 상관을 살린 자체역이 더 정합적이나 어느 쪽도 결정적 전거로 확정되지 않으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이 역주를 고침원문'有般底容有路布,卽謂離言說。真言說無得人,乃實證之人' — ‘이 역주의 번역을 고침’자체역 오류. 나는 인용을 '離言說'에서 끊고 '真言說'을 부사(참으로 말하자면)로, '乃…'를 '~라 하더라도'로 처리했으나 어법이 어색하다(乃=곧/이다, 真言說에서 言說 탈락). 출판본처럼 卽謂가 '離言說(이) 真言說(이고), 無得人(이) 乃實證之人(이다)' 전체를 이끄는 대구 인용으로 읽고, 當面蹉卻의 주어를 '有般底(그런 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감 · 胸中'胸中'의 '胸' — 저본·부록본 글자 [(曷-曰)/月](U+2E30E, CBETA CB05577)는 胸의 이체·속자로, 웹 글꼴에 없어 정자 '胸'으로 실음(CBETA 정규자 胸; X69n1357 p0488a08). 이체이다.
36.4
한문生死爲大事,真透脫去,不以爲大。何故?
번역생사를 큰일이라 한다. 그러나 참으로 꿰뚫어 벗어나면, 큰일로 여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以無怖畏,諦了實證,如如不動,視萬有起滅,中外根株,洞然明白,始末齊平,初無得喪,而常執此大明普照,若揭日月而行,如師子王游戲自在,
두려움 없이 자세히 깨쳐 알아, 실답게 증득했기 때문이다.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만유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과 안팎의 뿌리를 보되, 훤히 밝고 분명하다. 처음과 끝이 가지런히 고르고, 애초에 얻고 잃음이 없다. 늘 이 큰 밝음을 잡아 두루 비추니, 해와 달을 높이 들고 다니는 듯하고, 사자왕이 자재하게 노니는 듯하다.
促百千劫爲一念,衍一念爲百千劫,須彌納芥子中,大千擲方外,皆我心常分,何有淨穢去來爲罣礙,生死得喪爲繄累哉?
백천 겁을 줄여 한 생각으로 만들고, 한 생각을 늘여 백천 겁으로 만든다. 수미산(須彌山)을 겨자씨 속에 넣고,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저 바깥으로 던진다. 이 모두가 내 마음의 늘 그러한 몫이다. 어찌 깨끗함과 더러움, 감과 옴이 걸림이 되겠는가. 어찌 나고 죽음, 얻고 잃음이 얽매임이 되겠는가.
古德云:生也猶如著衫,死也還同脫袴。不以生死爲大變可知矣。
옛 어른이 말씀하셨다. “살 때는 적삼을 입는 것과 같고, 죽을 때는 바지를 벗는 것과 같다.” 생사를 큰 변고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쉽게 읽기세상은 생사를 큰일로 여긴다. 그러나 참으로 이를 꿰뚫어 벗어나면, 더는 큰일로 여기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두려움 없이 낱낱이 환히 알아 실답게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만유의 일어나고 사라짐과 안팎의 뿌리를 보되, 훤히 밝고 분명하다. 처음과 끝이 가지런히 평등하고, 애초에 얻고 잃음이 없다. 늘 이 큰 밝음을 잡아 두루 비추기를, 해와 달을 높이 들고 다니듯 한다. 사자왕이 거침없이 노니는 듯하다. 백천 겁을 다잡아 한 생각으로 삼고, 한 생각을 늘여 백천 겁으로 삼는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고, 대천세계를 저 밖으로 던진다. 이 모두가 내 마음에 늘 갖추어진 분수다. 어찌 깨끗함과 더러움, 감과 옴이 걸림이 되겠는가. 어찌 나고 죽음과 얻고 잃음이 얽매임이 되겠는가. 옛 어른이 이렇게 이르셨다. '삶이란 적삼을 입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바지를 벗는 것과 같다.' 생사를 큰 변고로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풀이 2
古德 고덕五洩의 제자 蘇溪和尚의 「牧護歌」 '生也猶如著衫,死也還同脫袴。生也無喜無憂,八風豈能驚怖'(『景德傳燈錄』 권30). 『五燈會元』 권16·『續傳燈錄』 권8에 이 구를 들어 묻는 문답이 있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51
  1. 混沌未分 혼돈미분

    천지가 아직 갈라지지 않은 원초의 상태. 도가(道家) 우주생성론 및 「장자(莊子)」응제왕(應帝王)의 혼돈(混沌) 우화적 표현. 대도(大道)의 본체를 이런 곳에서 찾는 잘못을 경계한다.

  2. 杳冥恍惚 묘명황홀

    아득하고 어두우며 흐릿하여 붙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노자(老子)』가 도(道)를 그린 말에서 왔다. 원오는 도를 이런 신비한 곳에 두는 견해를 물리칠 때 이 말을 썼다.

  3. 深邃 심수

    깊고 그윽하게(䆳=수(邃)) 감추어 가림.

  4. 落處 낙처

    말이나 행동이 떨어져 닿는 자리, 곧 그 말이 참으로 가리키는 속뜻을 이른다. 선에서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 낙처를 알아채는 것을 눈 밝은 사람의 일로 친다.

  5. 千了百當 천료백당

    천 가지가 다 끝나고 백 가지가 다 합당함. 온전히 완료(完了)됨을 이르는 선가(禪家) 상투어.

  6. 透頂透底 투정투저

    정수리에서 밑바닥까지 꿰뚫는다는 말이다. 위아래 남김없이 철저히 사무쳐 깨친 경지를 형용한다.

  7. 坐得斷·把得住·作得主 좌득단·파득주·작득주

    앉아서 끊고, 붙잡아 머물게 하고, 주인 노릇을 함. 경계(境界)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 역량을 이르는 삼구(三句).

  8. 路布 노포

    짜 놓고 늘어놓는 말과 설명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본래 봉하지 않고 내걸어 알리던 글인 노포(露布)를 선어록에서는 흔히 노포(路布)로 적는다.

  9. 言教機境公案 언교기경공안

    언교(言教)(경론의 가르침)·기경(機境)(기연기연(機緣)의 경계)·공안(公案). 남에게서 빌린 언구를 극칙(極則)(궁극의 법칙)으로 삼음을 경계.

  10. 堦梯地位 계제지위

    계단과 지위. 곧 점차적(漸次的) 수행 단계(계(堦)=계(階)).

  11. 一聞千悟 일문천오

    한 번 듣고 천 가지를 깨친다는 말이다. 타고난 그릇이 크고 지혜가 날카로운 사람은 한마디만 듣고도 단번에 다 깨친다는 뜻으로 쓴다.

  12. 根塵 근진

    여섯 감각기관인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여섯 경계를 함께 이른다. 눈·귀·코·혀·몸·뜻과, 그것이 만나는 빛깔·소리·냄새·맛·닿음·생각의 대상이다. 백장(百丈)의 '근진을 멀리 벗어났다'는 말이 유명하다.

  13. 鈍工 둔공

    둔(鈍)한 공부, 요령 없이 힘만 드는 수행.

  14. 萬仞懸崖撒手 만인현애살수

    만 길 벼랑에서 손을 놓음(懸崖撒手). 목숨을 던지듯 온몸으로 놓아 버리는 결단의 비유.

  15. 大死人 대사인

    크게 죽은 사람, 곧 분별과 알음알이가 다 끊어져 숨마저 멎은 듯한 사람이다. 조주(趙州)가 투자(投子)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도로 살아날 때는 어떠한가' 물은 문답이 유명하다.

  16.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17. 千聖交參 천성교참

    천 성인(千聖)과 더불어 서로 사귀어 참여함. 역대 조사·성인과 하나 됨.

  18. 由悟達法離見聞 유오달법리견문

    고숙(古宿)(옛 종장)의 말로 인용됨. 깨달아 법을 통달함으로써 견문(見聞)(보고 들음)의 경계를 벗어난다는 뜻(정확한 출전 미상, 의심).

  19. 佛種性 불종성

    부처의 씨앗이 되는 성품, 곧 불성(佛性).

  20. 死水裏 사수리

    죽은 물속. 활발발(活潑潑)한 작용이 없는 침체·고요에 갇힌 경지(死水不藏龍).

  21. 衲子 납자

    누더기 옷(衲衣)을 걸친 수행승이다. 선승의 통칭이다.

  22. 解脫深坑 해탈심갱

    '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라는 말이다. 해탈이나 고요한 경지에 머물러 안주하면 그것이 도리어 빠져나오기 어려운 함정이 된다고 경계하는 말이다.

  23. 冥契密付 명계밀부

    그윽이 계합(契合)하고 은밀히 부촉(付囑)함.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밀전(密傳).

  24. 苗裔 묘예

    먼 핏줄을 이은 후손, 자손이다.

  25. 全提正印 전제정인

    온전히 든(全提) 바른 법인(法印). 종문의 정법을 남김없이 제시함.

  26. 塵勞 진로

    번뇌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티끌처럼 마음을 더럽히고 지치게 한다 하여 진로라 한다. 『유마경』은 이 진로가 곧 부처가 될 씨앗이라고도 하였다.

  27. 慧劒·般若鋒·金剛焰 혜검·반야봉·금강염

    지혜의 검, 반야(般若)의 칼끝, 금강(金剛)의 불꽃. 번뇌·외도(外道)를 단칼에 베는 지혜의 비유.

  28. 師子王游戲自在 사자왕유희자재

    사자왕(師子王)이 자재(自在)히 노닒. 두려움 없는 대자재(大自在)의 경지 비유.

  29. 促百千劫爲一念·衍一念爲百千劫 촉백천겁위일념·연일념위백천겁

    겁(劫)과 찰나(念)가 서로 걸림 없이 융통함(念劫圓融). 「화엄경(華嚴經)」의 시간 상즉상입(相卽相入) 사상.

  30. 須彌納芥子 수미납개자

    수미산(須彌山)을 겨자씨(芥子)에 넣음. 「유마경(維摩經)」불사의품(不思議品)의 대소무애(大小無礙).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귀종지상(歸宗智常)과 강주자사(江州刺史) 이발(李渤) 문답으로도 유명.

  31. 大千擲方外 대천척방외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저 밖으로 던짐. 수미납개자(須彌納芥子)와 짝하여 대소(大小)·내외(內外)의 걸림 없음을 나타냄.

  32. 生也猶如著衫死也還同脫袴 생야유여착삼 사야환동탈고

    옛 어른의 말. 삶은 적삼 입듯, 죽음은 바지 벗듯 예사로움. 생사를 큰 변고로 여기지 않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뜻(정확한 출전 미상, 선가 상투 표현).

  33.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34. 永嘉玄覺 영가현각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천태 지관을 닦다가 조계로 육조혜능을 찾아갔다. 문답 끝에 인가를 받고 하룻밤 묵고 떠나 일숙각(一宿覺)이라 불렸다. 그가 지었다는 「증도가(證道歌)」 구절이 선문에서 널리 인용된다.

  35. 古德 고덕

    옛날의 덕 높은 스님을 이르는 말이다. 선사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앞사람의 말을 끌어 올 때 '고덕이 이르기를' 하고 흔히 쓴다. 가리키는 사람은 인용마다 다르다.

  36. 作家 작가

    선가에서 솜씨와 안목을 두루 갖춘 노련한 스승을 이른다. 배우는 이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고 자유자재로 이끄는 사람이다. 오늘날 글 쓰는 사람을 뜻하는 '작가'와는 뜻이 다르다.

  37. 葛藤 갈등

    칡과 등나무 덩굴이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말과 글, 곧 깨달음에 보탬이 안 되는 군더더기 말을 이른다. 선사들은 자기 법문을 낮추어 '갈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38. 示衆 시중

    스승이 대중 앞에서 법을 일러 보이는 일, 또는 그 말을 이른다. 선종 어록에서는 법당에 올라 하는 상당(上堂), 저녁에 하는 소참(小參)과 함께 설법의 한 갈래로 묶인다.

  39. 露柱燈籠 노주등롱

    법당 앞의 드러난 기둥(노주)과 등불 거는 기구(등롱)다. 생각도 감정도 없는 무정물의 대표로, 선사들이 문답에 자주 끌어 썼다.

  40. 菩提離言說·從來無得人 보리이언설·종래무득인

    '깨달음(菩提)은 말을 떠나 있어, 예로부터 그것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음은 말로 붙잡거나 따로 손에 넣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옛 선사의 말로 인용되며, 처음 나온 곳은 밝혀지지 않았다.

  41. 杲日 고일

    높이 떠 환히 밝은 해다. '고(杲)'는 해가 나무 위로 떠올라 밝다는 뜻이다. 선어록에서는 걸림 없이 밝은 마음의 비유로 쓴다.

  42. 達禪人 달선인

    원오가 원오심요의 「달선인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납자(수행승)이다. 법명이 '달'이다.

  43. 舌頭路 설두로

    남의 혀끝의 길. 곧 타인의 언구(言句)를 흉내 내어 답습하는 것.

  44. 藥網 약망

    병을 고치려는 약이 도리어 사람을 얽어매는 그물이 된다는 말이다.

  45. 腳蹋踏實地 각답답실지

    발이 실지(實地)를 밟음. 진실히 증득(證得)한 경지.

  46. 太虗 태허

    큰 허공(허(虗)=허(虛)).

  47. 摩醯正眼·摩醯首羅 마혜정안·마혜수라

    마혜수라(摩醯首羅)(Maheśvara·대자재천(大自在天))의 이마에 세로로 난 제3의 눈. 정수리의 바른 눈=정문안(頂門眼), 곧 곧바로 꿰뚫는 정안(正眼)을 비유.

  48. 如如不動 여여불동

    여여(如如)하여 움직이지 않음. 진여(眞如)의 부동(不動)을 이르는 「금강경(金剛經)」계 표현.

  49. 腳蹋踏 각답답

    발이 실지(實地)를 밟음. 진실히 증득(證得)한 경지.

  50. 促百千劫爲一念 촉백천겁위일념

    겁(劫)과 찰나(念)가 서로 걸림 없이 융통함(念劫圓融). 「華嚴經」의 시간 상즉상입(相卽相入) 사상.

  51. 摩醯首羅眼 마혜수라안

    摩醯首羅(大自在天)의 이마에 세로로 난 눈. 세 눈 가운데 이마의 눈으로, 禪家에서는 범상한 두 눈을 넘어선 바른 안목(頂門正眼·頂門一隻眼)에 빗댄다. 圜悟 語錄에 '摩醯首羅三隻眼'(권11, T47n1997_p0764b05)·'摩醯首羅揭示頂門正眼'(권8, T47n1997_p0748a01)이 보인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교감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51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