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50편

견도자(堅道者)에게 주는 글

示堅道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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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한문佛祖妙道徑截,唯直指人心,務見性成佛爾。
번역부처와 조사(祖師)의 오묘한 도(道)는 곧장 질러가는 지름길이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할 뿐이다.
但此心源本來虗靜明妙,初無纖毫隔礙,而以妄想翳障,於無隔礙自生染障,背本逐末,枉受輪迴。
다만 이 마음의 근원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며, 밝고 오묘하다. 애초에 털끝만큼도 막히거나 걸린 데가 없다. 그런데 망상(妄想)에 가려 막혀서, 막힘도 걸림도 없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듦과 장애를 지어낸다. 근본을 등지고 끝가지를 좇아, 부질없이 윤회(輪迴)를 받는다.
若具大根器,更不外求,於自腳跟脫然獨證惡覺。浮翳既消,本來正見圓妙,謂之卽心卽佛。
만약 큰 그릇(根器)을 갖추었다면, 다시 밖에서 구하지 않는다. 제 발꿈치 아래에서 훌쩍 벗어나 홀로 깨닫는다. 잘못된 알음알이(惡覺)의 뜬 가림이 사라지면, 본래의 바른 견해가 온전하고 오묘해진다. 이것을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한다.
從此一得永得,如桶底子脫,豁然契合,無一法當情,覿體純靜,受用無疑,則一了一切了。
이로부터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다.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활짝 들어맞아(契合), 어떤 법 하나도 헤아림에 걸리지 않는다. 본체를 마주해 보면 순수하고 고요하여, 받아 쓰는 데 의심이 없다. 그러면 하나를 마치면 온갖 것이 다 마쳐진다.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가 걸은 오묘한 길은 지름길이다. 곧장 질러간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할 뿐이다. 이 마음의 뿌리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며 밝고 오묘하다. 애초에 털끝만 한 막힘도 걸림도 없다. 그런데 망상이 이 자리를 가려 장애를 만든다. 본래 아무 막힘도 걸림도 없던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듦과 장애를 지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근본을 등지고 끝가지를 좇다가, 부질없이 윤회에 끌려다닌다. 만약 큰 그릇을 갖추었다면, 다시 밖에서 찾지 않는다. 제 발꿈치 아래에서 훌쩍 벗어나 홀로 증득한다. 잘못된 알음알이가 드리운 뜬구름 같은 가림이 걷히면, 본래의 바른 눈이 온전하고 오묘해진다. 이를 마음이 곧 부처라 한다. 이렇게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다. 마치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활짝 열려 들어맞으니, 한 법도 분별하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그 본바탕을 살펴보면 순수하고 고요하여, 받아 쓰는 데 아무 의심이 없다. 이렇게 하나를 마치면 온갖 것이 다 마쳐진다.
풀이 4
碧巖錄통저(桶底)(자(子))탈(脫) : 돈오의 상용 비유이다. 원오(圜悟) 벽암록(碧巖錄)·어록(語錄)에 '여통저탈(如桶底脫)' 유형으로 거듭 나타나며, 본문 '여통저자탈(如桶底子脫)'과 병렬된다.
碧巖錄통저(桶底)(子)脫 : 돈오의 상용 비유이다. 圜悟 碧巖錄·語錄에 '如桶底脫' 유형으로 거듭 나타나며, 본문 '如桶底子脫'과 병렬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惡覺浮翳既消
책 오역이다. 책 '잘못된 깨침의 들뜬 가리움'은 惡覺의 覺을 '깨침(正覺)'으로 옮겨 삿된 깨달음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고증주석이 惡覺=妄覺=알음알이(분별지)로 명시하므로 내 번역 '잘못된 알음알이의 뜬 가림'이 교의적으로 더 정확하다. 경미한 부정확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一了一切了
양립이독이다. 了를 '마치다·끝나다'(一了百了의 표준 구문)로 보아 '하나를 마치면 온갖 것이 다 마쳐진다'로 읽을 수도 있고, '사무쳐 앎(了知·了悟)'으로 보아 '하나를 알면 온갖 것을 다 안다'로 읽을 수도 있다. 선가에서 了는 一悟一切悟와 짝하여 了悟의 뜻으로도, 一了百了처럼 '결판·완료'의 뜻으로도 쓰이므로 두 독법이 병존한다. 고증주석은 '마치다'를 지지하여 현 번역이 이에 부합하나, 책의 '了知' 독법도 선어록 용례상 성립한다.
50.2
한문及至聞說非心非佛,并親臨違順好惡境界,則一印印定,何有彼我異同、種種混雜知見耶?
번역‘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을 듣게 되어도, 거스르고 따르며 좋고 싫은 경계를 몸소 마주해도, 한 도장으로 딱 찍어 정한다. 어찌 저와 나, 다름과 같음 같은 갖가지 뒤섞인 견해가 있겠는가.
是故古德於一機一境、一語一默,投誠入理,千門萬戶了無差殊,
그러므로 옛 큰스님들은 한 기틀 한 경계, 한마디 말 한 번의 침묵에서도 정성을 다해 이치에 들어갔다. 천 개의 문, 만 개의 지게문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譬百千異流同歸大海,自然居之既安,用之透徹,作箇無爲無事絕學道人去也。
백천 갈래 다른 물줄기가 함께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자연히 거기 머무는 것이 편안하고, 쓰는 것이 사무친다. 마침내 함이 없고 일이 없으며 배움이 끊어진(絕學) 도인(道人)이 되어 간다.
쉽게 읽기'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거스름과 따름, 좋음과 싫음의 경계를 몸소 마주해도 마찬가지다. 한 도장을 찍어 딱 정하듯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니 너와 나, 다름과 같음을 가르는 뒤섞인 견해가 어찌 남겠는가. 그러므로 옛 큰스님들은 하나의 기틀, 하나의 경계, 한마디 말과 한 번의 침묵에서도 정성을 다해 이치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지게문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백천 갈래로 갈라진 물줄기가 함께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자리에 머물러도 절로 편안하고, 쓰임이 사무쳐 막힘이 없다. 마침내 함도 없고 일도 없으며 배움조차 끊어진 도인이 되어 간다.
풀이 2
無爲無事絕學道人 무위무사절학도인'作箇無爲無事絕學道人'은 永嘉 「證道歌」 첫 구 '絕學無爲閒道人'을 풀어 쓴 꼴이다.
50.3
한문二六時中不生別心,不起異見,隨時飲啖衣著,萬境萬緣無不虗凝,雖千萬年不移易一毫髮許。處此大定,豈非不可思議大解脫耶?
번역하루 열두 때 가운데 다른 마음을 내지 않고, 다른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때에 따라 마시고 먹고 옷을 입되, 온갖 경계와 온갖 인연이 텅 비고 고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천만 년이 지나도 털끝 하나만큼도 옮기거나 바꾸지 않는다. 이 큰 선정(大定)에 머무니, 어찌 불가사의한 큰 해탈(大解脫)이 아니겠는가.
唯要長時無間斷,不墮內外中間、有無染淨,直下休歇去,見佛眾生等無差殊,乃是十成安樂之地也。
오직 요긴한 것은, 오래도록 끊어짐 없이 안과 밖과 그 중간, 있음과 없음, 물듦과 깨끗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쉬어 가서, 부처와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온전히 안락한 자리이다.
今既已有趣向,只在長養令純熟,煅來煅去,如百煉精金,方成大法器也。
이제 이미 나아갈 방향이 있으니, 다만 오래 길러 순일하게 무르익게 해야 한다. 단련하고 또 단련하여 백 번 불린 순금처럼 되어야, 비로소 큰 법의 그릇(大法器)을 이룬다.
쉽게 읽기하루 온종일 별다른 마음을 내지 않는다. 다른 견해도 일으키지 않는다. 때에 따라 마시고 먹고 옷을 입되, 온갖 경계와 온갖 인연이 텅 비어 고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천만 년이 지나도 털끝만큼도 옮기거나 바꾸지 않는다. 이 큰 선정에 머무니, 어찌 불가사의한 큰 해탈이 아니겠는가. 오직 요긴한 것은 이것이다. 오래도록 끊어짐 없이, 안과 밖과 그 중간, 있음과 없음, 물듦과 깨끗함 어느 쪽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쉬고 또 쉬어, 부처와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 없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완전무결하게 안락한 경지다. 이제 나아갈 방향은 이미 잡았다. 다만 오래오래 길러 순일하게 익히고, 단련하고 또 단련하여 백 번 제련한 순금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큰 법의 그릇을 이룬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29
  1. 直指人心·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2. 於自腳跟脫然獨證 어자각근탈연독증

    '각근하(腳跟下)(발꿈치 아래)'는 밖으로 구하지 않고 자기 근본 자리에서 증득함을 뜻하는 선가의 상용 표현이다.

  3. 惡覺浮翳 악각부예

    잘못된 알음알이(악각(惡覺), 망각(妄覺))가 뜬 가림(浮翳)이 되어 본지를 덮음이다. 본래의 정견을 가리는 분별지를 가리킨다.

  4. 桶底子脫 통저자탈

    통 밑바닥이 쑥 빠진다는 말이다. 막혔던 알음알이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크게 깨치는 순간을 이른다. 설봉(雪峰)이 덕산 문하에서 깨친 때를 '통 밑이 빠진 듯했다'고 회고했다.

  5. 一了一切了 일료일체료

    '하나를 마치면 모든 것이 다 마쳐진다'는 말이다. 근본인 한마음을 깨치면 온갖 일이 함께 풀린다는 뜻이다. 원오는 '하나가 밝으면 모두 밝다(一明一切明)'와 짝지어 자주 썼다.

  6. 一印印定 일인인정

    하나의 도장으로 찍어 딱 정한다는 말이다. 부처와 조사가 전해 온 마음 도장(심인, 心印) 하나로 모든 것을 한결같이 확정함을 이른다. 나와 남을 가르는 분별이 끼어들 틈이 없다.

  7. 一機一境一語一默 일기일경일어일묵

    조사가 접화하는 낱낱의 기틀·경계·말·침묵이다. 아래 '천문만호(千門萬戶)'와 대비되며 모두 일리(一理)로 귀결된다.

  8. 百千異流同歸大海 백천이류동귀대해

    온갖 다른 물줄기가 모두 큰 바다로 돌아감이다. 만법이 일미(一味) 평등으로 귀일함의 비유이며(百川歸海), 경론에 상용된다.

  9. 無爲無事絕學道人 무위무사절학도인

    영가현각(永嘉玄覺) '증도가(證道歌)' 기구(起句) '절학무위한도인(絕學無爲閒道人),불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에서 온 표현이다. 더 배울 것도 지을 것도 없는 도인을 이른다.

  10. 隨時飲啖衣著 수시음담의저

    때에 따라 마시고 먹고 옷 입음이다. 일용의 평상 그대로가 도임(평상심(平常心)·임운(任運))을 말한다.

  11. 不可思議大解脫 불가사의대해탈

    유마경(維摩經) '불사의해탈법문(不思議解脫法門)'에 연원한 표현이다. 헤아릴 수 없는 큰 해탈이다.

  12. 不墮內外中間有無染淨 불타내외중간유무염정

    안·밖·중간, 유(有)·무(無), 염(染)·정(淨)의 양변에 떨어지지 않음이다. 변(邊)을 여읜 중도이다.

  13. 直下休歇 직하휴헐

    당장 그 자리에서 쉬고 또 쉼이다. 원오·대혜가 즐겨 쓴 휴헐(休歇) 공부이다.

  14. 見佛眾生等無差殊 견불중생등무차수

    부처와 중생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봄이다.

  15. 十成安樂之地 십성안락지지

    완전무결하게 안락한 경지이다. 십성(十成)은 열에 열, 곧 조금도 모자람 없이 온전함을 뜻한다.

  16. 長養·令純熟 장양·영순숙

    깨친 뒤의 보임(保任)·장양성태(長養聖胎)이다. 깨친 뒤 오래 길러 순일하게 익힘이다.

  17. 煅來煅去·如百煉精金 단래단거·여백련정금

    단련하고 또 단련하여 백 번 제련한 순금처럼 됨. 거듭 갈고닦아 공부를 순일하게 무르익히는 것을 비유한다.

  18. 大法器 대법기

    큰 법의 그릇. 바른 법을 담아 전할 만한 큰 그릇, 곧 그만한 사람을 이른다.

  19.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20. 二六時中 이육시중

    하루 열두 때 내내, 곧 온종일·언제나를 이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열두 때로 나누었고, 이육(二六)은 2×6=12를 말한다. 선어록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을 가리킬 때 늘 쓴다.

  21.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22.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23. 非心非佛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馬祖)의 말이다. 마조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가르치다가, 그 말에 매이는 것을 깨려고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매(大梅)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무문관』에도 실렸다.

  24. 卽心卽佛·非心非佛 즉심즉불·비심비불

    마조(馬祖)는 '마음이 곧 부처'라고 가르치다가 뒤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했다. 대매법상(大梅法常)이 앞의 말만 지킨다는 말을 듣고 마조는 '매실이 익었다'며 인정했다. 『무문관』에 두 칙으로 실렸다.

  25. 堅道者 견도자

    원오가 원오심요의 「견도자에게 주는 글」을 지어 준 수행자이다. '도자'는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았거나 참선에 힘쓰는 수행자를 두루 이르는 말이고, '견'은 그의 이름이다.

  26. 大定 대정

    대삼매(大三昧)이다. 천만 년이 지나도 털끝만큼도 옮기지 않는, 흔들림 없는 큰 선정이다.

  27. 絕學無爲閒道人 절학무위한도인

    배움을 다 마쳐 더 배울 것도 할 일도 없는 한가한 도인이라는 말이다. 영가 현각 스님의 증도가 첫 구절 '배움 끊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지도 참됨을 구하지도 않는다'에서 왔다(경덕전등록 권30).

  28. 長養 장양

    깨친 뒤의 보임(保任)·장양성태(長養聖胎)이다. 깨친 뒤 오래 길러 순일하게 익힘이다.

  29. 煅來煅去 단래단거

    백 번 제련한 순금처럼 거듭 단련하여 정법을 담아 전할 큰 그릇(大法器)을 이룸의 비유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2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29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