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上권 41편

추선인(樞禪人)에게 주는 글

示樞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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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한문玄學之士見性悟理,踐佛階梯,是家常茶飯。
번역현묘한 도를 배우는 이(玄學之士)가 성품을 보고 이치를 깨달아 부처의 계단을 밟는 것은, 늘 먹는 차와 밥처럼 예사로운 일이다.
須知佛祖頂𩕳上有換骨妙致,方可越格超宗,作向上人舉措,使德山、臨濟無施作用處。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처와 조사의 정수리 위에 뼈를 바꾸는(換骨) 오묘한 이치가 있어야, 비로소 격식을 넘고 종지를 뛰어넘어 향상인(向上人)의 몸가짐을 지을 수 있다. 덕산(德山)과 임제(臨濟)도 작용을 베풀 데가 없게 할 수 있다.
平時只守閑閑地,初不立伎倆,似三家村裏人頑然癡兀,直得諸天捧花無路,魔外潛覰不見,
평소에는 그저 한가하고 한가한 자리를 지킬 뿐, 애초에 재주를 내세우지 않는다. 세 집뿐인 두메 마을(三家村) 사람처럼 미련하고 멍하다. 그래서 여러 하늘(諸天)이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
漠然不露毫芒圭角,如居萬億寶貨深藏牢鎻,
아득하여 터럭만 한 모서리도 드러내지 않는다. 억만의 보화를 지니고 깊이 감추어 굳게 잠가 둔 것과 같다.
土面灰頭與傭保雜作,口亦不言、心亦不念,一世人莫測而神意泰然,豈非有道無爲無作真無事人耶?
흙 묻은 얼굴, 재 뒤집어쓴 머리로 품팔이꾼들과 섞여 일한다. 입으로도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온 세상 사람이 헤아리지 못해도 정신과 뜻은 태연하다. 어찌 도를 지녀 함이 없고 지음이 없는(無爲無作), 참으로 일 없는 사람(無事人)이 아니겠는가.
쉽게 읽기현묘한 도를 배우는 이가 제 성품을 보아 이치를 깨닫고, 부처의 자리로 오르는 계단을 밟는 일은, 날마다 차 마시고 밥 먹듯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 부처와 조사의 정수리 위에는, 뼈를 통째로 바꾸는 오묘한 이치가 따로 있다. 그것을 갖추어야 비로소 격식을 뛰어넘고 종지를 넘어서서, 곧장 위로 나아가는 사람 곧 향상인답게 처신할 수 있다. 그래야 덕산과 임제조차 그 솜씨를 펼칠 자리가 없어진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 그저 한가롭게 지낼 뿐, 처음부터 아무 재주도 뽐내지 않는다. 마치 집 몇 채뿐인 두메 마을 사람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어 멍하니 있다. 그래서 여러 하늘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고, 마군과 외도가 몰래 엿보아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 모습이 아득하여 터럭 끝만 한 모서리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억만의 보물을 지니고도 깊이 숨겨 굳게 잠가 둔 사람과 같다. 흙 묻은 얼굴에 재 뒤집어쓴 머리로 품팔이 일꾼들과 섞여 일한다. 입으로도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온 세상 사람이 그 속을 헤아리지 못하는데도, 그의 정신과 뜻은 태연하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함도 없고 지음도 없는, 참으로 일 없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풀이 7
臨濟義玄 임제의현'使德山、臨濟無施作用處'는 棒喝의 大機大用조차 베풀 데가 없게 한다는 뜻으로, 換骨妙致를 갖춘 向上人의 경지를 德山棒·臨濟喝에 견주어 높인 말.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諸天捧花無路'는 牛頭法融이 四祖를 만나기 전 그 석실에 '百鳥銜華之異'가 있었다는 이야기(『景德傳燈錄』 권4)와 통한다. 같은 짝말이 『碧巖錄』 제16칙 垂示 '諸天捧花無路,外道潛窺無門'에 있다.
臨濟錄 임제록'有道無爲無作真無事人'은 『臨濟錄』 示衆의 '無事是貴人,但莫造作,秖是平常'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병렬용례).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4 우두법융전(牛頭法融傳) : 견사조(見四祖) 전에 '백조함화헌공(百鳥銜花獻供)'하다 견후(見後)에 '백조불지(百鳥不至)'하였다. 본문 '제천봉화무로(諸天捧花無路)·마외잠처불견(魔外潛覰不見)'(자취가 없어 천(天)도 공양 못함)의 전거이다.
示衆임제록(臨濟錄) 시중(示衆)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무사인(無事人)' : 본문 '무위무작(無爲無作) 진무사인(眞無事人)'의 출처 계통이며 임제 무사(無事) 사상의 계승이다.
교감 · 土面灰頭'土面灰頭'의 '灰' — 저본 글자는 CBETA 조자 CB01926 [厂@火](CBETA 정규자 灰)이고 유니코드로는 CJK 호환 한자 U+2F835뿐이다. 데이터에 호환 한자를 쓰지 않으므로 통합 한자 '灰'(U+7070)로 실음(X69n1357 p0468b13). 뜻은 같다. 정형구 灰頭土面/土面灰頭의 '灰頭'다.
41.2
한문解語非干舌,能言不在詞。
번역말을 알아듣는 것은 혀에 달리지 않았고, 말을 잘하는 것은 말솜씨에 있지 않다.
明知古人舌頭語言不是依仗處,則古人半句一言,其意唯要人直下契證本來大事因緣。
옛사람의 혀끝 말이 기댈 곳이 아님을 분명히 알면, 옛사람의 반 구절 한마디도 그 뜻은 오직 사람이 곧바로 본래의 큰일 인연(大事因緣)에 맞닿아 깨닫게 하려는 것뿐이다.
所以修多羅教如標月指,祖師言句是敲門瓦子,知是般事便休。
그러므로 경(修多羅)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고, 조사(祖師)의 말과 구절은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이다. 이런 일인 줄 알았으면 곧 쉬어라.
쉽게 읽기말을 알아듣는 것은 혀에 달린 일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말솜씨에 있지 않다. 옛사람이 혀끝으로 뱉은 말은 기댈 곳이 못 된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면 옛사람의 반 마디 한 마디 말이라도, 그 뜻은 오직 하나임을 알게 된다. 곧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바로, 본래의 큰 일 인연을 몸소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조사의 말과 구절은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과 같다. 이런 줄을 알았거든 곧 쉬어야 한다.
풀이 2
敲門瓦子 고문와자'修多羅教如標月指'는 『圓覺經』의 구절이다. 원오는 이를 받아 '祖師言句是敲門瓦子'로 대구를 지어, 經敎와 祖師의 言句가 모두 방편임을 말한다.
41.3
한문行履處綿密,受用處寬通,日久歲深,不移易拈弄。
번역밟아 가는 자리(行履)는 빈틈없고, 누려 쓰는 자리(受用)는 넓게 트였다. 날이 오래고 해가 깊어져도 다루는 솜씨를 바꾸지 않는다.
收放得熟,小小境界悉皆照破割斷,不留朕迹。
거두고 놓음이 무르익어, 자잘한 경계를 모두 비추어 깨고 끊어 버려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及至死生之際,結角羅紋不相參雜,湛然不動,翛然出離。此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
죽고 사는 갈림에 이르러서도, 얽힌 매듭과 그물 무늬가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 맑고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유유히 벗어나 떠난다. 이것이 섣달 그믐날 열반당(涅槃堂) 안의 선(禪)이다.
쉽게 읽기행리, 곧 날마다 살아가는 자리는 빈틈이 없다. 그것을 받아 쓰는 자리는 널리 트여 있다. 세월이 오래 쌓여도 그 다루는 솜씨를 바꾸지 않는다. 거두고 놓는 일이 손에 익어, 자잘한 경계들을 모조리 비추어 부수고 끊어 낸다. 그리하여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 나아가 죽고 사는 갈림에 이르러서도, 얽힌 매듭과 그물 무늬가 서로 뒤엉키지 않는다. 맑고 고요히 흔들림 없이, 유유히 벗어나 떠난다. 이것이 바로 섣달 그믐날, 열반당 안의 선이다.
풀이 7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涅槃堂은 叢林에서 病僧이 머물던 堂(『五燈會元』 권3 百丈章 '涅槃堂又無病人', 권8 '成病入涅槃堂'). '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은 임종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선, 곧 죽음 앞에서 판가름 나는 공부를 이른다. 같은 구가 『圜悟語錄』 권15에도 실렸다.
碧巖錄 벽암록'臘月三十日'은 『碧巖錄』에서도 죽음의 때를 이른다: 제9칙 評唱 '及到臘月三十日,換手搥胸,已是遲了也', 제91칙 評唱 '於臘月三十日著得力,作得主'. '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은 『圜悟語錄』 권15에 같은 글이 있다(병렬용례).
碧巖錄 벽암록벽암록(碧巖錄) 수시(垂示)·평창(評唱) 다수 : 원오(圜悟)가 궁극의 시험을 '납월삼십일도래(臘月三十日到來)'로 상용하였다. 본문 '차납월삼십일열반당리선(此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과 동일한 사생 검증 어법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不移易拈弄,收放得熟
. 자체역은 '不移易拈弄(다루는 솜씨를 바꾸지 않음) / 收放得熟(거두고 놓음이 익숙함)'으로 끊고, 책은 '不移易(흔들리거나 바뀌지 않음) / 拈弄收放 得熟(拈弄을 得熟의 목적어로 붙임)'으로 끊는다. 두 구두가 모두 문법·의미상 성립하고 이를 가를 결정적 전거가 없으므로 양립하는 이독으로 유지한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結角羅紋不相參雜
책 오역. 結角羅紋은 얽힌 매듭과 그물 무늬로 생사에 엉키는 葛藤의 선가 상용 비유이고, 不相參雜은 서로 뒤섞이지 않음이다. 내 번역이 표준 독법이며 고증과 일치한다. 책의 '물소뿔에 달그림자가'는 원문 자구(結·角·羅·紋)에 없는 물상을 끌어들인 과의역이라 근거가 약하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翛然出離
. 翛然은 莊子 大宗師의 '翛然而往, 翛然而來'에 근거한 '유유히·무심히 거리낌 없음'이 본뜻으로 자체역이 이를 따르며, 앞의 '湛然不動'과 짝을 이루는 정적(靜的) 정취에도 부합한다. 다만 翛然에는 陸德明 釋文이 전하는 '재빠른 모양(疾貌)'의 訓도 있어 죽고 사는 갈림에서 벗어나는 장면에 책의 '홀연히'도 배제되지 않는다. 결정적 전거가 어느 한쪽을 확정하지 못하므로 양립하는 이독으로 유지한다.

上권 차례 (68편)

이 편의 낱말 36
  1. 見性悟理·踐佛階梯 견성오리·천불계제

    제 성품을 보아 이치를 깨닫고, 부처의 자리로 오르는 계단을 밟아 올라감이다.

  2. 家常茶飯 가상다반

    집안 일상의 차와 밥이니 예삿일이며 선가 상용어이다.

  3. 佛祖頂𩕳上 불조정녕상

    불(佛)·조사(祖師)의 정수리(두정(頭頂)/정문(頂門)) 위이니 곧 불조를 초월한 향상(向上) 경계이다. 𩕳(U+29573)은 정수리를 뜻하는 희귀 이체자이다.

  4. 越格超宗·向上人 월격초종·향상인

    격식을 넘고 종지(宗旨)를 초월함이다. 향상인(向上人)은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걷는 이이며 불조의 자취마저 벗은 사람이다.

  5. 諸天捧花無路 제천봉화무로

    ‘하늘의 신들이 꽃을 바치려 해도 바칠 길이 없다’는 말이다. 깨달은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신들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흔히 ‘마군과 외도가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와 짝지어 쓴다.

  6. 魔外潛覰不見 마외잠처불견

    마군(魔軍)과 외도(外道)가 몰래 엿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자취를 남기지 않아 누구도 그 속을 넘볼 수 없음을 이른다. 흔히 '여러 하늘이 꽃을 바칠 길이 없다(諸天捧花無路)'는 말과 짝지어 쓴다.

  7. 毫芒圭角 호망규각

    터럭 끝과 옥의 모난 귀이니 드러나는 예리함·자취이다.

  8. 土面灰頭 토면회두

    얼굴에 흙을 묻히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티끌 세상에 섞여 중생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이롭게 하는 모습을 이른다. 회두토면(灰頭土面)이라고도 한다.

  9. 傭保雜作 용보잡작

    품팔이 종들과 섞여 일함이니 숨은 행실이자 동진(同塵)이다.

  10. 解語非干舌 해어비간설

    말을 알아듣는 것은 혀에 달린 일이 아니다. '능언부재사(能言不在詞)'와 짝을 이루어 언어 밖의 소식을 말한다.

  11. 能言不在詞 능언부재사

    말을 잘하는 것은 말솜씨에 있지 않다. '해어비간설(解語非干舌)'과 짝을 이루어 언어 밖의 소식을 말한다.

  12. 標月指 표월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능엄경(楞嚴經) '여인이지지월(如人以指指月)'의 지월유(指月喩)이다. 교(敎)란 달이 아니라 방편의 손가락이다.

  13. 敲門瓦子 고문와자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이다. 문이 열리면 버리는 물건이듯, 조사의 말과 공안(公案)은 깨달음에 들게 하는 방편일 뿐이니 들어간 뒤에는 붙들지 말라는 비유다.

  14. 收放 수방

    거둠(파주, 把住)과 놓음(방행, 放行)이다.

  15. 照破割斷 조파할단

    경계를 비추어 부수고 끊어 냄이다.

  16. 結角羅紋 결각라문

    얽힌 매듭과 그물 무늬이니 생사에 엉키는 갈등(葛藤)의 상용 비유이다.

  17. 翛然出離 소연출리

    유유히 벗어남이다. 소연(翛然)은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소연이왕(翛然而往), 소연이래(翛然而來)'에서 왔다.

  18. 臘月三十日·涅槃堂裏禪 납월삼십일·열반당리선

    섣달 그믐은 목숨 마치는 날의 비유이다. 열반당(涅槃堂)은 총림에서 병승(病僧)이 죽음을 맞던 당(堂)(연수당(延壽堂))이다. 곧 죽음 순간에 판가름 나는 참선이다.

  19. 圜悟克勤 원오극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다.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으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의 법을 이었다. '원오'는 황제가 내린 호이고, 시호는 진각이다. 설두의 송고에 평을 붙인 『벽암록(碧巖錄)』을 남겼고, 제자들에게 준 글을 모은 책이 『원오심요(圜悟心要)』다.

  20.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21.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2. 德山宣鑑 덕산선감

    덕산선감(德山宣鑑, 782~865)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을 이었다. 『금강경』에 밝아 주금강이라 불렸다. 용담이 건넨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 깨치고, 지니던 『금강경』 주석서를 불살랐다. 몽둥이로 제자를 다그친 덕산방(德山棒)으로 이름났다.

  23. 臨濟義玄 임제의현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이다. 당나라 선승으로 황벽(黃檗)의 법을 이었고 임제종을 열었다. 황벽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뒤 대우(大愚)의 말끝에 깨쳤다. 벼락 같은 고함으로 학인을 이끌어 임제할(臨濟喝)로 이름났다.

  24. 臘月三十日 납월삼십일

    섣달 그믐날, 곧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선문에서는 목숨이 다하는 날, 죽음을 맞는 때를 이르는 말로 쓴다. 평소의 공부가 그날 쓸모 있느냐를 물을 때 자주 나온다.

  25. 大因緣 대인연

    『법화경』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서 온 말이다. 부처가 중생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나온 큰 까닭을 이른다. 선에서는 스스로 깨쳐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큰일을 가리킨다.

  26. 三家村 삼가촌

    집 서너 채뿐인 외딴 시골 마을이다. 선문에서는 사람 드문 외진 곳을 이르거나, 꾸밈없고 어수룩한 시골 사람에 빗대어 깨닫고도 티를 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을 그린다.

  27. 行履 행리

    걸음걸이와 발자취, 곧 날마다 몸으로 행하며 살아가는 실제 모습을 이른다. 선문에서는 깨친 뒤의 수행과 처신, 그 사람의 살림살이를 두루 가리킨다.

  28. 示樞禪人 시추선인

    원오가 추(樞)라는 선승에게 써 준 법어의 제목이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9. 臨濟錄 임제록

    임제(臨濟) 스님의 설법과 문답, 행적을 모은 어록이다. 법을 이은 제자 삼성혜연(三聖慧然)이 엮었고, 송나라 때 다시 펴냈다. '어디서나 주인이 되면 서는 곳마다 참되다' 같은 말로 이름났다.

  30. 玄學之士 현학지사

    현묘한 종문의 도를 배우는 이, 곧 참선 납자이다.

  31. 換骨妙致 환골묘치

    뼈를 바꾸는 오묘한 이치이다. 도교 신선(神仙) 환골탈태(換骨奪胎)에서 온 전신·초월의 비유이다.

  32. 無爲無作·真無事人 무위무작·진무사인

    함도 지음도 없는 참 일 없는 사람이다. 임제(臨濟)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 계통의 무사인(無事人)이다.

  33. 修多羅 수다라

    sūtra의 음역이니 곧 경(經)이다.

  34. 佛祖頂𩕳上 불조정녕상

    佛·祖師의 정수리(頭頂/頂門) 위이니 곧 불조를 초월한 向上 경계이다. 𩕳(U+29573)은 정수리를 뜻하는 희귀 이체자이다.

  35. 無爲無作 무위무작

    함도 지음도 없는 참 일 없는 사람이다. 臨濟 '無事是貴人' 계통의 無事人이다.

  36. 朕迹 짐적

    자취, 곧 남은 흔적이다.

문단 3국역본 대조 3교감 1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6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