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백운수단 광록 · 卷一 62

이튿날 밤 소참 — 죽은 물엔 용이 없다

次夜眾請小參 法不孤起

62.1
한문次夜,眾請小參,僧問:法不孤起,仗境方生,施主親迎,請師說法。師云:九九八十一。
번역이튿날 밤, 대중이 소참(小參)을 청했다. 한 승이 물었다.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경계에 기대어야 생깁니다. 시주가 몸소 맞이했으니, 스님께 설법을 청합니다.” 선사가 말했다. “구구는 팔십일이다.”
僧云:學人未曉其中旨,請師方便再宣揚。師云:問取露柱。僧云:莫便是和尚為人處?師云:笑殺傍觀。
승이 말했다. “학인이 그 뜻을 알지 못하니, 방편으로 다시 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노주(露柱)에게 물어라.” 승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화상께서 사람을 위하시는 곳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곁에서 보는 이가 우스워 죽겠다.”
쉽게 읽기이튿날 밤, 대중이 소참 법문을 청했다. 한 승려가 물었다.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바깥 경계를 만나야 생긴다고 합니다. 오늘 시주께서 몸소 스님을 맞아들였으니, 법을 설해 주십시오.” 백운 스님이 말했다. “구구는 팔십일이다.” 승려가 “저는 그 뜻을 모르겠으니, 방편을 써서 다시 일러 주십시오” 하자, 스님은 “법당 기둥에게 물어보라” 했다. “바로 이것이 스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자리입니까?” 하니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우스워 죽겠다” 했다.
62.2
한문僧禮拜。問:不求諸聖,不重己靈,未是衲僧分上事。如何是衲僧分上事?師云:死水不藏龍。
번역승이 절하고 물었다. “모든 성인을 구하지도 않고 제 신령함을 중히 여기지도 않는 것, 이것은 아직 납승의 본분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 납승의 본분 일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죽은 물에는 용이 깃들지 않는다.”
쉽게 읽기승려가 절하고 다시 물었다. “성인들을 찾지도 않고 제 안의 신령함을 떠받들지도 않는 것, 그것도 아직 납승이 할 본분의 일은 아니라 합니다. 무엇이 납승의 본분입니까?” 스님이 말했다. “고인 물에는 용이 살지 않는다.”
풀이 1
② 앞의 ‘不求諸聖, 不重己靈 … 死水不藏龍’ 문답은 어록 卷上 행장에도 나오는 백운의 대표 문답이다.
62.3
한문僧云:便恁麼去時如何?師云:賺殺你。僧云:溪山各異,雲月是同。師云:轉沒交涉。
번역승이 말했다. “곧바로 그렇게 가 버릴 때는 어떻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너를 단단히 속인다.” 승이 말했다. “시내와 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름과 달은 한가지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더욱 상관없다.”
僧云:謾某甲一人即得,爭奈大眾眼何?師云:作得箇庸衲僧。僧云:放過一著。師拍禪床一下,僧便禮拜,師乃云:
승이 말했다. “저 한 사람은 속이셔도 되겠지만, 대중의 눈은 어찌하시렵니까?” 선사가 말했다. “용렬한 납승 노릇은 하겠구나.” 승이 말했다. “한 수 놓아주십시오.” 선사가 선상을 한 번 쳤다. 승이 곧 절했다. 선사가 이에 말했다.
쉽게 읽기“그렇다면 곧장 그렇게 가 버릴 때는 어떻습니까?” “그러면 너는 크게 속는다.” “시내와 산은 저마다 다르지만 구름과 달은 같습니다.” “점점 더 엉뚱하구나.” “저 하나쯤은 속이실 수 있겠지만 대중의 눈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변변찮은 납승 노릇이나 하겠구나.” “한 수 봐 주십시오.” 스님이 선상을 한 번 내리치자 승려가 곧 절했다. 이어 스님이 말했다.
62.4
한문佛身充滿於法界,普現一切群生前,隨緣赴感靡不周,而常處此菩提座。
번역“부처의 몸은 법계에 가득 차서, 모든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난다. 인연 따라 감응하여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나, 늘 이 보리좌(菩提座)에 머문다.
大眾!作麼生說箇隨緣赴感底道理?只如一彈指間,盡大地含生根機一時應得周足,而未甞動著一毫頭,便且喚作隨緣赴感而常處此座。
대중이여! ‘인연 따라 감응한다’는 도리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온 대지 중생의 근기에 한꺼번에 두루 응한다. 그러면서도 터럭 하나 움직인 적이 없다. 이것을 짐짓 ‘인연 따라 감응하되 늘 이 자리에 머문다’고 부른다.
쉽게 읽기“‘부처의 몸은 온 법계에 가득하여 모든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나고, 인연 따라 응하여 닿지 않는 데가 없으면서도 늘 이 깨달음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대중이여, ‘인연 따라 응한다’는 이치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사이에 온 세상 중생의 그릇에 한꺼번에 빠짐없이 응하면서도 터럭 하나 움직인 적이 없다. 이것을 두고 ‘인연 따라 응하면서도 늘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풀이 1
① 이 소참의 뒷부분(佛身充滿於法界 … 양기·자명 三喝)은 어록 卷上 제3편과 같은 법어이다. 법화 소참에서 다시 설했다.
62.5
한문只如山僧此者受法華請,相次與大眾相別,去宿松縣裏開堂了方歸院去,且道還離此座也無?若道離,則世諦流布;若道不離,作麼生見得箇不離底事?
번역그런데 산승은 이번에 법화의 청을 받았다. 머잖아 대중과 작별하고, 숙송현(宿松縣)에 가서 개당을 마친 뒤에야 절로 돌아갈 것이다. 자, 말해 보라. 그래도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인가? 떠난다고 하면 세속의 이치로 하는 말(世諦流布)이다.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떠나지 않는 일을 어떻게 보겠는가?
쉽게 읽기그런데 나는 이번에 법화사의 청을 받아, 곧 대중과 헤어져 숙송현에 가서 개당 법회를 마친 뒤에야 절로 돌아올 것이다.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이 자리를 떠나는가, 떠나지 않는가? 떠난다고 하면 세상의 통념을 따르는 말일 뿐이다.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떠나지 않는 일을 어떻게 보겠는가?
62.6
한문莫是無邊剎境自他不隔於毫端,十世古今始終不離於當念麼?又莫是一切無心一時自徧麼?若恁麼,正是掉棒打月,到者裏直須悟始得。
번역‘가없는 세계가 나와 남 사이에 터럭 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고, 십세(十世)의 예와 지금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이 한 생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에 무심하면 한꺼번에 저절로 두루 미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바로 몽둥이를 휘둘러 달을 치는 격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쉽게 읽기‘끝없는 세계가 나와 남 사이에 터럭 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고, 아득한 옛날과 지금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이 한 생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에 마음을 비우면 저절로 어디에나 두루 있게 된다’는 것인가? 그렇게 여긴다면 몽둥이를 휘둘러 하늘의 달을 치려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62.7
한문你道既悟了便休,又何必更須遇人底?
번역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미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어찌 다시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當垂手方便之時,著著自有出身之路,不瞎却學者眼。若只悟得箇乾蘿蔔底,不唯瞎却學者眼,兼自已動,便先自犯鋒傷手。
깨닫고 사람을 만난 이는, 손을 드리워 방편을 쓸 때 한 수 한 수마다 스스로 빠져나갈 길이 있다. 그래서 배우는 이의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 그저 마른 무 대가리 같은 것만 깨친 이는, 배우는 이의 눈을 멀게 할 뿐 아니라, 제가 움직이자마자 먼저 제 칼끝에 손을 벤다.
쉽게 읽기너희는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무엇하러 또 눈 밝은 스승을 만나야 하느냐’고 말할 것이다. 깨닫고 나서 스승을 만난 사람은, 손을 내밀어 남을 이끌 때 한 수 한 수마다 빠져나갈 길을 스스로 갖추고 있어 배우는 이의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싹 마른 무 쪼가리 같은 깨달음만 얻은 사람은, 배우는 이의 눈을 멀게 할 뿐 아니라 제가 움직이는 순간 먼저 제 칼날에 손을 벤다.
62.8
한문你看我楊岐先師問慈明師翁道:幽鳥語喃喃,辭雲入亂峰時如何?答云:我行荒艸裏,汝又入深村。
번역그대들은 보라. 나의 스승 양기(楊岐)께서 사조 자명(慈明)께 여쭈었다. ‘깊은 산 새가 재잘재잘 울며 구름을 하직하고 어지러운 봉우리로 들 때는 어떻습니까?’ 사조가 답했다. ‘나는 거친 풀숲을 가는데, 너는 또 깊은 마을로 들어가는구나.’
進云:官不容針,更借一問。師翁便喝,進云:好喝。師翁又喝,先師亦喝,師翁乃連喝兩喝,先師遂禮拜退。
다시 여쭈었다. ‘관가에서는 바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지요.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 사조가 곧 할을 하자 ‘좋은 할입니다’ 했다. 사조가 또 할을 하자 양기도 할을 했다. 사조가 잇달아 두 번 할을 하니, 양기는 마침내 절하고 물러났다.
쉽게 읽기보라. 나의 스승 양기 스님이 그 스승 자명 스님께 여쭈었다. ‘깊은 산 새가 재잘거리며 구름을 떠나 어지러운 봉우리로 들어갈 때는 어떻습니까?’ 자명 스님이 답했다. ‘나는 거친 풀숲을 헤치고 가는데, 너는 또 깊은 마을로 들어가는구나.’ 양기 스님이 말했다. ‘관청에서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주지 않는다지만, 한 번만 더 여쭙겠습니다.’ 자명 스님이 곧바로 할을 하자 양기 스님이 ‘좋은 할입니다’ 했다. 자명 스님이 또 할을 하니 양기 스님도 할을 했고, 자명 스님이 잇달아 두 번 할을 하자 양기 스님은 절하고 물러났다.
62.9
한문大眾!須知悟了遇人者,向十字街頭與人相逢,却在千峰頂上握手;向千峰頂上相逢,却在十字街頭握手。
번역대중이여! 알아야 한다. 깨닫고 사람을 만난 이는 네거리에서 사람과 마주치되, 손은 천 봉우리 꼭대기에서 잡는다. 천 봉우리 꼭대기에서 마주치되, 손은 네거리에서 잡는다.
所以山僧甞有頌云:他人住處我不住,他人行處我不行。
그래서 산승이 일찍이 게송을 지었다. ‘남이 머무는 곳에 나는 머물지 않고, 남이 가는 곳에 나는 가지 않네.’
解開布袋頭,一時撒在諸人面前了也,有眼底莫錯怪好。
포대 자루를 풀어 여러분 앞에 한꺼번에 쏟아 놓았다. 눈 있는 이는 잘못 탓하지 말라.”
쉽게 읽기대중이여, 알아야 한다. 깨닫고 스승을 만난 사람은 네거리에서 사람과 마주쳤는데 손은 천 봉우리 꼭대기에서 잡고, 천 봉우리 꼭대기에서 마주쳤는데 손은 네거리에서 잡는다. 그래서 내가 전에 게송을 지어 ‘남이 머무는 곳에 나는 머물지 않고, 남이 가는 곳에 나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자루 끈을 풀어 여러분 앞에 한꺼번에 다 쏟아 놓았다. 눈 있는 사람은 엉뚱하게 탓하지 말라.”

광록 卷一 차례 (121편)

이 편의 낱말 11
  1. 白雲守端 백운수단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의 선승(1025~1072)으로, 양기방회(楊岐方會)의 법을 이었다. 서주(舒州) 백운산 해회선원에 머물러 '백운'이라 불린다. 그 법이 오조법연(五祖法演)을 거쳐 원오극근(圜悟克勤)에게 이어졌으니, 원오에게는 스승의 스승이 된다.

  2. 露柱 노주

    법당이나 불전 앞에 드러나 서 있는 둥근 기둥이다. 등롱(燈籠)과 함께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물(無情物)의 대표로, 선사들이 문답에 자주 끌어 쓴다. 운문(雲門)은 '등롱과 노주에도 온 대장경이 모자람 없이 다 들어 있다'고 하였다.

  3. 衲僧 납승

    누더기(衲) 옷을 입은 선승이다. 참선 수행자를 가리키는 선가의 상투어다.

  4. 禪床 선상

    좌선하는 평상, 또 선사가 올라앉아 법을 설하는 높은 자리다. 상당한 선사는 말을 맺으며 손이나 주장자로 선상을 치거나, 선상에서 내려오는 몸짓으로 법을 보이기도 한다.

  5. 法華山 법화산

    서주(舒州)에 있는 산이다. 백운수단(白雲守端)이 이 산의 증도선원(證道禪院)에 머물며 법을 폈고, 그때 스스로를 '법화'라 일컬었다. 승천·원통에 이어 머문 곳이고, 그 뒤 용문·흥화·해회로 옮겼다.

  6. 開堂 개당

    새로 주지가 된 선사가 처음으로 법좌에 올라 설법하는 의식이다. 관원과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임명 글을 읽고, 황제와 관원을 위해 향을 사르며, 법을 이어 준 스승을 위해서도 향을 올린다.

  7. 掉棒打月 도방타월

    몽둥이를 휘둘러 달을 친다는 말이다.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헛수고를 빗댄다. 선문에서는 말이나 알음알이로 본분을 붙잡으려는 일을 두고 흔히 쓴다.

  8. 楊岐方會 양기방회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92~1049)이다. 자명초원(慈明楚圓)의 법을 잇고 원주(袁州) 양기산에서 법을 폈다. 그 법맥을 양기파라 부르며, 백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을 거쳐 원오극근에게 이어졌다.

  9. 慈明楚圓 자명초원

    송나라 임제종의 선승(986~1039)으로, 석상초원(石霜楚圓)이라고도 한다. 분양선소(汾陽善昭)의 법을 이었고, 그 문하에서 양기방회(楊岐方會)와 황룡혜남(黃龍慧南)이 나와 임제종의 두 갈래를 이루었다.

  10. 官不容針 관불용침

    '관청에서는 바늘 하나 들이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수레와 말도 드나든다(官不容針, 私通車馬)'는 옛말의 앞 구절이다. 공적인 법도는 털끝만큼도 봐주지 않을 만큼 엄하고, 사사로운 길은 무엇이든 통할 만큼 너그럽다는 뜻이다. 선문답에 자주 쓰였다.

  11. 喝 할

    큰 소리로 꾸짖듯 내지르는 외마디 고함이다. 선문에서는 배우는 이의 분별과 망설임을 단번에 끊어 버리는 수단으로 쓴다. 임제(臨濟)가 특히 즐겨 써서, 덕산(德山)의 몽둥이(방, 棒)와 함께 '덕산방 임제할'이라 일컫는다. 임제는 할의 쓰임을 넷으로 나누어 보이기도 했다.

서주 법화산 증도선원 어록 舒州法華山證道禪院語錄주석 2낱말 11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저본

卍新纂續藏經 『白雲守端禪師廣錄』. 門人 處凝 編 · 序 太原 王孜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