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5
풀이 6
: 역자는 '待'를 '~하기를 기다리면'으로 새겨 '疑情盡去·勝解俱忘'까지 조건절로 묶고 '自然根本洞明'을 그 귀결로 삼는다. 책은 '待空豁豁地'를 앞 문장에 붙여 '텅 빈 훤한 경지를 마주해야 한다'로 끊는다. 그러나 '如桶脫底' 이하가 '自然'으로 귀결되는 흐름은 어느 쪽 구두로도 매�its 성립하며 도달할 경지의 뜻도 다르지 않으니, 결정적으로 한쪽을 틀렸다 할 전거가 없다. 구두 처리의 차이일 뿐 양쪽이 다 통하는 이독이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둔다.
근거: 책 '옛사람들과 똑같이 증득하여'는 '同得'을 누락하고 '同證'만 옮긴 축역이다. '똑같이 얻고 똑같이 증득하여'가 對句를 온전히 살린다.
근거: '終不'은 '결코/끝내 ~하지 않는다'는 부정 서술어이다. 앞의 '入理之門·悟中之則'을 밟으면 자연히 그런 사견에 빠지지 않는다는 결과 서술이다. 책은 '귀신을 보고… 인식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옮겨 안심의 서술을 경계의 명령으로 뒤집었다. 명령이라면 莫/勿/不得이어야 하므로 오역이다. '~지경에는 이르지 않습니다'가 옳다.
근거: 이 구절은 '終不'의 지배 아래 있어 '결코 소굴에 떨어져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책은 독립 조건문 '소굴에 떨어지면 빠져나올 수 없다'로 끊어 부정 지배 범위를 잃었으니, 위 항목과 연동된 오독이다. 역자 번역이 원문 구조에 부합한다.
풀이 6
이 편의 낱말 30
- 佛祖宗乘 불조종승
부처와 조사가 전해 온 근본 종지의 가르침이다.
- 香象渡河 향상도하
향상(香象), 곧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넌다는 비유다. 토끼는 물에 떠서 건너고 말은 바닥에 닿기도 하고 못 닿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바닥을 밟고 건넌다. 밑바닥까지 철저히 사무치는 깨달음을 비유한다.
-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
부싯돌을 쳐서 튀는 불꽃과 번쩍이는 번갯불이다. 헤아릴 틈 없이 빠른 것을 이르며, 선문에서는 깨달음의 기틀이 그러함을 비유한다. 흔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 한다.
- 拖泥帶水 타니대수
진흙을 끌고 물을 묻힌다는 뜻이다. 말이나 방편이 군더더기로 늘어져 깔끔하지 못함을 이른다. 학인을 위해 일부러 방편에 내려오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 偏圓事理 편원사리
치우침(偏)과 원만함(圓), 사(事)와 이(理)이다. 조동(曹洞)의 편정(偏正)이나 화엄(華嚴)의 사리(事理)처럼 우열·차별을 분별하는 교학적 헤아림이다.
- 土上加泥 토상가니
흙 위에 진흙을 더함이다. 알음알이(解會)를 보태 도리어 본분을 더럽힘을 나무라는 상투어이다. 두상안두(頭上安頭)(머리 위에 머리를 얹음)와 뜻이 같다.
- 千日並照無幽不燭 천일병조무유불촉
천 개의 해가 함께 비추어 그윽한(幽) 곳도 밝히지(燭) 않음이 없음이다. 걸림 없는 본분지혜의 두루 비춤을 비유한다.
- 坐斷 좌단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단번에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온갖 분별과 경계를 꽉 눌러 끊어 아무것도 끼어들 틈이 없게 함이다. ‘시방을 좌단한다’처럼 쓴다.
- 根塵妄緣 근진망연
육근(六根)(여섯 감관)과 육진(六塵)(여섯 경계)이 얽어낸 망령된 인연이다. 벗어야 할 생사(生死)의 근원이다.
- 桶脫底 통탈저
통의 밑바닥이 빠짐(桶底脫落)이다. 의심 덩어리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오(大悟)·철오(徹悟)의 비유이다.
- 髑髏前見神見鬼 촉루전견신견귀
해골(髑髏) 앞에서 귀신을 봄이다. 죽은 알음알이·환상에 사로잡힌 사견이다. 귀굴리작활계(鬼窟裏作活計)(귀신 굴 속의 살림살이)와 뜻이 같다.
- 認影認光 인영인광
그림자(影)와 빛(光)을 참으로 오인함이다. 광영문두(光影門頭)(빛과 그림자의 문턱)에 떨어진 병이다.
-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 不是心不是佛不是物 불시심불시불불시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를 다시 넘어선 말로, 『전등록』에는 마조의 말로도, 남전(南泉)의 말로도 전한다. 남전이 '남에게 말하지 않은 법'을 묻는 물음에 이 말로 답한 문답이 공안으로 이름났다.
- 洞山麻三斤 동산마삼근
한 스님이 동산수초(洞山守初)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삼 세 근'이라고 답했다. 헤아릴 길을 끊어 버린 대답으로 읽는다. 이 동산은 동산양개가 아니라 운문(雲門)의 제자다. 『벽암록』과 『무문관』에 실렸다.
- 一了一切了一明一切明 일료일체료일명일체명
하나를 사무치면 일체를 사무치고 하나가 밝으면 일체가 밝음이다. 화엄(華嚴) 일즉일체(一卽一切)의 돈오적(頓悟的) 회통이다.
- 斬作三段 참작삼단
세 동강으로 벰이다. 깨달아 밝혔다는 그 자취(明了)마저 없애야 함을 말하는 철저타파(徹底打破)의 어법이다.
- 無事無爲履踐諦當 무사무위이천제당
일없고 함이 없이(無事無爲) 참되고 마땅한(諦當) 자리를 밟아 실천함(履踐)이다. 깨침의 흔적도 없이 평상으로 돌아간 임제(臨濟) '무사인(無事人)'의 취지이다.
-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 非心非佛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馬祖)의 말이다. 마조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가르치다가, 그 말에 매이는 것을 깨려고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매(大梅)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무문관』에도 실렸다.
- 最上乘印 최상승인
최상승(一佛乘)의 심인(心印)이다. 조사가 서로 전한 불심인(佛心印)이다.
- 本分手段 본분수단
방편으로 낮추지 않고 본래의 향상 자리에서 그대로 쓰는 수단이다. 본분초료(本分草料)와 같은 말로 원오·대혜(大慧)가 즐겨 썼다.
- 疑情 의정
화두 참구 때 뭉치는 의심 덩어리(疑團)이다. 간화선(看話禪)의 핵심 기제로, 이것이 깨져야 통저탈락(桶底脫落)에 이른다.
- 勝解 승해
뛰어난 이해, 곧 대상을 분명히 알아 틀림없다고 굳게 인정하는 마음이다. 불교에서 마음의 작용을 나눈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 鋸解秤鎚 거해칭추
톱으로 저울추(칭추(秤鎚), 쇳덩이)를 켬이다. 아무 맛(滋味)도 없어 알음알이가 붙지 못하는 철산함(鐵酸餡)(쇠떡) 같은 화두를 비유한다. 대혜어록(大慧語錄) 등에 자주 보이는 몰자미(沒滋味) 어법이다.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