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1
책은 初無凝滯를 독립 절('막혀서 걸림이 없고')로 끊고 固欲·亦須를 두 요건의 병렬로 읽었고, 자체역은 固欲…亦須를 양보구문으로 읽었다. 병렬이든 양보든 '영리한 근기를 바라되 깊은 믿음이 무르익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요지는 같고, 凝滯 없음의 뜻도 양쪽에 전달된다. 결정적 전거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양립이독이다.
풀이 3
책은 未出世間을 辯利聰明의 술부('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로 읽어 '말재주·총명은 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망만 늘린다'로 새겼고, 자체역은 未出世間을 조건절('아직 세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는')로 읽었다. 辯利聰明을 주어로 삼는 점은 같고 통사 분기만 있을 뿐, 허망을 더한다는 귀결이 일치하므로 양립이독이다.
了卻은 선어록의 표준 완료복합동사로 '了卻生死'처럼 '끝내 없애다/마치다'의 뜻이며, '확실히 알아'(了知)의 뜻을 따로 담지 않는다. 따라서 무명주지를 남김없이 없앤다는 자체역이 옳고, 책이 了를 별도 동사로 떼어 '무명주지를 확실히 알아'라고 가필한 것은 표준 구문에 어긋난 오독이다.
풀이 5
책의 '한결같이 헤진 짚신을 밟고'는 蹋破를 이미 헤진 짚신으로 잘못 분석하였다. 蹋破草鞋는 짚신이 닳도록 행각·참방하며 철저히 수행함의 관용구로 破는 능동적 결과(닳게 함)이다. 내 번역 '짚신이 다 닳도록'이 정확하며 책은 과의·오분석이다.
풀이 6
책의 '다만 마음을 깨닫고자 애를 쓰며'는 肯心의 肯(수긍·긍정)을 놓치고 막연히 '깨닫고자 애씀'으로 과의역하였다. 辦肯心은 수긍하는 마음을 갖추어 챙김이다. 내 번역 '수긍하는 마음(肯心)을 갖추어'가 어의에 부합한다.
책의 '듣자마자 문득 들어보이고 뽑아들면 곧 행한다'는 舉著(남이 살짝 제시함)를 주체의 동작으로, 剔起(치켜듦)를 '뽑아들면'으로 잘못 분석하였다. 관용구 '剔起眉毛便行'에 비추면 '살짝 들어 보임만 듣고도 눈썹을 번쩍 치켜들고 곧장 나선다'가 옳다. 내 번역이 정확하다.
이 편의 낱말 24
- 參請 참청
학인이 스승을 찾아뵙고(參) 법을 여쭙는(請益) 일이다. 선원 수행의 기본 의절이다.
- 衣單 의단
선방에서 스님마다 정해진 앉을 자리와, 거기 둔 옷과 바리 따위를 이른다. '의단 아래'는 선방의 제자리, 곧 스스로 공부를 지어 가는 자리를 뜻한다.
- 體去歇去·
唇上醭生去· 체거헐거·如古廟香爐去 순상복생거· 여고묘향로거 휴헐(休歇)(쉼) 공부를 형용한 '~거(去)' 어법 3구이다. 복(醭)(부)은 술·간장 위에 피는 흰 곰팡이로, '입술에 곰팡이가 필 만큼' 언어·분별을 쉬는 것이다. '옛 사당 향로'는 아무도 찾지 않아 싸늘히 고요한 경지이다(냉회고목(冷灰枯木)류 비유).
- 祖師西來 조사서래
조사(祖師) 달마(達磨)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일이다. 선에서는 그 뜻을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는 데 둔다. 그 뜻을 묻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선문의 대표적인 물음이다.
- 無始無明住地 무시무명주지
시작 없이 이어져 온 근본무명(根本無明)이 자리 잡은 곳(住地無明)이다. 기신론(起信論)·유식(唯識) 용어를 선문에서 차용해 정진(淨盡)의 대상으로 삼는다.
- 本地風光 본지풍광
본지(本地)는 본래 자리, 풍광(風光)은 경치라는 뜻이다. 남에게서 얻지 않고 사람마다 본래 갖춘 마음자리의 참모습을 이른다. 흔히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짝지어 쓴다.
- 本來面目 본래면목
본디 그대로의 제 참모습, 곧 분별 이전의 참 나를 이른다. 육조 혜능(慧能)이 혜명(惠明)에게 한 물음에서 널리 퍼졌다.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그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 直指人心·
見性成佛 직지인심·견성성불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다. 글귀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보게 하는 선종의 근본 뜻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과 함께 일컫는다.
- 露布 노포
본래 봉하지 않고 널리 내걸어 알리던 글이다. 선에서는 겉으로 드러내 늘어놓은 말과 설명, 틀에 박힌 문자놀음을 낮추어 이른다. 노포(路布)라고도 적는다.
- 蹋破草鞋 답파초혜
짚신이 다 닳도록 행각·참방하며 철저히 수행함이다. 답(蹋)은 답(踏)의 통용자이다.
- 徹頭處 철두처
철저히 사무쳐 다다른 궁극처이다(철두철미(徹頭徹尾)의 두(頭)).
- 雲門文偃 운문문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다. 당말·오대의 선승으로 목주(睦州)에게서 눈을 뜨고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소주의 운문산에 머물며 운문종을 열었다. 짧은 한마디로 물음을 끊는 솜씨로 이름났으니,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그의 말이다.
- 東山水上行 동산수상행
운문(雲門)의 공안이다. 한 스님이 '모든 부처가 몸을 드러내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묻자, 운문은 '동산이 물 위로 간다'고 답했다. 생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말로 묻는 이의 분별을 끊은 것으로 읽힌다.
- 一葉落 일엽락
'잎 하나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임을 안다(一葉落知天下秋)'의 준말이다. 작은 조짐 하나로 전체를 알아차림을 이르는 옛말로, 선문에서는 한 티끌, 한 일 위에 온 세계가 드러남을 말할 때 쓴다.
- 肯心 긍심
의심 없이 수긍·긍정하는 마음이다. '판긍심(辦肯心)'은 긍심을 갖추어 챙기는 것이다.
- 與麼·
靠將去 여마·고장거 여마(與麼)는 임마(恁麼)(이렇게·그렇게)의 다른 표기이다. 고장거(靠將去)는 긍심에 기대어 밀고 나아감이다.
- 甕裏豈曾走鱉 옹리기증주별
'항아리 속 자라가 어찌 달아난 적 있으랴'로, 옹중착별(甕中捉鱉)(항아리 속 자라 잡기)류 속담이다. '반드시 잡음·결코 벗어나지 못함(확실함)'의 비유이다. 긍심으로 밀고 가면 깨달음이 결코 어긋나지 않음을 뜻한다.
- 靈利漢·
聊聞舉著· 영리한·剔起便行 요문거저· 척기편행 '영리한 사내는 잠깐 들어 보임(舉著)만 듣고도 [눈썹을] 번쩍 치켜세우고(剔起眉毛) 곧장 나선다'이다. 고덕(古德)(옛 어른)의 말로 인용하였다. '척기편행(剔起便行)'은 '척기미모편행(剔起眉毛便行)'의 축약이다.
- 直指人心 직지인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말이다. 경전의 글이나 이치를 거치지 않고 제 마음을 바로 짚어 깨닫게 한다. 흔히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이어 써서 달마(達磨)가 전한 선의 요지로 삼는다.
- 靈利漢 영리한
영리한 사내, 곧 눈치가 빠르고 근기가 날카로운 수행자를 이른다. 한마디만 들어 보여도 곧바로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 甕裏·
甕中· 옹리·走鱉· 捉鱉 옹중· 주별· 착별 '항아리 속 자라'라는 선가의 속담이다. 항아리에 든 자라는 달아날 데가 없으니 반드시 잡힌다는 뜻으로, 틀림없이 손에 넣음을 이른다. 흔히 '항아리 속에서 자라가 어찌 달아나랴'의 꼴로 쓰며, 원오도 이 말로 답한 일이 있다(오등회원 권19).
- 體去歇去 체거헐거
休歇(쉼) 공부를 형용한 '~去' 어법 3구이다. 醭(부)은 술·간장 위에 피는 흰 곰팡이로, '입술에 곰팡이가 필 만큼' 언어·분별을 쉬는 것이다. '옛 사당 향로'는 아무도 찾지 않아 싸늘히 고요한 경지이다(冷灰枯木류 비유).
- 與麼 여마
與麼는 恁麼(이렇게·그렇게)의 다른 표기이다. 靠將去는 긍심에 기대어 밀고 나아감이다.
- 甕裏·
甕中 옹리·옹중 '항아리 속 자라가 어디로 달아나랴'. 이미 손안에 든 것은 놓칠 리 없다, 곧 어김없이 확실함을 이르는 禪門 속담. 흔히 '甕裏何曾走却鼈'로 쓰이며(『五燈會元』 권19, X80n1565_p0411b24; 『虛堂語錄』 권9, T47n2000_p1057c16), '甕中走却鱉'로도 적는다(X70n1402_p0733c09).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