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초감

역주 · 원오심요 · 下권 31편

각선인(覺禪人)에게 주는 글

示覺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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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한문佛祖宗乘,唯務直截,如香象渡河,勢須徹底。若稍踟蹰,則千里萬里沒交涉。
번역부처와 조사의 종승(宗乘)은 오직 곧바로 끊는 데 힘쓴다. 향기로운 코끼리(香象)가 강을 건널 때, 그 기세가 반드시 바닥까지 닿아야 하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천 리 만 리 어긋나,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是故從上古德行棒行喝機境處參,如擊石火、閃電光,略露風規,已是拖泥帶水落草了也,
그래서 예로부터 옛 큰스님들은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하시며, 기틀과 경계(機境)에서 참구하게 하셨다. 부싯돌 불꽃이나 번갯불처럼 그 가풍(風規)을 잠깐 드러내신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벌써 진흙을 끌고 물을 묻힌 채 풀숲에 떨어진 것이다.
豈更論量淺深得失、偏圓事理?解會明知,是土上加泥。
하물며 다시 얕고 깊음, 얻고 잃음, 치우침과 원만함, 일과 이치를 따져 논하겠는가. 알음알이로 알고 또렷이 안다 하는 것은 흙 위에 진흙을 더하는 것이다.
쉽게 읽기부처와 조사가 전한 근본 가르침은 오직 곧바로 끊어 버리는 데 힘쓴다. 마치 향기로운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널 때 그 기세가 반드시 바닥까지 닿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천 리 만 리 어긋나, 아무 교섭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옛 큰스님들은 방을 쓰고 할을 하며 기틀과 경계에서 참구하게 하였다. 그것은 부싯돌의 불꽃이나 번갯불처럼, 잠깐 그 가풍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진흙을 끌고 물에 젖어, 풀숲에 떨어진 격이었다. 하물며 여기에 다시 얕고 깊음, 얻고 잃음, 치우침과 원만함, 현상과 이치를 따져 논하겠는가.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분명히 안다고 하는 것은 흙 위에 다시 진흙을 더하는 꼴이다.
풀이 5
行棒行喝 행방행할'從上古德行棒行喝機境處參,如擊石火、閃電光,略露風規,已是拖泥帶水落草了也' — 棒喝의 機境마저 이미 落草(학인 쪽으로 내려온 방편)라 하여, 그 위에서 淺深·得失을 따지는 일을 물리친다.
落草 낙초'已是拖泥帶水落草了也' — 棒喝·機境으로 잠깐 보인 것조차 이미 第二義에 떨어졌다는 말. 拖泥帶水는 군더더기 방편을 이르며 『碧巖錄』 권1에도 '道箇佛字,拖泥帶水'라 한다.
31.2
한문所以俊流佩最上乘印,似千日並照,無幽不燭。
번역그러므로 뛰어난 이가 최상승(最上乘)의 도장을 지니면, 천 개의 해가 함께 비추는 것과 같다. 그윽한 곳이라도 밝히지 않는 데가 없다.
纔見入門,未舉目搖唇,已先覰透心肝五臟。
남이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눈을 들거나 입술을 움직이기도 전에, 벌써 그 심장과 간과 오장까지 먼저 꿰뚫어 본다.
蓋本分手段,初無造作,只貴快自承當,剔起便行,
대개 본분(本分)의 솜씨에는 애초에 꾸밈이 없다. 오직 재빨리 스스로 떠맡고, 번쩍 일어나 곧장 가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可以籠罩古今十方,坐斷萬世千劫,不移易絲毫許。
그러면 고금과 시방을 다 뒤덮을 수 있다. 만세천겁(萬世千劫)을 앉은 채 끊어 버려, 털끝만큼도 옮기거나 바꾸지 않을 수 있다.
쉽게 읽기그러므로 뛰어난 이가 최상승의 심인을 지니면, 천 개의 해가 함께 비추어 어떤 그윽한 곳도 밝히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그는 남이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눈을 들거나 입술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그 심장과 간, 오장을 먼저 꿰뚫어 본다. 본분의 수단에는 애초에 꾸밈이 없다. 오직 재빨리 스스로 짊어지고, 떨쳐 일어나 곧바로 나아감을 귀히 여긴다. 그리하면 고금과 시방을 뒤덮는다. 만세천겁을 앉은 자리에서 끊어 버려, 털끝만큼도 옮겨 바뀌지 않게 할 수 있다.
31.3
한문儻未能如是頓超,亦須先自擺脫根塵妄緣,以至淨妙殊勝理道。
번역만약 이렇게 단박에 뛰어넘지 못한다면, 먼저 스스로 감관과 대상(根塵)의 허망한 인연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맑고 미묘하며 빼어난 이치의 길에 이르러야 한다.
待空豁豁地,如桶脫底,胷次蕩然,疑情盡去,勝解俱忘,自然根本洞明,與從上來同得同證,曾無間隔,
텅 비어 훤히 트이기를 기다려라. 통의 밑바닥이 빠진 듯 가슴속이 말끔해지고, 의정(疑情)이 다 사라지고, 뛰어난 앎(勝解)마저 함께 잊히면, 저절로 근본이 환히 밝아진다. 예로부터 내려온 이들과 똑같이 얻고 똑같이 증득하여, 조금도 틈이 없다.
이것이 곧 이치에 들어가는 문이요, 깨달음 속의 법칙이다. 그러면 끝내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보고, 그림자를 붙들고 빛을 붙들다가, 소굴에 떨어져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하는 데에 이르지 않는다.
쉽게 읽기이렇게 단박에 뛰어넘지 못한다면, 먼저 스스로 근진의 망령된 인연을 벗어야 한다. 그리하여 맑고 미묘하며 빼어난 이치의 길에 이르러야 한다. 텅 비어 훤히 트여, 통의 밑바닥이 빠진 듯 가슴속이 말끔해진다. 의정, 곧 의심 덩어리가 다 사라지고, 승해, 곧 깨달았다는 생각마저 잊히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자연히 근본이 환히 밝아진다. 예로부터 내려온 조사들과 똑같이 얻고 똑같이 증득하여, 조금도 간격이 없게 된다. 이것이 곧 이치에 들어가는 문이요, 깨달음 가운데의 법칙이다. 그러면 끝내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보고, 그림자와 빛을 알음알이로 붙드는 일이 없다. 그런 소굴에 떨어져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하는 지경에도 이르지 않는다.
풀이 6
勝解 승해'疑情盡去,勝解俱忘'은 疑情이 다한 뒤, 깨달았다는 굳은 앎(勝解)마저 함께 잊는다는 말이다.
국역본 대조 · 두 읽기 다 성립待空豁豁地,如桶脫底
: 역자는 '待'를 '~하기를 기다리면'으로 새겨 '疑情盡去·勝解俱忘'까지 조건절로 묶고 '自然根本洞明'을 그 귀결로 삼는다. 책은 '待空豁豁地'를 앞 문장에 붙여 '텅 빈 훤한 경지를 마주해야 한다'로 끊는다. 그러나 '如桶脫底' 이하가 '自然'으로 귀결되는 흐름은 어느 쪽 구두로도 매�its 성립하며 도달할 경지의 뜻도 다르지 않으니, 결정적으로 한쪽을 틀렸다 할 전거가 없다. 구두 처리의 차이일 뿐 양쪽이 다 통하는 이독이므로 ‘두 읽기가 다 성립함’로 둔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與從上來同得同證
근거: 책 '옛사람들과 똑같이 증득하여'는 '同得'을 누락하고 '同證'만 옮긴 축역이다. '똑같이 얻고 똑같이 증득하여'가 對句를 온전히 살린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終不向髑髏前見神見鬼、認影認光
근거: '終不'은 '결코/끝내 ~하지 않는다'는 부정 서술어이다. 앞의 '入理之門·悟中之則'을 밟으면 자연히 그런 사견에 빠지지 않는다는 결과 서술이다. 책은 '귀신을 보고… 인식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옮겨 안심의 서술을 경계의 명령으로 뒤집었다. 명령이라면 莫/勿/不得이어야 하므로 오역이다. '~지경에는 이르지 않습니다'가 옳다.
국역본 대조 · 국역본을 바로잡음墮在窠窟,求出處不得
근거: 이 구절은 '終不'의 지배 아래 있어 '결코 소굴에 떨어져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책은 독립 조건문 '소굴에 떨어지면 빠져나올 수 없다'로 끊어 부정 지배 범위를 잃었으니, 위 항목과 연동된 오독이다. 역자 번역이 원문 구조에 부합한다.
31.4
한문只如古人道卽心卽佛,又道非心非佛,又道不是心、不是佛、不是物,又道麻三斤,又道鋸解秤鎚,萬別千差。
번역가령 옛사람은 말했다.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또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또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또 말했다. “삼 세 근(麻三斤).” 또 말했다. “톱으로 저울추를 켠다(鋸解秤鎚).” 이렇게 천 갈래 만 갈래로 다르다.
若直下領略,豈有二致?所以一了一切了,一明一切明。
그러나 곧바로 알아차리면, 어찌 두 가지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를 마치면 모두를 마치고, 하나가 밝으면 모두가 밝다.
只這明了,也須斬作三段始得,方入無事無爲、履踐諦當處耳。
다만 이 밝게 마친 것조차 세 동강으로 잘라 버려야 비로소 된다. 그래야 일없고 함이 없는 자리, 참되고 마땅하게 밟아 가는 자리에 든다.
쉽게 읽기옛사람은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다. 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 하였다. 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 하였다. 또 "삼 세 근"이라 하고, "톱으로 저울추를 켠다"라고도 하였다. 이처럼 그 말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곧바로 알아차리면, 어찌 서로 다른 두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를 마치면 일체를 마치고, 하나가 밝아지면 일체가 밝아진다. 다만 이 밝게 마쳤다는 것조차도 반드시 세 동강으로 잘라 버려야 비로소 된다. 그래야 일없고 함이 없어, 참되고 마땅한 곳을 밟아 나아가는 자리에 든다.
풀이 6
洞山麻三斤 동산마삼근'麻三斤'은 洞山守初의 답으로 『碧巖錄』 제12칙 본칙이다. 評唱은 이 말이 '截斷古人舌頭'라 하고, 洞山이 창고에서 삼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따위의 풀이를 물리친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卽心卽佛'·'非心非佛'은 馬祖의 말(『景德傳燈錄』 권6 馬祖章 '為止小兒啼')이고, '不是心不是佛不是物'은 권8 南泉章에서 南泉이 '王老師不恁麼道'라며 한 말이다(권28 南泉 示衆은 '江西大師云'으로 듦).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마조도일장(馬祖道一章) 및 무문관(無門關) 제30·33칙: '즉심즉불(卽心卽佛)'·'비심비불(非心非佛)'이 마조(馬祖) 문답으로 실려 있다. 원오 어록(語錄)에서도 이 둘을 나란히 들어 '만별천차(萬別千差)나 일료일체료(一了一切了)'로 회통한다.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8 남전보원장(南泉普願章): '불시심(不是心), 불시불(不是佛), 불시물(不是物)'의 출전이다. 본편이 마조(馬祖) 계열 삼구(三句)(즉심(卽心)·비심(非心)·불시물(不是物))를 차례로 배열한 근거이다.

下권 차례 (72편)

이 편의 낱말 30
  1. 佛祖宗乘 불조종승

    부처와 조사가 전해 온 근본 종지의 가르침이다.

  2. 香象渡河 향상도하

    향상(香象), 곧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넌다는 비유다. 토끼는 물에 떠서 건너고 말은 바닥에 닿기도 하고 못 닿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바닥을 밟고 건넌다. 밑바닥까지 철저히 사무치는 깨달음을 비유한다.

  3. 機境 기경

    기(機)는 스승이 내보이는 마음의 작용과 솜씨, 경(境)은 그때 드러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다. 가르침의 수단을 두루 이르나, 거기에 붙들려 알음알이를 지으면 병이 된다.

  4. 擊石火閃電光 격석화섬전광

    부싯돌을 쳐서 튀는 불꽃과 번쩍이는 번갯불이다. 헤아릴 틈 없이 빠른 것을 이르며, 선문에서는 깨달음의 기틀이 그러함을 비유한다. 흔히 ‘전광석화(電光石火)’라 한다.

  5. 拖泥帶水 타니대수

    진흙을 끌고 물을 묻힌다는 뜻이다. 말이나 방편이 군더더기로 늘어져 깔끔하지 못함을 이른다. 학인을 위해 일부러 방편에 내려오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6. 落草 낙초

    '풀숲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깨친 이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배우는 이의 눈높이로 말과 방편을 써서 일러 주는 일을 이른다. 말에 떨어져 본분을 잃었다고 낮추어 이를 때에도 쓴다.

  7. 偏圓事理 편원사리

    치우침(偏)과 원만함(圓), 사(事)와 이(理)이다. 조동(曹洞)의 편정(偏正)이나 화엄(華嚴)의 사리(事理)처럼 우열·차별을 분별하는 교학적 헤아림이다.

  8. 土上加泥 토상가니

    흙 위에 진흙을 더함이다. 알음알이(解會)를 보태 도리어 본분을 더럽힘을 나무라는 상투어이다. 두상안두(頭上安頭)(머리 위에 머리를 얹음)와 뜻이 같다.

  9. 千日並照無幽不燭 천일병조무유불촉

    천 개의 해가 함께 비추어 그윽한(幽) 곳도 밝히지(燭) 않음이 없음이다. 걸림 없는 본분지혜의 두루 비춤을 비유한다.

  10. 坐斷 좌단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단번에 끊어 버린다는 말이다. 온갖 분별과 경계를 꽉 눌러 끊어 아무것도 끼어들 틈이 없게 함이다. ‘시방을 좌단한다’처럼 쓴다.

  11. 根塵妄緣 근진망연

    육근(六根)(여섯 감관)과 육진(六塵)(여섯 경계)이 얽어낸 망령된 인연이다. 벗어야 할 생사(生死)의 근원이다.

  12. 桶脫底 통탈저

    통의 밑바닥이 빠짐(桶底脫落)이다. 의심 덩어리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오(大悟)·철오(徹悟)의 비유이다.

  13. 髑髏前見神見鬼 촉루전견신견귀

    해골(髑髏) 앞에서 귀신을 봄이다. 죽은 알음알이·환상에 사로잡힌 사견이다. 귀굴리작활계(鬼窟裏作活計)(귀신 굴 속의 살림살이)와 뜻이 같다.

  14. 認影認光 인영인광

    그림자(影)와 빛(光)을 참으로 오인함이다. 광영문두(光影門頭)(빛과 그림자의 문턱)에 떨어진 병이다.

  15. 窠窟 과굴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선에서는 수행자가 한 견해나 경지에 눌러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자리, 곧 '소굴'을 비유한다. 틀에 박힌 말이나 수단을 가리키기도 한다.

  16. 不是心不是佛不是物 불시심불시불불시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라는 말이다. 마조(馬祖)의 '마음이 곧 부처'와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를 다시 넘어선 말로, 『전등록』에는 마조의 말로도, 남전(南泉)의 말로도 전한다. 남전이 '남에게 말하지 않은 법'을 묻는 물음에 이 말로 답한 문답이 공안으로 이름났다.

  17. 洞山麻三斤 동산마삼근

    한 스님이 동산수초(洞山守初)에게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고 묻자, '삼 세 근'이라고 답했다. 헤아릴 길을 끊어 버린 대답으로 읽는다. 이 동산은 동산양개가 아니라 운문(雲門)의 제자다. 『벽암록』과 『무문관』에 실렸다.

  18. 一了一切了一明一切明 일료일체료일명일체명

    하나를 사무치면 일체를 사무치고 하나가 밝으면 일체가 밝음이다. 화엄(華嚴) 일즉일체(一卽一切)의 돈오적(頓悟的) 회통이다.

  19. 斬作三段 참작삼단

    세 동강으로 벰이다. 깨달아 밝혔다는 그 자취(明了)마저 없애야 함을 말하는 철저타파(徹底打破)의 어법이다.

  20. 無事無爲履踐諦當 무사무위이천제당

    일없고 함이 없이(無事無爲) 참되고 마땅한(諦當) 자리를 밟아 실천함(履踐)이다. 깨침의 흔적도 없이 평상으로 돌아간 임제(臨濟) '무사인(無事人)'의 취지이다.

  21. 碧巖錄 벽암록

    송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옛 공안 100칙을 골라 붙인 게송에, 원오극근(圜悟克勤)이 머리말(수시)·짧은 평(착어)·자세한 풀이(평창)를 더한 책이다. 원오가 협산에 머물 때 강설한 것을 엮었으며 10권이다.

  22. 景德傳燈錄 경덕전등록

    송나라 도원(道原)이 1004년 무렵 엮어 조정에 바친 선종의 역사책이다. 과거 일곱 부처에서 법안의 제자들까지, 법을 이은 차례대로 선사들의 행적과 문답을 실었다. 30권이며, 뒷날 공안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23. 卽心卽佛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마조(馬祖) 스님이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라며 가르친 말로, 대매(大梅)가 이 말에 깨쳤다. 마조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말도 썼다.

  24. 行棒行喝 행방행할

    방(棒)을 쓰고 할(喝)을 한다는 말이다. 몽둥이로 치고 크게 소리쳐, 말과 생각에 매인 학인을 단번에 깨우치는 수단이다. 덕산(德山)의 방과 임제(臨濟)의 할이 이름났다.

  25. 非心非佛 비심비불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다'라는 마조(馬祖)의 말이다. 마조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가르치다가, 그 말에 매이는 것을 깨려고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대매(大梅)는 이 말을 전해 듣고도 나는 오직 즉심즉불일 뿐이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무문관』에도 실렸다.

  26. 最上乘印 최상승인

    최상승(一佛乘)의 심인(心印)이다. 조사가 서로 전한 불심인(佛心印)이다.

  27. 本分手段 본분수단

    방편으로 낮추지 않고 본래의 향상 자리에서 그대로 쓰는 수단이다. 본분초료(本分草料)와 같은 말로 원오·대혜(大慧)가 즐겨 썼다.

  28. 疑情 의정

    화두 참구 때 뭉치는 의심 덩어리(疑團)이다. 간화선(看話禪)의 핵심 기제로, 이것이 깨져야 통저탈락(桶底脫落)에 이른다.

  29. 勝解 승해

    뛰어난 이해, 곧 대상을 분명히 알아 틀림없다고 굳게 인정하는 마음이다. 불교에서 마음의 작용을 나눈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30. 鋸解秤鎚 거해칭추

    톱으로 저울추(칭추(秤鎚), 쇳덩이)를 켬이다. 아무 맛(滋味)도 없어 알음알이가 붙지 못하는 철산함(鐵酸餡)(쇠떡) 같은 화두를 비유한다. 대혜어록(大慧語錄) 등에 자주 보이는 몰자미(沒滋味) 어법이다.

문단 4국역본 대조 4 · 깊이 읽기에서 봄낱말 30저본 《卍新纂續藏經》

저본

卍新纂續藏經 佛果克勤禪師心要(CBETA 전자판). 국역본 대조는 선림고경총서 국역본과 견준 것으로, 대조에 필요한 구절만 출처를 밝혀 인용합니다.

원문은 中華電子佛典協會(CBETA) 전자판을 따르며 CC BY-NC-SA 3.0 TW(비영리 · 같은 조건)로 싣습니다. 정자 · 표점을 일부 손질했고 고친 곳은 교감에 남겼습니다 — 저작권과 출처